▲ 김현욱 시인교직에 몸담은 지 올해로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정년이나 명퇴로 학교를 떠난 이를 여럿 보았는데, 퇴임의 소회는 다들 엇비슷했다. “큰 사건사고 없이 교직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어디 크게 아픈 데 없이 건강해서, 오랜 세월 기댈 언덕이 되어준 아내와 장성한 자식들이 제 몫을 다해줘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기쁘게 교직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게 공통의 요지였다. 게 중에는 동료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는 이도 있었고, 정작 자신만 모르게 손가락질을 받는 이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40년이라는 긴 인생을 학교에서 보낸 인생 선배들의 퇴임식은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번 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한우처럼 행복에도 등급이 있을 리는 만무하겠지만, 행복한 인생을 관통하는 어떤 공식 같은 것은 분명 있으리란 확신은 들었다. 퇴임식에서 인생 선배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공통으로 언급한 직업, 건강, 가족, 인간관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짧은 세월 동안 몇몇 퇴임 교사들을 지켜보고 얻은 결론이라 내심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좀 더 긴 세월 동안 좀 더 많은 사람의 인생을 지켜본다면 우리가 수긍하고 참고할 일반적인 행복의 공식 같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조지 베일런트의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를 만났다. 조지 베일런트의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는 3개 집단(하버드대 2학년생, 서민 남성, 여성 천재), 총 814명에 이르는 성인남녀의 삶을 사춘기 때부터 70여 년간 총체적으로 추적 조사한 가히 독보적인 연구다. 이 연구는 1938년 백화점 재벌 월리엄 T. 그랜트의 후원으로 당시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학부의 알리 복 박사가 시작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1967년 베일런트 교수가 연구를 이어받아 행복한 삶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생애 연구를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베일런트 교수는 1977년에 성인발달연구의 중간보고서 격인 `성공적 삶의 심리학`을 펴낸 뒤 2009년 6월, 약 72년에 걸쳐 진행된 연구 과정과 결과를 미국의 유력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에 심층 기사로 실었다. 국내에는 2010년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베일런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노화를 예견하는 일곱 가지 행복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이고, 이어서 교육,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이었다.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가 공식화한 `무의식적 방어기제`는 스스로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실제 삶을 가공하고 왜곡할 수 있는 무의식적 생각과 행동을 말한다. 베일런트는 방어기제를 기본적인 생물학적 과정에 대응하는 정신세계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투사(편견, 험담), 수동 공격성(사디즘, 마조히즘), 분열(과음, 무관심), 행동화(범죄, 학대), 환상(자기도취)이 미성숙한 방어기제라면 승화, 유머, 이타주의, 억제, 예견은 성숙한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삶의 모든 것을 악화시키지만, 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인생을 충만하게 만든다. 베일런트는 방어기제를 잘 활용한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양심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창의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밖에도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인생 전반에 투자하라는 조언, 50대 이후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47세 무렵까지 만들어놓은 인간관계라는 연구결과도 눈여겨 볼만하다. 무엇보다 70여 년에 걸쳐 추적 조사한 814명의 인생을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집단주의와 관계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한국판 성인발달연구가 진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2017-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