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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평화의 춤을 추자

▲ 김은주방송작가불과 몇 달 전, “아이고 야야~~~이라다가 전쟁나는 거 아이가? 전쟁 나믄 우야노? 라면이라도 사놔야 되나?” 연일 보도되는 북한 관련 뉴스를 보고, 불안한 엄마는 종종 전화를 걸어 물어보시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엄마, 괜찮다”는 막연한 말 한마디로 안심을 시켜드렸지만, 사실 괜찮다는 말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건 쉽지 않았다. 북한에선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북미 정상이 앞다투어 핵단추가 자신들의 책상 위에 있다며 설전을 벌였던 것이 다섯 달 전이다.전쟁 바로 앞에서 평화가 찾아왔다. 판문점에서 생중계되었던 남북 정상회담은 전 세계에 평화가 무엇인지 새삼 일깨워주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설렘과 감동이 교차했던 시간이었다.분단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보다는 그렇지 않은 세대들이 많다. 그래서 그 전쟁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지 제대로 체감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동안 한반도의 분단은 정치적 이념 대립의 장으로 각축을 벌였다. 국민들은 정치적 이념 대립의 장이 되는 한반도의 분단을 무신경하게 지켜보다 결국은 무관심으로 일관하곤 했다. 왜 통일이 필요한 지에 대한 교육보다는 북한을 적대시하는 이념 대립의 프레임으로만 봤기 때문에 이번 남북 정상회담이 생경한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바로 그날,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TV 생중계를 보던 한 50대 여성분이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저 봐라, 북한에 다 퍼준다. 북한에서 뭐 준다고 하니깐 저렇게 판문점에도 오지, 안 그러면 오겠어?” 라며 목소리 높여 이야기 하는 걸 봤다. 어디 한 명 뿐이겠는가? ‘위장 평화쇼’라며 남북정상회담을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는 정치권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그동안 일부 종편 채널에서는 북한의 정세가 연일 보도되었고, 진행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한반도에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선정적 보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뉴스를 볼 때마다,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뉴스에 주관적 보도 태도가 영 개운찮았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일부 종편 채널의 샤우팅했던 뉴스 보도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역시 시대 흐름에 영민하다.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주로 다루는 방송을 보면서 분단과 위기 상황이 계속 악용되고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누가 위기를 원하고, 누가 평화를 원하는가? 생각해 볼 여지는 충분하지 않은가?포항에서도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신북방 시대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면서 환동해 물류 중심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얼마 전 포항시 공무원과의 생방송 인터뷰에서 북한 4차 핵실험 이후 중단되었던 ‘나진- 하산 프로젝트’를 재가동할 예정이라는 계획과 함께 동해선 철도 연결에 대해 방송한 적이 있다.무엇보다 물동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던 영일만항도 남북 경제 협력이 재개된다면 북방 물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한반도도 휴전을 넘어 종전, 그리고 평화로 가는 채비를 하고 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금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기록되는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언젠가 포항을 지나 울진, 그리고 북한을 넘어 유럽을 향하는 아시안 하이웨이를 타고 대륙을 횡단하는 꿈을 그려본다.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통일 기차를 타고 평양냉면을 먹을 날도 오지 않겠는가? 이제 한반도에 전쟁의 공포는 사라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 휴전 상태의 분단국가가 아닌 평화의 한반도를 물려줘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모두가 손을 잡고 평화의 춤을 함께 추는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라 믿는다. 꼭.

2018-05-08

5월 온도에 가려진 교육 불신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5월 온도를 색으로 나타내면 녹색일 것이다. 연한 초록색! 사람들은 이를 신록(新綠)이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5월의 대표 수식어가 된 말, 신록! 하지만 추상적인 느낌 때문인지 필자는 이 말이 입에 감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단어를 대신할 말을 만들 능력이 필자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을 볼 때마다 필자의 얕은 어휘력에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녹색은 평화, 안전, 중립, 조화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키고, 온화하게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초록을 좋아하는 사람은 협력과 밸런스 감각이 뛰어나며, 노력가가 많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분쟁을 원하지 않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녹색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종합하면, 녹색은 ‘치유(治癒)의 색’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를 5월에 대입하면 초록의 계절인 5월은 ‘치유의 계절’이라는 말이 나온다.지난 주 우리는 휴전선의 녹음(綠陰)을 보았다. 물론 작년에도 그 전에도 휴전선 산야(山野)에는 짙은 녹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 휴전선의 초목들은 유난히 더 싱그러워 보였다. 그 싱그러움에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조금은 치유되었을 것이다. 물론 필자도 언론이 선별해서 무한반복으로 내보내는 휴전선 소식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도보다리를 걷는 두 사람이 신록에 진정으로 물들기를 기원했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초목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모습보다 초목들의 울부짖음이 더 크게 들린 것은 왜일까. 그 소리의 정체는 이념이 만들어낸 전쟁 속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 희생자들의 원혼이 만들어 낸 통한의 절규라는 것을 필자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원혼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하고 걷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필자에겐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정상 회담도 좋았고, 그들이 보여준 여러 가지 제스처도 볼만 했고, 더 나아가 종전(終戰) 이야기는 더 없이 반가웠지만, 최소한 이념의 전쟁 때문에 죽어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묵념(默念) 정도는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11년만의 만남이라는 특별 잔치에 정신이 팔려 전국의 격전지(激戰地)에서 죽어간 군인들과 민간인들의 한 서린 절규를 잊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신록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그 뒤에 감춰진 처절한 피비린내를 잊지 말라는 역설의 빛인지도 모른다.5월의 온도를 나타내는 색이 녹색이라면, 단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감사’이다. 기념일 중 중요하지 않은 기념일은 없다. 그런 기념일이 5월에 특히 많이 몰려 있는 이유는 꽃의 화려함에 도취되어 꽃의 슬픔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앞 세대들의 속 깊은 배려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석가탄신일! 기념일의 이름만 들어도 5월의 무게감을 우리는 알 수 있다.초록과 감사로 대표되는 5월. 그 온도는 분명 36.5도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온도를 유지해 주는 5월! 그런데 계절 온도와 인간 사회 온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불신 때문이며, 대표적인 분야는 정치와 교육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안다.청와대의 5월은 따뜻할지 몰라도, 5월 학교는 고뿔에 걸려 있다. 기어코 2022년 대입제도를 개편하려는 모양이다. 그것을 위한 공청회를 한다는 공문이 왔다. 공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4개의 권역(대전, 광주, 부산, 서울)으로 나누어 평일에 하니 학생, 학부모, 교원이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 나라의 교육은 분명 아직 혹한기에 있다. 그 혹한에 우리 아이들이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우리 교육도 빨리 초록초록 해지길 바랄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치색 짙은 교육정책들은 제발 이제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2018-05-03

벽화유감(壁畵有感)

