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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張斗建선생님을 回想하며

▲ 박수철 서양화가내가 처음 선생님을 뵌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선생님께서 성신여대 학장직을 마무리하실 즈음이었다. 그 무렵에 고향인 초곡리에 자주 오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시면 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찾으셨고, 포항일요화가회 전람회장에도 오셨다. 그 즈음 필자는 집안의 우여곡절로 낮에는 중앙상가에서 남성복 브랜드 코오롱 맨스타 대리점을 운영하였고, 밤에는 작업실에 가서 그림에 몰두하곤 하였다. 성신여대 퇴직 후 동아대 예술대학장으로 부임하셨고, 서울보다 훨씬 가까운 부산이라 고향을 찾기가 한결 수월했을 것이다. 포항에 도착하시면 제일 먼저 맨스타에 오시곤 하였다.선생님은 동양화가인 정대모 선생을 자주 불렀고, 그런 인연으로 포항일요화가회와 포항묵화회 전람회장도 찾으셨다. 필자의 야간학교 3학년 담임이셨던 손춘익 선생님을 소개 시켜드린 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주선으로 포항에서 몇 차례의 개인전을 열기도 하였다.성신여대 퇴직금으로 고향인 초곡리에 한옥을 지었는데, 공사가 마무리되어갈 즈음부터 선생님의 요청으로 정대모 선생과 함께 그 집의 구석구석 보완해야 할 곳을 손보는 일을 하면서 선생님의 기호와 성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선생님께 그 집은 보통의 집이 아니라 캔버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건물과 건물 사이, 혹은 다른 무엇과의 담장, 그 담장의 흐름, 높이 그리고 동선, 정원수의 모양과 높이조절 등이 마치 화면을 구성하듯 하였다. 특히 모란을 시야에 잘 들어오는 곳에 한껏 두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유달리 짧은 처마는 바람과의 싸움에 잘 견디게 조정하셨다. 그 모든 것이 구도였고 구성이었다. 선생님과 바다 스케치를 여러 번 갔었는데, 강구항에서는 스케치를 하기 위해 전망이 좋은 식당2층을 몇 시간 동안 빌리기도 하였다. 두어 시간 넘게 작업하시며 마무리 단계에 “산이 왜 푸르게 보이지?”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스케치작업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실재를 치밀하게 표현하시는데, 그날 산의 색은 녹색과 고동색이 섞인 어두운 색채였는데, 나중에 도록에 실린 그림에는 산이 푸르게 칠해져 있었다.이렇듯 선생님의 작업은 자연의 실재 모습을 섬세하고도 완벽하게 그대로 스케치한 후 작업실에서 재구성하여 자연의 실재와 선생님의 내면의 의식이 함께 호흡하며 세상 밖으로 드러난다. 한 번 스케치를 시작하면 평균 2~3시간 동안을 엉덩이 한번 꼼짝도 안하시고 꼼꼼하고도 치밀하게 작업하셨다. 팔레트 위의 물감도 쥐똥만큼 짜놓고 쓰시고 작업 후 붓은 항상 실로 감아서 보관하신다. 안료의 낭비와 붓이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선생님의 작업과정은 철저하였다. 치밀하고도 끈질긴 과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셨던 것이다. 또 완성된 작품을 몇 번씩 다시 고쳐서 새롭게 변화시키는 일도 자주 있었다. 한번은 내 작업실에 오셔서 4호짜리 어둡고 둔탁한 색조의 ‘산과 구름’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보시며 “박 선생! 그림은 이렇게 그려야 돼.”하고 격려해주셨다. 포항일요화가회 전람회 격려사에서도 “그림은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화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중요하다.”며 후학들에게 그림 그리는 정신에 대해 가르치기도 하셨다.일본 유학시절, 처음에는 그림공부를 하셨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법학을 공부하였고, 법대를 졸업한 후 다시 프랑스로 가서 그림을 하셨으니 법리주의적 치밀함과 프랑스의 예술적 화려함과 구성력이 선생님이 태어나 자라면서 보아왔던 ‘초곡리’ 촌락의 그 모든 들꽃과 산하와 농가의 삶속에 지워지지 않는 화석처럼 끊임없이 재현되었던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것은 선생님의 가슴속에 늘 피어있는 들꽃이었으며 눈 감으면 보이는 고향의 그것들이 꿈처럼 살아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 모두의 인생이 그러하듯.지금 선생님은 고향 초곡리의 품에서 영원히 잠들어 계신다. 草軒 張斗建!

2018-06-26

베트남에서 온 멋진 제자

▲ 이정옥위덕대 교수10년도 더 됐다. 학교 강의실에 처음 전자교탁이 들어왔다. 사용 방법이 서투르다 보니 수업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덜컥 문제가 생겼다. 이것저것 눌러도 안되고, 시간은 흐르고 학생들은 조용히 기다리다가 시간이 지나자 술렁이더니 대놓고 떠들기 시작했다. 난감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였다. 한 학생이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아무말없이 전자교탁 위아래를 만지더니 이내 강의할 수 있는 모드로 뚝딱 돌려놓았다. 고맙다고 하면서 그제야 학생을 봤다. 유난히 눈이 크고 깡마른 학생이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괜찮습니다.”별 말씀이라…. 이런 투의 말을 요즘 우리는 잘 안 쓰는데 생각하면서 한 번 더 자세히 보았더니 외국인 학생이었다. 베트남에서 온 응웬 휴비엔을 처음 만난 날이었다.휴비엔은 그 다음 시간에 베트남 학생들을 20명이나 더 많이 데리고 수강신청을 하게 했다. 강좌명이 ‘한국의 민속문화’였는데, 베트남 학생들이 들어도 흥미로울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학생들을 설득한 것 같았다. 나는 한국 학생만큼이나 많은 베트남 학생들을 배려하기로 했고, 학생들의 동의도 구했다. 강의용 교재도 쉬운 걸로 바꾸고, 팀활동도 한국학생과 골고루 할 수 있도록 신경썼다. 학기말에는 다같이 종강사진을 찍을 정도로 학생들 간의 유대도 매우 좋았던 수업이었다.그 해 가을 어느 날 휴비엔이 연구실을 찾아왔다. 뭔가 상의하고 싶다고 했다. 며칠전 베트남 중부지역에 태풍피해가 크게 났다. 우리 유학생들 중의 한 학생도 그 지방 출신이다. 유학생들 20명이 1만원씩 내어 20만원의 성금을 모았다. 이걸 어떻게 하면 잘 전할 수 있을까, 이런 내용의 얘기를 서툴게 말했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배운 것이란다. 큰 재해가 나면 전국민이 성금모금을 하는 뉴스를 보고 감동받았다고도 했다. 아름다운 뜻을 키워주고 싶었다. 학교에 알려 학교 차원의 모금운동을 했다. 전교직원들이 십시일반 동참하고, 총학생회에서는 며칠 동안 모금행사를 벌여 성의를 보탰다. 처음 학생들의 모금액의 10배 이상의 돈이 모였다. 직원들의 아이디어로 옷가지랑 생필품도 10여 상자나 모았다. 성금과 구호물품을 서울의 베트남대사관까지 가서 전달했다. 당시 베트남대사관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해했다. 위덕대학교가 어디 있는 대학인지도 모르는 그들이었기에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그 일은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신문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그 즈음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지성이신 한완상 전 부총리께 당신의 유학생활에 대해 들었다. 60년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셨다. 당시 그 대학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유학온 학생들이 제법 많아 학교에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축제를 마련했단다. 나라별로 부스를 차려주었다. 한국 유학생도 꽤나 있었기에 당연히 한국 부스도 있을 줄 알았더니 아예 명단에도 없었단다. 한국은 국제연합에 가입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답을 듣는 순간 가난한 약소국가 유학생의 설움을 뼈아프게 느꼈다고 말씀하셨다. 왜소하신 한 전 부총리님과 키 작고 마른 휴비엔이 겹쳐졌다.최소한 휴비엔에게는 그런 설움을 주고 싶지 않았다. 원래 똑똑하였지만 성실하기도 이를데 없었다. 그 해 말 베트남대사관에서 주선하여 한국의 유명 건설회사에서 베트남 유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내리 3년을 받았다. 장학금 수령식 때마다 학생 대표 연설을 도맡았다. 국제교류재단에서 주는 생활장학금도 따냈고, 지역 로타리클럽의 장학금도 추천하여 받게 해 주었다. 보답을 확실히 하는 친구였다. 독학으로 한국어능력시험 6급을 땄다. 4학년 때는 한국학생과 당당히 겨루어 성적장학금까지 받는 기염을 토했다. 휴비엔의 존재감은 학교에서 더욱 확실해졌다.멋진 제자 휴비엔은 지금 베트남에서 성공적인 직장인으로 매우 잘 살고 있다.“휴비엔은 우리 대학 유학생들의 워너비이자, 롤모델이요, 전설이다.”

