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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변호인의 궤변

▲ 강희룡 서예가어수선한 지금의 촛불시국을 바라보니 2년 전 흥행을 이룬 영화 `변호인`이 생각난다. 부산의 학림사건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부림사건`은 실화로 5공화국시절 공안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기소한 사건이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변호인이며 돈도 권력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그리고 돈만 밝히는 듯한 느낌의 속물변호사가 국밥집 아들과의 인연으로 법정에서의 정의롭고 흔들리지 않는 인권변호사로서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게 대충 줄거리다. 국가경영의 기반을 인치로 하느냐 법치로 하느냐는 오래전부터 숙제로 남아 지금에 이르지만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개 법치를 근간으로 국가를 경영한다. 국가의 법이 힘 약한 국민들을 지켜주지 못할 때나 사회에서 발생되는 크고 작은 모든 갈등의 해결과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해결해주는 법조인이 바로 변호사이다. 이렇듯 변호인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좋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범죄행위를 피하는 유일한 수단과 방법을 제공하는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조선왕조 성종실록(9년)의 변호인에 대한 기록을 보면, `무뢰배가 송정(訟庭)에 와 오래 버티고 있으면서 혹은 품을 받고 대신 송사(訟事)를 하기도 하고 혹은 사람을 부추겨 송사를 일으키게 해 글재주를 부려 법을 우롱하며 옳고 그름을 뒤바꾸고 어지럽게 하니, 이들을 외지부(外知部)라 한다. 쟁송이 빈번해지는 것이 실로 이 무리 때문이니 마땅히 엄하게 징계하여 간교하고 거짓된 짓을 못하게 하라.` 지금처럼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정식 변론을 하는 행위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소송을 대신해 법조문을 거론하여 유리하게 이끌며 승소하면 그 대가를 받는 사람들, 조선에서는 그런 역할을 한 사람들을 외지부라 불렀다.`외지부`란 밖에 있는 지부라는 뜻인데, 원래 이 명칭은 장례원을 도관지부(都官知部)라고 지칭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중종실록(5년)에 장례원은 노비 문서와 노비 관련 소송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사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부는 토지와 노비의 양에 달렸으므로 당시에 이 관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그런데 장례원에 속한 관원도 아닌 일반인이 법률을 암송하며 문서를 위조해서 송사하는 자를 교사하고 송사에서 이기면 자기가 그 이익을 취했기 때문에 이들을 장례원 밖에 있는 지부라 하여 외지부로 불렀던 것이다.성종 이후에도 외지부들이 모두 근절되지 못하여 연산군일기(8년)에도 외지부 16인을 변방으로 내치라는 명령이 보이고, 외지부를 고발하는 사람에게는 1명당 면포 50필로 포상하고 알고도 고발하지 않은 자는 장 100대로 처벌하겠다고 결정한 것을 보면, 이후에도 외지부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지부가 오히려 권력과 결탁한 사례는 중종 때 왕실에 속한 인물들이 외지부와 결탁하여 송사를 일으키고 이익을 도모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중종실록(14년)에 `경명군 이침은 외지부를 끌어다 자기 집에 모아 놓고 송사하기를 좋아하니 심히 좋은 일이 못 됩니다`라는 기록이나 `사천수 이호원은 해마다 수교를 능히 꿰뚫어 외고 있으므로 비리로 송사하기를 좋아하여 외지부 노릇을 합니다` 라는 기록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문제를 일으킨 이침은 성종의 아들이고 이호원은 태종의 증손이니 다 종실인 셈이다. 이는 외지부가 권력과 결탁한 부정적 측면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지금의 우리사회 혼란은 대통령이 국가경영을 외부인의 인치에 내맡겨 농단당하고 탄핵까지 이르자 법치의 틀로 포장해 변호인단을 통해 그 억울함을 법에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참된 변호인은 범죄의 행위를 궤변으로 감추거나 법망에서 빠져나가는 묘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호소하여 진실을 말하고 다시는 그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마음을 새롭게 다짐하도록 역할을 해줘야 한다. 영화 변호인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시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2016-12-30

한비야의 보물 1호

▲ 김현욱 시인2005년의 일이다. 티타임 시간에 동료 선생님들이 언성을 높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기장 검사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성토했다. 한동안 `일기장 검사`는 학생 인권 침해냐, 글쓰기 지도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듬해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별 반성이나 대안 없이 흐지부지 되었다.일기 쓰기에 대해 학생은 학생의 관점에서 교사는 교사의 관점에서 한 번쯤 의문을 가져볼 좋은 기회였지만 아쉽게도 흐지부지된 것이다.지금이라도 우리는 `일기`에 대해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를테면, 일기는 왜 써야 하는 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일기를 써왔을까? 일기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일기를 쓰면 뭐가 좋을까? 일기 쓰기 지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등등. 이처럼 각자의 입장에서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질 때 그동안 관행처럼 해왔던 일기 쓰기와 일기장 검사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나 방법을 찾을 수 있다.필자가 `아침 10분 글기지개 쓰기`를 꾸준히 해온 것도 일종의 대안이다. `일기`라는 말이 가진 `숙제` 이미지를 벗어나,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한다는 의미부여와 일기를 아침에 쓴다는 생각의 전환이 바로 `아침 10분 글기지개 쓰기`였다.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기지개 쓰기를 지도한 결과, 여학생들은 평균 10권, 남학생은 평균 7권 정도의 글기지개(일기장)를 종업식 날 가져갔다. 그동안 일기장 한 권도 제대로 쓰기 어려웠던 학생들은 두 권 세 권 글기지개를 끝낼 때마다 굉장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눈치였다.일기 쓰기를 통해 생각과 글쓰기 능력이 부쩍 자라난 제자들을 보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일기 쓰기의 힘을 몸소 확인한 것이다.일기 쓰기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힘, 사물과 사건을 관찰하는 힘, 그리고 문장력까지 학생들에게 선사해준다. 또, 일기 쓰기는 치유 기능이 있다. 일기장에 속마음을 써 내려가는 과정 자체가 훌륭한 치유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했다.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톨스토이는 열아홉 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기를 썼다. 김안제 건국대학교 석좌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70살까지 일기를 썼다. 그 분량만 200자 원고지로 1만 9천800장에 달해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세계시민학교 교장 한비야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쓴 100권이 넘는 일기장을 모두 가지고 있다. 갖가지 모양과 크기의 일기장들이 그녀의 보물 1호이자 경험과 생각과 결심의 기록이라고 자랑한다.지금까지 쓴 9권의 책도 모두 일기장을 바탕으로 썼다며, 일기장이 아니라면 자신은 단 한 권의 책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고백했다.이처럼 오랫동안 일기를 써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기의 힘은 대단하다고 입을 모은다.매년 3월 2일이 되면 똘똘한 아이들을 만난다. 그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우리 반은 일기 안 쓴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덧붙인다.“우리 반은 일기 안 쓰고 글기지개 쓴다.”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홉뜨고 묻는다. “그게 뭐예요?” 아이들의 호기심으로 글기지개는 순풍에 돛단 듯 시작된다.일기 쓰기를 지도할 때 학생들이 일기에 대해 가진 오해를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일기는 온종일 있었던 일을 모두 쓰는 게 아니다. 기억에 남는 어느 때, 어떤 순간을 쓰는 게 좋다. 겪은 일뿐만 아니라 읽은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사실도 쓸 수 있다. 글뿐만 아니라 시, 그림, 만화, 사진, 스티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기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의 일기에 답글을 달아주고 관심을 보이면 아이의 일기는 달라진다. 물론, 도장 쾅쾅 찍는 검사와 한 줄 한 줄 대화하듯 답글을 달아주는 관심은 하늘과 땅 차이다.