▲ 류영재포항예총 회장봄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날리던 날, 어느 초등학교 옆을 지나다 벽화작업에 열심인 학생들을 보았다. 긴 막대기 끝에 로울러를 매달아 능숙한 솜씨로 하늘과 구름을 표현하는 사람은 지도교사인 듯하였고, 덩치보다 훨씬 큰 일회용 작업복을 입고 저마다 작은 손에는 페인트 붓을 든 학생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고도 귀여워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필자가 미술교사이던 시절 아이들과 함께 벽화작업을 하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만감이 교차하였다. 골목길 담장에 페인트로 그림 그리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미술중점학교라는 특별한 시스템을 운영하다보니 아이들에게 벽화체험 기회 제공이라는 이유로 몇 점의 벽화를 남기게 되었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주변환경을 아름답게 꾸미자는 것인데,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구심은 지금도 여전하고, 내손으로 남긴 벽화들과 마주칠 때면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다.우리나라에 벽화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십여 년 전이다. 도시마다 계획적인 신도시 개발 바람이 불자 원도심은 쇠락하였고, 필연적으로 뒤따라 온 공동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으며, 벽화는 그 과정의 산물이다. 도시재생사업에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접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시도였으며, 그 중 손쉬운 것이 벽화였던 것이다. 특히 통영 동피랑마을 벽화의 성공에 고무되어 각 도시의 벽은 물론 한적한 시골에까지도 재능기부, 봉사활동의 이름으로 벽화열풍이 불어 닥쳤다. 이듬해쯤 문체부 주관의 공공미술프로젝트에 부산 안창마을 벽화사업이 선정되어 호평을 받자 부산시내 곳곳에는 벽화마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연간 10만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 유명 관광지가 되어버린 감천마을을 비롯하여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로 이름난 흰여울마을, 깡깡이마을의 벽화 등 필자가 다녀온 곳만 해도 여러 곳이며, 제법 알려진 벽화마을만도 스무 곳이 넘으니 놀랄 일이다.인류 역사에서 벽화는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인류 사고의 시원인 구석기시대, 저 유명한 ‘라스코 동굴벽화’와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문자가 없던 시대에 문자를 대신하여 그들의 간절한 기원을 담았으니 선사시대 인간의 사고체계와 행위양식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해주는 매우 소중한 유적인 것이다.우리나라의 벽화 역사도 결코 만만치 않다. 신라인 솔거는 황룡사의 벽에 ‘노송도’를 그려서 새들이 진짜 소나무인줄 알고 앉으려다 부딪혀 떨어지곤 하였다는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아있을 정도로 신라인의 미적 표현력이 뛰어났음을 알려주며, 고구려의 승려화가였던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호류지(法隆寺)에 그렸다는 ‘금당벽화’는 동양 3대 미술품 중 하나로 평가될 만큼 가치가 높게 인정되고 있으니 벽화는 우리 역사에서 훌륭한 예술장르였던 것이다.개별적 삶의 물리적인 경계인 동시에 공공의 시작인 외벽을 그림으로 장식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는 법이니 벽화에 대한 찬반 논란 또한 자못 뜨겁다. 분명한 것은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벽면을 장식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미술의 경우는 그 작품이 곧 ‘장소성’을 획득하게 되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장소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결여되었거나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값싼 페인트로 조악하게 그려진 벽화는 오히려 풍경을 망치기 일쑤다. 형식이나 내용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며 재료의 선택 또한 매우 중요하다. 무분별하게 그려진 벽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흉물로 변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그건 공공미술이 아니라 공해다.

2018-05-01

기초의원 공천제, 이대로 좋은가

▲ 박창원수필가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의 기초의원 공천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다수의 탈락자들이 반발하면서 여기저기서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어떤 선거든 공천이 끝나고 나면 잡음과 반발은 있기 마련이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공천을 이런 식으로 하나 하는 탄식이 나온다. 반발의 이유인즉 불공정한 기준이 적용됐기 때문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여론조사 결과가 다른 후보보다 좋은데도, 정당기여도라는 애매한 잣대를 더 중시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지지율과는 상관없이 공천권을 가진 현역 국회의원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공천했고, 거기에 자신이 희생됐다고 주장한다.아무리 탈락자의 변이라지만, 우리를 걱정스럽게 하는 구석이 들여다보인다. 공천기준을 정당기여도 우선으로 했다면 여론조사는 왜 했을까? ‘구색 맞추기’용? 혹 어차피 자기네들 텃밭이고, 누굴 내세워도 당선될 터이니 이왕이면 충성도가 높은 사람을 공천하겠다는 발상을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8년 전의 일이 떠오른다. 2010년 3월, 지방선거를 두어 달 앞두고 필자가 재직하고 있던 학교에서 면민체육대회가 열렸다. 면민체육대회에는 지역출신 국회의원과 시장, 해당 선거구 출신 시·도의원 두어 명이 참석하는 게 관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날은 포항시의원들이 총출동하다시피 하여 적잖이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국회의원이 행사장에 들어서고, 시의원들이 국회의원과 한 마디라도 얘기를 나누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선거를 앞두고 공천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국회의원이 지역구 행사에 참석한다는데, 감히 나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의 폐단이 낳은 씁쓸한 단면이다.이런 폐단이 일자 2014년 지방선거 후 전국의 기초단체장들이 강원 평창에서 열린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회의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폐지 대선공약에 대한 입법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들은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당 공천 때문에 주민선택권 왜곡, 지방의 중앙정치 예속, 공천에 따른 비리와 잡음 등 역기능이 발생해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며 공천제 폐지에 대한 입법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이들이 나선 것은 여야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약속했던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가 최근 사실상 물 건너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었다. 공천 폐지에 대한 당론 채택을 미루고 있던 당시의 여당인 새누리당에선 은근히 폐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고, 공천 폐지를 이미 당론으로 정한 제1야당인 민주당 역시 내부의 반발 기류가 커지면서 진행 속도를 못 내고 있었다.왜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반대할까? 기초선거 공천을 폐지하면 후보가 난립하는 것은 물론 최소한의 검증 장치마저 사라지고, 이름과 경력만 보고 투표하는 깜깜이 선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눈엔 이런 이유가 구차해 보인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내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다시 말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꼼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지방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 한 사람 국회의원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재와 같은 공천 방식은 그 폐해가 심각하다. 이거야말로 적폐다. 지방의원들이 국회의원에 예속된 지금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선거의 정당공천제에 대해 모두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려면 정당에서 누구나 승복할 수 있는 투명한 공천 시스템을 만들든지…. 그렇지도 않고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람 위주로 공천하는 구태를 이어간다면 그런 정당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2018-04-30

시험 특수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전국이 시험 기간이다. 그래서인지 집 근처 독서실에 자리가 없다고 한다. 아마도 전국 독서실이 만원(滿員)이 아닐까 싶다. 독서실과 그 주변 편의점들이 소위 말하는 시험 특수를 누리고 있다. 물론 필자도 학창시절에 시험 특수에 한 몫 했었다. 그때는 독서실 가는 것이 마치 의무처럼 느껴졌다. 시험 점수를 떠나 독서실을 가야지만 마음이 안정 되었고, 억지 같지만 독서실에 있는 순간만큼은 부모님께 최고의 효도 선물을 드리는 것 같아 어깨가 으쓱했다. 물론 독서실에 있는 시간 전부를 책과 함께 한 것은 아니었다. 그 때 공부한 내용은 솔직히 지금 생각나지도 않는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독서실 매점에서 먹은 컵라면 맛이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때는 분명 지금보다 더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슴에 불을 지필 뭔가가 존재했었다. 필자의 불쏘시개는 부모님과 선생님, 그리고 친구였다. 정말 모든 힘을 다해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의 모습은 필자가 공부를 해야만 하는 주술과도 같은 이유였다. 그리고 고등학교라는 힘든 길을 3년 동안 함께 동행 해 주시며 스승의 참사랑을 깨닫게 해 주신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필자와 관련한 신문 기사들을 스크랩하고 계신다.그런데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는 과연 어떤 이유와 동기가 있을까. 우리 아이보다 내 아이만 생각하는 학부모, 시험 성적으로 직업인이 되어버린 교사,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경쟁자 친구! 어렵게 독서실 자리를 잡아 처진 어깨로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에게 왜 공부를 하는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나간 현관에서 ‘그나마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이 생겼고, 그 직업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특정 대학에 꼭 가야 하는데, 그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내신이 어느 정도까지 필요하고, 내신이 곧 학교 시험이니 힘들지만 할 수밖에 없다’는 딸아이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들리는 듯 했다. 현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필자에게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따지듯이 물었다. “아빠, 시험이 공부야? 공부가 꼭 시험이어야 해? 학교는 시험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근데 아빠는 시험 문제 왜 내?”아이의 말에 필자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 했다. 아이의 말처럼 이 나라에서 공부는 언제부터인가 시험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시험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은 공부는 공부도 아닌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시험에 대한 이런 생각은 학생,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공부가 재미있을 리 없다. 시험 학교에서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해서 웅크린다고 한다. 밤을 밝히며 독서실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 과연 그들이 뛸 수 있는 높이는 어느 정도일까. 또 그들이 뛸 곳은 어디인가? 모든 것을 떠나 아이들은 왜 그렇게 웅크리고 있어야만 할까?교육청에서는 “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평가 방법을 수정하고 있다. 2018년 학업성적관리 지침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교과의 수행평가 반영 비율은 학기말 배점 기준 50% 이상이 되도록 한다. 이 때 수행평가는 과정중심 평가를 원칙으로 하며, 서술형 평가를 학기말 배점기준 20%를 포함한다.”세상에 나쁜 이론은 없다. 문제는 그 이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위의 지침에 나와 있는 내용도 좋은 내용이다. 하지만 형식만 그럴싸할 뿐 실제는 아이들에게 더 극심한 시험 피로를 주고 있다. 아침에 나간 아이는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말할 힘도 없다고 했다. 시험만 끝나면 모든 것이 잊혀 질 잡다한 휘발성 시험 지식을 외우느라 고생한 아이에게 필자는 죄인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시험 특수 기간에 싸구려 시험까지 팔아버릴 수는 없는지!

