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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이 없는 공직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등록일 2016-11-25 02:01 게재일 2016-11-2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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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인간으로서 떳떳한 도리를 지키고 그 신념을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지조를 일이관지(一以貫之)하게 간직할 수 있느냐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선비는 결코 벼슬을 탐하지 않는다. 옳은 일로 죽음을 택할지언정 불의로서 삶을 취하지 않았고, 뜻을 굽혀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세계는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인 풍류도와 화랑도정신이 오랜 역사를 통해 연면히 이어져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단순히 유교적 교양을 갖춘 사대부의 정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절의, 염치, 근검을 바탕으로 대의(大義)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을 우리는 선비정신이라 일컫는다.

`사(士)는 벼슬을 한다`는 뜻으로써 지식과 기능을 갖추어 어떤 직분을 맡고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설문해자에서 사는 `일한다, 섬긴다`는 뜻이며 열(十)과 하나(一)의 결합으로 된 회의문자이다. 곧 열을 미루어 하나에 합한다고 풀이하면 박문약례(博文約禮)와 통하고, 하나를 미루어 열에 통한다고 풀이하면 하나의 도리를 꿰뚫는다는 일이관지의 뜻과 통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민족의 독자성이 인정되는 선비정신은 인간이 무절제한 욕망이라는 짐승의 차원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인성론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그 궤를 같이한다. 조선 전기의 `인심도신설`이나 후기의 `인물성동이론`은 인간학에 대한 이론적 심화과정이며 정신적 가치에 대한 인식체계였다. 하지만 현대의 실리주의적 가치관은 조선시대의 가치 덕목들을 하나같이 그 평가를 절하하고 있다. 그 사례를 보면 명분을 핑계로, 의리는 천박한 조폭용어로, 선비의 기개를 뜻하는 사기는 군대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이(1536~1584)의 율곡전서 경연일기(經筵日記)에 청백리 이후백(1520~1578)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후백이 관리의 인사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이조와 병조를 아울러 일컫는 전조(銓曹)의 장관이 되어 공론을 숭상하고 청탁을 받지 않으니 아무리 친구라도 자주 찾아와 안부를 살피면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루는 일가 사람이 찾아와 대화 중 관직을 구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후백은 안색을 바꾸고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작은 책자 하나를 보여주었다. 앞으로 관직에 제수할 사람들 명단이었는데 일가 사람의 이름도 그 안에 있었다. 이후백이 말하기를 `내가 그대 이름을 기록하여 후보자로 추천하려고 했었네. 그런데 지금 그대가 관직을 구한다는 말을 하니 만약 구한 자가 얻게 된다면 그것은 공정한 도리가 아닐세. 참으로 애석하네만 그대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벼슬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네`하니 그 사람이 대단히 부끄러워하며 물러갔다.

이후백은 관직 하나를 제수할 때면 매번 벼슬에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반드시 폭넓게 물었으며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잘못 제수했을 경우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가 나랏일을 그르쳤구나`라고 자책했다. 명종과 선조 연간에 활동한 조선 중기의 청백리인 이후백이 이조 판서로 재직했을 때의 기록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패한 권력을 중심으로 그 측근들의 국정농단이라는 국기문란 사태로 혼란스럽다.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자신의 부나 영욕을 성취하기 위한 행태에 온갖 허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비리의 증거가 드러나도 수치심이나 죄의식도 없다. 단지 부정축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어두운 과정의 모든 면을 변호인을 통해 미화시키고 있다. 공직자로서 선비정신은 실종 된지 오래다. 그래서 맹자는 선비를 두고 `곤궁해도 의를 잃지 않으며, 성공해도 도를 떠나지 않는다. 공손한 사람은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검소한 사람은 남의 것을 탈취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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