2016-12-28

국회의원들의 세월호 7시간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 주 국민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청문회와 세월호 7시간이다. 그리고 이 말들은 국민들을 가장 짜증나게 만든 말 중 하나였다. 세상이 시끄러운 지 벌써 오래다. 그 시끄러움은 도대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문회는 분명 세상의 시끄러움을 해결하기 위한 것인데, 어떻게 된 것인지 청문회 장이 더 시끄럽다. 진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청문회 스타가 되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자들을 위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청문회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국민들의 정치 피로도는 이미 한계점을 넘었다.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아니래도 힘든 국민들을 그만 좀 괴롭혔으면 좋겠다.뭔가를 바로 잡아보겠다고 청문회 쇼를 하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이다. 이 말은 필자가 좌우명처럼 쓰는 말이다. 누군가는 직업병이라고 하지만 학생들 앞에 서는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좌우명 만큼은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지킨다”라는 단정적인 어조로 끝을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 노력해야겠지만 아직 멀었다. 바둑을 잘 모르지만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 같아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남을 공격하기 전에 자기부터 살펴라)”라는 바둑 격언을 인용해 본다.언론들은 말한다. 지금 이 나라 정국은 마치 창과 방패 같다고. 과연 특검이 뚫을 것인지, 아니면 변호인단이 막을 것인지.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유래한 말을 모두 알 것이다. `모순(矛盾)`.이 나라 언론들은 모순 게임 중계에 바쁘다. 아나운서들은 마치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흥분해서 보도를 한다. 중계석에는 전문가라는 인간들이 꼭 끼어 있다. 여기서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역할은 전문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로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이다.어떻게 보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청문회 또한 모순 게임인지도 모른다.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대결.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격과 수비가 있는 경기에서 파상적인 공격을 퍼붓는 팀이 간혹 지는 경우도 있다.그것은 공격에 눈이 멀어 수비를 생각하지 못한 경우다. 부디 이번 청문회에서 꼭 이겨야 하는 팀은 자신부터 잘 돌아보시길 바란다.이번 청문회는 휴대 전화의 새로운 기능을 제시했다. 바로 녹음 기능! 아직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신세계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과연 누가, 왜 녹음 파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녹음 파일을 만든 사람은 지금의 상황까지 예견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언젠가는 자신이 만든 녹임 파일이 크게 쓰일 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예지력(豫知力)을 가졌는지 모른다. 과연 휴대전화의 녹음 기능이 앞으로 또 어떻게 진화할지?당 현종 때 바둑의 고수로 불리던 왕적신이라는 사람이 쓴 `바둑을 두는 10가지 비결`이라는 의미의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는 것이 있다. 이번 청문회에서 꼭 이겨야 할 팀을 위해 이 중 2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하지 말라)이다. 의미는 “승리에 집착하다 보면 큰 그림을 놓치고 오히려 실수하게 된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봐야 승리의 기회를 잡는다”라고 한다. 두 번째는 신물경속(愼勿輕速), 즉 “가볍게 속단하지 말고 신중하라”이다.대한민국 모두가 지금의 이 상황을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웃으면서 복기(復棋)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그러기 위해서 국회의원들 먼저 자신들의 세월호 7시간을 공개하면 어떨지?

2016-12-22

해오름동맹, 온천과 방산을 육성하자

▲ 김진홍 한국은행 기획조사팀장포항시 등 경북동해안의 각 지자체들은 지역경기의 부진을 탈피할 수 있는 신성장동력 발굴에 사활을 걸고 다양한 정책조합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신성장동력이라는 것이 발굴 즉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의 발굴에만 신경을 쓰느라 정작 가지고 있는 중요한 자원을 놓치고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그런 의미에서 경북동해안 5개 시군이 모두 갖고 있고, 경상북도나 전국과 비교하더라도 손색이 없는 온천이라는 자원은 재조명해볼 가치가 크다고 본다.최근 글로벌 관광트렌드는 종전의 관광이 아니라 방문지에서 체류하면서 현대인의 정신적 피로회복과 건강, 치유, 힐링까지 포괄하는 이른바 웰니스(Wellness)관광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세계의 웰니스관광 시장규모는 2012년 4천390억달러로 관광산업 전체의 14%를 차지하며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연평균 9.1%의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와 같은 웰니스관광의 핵심이 바로 온천인 것이다. 최근 일본, 태국 등 아시아 주요국들이 온천자원과 메디컬 투어 등 다양성을 확보한 웰니스관광 활성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경북동해안은 전국 최대의 온천 보유지인 경상북도 내에서도 최대규모인 34개 온천과 48개 시설이용업소를 지닌 최대의 온천 분포지역이다. 그만큼 웰니스관광분야에서의 성장잠재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온천자원이 신성장동력으로 작동하기까지 해결과제도 적지 않을 것이다. 먼저, 각지에 흩어져 연계하기 어려운 온천 자원의 약점을 웰니스관광이 갖추어야할 의료, 치유 관련 시설과 연계한 공동프로모션이 중요하다. 또한 기존 온천시설의 낙후성, 소규모 영세성의 한계 극복을 위해서는 동해안권 발전종합계획상의 환동해권 글로벌 관광거점 구축사업에 온천개발사업도 포함시켜 관광정책을 체계적으로 공동 추진할 필요가 있다.한편 온천자원의 재발견만으로 지금의 위기상황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얼마전 동해안 3개 도시(울산, 포항, 경주)가 해오름동맹을 출범시킨 것은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6월 말 현재 해오름동맹의 총인구는 전국의 3.8%(195만명)에 불과하지만 GRDP(지역내총생산, 2013년)는 94.6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의 6.6%에 달한다.특히 제조부문은 16개 광역지자체 중 근로자수(23.5만명) 5위, 출하액(254.4조원) 2위, 부가가치 생산액(52.8조원) 3위로 상위권이다. 특히 구매력의 기반인 제조업체 근로자 급여총액(12.6조원)도 3위여서 해오름동맹의 협력 정도에 따라서는 권역 내의 경제적 순환효과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3개 지역에 공통된 경제적 이득을 창출할 수 있는 협력 프로젝트의 발굴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포항의 철강소재와 RD기반, 경주의 부품제조 기반, 울산의 중공업제조 기반 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방위산업의 육성도 공동프로젝트로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해오름동맹 권역 내에 방위산업 클러스터를 성공적으로 조성, 추진하기 위해서는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등 공동발전 로드맵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3개 지역의 추진주체가 바뀌더라도 지속 추진할 수 있는 체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핵심 사업별로 주민합의와 함께 조례 제정 등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또한 관련 RD 투자재원의 확보를 위해 `해오름동맹 연구개발특구(가칭)`의 지정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도시간 네트워크 기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광역순환셔틀버스 등 교통망의 확충 등을 실질적으로`해오름동맹생활경제권(가칭)`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2016-12-20

역사교과서의 수난

▲ 강희룡 서예가지난 10여 년간 우리의 역사교과서는 편향성논란과 이념논쟁으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을 거듭하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1년 동안에 집필한 내용이 국정으로 발행되어 공개됐다. 정권이나 이념에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학계의 권위자로 집필진을 구성했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현장에서 경험 많은 우수한 교원들을 개발과정에 참여시켜 전문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역사 관련기관 전문가들의 검토까지 거쳤다고 한다. 사회적 갈등해소와 국민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정으로 발표했으나 획일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생각이 다양화된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게 현대사를 기술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권력에 의해 해석이 갈릴 수 있어 쉽게 논쟁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대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여러 종류의 검정교과서가 있었지만 대부분 편향된 이념과 그릇된 사실이 서술되어 있고, 특정 교과서를 채택한 어떤 학교는 여러 외부단체의 압력으로 결정을 철회하도록 강요받는 사례까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중국의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은 역사가의 모범으로 추앙받지만 반고는 사마천이 성인의 뜻을 왜곡했다고 했다. 그러나 반고 역시 한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역사책의 전범(典範)인 `사기와 한서`가 이 지경이니 다른 책은 말할 것도 없다.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는 정의의 아들에게 전(傳)을 써 주는 대가로 수백 섬의 쌀을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결국 집필하지 않았으며, 위서(魏書)를 편찬한 위수는 자신을 도와준 양휴에게 보답하기 위해 전을 지어 줬으며 이주영의 아들에게 뇌물을 받고는 이주영의 악행은 빼고 선행만 기록했다. 결국 위서는 `더러운 역사책`이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윤기(1741~1826)는 무명자집(無名子集) 정상한화(井上閒話)에서 역사책을 만드는 법에 다음과 같은 비양심적인 사례를 지적하고 있다. `한유는 순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절친한 환관 구문진의 악행을 덮어줬다. 그 밖의 내용도 사람들이 제멋대로 고치는 바람에 온전한 글이 없을 지경이었다. 고조실록을 편찬한 후주(後周)의 가위는 평소 자신을 박대한 재상 상유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가 백금 8천 덩이에 달하는 막대한 재산을 부정축재했다고 거짓으로 기록했다.`이상은 모두 19세기 조선의 문인 윤기가 열거한 곡필(曲筆)의 사례이다.역사는 항상 반복되는 것으로 전례를 알 수 없으면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또 전례를 모르면 당시 정황을 알 수 없기에 예전에는 성공했던 것도 오히려 실수를 할 수 있기에 지난 것을 알고 대비하고 그를 보완 개선해서 올바르게 발전을 시키는 것이 역사진보의 시작이다. 역사란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기 마련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학생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나라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면 미래의 대한민국을 기대하기 어렵다.지난 조선왕조 500년을 당쟁과 천민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면 바로 망해야 할 나라로 기록되지만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인의예지`의 품격 높은 문치문화인 양반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면 퇴계나 율곡 같은 대 사상가 배출과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왕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이렇게 주제의 선택과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 진실을 바탕으로 공·과가 바른 기록을 통해 재해석돼야만 국가의 밝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어설픈 좌우 이념의 틀에 갇혀 양보 없이 서로를 헐뜯고 비방만해서야 되겠는가.