2018-04-26

화전가 이야기

▲ 이정옥 위덕대 교수·자율전공학부봄꽃이 환하고 눈부시다. 덕분에 겨우내 칙칙하던 산과 들과 길이 화려하다. 그러나 화르륵 피었다가 차례로 후루룩 져버리니 못내 아쉽다. 요즈음은 봄절기가 유난히 짧아 더욱더 그렇다. 아주 오랜 옛날에도 겨울이 풀리자 봄꽃을 기다릴 만큼 애틋했을까. 우리 조상들은 이 계절을 그냥 보내버리지 않았다. 꽃을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알았다. 눈으로 보고, 향기를 맡고, 시를 지어 찬탄했다. 그리고도 모자라 음식으로 만들어서 먹으며 한몸이 되고자 했다. 술을 빚기도 하고 화전을 지져 먹기도 했다. 화전이란 말 그대로 꽃지짐이다. 이맘 때 한창인 진달래꽃을 꺾어 찹쌀가루를 익반죽해 둥글게 빚어 기름을 두른 팬에 살짝 지진 다음 진달래 꽃잎을 얹어 한 번 더 슬쩍 지져 꿀을 둘러 먹던 음식이다. 집에서 먹는 것보단 산이나 들로 나가 그 자리에서 만들어 먹었다. 이런 자리를 화전놀이라고 하는데 전국 어디서나 남녀를 구분해 동네마다 화전놀이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영남에서는 여성들의 화전놀이에서 가사를 짓는 문학적 풍류가 더 보태졌다. 화전놀이를 하면서 지필묵을 준비해 가자고 가서 현장에서 가사를 짓기도 하고 다녀와서 회고하면서 짓는 가사도 있었다. 그때 지은 가사를 화전가라고 하는데 19세기부터는 경북 여성들의 화전놀이에 빠지지 않는 관습이 됐다. 화전가 창작과 유통의 전통이 200년도 넘은 셈이다. 화전가는 일종의 기행문이라 할 만하다. 화전놀이를 준비하는 과정, 모처럼의 외출을 위해 단장하는 모습, 현장에서의 즐거움, 참석자들의 면면을 묘사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여성들만의 끝없는 수다, 해 저물 무렵 하산해 집으로 돌아오는 아쉬움과 내년 기약 등을 시간 순서에 따라 노래한 것들이 일반적인 가사의 내용이다. 집에서 할 수 없었던 시집살이 이야기도 하고, 남자들의 노름과 다를 바 없는 놀이의 즐거움 등이 가사 곳곳에 스며있다. 이런 내용의 가사가 일반적인데, 오랜 역사만큼이나 파격적이고도 흥미로운 화전가도 많다. 봉화의 어떤 동족부락마을에서 화전놀이를 하고 화전가를 지었다. 화전놀이 후 이 화전가를 동네에서 돌려 보고 있던 중 한 남성이 보게 됐다. 화전가의 내용에 남성의 풍류에 다름이 없다는 화전가의 내용이 이 남성에겐 가소로웠던지 일종의 답가를 지었다. '조화전가', 즉 화전가를 조롱한다는 의미의 가사였다. 이 조화전가가 또다시 동네에 돌았다. 이중실의 부인 안동 권씨가 이에 반해 또 다시 답가를 지었다. '반조화전가'였다. 비록 여자됨이 한탄스럽기는 하지만 남자들도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기나 하면서 여자놀음을 조롱할 시간이 있느냐며 꾸짖는 내용의 통쾌한 가사를 지었던 것이다. 이 두 작품이 모두 영조22년(1746년)에 간행된 ‘잡록’이라는 문헌에 전해온다. 같은 문헌에 또 하나의 가사 '상심화전가'가 전하는데 조화전가를 지은 남자가 늙은 뒤에 지은 것으로 예전의 조화전가를 후회하는 내용이 있어 자못 흥미롭다. 화전가의 경우 이런 화답가 형식의 작품이 매우 많다.또 하나 흥미로운 화전가가 있다. 경북대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소백산대관록’이라는 필사본 가사에 전하는 '덴동어미화전가'는 영주 순흥지방의 화전놀이를 소재로 한 노래인데, 덴동어미라는 비극적 여인의 일생을 액자구성으로 만든 서사가사다. 순흥의 한 동네 여성들이 비봉산에 모여 화전놀이를 즐기다가 어떤 청춘과부의 신세한탄을 한다. 이를 들은 덴동어미가 자신의 기구한 팔자를 들려주며 운명대로 살라고 설득하는 내용이다. 화전가의 변형과 파격이 양적 질적으로 괄목상대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덴동어미의 파란만장한 운명은 현대의 여러 작가들의 눈에도 띄어 소설·뮤지컬로도 제작됐다. 이 봄이 다 가기 전 화전놀이를 한 바탕하면 또 많은 화전가들이 창작될 것이라 기대한다.

2018-04-23

정부 교육, 불복종 운동이라도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국민여러분! 이게 나라에서 하는 교육입니까? 정부가 바뀌었다고 이렇게 자기들 멋대로 나라 교육을 흔들어도 되는 겁니까? 대통령의 뜻인지, 장관의 뜻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력의 뜻인지 알 수 없지만 장관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이처럼 쉽게 바뀌는 것이 정녕 원칙이 바로 선 나라의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어린 아이들도 규칙을 정할 때는 지금 정부와 교육부처럼 막무가내로는 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의견 수렴이라는 절차를 두고 최선의 의견이 나올 때까지 의견을 조율합니다. 현 정부와 교육부는 어린아이들보다 훨씬 못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만 옳다고 생각하는 집단 최면에 빠져 귀를 닫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유치원 영어 교육 금지와 같은 교육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론적인 교육 정책들이 나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이번에는 이상한 수능 개편 안, 아니 이송 안이라는 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론적인 근거도 모호하고, 일 할 의지도 보이지 않는 이송(移送)안!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정책인 입시 정책의 결정을 ‘국가교육회의’가 해달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교육부는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오랫동안 입시 지도를 해온 저이지만 교육부에서 발표한 개편안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수시/정시 통합 실시(1안), 현행 입시제도 유지(2안), 2022 수능 평가방법 3가지 제시(3안 : 전 과목 9등급 절대평가 전환, 현행 상대 평가 유지, 수능 원점수제 도입), 과목개편안 3가지 제시(4안)” 이것은 개편안이라고 하기 보다는 어느 객관식 문제의 선지(選支)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 선지의 문제는 분명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다음 중 국민을 가장 혼란에 빠뜨릴 입시 정책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몇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아무리 생각해도 이 나라 교육에는 컨트롤 타워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사고, 국제고, 외고 등을 억지로 폐지하자고 할 때부터 정부와 교육부 수장의 교육 철학을 철저히 검증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 교육은 선장을 잃고 말았습니다. 선장 없는 이 나라 교육은 태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교육은 곧 좌초(坐礁)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아이들과 교육, 나아가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교육 불복종 운동이라도 펼쳐야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한 나라의 희망을 말할 때 최우선적으로 삼는 척도가 교육입니다. 그럼 이 나라의 희망 지수는 어느 정도일까요? 아무리 촛불을 든 자들이라 할지라도 지금 교육부의 행태를 제대로 본다면 결코 긍정적인 말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현 교육부의 모습을 보면 업적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 나라 정치 구조상 장관의 임기가 길어야 2년도 안 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백번 이해해서 자리에 있을 때 뭔가를 터트려야지만 자신의 정치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기에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고 칩시다. 그래도 그 대상이 학생이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정치 장관들의 볼모가 된지 오래입니다.정치 장관들! 그들이야 말로 이 사회를 망치는 적폐들입니다. 무책임한 정치 장관들로부터 우리 학생들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미래가 삽니다. 대입 3년 예고제로는 안 됩니다. 최소한 학생이 정규 교육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신과 관련된 대입 정책이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복종 운동 대신 제안합니다. 대입 12년 예고제를 법제화하고 이를 절대 손대지 못하도록 헌법으로 명시할 것을!국민 여러분, 정치 장관들로부터 우리 교육을 지켜주십시오.

2018-04-19

왜 학교는 불행한가?