2018-06-25

선거와 화장실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순간적인 간절함에 빠진 철새 정치인들이 떠난 네거리가 평온하다. 그런데 불법은 여전하다. 허리가 땅에 떨어지도록 인사하던 자들이 떠난 자리에는 영혼 없는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승자의 당선 인사와 패자의 감사 인사! 큰 글자만 보면 선거 결과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같이 성원에 감사하다는 상투적인 내용뿐이니까.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면 현수막의 주인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선인”이라는 말이 ‘있고, 없고’이다.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언론들은 일제히 “여당 압승, 야당 참패”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또 어느 언론은 국민의 승리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기사로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선거에 이겼다고 하는 당과 청와대는 축제 분위기이고, 언론의 말대로 참패한 당은 당의 존립까지 위협받을 정도의 초상집 분위기다.선거를 두고 일명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가 꽃인 이유는 민주주의 이념의 핵심인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가장 잘 실현되어서이다. 그 선택이 잘만 되면 선거는 분명 꽃이다. 그것도 찬란한 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선거는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고, 결국에는 사회를 갈라놓는 독약이 된다. 특히 교육감 선거와 같은 깜깜이 선거에서는 더 그렇다.동네 할머니께서 투표를 하고 오시면서 필자에게 말한다. “이 선생! 투표장에 갔는데, 교육감 뽑는 종이도 있더구먼. 나는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암만 봐도 모르겠더라. 이름을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을 내가 어떻게 뽑아야 할지? 교육감이야 학교에 있는 사람들이 잘 알지, 손주들도 다 시집 장가간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교육에 대해서 뭐 아나. 그 중에 이름이 가장 그럴듯한 사람을 뽑았는데, 이 선생 이름이 있었으면 당장에라도 찍고 싶더라.”과연 이런 선거를 우리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누구를 위한 선거인지, 무엇을 위한 선거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이 나라에서 선거는 때가 되면 으레 치르는 일상적인 행사가 되어 버렸다.필자는 목욕탕에서 데자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장면을 선거 다음날 보았다. 장면 속 등장인물은 같았다. 한 사람은 선거 후보자, 다른 사람은 유권자. 선거 전(前)에는 후보자가 특정 유권자에게 알몸으로 90도로 허리를 굽히며 표를 구걸했다. 유권자는 아주 근엄한 자세로 열심히 하라는 말을 건방지게 던졌다. 그런데 선거 후(後), 장소와 인물은 같은데 역할이 반대로 바뀌었다. 당선인이 된 후보자는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고, 열심히하라고 거만을 떨던 유권자는 후보자가 그랬던 것보다 더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지금 네거리도 이와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 표를 부탁한다는 후보자들의 현수막 대신 당선을 축하하는 관변단체와 이익단체의 현수막이 네거리를 도배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선거와 화장실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용변이 급할 때 만원(滿員)인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듯 선거 또한 당선 전과 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말이다.낙선한 어느 후보자의 말을 화장실을 나온 것처럼 행동하는 당선인들에게 전한다. “이제야 알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선거 운동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시끄럽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요.” 물론 당선인의 명함을 달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에게서는 최소한 화장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당선인들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의 마음, 즉 선거 운동할 때의 그 간절한 마음을! 여러 당선인들의 당선 인사 현수막 중에서 유독 필자의 마음에 들어오는 현수막이 있다.“부모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책임지겠습니다.” 이 말이 꼭 지켜져 희망을 잃은 이 나라 교육에 경북교육이 새로운 희망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2018-06-21

지방분권, 여성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지방분권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뿐만 아니라 ‘정부에서 시민’으로 힘의 분산을 전제로 한다. 지방분권은 좁게는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지방으로 넘겨 지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행정권한의 차원에서 한정적으로 이해되는 지방분권의 의미가 이제는 사회·경제적인 전반을 망라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다. 즉,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권한 및 사무의 배분·조정 뿐만 아니라, 서울이나 수도권과 다른 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한 일반적이고 포용적인 의미의 정치·행정체계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방분권에 따른 여성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방분권의 관점에서 여성의 자질과 능력의 활용이 더욱 확대되어 지역사회발전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첫째, 정책결정자로서 역할이다. 지방분권은 정치·행정적인 측면에서 사회가치 배분 메커니즘의 다원화를 추구하고 있다. 즉, 지방분권의 진전에 따라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사회를 위한 가치배분의 실질적 주체로서 권한을 행사하며, 이와 동시에 이에 대한 무한책임의 당사자로서 위치를 담당하게 된다. ‘중앙의’ 그리고 ‘특정인의’ 독점물인 것으로 여겨진 지역사회의 가치배분 메커니즘을 그동안 배제되었던 ‘지방’과 ‘주민들에게’ 되돌려줌으로써 민주주의의 이념을 실천하고자 한다. 지방분권을 통하여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이러한 참여를 통해서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주체적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 이처럼 삶의 질적 향상을 스스로 도모하도록 하는 지방자치는 자연스레 여성을 지방정치의 주체로 등장하게 한다. 우리들의 삶과 관련된 문제들은 바로 여성들의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영역보다도 여성들이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방자치를 ‘생활정치’라고 하며, 지방분권이 진전될수록 ‘생활정치’의 영역은 넓어지게 되며, 그에 따라 여성들의 역할은 중요시될 것이다.둘째, 정책참여자로서 역할이다. 생활정치에 있어서 여성의 정치·행정적 역할은 정책과정에서의 다양한 참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누구나 정책과정에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장되어 있다.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이 공식적인 참여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비공식적으로 정당인, 이익단체, 사회단체, 전문가 및 학자, 언론인, 일반주민도 지역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수립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지방분권이 지역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관한 권한을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에 돌려준다는 점에서 보면, 지역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과정에 참여자로서 여성이 지니는 역할은 증대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참여자의 수뿐만 아니라 참여의 영역에 있어서도 매우 한정적이다. 지역 주민의 삶과 밀접히 관련된 문제에 관한 여성들이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가치배분자로서 역할이 매우 미미하다는 현실은 생활정치를 지향하는 지방분권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셋째, 정책집행자로서 역할이다. 지역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책의 결정뿐만 아니라, 수립된 정책을 당초의 의도에 맞게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지역정책의 집행과정이야말로 지방정부의 활동이 지역주민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지역문제가 대부분 주민의 실제 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사안인 만큼, 지역내 생활인으로서 지식과 경험에 바탕을 두지 않고는 효율적인 집행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바로 여성들이 지역의 생활인이라는 점에서 지역정책의 집행자로서 여성의 역할이 더욱 강조된다. 정책의 집행을 통하여 주민들에게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되거나 주민의 활동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에, 생활인으로서 여성의 참여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지역문제의 효과적인 해결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2018-06-19

일체유신조(一切唯身造)