2016-12-16

숨비소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깊은 바다를 걷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밝은 세상이 왔다고 떠들어대지만 오히려 세상은 더 어두워졌다. 또 누군가는 희망을 노래하지만 더 많은 누군가는 절망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12월이라는 말만으로도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힘든데 뉴스 속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나마 쉬고 있는 숨을 멎게 한다. 뭐가 그리 좋은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축제다. 지금의 축제는 분명 궤변(詭辯)이다. 궤변이 마치 정상으로 보이는 12월 대한민국의 숨이 넘어가고 있다. 이 나라가 궤변의 나라를 향해 달리는 데는 언론의 힘이 크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균형을 잃은 일부 언론들의 편파적 여론몰이는 이 나라에서 균형을 앗아 갔다. 언론의 힘은 여론 조성이다. 아마도 `내부자들`이라는 영화를 다 기억할 것이다. 비록 영화지만 우리는 거기서 언론의 여론 조장(助長)과정을 똑똑히 보았다. 일부 언론들의 노골적인 여론몰이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여론몰이때 사용되는 유인책은 이분법적 사고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촛불을 든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광장에 모인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몰아가는 일부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는 전자를 영웅으로, 후자를 역적(逆賊)으로 만들어 버렸다. 최근 뉴스를 보면 탄핵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무엇을 위한 탄핵이었을까. 처음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의 목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뉴스를 보면 이번에도 광장은 일부 정치인들의 야망 실현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발 빠른 일부 언론들은 벌써 새로운 줄서기에 바쁘다. 광장 관련 뉴스의 중심 앵글엔 어느 순간부터 차기 대선에 목숨을 건 잡룡(雜龍)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치인들 모습뿐이다. 웃기는 건 여론조사의 순위에 따라 화면에 잡히는 빈도뿐만 아니라 방송시간도 다르다는 것이다.벚꽃 대선! 땡볕 대선! 지금의 나라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말 자체만 보면 언론들의 뛰어난 언어 창조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벚꽃 대선`이라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말 뒤에 숨겨진 검은 뜻을 알기에 언론의 음모에 소름이 돋는다. 언론의 집착은 상상 이상이다. 자신들이 정한 일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언론들의 무한 반복 방송은 정말 무섭다. 오늘도 일부 언론들은 광장의 어색한 웃음과 그 속에서 비열한 웃음을 짓는 잡룡들의 모습을 내보내기에 바쁘다. 그런데 언론을 보면 잡룡들 사이에 이상 기류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분명 한 목소리였다. 왜냐하면 대의명분(大義名分) 앞에 개인 욕심이 감춰졌기 때문이다. 명분은 함박눈과 같아서 함박눈이 쌓여 있을 때는 뭔가 그럴싸하게 보인다. 하지만 함박눈이 녹고 나면 세상은 질퍽해지고 만다. 지금이 딱 그러한 모습이다.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촛불에 이끌려 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촛불이 횃불이 되는 순간 그들의 본색이 천하에 드러났다. 벌써 시작된 대선 진흙탕 싸움, 광장의 촛불은 그 싸움을 위한 전야제였을까? 전야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진행될 더러운 대선 싸움을 생각하니 또 숨이 막힌다. 광장 안 사람들이야 촛불에 심취돼 숨을 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광장 밖에 있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잃은 이 사회를 보면서 숨을 못 쉬고 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숨을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찾다가 `숨비소리`라는 단어를 찾았다. 숨비소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해녀문화`와 관련된 말이다. 해녀들이 바다 속에서 숨을 참고 작업하다가 물 위로 솟을 때 막혔던 숨을 몰아쉬는데 그 때 “호오이”라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 소리를 `숨비소리` 또는 `숨비질소리`라고 한다. 광장의 함성과 잡룡들의 소음에 광장 밖 사람들의 숨비소리가 더이상 묻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6-12-15

진실된 `역사화(歷史畵)`의 개념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토요일 마다 이어지는 촛불시위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걱정과 우려감도 덩달아 깊어진다. `최순실 국정논단 사태`에서 비롯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 탄핵 시위가 이제는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요구사항이 더해지면서 21세기 민주주의 실험대로 확장되어 가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한반도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사상적 대립으로 인해 남북이 분단되어지고, 경제논리에 의해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비민주적이고 유기체적 삶의 타성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반복된 부정과 모순의 악순환이 이제는 세계인의 가십거리로 전락해 가고 있다.오는 토요일에도 어김없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평화시위가 이어질 것이다. 집단화된 시민들의 평화시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이번 촛불혁명은 인류사에 있어 새롭고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역사의 주요장면을 기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 그림을 통해 역사적 사건을 담아내는 것은 기록 이상의 예술적 가치까지 함께 수반한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세계 주요미술관에서 대표작들로 인정 받고 있다. 아마 지금은 발표되지 않지만 국내 예술가들 중 이러한 역사적 순간들을 작품으로 녹여내는 작업은 아마도 여러 장르별로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19세기 프랑스의 대표화가였던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던 순간들을 진지하게 기록하고 그려냄으로써 당시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쥐드폼의 선서 장면을 그린 작품 `쥐드폼의 선서`는 프랑스 혁명의 지지자였던 그로서는 당연히 그려야 하는 주제였을 것이며, 비록 완성 하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을 통해 당시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전해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을 이끈 정치가 `마라`가 암살당한 직후 그린 `마라의 죽음` 역시 그의 대표작으로 기록화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이 작품의 구성은 전체적으로 단순히 처리하는 방식을 통해 마라의 죽음을 비극적이면서도 순교자의 것으로 승화시켜 내고 있다. 욕조에 팔을 늘어트리고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은 마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연상케 한다. 다비드는 그림이 완성된 직후 파리 시내에 이 작품을 전시했으며 실제 시민들은 이 그림을 보고 애도를 표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이 당시 파리의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같은 작품이 세 점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해 주는 듯하다. 우리가 도판을 통해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는 브뤼셀 왕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품이며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과 랭스 미술관에도 한 점씩 소장되어 있다. 밤이 깊어가도록 꺼지지 않는 촛불과 함께 평화시위를 즐기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 가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과 정신이 한 폭의 그림 속에 담길 수 있다면 이 또한 아름다운 역사화이며 기록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이 이 작품들을 유명 미술관에서 감상하며 역사를 공부할 수 있다면 현대미술이 가지는 역사성과 기록성은 충실히 수행했다고 하겠다. 현대예술가들은 오늘의 이런 장면들을 어떤 미학적 사고와 조형적 관점에서 표현하려고 할까? 그리고 미술애호가들은 어떤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줄까? 참 궁금하다.

2016-12-12

정치인의 백의종군

▲ 강희룡 서예가백의종군은 흰옷을 입고 군대를 따라 전쟁터에 나간다는 말이다. 관원에 대한 처벌로서 백의종군은 남북조시대의 흰옷을 입은 채로 직무를 수행한다는 백의영직(白衣領職)에서 유래했다. 본디 문·무관 공히 적용되는 처벌로 무관의 경우는 자연히 백의종군이 된다. 최초 사례는 중국의 동진시대 도연명의 증조부 도간이다. 도간은 반란군에게 패하여 해임됐으나 왕돈의 요청으로 백의영직 후 재기의 기회를 얻어 마침내 반란을 평정하는 데 성공한다. 또 다른 사례는 당(唐)의 장수 유인궤이다. 당의 고종이 처음 요동정벌에 나섰을 때 군량 수송을 담당하던 유인궤는 군량을 실은 배가 침몰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자 고종은 그를 처형 대신 백의종군을 명하였고, 목숨을 건진 유인궤는 고구려 정벌에 큰 공을 세웠다. 또 다른 사례는 성당시대의 안록산이다. 장수인 그는 거란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처형당할 위기에서 그의 용맹을 아낀 현종이 처형 대신 백의종군을 명하였다. 그러나 현종의 배려로 목숨을 건진 안록산은 훗날 반란을 일으켜 현종을 궁지에 몰아넣고 당을 망하게 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있는 뜻밖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임진왜란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1597년 5월 조선군을 통솔하는 체찰사(體察使) 이원익의 참모 박성(1549~1606)이 선조에게 올린 `시폐를 논하는 상소`가 대암집(大菴集)에 실려 있다. 내용인즉 `지난 계미년(1583·선조16), 북쪽 오랑캐가 변경을 침범했습니다. 당시 대신은 식견이 좁고 해이해 공을 탐내다가 패전한 자에게 관대한 법을 적용해 함부로 군법을 흔들었습니다. 이른바 백의종군해 공을 세워 속죄한다는 것이 여기서 시작되어 이로부터 정해진 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중략)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수와 병사들이 도망을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으며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식자들은 백의종군하여 공을 세워 속죄한다는 말이 장수와 병사들이 도망치는 길을 열었다고 여깁니다.` 백의종군으로 인한 폐단을 올린 상소문이다.죄를 지은 장수를 처형 대신 속죄할 기회를 주는 처분이 백의종군이니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으면 도망치는 것이 최선책으로 여겨 니탕개의 난(1583) 이래 백의종군이 관례가 됐다. 그 결과로 장수와 병사들이 적을 만나면 싸울 생각은 않고 먼저 도망칠 궁리부터 한다는 것이다. 당시 백의종군 처분을 받으면 병졸로 전장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장수의 능력이 아까워 처벌만 면하고 그대로 전쟁터로 나갔다. 병졸이면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으니 강등보다는 일종의 경고로 처벌 대신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특별사면에 가깝다. 조선에서 두 번씩이나 백의종군을 경험한 장수는 그 유명한 이순신이다. 첫 번째는 1587년 조산만호 책임자였던 시절 여진족과의 녹둔도 전투에서 대패 후 선조의 명으로 백의종군된다. 이순신 역시 니탕개의 난 이후 관례화된 백의종군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두 번째는 1597년 통제사시절 왜장 가등청정이 바다를 건넌다는 첩보를 무시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는 이유로 한양으로 압송되나 간신히 처형을 모면한 그에게 다시 백의종군의 처분이 내려진다. 원균이 전사한 뒤 통제사로 복직한 이순신은 명량 앞바다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처럼 백의종군은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영웅서사시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한국은 대선 때면 유독 대선주자들이 많다보니 백의종군하는 사례도 많다. 유력 대선주자였던 전직 여당 대표가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출마할 기회가 아님을 알고 백의종군한 정치인은 그나마 양심적이다. 전 야당 대표는 지난 4·13총선 때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당직까지 내놓고 물러났다가 당시의 공약은 전략적이란 궤변으로 얼버무린 뒤 슬그머니 정치판에 끼어들어 대통령 행세까지 하고 있다.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하는 백의종군도 나올 것이다. 이러한 행위 모두가 백의종군이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명분으로 악용되고 있는 사례들이다.

