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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벤트 정부와 블론(Blown) 세이브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오줌싸개 매미들이 소금 동냥을 떠나고 있다. 한 여름 나무의 멱살을 잡고 밤낮없이 울어대던 매미들이 인간 세상을 향해 오줌 한 번 걸판지게 갈기고는 미련 없이 나무를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 떠날 때는 어떻게 떠나야 하는지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속을 비운 매미들은 가벼이 날아오른다. 매미들이 떠난 자리에서 귀뚜라미들은 풀보다 더 시퍼렇게 울면서 철이 바뀌고 있음을 천하에 알리고 있다. 그 소리에 여름과 가을은 조용하게 자리바꿈을 준비한다. 하지만 철없는 인간 세상은 자리바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끄럽다. 지난 정부와 현 정부의 공통점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은 대동소이(大同小異)이다. 자기만 잘 났고, 자기만 옳다고 떠들어 대는 떠버리 측면에서 보면 말이다. 넥타이만 풀면 뭐하나, 수첩만 없애면 뭐하나, 비록 겉모습은 변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보고 배운 습관은 그대로인데. 한 사람의 지시(指示)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지금 정부의 모습은 북쪽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과연 이 정부에는 회의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아, 잊었다. 지금 정부의 인사원칙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것을. 스스로 정한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막무가내 식으로 사람을 뽑을 때는 이해가 안 되었는데, 지금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이해가 간다.촛불 정부의 다른 이름은 이벤트 정부다. 이벤트는 준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처음에는 즐겁다. 청혼을 위한 이벤트, 축하와 감사를 위한 이벤트 등 이벤트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렌다. 그래서 이벤트는 우리 삶에서 간혹 감동의 전환점 역할을 한다. 이벤트는 중독성이 강해 받는 사람들의 기대감과 만족도는 그 횟수에 비례한다. 그래서 준비하는 사람은 더 자극적인 이벤트를 준비하게 되고 결국 그런 이벤트는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적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 순간부터 이벤트는 즐거움이 아니라 부담과 불행으로 전락한다.지금 정부는 힘든 국민들을 위해 이벤트를 꽤 잘 했다. 시민들은 여론과 지지율로 이벤트에 답했다. 첫 이벤트가 언제나 그렇듯 이벤트 주최인 촛불 정부와 이벤트에 참가한 광장 안 시민들은 서로가 즐거웠다. 그것을 지켜보던 광장 밖 국민들 또한 덩달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그 행복감이 오래 가기를 바랐다.그런데 문제는 항상 이벤트 다음이다. 보상 받기를 열망하는 마음이 큰 사람들일수록 이벤트 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조건 이벤트에 몰입하여 즐긴다. 그 순간 이벤트의 목적이나 의도는 사라지고 만다. 주최 측은 그것을 최대한 이용한다.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들의 기분이 최고일 때 슬쩍 자신들의 생각을 흘린다. 그러면 이벤트에 취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따져보지도 않고 OK를 외친다. 그리고 더 자극적인 이벤트를 열어 줄 것을 요구한다.촛불 정부의 대표적인 이벤트는 `비정규직 제로`다. 정말 이상적인 정책이다. 필자 또한 10년 넘게 비정규직 생활을 했기에 말만 들어도 설렌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상(理想)에 집착하는 순간 이상(理想)은 이상(異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 정부의 이상한 이벤트 때문에 교육계의 약자들이 아프다. 학령기 인구 절벽 시대라는 말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희망 고문으로 취업 약자들을 절대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내년 총선을 위한 이벤트 정책은 제발 그만 남발하고 이 나라를 위한 현실성 있는 비전을 제시하기를 바란다.야구 용어 중에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한 투수가 동점이나 역전당할 때” 사용하는 `블론(Blown) 세이브`라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북쪽에만 목을 맨다면 내년에 매미가 돌아왔을 때 지금처럼 웃으면서 이벤트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부디 이번 정부는 블론 세이브의 오명을 쓰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2017-08-31

초록 토끼를 만났다

▲ 김현욱 시인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회중시계를 들고 다니며 말까지 하는 이상한 토끼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했던 앨리스는 그 토끼를 따라 굴속으로 뛰어들면서 이상한 나라에서 환상적인 모험을 겪는다. 그런데 왜 하필 토끼였을까? 일반적으로 토끼는 꾀 많고 영리하며 사람에게 친숙한 동물로 여겨졌다. 늘 주위를 경계하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여 겁이 많고 약한 사람에 빗대기도 했지만, 달에서 방아를 찧는 상상의 토끼나 기지를 발휘해 용궁을 빠져나오는 지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도 여겨진다. 가만 보면 토끼는 어린이와 닮았다. 미성숙한 신체는 어른에 비해 작고 약하지만, `동심`을 간직한 심성은 때때로 놀라운 직관과 혜안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토끼`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화나 동요에 자주 등장한다.송찬호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 `초록 토끼를 만났다`에도 화자가 만난 이상한 토끼가 등장한다. 흰 토끼도 검은 토끼도 아닌 `초록 토끼`다.“초록 토끼를 만났다/ 거짓말이 아니다/ 너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전에 난 초록 호랑이도 만난 적 있다니까// 난 늘 이상하고/ 신기한 세상을 기다렸어// `초록 토끼를 만났다`고/ 또박또박 써 본다/ 내 비밀을 기억해 둬야 하니까/ 그게 나에게 힘이 되니까//”(`초록 토끼를 만났다`)`늘 이상하고/ 신기한 세상`을 기다려온 `나`는 `초록 토끼`를 만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초록 토끼뿐만 아니라 전에는 `초록 호랑이`도 만났다. 초록 토끼와 초록 호랑이를 만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는 그 만남을 `또박또박 써`서 기록해둔다. 왜냐하면 `그게 나에게 힘이 되기 때문`이다.초록 토끼란 앨리스가 만난 회중시계를 들고 말까지 하는 이상한 토끼와 닮았다. 앨리스는 그 토끼를 단박에 따라 나선다.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굴속으로 뛰어들려면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토끼를 따라 가지 않았다면 앨리스의 환상적인 모험은 불가능했을 것이다.`초록 토끼를 만났다`의 `나`는 초록 토끼와의 `만남`을 또박또박 써두었고, 기억하고 있으며, 그게 힘이 된다고 고백한다. 도대체 `나`는 초록 토끼를 만나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떤 일을 겪었을까? 송찬호 시인의 동시집 `초록 토끼를 만났다`는 초록 토끼와의 만남과 모험을 또박또박 기록한 `나`의 비밀 일기장인 셈이다.송찬호 시인의 동시는 시와 동시의 경계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시면서 시가 되고, 시이면서 동시가 되는 조화와 확산의 어떤 지점에 시인은 이미 가닿은 듯도 하고 어쩌면 알에서 갓 태어난 봄날의 노란 병아리처럼 한 생을 거쳐 회귀한 듯도 하다.동시집 `초록 토끼를 만났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는 `도라지꽃`이다. 동화적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로서의 동시도 재미있지만 동시에서 시로 번져가는 수묵채색화 같은 아름다움은 단연 압권이다. 도라지꽃을 들여다 본 것이 아니라 도라지꽃이 꾸는 `보랏빛 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노루라니!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필휘지로 그려낸 웅숭깊은 시선에 감전하듯 그저 감응할 수밖에 없다.“햇살 동터 오는/ 산등성이 아침/ 보랏빛 도라지꽃/ 늦잠을 자고 있다// 곁을 지나던 노루가/ 보랏빛 꿈이 무얼까/ 가만히 들여다보다 간다//”(`도라지 꽃`)시집이나 동시집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책 모서리를 접어두는 버릇이 있다. 한 권을 읽고 접힌 모서리가 3~5개 정도면 괜찮은 시집이고 10개 내외면 훌륭한 시집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시집은 단 한 번도 모서리를 접지 못하고 내려놓을 때가 있어 안타깝다. 그렇다면 과연 송찬호 시인의 동시집은 모서리가 얼마나 접혔을까? 많이 접힐수록 책날개 한쪽이 부풀어 오른 것처럼 비스듬해진다. `초록 토끼를 만났다`가 그렇다.