▲ 김현욱시인거창고 교장을 지낸 전성은 선생의 책 ‘왜 학교는 불행한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학교는 국가 필요에 의한 인재양성소일 뿐 인간을 더 인간답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은 아니다.”로 요약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학교는 ‘인간적인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지혜로운 인간을 어리석은 인간으로 만드는 곳’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대 교육혁신위원장이기도 했던 전성은 선생에게 학교는 “우리 입시 제도는 경쟁이다. 네가 들어가면 내가 못 들어간다. 경쟁을 수단으로 국민을 통제하던 고대국가와 식민지국가에서 하던 정책을 그대로 따라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인간적인 제도다. 결국 아이들은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 친구와의 놀이도 반납하고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에만 매달리게”되는 끔찍한 지옥이자 인간완제품을 조립하여 사회에 제공하는 무시무시한 공장인 셈이다.그런 그가 2008년에 추진한 대입안 중에 하나가 바로 ‘수능 등급제’이다. 등급으로 간격을 넓게 매겨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덜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덜어주려던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로또 수능’이라는 혹평과 비판에 시달렸다. 결국 이명박 정부 들어 백분위와 표준점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수능 등급제’는 1년 만에 폐지되었다.비단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시장경제원리를 교육정책에 도입하면서 학교는 점점 더 황폐해지고 있다. 중·고등학생 10명 중 6명은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을 생각해 본 것으로 드러났고 2010년에 학업을 중단한 전국의 학생 수는 무려 5만276명에 이른다. 지난해 연간 사교육비는 20조9천억에 육박한다. 통계만으로는 ‘학교는 죽었다’라고 선고해야할 지 모른다. 다행히 EBS 교육대기획 ‘학교란 무엇인가'를 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의 학교는 숨 쉬고 꿈꾸고 성장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무엇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것만으로도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프로그램은 값지다.1, 2부는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접근한다. 매일 152명의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현실을 되짚어보고 왜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가와 우리가 정말 원하는 학교를 만들어 갈 방법에 대한 고민이 오롯이 녹아 있다. 1, 2부를 보고 나면 ‘학교는 공부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는 걸, ‘사람은 사랑과 믿음’으로 자란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3부는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이라는 주제로 배움 공동체 ‘이우학교’를 조명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2년, 내 생애 가장 따뜻하고 강렬했던 나날들!”이라는 어느 졸업생의 글 한 토막으로 ‘이우학교’를 말할 수도 있겠다. 4부는 ‘세계 최고의 고등학교’인데 한국의 민족사관고,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고, 인도의 마요 칼리지를 소개한다. 이 세 고등학교의 공통점은 강력한 ‘내적 동기’와 ‘자기 주도성’을 부여한다는 것이다.‘왜 공부를 하는가?’라는 물음에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할 수 있다면 그 학생은 이미 차원이 다른 곳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수십 개가 넘는 동아리가 활발하게 운영되는 민족사관고, 매일 아침 OR(작문노트)을 제출하는 토머스 제퍼슨고, 토론과 함께 대중 앞에서 연설 훈련을 하는 마요 칼리지의 모습 등도 매우 인상적이다. 5부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6부 ‘칭찬의 역효과’, 7부 ‘책읽기, 생각을 열다’, 8부 ‘0.1%의 비밀’, 9부 ‘사교육 보고서’, 10부 ‘노는 아이들이 기적, 서머힐 학교’까지 무엇 하나 놓칠 게 없다. 학교와 학생이 불행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18-04-17

사피엔스의 현재, 어떠신지?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과학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얼마전 VR-홀로그램으로 그리운 할아버지를 만난 장애소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영국 서리주(州)에 사는 11살 소년 해리슨 스미스는 선천적 근육병을 앓고 있는 소년으로, 휠체어에 앉아서 생활하다보니 또래들처럼 마음껏 뛰노는 것도 소원이었지만 또 하나의 큰 소원은 자신이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픈 해리슨에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컨디션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먼 길을 자주 여행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해리슨의 할아버지 앤드류(67)도 직업상 1년 중 절반은 뉴질랜드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손자를 쉽게 만날 수 있는 사정은 아니었다.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가상현실(VR) 헤드셋을 머리에 쓰면 바로 눈앞에 서로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개발한 ‘홀로렌즈’(Hololens)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결합한 혼합현실을 구현하는 기계 덕분이란다.이들의 만남은 영화에서나 볼 법하고, 미래 어느 세계에선가 있을 법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리얼한 현실이다.우리의 현실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과학기술이 깊숙이 들어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미래를 이야기하며, 다가올 세계일 것이라며, 변화에 대한 현실 담론을 늦추고 있다. 그 속내에는 세계의 변화를 유보하고 싶은 무의식이 있는 것은 아닐까?‘사피엔스의 미러는 책 이름이기에 앞서 2015년 멍크 디베이트의 주제였다. 멍크 디베이트는 캐나다 금광 재벌 피터 멍크가 세운 오리아 재단이 2008년부터 열어온 지적 경연이다.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거와 매트 리들 리가 한 짝을 이루어서 벌인 사피엔스의 미래는 사피엔스의 현재이기도 하다.스티븐 핑거 교수는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이유를 10가지로 들고 있다. 평균수명, 보건, 절대빈곤, 평화, 안전, 자유, 지식, 인권, 성평등, 지능 등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같은 편이었던 리들리도 수치상의 증거를 예로 들면서 인류의 진보는 분명히 있었고, 최빈곤층의 삶이 개선되었다고 했다.반대편인 알랭드 보통은 인간정신의 복잡성에 유의하면서 철학과 예술, 그 밖의 다른 인문학의 겸허한 성찰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면서 인류의 진보를 반대했다. 알랭드 보통과 같은 편인 말콤 글래드웰도 과거에 좋아졌기 때문에 미래에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고의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인류의 실존적 위협은 늘 그대로라고 반박하고 있다. 인류의 진보에 대한 긍정 내지는 부정은 너무 안일한 진단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당장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 앞에서 눈부셔하고 있는 중이고, 이것들이 만들어낼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홀로렌즈를 통해서 만난 할아버지와 해리슨 소년의 행복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현재의 사피엔스는 이들의 행복감 이면에 있을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의 비용이 있어야 홀로렌즈를 살 수 있는지 또는 얼마의 비용이 있어야 홀로렌즈를 이용할 수 있는지 말이다.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지금, 우리가 저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나 있는지,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데 고비용이 필요하다면 대체 누가 이용할 수 있는 건지, 도무지 머리가 복잡해지기만 하다. 그렇다면 사피엔스의 현재는?

2018-04-17

다시 세월호

▲ 김은주 방송작가4년 전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침몰할 때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뉴스에서 속보로 방송되었던 세월호의 침몰 과정을 생중계로 보면서 혹시나 아이들을 더 구조할 수 있지 않을까? 가슴 졸이며 지켜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보면서 ‘그럼 그렇지, 다 구조됐구나!’ 라는 마음도 잠시, 방송사들은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내고도 사과멘트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세월호 침몰 과정을 생중계했었다.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하늘에선 헬기가 날고, 세월호 주변에 그렇게 많은 배들이 있었는데, 세월호는 그냥 천천히, 그리고 누군가는 구조를 해주겠지 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믿음도 그렇게 바닷속으로 서서히 침몰해가고 말았다.지금까지 우리는 후진적인 사고를 자주 경험하면서 살았다. 백화점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상상을 누가 하고 살겠는가? 그런데 믿고 싶진 않지만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백화점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보다는 그중에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자신의 오줌을 받아먹으면 서 살아 돌아온 사람에게 언론의 관심은 집중됐다.방송을 보는 우리는 백화점이 붕괴된 구조적 문제보다는 살아 돌아온 그녀에게로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에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등 후진국형 사고는 성장하는 과정 동안 계속 이어졌다.세월호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의 관심은 ‘왜 사고가 났고, 왜 구조를 못했는지, 왜 재난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은 무엇인 지’를 밝혀야만 했었다. 하지만 세월호의 프레임은 첫째 자신만 살겠다고 탈출하는 선장의 모습만 되풀이 해 방송 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을 선장과 선원들에게 집중시켰고, 둘째, 구원파와 유병언이라는 이단과 개인의 문제로 대중들의 관심을 전환시키고 말았다. 물론 저들의 책임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세월호의 프레임을 선장과 구원파, 유병언으로 집중시키면서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국가권력이나 대통령을 모든 책임으로부터 타자화하고 주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결국 가장 책임을 지고 고개 숙여야할 국가 권력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다는 것이다.세월호는 3년이 지나 뭍으로 올라왔고, 온갖 추측이 무성했던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은 4년 만에 밝혀졌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평생을 애국하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 같았고, 살 것만 같다고 믿었던 대통령은 어린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울며 살려달라고 외쳤던 그 시간에 자신의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것 역시 삼풍백화점 붕괴처럼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이야기와 닮아있다. 이 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을까?며칠 전 세월호 유가족을 취재한 작가님을 만났었다. 사랑하는 딸이 죽었지만, 선생님이었던 딸이 아이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학부모들을 찾아가 사과를 했었다고 한다. 우는 것도 죄스러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4년을 울다 보니 성대가 상해 지금은 인공 성대를 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나도 울었다. 그리고 페이스북 친구 중에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글을 자주 보게 된다. 딸이 보고 싶다 글을 썼다가, 어느 날은 울분에 욕을 하셨다가, 별이 된 딸의 이름을 몇 번이나 적으시는 걸 보면 아직도 세월호의 아픔은 그분들에겐 현재 진행형이다.세월호 참사 4주기,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해결될 수 있길 바래본다. 별이 된 아이들과 희생자들, 지금도 가슴에 아이들과 가족을 품고 사는 유가족들의 눈물을 함께 나누고 닦아 줄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로 거듭나길 바래본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와 지지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2018-04-16