2016-12-09

떨켜 이야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병신(丙申)년도 매듭달을 맞이했다. 매듭달이라는 이름만큼 자연은 스스로 마무리를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그 작업은 인간들에게 한없는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자연의 변화 그 자체는 경제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전시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다. 철을 아는 자연은 스스로 한다. 하지만 철을 모르는 인간들은 스스로를 모른다. 그러기에 자연 세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반면, 인간 세계는 시끄럽다. `스스로`는 자연적이라는 말과 인위적이라는 말을 구분 짓는 기준임이 분명하다.자연의 중요한 마무리 작업이 “떨켜”다. 이 말을 들었을 땐 너무 생소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는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떨켜를 정의하고 있다.“잎이나 꽃잎, 과실 등이 식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 연결됐던 부분에 생기는 특별한 세포층이다. 식물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미생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는다.”얼핏 보면 대수롭잖게 생각 될 수도 있지만, 이층(離層)이라고도 하는 `떨켜`의 기능을 안다면 결코 가벼이 여기지 못할 것이다. 식물들은 떨켜를 만들면서 겨울을 준비한다. 어느 방송작가는 “떨켜는 단풍이 들 무렵 줄기와 잎자루 사이에서 수분 통로를 차단하며 만들어지는 특별한 조직”이라고 했다. 그리고 떨켜가 생기면서 나무는 잎으로 수분을 보내는 것을 중단하고 나뭇잎은 멍이 들듯 자기 안의 모든 수분으로 버티다가 마침내 낙엽이 된다고 했다.나무가 제때 떨켜를 만들지 못하면 나무 전체가 위협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한다. 사전의 정의에도 나와 있듯 떨켜는 빠져나가는 수분을 막기도 하지만, 외부로부터 침입하려는 미생물이나 바이러스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나무가 떨켜를 만들지 못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한 가지 상황은 단풍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노란 은행잎을 그대로 둔 채 함박눈을 뒤집어 쓴 은행나무를 상상해보자. 생각만 해도 답답함에 숨을 쉴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상황은 외부 바이러스 침입을 막지 못해 누렇게 죽어가는 나무들이다.어떻게 됐든 이 두 가지 상황 모두 인류에겐 재앙이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연이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일이 떨켜다. 분명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강제로 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떨켜 유전자를 몸마다 새겼다.필자는 떨켜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와, 이별과 만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토록 혼돈스러운 것은 분명 우리에겐 떨켜가 없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인간에게도 언젠가는 떨켜와 같이 잡을 때 잡고, 놓을 때 놓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들은 놓는 힘을 잊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의 인간들은 잡을 줄밖에 모른다. 그리고 잡은 것은 절대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해, 특히 희생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됐다. 인간들에게 없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객관(客觀)이다. 특히 언론 보도를 보면 짜증스러울 정도로 주관(主觀)만 넘친다. 자극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만 넘치는 언론, 특히 종합편성채널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기적이고 궤변적인 여론을 보면 역겹기까지 하다. 우리는 여론 조사의 허상(虛像)을 지난 미국 대선에서 잘 봤다.유독 대한민국 사회에만 없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어른이다. 떨켜처럼 끊을 거 끊어 주고, 막을 거 막아 주는 어른! 분명 이 나라엔 그런 어른이 없다. 그러니 이 나라가 이처럼 혼돈스럽다. 잡을 줄만 아는 인간들에게 과연 매듭달 12월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용히 새 봄을 준비하는 자연은 인간들에게 올해보다 더 찬란한 새 봄을 선물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모양대로라면 인간들은 봄이 와도 그것이 봄인지 모를 것이 뻔하다.

2016-12-08

포항의 지혜로 만드는 `창조도시의 거점`

▲ 김도형(사)한국예총 포항지회 팀장THE OCEAN 편집위원 원도심 쇠퇴는 한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공통적인 문제다.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 재생`이 전 세계의 화두가 되었다. 그렇다면 포항의 원도심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그동안 포항 원도심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처방이 내려졌다. 중앙상가를 차 없는 거리로 조성하면서 실개천을 만든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에도 육거리의 미관을 개선하고, 골목길에 벽화를 그리거나, 문화·축제 행사를 마련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원도심이 다시 살아날 기미가 보인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원도심 쇠퇴의 원인은 뿌리가 깊고, 원도심 활성화는 지난한 과제라는 얘기다.포항시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핵심은 문화예술로 원도심을 살려보자는 것이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시범사업 공모에 선정된 포항시는 2016년 하반기에 이 사업의 일환으로 `원도심 문화예술 창작공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파출소 인근의 빈 점포에 문화예술인들의 입주를 지원함으로써 문화예술인들의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한편, 쇠퇴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구상이다.포항시와 이 사업을 주관하는 (사)한국예총 포항지회는 사업 취지에 대한 공감대 확산을 위해 지역 예술인 대상 설명회와 설문조사 등을 거쳐 지난 10월 입주자 공모를 했다. 입주자로 선정되면 월 20만원~40만원의 임대료와 특성화 간판 제작비가 지원되며, 시민들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커뮤니티 활동 등을 해야 하는 의무 조건이 제시되었다. 공모 결과 46개 팀이 지원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였다. (사)한국예총 포항지회는 공정한 심사를 거쳐 24개 팀을 선정했다. 선정된 팀들의 면면은 아주 다채롭다. 회화, 도예, 사진, 연극, 캐리커처, 디자인, 금속공예, 파이프공예, 목공예, 식품조각 등 형형색색의 장르가 이 거리에 들어서게 된다. 연령층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게 포진돼 있다.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15개 입주 대상 점포 중에 장기간 방치돼 있어 수리에 상당한 비용과 수고가 들어야 하는 점포가 있다. 그리고 거리 자체의 노후화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수년째 비워 놓고 매매를 기다리는 건물이 있는가 하면, 무분별한 간판과 어지러운 전깃줄은 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거리에 24개 팀이 입주한다고 과연 생기가 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사업은 근본적으로 예술인들의 창의성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시작되었다. 그 창의성은 크나큰 잠재력을 품고 있다. 실제로 기존 입주 예술인들이 거리와 점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고 나면 이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포항의 새 비전은 창조도시다. 진정한 창조도시는 문화예술의 도시다. 문화예술의 활성화 없이 창조도시는 있을 수 없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는 대부분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다. 이런 맥락에서 중앙동 거리는 포항이 추구하는 창조도시의 주요 거점으로 자리매김 될 수 있다.`원도심 문화예술 창작공간 지원사업`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이 사업 안에는 창조도시, 문화도시, 도시재생과 같은 중요한 화두가 놓여 있고, 다각도에서 섬세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참여 주체들의 협업이 중요한 것은 그래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사업은 창조도시의 새 길을 모색하고 있는 포항의 새로운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 실험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그래서 포항이 진정한 문화도시, 창조도시로 거듭나는 데 소중한 디딤돌을 놓을 수 있도록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2016-12-07