2017-08-30

대통령이 듣지 못한 소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 금요일 늦은 오후에 영혼 없는 스팸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광화문 1번가`입니다”로 시작되는 문자였다. 처음에는 국민들의 소리를 듣겠다는 말에 뭔가 큰 기대를 했다.`국민인수위원회`라는 말도 참 그렇듯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 정책 제안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 지금까지 대안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당하고 있는 억울함을 알리는 내용과 함께 그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정책을 제안했다.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힘든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억울한 사람을 안아 주고, 또 간혹 행사장에서 눈물까지 흘리는 대통령이면 충분히 대안학교 학생들의 억울함을 알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정치는 쇼다!”라는 어느 배우의 말처럼 `광화문 1번가`는 국민을 이용한 철저한 쇼였다. 정치를 하려면 국민의 표가 필요하고, 그 표를 얻기 위해서는 쇼를 해야 한다는 정치 원리는 이해한다. 그런데 그 정치 쇼, 즉 100일 잔치의 들러리가 되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난다.물론 제안된 정책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제안한 사람들의 간절함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정말로 국민을 주인으로 안다면, 정부를 홍보하는 이상한 스팸 문자 메시지 말고 국민들이 제안한 정책의 처리 과정에 대해서라도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걸 어떻게 다 하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래 스팸 메시지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어렵지 않다.“국민인수위원회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으로 18만705건의 정책제안을 해주셨습니다. 한 건 한 건 소중한 제안들을 관련 부처에서 검토를 했고 약 2천여 개는 정책에 반영될 예정입니다.”혹여나 필자가 제안한 내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메시지가 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봤다. 기대는 안 했지만 역시 고객의 사정으로 받을 수가 없다는 답신이 왔다. 도대체 어떤 사정인지, 소통을 한다고 해놓고는 수신을 차단해버린 일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촛불 정부는 고등학교 교육을 무상으로 하겠다고 한다. 또 국공립대학교 입학금도 없애겠다고 한다.그런데 의무교육 대상인 대안학교 중학생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그동안 필자는 대안학교 학교 학생들이 당하고 있는 불평등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교육부, 교육청, 심지어 국회까지 호소할 수 있는 곳에는 다 했다. 비록 부처는 달랐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 같았다.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계속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대통령이 듣지 못한 것 같아 광화문 1번가에 올린 내용을 요약해서 다시 정책제안을 한다.“산자연중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제2조5항과 제60조3항에 의거하여 개교한 대안학교입니다. 현재 학교부적응, 호르몬 장애 등 다양한 이유로 전국에서 전입학 온 52명의 학생들이 학교밖 청소년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도 엄연한 대한민국 중학생입니다. 그리고 헌법 제31조 3항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의 보호를 받아야할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헌법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헌법 밖 청소년으로 힘들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이는 교육계의 가장 대표적인 불평등법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별표 1, 비고1, 자항` 때문입니다. 하루 빨리 이런 교육 불평등법을 수정하시어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런데 쇼 판에 대고 외치는 이 찜찜한 기분은 뭘까.

2017-08-24

교육 블랙아웃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올해도 역시 방학은 주인을 잃었다. 전국이 39도로 펄펄 끓던 8월 초에도 이른 아침부터 버스정류장에는 방학 전과 똑같이 학교 버스를 가다리는 학생들로 넘쳤다. 그들의 영혼 없는 표정을 보고 당황한 건 버스였다. 마치 그들의 영혼을 빼앗은 것이 자기인 양 학교 가는 버스는 힘이 없었다.버스는 학생들을 의미 없는 방학 보충수업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입시 경쟁이 없는, 그래서 사람 사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참교육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수 없는 지 고민했다. 버스 속도는 그 고민과 반비례했다.영혼 없는 학생들의 표정을 읽은 신호등은 학생들의 영혼을 앗아가는 지금과 같은 교육 시스템은 멈춰야 한다고 학교와 가정, 그리고 정부에 계속 경고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명문대학교에 눈이 먼 부모와 교사들은 그 메시지를 무시하고 버스를 재촉하거나 가속페달을 직접 밟았다.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커지는 학생들의 한숨 소리는 버스를 공중부양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녀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고 믿는 어른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 학교 가는 버스는 학생들을 학교 앞에 내려줬다. 그러면 학교는 진공청소기처럼 학생들을 흡입했다. 그리고 친절하게 종까지 치면서 학생들의 영혼을 돈 세탁(洗濯)하듯 세탁했다.정말 놀라운 것은 제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이 나라 교육 시스템 안에만 들어가면 단거리 육상선수들이 기록 경쟁하듯 빠르게 변질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라는 공장은 지어진 지가 반세기가 넘었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너리즘에 깊이 빠져 있으며, 생산 라인은 공장설립 후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속 새로운 것을 투입하니 공장 안은 혼돈만 가득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시스템에 맞추는 쉬운 방법을 택했기에 변질은 당연한 것이다.이 나라 교육과 가장 거리가 먼 단어가 있다. 그것은 진화(進化)다. 그런데 동음이의어 중 진화(鎭火)는 교육과 매우 밀접하다. 교육 수장이라는 자들은 교육을 진화(進化)가 아닌 진화(鎭火)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임기 내에 뭔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수를 둔 진화(鎭火)를 하다 보니 문제는 더 꼬이기만 한다. 그것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되다보니 이제 교육 문제는 진화(鎭火) 자체가 불가능하게 돼 버렸다. 그런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방법으로 진화를 하겠다니 답답할 노릇이다. 무모한 진화가 교육의 본질까지 태워버렸다는 것을 당사자들은 알기나 할까. 교육을 망치고 있는 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떠들어대는 `정치 교육인`들인데, 왜 우리 학생들이 시지프스의 비극적인 운명을 져야 하는 걸까. 곧 개학이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데 과연 이 나라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시지프스의 바위보다 더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하는 우리 학생들에게 더 이상 희망 고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이 나라에는 참 교육 같은 것은 없다고 교육 사망 선언을 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시험을 위한 지식들을 외우라고, 그래서 줄 세우기 입시 경쟁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으라고, 그러면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다고.블랙아웃(Blackout)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대규모 정전(停電) 사태, 숨을 참다가 다급해진 다이버가 의식을 잃는 현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분명한 건 지금처럼 `정치 교육인`들이 계속 교육 판을 흔들면 곧 교육 블랙아웃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전에 국민들이 `정치인 교육 접근 금지법`이라도 발의해서라도 교육에서 정치를 떼어 놓아야 한다.

2017-08-17

홍길동의 한계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여느 해보다 뜨거운 입추(立秋)가 지나고 있다. 또 한 철이 지나려는 모양이다. 철없는 인간들이 지난 시간들을 지우기 위해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다면, 자연은 할 말 많은 2017년의 모든 이야기를 새기느라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여름이 이다지도 뜨거운지 모르겠다. 자연이 만드는 2017 나이테는 분명 어느 해보다 굵고 진할 것이다. 왜냐하면 낯섦, 억지, 엄포, 복수 등 철없는 사회의 새로운 불통 모습을 다 기록해야 하니까.지금의 기록적인 더위는 광장 밖 국민들의 실망 지수와 비례한다. 광장의 촛불로 탄생한 정권답게 돌아가는 모든 사회 시스템들이 촛불에 맞춰져 있다. 촛불 정부, 촛불 국회, 촛불 경제, 촛불 교육, 촛불 검찰, 촛불 법원, 심지어 촛불 시민 등 촛불만 넣으면 어지간해서는 다 말이 된다. 촛불의 힘으로 현 정부에서 입신(立身)한 촛불 찬양자들이 나라의 요직에 앉아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이해는 되지만, 분명한 것은 마음의 등불을 킨 광장 밖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는 촛불에 대한 피로도가 상당하다는 것이다.촛불 혁명이라고 했을 때 정말 뭔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없다. 새로운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숫자 놀이인 여론 조사 결과를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다를 줄 알았다. 용서, 화해, 상생 같은 것은 기대도 않았다. 다만, 힘들고 어렵지만 열심히 사는 국민들을 위해 정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지금까지만 보면 과거 캐기와 좀 더 있는 사람들 것을 거두어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전부인 것 같다. 특히 후자의 모습은 홍길동과 너무 닮았다. 나눠주겠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촛불 정권에서는 나누어줄 것을 마련하는 방법을 어려운 창조(創造)보다는 정말 쉬운 `모래 빼앗기 놀이`에서 찾았다. 그리고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래를 좀 더 가진 사람들을 탐관오리와 같은 인간들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래야만 가져가는 것(?)이 정당한 일이 되니까. 또 겁먹은 자들이 스스로 더 많이 내놓을 것이니까.정권이 바뀌면서 좀 더 가진 사람들에게는 거의 다 “갑”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갑질”로 치부되어 타도(打倒)의 대상이 됐다.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모래성을 쌓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갑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졌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며, 그들에게 돌을 던졌다.언론들은 시범타로 걸린 몇몇 사례들을 가지고 그들을 최악의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웠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니 뭐니 하는 논리 따위는 통하지 않았다. 그동안 돈과 힘에 상처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통쾌해 했다. 그 모습에 자극받은 언론과 정부는 더 자극적인 내용을 찾기 위해 과거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영화처럼 시민들의 반응이 식을 때마다 전혀 새로운 것인 양 호들갑을 떨며 터트린다. 그러면 이 나라는 또 금방 뜨거워진다. 지금 사회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서구 열강들의 각축장(角逐場)이 되었던 구한말 같다고 했다. 우리나라 일을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꼴을 보면, 또 내로남불 격으로 자신들은 자국의 안전을 위해 핵 항공모함이다 뭐다 오만 것들을 다 만들면서 다른 나라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꼴을 봐서도 그렇기는 하다라는 생각도 든다.그런데 필자는 그보다 우리사회가 홍길동과 활빈당이 활개를 치던 시대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홍길동이 있다면 묻고 싶다. “있는 사람들 것을 다 털었을 땐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지?” 아마 홍길동이 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백성들은 직접 고기를 주는 것보다 마음껏 잡을 고기를 마련해주는 것을 원했다.” 부자 증세(增稅)에 이어 어쩌면 곧 “국민 증세”라는 말이 나올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2017-08-10