역사 계기교육, 6·25 진상규명과 사과까지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2·28, 4·3, 4·19, 5·18, 6·10, 6·25”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념과 관련된 국가 기념일인 동시에 현 대통령이 언론 앞에서 눈물을 흘린, 또 흘릴 날들이다. 최근에 대통령이 눈물을 흘린 기념일은 4·3이었다. 4·3 기념행사 후 언론은 다음과 같은 기사로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국가폭력 사과, 완전한 해결·배상 약속” 이와 비슷한 기사가 나올 다음 행사는 5·18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 대통령의 이념과 일치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의 내용을 빌리면 인류는 이분법으로 분열하는 아메바의 후손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늘 이분법 속에 갇혀 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념이다. 이념은 다음과 같이 분열한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사회주의, 보수와 진보! 이념은 청개구리를 닮았다. 그래서 항상 서로의 반대방향을 향해 튄다. 이념은 맞고 틀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념이 진영(陣營)이 되는 순간 정오(正誤)가 된다. 특히 정치에서는 이런 현상이 심하다.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들은 그 자리에 올라가기 전에는 이념을 아우르는 통 큰 정치, 즉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닌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장실 들어가기 전의 마음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자리에 올랐을 때는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는 지금 똑똑히 보고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한결같다면 우리나라는 이념으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고 통 크게 발전할 것이다.많은 말들 중에 이 나라 정치와 절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말로는 변화, 혁신, 창조, 발전 등과 같은 말이다. 이 말들은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이 말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삶을 산다. 그리고 위에 열거한 말들 이 외에 꼭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생(相生)”이다.한 때 상생이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일 때가 있었다. 그 길이 이 나라가 살 길이라고 촛불만 있는 광장을 벗어나 전국에서 노래를 부르던 때가 있었다. 그것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호미곶에 상생의 손을 세웠다. 그 때는 그나마 우리 사회에 정치 어른들이 있었다. 그래서 국가적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들이 나라의 중심을 잡아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씻고 봐도 정치 어른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나라가 풍전등화처럼 요동치고 있다. 정치 어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통 큰 정치였다. 비록 추구하는 바는 달랐으나 그들은 절대 그것을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거국적인 차원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접점들이 모여 지금 이 나라가 이만큼까지라도 왔다.하지만 지금 이 나라엔 나라의 중심을 잡아줄 정치 어른이 없다. 정치 어른 대신 사리사욕(私利私慾)을 넘어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눈이 먼 유치찬란한 정치 패거리밖에 없다. 그러니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말한다, 틀렸으니까 바로잡아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틀린 것들은 무조건 폐기하고 새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그것이 더 큰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인다. 지금 이 나라 교육부가 대표적이다. 차관 전화 한 통화이면 대학 입식 정책이 요동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난 주 언론들은 평양공연을 추켜세우는데 열을 올렸다. 필자는 그 장면을 보고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느라 애를 먹었다. 이 나라 정부사람들이 국가 폭력의 원흉(元兇)이라고 할 수 있는 북쪽의 젊은 지도자 앞에서 다소곳하게 두 손을 모으고 그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란 참 가관이었다. 그래서 말한다, 쇼도 좋지만 역사 계기교육 차원에서 내친김에 민족 아픔의 시발점인 6·25에 대한 진상조사와 사과까지 받아 낼 것을.

2018-04-12

이제 낡은 신념은 버릴 때

▲ 김이랑 수필가분단 70년, 작년까지만 해도 극단으로 대립하던 남북의 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내내 꽉 막혔던 물꼬가 평창 동계올림픽으로 트이면서 이 달 말에는 판문점에서 남북정상회담도 열린다. 그 흐름을 타려고 주변 4강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아 평화정착으로 가는 길은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 이쯤이면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했던 신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편향된 이념에 사로잡혀 있지나 않은가. 내 생각 내 방식만 옳다는 스스로 내린 규정의 편견에 빠져 있지나 않은가. 강요 받든, 세뇌되든, 스스로 극단주의로 빠지든, 우리는 분단과 냉전시대가 요구하는 신념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2017년 개봉된 영화 ‘핵소고지’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의 본토를 점령하기 위해서 미군은 병참기지로 삼을 오키나와 섬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대규모 물자와 병력을 투입해 상륙하는데, 영화는 적을 죽여야 내가 사는 극단적인 전투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할리우드 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도 스토리로 보면 미국적 영웅주의가 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주제에는 편견이 어떠한 오류를 범하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서로 상반되는 신념이 어떻게 하나의 가치에 통합되는지 보여주는데,㉮ 참전 = 총을 들다, 죽이러 가다 → 신념1㉯ 참전 = 총을 안 들다, 살리러 가다 → 신념2㉮와 ㉯는 같지만 다르다. ㉮는 전투병이고 ㉯는 위생병이다.이 영화를 관통하는 명사는 ‘신념’이라는 추상명사다. 신념1은 총을 든다. 그러나 신념2는 총을 들기를 거부한다. 다름 아닌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기 때문이다. 신념2는 신념1에게 집단으로 ‘왕따’를 당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위생병으로 참전한다. 둘 다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려면 몸을 움직여야 한다.신념1 : 기다. 숨다. 쏘다. 찌르다. 엎드리다. 수류탄을 던지다….신념2 : 기다. 보다. 다가가다. 살피다. 주사를 놓다. 붕대를 감다. 후송하다….이처럼 두 신념은 서로 다른 동사로 전투를 치른다.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부상자가 속출한다. 의무병인 신념2는 포화를 뚫고 정신없이 아군을 돌본다. 그러나 일본군의 기습에 밀려 아군이 철수한다.신념2도 후퇴하지만 부상을 당한 채 구조를 기다리는 전우를 두고 차마 전장을 떠날 수 없다. 살리는 것이 위생병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무기도 없이 적진에 혼자 남은 신념2는 밤새 75명의 부상병을 구한다. 총을 들고 적을 죽이지 않아도 애국을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영화는 한 사람의 신념과 다수신념이 충돌하면서 나의 신념만이 옳다는 편견을 깨는 과정을 그렸다. 다른 신념이 충돌하면 하나는 옳고 하나는 틀렸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방법만 다를 뿐 둘 다 ‘애국’이라는 사실이다.신념2는 실제 인물이다. ‘데스몬드 T. 도스’인데, 자신의 영웅담을 영화화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을 뜨기 얼마 전 허락했고 그의 ‘신념기’는 2016년 영화로 은막에 재현되었다.지금 우리사회도 신념이 대립하고 있다. 남과 북, 동과 서, 보수와 진보 등인데, 특히 남과 북의 이념 대립은 분단된 역사만큼이나 골이 깊다. 분단을 빌미로 이념까지 갈라놓은 위정자들은 이를 철저히 권력유지에 이용했다. 언론 또한 분단체제의 나팔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북한은 무조건 나쁘다는 프레임에 갇혀있었다. 대립을 조장해야 이익을 보는 세력이 쳐놓은 프레임이다.역사의 대 전환기, 이제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이념을 벗어나야 할 때다. 낡은 이념의 틀에 갇힌 채로는 다가오는 더 큰 물결에 유영할 수 없다.