“상실의 시대”

▲ 강민건 대구대 교수·영어교육과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빈곤의 황금시대 안에서 국가는 이제 소외, 모욕, 분노, 외로움, 열등의식, 공포를 경험하는 이들에게 여지 없이 사회적 무력을 가한다. “너희들에게는 인간적인 삶이란 존재하지 않아”라며 소수의 권력을 핑계로 공동체 공간 안에서 몰아내고 있다. 이런 고립으로 인한 침묵은 인간이 상대방에게 행사하는 숱한 무력들 가운데 가장 끔찍한 것일 수 있다. 저항의 방식들이 부재했던 대중들이 이제 그 분노감을 표출하고 있다. 2016년 가을, 어쩌면 경험하지도 못할 낙관의 희망을 가지고 저마다 살아가고 있지만, 이 사회의 분위기는 여전히 메마른 사막을 연상케 한다. 이른바 `게이트`로 명명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허탈한 사건도 그렇고, 예외 없이 문학판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문제, 검찰 고위직의 비리들, 한 농민 죽음도 이런 황량한 분위기에 일조를 하고 있다. 이 사회는 개인에게 가해지는 고통과 억압에 대한 `치유`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공감을 상실한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일시적인 위로와 연민은 곧 시간이 봉합해 버리는 `기억상실`로 이어지거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개인 이기주의는 이 시대의 문제가 모두 `우리가 가해자`라는 인식을 망각케 한다. 2014년 봄의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2015년 어느 가을날 세상을 등진 어느 노동자의 사연, 그리고 2016년 그 `게이트` 사건과 공권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농민의 이야기도 우리에게 잊혀진 이야기가 될 것이다.이 국가는 이런 희생자들에게 냉정하다. 살아있는 이들의 가족들이 가지는 그 깊은 슬픔에 대해 국가는 공감과 반성 보다는 잔인한 사회현실을 들어 이들에게 슬픔의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한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을 상실해 버린 이 시대의 풍경은 마치 조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갑자기 어느 도시 전체가 알 수 없는 전염병에 시달리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는 희귀한 병에 시달리게 되고, 정부는 의사, 아이, 창녀, 노동자 등 병에 걸린 이들을 병원에 격리수용한다. 다만 의사의 아내인 한 여성이 눈이 멀쩡하게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을 지키기 위해 눈먼 자들처럼 행동을 해 병원에 같이 수용된다. 이 순간부터 이 아내는 눈먼 자들의 생존을 위한 끔찍한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만약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눈이 멀고 단 한 사람만이 보게 된다면`이라는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진정한 `소유`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소설에 의하면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판단하는 순간 이것에 대한 서로의 공감은 극대화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생존을 위해 소유하였을 때보다 더 잔혹한 개인의 이기를 만들어 내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이다. 하여 여 주인공은 `이 순간 가장 두려운 것은 나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토로한다.어쩌면 우리는 최근 벌어지는 이 사회 안의 부정적 풍경들을 모두가 눈먼 자들처럼 애써 보지 않으려고 하거나 아니면 나만 눈을 떠 보는 것처럼 하는 식의 기형적 시선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눈이 멀었지만 본다는 것인가. 우리는 모두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라는 여 주인공의 소설 말미의 발언이 의미심장해지는 2016년, 가을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몸과 마음이 추운 시간들을 간신히 넘어서고 있다.

2016-12-06

포항의 틀을 바꿀 `그린웨이` 녹지정책

▲ 이경식 포항시 공원녹지사업소 녹지관리팀장포항그린웨이 정책에 따른 공원녹지관리계획의 핵심비전은 도시녹지경관 재정비를 통해 시민 중심의 아름다운 녹색도시 요소를 포항에 조성하는 것이다. 첫 번째 목표는 아름다운 꽃도시의 실현으로 철강도시의 경직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쾌적한 도시경관을 조성해 시민 삶에 활력을 제공하는데 있다. 구체적으로 `녹색브랜드 그린 웨이(Green Way) 포항, 장미로 디자인하다`는 브랜드명으로 포항문화원, 오거리, 두산위브 사거리 등의 주요교차로 교통섬 및 시설녹지에 천만송이 장미동산을 조성한다. 이동고등학교에서 시청삼거리, 장성동 두산위브에서 송곡초등학교, 포항운하관에서 형산로타리 등 길의 주요 벽면, 울타리, 가드레일 녹지대를 활용해 장미테마거리를 꾸민다. 그리고 형산강변과 시가지 전역을 기반으로 `용광로에서 피어오른 철의 장미, 포항 장미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녹색브랜드 Green Way 포항, 꽃으로 물들다`라는 브랜드명으로 형산강변, 소티로, 우현로, 오천강변로 등 주요도로변을 따라 계절별, 테마별, 꽃길을 조성하고 도심 곳곳에 장고형, 고상원형, 주발형, 골뱅이타원형 등 다양한 종류의 꽃박스를 설치한다. 주요 국도변을 코스모스 꽃길과 포토존으로 활용하며 도심 곳곳에 벌취개미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를 심어 꽃도시의 이미지화를 꾀한다.두 번째 목표는 철도부지 도시숲을 축으로 하는 `생활권 녹색복지서비스`를 위해 원도심 내에서의 산책, 휴양, 커뮤니티활동 등의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소규모 공간을 조성하는 생활권 그린웨이 사업유형을 발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도산, 방장산, 양학산 또는 철도부지 도시숲, 송도송림도시숲, 환호공원 등의 대규모녹지와 가로수 및 녹지, 산책로를 연결시키는 녹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또 가로수 하부, 도로변 맹지, 교통섬, 담장, 옥상, 건물벽, 공동주택내 등 도심 속 작은 공간을 아름답게 조성해 도시경관을 개선한다. 공원과 녹지대에도 펀 디자인(Fun Design)을 적용해 트릭아트나 펀그래픽을 조성하고 시민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우리 마을 만보 산책코스`는 기존마을 동네길의 가로등을 개선하고 담장을 녹화시키며 벽화를 그리는 등 골목화단을 가꾸는 과정에서 주민들 간의 유대감을 향상시킨다. 생활권 테마숲길을 조성하기 위해 지곡산, 이동산, 방장산, 양학산 등의 숲길과 시가지 녹도를 연결해 경관숲, 마을숲, 도시외곽숲, 랜드마크형 도시숲 등을 형성하고 무장애숲길, 가족숲길, 이야기숲길을 조성해 테마가 있는 다양한 숲길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세 번째 목표는 다양한 산림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민만족도를 향상시키는 산림문화복지 인프라 구축이다. 이는 산림치유 기반의 확대로 연결돼 숲길의 확대 공급과 산림문화복지를 향상시켜 지역 브랜드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략적 실천사업으로우리 마을숲 만들기와 자연휴양림, 치유의 숲, 오천·구룡포·호미곶 일대의 주요숲에 산악익스트림, 산악승마, 서바이벌 등 활동적인 어드벤처시설을 도입한다. 오어지둘레길, 운제산산림욕장 등 생활권 산림을 활용해 건축형태가 아닌 생태적이고 친자연적 시설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숲도서관도 운영한다. 환호공원에 가드닝문화의 정착을 위해 가드닝 전문가를 양성하고 기간제근로자를 활용해 꽃도시, 정원도시를 추진한다.이처럼 아름다운 꽃도시의 실현, 건강한 생활권 그린웨이의 조성, 산림문화복지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포항시의 그린웨이 프로젝트에 따른 사업들이 많은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도시정원문화 정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경직된 철강도시 이미지에서 자연을 닮아가는 숨 쉬는 그린도시로 포항이 대전환에 성공한다면 영일만 일대의 경관까지 더해져 더 풍요롭고 더 아름다운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는 꿈이 우리 앞에서 현실이 될 것이다.