행복의 조건

▲ 김현욱 시인교직에 몸담은 지 올해로 15년이 되었다. 그동안 정년이나 명퇴로 학교를 떠난 이를 여럿 보았는데, 퇴임의 소회는 다들 엇비슷했다. “큰 사건사고 없이 교직을 잘 마무리할 수 있어서, 어디 크게 아픈 데 없이 건강해서, 오랜 세월 기댈 언덕이 되어준 아내와 장성한 자식들이 제 몫을 다해줘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기쁘게 교직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게 공통의 요지였다. 게 중에는 동료들로부터 진심으로 존경받는 이도 있었고, 정작 자신만 모르게 손가락질을 받는 이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40년이라는 긴 인생을 학교에서 보낸 인생 선배들의 퇴임식은 행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번 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한우처럼 행복에도 등급이 있을 리는 만무하겠지만, 행복한 인생을 관통하는 어떤 공식 같은 것은 분명 있으리란 확신은 들었다. 퇴임식에서 인생 선배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공통으로 언급한 직업, 건강, 가족, 인간관계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짧은 세월 동안 몇몇 퇴임 교사들을 지켜보고 얻은 결론이라 내심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좀 더 긴 세월 동안 좀 더 많은 사람의 인생을 지켜본다면 우리가 수긍하고 참고할 일반적인 행복의 공식 같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차에 조지 베일런트의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를 만났다. 조지 베일런트의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는 3개 집단(하버드대 2학년생, 서민 남성, 여성 천재), 총 814명에 이르는 성인남녀의 삶을 사춘기 때부터 70여 년간 총체적으로 추적 조사한 가히 독보적인 연구다. 이 연구는 1938년 백화점 재벌 월리엄 T. 그랜트의 후원으로 당시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학부의 알리 복 박사가 시작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1967년 베일런트 교수가 연구를 이어받아 행복한 삶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생애 연구를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베일런트 교수는 1977년에 성인발달연구의 중간보고서 격인 `성공적 삶의 심리학`을 펴낸 뒤 2009년 6월, 약 72년에 걸쳐 진행된 연구 과정과 결과를 미국의 유력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에 심층 기사로 실었다. 국내에는 2010년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베일런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노화를 예견하는 일곱 가지 행복의 조건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이고, 이어서 교육,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이었다.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가 공식화한 `무의식적 방어기제`는 스스로 인정하는가 부정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실제 삶을 가공하고 왜곡할 수 있는 무의식적 생각과 행동을 말한다. 베일런트는 방어기제를 기본적인 생물학적 과정에 대응하는 정신세계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투사(편견, 험담), 수동 공격성(사디즘, 마조히즘), 분열(과음, 무관심), 행동화(범죄, 학대), 환상(자기도취)이 미성숙한 방어기제라면 승화, 유머, 이타주의, 억제, 예견은 성숙한 방어기제에 해당한다.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삶의 모든 것을 악화시키지만, 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인생을 충만하게 만든다. 베일런트는 방어기제를 잘 활용한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양심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창의적이고 이타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밖에도 건강하게 장수하려면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인생 전반에 투자하라는 조언, 50대 이후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47세 무렵까지 만들어놓은 인간관계라는 연구결과도 눈여겨 볼만하다. 무엇보다 70여 년에 걸쳐 추적 조사한 814명의 인생을 책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집단주의와 관계주의적 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한국판 성인발달연구가 진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못 궁금하다.

2017-08-09

매미 학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 배짱 한번 두둑하다 / (중략) /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 도무지 없다 // 붙어서 읽는 것이 아니다 /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읽는 것이다 / 칠 년 만에 받은 목숨 / 매미는 그 목을 걸고 읽는 것이다 //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 (하략)” (박지웅 시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덧없음이 이와 같을까. 벌써 방학이다.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빠르다. 입학식 가정통신문을 쓴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학생들은 여름방학 가정통신문을 들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1학기 마침 종례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시였지만 학생들은 시보다는 자신들을 터미널로 실어다 줄 버스를 더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매미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주고는 허물을 벗듯 학교를 벗어났다. 학교를 박차고 떠나는 학생들의 모습을 박지웅 시인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세상에 없다.”사람들은 말한다. 학생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전정한 희망의 불꽃이라고. 우리는 그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고. 그래서 그 불꽃이 지금에서 다음으로, 다음에서 그 다음으로 영원히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매미가 우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구혼(求婚)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그래서 대도시의 매미들은 인간의 소리보다 더 큰 소리를 내기 위해 목청이 터져라 우는 것이다. 구혼이라는 분명한 의미는 나무의 멱살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힘을 매미에게 줬다. 그것을 누가 가르쳐 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밝음에 대한 간절함이 만들어 낸 매미만의 DNA다.그런데 이 나라 학생들은 어떤가. 매미처럼 나무의 멱살을 부여잡고 세상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를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교과와 교사에 따라 다르지만, 이 나라 교실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나라 교육은 학생들을 우는 매미로 만들지 못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세상을 포기하는 방법을 배웠다. 많은 학생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책상에 납작 엎드려 울지 않는 매미가 되었다. 선생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의 학습권을 위해 그것을 묵인했다. 매미와 학생들! 매미는 나무에 붙어 있고, 학생들은 책상에 붙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매미는 힘이 있고, 학생들은 힘이 없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매미가 나무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알 수 있다. 매미는 7년이라는 어둠의 시간 속에서 밝은 삶에 대한 끝없는 꿈을 꿨다. 그 꿈이 간절함이 되고, 간절함은 희망이 되어 어둠을 뚫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매미는 스스로 어둠을 헤치고 그 무거운 허물을 이끌고 나무를 올랐다. 그리고 스스로 어둠보다 더 힘든 허물을 찢고 나왔다. 그 힘으로 나무의 멱살을 잡는 것이다.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어떤가. 과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또 간절함이라는 것이 있을까? 물론 없다. 그것은 참을성 없는, 그리고 학생들을 자신들의 대리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어른들 때문이다. 어른들은 말한다. 자신들은 쓸 거 안 쓰고 모든 것을 다 해 줬는데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그런 어른들에게 묻고 싶다. 그것을 학생들이 원했느냐고.방학이다. 그런데 방학이 주인을 잃은 지 오래다. 명문대학교를 위해 초등학생부터 매미 소리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이 학교와 학원에서 힘을 빼고 있다. 방학이 주인을 찾을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학생들도 스스로 나무에 올라 나무의 멱살을 잡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마음껏 울 수 있도록 이번 방학부터 학생들을 의미 없는 학교 보충수업과 마지못해 가는 학원 수업에서 해방시켜 주자. 그리고 매미와 소통할 수 있는 자연 속 매미 학교로 가자.

