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젊은 사람이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비행기 못 타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당신도 쓴 맛 좀 보게 해 줄까!” 며칠 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울려퍼진 어느 아주머니의 갑질하는 소리다. 필자는 5월 말에 있을 몽골 해외이동수업 2차 사전답사를 지난 주에 다녀왔다. 비행기 표 발권을 위해 줄을 서 있다가 제대로 갑질하는 소리를 목격했다. 긴 줄을 말없이 기다리던 사람들의 인내심에 불을 지르는 어느 아주머니의 갑질 소리에 필자는 “조용 좀 합시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필자의 소리는 아주머니의 소리에 묻혀버렸다.
소란의 주인공인 아주머니가 서 있는 곳은 대기자 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는 곳과는 달리 거기에는 그 아주머니 이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격앙되었고, 소리의 크기에 비례하여 항공사 직원의 수도 늘어났다. 줄을 서서 자신들의 차례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인상도 점점 일그러졌다. 그 중 몇 사람은 “누구는 소리 칠 줄 몰라 가만히 있나. 미리 준비나 잘 하지”라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촛불을 들지 않은 다수의 국민처럼 줄을 선 모든 사람들이 그만하길 바란다는 뜻을 보냈지만 비행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에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비명으로 바뀌었고 긴급히 투입된 항공사 직원을 따라 사라졌다. 자리를 떠나면서도 아주머니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은 생각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직원에 대한 원망을 또 한가득 늘어놓았다. 그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와 너무도 똑같았다.
고객이 왕이라는 말이 있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생산한 재화를 소비하는 고객은 기업에게는 왕이다. 무한 경쟁시대에 소비자의 선택은 기업 생존의 필수조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망한다.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몸부림은 제품과 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윈윈(win-win) 결과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 기업의 지나친 욕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마도 지금 모 항공사 사태가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갑, 을이라는 말이 참 우습지만 흑백논리의 덫에 빠진 이 나라엔 이 말이 이미 보편화되었다. 필자도 한 때 그랬지만, 사람들은 갑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 그들을 우리는 취준생이라고 하며, 취준생 기간이 긴 사람들을 사회는 실업자라고 한다. 실업자라는 말은 이 시대 청년들은 물론 경제생산 가능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슬프고 아픈 주홍글씨다. 그래서 갑이 되기 위해 그 어떠한 것도 감내하는데, 그것이 때로는 한(恨)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 한의 원인이 갑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 정부와 사람들은 그 한이 마치 갑에 의한 것인 양 생각하고, 갑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물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갑질을 일삼는 밉상들도 있다. 그들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현 정부는 그들의 노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을(乙)을 위한 윤리만을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야말로 ‘군림하는 갑의 모습’이라는 것을 정말 모를까?
언론이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갑질 교본(敎本) 그 자체다. 물 컵 하나로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난 어느 기업가의 집, 어떻게 해서든 특정 기업을 찍어내려고 하는 것 같은 정부, 대안학교 학생들이 겪고 있는 불합리함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고, 또 대안학교 학생들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도 절대적으로 안다고만 할뿐 절대 움직이지 않는 교육부와 교육청.
갑질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짓이 갑질이라는 것을 절대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