2016-12-01

선비정신이 없는 공직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 강희룡 서예가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인간으로서 떳떳한 도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지조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간직할 수 있느냐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선비는 결코 벼슬을 탐하지 않는다. 옳은 일로 죽음을 택할지언정 불의로서 삶을 취하지 않았고, 뜻을 굽혀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세계는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인 풍류도와 화랑도정신이 오랜 역사를 통해 연면히 이어져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단순히 유교적 교양을 갖춘 사대부의 정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절의, 염치, 근검을 바탕으로 대의(大義)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을 우리는 선비정신이라 일컫는다.`사(士)는 벼슬을 한다`는 뜻으로써 지식과 기능을 갖추어 어떤 직분을 맡고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설문해자에서 사는 `일한다, 섬긴다`는 뜻이며 열(十)과 하나(一)의 결합으로 된 회의문자이다. 곧 열을 미루어 하나에 합한다고 풀이하면 박문약례(博文約禮)와 통하고, 하나를 미루어 열에 통한다고 풀이하면 하나의 도리를 꿰뚫는다는 일이관지의 뜻과 통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민족의 독자성이 인정되는 선비정신은 인간이 무절제한 욕망이라는 짐승의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인성론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그 궤를 같이한다. 조선 전기의 `인심도신설`이나 후기의 `인물성동이론`은 인간학에 대한 이론적 심화과정이며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인식체계였다. 하지만 현대의 실리주의적 가치관은 조선시대의 가치 덕목들을 하나같이 그 평가를 절하하고 있다. 그 사례를 보면 명분을 핑계로, 의리는 천박한 조폭용어로,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사기는 군대용어로 사용하고 있다.이이(1536~1584)의 율곡전서 경연일기(經筵日記)에 청백리 이후백(1520~1578)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후백이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이조와 병조를 아울러 일컫는 전조(銓曹)의 장관이 되어 공론을 숭상하고 청탁을 받지 않으니 아무리 친구라도 자주 찾아와 안부를 살피면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루는 일가 사람이 찾아와 대화 중 관직을 구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후백은 안색을 바꾸고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작은 책자 하나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관직에 제수할 사람들 명단이었는데 일가 사람의 이름도 그 안에 있었다. 이후백이 말하기를 `내가 그대 이름을 기록하여 후보자로 추천하려고 했었네. 그런데 지금 그대가 관직을 구한다는 말을 하니 만약 구한 자가 얻게 된다면 그것은 공정한 도리가 아닐세. 참으로 애석하네만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벼슬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네`하니 그 사람이 대단히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이후백은 관직 하나를 제수할 때면 매번 벼슬에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폭넓게 물었으며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잘못 제수했을 경우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나랏일을 그르쳤구나`라고 자책했다. 명종과 선조 연간에 활동한 조선 중기의 청백리인 이후백이 이조 판서로 재직했을 때의 기록이다.지금 우리 사회는 부패한 권력을 중심으로 그 측근들의 국정농단이라는 국기문란 사태로 혼란스럽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자신의 부나 영욕을 성취하기 위한 행태에 온갖 허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리의 증거가 드러나도 수치심이나 죄의식도 없다. 단지 부정축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어두운 과정의 모든 면을 변호인을 통해 미화시키고 있다. 공직자로서 선비정신은 실종 된지 오래다. 그래서 맹자는 선비를 두고 `곤궁해도 의를 잃지 않으며, 성공해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 공손한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검소한 사람은 남의 것을 탈취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2016-11-25

코끼리 따라 하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11월도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최근 수년간 가장 떠들썩한 11월이다. 정치 혼돈이 수능 혼돈까지 불렀다. 복수정답과 불수능에 수험생들의 근심이 깊다. 아무튼 11월의 떠들썩함에 많은 것들이 잊혀졌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엘리펀티즘(Elephantism), 즉 `코끼리의 미덕`이다.코끼리하면 동물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것이 그렇듯 그것은 편견이다. 동물원의 코끼리는 본질에서 벗어난 인간의 욕심과 잔인함이 만든 대표적 표본이다. 엘리펀티즘은 그런 잘못된 표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본질적인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다. 동물 생태학자들은 온대 우림의 곰, 열대 우림의 나무늘보보다 코끼리가 자신들이 살아가는 생태계를 지키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느 때보다 사랑과 관용, 이해와 배려, 그리고 화합이 필요한 11월 말이기에 동물학자들이 전하는 코끼리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려 한다. 건조 지대에 있는 물웅덩이는 생태계 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런 물웅덩이 대부분을 만드는 것이 코끼리라고 한다. 코끼리는 우기에서 건기로 옮겨가는 이동기에 저절로 생긴 작은 물웅덩이를 긴 엄니와 앞발을 이용해 흙을 파거나 발로 차서 더욱 커다란 물웅덩이를 만들어 나간다. 이 웅덩이는 코끼리 자신에게도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로 인해 그 주변에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물웅덩이 주변에는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다른 동물들이 그것들을 먹는다. 어떤 이들은 이런 엘리펀티즘을 소박하고 느리지만 힘을 모아 소외된 자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큰 덩치만큼이나 큰 마음을 실천하는 코끼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11월의 본질을 생각한다. 무거웠던 세월을 훌훌 털고 있는 자연을 보면서 마음과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11월!비워지는 것이 결코 유쾌한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대상이 자연이라면 비워짐과 비례해 유쾌함은 커진다. 웃을 일이 없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필자는 내려놓음의 미덕을 실천하는 자연을 보면 미소가 핀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첫 눈이 결코 반갑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나서 내년 봄에는 정말 희망 가득한 삶을 꽃 피우기를.언제나 그렇듯 자연의 이야기를 들으면 필자는 인간의 한 개체로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자연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 하지만 지금,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은 뭔가를 잘못 생각해도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을 들라면 필자는 목불견첩(目不見睫)을 들 것이다. 이 말은 `눈으로는 자기 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을 잘 알지 못하고, 남의 잘못은 잘 봄을 비유한 말이다.우리는 언제쯤 코끼리의 덕을 배울 수 있을까. 분명 자연은 진화를 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빠르게 퇴화(退化)하고 있다. 말로만 배려, 나눔, 희생, 공생을 떠들어 댈 뿐 행동은 정반대로 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지난 주말 필자는 농촌 봉사활동을 마친 지인들과 시장에 들렀다가 진정한 코끼리를 봤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으면서 답답한 속이 시원해졌다.“다들 웃기지 마라케라. 저거가 무슨 국민들을 위한다고. 야당이고 여당이고 정치하는 인간들 다 저거 욕심 때문에 난리 법석인 거 누가 모를 줄 아나. 저거 대통령 한 번 해 묵을라꼬 국민 이름 팔고 있는지 모를 줄 아나. 진짜 국민들을 위한다면 대통령 선거 안 나겠다고 하고 지금처럼 해봐라. 아마 국민들은 저거들을 영웅으로 볼끼다. 다 똑같은 것끼리 웃긴다. 잠룡은 무슨, 잡룡이라 케라.”카메라 앞에서는 한없이 심각하고, 카메라 밖에서는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이 나라 정치인들, 그들은 코끼리 근처도 못가는 인간들임이 분명하다.

2016-11-24

대내외 위기와 지역기업의 대응전략

▲ 김진홍 한국은행 기획조사팀장지난 8일 미국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었다. 직선제가 아닌 만큼 선거인단 538명 중 290명을 확보한 트럼프 후보는 오는 12월 9일 선거인단의 투표를 거쳐 내년 1월 20일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이러한 미국의 신임 대통령으로 취임할 트럼프가 유세과정에서 내세웠던 공약(公約)들이 공약(空約)이 아닌 실행정책이 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그 정도와 시기, 강도 등에 대한 평가 또는 예측에 따라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는 한편 각국별로 정치 정세나 국가수반의 성향 등에 따라 이해득실을 따지며 일희일비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며 한동안 그러한 경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그동안 경기부진에서 허덕여 왔던 지역 경제계 또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더욱 긴장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이다.앞으로의 미국의 정치, 경제의 향방은 누구도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기준점은 트럼프 당선자가 그동안 언급해 온 공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공약 이행의 정도, 실시 시기 등은 소수파였던 트럼프 당선자의 진영과 공화당 주류파 등과의 의견조율 내지는 융합의 정도에 좌우될 것이다. 따라서 공약 가운데 먼저 지적재산권보호, 반덤핑제소 등 무역제한조치 등은 트럼프 당선자가 대통령 취임 직후 단독으로 의회와 큰 조율이 없이도 적정 범위 내에서 시행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즉시 지정하지 못하더라도 달러 약세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위안화나 엔화는 물론 원화까지도 강세로 움직일 개연성이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한편 통상문제는 국가 간 조약, 협정 등이 관련되는 만큼 취임 직후의 즉각 시행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트럼프가 지지계층인 저소득 백인노동자의 대량 실직 원인으로 지목하였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에 대해 미국의 의회예산국(CBO)과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연구결과 모두 미국에 대한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MIT의 아토(Autor) 교수 등이 논문에서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미·중 간 무역 확대로 인해 200~240만명의 미국 내 고용이 감소되었다는 주장이 현실적인 설득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결국 앞으로의 경제흐름은 많은 변수가 있어 예측하기 어렵지만 우선, 트럼프 당선자의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해 본다면 강한 달러가 아니라 약한 달러, 엔화나 원화는 강세가 쉽게 진전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관련한 주요 타겟이 중국과 일본이더라도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신흥국들 모두에 공통된 문제일 것이므로 각국별로 중국을 통한 우회수출의 규모, 각국별 대미수출의존도 등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혼재될 가능성이 크다.앞으로 우리 지역기업은 지금까지 보다도 더욱 치밀한 경영전략을 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변함이 없는 가장 확실한 전략과 방책은 언제나 있었다. 하지만 매번 대내외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기업들이 고민하는 공통분모도 언제나 변함이 없다. 저가격, 대량생산 범용품 중심의 수출제품군으로 인한 반덤핑 문제, 환율의 급등락에 따른 원자재 수입가격이나 수출가격의 급등락 등 가격경쟁력 문제를 야기하는 취약한 기업의 재무체질 등이 그것이다. 전 세계가 보호무역을 강화하더라도 우리 지역의 철강제품을 수입할 수밖에 없도록 고부가가치, 고품질의 제품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이 이루어지고, 수요산업과의 전략적 제휴와 협업 등으로 국내외 수요기반을 꾸준히 확충해 나간다면 모든 위기상황은 기회요인으로 다가올 수 있다. 재무체질의 개선과 외화 유동성의 확보를 통해 일시적 환율 등락과 원자재가격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전략적 경영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016-11-23