2018-04-11

“학이불염(學而不厭)”

▲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 내 연구실 벽에는 ‘학이불염(學而不厭)’이라는 네 글자가 걸려 있다. 글귀가 좋아서 걸어둔 것인데, 혹자는 ‘회인불권(誨人不倦)’이라는 구절은 왜 빠져 있냐고 탓하기도 한다. 교육자라면 이제 ‘학(學)’이라는 배움(연구)도 중요하지만 ‘교(敎)’라는 가르침(교육)도 중요하지 않느냐고 하면서. 회(誨)는 ‘가르칠 회’자로서 ‘교(敎)’와 같은 뜻인 까닭이다. 공자는 일찍이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서 ‘학이불염 회인불권(學而不厭 誨人不倦)’, 즉 ‘배우는 데 염증을 느끼지 말고, 가르치는 데 권태를 부리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맹자 또한 이의 중요성을 깨달아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으로 요약하기도 했다. 이처럼 학(學)과 교(敎)는 동양의 유명한 두 성인이 이야기할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었다. 이 중, 학(學)은 참으로 그 뜻이 오묘하다. ‘학(學)’은 어린이가 책상에서 두 손으로 무언가를 학습하는 모양을 상형화한 글자이다. 그래서인지 얼핏 교육 현장, 그것도 배우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듯싶다. 하지만 배움이란 비단 학교에서 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실현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학(學)’은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말이다.그렇다면 우리는 왜 배우는 것일까? 바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이다. 율곡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의 서문에서, ‘사람이 세상에 나서 배우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다운 삶은,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권력을 휘두르며 사는 삶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삶이 사람다운 삶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옛 성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고 배우려는 자세가 일상화 된 삶, 그것이 바로 사람다운 삶이라고 생각하였다. 배우는 삶은 달리 말해, ‘앎’을 추구하는 삶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안다는 것(知)은 곧 힘을 축적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학인(學人)은 힘이 있는 능인(能人)이요, 능인(能人)은 사회에 꼭 필요한 용인(用人)이 되지만, 배우지 않는 사람은 무능인(無能人)이요, 무능인은 사회가 필요치 않는 無用之 “物”이 되기 쉽다.그런데 배우는 것도 ‘잘’ 배워야 할 일이다. 어디서 배우긴 배웠으되, 간사함(간지·奸智), 교활함(교지·狡智), 사특함(사지·邪知)만 배운 탓에,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잡아떼면 그만인 윤리 의식 없는 정치인들, 상도(商道)를 상실한 경제인들, 당연한 듯 성상납을 요구하는 문화계 인사들, 취업알선이나 논문 통과 등을 미끼로 행패를 부리는 교육계 인사들 등은 우리 사회의 낯부끄러운 얼굴들이자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들이다. 재산을 나눠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들이나 게임에 빠져 자식을 굶겨도 죄책감 없는 부모 등도 모두 제대로 배우지 못한 無用之 “物”들이다.사람은 제대로 배워야 한다. 제대로 배워야만 총명한 지(明智), 이치를 꿰뚫어보는 슬기로운 지(叡智), 영민하고 탁월한 지(英智)가 가득한 제대로 된 지(知)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세계로의 발돋움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자기 수양(나를 제대로 알기(知己), 나를 갈고 닦기(修己), 나를 완성하기(成己))를 부단히 하였다. 이를 잘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제대로 된 배움을 행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추후 사도(師道)를 갖춘 진정한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 그래서 학(學)은 교(敎)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자 토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라면, 교(敎)를 생각하기에 앞서 과연 나의 학(學)이 어떠한가를 먼저 깊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내 연구실의 한 벽면에, ‘학이불염(學而不厭)’을 걸어 놓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2018-04-10

개념전도의 언어들

▲ 박창원 수필가지금은 정보의 홍수 시대다. 매일 새로운 정보가 우리 앞에 있다. 그 정보는 주로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생산, 유포된다. 자고나면 새로운 용어가 생기고, 신조어가 탄생하며, 거기서 흘러나온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한다.그로 인한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그 중에 하나가 잘못 쓰이는 언어다. 방송에서 출연자가 잘못 쓴 말을 대중들이 따라 하다 보니 틀린 말이 바른말인 양 아무런 거부감 없이 유통된다.요즘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틀리다’로 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방송의 영향이다. “제 생각은 좀 틀린데요….” ‘틀리다’라는 말은 ‘맞지 않고 어긋나다’란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쓰면 안 된다.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가 맞다. 아예 뜻을 정반대로 쓰는 ‘개념전도(槪念顚倒)’의 예도 많다.광고에 많이 나오는 ‘피로회복’이 개념전도의 대표적인 사례다. 1960년대 한 제약회사에서 피로를 풀어준다는 약을 만들어 ‘피로회복제’라는 슬로건으로 광고를 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뇌리 속에 박혀버린 용어다. 하지만 ‘피로회복’이란 용어는 잘못된 말이다. ‘경제회복’이라 하면 경제를 회복한다는 뜻이고, ‘건강회복’이라 하면 건강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국권회복’이라 하면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이요, ‘컨디션 회복’이라 하면 몸 상태를 정상으로 돌린다는 뜻이다. 그러니 ‘피로회복’이라 하면 피로를 회복한다는, 다시 말해 피로한 상태로 돌린다는 뜻이다. 피곤한 상태로 돌리기 위해 약 약을 먹으라니, 어불성설이 따로 없다.피로회복은 피로한 상태로부터 회복된다는 뜻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로부터 회복된다는 뜻으로 쓰는 용어가 ‘스트레스 회복’일까? 그렇지 않다. 스트레스는 풀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스트레스 해소’라 한다. 피로도 회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해소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니 ‘피로해소’가 맞다.‘안전불감증’이란 말도 그렇다. 안전불감증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안전에 감각이 없는 증상’이란 뜻이다. 안전에 감각이 없다니? 안전한데, 다시 말해 편안한테 굳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안전한 상태에서 걱정을 안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안전하지 못한, 위험한 상태이다. 위험요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심하지 않거나 그것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문제다. 그러니 ‘불안전불감증’이라 하든지, 좀더 간결하게 표현한 ‘위험불감증’이라 해야 맞다. 굳이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면 간결하고 발음하기 좋은 위험불감증이 좋다.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은 아마 안전을 신경 써야 할 상황인데 그걸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했고, 매스컴을 통해 확산되면서 지금처럼 보편화되었을 것이다.‘우연찮게’라는 말도 현대인들이 정반대의 뜻으로 쓸 때가 많다. 누가 “오늘 우연찮게 그 사람을 만났어.”라고 한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연찮다’는 ‘우연하지 않다’란 뜻이다. 바꿔 말하면 필연(必然)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 그 사람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의 문장을 정반대의 뜻인 “오늘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났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또한 개념전도다.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같은 매체가 대중들의 일상사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방송 진행자나 출연자, 기사 작성자가 잘못 쓴 말은 아무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대중들은 그게 바른 말인 양 따라 하게 된다. ‘틀리다’나 ‘우연찮게’는 방송에서 자막을 통해 ‘다르다’나 ‘우연히’로 정정해서 내보내는 경우가 있지만, ‘피로회복’이나 ‘안전불감증’은 정정될 희망이 없어 보인다. 오랜 기간 국민의 뇌리 속에 굳어버린 용어라 어쩔 수 없다고 여겨서인지 우리 모두의 ‘오류불감증’ 때문인지….가치 혼란의 시대에 이래저래 언어마저 혼란스럽다.