▲ 이정옥위덕대 교수어릴 때 자주 아팠다.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아파서 한 달 이상이나 결석한 적도 있었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어도 낫질 않자 급기야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한 기억도 생생하다. 나는 방에 누워서 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새의 깃을 꽂은 모자를 쓰고, 요란한 옷을 입은 무당은 방울소리가 나는 커다란 칼을 휘두르며 마당을 돌아다녔다. 마당엔 구경꾼이 가득했고, 요란한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쟁쟁했다. 내가 누운 방 쪽에서 무당을 향해 엄마는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고, 연신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손바닥을 부비고 있었다. 한참을 마당을 휘젓던 무당이 내가 누운 방으로 훌쩍 뛰어들어왔다. 그 커다란 칼을 내 눈 앞에서 마구 휘둘렀고, 난 무서움에 눈을 꼭 감고 손으론 이불깃을 꽉 움켜쥐었다. 한참동안 내 온몸을 칼로 훑던 무당은 그 칼을 마당으로 휙 던졌다. 굿의 효험인가, 아님 앞서 병원과 한의원의 약 덕분인가 어쨌든 나는 한 달여쯤 뒤엔 일어나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었다. 그러고도 해마다 며칠 동안, 혹은 몇 주간을 병으로 결석하였던 나는 학년말에 개근상을 받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6학년 땐 난생 처음 개근상을 받았다. 졸업식날 6년 개근하는 아이들이 호명될 때마다 한없이 부러웠다. 그나마 1년 개근상을 받은 나는 6년 우등상과 공로상으로 받은 국어사전보다 이 1년 개근상장과 노트 한 권이 더 자랑스러웠다.그 후 난 매우 튼튼해졌다. 몸도 마음도 건강했고 아팠던 기억이 별로 없다. 결혼 이후 두 아들을 낳고, 몸이 다소 뚱뚱해졌지만 크게 아팠던 기억이 없다. 물론 두어 번의 입원과 수술이 있긴 했지만 그다지 큰 병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남편에게 ‘당신 아내의 무엇이 자랑스러운가’고 물었다. 이에 남편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건강한 아내’라고 말하였을 정도로 잔병치레라곤 없었다. 내심 ‘예쁜 아내’라고 말해 주길 기대한 나는 실망하긴 했지만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난 건강했다. 맞벌이 직장생활도, 사회활동도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건강 덕분이었다.아, 그런데 이젠 아니다 싶다. 몸 이곳저곳에서 신호가 온 것이다. 몇 해 전 왼쪽 어깨가 유난히 뻐근하여 정형외과를 찾은 적이 있다. 사진을 찍고 초음파로 검사를 한 후 의사는 말했다. “58년 썼으면 많이 쓴 거예요. 이 통증은 이젠 나도 쉬고 싶다는 신호거든요. 무리하지 마세요.” 그때부터였다. 가끔 어딘가 조금 탈이 나서 병원엔 가면 의사의 말씀은 “무리하시나요?”이번에도 그랬다. 늘 목이 뻐근한 것은 나이 탓이겠거니 하고 목근육을 풀어주는 마사지를 하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 아침 목을 왼쪽으로 젖혔더니 손끝까지 찌르르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매우 기분 나빴다. 오전엔 한의원을 갔다가, 오후엔 다시 정형외과를 찾아 정밀검사를 했다. 다음날엔 신경외과를 또 찾아 확인했다. 목디스크가 확실했다.“원인이 뭔가요?” “62년을 사용했어요. 통증은 좀 쉬어라는 신호예요. 그리고 무리 좀 하시죠?” “무리가 어떤 거예요?” “아마 일상이 다 무리인가 봐요. 몸을 섬긴다고 생각하세요. 나이가 있잖아요.”별 다른 처방은 없다. 물리치료를 받고 목을 쭉 빼주는 견인치료라는 것을 받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는 잘 모른다.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아픈 것도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자만했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지. 할 일이 태산인데 몸 아플 여가가 어디 있느냐며 오만했다.일체유신조(一切唯身造). 몸이 있어야 마음이 깃든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아프다. 몸이 아프니 집도 학교도 다 심드렁해진다. 내 몸을 가장 귀히 섬겨야겠다고 마음 단단히 먹는다. 몸을 보듬고, 몸을 다독여주면서 고맙고 귀히 섬겨야겠다고 단단히 벼른다. 그래야 다시 집안일도 학교일도, 또 사회생활도 씩씩하게 해 낼 수 있다.

2018-06-18

앵두 익는 학교와 학도의용군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계단에서 즐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즐거운 소리를 마중하러 교무실을 나왔는데, 메아리만 있고 아이들은 어느덧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걸음들이 어찌나 빠른지 6월 햇살이 아이들 등 뒤에서 헉헉거리며 쫓아가고 있었다. 모습 자체만으로도 눈부신 아이들인데 찬란한 6월 햇살을 받은 모습은 그대로가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불볕더위도 아이들의 아름다운 발걸음만은 어쩌지 못했다.필자는 아이들이 향하는 곳이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이 아이들을 저토록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 대상이 너무도 부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으로 빠르게 아이들을 따라가 보았다. 아이들이 멈춘 곳은 식당 창문 앞 화단이었다. 점심은 아직 멀었고, 그렇다고 필자가 모를 간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필자의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교무실 전화기가 계속 울렸지만, 너무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필자를 놓아주지 않았다. 필자의 시선은 마치 학생들의 움직임에 꿰어진 것처럼 학생들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학생들은 식당 창문 앞 화단을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 나무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나무를 포위하듯 에둘렀다. 동작들이 어찌나 능숙한지 처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각자 자리를 잡은 학생들은 나무와 거래를 하듯 양손을 일제히 나무쪽으로 뻗었다. 나무는 학생들의 손이 부끄럽지 않게 뭔가를 가득 내어주었다. 학생들은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다. 6월의 따가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생들은 수업 종이 울릴 때까지 나무와의 거래를 멈추지 않았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아니었다면, 학생들은 나무와 한 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학생들이 둘러싸고 있는 나무가 무엇인지 빠르게 생각해보았다. 일본 향나무, 공조팝, 작약, 두릅나무, 모과나무, 감나무 등 여러 나무 이름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 나무들은 학생들과 거래를 할 뭔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교감 선생님, 어디 편찮으세요?” 몇몇 학생이 현관에서 고뇌하며 서 있는 필자를 위로하며 교실로 갔다. 생각이 날려고 할 때 나무와 거래한 학생들이 땀을 흘리며 뛰어왔다. 현관에 서 있는 필자를 보고 학생들은 수업에 늦은 것에 대해 혼이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멈칫멈칫 하고 있었다. 필자는 제일 먼저 달려온 학생에게 물었다. “너희, 방금 거기서 뭐 했니?” 학생은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필자를 보았다. 다음으로 온 아이가 “교감 선생님, 앵두가 정말 맛있어요. 한 번 드셔 보실래요?” 하며 빨간 앵두가 가득한 손을 내밀었다.“앵두?” “네, 앵두가 너무 예쁘게 잘 익었어요. 정말 맛있어요” 답을 한 아이는 부산에서 온 학생이었다. “그래 어떤 맛이니?” “신 것같으면서도 달콤하고, 그리고 끝 맛은 시고 단 맛이 동시에 나고 아무튼 처음 맛보는 맛인데 정말 맛있어요” 아이가 내민 손에 담긴 앵두 하나를 집어 들었다. 학생들은 수업에 늦었다며 빠르게 필자를 지나 교실로 갔다.학생의 온기가 남아 있는 앵두를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 그 옛날 주전부리가 넉넉하지 않을 때 동네 어귀에 있던 앵두를 경쟁적으로 따먹던 시절을 생각했다. 그 때는 정말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정(情)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정으로 필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지금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라졌다고만 생각했던 정을 필자는 앵두를 건네는 학생들에게서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나라 교육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했다.앵두를 따던 아이들은 현충일 아침 전몰장병, 특히 학도의용군의 넋을 기리는 행사를 가졌다. 학생이 건넨 붉은 앵두를 오로지 북쪽에만 정성을 쏟는 대통령과 교육감을 하겠다면서 대안학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교육감 후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06-14

지역 대학의 존재의 이유

▲ 이정희 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한국에서 대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지속된 출산율 저하로 어느새 고등학교 3학년 졸업생수가 전체 대학교 신입생 모집 인원보다 적어졌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가깝운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일찍 대학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이미 2020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30만명까지 늘리겠다는 정책을 내놓은 지 오래되었다. 일본은 지난해 고등학교 3학년의 대학 진학률이 50.2%라고 한다. 그래서 현재 일본의 대학의 위기는 우선 고등학교 3학년생의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국공립대학과 사립대의 비율을 보더라도 거의 비슷할 정도로 국공립대학이 많다.그런데 우리나라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한국의 2018년 대학진학률은 69%로, 전세계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고 한다. 그러므로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우리나라의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의 비율을 보면 압도적으로 사립대학이 많다. 그래서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비쌀 수밖에 없었는데, ‘반값 등록금’ 정책이 나오면서 정원을 다 못 채우지 못한 지방의 대학들은 수업료 수입 등이 감소해서 경영 곤란에 빠지게 되어 대학의 위기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그래서 우리나라는 대학의 위기를 교육부가 나서서 구조개혁의 칼을 뽑아든 것이다. 멀지않은 시일에 발표가 날 ‘2018 대학기본역량 진단’평가 결과로 대학의 서열이 정해진다. 그 서열에 따라 정부의 재정지원 대학이 결정되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신입생 모집인원의 정원 감축이 시작된다. 게다가 하위 20%에 속하는 대학은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이 ‘2018 대학기본역량 진단’평가를 위해 각 대학에서는 지난 2017년도 1년 동안 준비한 보고서를 올 3월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런데 그동안 대학의 특성화를 강조하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대학을 한가지의 평가 기준에 의해 평가하고 서열화시킨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축구선수, 농구선수, 야구선수, 수영선수, 스키선수 등의 스포츠선수들을 모아놓고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해서 서열을 매기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이 선수들을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만들어 어느 선수가 제일 잘하는 선수인가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대학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각 대학의 특성, 국립대냐 사립대냐, 대학의 존재 이유 등을 살펴보면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평가가 나올 수가 없는 일이다.이미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진학을 원하면 누구나가 들어갈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대학은 신입생 유치에 급급한 나머지 결과적으로 입학생의 학력저하 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다. 학습의욕이 낮고, 기초학습 수행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학생들도 꽤 있다. 특히 지방대학일수록 정원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시에서 지원자 전원을 합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학생일수록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은 이들을 위해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기도 하고, 성적부진 학생들을 위한 상담 및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서 교수들은 학생지도 등으로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 비록 학습능력은 부족하지만, 그들에게도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지역 대학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지역 대학의 역할이 분명해 진다. 지역의 학부모는 자녀들이 다니는 대학을 응원하고 신뢰하는 관계로 이어져 가고, 지자체는 그들이 졸업하면 대도시로 유출시키지 않고 지역에 있는 기업에 취업시켜 지역을 위해 일을 하게 한다면, 지역 역시 더불어 발전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역의 대학과 지역의 주민이 함께 사는 길일 것이다.