허균의 호민(豪民)이 절실한 시국

▲ 강희룡 서예가우리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인물이 태어난 시대의 무대를 장식하며 명멸해갔지만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 초에 극적인 삶을 살다간 걸쭉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균(1569~1618)이다. 허균은 선조에서 광해군대에 걸쳐 활약한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수많은 학자들이 당쟁으로 사화(士禍)를 입어 사라졌으나 허균처럼 산 인물도 그리 흔하지는 않다. 당시의 사회에서 허균의 사상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었고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1618년 역적혐의를 받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선왕조실록과 당대의 자료는 하나같이 허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으며 `천지 사이의 괴물`로 까지 표현하였다.이식(1584~1647)의 문집인 `택당집`은 허균에 대한 기록 이외에도 16~17세기에 활약한 주요 인물의 행적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인물 평가에 대한 신빙성이 매우 높은 자료이다. 12세부터 편모슬하에서 서자(庶子)라는 신분상의 사회적 제약을 넘지 못하고 뜻을 펼치지 못하자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제반문제를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을 통해 과감하게 폭로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조리한 사회현실을 바꿀 힘이 없기에 초능력을 지닌 영웅을 출현시킴으로 그가 지향했던 꿈이 구체화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사회는 밖으로는 임진왜란으로 민족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고 안으로는 당쟁이 격화되어가는 시점이었다. 허균은 유재론(遺才論)이나 호민론(豪民論)과 같은 글을 통해 신분이나 배경보다는 능력 있는 인재의 등용을 줄곧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 의지가 백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설의 창작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중 민중 지향적 사상이 대표적으로 함축된 것이 호민론이다.허균은 호민론에서 `천하에 두려워 할 바는 백성뿐`이라고 전제한 후 백성들을 세 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백성들 즉, 무식하고 천하여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 없는 백성을 항민(恒民), 끝없는 수탈에 모질게 빼앗기고 수입을 다 바쳐서 제공하느라 시름과 탄식을 하면서 윗사람을 탓하는 백성 즉, 정치가로부터 피해를 입고 원망만 하지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지금의 나약한 지식인을 일컫는 원민(怨民), 참모습을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 천지간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즉,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 모순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백성을 호민(豪民)으로 분류하였다.호민의 주도로 원민과 항민들이 합세하여 부패하고 무도한 무리들을 물리친다는 것이 호민론이다. 또한 국왕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백성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백성의 위대한 힘을 자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당시 군주제사회에서는 혁명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는 천주교 서적을 구해 오기도 했는데, 당시 명나라에도 막 천주교가 도입된 시점임을 고려하면 허균의 신학문에 대한 수용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유불선에 능통하면서 학문과 사상에 대해 개방성을 소유했던 학자 허균에게는 주자성리학의 울타리 속에 지식인을 가두어 놓고 체제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 조선사회는 너무 좁았던 것이다.지금의 우리 사회는 지성과 도덕과 염치가 상실됐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에게 국민 개개인이 쥐어 준 권력이 지도자를 축으로 주변 인물들에 의해 사사로이 마구 행사되어 국정까지 농단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16세기 허균의 호민론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 혼란한 시국에 주는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만큼의 정부를 갖는다`는 말이 와 닿는 시국이다.

2016-11-18

물수능, 불수능은 이제 그만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정치와 여론은 생물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절감하는 요즘이다.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생물의 가장 큰 특징은 예측불허”라는 말이 마치 만고불변의 진리같이 느껴진다. 이 진리는 특히 인간에게 와서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이것은 여론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최순실 국정농단 때문에 모든 것이 가려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야당 전 대표의 UN북한인권선언 기권 대북결재”가 그리고 그 전에는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이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그런데 이제 두 사건은 모두 묻히고 말았다. 정말 예측불허다.인간사 모든 일이 예측불허 일지라도 필자는 딱 한 가지만은 예측불허가 아니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입시다. 시험, 그것도 입학시험.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입시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도 변하지 않는다고. 문제는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현행 시험 제도에 대한 집착을 우리는 언제쯤 버릴 수 있을까.입시라고 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올리는 시험은 대학 수학능력시험이다. 이 나라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들의 공부의 최종 목표가 되어 버린 수능. 그런데 문제는 목표가 잘못 설정되었기에 전술과 전략의 오류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나오는 결과는 어떨까. 굳이 답을 하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우리는 잘 안다.수능이 끝날 때마다 우리는 “수능 자살”이라는 마음 아픈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얼마나 절망적이었으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하루 일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 학교, 학원의 쳇바퀴에서 문제집의 노예가 되어버린 학생들. 10대의 광활한 자유와 맞바꾼 수능. 그런 수능에서의 좌절은 분명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부디 올해는 교활한 수능의 올가미에 걸려 고통받는 학생들이 단 한 명도 없기를 바란다. 수능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 “역대 수능 History(역사)”라는 재미난 글을 보았다. 필자는 그 글에서 “물수능과 불수능”이라는 단어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그 글은 물수능과 불수능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여간 신선한 자료가 아니었다. 1994년 이래 수능에서 처음으로 만점이 나온 것은 1999년 수능이며, 여기서부터 물수능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글은 말하고 있었다.필자는 그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수능 최초 만점자는 한성과학고에 다니던 오승은 학생이었다. 수능 만점은 그 다음해 문제집 출판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명 강사들이 정리한 자료를 활자본으로 만든 문제집이 전부였다. 하지만 수능 만점자가 나오면서 대형 교육 출판사들은 활자본 문제집 대신 오승은 양이 자필로 정리한 노트들을 그대로 출판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변화였다.모든 것이 그렇듯 처음은 무지 어렵지만, 그 다음부터는 너무 쉽다. 만점의 물꼬가 터지자, 그 다음부터 만점자가 강을 이루었다. 대표적인 것인 2001년 수능으로 수능 만점자가 무려 66명이 나왔다. 사람들은 이런 수능을 두고 물수능이라고 불렀다. 물수능이 있으면 불수능도 있다. 워낙 어려워서 시험을 치다가 중도에 포기할 정도로 어려운 시험을 불수능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66명의 만점자가 나온 바로 다음 해인 2002년 수능이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문제가 워낙 어려워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이 나라의 모든 것이 이미 신뢰를 잃을 대로 잃었다. 난이도 조절 실패와 복수정답 등 이 나라 수능도 마찬가지다. 또 나라가 워낙 시끄러워 올 수능 수험들은 예년만큼 격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되었든 올 수능에서는 더 이상 물수능, 불수능, 복수정답 따위의 예측불허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수험생 파이팅!