2018-04-08

교육 변곡점? 교육감 선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아빠, 이 사람 누구야?” “교육감 후보!” “교육감이 뭐야?” 필자는 그 다음 말을 잇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선거 홍보물을 교과서 읽듯 읽었다. 그 동안 필자는 교육감이 뭐하는 사람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그 생각을 내팽개쳐버렸다. 왜냐하면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교육계가 이념 투쟁의 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보수 교육감, 진보 교육감! 어떻게 교육감에게 보수, 진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까. 교육감 선거부터 이념의 버그에 사로잡혀 있으니 할 말 다했다. 하기야 나라 전체가 이념의 수렁에 빠져 있는데 교육계라고 오죽할까마는 최소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만큼은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건만, 이미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이 나라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필자는 잘 안다. 가장 순수해야하고, 절대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교육이 어쩌다 이념의 밥이 되었을까. 그건 정치와 선거, 그리고 선거판을 이념의 전쟁터로 몰고 가는 선거꾼들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에서 선거꾼들은 바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교육감 추천 단체들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각 진영의 전체 대표라도 되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한다. 또 그들로부터 추대를 받은 예비 후보들 또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신이 진영 전체 대표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교육감이라고 하면 보수 교육감 아니면 진보 교육감부터 떠올리게 되었다.“이 선생은 어느 교육감이고? 보수 교육감이가, 진보 교육감이가?”필자는 어느 모임에 갔다가 이런 낯 뜨거운 질문을 받았다. 말문이 막혀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필자를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질문이 날라 왔다. “교육감도 선거를 하나?”그 말에 더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똑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이 선생, 진짜 교육감도 선거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처음 아는 사실이라며 신기하다는 듯 필자를 보았다. 그러다 처음에 질문을 한 지인이 다시 물었다. “교육감 선거가 있다 치고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합니까? 다른 선거야 당 아니면 그나마 아는 인물을 찍으면 되지만 교육감 선거는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할 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리고 농담으로 말을 마쳤다. “우리는 이 선생이 찍으라고 하는 사람 찍을 테니까 정보 좀 줘! 그러지 말고 이 선생이 한번 나가봐. 내가 힘껏 운동 해줄게”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바로 자치단체장 선거 이야기로 넘어갔다.나라의 백년이 걸린 교육계의 수장을 뽑는 교육감 선거가 술자리의 안주거리도 안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3시간이 넘는 선거 이야기 중에 교육감 선거는 5분도 안 되었다. 모임 마무리 부분에 그래도 필자의 답이 궁금했던지, 아니면 교육계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 때문인지 처음에 물었던 지인이 마지막 건배에 앞서 다시 물었다. “그래 교육감은 누구를 찍으면 되노?” “보수니, 진보니 색깔에 물든 사람만 빼면 됩니다. 그리고 대안교육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을 택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대신 답을 했다. “여러분 이 나라 교육을 위해 건배합시다”“교육이 세계를 바꾸는 수단이다”라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교육의 중요함을 안다. 그런 교육이 죽었다. 죽은 교육을 살려보겠다고 현 정부에서는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오히려 진영논리로 더 죽이고 있다. 이미 이 나라의 교육은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번 교육감 선거야 말로 교육 회생의 마지막 변곡점이다. 진영 논리로부터 우리 교육을 지킬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2018-04-05

포항과 호랑이

▲ 이순영수필가 얼마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 특별전이 열렸다. 동아시아에서 호랑이는 용이나 봉황과 함께 경외시 되어 온 동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신화·전설·민담·민화 등에 호랑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찰에서는 호랑이를 신격화하여 산신각을 짓고 그 안에 산신화를 그려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호랑이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사인검(四寅劍:寅年·寅月·寅日,寅時에 제작한 검)을 제작하여 왕실의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또한 민화는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표현되어 친근하게 느껴진다. 일상생활에는 물론이거니와 무덤에도 호랑이 문양을 활용할 만큼 우리민족의 의식세계에 잠재되어 있었던 호랑이를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호랑이가 서식하기 적합한 환경이었던지라 고장마다 호랑이 이야기가 적지 않게 전해온다. 지난해 울산에서 `호랑이 생태원 설립추진워크숍`이 있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범을 바탕삼아 추진위원이 구성되었으며 호랑이 특구로 지정하여 범 보존 기관이나 테마파크 등을 조성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백두대간에 호랑이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뿐만 아니라 상주시는 곶감을 홍보하면서 옛날이야기 `곶감과 호랑이`를 활용하여 `꼬까미와 호`라는 캐릭터를 제작하였다.88올림픽이 열릴 때 `호돌이`와 2018 동계올림픽이 개최될 때는 `수호랑`으로 등장하여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지구촌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호랑이를 국가 상징동물로 지정한 나라는 없다고 한다.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을 `호랑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포항에 국보로 지정된 비석 2점이 있다. 신라시대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비석으로 밝혀진 중성리신라비는 경주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있으며, 냉수리신라비는 포항시 북구 신광면사무소 마당 한 귀퉁이에 노출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나마 비는 피할 수 있는 환경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볼 때마다 불안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울진군에는 포항에 있는 비석보다 더 늦은 시기에 제작된 신라비가 발견되었지만 그 비석을 근간으로 `봉평신라비 전시관`을 개관했다. 국내 최대 비석박물관이라 할 만한 규모이다. 포항은 가치 있는 것이 있어도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하고 애가 탄다. 필자만의 생각일까. 잘 활용을 하면 더욱 더 품격 있는 도시가 될 터인데….조선 중엽 남사고 선생은 우리나라의 형상이 마치 연해주를 향해서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이라고 했다. 호랑이의 코는 백두산이요, 꼬리는 오늘날의 호미곶에 해당되며 천하의 명당이라고 전한다. 이곳에서 해마다 새해 첫날 `한민족 해맞이축전`을 개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포항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호랑이가 보인다. 최근 포항의 지형을 따라 그려진 호랑이 캐릭터 `호미니`가 저작권 등록이 되었다.호랑이의 머리와 귀는 북구지역, 목은 남구와 북구의 경계지역이며, 가슴부터 앞다리까지는 연일과 대송면일대이다. 등에서 꼬리까지는 영일만이 형성된 동해안 해안둘레길에 해당되며, 꼬리에서 뒷다리까지는 호미곶과 장기면이다. 또한 앞발은 오천, 뒷발은 장기면이다.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앉아서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린 모습이 영락없는 호랑이다. 포항지형이 곧 온전한 호랑이 그 자체인 셈이다. 포항은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의 호랑이 꼬리일 뿐만 아니라 `호미니`의 꼬리이기도 하다.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오래 전부터 살아온 호랑이. 포항 땅에 숨어있던 호랑이가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나타났다. 근엄하면서도 용맹한, 때로는 익살스러운 호랑이를 포항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로 활용하면 어떨까. 포항 땅이 바로 호랑이이기 때문이다.

2018-04-03

경단녀 재취업, 성 평등 기업문화 확산과 함께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경력단절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에 대한 원인과 대책에 관해 상당 부분 많은 논의가 이뤄져 왔다. 개인 및 가구 특성과 제도적 지원을 중심으로 여성의 재취업을 분석했고, 정부의 지원정책 역시 여성의 경력단절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두고 진행되어 왔다.하지만 여전히 출산과 양육을 부담하는 연령의 여성에게 재취업 효과는 미비하다.경력단절여성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파악하고 그에 따른 적절한 정책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때문에 경력단절 원인에 관해 살펴보면, 경력개발에서 손해를 가져오는 경력단절을 여성들이 감수하는 주요 이유는 임신과 출산이다.또한 하향 취업은 임신·출산 등의 경력단절에 의해 일어나는 가장 일반적인 결과이다.경력단절 후 다시 재취업하는 기간은 20대 여성들의 경우 출산 후 경력단절이 있어도 빠르게 재취업(1.3년)하는 반면, 30대(4.3년) 및 40대 이상(7.7년)은 경력단절 후 복귀시점이 늦어져 장기간 노동시장에 복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그리고 경력단절시의 일자리 대부분이 민간, 개인 사업체였다면 경력단절 이후 첫 일자리에서는 정부·비영리단체 등 공공부문 일자리로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이 일어난 여성들은 노동시장에 재진입할 때 자신이 축적해온 인적자본이 저평가되고, 이에 따라 고용상태 및 임금 등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도 높다.다시 말해, 재취업시 경력단절에 따른 일자리 변화와 임금 손실이 발생하며, 사무직 취업 비율은 줄고, 영세사업장(1~4인) 취업비율이 늘어나는 등 일자리의 변화가 발생한다.취업 여성의 경력단절 경험 여부에 따른 임금 격차는 월평균 54.8만원, 경력단절 전후 임금 차이는 월평균 22.1만원으로 나타났다(여성가족부, 2014).이처럼 여성의 경력단절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떠한 논의가 필요한가?첫째, 일·가정 양립제도 운영실태를 집중 점검, 육아휴직시 대체인력 활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해 대체인력 활용 인프라 구축 및 기업 등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경직된 조직 문화를 개선하여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으로 확산해야 한다. 유연근무제 확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추진해야 하며, 성평등 기업문화 확산을 위해 기업내 성평등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둘째, 지역특성을 고려한 공동 육아모델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셋째, 경력단절 이후의 재취업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긴 공백 기간 탓에 자신감도 많이 상실된 현실에서 취업이 용이한 분야의 교육훈련이 제공되어야 한다.4차 산업혁명시대, 성장동력 분야에도 여성취업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또한 여성 고용흡수력은 높으나 고용여건이 좋지 않은 서비스업 종사자를 위한 고용안정성 제고와 근로조건을 개선하여 경력단절여성의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가 된다.이러한 환경 아래 경북지역 경력단절여성은 주로 서비업, 교육직 중심의 직종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업무 중요도가 남성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때문에 기업체의 수요를 반영하여 업무의 숙련도, 장기근무 등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직무교육과 같은 리턴십 프로그램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2018-03-29