2018-06-12

세상에, 시 암송이라니!

▲ 김현욱 시인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와 드디어, 시 암송을 시작했다. 받아쓰기와 책 읽기 등에서 칭찬쿠폰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한 딸아이에게 시 암송을 한 편씩 할 때마다 칭찬쿠폰을 세 장씩 주겠다고 하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덤볐다. 지난 휴일 아침에 김철순 시인의 동시집 ‘사과의 길’(문학동네어린이)을 딸아이에게 건넸다. 암송할 시는 ‘나비’라는 동시다. 봄날에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을 아주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묘사해놓은 좋은 동시다. 미술의 입문은 드로잉부터고 문학의 입문은 묘사부터 시작이다. 글로 어떤 상황이나 장면, 사물을 묘사하는 법은 시인이나 작가가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본기다. 묘사가 잘 된 시나 글을 통해 묘사의 특성을 체득해야 한다.딸아이가 암송하기에는 ‘나비’라는 시가 비교적 길고 내용도 어려워서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아빠가 세 네 번 정도 낭송해주며, 어려운 낱말이나 정황, 시의 맥락을 쉬운 말로 짚어주니 딸아이는 스펀지처럼 쭉 받아들였다.오늘 아침에는 딸아이가 동시집을 따로 챙겨 가방에 넣는 것을 보았다. 학교 가서 쉬는 시간에 보고 외우겠다는 것이다. 어찌나 기특하고 예쁘던지! 물론, 칭찬쿠폰 세 장이라는 커다란 당근 덕분이겠지만, 시 암송을 꾸준히 하려면 당근 뿐만 아니라, 부모나 교사의 동참이 필요하다.다시 말해 딸아이에게 시 암송을 시킨 아빠도 시 암송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이다.인공지능과 자율자동차, 빅 데이터, 코딩, 드론이 미래 산업의 먹거리로 부상한 4차 산업시대에 세상에, 시 암송이라니! 작금의 정보화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교육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정작,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하는 명문 학교에서는 ‘암송’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교육과정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학생들이 필요에 따라, 시나 문장을 ‘검색’하는 것과 ‘암송’하는 것은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특히, 사상과 문장의 에센스만 모아놓은 시를 암송하는 것은 사고력과 창의력의 토대를 질적으로 향상시킨다.오늘날의 시 교육은 지나치게 분석적이고 해석적이다. 특히 중·고등학생에게 시는 단지 풀어야 하는 암호거나 기호일 뿐이다. 이는 시를 학생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주된 요인이다. 시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음미하고 낭송할 수 있다면 입시에 고통받는 학생들의 정신 건강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시 암송의 방법으로는 짧은 시, 재미있는 시, 서정시, 명시부터 외우는 것이 좋다. 검증받은 좋은 시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에는 시를 몇 번이고 읽으며 그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시상이 떠오르고 공감이 되면 시를 서너번 베껴 써 본다. 반드시 베껴 써 봐야 한다. 읽어보는 것과 베껴 써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베껴 쓰고 나서 더듬더듬 외워 본다. 완전히 외웠을 때는 시의 분위기와 느낌을 잘 살려 낭송을 해본다. 그런 다음, 생활하다가 그 시가 떠오르면 기억을 되살려 외워 보는 것이 좋다. 한 번 외웠다가 넘어가버리면 금세 잊어버리게 된다. 생활 속에서 가끔 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좋다.좀 더 많은 학교와 학급, 가정에서 시 암송을 시켰으면 좋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의 학생들은 수학경시니 독서논술이니 영어경시니 할 일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훗날 성인이 되었을 때 학창시절에 암송한 수백편의 시가 마음의 재산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학급에서 집에서, 선생님과 부모님이, 자녀와 함께 매 주 한 편씩 시 암송을 해보기를 권한다.그건 그렇고, 우리 딸아이가 첫 번째 시 암송을 통과해서 칭찬 쿠폰 세 장을 받을까 못 받을까?

2018-06-11

선거 공해와 교육 공약(空約)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신문을 보고 어린 학생들이 대단한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도 조금이지만 돕고 싶습니다.” 2월 몹시 추운 어느 날 필자가 받은 전화이다. “학생들처럼 몽골 사막화 현장에 가서 직접 나무를 심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요?” “해외이동수업은 5월에 있을 예정인데 보내주신 응원만으로도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산자연중학교를 알고부터는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정부지원이 없어 매우 어렵다는 것도 잘 압니다. 교육다운 교육을 하는 학교에 왜 지원을 안 해주는지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힘 잃지 마세요. 그럼 5월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졌다. 정말 그동안의 서러움에 대한 모든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경북교육청의 대안학교에 대한 태도는 차별을 넘어 무시에 가깝다. 평상시에는 학교로 인정을 안 해주다가 꼭 국가적으로 어떤 일만 터지면 닦달이다. 최근 어느 침대 회사의 라돈 침대가 문제가 된 후 전혀 본교에 관심이 없던 교육청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왜 라돈 측정을 하지 않았느냐’고 교육부까지 들먹이며 매몰차게 몰아붙였다.필자는 하도 어이가 없어 ‘언제부터 교육청에서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건강에 관심이 있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을조차 안 되는 대안학교 선생이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너무 분하고 답답하여 “그럼 대안학교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이야기를 했다가 필자는 본전도 못 찾았다. 그러다 메르스가 창궐하던 때가 기억났다. 메르스가 한창 유행일 때에도 교육청은 지원은 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다 재량휴업에 대한 보고가 늦어진 것에 대해서만 시비를 걸었다. 대안학교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교육청으로부터 오만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산지 5년째다. 교육부에서 발표하는 통계를 보면 분명 학교밖 청소년의 수는 계속 줄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일반 중학교 교육활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안학교를 찾는 학생들의 수는 해마다 계속 늘고 있다.답답하기만 한 이 나라 교육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시작한 게 아닌데 또 그쪽으로 흘러버렸다. 비록 답이 없는 대한민국 교육이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건 그나마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최소한 교육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 덕분인지 최근에는 교육청과 정부가 아닌 개인 차원의 후원이 조금씩 늘고 있다. 그 분들의 응원에 학생들은 힘을 얻고 있다.“사막화 방지를 위한 숲 조성 준비는 잘 되고 계시지요” 4월 말 필자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필자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네,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후원하고 싶습니다. 사막화 방지를 위해 잘 심어 주세요.”학생들과 함께 작년에 이어 몽골에서 ‘생명·사랑·나눔의 숲’을 조성하고 있다. 올해는 주변의 많은 도움 덕분으로 작년보다 300그루 많은 700그루의 비술나무를 심었다. 2차 숲 조성이 끝나는 순간 사막에는 학생들의 푸른 숨결을 닮은 푸른 바람이 불었다.그런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 푸름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 원인은 바로 선거다. 횡단보도를 가로막고 설치된 펼침막, 소음에 가까운 선거 운동 등 대한민국은 온통 불법 선거판이었다. 그 중에 교육감 후보들의 현수막도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을 검색해 보았다. 공통점은 무상 급식, 고등학교 무상 교육 등 무상(無償)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그 어디에도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대한 지원은 없었다.