2017-08-03

겸허하게 받아들이다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사건 사고가 많은 요즘 포토라인에 선 유명 인사들은 예외 없이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라 말한다. 당연한 말이고, 당연히 그래야하므로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말이 되풀이되고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한 말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성실`이나 `겸허` 등을 입에 담는 게 가증스럽다고 느끼기도 한다.“삶을 받아들인다”, “겸허하게 받아들인다”와 같은 말들은 사실 깊은 성찰로 도의 경지에 다다른 자들이 하는 말이다. 그것은 포기나 체념 같은 말들과 겉모습은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은 천양지차이며 참으로 명쾌하고 멋진 말이다. 인간들은 스스로가 미약함을 알면서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고, 그것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미약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인가!어린 시절엔 어른들이 무섭고 자신의 힘이 부족하니 사회적 통념을 따랐고, 가난한 시절엔 먹고 살기에 급급하여 더러 비굴하기도 했으며, 열정이 분출하는 용암처럼 뜨겁던 청년시절에도 미래의 성취를 위해서는 못마땅한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던 것처럼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되풀이 했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 그런 과정일지도 모르는 일이다.일을 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들과 마주하곤 하는데, 그때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뜻밖의 파문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날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초개같이 버리던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견뎌내기 어려운 구조의 시대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시대를 초월하여 매우 명쾌한 삶의 태도이다.`멋`의 개념도 진화하여 겉모습을 치장하는 것보다 모자란 자신을 솔직하게 피력하는 것이 더욱 멋짐으로 인정되는 세상으로 변하였다. 문명의 발달이 이러한 변화를 견인하였으니 그 또한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SNS의 발달로 원하지 않는 곳까지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너무나 투명해진 이 세상에는 자기도 모르는 자기가 수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없게 되고 말았다.`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는 말이 현실에는 불가능한 옛말로 존재할 뿐, 이 세상은 적어도 팩트에 대해서는 비밀이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겸허하게 받아들이다`는 자신을 낮추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온 세상은 남보다 나은 삶을 위해 더 좋은 학교를 다니고,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세상이 인정하는 명예를 가지려 밤잠을 자지 않고 경쟁하던 전장이 아니었던가? 결코 겸허할 수 없었던 전장에서 자식 하나 잘 되면 집 안 전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오랜 세월동안 통용되었고, 정권이 바뀌면 어느 정권도 예외 없이 친인척 비리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미개함은 OECD회원국이라는 위상으로 보았을 때 치욕스럽기 그지없다. 지독한 이기심의 덫임을 인식하지도 못한 체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는 어김없이 화를 부르고, 언론 앞에 서면 예외 없이 겸허하게 받아들임을 약속하는데, 과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새삼 말의 허허로움을 느끼게 된다.이제는 말뿐인 겸허함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됐다. 잘난 사람들은 그 넘쳐나는 잘남을 자신과 제 가족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자신보다 부족한 곳으로 가뭄에 감로수가 되어 그곳이 어디여도 흘려보낼 줄 알아야 하고, 사회에서 그 잘남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 감사하며 진정한 인간애를 통해 함께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은 물이 넘쳐 부족한 곳을 채우며 흘러가는 강물과 같으니 도도하고 유유하며 평화로울 것이니 거기에는 오만도 겸허도 없는 그저 함께 해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섭리가 있을 뿐이다.

2017-08-02

디드로 정부의 `유시민 인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끝없는 이슈 싸움이다. 지금 이 나라 모습은 마치 어느 정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영화 속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특히 영화의 대사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데자뷔를 보는 듯 하는 대표적인 대화는 “이슈는 이슈로 덮는다”이다.어떤 일이 일단락되는가 싶으면 어느새 새로운 이슈가 대기 중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이슈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현 정부가 하는 일이 뭔가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고. 인사 청문회도 그렇고, 추경도 그렇고 그동안 답답했던 속을 뻥 뚫어줄 뭔가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답답할 뿐이다. 해결책은 없고 제보 조작, 캐비닛 문건 등 이슈만 쏟아지고 있다.이 사회는, 또 이 나라 정치는 이슈를 찾기 위해, 만약 이슈가 없다면 이슈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과거는 이슈가 필요한 이들에게 화수분 같은 보물 상자다. 그래서 정권들은 과거 들추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영화를 보면 이슈를 찾는 경우는 대개가 자신들의 구린 부분을 감추기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일에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협박이 필요할 때이거나, 또 아니면 어떤 껄끄러운 일을 새로 시작해야 될 때이다. 영화대로라면 과거에 구멍이 날 정도로 과거를 들추는 것은 분명 지금 상황이 뭔가가 뜻한 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새로운 뭔가를 위한 분위기 조성임이 틀림없다.그런데 그 영화 중 다음과 같은 명대사도 있다. `당한 것에는 보복을 해야 된다.` 이 또한 영화와 현실이 너무 일치하는 것이다. 보복 정치, 이 말이야말로 이 나라 정치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겉으로는 국민과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떠들어대지만, 그 속내는 열성일 때 받은 서러움에 대한 복수가 정확한 표현이다. 그 서러움이 크면 클수록 복수의 강도도 강해진다, 지금처럼! 그것이 바로 이 나라 정치 철학인 복수혈전이다.`길흉은 하나다!`라는 말과 채근담의 `득의시 변생실의지비`(得意時 生失意之悲:괴로운 마음 가운데 항상 마음을 기쁘게 하는 멋을 얻고, 득의만만할 때 문득 실의의 슬픔이 생겨난다)라는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잘 나갈 때 항상 조심하라는 것이다.지금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 단지 길고 짧음의 시간문제다. 진리(眞理)조차 그것을 누가, 언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지금이다. 또 객관이라는 말도 상대적 주관이라는 말로 대처되고 있다. 그러니 특정 집단의 잣대로만 지난 시간을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면 복수혈전이라는 낡은 정치의 틀을 깨지 못한다.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입장에서 봐야만 한다. 모두들 `온고지신`(溫故知新:옛 것에서 새 것을 찾는다)을 알 것이다. 무조건 거부하고 배척해서는 이 나라는 발전의 방향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간다.디드로 효과(Diderot effect)라는 것이 있다. `하나의 물건을 구입한 후 그 물건과 어울리는 다른 제품들을 계속 구매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구매한 물품들 사이의 기능적인 동질성 보다는 정서적,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동질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디드로 효과이다. 이것을 사람 일에 빗대어 표현하면 끼리끼리 논다는 것이다. 모든 집단, 특히 정치야 말로 디드로 효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언론은 현 정부의 인사를 `유시민(유명 대학, 시민단체, 민주당 보은 인사)` 인사라고 평한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다. 탕평책이니 열린 인사니, 참 웃긴다.디드로 정부에 한 가지만 바란다, 시험을 없앤다는 등 학교를 정치 이슈의 장으로 만들지 말고 제발 온고지신의 미덕을 살려 학생들을 그만 좀 괴롭히라고.

2017-07-19

조선 이야기 할머니의 귀환

▲ 김현욱 시인제4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받은 박해정 시인의 동시집 `넌 어느 지구에 사니?`를 읽고 한동안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고 익숙한 분위기였다. 그러다 불현듯,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랬다. 박 시인의 동시는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었다.두메산골에 살던 유년기에 외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수많은 옛이야기들이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되살아났다. 그동안 사느라 바빠서 잊고 있었던 그리운 외할머니의 음성과 손길이 시인의 동시 `넌 어느 지구에 사니?`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 옛날의 외할머니가 다시 살아서 돌아온 느낌이었다. 박 시인이 혹시라도 칠순이나 팔순쯤 되는 할머니 시인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이런 예외적인 개성은 어디서 나온 걸까? 박 시인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아무리 양동마을이라도 부엌은 대부분 현대식으로 꾸며져 있어요. 그런데도 저는 부엌에 아궁이가 있는 집에 살게 되었어요. 그 앞에 서니까 저절로 어릴 때 부르던 동요가 생각났어요. “엄마아, 엄마아, 엉덩이가 뜨거워.” 하는 노랫소리가 귓전에 맴돌고, 그래, 조선 시대라고 생각하고 한번 살아 보자, 라고 맘먹었을 뿐인데 신기하게 옛이야기가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엄마랑 호랑이랑 떡이랑` `신기동 아줌마`같은 옛이야기에서 시작한 시도 쓸 수 있었어요.”박해정 시인이 사는 곳은 경주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은 2010년 7월 31일 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의 씨족 마을은 조선시대 초기에 형성되어 조선후기에는 전체 마을의 약 80%를 차지하는데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 바로 양동마을이다. 양동마을은 종택, 살림집, 서원과 서당, 농경지와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의례, 놀이, 예술품 등 수많은 정신적 유산의 보고이다. 유서 깊은 500년 조선의 마을, 양동마을에 바로 박해정 시인이 살고 있다.유서 깊은 500년 조선의 마을, 양동마을에서, 조선 시대라고 생각하며 사는, 조선 시대에서 온 박해정 시인의 동시를 지금 만나보자.“조선오이는/ 까칠까칠하게 살아 있고/ 조선호박은/ 아예 엉덩이 퍼질러 앉아/ 큰소리 떵떵 치고/ 조선간장은/ 슈퍼에 진을 치고 있어.// 조선 팔도에서/ 이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어떻게 조선이 사라지겠어?”// (`아직 조선은 사라지지 않았어`)“장사한 지 백 년이 되었다는/ 우리 동네 백년점방/ 문을 닫고 어둑해지면/ 그 옆에 착 붙은 버드나무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손톱을 디밀며/ 흐흐흐, 난 더 오래 살았다!/ 이렇게 외치는 거 있지.”//(`백년점방`)박해정 시인은 2015년 `동시마중` 5·6월호를 통해 등단했다. 박 시인은 아이들이 커가면서 서울살이를 접고 경주 양동마을로 내려왔다고 한다. 양동마을에는 수많은 조선 시대의 양반 가옥과 초가 160호가 모여 있다. 500년이 넘은 양동마을 집집마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이야기가 가 켜켜이 쌓여 있을까? 박해정 시인은 유서 깊은 양동마을의 이웃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다듬고, 동시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조선오이`, `조선호박`, `조선간장`이 아니더라도 이 땅에 `아직 조선은 사라지지 않았어` 라는 주장은 유효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E.H. 카는 말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해석과 상호 작용의 산물이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조선`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다. 더욱이 시인의 삶의 터전인 양동마을은 수많은 옛이야기를 간직한 동시의 곳간이다. 밤마다 버드나무가 머리를 풀어헤치며, 손톱을 디밀며 “흐흐흐, 난 더 오래 살았다!” 라는 외침을 들을 수 있는 `백년점방`은 양동마을이 아니면 쉽게 얻기 어려운 동시이다.