2016-11-17

혼란 속에서도 미래를 얘기해야 한다

▲ 이동수 대구한의대 교수11월 12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우리의 화두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었다. 모두가 분노에 찬 일성으로 박근혜의 퇴진을 외치고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을 비난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대통령 중심제의 한계적 상황, 특히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제의 폐해일 것이다. 대통령의 통치가 시스템이 아니라 권한이 집중된 대통령과 청와대 일부 비서진에 의해 이뤄지는 한계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결국 국가의 시스템이 대통령이고 그 대통령의 오판은 결국 시스템의 오류로 나타나 이러한 심각한 결과를 만들고 말았다.현재 정치권, 특히 국회와 정당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행정부가 무력한 상태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모두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만을 이야기할 뿐 그 누구도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나 세력이 없다. 문제는 드러났다. 그럼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개헌을 논의하든, 새로운 국정시스템을 논의하든 해야하는데 모두 현재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만 백가쟁명식의 말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매우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에 따른 정치경제적 변화와 중국의 팽창주의, 그리고 국가 경제의 어려움, 국내 양극화 문제 등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패러다임의 국가 시스템을 누군가는 말해야 할 시점이다. 이것이 미래이기 때문이다. 국회와 정당들, 특히 대권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특히 더 차분히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국회 및 정당들은 지금 국회에 산적한 각종 법률안과 2017년도 예산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제 국회가 중심이 되어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예산 및 법률의 심의와 의결권은 국회의 고유권한으로 조속히 심의해서 법정 기한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법률 역시 마찬가지다. 쟁점이 되는 몇 개의 법률만 제외하고 일반적 법률안들은 조속히 가결해야 할 것이다. 그 것이 이 엄중한 시기에 국회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신뢰이고 의무인 것이다.대통령의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만 매몰되어 기본적인 책무가 미뤄지고 미래에 대한 논의가 없다면 이것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우선적으로 국회는 법률과 2017년 예산안 심의를 착수해야 한다. 이 과정에 정부 제출안에 대한 국회의 목소리와 국민의 뜻을 담아 2017년 민생이 안정화 될 수 있는 최선의 법률과 예산을 만들고 그것이 어려우면 차선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이 덜 실망하고 그나마 조금의 희망과 위로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대통령은 하야 요구를 받고 있고, 행정부는 무력화 되어 있으며, 국회는 연일 투쟁의 장에 있으니 국민들은 누굴 바라봐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다음으로 각 정당은 새로운 미래를 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북한의 핵 위협, 그리고 국가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지금 누군가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정당과 국회에게 주어진 책무이기 때문이다.특히 대권주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은 더더욱 지금 미래에 대한 비전과 국가시스템 등 진짜 제2건국을 위한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국민들에게 제시해 광장에서 지금 든 촛불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지금의 시대를 힐링의 시대라고도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힐링이 필요한 대상은 지쳐가는 국민이다. 진정으로 사회와 인간의 가치에 대해 믿는 이성적 리더라면 국민에게 지금 누군가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국민들의 힘든 삶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래 지도자의 진정한 모습이며 현 상황을 수습하고 발전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내년 코앞에 다가온 대선 시간표에 몰두해 눈앞의 정략적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반드시 각성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2016-11-16

빛을 발한 가을축제 `2016 대구아트스퀘어`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대한민국이 온통 불신과 분열의 덫에서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아니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집권세력은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해관계로 점점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을 송두리째 흔들어 대고 있다. 대한민국이 1945년 자유 독립국가로 거듭 태어난 후 국내·외적인 위기는 수차례 있었지만, 현재 우리 국민들이 처해 있는 모습은 분노와 울분에서 오는 정신적 박탈감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0년 역사 속에서 900여 차례의 외침을 극복하며, 당당히 일어선 슬기롭고, 지혜로운 민족이다. 정치와 경제, 문화까지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이번 사태 역시 합리적이고 현명한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가져 본다.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직면 할수록 문화 활동을 통한 정신적 여유로움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에서 오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과 사고 전환이 만들어 내는 생활양식의 변화는 삭막해지는 정신세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다.최근 대구전시컨벤션센터(EXCO)에서는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는 `대구아트스퀘어`가 개최되어 미술애호가들과 일반인들로 부터 깊은 관심을 모았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특화된 아트페어 육성과 지역의 젊은 미술문화를 통한 청년도시 이미지를 제고하고 브랜드화를 마련함으로써 지역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는 문화행사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취지로 마련된 이번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대구에서 개최된 `대구사진비엔날레`와 `대구국제뮤지컬 페스티벌`, `대구 국제오페라 축제`와 함께 문화도시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축제로 새롭게 자리매김을 했다는 평가다. 수도권 이남에서는 가장 많은 미술인과 미술애호가, 전문화랑, 미술대학 등 풍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대구에서 마련된 이번 축제는 아름다운 문화예술 도시로 성장해 나가기 위한 새롭고 신선한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이다.세계 9개국 103개 화랑들이 참여한 `대구아트페어`는 700여 명의 참여 작가와 5천여 점의 작품들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와 근대작가 작품들을 통해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근·현대 작가들의 숨결이 느껴 볼 수 있는 `드로잉 특별전`과 일본 젊은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느껴 볼 수 있는 `레드닷V 크로스-미디어 콜라보레이션`은 꼭 한번 챙겨 봐야 하는 특별전이었다. 세계청년미술가들의 실험적이고 도전적 미의식을 엿볼 수 있었던 `청년미술프로젝트-New Visual Culture`는 작가를 표현하는 수단이며, 사회를 고발하는 눈이기도 하고 때로는 미래를 꿈꾸는 생각의 도구와 새로운 소통의 채널이 되려는 현대미술을 살펴보는 실험무대였다. 미완의 건강함이 되는 아름다움은 완숙한 미의식이 주는 평온함보다 깊은 감동을 전달해 주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서울 등 다채로운 문화적 배경과 장르의 다양성에서 오는 작품들을 하나의 전시공간속에서 감상해 보는 재미 또한 이번 `2016대구아트스퀘어`를 즐기는 색다른 즐거움이었을 것이다.가족들과 함께 도심 속에 세계의 유명 미술관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2016 대구아트 스퀘어`에서 멋진 가을 나들이를 즐겨보는 여유를 선물받은 이들에겐, 그 감흥이 오래 기억 속에 자리잡을 것이다.

2016-11-15

`죄기교서`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 강희룡 서예가왕조시대에는 조정의 중대한 사태나 가뭄, 홍수 등 천재지변이 있을 경우 임금은 교서를 내려 백성을 위로하고 민심을 달랬다. 이렇게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내리는 교서를 그냥 교서라 하지 않고 특별히 죄기교서(罪己敎書)라고 하였다. 임금이 자신의 죄를 자책하면서 내리는 교서라는 뜻이다. 이 죄기교서를 내릴 때에는 자신의 잘못을 나열한 다음 신하들에게 직언을 구했다. 그러면 신하들은 국정의 잘잘못을 낱낱이 들추면서 그에 대한 시정책을 제시하였고 임금은 이를 여러 대신과 논의해 국정에 반영했다. 세종 8년(1426) `세종실록`에 적힌 죄기교서다. “여름에는 가뭄이 심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얼음이 얼지 않는 자연 재변(災變)이 거듭되어 사람들은 잿더미 속에서 살아가고 곡식은 말라 죽었다. 이러한 하늘의 견책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면서 이에 대소 신료들의 충고와 직언에 힘입어 나의 미치지 못하는 점을 메우려 한다.(중략) 무릇 과인의 잘못과 실정, 여러 신하의 충성과 아첨, 시정의 잘된 점과 잘못된 점, 법도의 좋은 점과 나쁜 점, 백성들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각자 비밀 상소를 올려 숨김이 없이 다 진언하라. 내가 모두 친히 볼 것이요 담당관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이 혹 맞지 않더라도 죄 주지 않을 것이다. 중앙과 지방의 현직에 있는 신하들 및 물러나 있는 신하들은 모두 나의 지극한 뜻을 잘 인식하고서 상소를 올리라.”즉 칭찬이든 비판이든 책임을 묻지 않고 모든 상소를 임금이 친히 읽고 국가정책에 반영한다는 뜻으로 성군의 면모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떳떳하지 못한 것이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부끄러움을 스스로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대인이 되게도 하고 소인이 되게도 한다. 부끄러움을 고쳐 대인이 되는 길은 분명히 알고 있는데 이러한 길을 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이것은 부끄러움에는 복합적인 사회적 정서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속성은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동화하려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의 통념이나 도덕률에 일치하지 않는 상태에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자녀가 문제적 행위를 저질렀을 때 부모로서의 부끄러움, 스스로의 사회규범을 어긴 각종 도덕적 일탈행위 등이며 이것들이 사회동화의 욕망으로 그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는 것에 관계됐을 때는 자기혐오와 모멸을 일으키고 감출 수 있는 것일 때는 간교함으로 사실을 변명하거나 엄폐하도록 만든다.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사회의 통념이나 도덕률에서 벗어난 외톨이, 나를 대면하는 일이다. 거울에 비친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민낯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 그 일은 불편하고 괴롭다. 자기혐오나 사실 엄폐는 이 불편함과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자기혐오나 모멸을 통해 사회와 동화하고자 하는 자신의 숨은 욕망을 실망시켜 포기하게 하려 해도 욕망은 잠재워지는 존재가 아니며 부끄러운 사실을 엄폐하여 사회와의 표면적인 동화를 실현하더라도 `자기기만`이라는 또 다른 부끄러움이 추가된다. 부끄러움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 인간은 끔찍한 괴물로 변한다.윤기(1741~1826)는 무명자집(無名子集)에서 부끄러움이란(恥) `잘 쓰면 군자가 되고 잘못 쓰면 소인이 된다`라고 적고 있다. 맹자는 `부끄러움은 사람에게 있어 중대한 것이다`라고 했고, 공자는 `중용`에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고 했다. 떳떳하지 못한 나를 직시하는 괴로운 일을 감내하기가 뉘라서 쉽겠냐마는 지금의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데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인물들은 대통령부터 말단 관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에 대해 거울 앞에서 모습을 비춰보고 국민들 앞에 속죄해야 할 것이다. 600년 전 세종이 남긴 `죄기교서`는 짧은 임기 동안이라도 국가를 경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교훈으로 읽힐 기록인 것이다.

2016-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