2018-06-07

오월, 광주를 만나다

▲ 금박은주 포항여성회장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아마 중학생 2∼3학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늦은 밤 TV 다큐멘터리에서 충격적인 영상이 보도되었다. 손으로 채널을 돌리는 10인치 미만의 작은 화면에서 나온 영상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일 학교를 가야 한다며 빨리 자라고 재촉했고, 나는 그 영상의 실체가 궁금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작은 텔레비전을 안고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늦은 밤까지 다큐를 끝까지 봤다. 그건 바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의 미공개 영상이었다. TV를 보는 내내 “왜 우리나라 군인이 우리나라 국민들을 저렇게 때릴까? 왜?”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길거리에는 탱크가 멈춰 섰고, 군인들은 곤봉을 들고 길을 다니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때렸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사람들, 눈으로 봐도 믿겨지지 않는 충격적인 그 영상이 바로 5·18 민주화 운동을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그 이후로 5·18 광주는 계속 이야기가 되었고, 새롭게 조명되었다. 하지만 일상에 쫓겨 살면서 광주는 가깝고도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도 사실이다.몇 달 전 5·18 광주 민중항쟁위원회에서 역사탐방 공모를 실시했다. 회원들과 함께 광주 역사탐방을 한번 다녀오면 좋겠다 싶어 응모했고, 포항여성회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토요일인 지난달 26일 34명의 회원들과 함께 광주로 향했다. 우리가 간 날은 광주의 청소년들이 오월 광주를 새롭게 조명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이 광주의 아픔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축제를 보면서, 아픈 역사를 다음세대에 전달하는 축제라는 형식이 새롭게 다가왔다.우리 일행은 광주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옛 전남도청과 헬기 사격의 진위 여부를 따지고 있는 전일빌딩, 그리고 광주 시민들의 피로 얼룩졌던 금남로를 걸었다. 마지막으로 광주 민주화 묘지 참배로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자원봉사자들께서 친절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해 주셨는데, 시민군의 마지막 안내방송 “시민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라는 말을 할 때는 지금도 가슴이 떨려서 말을 잘 잇지 못하신다고 했다. 그 떨림은 듣는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광주의 아픔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다.무엇보다 우리를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광주 민주화운동 과정에 첫 희생자이신 고 김경철씨의 어머니와의 만남이었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나오다 곤봉으로 수도 없이 맞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빌었지만 결국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아들의 처참했던 당시 모습을 회상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렸고, 듣는 우리들도 함께 울었다. 백일된 딸을 둔 아빠이기도 했던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악몽을 꾸신다고 하셨다. 그때 아버지를 잃은 손녀를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오셨다는 어머님은 “광주의 아픔을 잊지 말고 더 많이 알려 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하고, 지금까지 제대로 몰라서 죄송하다”는 이야기로 죄송함을 대신하였다.지금 광주에서는 옛 전남도청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당신의 아들과 딸, 남편과 가족의 피로 얼룩진 그곳을 허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광주를 기억하기 위해서 전남도청의 옛 모습을 복원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하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약속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은 무겁고 슬프지만은 않았다.오월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광주의 아픔은 치유되지 않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행한 폭력에 대해선 더 정중히, 그리고 더 진실하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을 호도하고 지역감정이란 이름으로 폄훼했던 그 수많은 시간도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아직 오월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06-05

갑질 논란, 윤리경영이 답이다

▲ 박창원수필가지난 봄, 조현민씨의 이른바 ‘물컵 투척’사건이 일어나고, 이어 이명희씨의 폭행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한진그룹 오너 일가는 국민들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닐 것같은 물컵 투척에서 불거진 갑질 논란이 내부 고발로 이어지고 여기에 밀수, 탈세, 횡령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그룹 전체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으로 번지고 있으며 한진그룹은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사건의 중심에는 이 시대 화두의 하나인 ‘갑질’이 자리하고 있다.갑질이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행위를 말한다. 갑질은 권력에 기생하기에 계급사회일수록 심했다. 조선시대 내연산 계곡을 탐승하던 관리들도 보경사 승려들에게 갑질을 했던 모양이다. 그 시절 관리들은 명승지인 내연산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너도 나도 보경사로 향했고, 그들은 보경사 스님들이 메는 남여(藍輿)라는 뚜껑 없는 가마를 타고 연산폭포 근처에까지 올랐다. 1587년 황여일이 내연산을 탐방하고 쓴 글에 보면 자신을 폭포까지 안내한 스님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의 폭포 관광을 위해 최소한 6명의 스님들이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또 다른 기록에는 조선시대 지방 관장들이 내연산 구경을 오게 되면 보경사 스님들이 절앞에서 가마에 태워 내연산의 험한 길을 돌아다니며 곳곳의 좋은 경치를 구경시켜 주는 큰 폐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을의 반란’이 일어난다. 철종 말년에 현감 길진구가 내연산 구경을 하러 보경사에 왔고, 홍운 스님이 가마에 태워 골짜기를 올라가다가 일부러 미끄러져서 남여를 깊은 개울물로 떨어지게 하는 사고를 냈다. 물에 빠진 현감을 군노들이 건져 내어 간신히 목숨은 구했는데, 그 뒤부터는 관장들이 와도 스님에게 남여를 맡기지 않았다 한다. 조선시대 지방 관장에 의한 갑질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최근 몇 년 간 우리는 갑질 때문에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사건을 여럿 경험했다.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갑질, 미스터피자 갑질, 대기업 CEO의 운전기사 폭행, 군 공관병에 대한 군장성의 갑질 등이다. 그 전에도 갑질은 분명히 있었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다. 문제는 시대가 변했고, 사회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사회가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는 시대에 와 있다. 경영자들이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기업과 사람을 경영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생기는 것이다.대한항공의 경우는 2014년 소위 ‘땅콩 회항’ 사건으로 홍역을 한 번 치렀다. 이때 뼈를 깎는 아픔으로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비록 갑질 당사자가 처벌을 받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물쩍 넘어가고, 국민들이 잊을만하니까 슬그머니 업무에 복귀시킨 행위는 화를 키운 전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기업이든 사람이든 윤리경영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윤리경영이란 법적 책임의 준수는 물론,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기대를 기업의 의사결정 및 행동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왜 윤리경영을 해야 하는가. 이해 관계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 기업은 소송 등으로 재무적 손실을 입어 존폐기로에 설 수 있으며,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 경영활동조차 국민정서와 충돌할 경우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글로벌 자동차 기업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한 일이 폭로되면서 세계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이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은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요즘 회사가 망하는 건 불경기나 유동성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윤리경영에 실패하면 망한다. 그러기에 윤리경영이 곧 경쟁력이라는 말도 나온다. 갑질 논란으로 촉발된 이번 한진그룹 사태는 우리 사회에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2018-06-04

지구에 푸름을 심는 학생들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학생들 어디 가니?” “지구 환경을 지키러 갑니다” 호기심에 물었다가 의외의 답을 들은 한국 관광객은 말문을 닫았다. 여행의 들뜬 기분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끄럽던 주변 한국 사람들도 같이 조용해졌다. 산자연중학교 학생의 말은 울긋불긋한 등산복을 차려입은 한국 여행객들로 소란한 몽골행 비행기 안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어떻게 지구 환경을 지키니?” 처음에 질문한 사람의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시 물었다. “나무를 심으면 됩니다” “나무를 심는다고?” “네, 저희는 작년부터 몽골 아르갈란트 솜 지역에 생명 사랑 나눔의 숲을 만들고 있습니다” 학생의 말이 끝나는 순간 질문을 했던 사람은 흐트러진 자신의 자세를 고치고 다시 물었다. “나무를 심는다고? 어떤 나무를 심니?” “비술나무를 심습니다. 작년에 400그루를 심었고, 올해는 700그루를 심을 예정입니다” 비행기 여기저기서 탄성들이 쏟아졌다.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몽골 아르갈란트 솜 지역에서 울란바토르로 가는 버스 안이다. 여기저기서 오케스트라처럼 들리는 학생들의 코 고는 소리가 아름답기만 하다. 30도가 넘는 날씨! 상상을 초월하는 일교차! 사막의 먼지바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학생들은 700그루의 나무를 심기 위한 구덩이를 파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다.땀과 먼지가 얼굴에 여러 갈래 길을 낸 아이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힌 것도 모르고 온전히 삽과 하나 되어 사막화 지표 식물들을 걷어내고 푸른 지구의 꿈을 피울 나무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아이들! 장갑을 벗으면서 발견한 물집을 보여주면서도 씩 웃어 보이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맑고 밝은 표정에서 필자는 푸른 지구의 꿈을 확신할 수 있었다.몽골어 중에 조드(ЗУД)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의 뜻은 ‘자연재해, 설해’라는 뜻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풀면 다음과 같다.“물 부족으로 인한 가뭄과 영하 40℃가 넘는 혹한기 기온으로 인해 가축이 떼죽음을 당하는 현상” 2010년에는 석 달간 약 600만 마리의 가축들이 조드로 인해 죽었다고 한다. 유목민들에게 조드는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무서운 자연재해다. 조드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환경 난민이 된다. 몽골에는 이런 환경 난민들이 해마다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의 숫자에 비례하여 황사와 미세 먼지의 강도는 더 커진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조드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것이다.최근 일기예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미세먼지 지수이다. 사람들은 자연이 인간에게 허락한 편하게 숨 쉴 권리를 박탈당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지구이다. 자연은 계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치인들처럼 불평불만만 할 줄 알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다. 편함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미세먼지 지수에 따라 마스크만 바꿔 쓸 뿐 여전히 자연을 자극하는 일들을 계속하고 있다. 아무리 인간의 기술력이 뛰어나도 자연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일회용에 길들여진 인간들은 절대 모른다. 환경 난민을 만드는 조드! 우리나라 교육계에도 조드와 같은 재앙이 발생하고 있다. 교육계의 조드는 근본 없는, 또 이념에 젖은 선심성 교육정책들이다. 교육난민을 만드는 국적 불명의 교육정책이 교육감 선거라는 미명 아래 남발 되고 있다. 저마다 경북 교육을 살릴 최고의 적임자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정녕 그들의 공약을 보면 알맹이는 하나도 없다.경북 교육감 후보들에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대안학교 학생들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한다. “지구인 여러분, 푸른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2018-05-31