2017-07-18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나경이 번호였다. 바로 받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최대한 빨리 연락을 했는데, 다행히 첫 울림에 받았다. 평소 같았으면 짜증부터 부렸을 텐데, 한껏 들뜬 목소리로 필자를 불렀다. 그리고 이야기를 한 바탕 쏟아냈다. “아빠, 나 시험 정말 잘 봤다. 아빠랑 약속 지켰어. 아빠도 나랑 한 약속 꼭 지켜야 해.” 필자의 대답은 처음부터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말 추임새뿐이었다. 아이는 완창을 하는 소리꾼처럼 흥이 나서 얼마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창 하듯 늘어놓았다.“아빠, 나 모두 70점 넘었다. 40점이나 올랐다. 정말 잘했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이의 한숨 섞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근데 아빠, 내 친구 정말 불쌍하다. 시험 못 쳤다고 울어. 엄마한테 혼난대.” “나경아, 친구는 몇 점 맞았니?” “94점! 친구 엄마가 100점 맞지 않으면 혼낸다고 했대.” “그럼 너도 혼 좀 나야겠네?” “우리 아빠가 왜 이러실까? 이래 봐도 78점 맞은 사람이야.”다른 것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전화기에서는 이미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잘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 친구의 엄마처럼 100점을 맞지 못한 것에 대해 혼을 내야 할지! 집에서 본 아이는 목표 점수인 70점을 넘겼으니 더 이상 공부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는 선언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디자인 스케치 노트를 들고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아이의 흥얼거림에 잠시 멀미가 났다. 그리고 폭풍 같은 질문들이 머리를 아프게 했다. 정부가 특권 교육을 없애겠다고 야단이다. 도대체 뭐가 특권 교육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교육 개혁이라는 것이 `교육 날개 자르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대학과 사회 서열화가 공고한데 어떻게 “서열화 된 고교 체제”를 해소하겠다는 것인지. “교육 사다리를 복원해 공평한 학습사회를 구현해 나가겠다.”라는 외침이 왜 공허한 메아리로밖에 안 들리는지. 또 “공평한 학습사회”라는 말이 필자에게는 `99%의 평범한 삶`으로밖에 들리지 않는지. 특권을 없애고, 공평하게 한다면서 또 사다리는 뭔지.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 사다리는 이미 걷어 차인지 오래다. 그 사다리를 걷어 찬 것이 적폐세력보다 무서운 기득 세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다 안다. 의사 집안에서 의사 나고, 판검사 집안에서 판검사가 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만약 멘델이 살아 있다면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자신의 “우열의 법칙(優劣 法則)”이 적중했다며 좋아했을까. 그는 `우성 절대 우위의 법칙`을 발표 했을지도 모르겠다. 우성 직업군 가계의 자손과 열성 직업군 가계의 자손이 경쟁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되는지 현 정부의 사람들은 정녕 모를까. 한 때는 열성이었던 그들이 지금의 우성이 되어 자신들의 세상을 만난 듯 행세하고 있으니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성이 된 이들의 노래가 들린다. “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아이 참 재미있구나!”특권 교육을 받아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특권 교육을 없애겠다고 하니 웃길 노릇이다. 왜 중고등학교 교육만 가지고 야단인지, 정녕 이 나라 교육을 망치고 있는 `SKY 병`의 근원인 서열화 된 대학에 대해서는 왜 아무 말도 안 하는지. 고등학교의 특권 교육이 아니라 명문대학교에서 명문만 떼어내도, 그래서 어느 대학을 가도 주눅 들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만 있어도 이 나라 교육이 이만큼 병들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안다, 100점과 일류병에 빠져 있는 학부모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말은 “교육은 희망이다!”라는 말이라는 것을. 과연 나경이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

2017-07-13

뒷모습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현실의 궁핍함과 미래의 기대를 함께 검정색 교복 양쪽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넣고 다니던 고교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암담하였으나 돌아보면 참 그리운 시절인 1970년대 까까머리 중·고교 시절, 그 당시 나를 매료시켰던 것으로 서부영화와 권투중계를 빼놓을 수 없다.광활한 서부에 석양을 등지고 흙먼지를 날리며 말을 달려 온 사나이가 번개 같은 총 솜씨로 무법자들을 응징하고 마을의 평화를 회복한 후 유유히 평원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환호하였고, 화질 나쁜 흑백TV로 중계된 권투중계에 열광했다.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복싱영웅들을 뚜렷이 기억함은 물론이거니와 어려운 이름의 상대선수들까지도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이다. 니노 벤베누티며 헥토르 카라스키야 등.서부영화의 총잡이들은 상대방을 등 뒤에서 쏘지 않고, 권투시합에서는 가드를 내리고 뒤돌아서는 상대를 가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래서 함부로 뒷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할 일이다.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아름다워야 한다던가? 아마 더 이상 스스로를 방어할 기회가 없는, 그것이 마지막 모습인 까닭일 것이다.현대는 외모도 스펙이 되는 시대라 나름대로 자신의 외모를 가꾸고 관리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는 것은 물론이며, 심지어는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모습으로 개조하기 위하여 성형수술을 하는 일도 다반사다. 대학 입시나 취업시험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니 합격을 위해서는 자신을 스토리텔링 하는 `자기제품설명서`도 만들어야 한다.젊은이들은 자기를 돋보이게 설명하기 위하여 혼신을 다하는 것이다. 직장을 은퇴한 이들은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 홀가분한 한편, 혹시 세상에서 쓸모가 없어진 건 아닐까하는 염려로 자꾸 스스로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된다.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떤가? 그들의 몸은 그 자체가 이미 스토리텔링이 되어있다. 지난한 삶을 살아온 만큼의 무게를 짊어진 휘인 어깨와 희끗한 머리카락, 얼마나 숭고한 모습인가!한 생을 온전히 살아낸 경험자들은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자연의 일부이며, 모든 일은 자연의 섭리대로 돌아간다는 자명한 이치를 안다.금강석처럼 단단하게 빛난다는 불교경전 금강경은 아상을 버리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내 것이라 착각하고 살아온 우리의 몸 역시 허상일 뿐이며, 보잘 것 없는 늙은 육신에는 그 사람의 세월이 담겨있어 가릴 수도 없다.겉으로 보이는 것에 급급해 진실을 보지 못하고 살아온 삶에서 껍데기에 불과한 몸뚱이라는 물질이 진실한 세월을 담고 있으니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무엇을 위해 그토록 몸을 혹사하며 살았던가? 그 몸이 정녕 내 것이었던가? 몸이 늙고 아픈 곳이 늘어나니 비로소 내 것도 아닌데 내 마음대로 함부로 했다는 미안함이 생긴다.나의 존재가 생물학적 생명의 탄생이었건 종교적 신의 창조물이었건 간에 나는 내 몸을 만들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던가?한 평생 고생한 내 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여 이제라도 위하고 가꾸어 곱게 벗어 놓고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 떠나는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새 정부의 인선에 하마평이 무성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정기 인사를 단행하였다는 소식이다.떠나는 자들과 언젠가는 떠나야할 자들 모두의 뒷모습이 아름다우면 좋겠다.