‘탁(啄)’

▲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 국문학옛말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중국 송대(宋代) 중현이라는 인물이 당대 대표적인 선문답을 정리하고 저술한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말로, 그 뜻이 참으로 오묘하다. ‘알 속 병아리가 때가 되어 밖으로 나오고자 할 때, 껍질 안쪽을 쪼는데 이를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새끼가 잘 나올 수 있게 알을 쪼아 돕는데 이를 ‘탁(啄)’이라고 한다. 이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이뤄져야 뜻하는 바가 성취된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지(知)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많은 병아리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나름대로 저만의 소리를 내며 알껍데기를 쪼아대기 마련이다. 어떤 병아리들은 큰 소리로 규칙적이게, 어떤 병아리들은 쪼아대다가 지쳐 잠시 멈추기도, 또 어떤 병아리들은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힘에 부쳐 그 소리가 미약할 때도 있는 등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모두 자신만의 역량대로 소리를 내며 껍질을 깨려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그런데 껍질 ‘안’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아우성은 사실 ‘잘’ 들어야 한다. 안에서는 열심히 쪼아대는데, 밖에서 ‘잘’ 듣지 못하면 그것은 ‘소음(騷音)’이 되거나 ‘무음(無音)’이 되기 쉽다. 소음이 되면 그 소리를 안 듣고 싶은 마음에 화를 내거나 강압적이 되기 쉽고, 무음이 되면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스스로 잘못된 길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대로 가다가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전자는 지(知)를 추구하는 병아리들을 위축시켜 껍질을 깨고 나올 가능성을 죽이고, 후자는 무반응, 소통불가 상황 속에서 이들을 지쳐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의사는 환자의 신음소리를 잘 들어야 이를 낫게 할 수 있고, 고용주는 노동자의 절규에 찬 목소리를 잘 들어야 원만한 노사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온 국민의 진정 어린 외침을 잘 들어야 국가 정책의 방향성을 제대로 수립해 나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승은 제자들의 다양한 소리를 제대로 들어야 올바른 깨우침의 길을 열어 줄 수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잘’ 듣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미국의 유명 작가인 윌리엄 아서 워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평범한 교사는 그저 말을 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을 하며, 훌륭한 교사는 스스로 모범을 보이나 위대한 스승은 영감을 준다”라고.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스승들은 가슴 속 깊이 제자를 향한 따뜻한 참사랑이 그득한 이들이다. 그렇기에 제자들의 소리를 소음이나 무음이라 하지 않고 소리마다의 특색에 ‘귀’를 잘 기울이려고 한다. ‘잘’ 듣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스승’의 마음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를 제대로 알고(知己), 제대로 닦고(修己), 또 완성하려는(成己) 노력을 부단히 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요즘 지식이 많은 선생은 넘쳐나도 지혜와 사도(師道)를 갖춘 ‘참스승’은 매우 아쉬운 시대다. 모범을 보여야 할 스승이 잘못된 행동으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휘말리질 않나, 취업만 시키면 인성이고 나발이고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교육자가 있질 않나, 지도교수라는 명목으로 제자들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한심한 인사가 있지 않나,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다.바야흐로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생각해야 할 이들이 참으로 많은 풍성한 달이다. 이러한 날들이 ‘~를 위한’ 날들이 아니라, 진정 ‘~다운’ 날들이 된다면 어떨까. 어린이답게, 어버이답게, 스승답게. 이 중 스승답다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도 열심히 줄(啐)하고 있을 수많은 병아리들을 위해 제대로 된 ‘귀’를 갖고 제때 ‘탁(啄)’하려고 하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 것이다.

2018-05-28

지극함에 대하여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돌이 지극하면 탑이 되고, 탑이 지극하면 꽃이 된다.” 휴일에 의미 없이 돌린 채널에서 필자의 심장을 멎게 하는 글을 만났다. 돌로 기왓장에 쌓아올린 탑, 그리고 돌탑 위에 올린 꽃 한 송이! 카메라가 잡아낸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도 장면이지만, 필자는 화면 아래에 새겨진 자막, 그 중에서 ‘지극하면’이라는 단어에 모든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그래서 ‘지극(至極)하다’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어떠한 정도나 상태 따위가 극도에 이르러 더할 나위 없다’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전은 필자가 느낀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하였다. 사전이 설명하는 것 이외에 뭔가 더 강한 느낌, 필자는 그것을 찾기 위해 팔방으로 애를 썼지만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또 한 번 필자의 짧은 어휘력에 한 숨만 깊어질 때 필자는 정조 어록을 만났다. “얼음을 못으로 뚫으면 부서지고 바늘로 뚫으면 쪼개진다. 가령 얼음 한 덩어리를 혹은 네모, 혹은 둥글게 일정한 크기로 나누려고 한다면 바늘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는 장자(莊子)가 말한 ‘두께가 없는 것으로 간격이 있는 것에 들어간다’는 것이니, 이것은 비록 작은 일이지만 모두 지극한 이치가 담겨 있다.” 정조가 말한 지극한 이치는 분명 정조만 아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조의 말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말이 떠올랐고, 정조야말로 이 말에 잘 어울리는 인물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작은 일도 지극한 마음이 없으면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러면 그 지극한 마음이란 무엇일까. 필자는 지극한 마음을 떠올리기 전에 지극한 마음과 반대되는 말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욕심, 사심, 탐심, 교만, 자만, 오만 등을 찾았다. 그리고 지극한 마음이란 이 말들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잘 되지 않는다면 분명 지극한 마음과 반대되는 이 단어들이 어깃장을 놓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정부가 하는 일 중 북한 관련 일을 제외한 많은 일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중에 가장 어려운 분야는 바로 “교육”이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결정 장애 교육부 등 교육부 앞에 붙는 수식어가 심상치 않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정말 어느 것 하나 국민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교육 정책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사람들은 교육부 수장이 조용하면 무섭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또 어떤 황당한 정책을 들고 나와 국민들의 혼란 지수를 높일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2022 수능 개편안을 국가교육위원회로 떠넘긴 후 교육부 수장이 너무 조용하다. 교육부 수장은 또 어느 밀실에 있을까.교육이 잘 안 돌아가는 이유는 정치 교육 관료들에게는 학생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지극한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정치, 이념, 사상과 같은 말들이 자리를 차지고 있다. 그러니 교육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지금에라도 교육을 정치에서 분리시켜야 한다. 정치에 종속된 교육 관료들에게 학생을 위하는 지극한 마음이 있을 리 만무하다. 교육을 정치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3권 분립을 넘어 4권 분립(입법, 행정, 사법, 교육)을 해서라도 반드시 교육을 정치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교육 못지않게 지극한 마음이 없는 곳이 정치이다. 그래서 북쪽에 올인하고 있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에게 정조의 말씀을 전한다. “덕을 백성들에게 베푸는 것은 하늘이 만물에 비와 이슬을 내리는 것과 같아 적셔주어도 공을 알지 못하며, 자라게 하여도 자취를 보지 못한다. 이것이 백성들이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라고 노래한 방훈(放勳·요임금)의 하늘을 본받은 큰 덕이다.”

2018-05-24

아픈 역사, 미투운동

▲ 금박은주 포항여성회장지난 20일 포항여성회에서 ‘2018 포항 평화의 소녀상 청소년 지킴이단 발대식’을 가졌다. 포항에서는 지난 2015년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추진됐고, 90여개 단체와 3천800여 명의 개인이 모금운동에 참여한 가운데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다. 이후에 포항여성회에서는 청소년 지킴이단 활동을 통해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심각성을 함께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왔다.특히 올해는 160여 명의 학생들이 신청할 정도로 청소년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대식에 참여한 학생들의 다짐도 당당했고 믿음직스러웠다.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있었지만 없었던 문제처럼,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 것은 우리 사회의 성폭력 문화가 만연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민주성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고, 더이상 개인 피해자의 문제가 아닌, 성폭력 문제가 공론의 장에서 새로운 담론으로 정착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투 운동이 사회변혁의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았다. 미투 운동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되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폭로한 미투 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김학순 할머니의 용기 있는 미투 선언으로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지난 2015년 한일 양국간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이라는 굴욕적인 합의 선언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 되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진정한 문제 해결이 아님을 천명했다. 물론 지금까지 이렇다 할 진척 사항은 없다고 한다.얼마 전 한 신문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사실을 최초로 알리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 문제 역시나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있었지만 없었던 일’로 침묵을 강요당했던 가슴 아픈 역사 중 하나다.현재 우리 사회의 미투 운동은 5·18 계엄군 성폭력 사건, 미군 위안부 문제,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 문제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한 진상 조사는 지금까지도 우리 세대의 과제로 남아있다.이 모든 문제는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사건처럼 여겨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는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했던 부당함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이제 우리가 답을 해야 할 차례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비민주적인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이름표를 다시 고쳐 달아야 할 것이다.지난 포항여성회 청소년 지킴이단 발대식에서 윤미향 한국 정신대 문제 해결 대책 협의회 공동 대표는 강연에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인권운동가는 바로 김복동 할머니이다” 라며 할머니의 육성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전해줬다. 28분의 할머니들, 이제 그분들에겐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는 것, 그리고 5·18 계엄군 성폭력 사건을 철저하게 진상 조사 하는 것, 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완수하는 것. 그리고 지금 들불처럼 퍼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의 “위드유” 라는 외침이 출발점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책임을 함께 통감하고, 정의로운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 역시 “따로 또 같이” 펼쳐지길 바란다.