2017-07-12

유리(琉璃, 遊離)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교육 개혁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하늘을 찌른 지 오래다.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그들은 그들의 최고 치적으로 남길 대상으로 교육 개혁을 선택한다. 그리고 꼭 교육 개혁을 성공하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 그런데 역대 어느 정부도 교육 개혁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남은 것은 짓다만 흉물스러운 건물 같은 이상한 교육 시스템들뿐이다. 교육 개혁의 최고 적임자라고 떠들어대면서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소위 말하는 교육 전문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만약 그들에게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교육계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이상한 교육 개혁에 대해 말하는 정부와 싸워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없다.새 정부가 출범했다는 것을 굳이 알리지 않더라도 시끄러운 교육계의 모습만 보고도 정부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교육 개혁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교육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만 있다면, 또 이론대로만 교육계가 움직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교육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은 다 아는데, 교육 전문가들은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우리나라 교육 현장은 낯선 서구 교육 이론의 실험실로 변해버린 지 오래다. 소위 말하는 교육 관료들은 실험 연구원들이고, 학교는 실험 장소이고, 학생들은 실험 대상이 되어버렸다. 연구원들 중에는 연구 윤리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없다. 그들은 말로는 학생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자신이 공부한 것에 대한 지적 자랑을 할 뿐이다.지난 주 정말 역겨운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채널은 EBS, 프로그램명은 `교육대기획 대학입시의 진실`. 간혹 정치 뉴스를 보다 화가 나서 욕은 해봤지만 EBS를 보다 정치 뉴스를 볼 때보다 더 큰 욕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주제는 현 정부의 교육 개혁 방향인 `외고·자사고 폐지`에 찬성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고는 하도 화가 나서 아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스러운 욕을 하고 말았다.그 프로그램에서는 고등학교 교육의 성패를 서울대학교 진학률로 판단하고 있었다. 서울대학교에 많이 진학시킨 자사고와 그렇지 못한 일반 고등학교 학생의 생활기록부 내용까지 분석하면서 일반 고등학교와 비교도 안 되는 교육 체제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은 공부할 의욕을 상실했고, 그것 때문에 공교육이 파행을 겪고 있으며, 그래서 자사고와 외고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공교육의 성공 판단 기준을 아직도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서울권 대학 진학률에 두고 있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방법으로 필자는 교육 개혁이 아닌 교육자 개혁, 나아가 이 나라 기성세대의 의식 대개혁을 제시한다. 서울대가 곧 교육의 성공이라고 보는 잘못된 교육자들과 기성세대에 의해 이 나라 학생들은 지금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그들부터 개혁하지 않고는 이 나라 교육엔 앞날은 없다. 교육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식에게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필자가 간과한 것이 있다. 교육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자녀들은 이미 엄청난 사교육을 받고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다 진학했다는 것을.이 나라 교육은 유리(琉璃)와도 같다. 이미 그 유리에는 엄청난 금이 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앞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버텨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제발 현실과 유리(遊離)된, 검증되지 않은 즉흥적 교육 시스템으로 더 이상 유리에 충격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유리 같은 이 나라 교육이 곧 왕창 깨질 것 같다.

2017-07-06

민심무상(民心無常)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긴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렸다. 하지만 가뭄 해갈에는 어림도 없다. 지난주까지 전국은 물과의 전쟁이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잘 보여주지 않던 학교 앞 오산천 바닥이 드러났다. 지하수까지 말랐다며 한숨지으시던 동네 어르신들의 주름 깊은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하늘은 물론 절대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지금 내린 단비는 극심한 가뭄에도 서로 물을 나누는 농민들을 위한 하늘의 선물임에 틀림없다.그런데 하늘이 완전히 마음을 연 것은 아니다. 지금 돌아가는 나라꼴을 보면 언제 하늘이 다시 비를 거둘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하늘은 아직 멀었다며 더 독해질 수도 있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의 말이면 다 된다. 그의 말은 업무 지시 형태로 하달되는데, 그것은 법보다 더 위에 있다. 만약 지금의 법으로 업무 지시를 이행할 수 없으면 법을 바꾸어 버린다. 이에 대해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할라치면 언론들은 99% 지지율이라는 통계의 마법으로 방어막이 되어준다. 이왕 띄워 줄 거면 차라리 100%라고 하지 왜 1%를 뺐을까. 99%보다 1%의 의미에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또 뭘까.“국민의 여론상 이미 검증이 끝났다고 본다”라는 청와대 어느 수석의 말에서 99%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 것도 같다. 사전에는 여론(輿論)을 “사회적인 쟁점이나 문제에 대한 대다수의 의견”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99%라는 숫자만 본다면 분명 국민의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아전인수의 달인인 꼼수 정치인들은 그것이 전부인 양 포장하기 바쁘다.올해 산자연중학교는 사이버폭력예방 선도학교로 선정됐다. 그래서 학생들과 다양한 사이버 폭력 예방 수업을 하고 있다. 첫 시간에 네티켓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전에서는 네티켓을 “네트워크(network)와 에티켓(etiquette)의 합성어로, 네티즌이 네트워크 상에서 지켜야 할 상식적인 예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인터넷 상에서 학생들의 수업 자료를 준비하면서 필자는 몇 번이고 수업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정치와 관련한 댓글을 제발 클릭하지 않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정치 관련 댓글들을 보면 무슨 신흥 종교 집단이 출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내용이 섬뜩하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찬성과 반대, 반대편에 대한 테러에 가까운 인신공격, 그리고 맹목(盲目)적인 추종! 그것은 이단적인 종교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모습이다.맹목적 세력에 의해 눈귀가 가려진 어느 대통령의 비참한 나날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다. 맹목은 자기는 물론 상대의 눈귀를 멀게 한다. 맹목적인 사람의 눈은 마치 바늘귀와 같다. 아니 바늘귀보다 더 작다. 그래서 거의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본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양 착각한다.또 맹목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말초적 감성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극적으로 변한다. 자극은 내성이 강해 직전 자극보다 훨씬 더 큰 자극이 주어질 때만 만족된다. 그래서 어쩌면 99% 여론이 가능한 지도 모른다. 99%는 분명 벌거벗은 임금을 만드는 숫자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 언론이 제공하는 여론은 여론(輿論)이 아니라, 여당(與黨)의 의견인 여론(與論)일지도?백성의 마음은 일정하지 않다는 민심무상이라는 말이 있다. 국민들의 진짜 마음인 여론(輿論)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진짜든 아니든 언론이 말하는 99%의 지지율이 계속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실패한 과거 정부들의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과대망상 업무지시는 더 이상 없기를 기원해본다.

2017-06-29

여의도 청개구리들의 합창 - 불통이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화두는 소통이다. 소통의 괴력을 우리는 18대와 19대 정부를 통해 너무도 잘 보고 있다.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참담한 결말을 본 사람들은 소통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그 모습을 언론들은 놓치지 않고 방송으로 내 보낸다. 그것도 우리나라 방송사의 방송 철학인 세뇌의 원칙에 따라 무한 반복한다. 혹 최근 언론들이 내보내는 청와대 관련 뉴스들의 영상 또는 사진 출처를 본 사람들이 있는지. 물론 그 출처는 청와대다. 그만큼 소통하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그 진심은 어떨지?소통이 부재된 사회는 곧 암전(暗轉) 사회와도 같다. 암전 상태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긴장을 넘어 민감해진다. 민감해진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벽을 만드는데, 그 벽의 이름은 불신이다. 불신은 암보다 전이 속도가 빠를 뿐만 아니라 조직 파괴력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소통이 부재한 불통 사회는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만다.소통과 불통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론 도출 과정이다. 소통은 어떤 상황에서든 결론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을 모아 최선의 결론을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거기서 조직력이 생긴다. 반면 불통은 누군가에 의해 미리 결론이 나 있으며, 그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 혹 그 결론에 대해 입을 대는 순간 그 사람은 인신폭격의 대상이 된다.간혹 소통에 대해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결론에 대해 설득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들만의 착각이다.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는 상태에서, 또 그 결론이 바뀔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의 이야기 시도는 소통이 아니라 밀어붙이기 식 불통밖에 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만약 설득이 되지 않으면 다양한 무리수들이 등장한다는 것을 우리는 정치인들의 꼴불견을 통해 너무도 잘 봐왔다. 그 꼴불견을 지금 또 볼 줄이야.얼마 전 뉴스에서 밀어붙이기 식 불통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았다. 뉴스는 `현 정부의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가 중기중앙회를 방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정기획자문위는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중기중앙회 담당자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무엇이 소통인지 정부에 따져 묻고 싶었다. 그리고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계속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돈 많이 주는 데야 누가 뭐라고 하겠냐마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이 지금까지와 뭐가 다른지.조국 산하는 말라가고, AI는 다시 창궐할 기세고, 경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새 정부 인사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물론 과거도 중요하다. 과거를 바로잡지 못했기에 지금이 이만큼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과거에 대한 집착을 현재로 조금만 돌리면 어떨지. 현재가 있어야 과거도 있다는 것을 그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그러면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현재와 미래까지 잘해보려고 하는데 인사 청문회에서 발목을 잡고 있지 않느냐고. 정말 말하고 싶다. 차라리 “`공직 배제 인사 5대 원칙`은 처음부터 이 나라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이상적인 이야기고, 그냥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일할 테니 적당히 눈 좀 감아달라”고 솔직히 말하라고.지키지도 못할 원칙을 왜 만들어서 발목을 잡는지, 비록 지금이야 사람들이 모른 척하고 있지만 신상 털기 청문회를 시작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반대를 위한 반대의 원조가 누구인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가뭄 때문에 청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없는데 여의도에선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청개구리 소리가 너무 잘 들린다. 검찰 길들이기 개혁 등 다른 개혁은 다하면서 왜 정치 개혁은 안 하는지, 소통을 가장한 새로운 불통 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지 청개구리 소리가 심상치 않다.