2018-05-21

공중도덕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전 세계가 북한 울렁증에 빠졌다, 특히 우리는 그 증상이 유독 심하다. 현 청와대와 정부에 있어 북한은 마치 등대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누군가는 “북한 바라기 정부”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비핵화는 필요하다. 그런데 그 다음은? 보나마나 대북 경제 지원이다. 벌써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금액까지 나오고 있다. 그 금액이 놀랍다. 그 많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건지도 걱정이지만, 필자를 더 한숨짓게 하는 것은 아직 우리나라에도 대안학교 등 정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관심이 끊겼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중학생이면서 등록금은 물론 교과서까지 자기 돈으로 사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있다. 이에 대한 불합리함을 정부에 계속 얘기했지만 교육부는 알겠다고만 한다. 더 따져 물으면 돈이 없다고 한다. 그런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북쪽에 쏟아붓겠다고 하니, 우습다.대북지원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지원에 있어 좀 더 현명해지자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방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 비록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PVID)”라는 가정을 붙였지만, 미국도 북한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우리와는 다르다. 미국은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이 직접 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고 한다. 모든 것을 정부가 하려는 우리나라와 민간 기업에 기회를 주겠다는 미국! 대통령의 스타일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과가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하다.답답한 마음을 씻어내기 위해 목욕탕에 갔다가 필자는 극과 극인 모습을 보았다.그 중 처음에 본 장면은 모습 자체가 감동이었다. 한 때는 일상적이었지만 이제는 참 귀한 장면. 다름 아닌 초등학교 저 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아버지의 등을 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는 아버지의 등을 유심히 살피면서 “아빠, 여기는 왜 다쳤어? 이거는 언제 다친 거야?”라고 끝없이 물었다. 그 모습은 등을 민다기보다 아버지의 등에 표시된 역사를 읽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에 필자는 코끝이 찡한 감동을 느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뿐. 물안경까지 쓰고 탕으로 뛰어든 어린 무법자들. 물이 튀는 것에 비례해 커져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서로에게 던지는 욕설에 가까운 말들! 주말이어서 탕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나같이 인상만 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 그 모습은 지금 우리나라 국민의 모습이었다.너무도 다른 두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필자의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업시간이 떠올랐다. 필자가 5학년임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부끄럼 많던 필자가 선생님의 질문에 처음으로 반 학생들 전체 앞에서 발표를 했고, 선생님은 필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칭찬을 해 주셨기 때문에 그 날을 너무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 때 선생님께서 하신 질문은 “목욕탕에서 지켜야 할 예절은 무엇입니까?”였다.필자는 “비누로 먼저 몸을 씻고 탕에 들어갑니다. 물을 아껴 씁니다. 장난을 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때 수업 주제는 공중도덕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그 때의 수업 내용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한 때는 일상이었던 공중도덕! 그런데 왜 이 말이 너무도 낯설게만 느껴질까. 예절 교육, 인성 교육 등 여러 가지 말로 바뀌어 지금 학교 현장에서도 공중도덕 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예전의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학교 붕괴의 시작은 공중도덕이라는 말이 어색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믿고 있다.전 세계가 북한 울렁증에 빠져 있다면, 대한민국 학생, 학부모, 교사는 스승의 날 울렁증에 빠져버렸다. 처참한 날 스승의 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상한 교육 정책보다 공중도덕 교육부터 부활시키면 어떨지!

2018-05-17

아낌없이 주는 사랑 앞에서

▲ 임선애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5월은 감사의 달이다. 수많은 인연들 중에 우리 집에 태어나줘서 고마운 아이,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 우리를 세상과 연결시켜주고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붓는 그들 앞에서 무릎 꿇고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뿐, 다른 어떤 것도 없다. 그 중에서도 부모님이 자식에게 주는 사랑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동요의 가사처럼 부모님의 은혜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동요의 가사가 뼈에 사무치도록 가슴에 와 닿으려면, 적어도 자식을 낳고 길러 봐야만 알 수 있다고 한 사람들의 말이 생각난다. 아이를 길러본 사람이나, 아이를 기르는 것을 지켜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아기가 태어나서 제대로 몸을 가누고 자신의 의사표현을 그나마 할 수 있도록 돌보는 데만도 부모의 엄청난 희생과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간의 본성 중에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라는 성정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한 인간을 길러내는 데는 우주를 창조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 위대한 희생과 사랑 앞에서 빚쟁이가 아닌 자 누구이겠는가.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위대함 앞에서 고마움을 잊은 채, 간혹 물질적인 잣대로 부모님의 사랑을 재는 경우도 있다.이청준의 ‘눈길’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나’가 그런 인물이다. ‘나’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물질적으로 해 준 것이 없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한 푼의 빚도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고등학교와 대학교와 군영 3년을 치러 내는 동안 노인은 내게 아무것도 낳아 기르는 사람의 몫을 못 했고, 나는 또 나대로 그 고등학교와 대학과 군영의 의무를 치르고 나와서도 자식놈의 도리는 엄두를 못 냈다. 노인이 내게 베푼 바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처지가 못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형이 내게 떠맡기고 간 장남의 책임을 감당하기를 사양치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주인공 ‘나’는 넉넉하던 살림을 다 말아먹고 죽은 형에 비해서 자신은 아무런 물질적 혜택을 받은 것이 없고, 더구나 형의 죽음 이후 형수와 형의 자식들도 돌보아야 하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진 빚이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주인공의 어머니는 쓰러져가는 집을 새단장하고 싶고, 단칸방 신세를 면하고 싶어 하지만 주인공 ‘나’는 어머니에게 진 빚이 없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소망을 외면한다.‘이 노인이 쓸데없는 소망을 지니면 어쩌나.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가라앉혔다. 무엇보다도 나는 노인에 대해서 빚이란 게 없었다. 노인이 그걸 잊었을 리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들에게 섣부른 주문을 내색할 리 없었다. 전부터도 그 점만은 안심을 할 만한 노인의 성깔이었다.’아들에게 해 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엇을 바라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푸념조로 하는 소망이었다.소설은 주인공이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는 채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걸었던 눈길에 대한 이야기를 엿듣는 장면을 설정하고, 주인공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세상에는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많아서 자녀들에게 주는 것이 많은 부모도 있지만, ‘눈길’의 주인공 어머니처럼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어서, 아무 것도 주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모들도 있다. 정말 아무 것도 주지 않았을까?낳아주시고 길러주신 것만으로도 크신 희생과 사랑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우치지 말자. 아낌없이 주는 사랑 앞에서 무조건 감사하자.