2017-06-15

말 똥 위에서의 점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울란바토르에서 하르허링까지. 하르허링은 칭기즈칸 시절 몽골의 옛 수도다. 첫 문장을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현대에서 과거로, 다시 과거에서 현대로.시간 여행의 조건은 길의 허락 여부다.길이 허락해야지만 가능한 것이 바로 시간 여행이다. 그리고 시간 여행은 다른 말로 이야기 여행이기도 하다. 길은 여행자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이야기와 지금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길 위에 선다.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길의 허락으로 5월 26일부터 6월 2일까지 몽골로 시간 여행을 다녀왔다. 정확히 말해서는 해외이동수업을 다녀왔다. 해외이동수업은 학생들이 불모지(不毛地)로 바뀌어 가고 있는 사막화 현장을 찾아 스스로 지구생태환경에 대해 느껴보는 산자연중학교만의 특성화 교과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가며 공부하는 일선 학교의 해외수학여행과는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르다.`행복학교·생태학교`를 교육목표로 하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작년부터 `교육(сургалт), 나눔(хуваа|х), 그리고 지구(дэлхий)`라는 주제로 몽골에서 해외이동수업을 하고 있다. 세부 수업 주제로는 `한국·몽골 청소년 문화교류`와 `생명·사랑·나눔의 숲 조성`이다. 학생들은 성공적인 수업을 위해 3월부터 준비한다. 다른 학생들이 학원이다, 과외다 사교육 시장에서 보육되고 있을 동안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자연 속에서 스스로 수업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짜고, 연습을 한다. 그리고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교무실 문을 두드린다. 그러면 교사들은 학생들이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준다. 학교는 그렇게 살아 움직인다. 그 삶이 길을 감동시켰고,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몽골 길 위에 섰다.몽골에 있는 일주일 동안 몸은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정신은 더 맑고 밝아졌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더 빛나게 보였다. 그리고 그들을 더 빛나게 해줄 뭔가를 계속 찾았다. 몽골에서 가장 큰 성당인 주교좌 성당! 그곳에 모인 300명이 넘는 세계 사람들은 산자연중학교 학생들과 몽골 학생들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에 기립 박수를 보냈다.몽골 국가로 시작해서 아리랑으로 끝나는 문화 행사는 테러가 만연하고 있는 세계에 큰 시사점을 줬다. 이해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국과 몽골 청소년들은 문화로 보여줬다. 이탈리아 출신 몽골 총대리 신부님은 기꺼이 우리의 선비 복장을 입고 행사 내내 자리를 지켰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에게서 시혜(施惠-은혜를 베풂)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몽골 국가를 연주하고 합창할 때는 애국가를 부를 때보다 더 공손히, 그리고 우렁차게 불렀다. 이에 답하기라도 하듯 몽골 학생들도 아리랑을 국가 부르듯 불렀다.문화 공연을 통해 힘을 모은 양국 학생들은 손을 잡고 사막화 방지의 마지막 저지 지역인 아르갈란트 솜 지역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지구 환경을 지키는 전사가 되어 `생명·사랑·나눔의 숲`을 만들었다. 손에 물집이 잡혀가면서까지 나무를 심고 물을 줬다. 그 모습에 감동한 구름이 간혹 그늘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그 그늘도 사치라고 생각하는 듯 학생들은 조금의 쉼도 없이 서로를 격려하며 사막화와 싸웠다. 그리고 말 똥 위에 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몽골에서 학생들과 건강한 일주일을 보내고 귀국하자마자 필자는 엄청난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어떻게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교육정책이 나오느냐고. 검정되지도 않는 것들을 왜 강제적으로 학교 현장에 적용하려고 하느냐고. 고교 학점제니 뭐니 지껄이지 말고 제발 우리 아이들 자유롭게 좀 내버려 두라고.

2017-06-08

광화문 1번가에 바란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놀랍습니다. 정말 이것이 가능하군요.” 갑자기 무슨 소린가 할 것이다. 잠시 더 들어보자. “학생들이 준비한 다양한 문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도 훌륭하지만 더 훌륭한 것은 지금 한국 학생들 손에는 휴대폰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휴대폰이 없는 한국 학생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소리가 들리시는지. 안 들리시면 그 다음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여러분, 여기에 온 한국 학생들은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휴대폰을 학교에 두고 왔다고 합니다.” 두리번거리는 소리가 탄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저 맑고 밝은 모습을 보십시오. 바로 저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청소년의 모습입니다. 휴대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한국의 산자연중학교 학생들, 저들이 바로 세계 청소년의 모범입니다.” 탄성은 기립박수로 이어졌다. 기립박수가 울려 퍼진 장소는 몽골 울란바토르 대성당 강당. 대한민국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을 소개한 사람은 이탈리아에서 오신 신부님, 기립박수를 보내준 사람들은 산자연중학교와 몽골 쎈뽈 학교 학생들의 문화 공연을 보기 위해 대성당에 모인 몽골 사람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대안교육을 시작한 지 4년째다. 4년 동안 교육기관은 물론 정부 등으로부터 대안학교라는 이유만으로 참 많은 괄시와 천대를 받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산자연중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은 대안학교라는 이유로 다른 학교 학생이나 교사들처럼 자유롭게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문재인 정부는 알기나 할까.비록 대한민국이 많은 부분에서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지만 `대안학교 차별` 등 아직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서이다. `원칙은 원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궤변이 통하는 나라가 이 나라다. 이 나라엔 원칙보다 그 원칙과 관련된 예외들이 더 많다. 사람들은 지금 정부가 그런 예외 보다 원칙을 지킬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으로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역시다.`고위 공직 임용 배제 원칙`의 세부 사항인 5대 중대 비리(非理)는 다음과 같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논문 표절. 이 다섯 가지는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 양심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것들이 지켜지지 않았고 그것을 원칙으로 정해서라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 문 대통령이다. 그런데 참 웃긴다.필자는 지난 주 금요일부터 산자연중학교 학생들과 몽골 해외이동수업 중이다. 이번 해외이동수업의 주제는 `교육, 나눔, 그리고 지구 Ⅱ`다. 세부 프로그램으로는 한·몽 청소년 문화 교류, 문화 공연, 문화 체험과 사막화 방지를 위한 `생명·사랑·나눔의 숲`조성이다.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문화 행사와 관련한 원칙으로 `배려와 이해`를 정하고, 그 원칙에 맞춰 프로그램을 짰다. 그래서 나온 첫 번째 프로그램이 몽골 국가 연주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몽골 국가 합창을 정했다. 사이사이에 우리 문화 프로그램인 사물놀이, 태권도, K-POP, 전통 옷 입기 등을 넣었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기꺼이 휴대폰을 한국에 놓고 가기로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지켰다. 그 원칙에 세계 사람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국민소통 광화문 1번가`라는 것이 있다는데, 안 될지 알면서도 대안학교 학생들을 위해 말해본다. 교육의 가장 불공평한 “지방재정교부금법 시행령 [별표 1] 비고 1. 다음 각 목의 사립학교는 교부금산정기준학교에 포함되지 않는다. 「초·중등교육법」제2조 제5호에 따른 각종학교(각종학교, 외국인학교 및 대안학교를 말한다)”라는 불평등 법 조항을 삭제해주길.