2018-05-16

1인 가구의 빠른 증가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오늘날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등의 요인으로 가구구성의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가족 및 부모부양에 대한 전통적 의미 변화, 경제적 이유로 인한 가족해체,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결혼 연기, 평균수명 연장에 의한 노인인구 증가 등 다양한 이유로 1인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2010년 기준 1인가구는 24.0%에서 2015년 27.2%로 증가하여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소비트렌드 분석에 의하면 1인 가구와 관련한 3개 트렌드를 제시할 만큼 1인 가구의 확산은 최근 우리 사회 문화와 생활의 중요한 변화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변화는 첫째, ‘내 멋대로 1코노미’ 현상이다. 1인과 이코노미를 연결한 1코노미는 가족 등 공동체를 대체하는 얼로너(aloner) 들로 이루어졌다. 혼밥, 혼술 등을 특징으로 하며 캥거루족이 그 대표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둘째, 각자도생(各自圖生) 현상이다. 공공의 문제해결 능력을 불신하고, 가족의 연대감도 약해지는 가운데 각자도생의 개인주의적 생존전략이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포착한 것이다.셋째는 욜로라이프 가치관의 확산이다. 1인 가구 중심의 개인주의가 정착되면서 인생가치관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1인가구의 증가는 ‘솔로이코노미’라는 새로운 소비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며 주택 및 주거환경 측면에서도 가족단위의 가구와 차별화된 1인가구를 위한 정책도 요구된다. 이러한 정책수요에 선진 사례를 살펴볼 필요다고 본다. 독일은 가구의 유형에 제한 없이 복지혜택이 주어지는 것으로 독일의 ‘본겔트(wohngeld)’ 제도는 가구 구성원 숫자에 따른 신청 제한이 없다. 가족 숫자가 많을수록 혜택을 많이 주는 것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1인가구라고 아예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은 없다. 이 제도는 가족구성원의 수와 소득, 주거비용, 주거지의 월세 수준, 주택의 노후화 등을 확인해서 결정된다. 저출산 및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다세대 공동주택’을 도입해 누구나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본다. 덴마크의 경우는 독거노인들의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일정 공간이나 시스템을 공유하며 생활하는 주거형태인 ‘코하우짱을 지원한다. 스웨덴은 ‘공동주택정책’을 제공하여 거주자들이 개인 원룸을 제외하고 주방과 육아센터 등 나머지 시설을 공유하고, 청년층과 노년층의 안정된 주거를 뒷받 하기 위해 주택보조금도 지원한다. 미국은 저소득 1인가구의 자활을 돕는 미국의 ‘싱글 룸 거주 프로젝트’주택정책을 추진하였고, 저소득 임차인의 월소득에서 임차료 비중이 너무 높을 경우 연방정부에서 금액을 보조해주는 제도인 ‘주택 바우처 제도’를 제공한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1인가구의 주거성능 확보를 위한 건축 기준 조례 제정, 개별 구성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체의 주거단지인 ‘코하우징(co-housing)’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주거비, 사회문화적으로는 정신적 고독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한편, 대상별 1인가구 중 특히 여성 1인가구의 지원정책은 안전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여성이 안전한 도시를 위해 범죄 취약지역에 범죄예방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 이에 관한 정책 사례는 도시의 환경설계를 통한 범죄 예방인 셉테드를 들 수 있다. 주차장내 경비실, 차단기, CCTV, 비상벨 등을 갖춰야 하며, 어린이 놀이터도 주민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배치, 골목길 방범용 CCTV 주변에는 가로등을 설치해야 한다. 여성 1인가구에게 안심할 수있는 주거환경 조성으로 삶의 질을 제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가족 및 가구에 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한 시점에 다양성을 고려한 맞춤형 주거, 의료 및 건강, 정신건강, 안전 등의 프로그램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다.

2018-05-15

불안의 시대

▲ 김현욱 시인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공황장애 진료인원은 2010년 5만945명, 2015년에는 10만6천140명으로 5년간 연평균 15.8% 증가했다. 남자 환자는 2만6천198명에서 4만9천669명으로 연평균 13.6%가 늘었다. 여자 환자는 2만4천747명에서 5만6천471명으로 연평균 17.9%가 증가했다. 연간 병원을 찾는 공황장애 환자만 1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구 10만 명당 환자가 가장 많이 증가한 연령대는 70대 이상이다. 노년층이 겪는 사회적 소외와 경제적 박탈감이 공황장애로 이어진 경우로 보인다. 연령별 환자 수가 가장 많은 연령대는 40대로 2015년에만 2만7천326명을 기록했다. 전체 공황장애 환자의 50%가 30·40대였다.30·40대에 공황 장애 환자수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30,40대 연령층들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가장 혹독한 스트레스를 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건강과 직장, 결혼과 자녀 양육에서 오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황장애가 생기는 것이다. 공황장애도 우울증, 불안장애처럼 명백한 마음의 병이다. 숨기거나 방치한다고 저절로 낫는 병이 절대로 아니다. 현재로서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인지행동치료는 환자의 극복 의지와 치료 노력에 따라 효과가 배가될 수 있다.벡(Beck) 인지치료연구소 소장인 주디스 벡(Judith S. Beck)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인 아론 벡(Aaron T. Beck) 박사의 딸이다. 그녀에 따르면,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정신장애의 핵심에는 ‘사고의 장애’가 있고, 그런 환자들은 어떤 특정한 경험을 ‘해석’하는데 체계적인 편향이 반영된다고 한다.우울증 환자들의 꿈은 취약, 박탈, 상실에 관한 꿈이 훨씬 많다. 아울러, 자동적인 부정적 사고들을 자주 표현한다. 공황장애 환자는 신체적 또는 정신적 감각을 자신의 생명이나 정신적인 기능을 위협하리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한다. 거식증 환자는 자신의 가치나 통제에 대한 믿음이 왜곡되어 있다. 이런 편향된 해석과 새로운 대안들을 지적함으로써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증상을 완화시키는 방법이 바로 인지행동치료이다. 인지행동치료(당시에는 인지치료)는 1960년대 초, 펜실베이니아대 정신과 조교수였던 아론 벡에 의해 고안되었다. 이 치료의 목표는 환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부정확하거나 쓸모없는 역기능적인 사고와 행동들을 수정하는 데 있었다. 치료는 이해에 기반한 환자 개인에 대한 개념화와 환자의 사고나 믿음 체계의 수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감정 및 행동의 변화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환자의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역기능적인 사고’가 모든 심리장애에서 발견된다는 가정하에,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좀 더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평가하는 것을 배운다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훨씬 나아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인지행동치료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은 자신의 기분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거나 악화될 때, 또는 부정적인 감정과 연관된 신체 감각을 주목할 수 있을 때 스스로에게 어떤 감정을 경험하고 있는지 인지행동치료의 중요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이 스쳐갔는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 즉, ‘자동적 사고’를 식별하는 방법을 스스로에게 가르쳐야 한다. 고통스럽고 두려운 기분(감정)을 느꼈다면, ‘내 마음에 무엇이 스쳐갔지?’라고 스스로 자문하면, 다음과 같은 자동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 ‘이건 너무 어려워!’,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 ‘이건 나를 힘들게 해.’, ‘만약 잘못되면 어쩌지?’ 이러한 자동적 사고를 관심 있게 살펴보는 것은 왜곡된 사고를 수정하여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된다.

2018-05-14

갑질 교본 사회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당신 젊은 사람이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비행기 못 타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당신도 쓴 맛 좀 보게 해 줄까!” 며칠 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울려퍼진 어느 아주머니의 갑질하는 소리다. 필자는 5월 말에 있을 몽골 해외이동수업 2차 사전답사를 지난 주에 다녀왔다. 비행기 표 발권을 위해 줄을 서 있다가 제대로 갑질하는 소리를 목격했다. 긴 줄을 말없이 기다리던 사람들의 인내심에 불을 지르는 어느 아주머니의 갑질 소리에 필자는 “조용 좀 합시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필자의 소리는 아주머니의 소리에 묻혀버렸다. 소란의 주인공인 아주머니가 서 있는 곳은 대기자 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는 곳과는 달리 거기에는 그 아주머니 이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격앙되었고, 소리의 크기에 비례하여 항공사 직원의 수도 늘어났다. 줄을 서서 자신들의 차례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인상도 점점 일그러졌다. 그 중 몇 사람은 “누구는 소리 칠 줄 몰라 가만히 있나. 미리 준비나 잘 하지”라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촛불을 들지 않은 다수의 국민처럼 줄을 선 모든 사람들이 그만하길 바란다는 뜻을 보냈지만 비행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비명으로 바뀌었고 긴급히 투입된 항공사 직원을 따라 사라졌다. 자리를 떠나면서도 아주머니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직원에 대한 원망을 또 한가득 늘어놓았다. 그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와 너무도 똑같았다.고객이 왕이라는 말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생산한 재화를 소비하는 고객은 기업에게는 왕이다. 무한 경쟁시대에 소비자의 선택은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망한다.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몸부림은 제품과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윈윈(win-win)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 기업의 지나친 욕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마도 지금 모 항공사 사태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갑, 을이라는 말이 참 우습지만 흑백논리의 덫에 빠진 이 나라엔 이 말이 이미 보편화되었다. 필자도 한 때 그랬지만, 사람들은 갑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 그들을 우리는 취준생이라고 하며, 취준생 기간이 긴 사람들을 사회는 실업자라고 한다. 실업자라는 말은 이 시대 청년들은 물론 경제생산 가능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슬프고 아픈 주홍글씨다. 그래서 갑이 되기 위해 그 어떠한 것도 감내하는데, 그것이 때로는 한(恨)이 되기도 한다.물론 그 한의 원인이 갑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 정부와 사람들은 그 한이 마치 갑에 의한 것인 양 생각하고, 갑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물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갑질을 일삼는 밉상들도 있다. 그들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현 정부는 그들의 노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을(乙)을 위한 윤리만을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야말로 ‘군림하는 갑의 모습’이라는 것을 정말 모를까?언론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갑질 교본(敎本) 그 자체다. 물 컵 하나로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난 어느 기업가의 집, 어떻게 해서든 특정 기업을 찍어내려고 하는 것 같은 정부, 대안학교 학생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함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고, 또 대안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도 절대적으로 안다고만 할뿐 절대 움직이지 않는 교육부와 교육청.갑질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짓이 갑질이라는 것을 절대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2018-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