2017-06-01

첫사랑, 그리고…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최근 언론을 통해 보는 국민들의 표정은 흡사 첫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첫사랑! 이 말을 한 단어로 정리할 수야 없지만 첫사랑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아마 “설렘·기대감·두근거림” 아니면 “눈물·아쉬움·이루어질 수 없음” 등이 아닐까.“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 순간, 나는 / 뉴턴의 사과처럼 /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 심장이 / 하늘에서 땅까지 /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 첫사랑이었다” (`사랑의 물리학`)분명 언론에 비친 사람들, 특히 비정규직 등 그동안 온갖 차별과 서러움을 받아오던 사람들의 표정은 분명 이 시의 주인공 같다. 이들을 이토록 설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첫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 이들 가슴을 뛰게 하는 “임기 내 비정규직 0”과 같은 이야기이다.비정규직의 서러움은 정말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필자 또한 오랜 비정규직 생활을 했다. 어쩌면 그 때의 서러움으로 더 악착같이 일하는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없는 사회, 정말 그런 사회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 딸을 키우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간곡히 바란다.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천대와 멸시를 당하는 비이성적 사회가 하루 빨리 없어지기를. 정말 그런 사회가 꼭 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지. 지금 분위기로 본다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말이면 다 되는 사회이니까. 또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또한 절대적이니까. 재원이 부족하면 그들이 사재를 털어서라도 해결하리라 믿어본다. 세상일이란 모두가 다 같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소 이론처럼 한 쪽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한 쪽이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한 쪽이 너무 높이 올라가면 반발은 자연적으로 더 커진다.지금 갑자기 올라가는 쪽을 보면 마치 한풀이를 하듯 일을 하고 있다. 그것을 언론들은 최대한 미화(美化)하여 보여준다. 점심 값이 어떠니, 낡은 구두가 어떠니 등 이 나라 언론들은 정말 수필 소재를 찾는데 사활(死活)을 건 작가처럼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업무 지시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업무 지시를 보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일도 있지만 과거에 대한 일도 많다. 물론 과거에 대한 평가는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과거를 평가한다면 그 기준은 결코 객관적이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인지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거 관련 일들은 과거에 대한 평가와 반성이라기보다는 과거를 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거를 캐는 이유는 지금 또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한 명분 쌓기, 또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것이다. 그 명분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과거에 대한 집착은 도를 넘는다.꼭 과거를 평가하려면 그 범위를 더 넓히면 어떨까. 왜 꼭 17대와 18대 과거에 대해서만 평가하려는 것인지.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식으로 과거를 본다면 시소를 움직이는 힘은 지금의 반대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벌써 시장에서는 말한다. “북한은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고, 우리의 과거는 모조리 적폐라고 하니 개혁의 칼이 아니라 복수의 칼이라고 해라.”우리 국민들이 오랜만에 느끼는 첫사랑의 행복감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속설을 깨고 이번만은 꼭 이뤄져 모두가 불평등도, 차별도 없는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시소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그런데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시가 왜 자꾸 입에서 맴도는지?

2017-05-25

기억이 사라진 시대

▲ 강민건 대구대 교수·영어교육과지루한 늦봄의 햇살이 미세먼지에 가려 집밖을 서성이지도 못했던 얼마 전 주말,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던 아이가 `왜 이리 느린 거야`하며 투정을 부린다. “오늘은 엄마가 일이 있어 조금 늦는데”라고 무심코 답변을 하고 나서야 나의 답변이 동문서답임을 깨달았다.`느리다`는 말을 `늦는다`는 말로 알아들은 나의 무성의한 경계심도 그러거니와, 아이의 독백은 답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스마트 폰 검색 속도가 느리다며 내뱉은 자위 섞인 목소리였다.다양성과 개성이 넘쳐나는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아날로그 라디오와 다방의 기억과, 이른바 그 시대의 스마트 폰 역할을 수행했던 `삐삐`(beeper)라고 불리던 기계를 간간히 술자리 안주삼아 이야기를 늘어놓는 40대의 자조가 꼰대의 듣기 싫은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빠른 속도의 경쟁시대에 점점 부풀어 오르는 배를 쓰다듬으며 늙어가고 있음을 위로하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스마트 폰 안의 세상과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새로운 미래 시대를 꿈꾸고 있다.이른바 개발 논리와 시멘트 문화로 점철되어지는 오늘의 도시 풍경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세련된 그들 문화 안에 섞여 있고, 어쩌면 장년층에게는 이미 사라져 버린 기억의 한 틀로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한 시인은 `가장 깊은 마음 한 곳`을 통해 회색빛 자욱한 아스팔트 길 위에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고향을 기억하기도 한다. 그 시절 고향 풍경은 보잘 것 없었음에도 말이다.또 독일의 어떤 시인은 전쟁을 통해 먼저 죽은 동료들에 대한 기억을 통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경험하기도 한다.누군가에게 `기억`은 아련하게 마음이 동요되는 애틋한 것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안과 분노로 비등점을 넘는 것이기도 하다.그러나 요즘 아이들의 기억은 비현실적인 공간에 대한 가상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드라마와 영화 속 인물들에게 소비하는 감정의 눈물들은 넘쳐나는 맛집과 요리 프로그램에 의해 식욕으로 대체되고, 우리 삶의 기준은 어느새 가상 주인공들에 의해 점거되고 있었다.이들에게 유년 시절 기억은 아파트와 공장, 편의점과 대형마트 뿐이고 아스팔트 길 위에 부유하는 먼지처럼 기억을 들춰내는 말랑말랑한 감정들은 자극하지도 않는다.하루하루의 일들, 소소한 것들은 어쩌면 이들에게 자본으로 바꿀 수 없는 가장 지루하고 쓸모없는 일상의 기억일지 모른다. 빠른 속도에 익숙한 아이들의 부재한 기억은 이 사회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삭제되고 있다.스마트 폰 속도가 느리다고 투정을 부리던 아이가 냉장고 문을 열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문득 내가 저 아이만한 시절의 기억이 아이스크림을 통해 투영된다.초등학교 시절, 학교길에서 흙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다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 하나를 주웠다. 나는 곧바로 인근 파출소에 가 신고를 했다. 경찰 아저씨는 싱거운 웃음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서 쭈쭈바나 사 먹으라`고 했다.재차 그 말을 확인하고 쭈쭈바를 자랑스럽게 사 먹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 길을 기억한다. 그 이후로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잠시 `착한 아이`라고 불러 주었다. 그 때문에 나는 그 시절 어머니의 칭찬을 다시 듣기 위해 착한 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지금 참으로 편리한 시대는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기형도, `엄마 걱정`) 따위의 그 절절한 기억들은 이미 오래된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기억들이 사라진 시대를 넘어서고 있다.

2017-05-24

무조건 YES 시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모든 것이 YES다. 대한민국이, 또 이 나라 언론이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을 향한 해바라기가 되어 무조건 YES를 외치고 있다. 그가 하는 것은 어떤 것도 다 용납된다. 아니 용납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된다고 언론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외친다. 자유 국가에서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걱정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또 하나의 절대가 되지 않을까 해서. 지금까지 우리는 절대의 폐단(弊端)에 빠져 허덕였음을 기억해야 한다.그의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다 된다. 폐지(廢止)하라면 폐지해야 하고, 불러라 하면 불러야 한다. 그리고 오라고 하면 와야 하고, 가라고 하면 가야 한다.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언론을 비롯해 그의 추종자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댓글을 보기가 무섭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데 왜 딴지냐고, 그것도 이해 못 하느냐고, 혹시 적폐세력 아니냐고 비아냥거린다. 웃기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는 절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뉴스, 포털사이트를 보면 노골적으로 한 사람 띄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느 뉴스 채널은 광고 시간에도 화면 좌측 상단에 `○○○ 정부 출범`이라는 제목을 달고 노골적으로 정부 행사를 광고 하고 있다. 또 모 라디오 방송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서 지난 정부 출범 때는 핵실험을 했다 식으로 현 정부를 미화하고 있다.뭔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려는 노력에는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시작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달라 보인다. 또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일방적이고 인위적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언론에서 보여주는 지금 청와대 모습을 보면 왜 최근 임기를 마친 미국 대통령이 데자뷔(deja vu) 되는지. 대통령들의 모습은 조금 닮아 보이는데, 그들의 모습을 보도하는 언론들의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창조의 시작은 모작(模作), 즉 따라하기부터이다. 처음부터 자신의 완벽한 색깔을 가진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은 없다. 창작하는 사람은 창작에 앞서 먼저 자신이 롤 모델로 삼을 작품을 정한다. 그리고 수없는 필사를 통해 규범을 익힌다.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대로 수학한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의 것만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인정과 다른 것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같이 발전한다.지금 이 나라도 거리마다 도배된 “새로운 대한민국, 함께 갑시다”라는 현수막 아래 창조에 가까운 새 집 짓기가 한창이다. 그 집은 한 사람을 위한 크고 화려한 성과 같은 집이다. 공사 감독은 언론사이고, 자재는 말이다.공사에 사용되는 자재는 무제한이다. 자재가 무한대이다 보니 시공자들은 무조건 최고로 화려한 자재들을 최대한 사용한다.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금 지어지는 성은 입주자 보다 시공사의 입맛에 맞춰진 것 같다는 것이다. 시공사인 언론들은 공중파라는 최고로 막강한 조직을 이용해 국민들을 비롯하여 입주자까지 세뇌시키고 있다. 세뇌의 답은 무조건 YES다.오죽했으면 초등학교 4학년 나경이가 말할까. “아빠, 우리 선생님에게 선물 드릴 수 있도록 김영란 법 고쳐달라고 대통령께 말해봐. 그럼 고쳐 주실 거야.”`벌거벗은 임금` 이야기를 다 알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까지 우리에겐 벌거벗은 임금과 그를 그렇게 만든 신하들 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그만큼 힘들었는지도, 또 이만큼 힘든지도 모른다. 부디 지금부터라도 더 이상 벌거벗은 임금이 없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과 같은 “무조건 YES”는 절대 안 된다.

201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