네거리 참상(慘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사람으로 났으면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목욕탕 안에서 초로의 한 사람이 이야기를 던졌다.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받았다.“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게 제일 좋지요. 그게 지구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거지요” “사람들도 그 답을 알 건데, 역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모양입니다” “다들 욕심 때문에 그렇지요. 정부를 비롯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요. 저러다간 곧 어깃장이 날 텐데. 다들 잘해보겠다고 한 건데, 이제 와서 다 잘못되었다고 하니,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마치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지는 소리 같았다.선문답처럼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에 필자는 귀를 빼앗겨 버렸다.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위해 사우나를 찾은 사람들이 숨죽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수긍을 했다. “탄핵, 특히 대통령 구속이 너무 쉬운 나라가 되었어요. 이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은 구속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다들 힘 빼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입법·행정·사법 등 어디 하나 자연스러운 곳이 없습니다. 우리부터라도 힘 빼고 삽시다” 마지막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조용히 눈을 감고 피어오르는 수증기에 몸을 맡겼다. 그 모습은 그대로가 탱화였다.필자는 최근 필자의 언행이 너무 부자연스러워 그 이유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어 마음이 답답했는데, 그 이유를 새벽 목욕탕에서 찾았다. 그 이유는 바로 “힘!”이었다. 필자는 조급한 마음에 억지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관용적 표현에 “용을 쓰다”라는 말이 있다.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대개가 “무리하게 하려고 무척 애를 쓰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분명 필자는 그동안 대안학교와 학생들을 위한답시고 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그 결과도 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반성을 하고 출근길을 재촉해 학교로 향하는데, 또다시 용을 쓰는 필자를 꾸짖듯 신호마다 붉은 불이 켜졌다. 출근길에 신호등이 그렇게 많은 지 처음 알았다. 신호등은 필자의 반성하는 태도가 멀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정말 신호마다 필자를 잡아 세웠다. 그러다 큰 네거리에 멈추었다. 거기서 필자는 정말 제대로 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2년마다 나타나 네거리를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의 영혼 없는 허리 숙임은 마치 기계와도 같았다. 붉은색, 파란색, 녹색 등 형형색색의 옷을 갖추어 입은 그들의 모습은 마치 가을 산을 물들이는 단풍과 흡사했다. 로봇처럼 인사하고, 의미심장하게 손을 들어 자신의 기호를 표시하는 것 외에도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 앞에 놓인 간판의 글들이다. 간판에는 하나 같이 자신이 최고의 적임자라는 것을 알리는 홍보 글귀가 쓰여 있다. 그리고 부연 설명으로 “도민과 시민을 위해 혁신과 발전을 이룰 최고의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간혹 유명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곁들여져 있다.탄핵과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일반화 되었듯이 번잡한 길목 네거리는 2년마다 철새 정치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지금이야 자신들의 아쉬움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지만 우리는 안다, 선거판이 끝나는 순간 그들은 철새처럼 네거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뻔뻔하게도 2년 후에는 처음인 것처럼 다시 나타나 영혼 없는 인사를 또 할 것이라는 것을. 네거리 어디에도 한 때만 용을 쓰는 철새 정치인이 아닌 진정한 지역 일꾼으로서의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텃새 정치인들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대통령의 힘이 들어간 개헌도 개헌이지만 철새 정치인(교육감 포함)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철새 정치인 청산 법부터 만드는 게 어떨까.

2018-03-28

`영일만만평` 탄생기

▲ 김은주 방송작가지역방송에서 시사 정보 프로그램의 아이템을 잡는 건 쉽지 않다. 시사 뿐 아니라 교양이나 다른 장르의 방송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이슈가 되는 사안들이 중앙 중심의 뉴스가 많다 보니 지역작가들은 아이템 찾는 것이 원고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곤 한다. 아이템 찾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다들 참 수고가 많다.그래도 로컬리티도 살리면서 지역민들에게 유익한 방송을 위해서 오늘도 방송 카메라나 라디오 마이크 뒤에 방송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은 한 번쯤 기억해 주면 좋겠다.수많은 아이템을 찾고 섭외를 하면서도 그중에서도 만평 아이템을 찾는 것이 제일 어렵다 .위트와 풍자가 있을 것, 짧지만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 등등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만평을 쓰는 것은 15년차 작가생활에서도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방송작가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김씨 아재` 라는 만평을 썼었다. 방송작가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초보작가에게 만평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게다가 매일 생방송으로 인터뷰 아이템과 함께 만평 아이템을 일주일에 네 개를 써야 했던 초보 작가에겐 김씨아재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그때 큰 아이가 다섯 살로 기억한다.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큰 아이에게 엄마 뭐하시냐고 물으니 “우리 엄마 김씨아재 써요” 라고 했단다. 나도 모르게 “김씨아재 뭐 쓰지? 오늘 김씨 아재 뭐 쓰지?” 무의식적으로 했더니 아이에게도 `엄마는 김씨아재 쓰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께서 “어머니, 근데 김씨아재가 뭐예요?” 라고 물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지금은 영일만만평이라는 만평을 매주 월요일에 일주일치 2~3개를 녹음해야 한다. 녹음을 하는 만평의 경우엔 방송이 나갈 당시의 날씨도 고려해야 하고, 어떤 사안이 있다면 그 문제가 해결될 경우엔 방송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일요일 밤부터 만평 아이템을 찾느라 밤을 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만평을 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일주일에 한번 오시지만,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도 나누고, 원고 내용으로 이것저것 묻고 답하다 보면 일흔이 넘으신 선생님과는 방송국에서 좋은 동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감사하다.방송을 하다 보면, 피드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실수를 할 경우엔 바로 피드백이 온다. 몇 년 전에 `영덕인구가 3만 명`이라고 했다가 영덕 향우회와 영덕군청으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건 백프로 작가 실수라 정중히 사과를 했었다. 하지만 피드백 없는 방송을 하다 보면 지금 이 방송을 누가 듣고 있는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프로그램 이름은 몰라도 사투리 쓰는 김씨아재와 영일만 만평은 많이들 알아주신다고 한다.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3~4분의 생방송을 위해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언제나 한결같은 김씨아재, 이정대 아저씨, 작가가 애써 쓴 원고라며 꼭 손을 씻고 두 손으로 원고를 받아주셨던 김씨아재는 지금껏 내 원고를 받았던 진행자나 사람들 중엔 단연 으뜸이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녹음을 위해 새벽부터 대구에서 내려오셔서 방송국 옆에 돼지 국밥 한그릇 드시고 언제나 환하게 문을 열고 인사를 하시는 영일만 만평 김삼일 선생님, 이 분들이 계셔서 지역 방송의 로컬리티가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그 뒤에 김 작가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음 좋겠다. 비록 오늘도 새벽 한 시를 향하는 이 시간, 만평 아이템을 찾지 못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2018-03-27

고향땅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대형 뉴스들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사회현상도 그렇지만 자연 또한 이상 징후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더욱 심란하다. 특히 지난해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본진 이후 100회에 가까운 여진으로 우리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그 파장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인간이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존재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오만이 엄청난 자연재난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만 것이다.196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우리나라를 급속하게 산업화로 이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극기정신으로 무장한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며 전투적으로 살아온 시절이 있었다. `하면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전쟁 이후 무참히 파괴된 삶터의 복구와 암담한 미래를 밝히는 유일한 출구였으며, 그러한 삶의 태도는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변모하는 눈부신 성장과 성취의 수단이 됐다. 그러나 그 눈부신 발전이라는 것은 경제를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관점일 뿐 우리가 얻어낸 문명의 이기와 편리는 결국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행복은커녕 오랜 역사 동안 소중하게 가꾸어 놓은 정신적 자산마저 경제적 성공의 시간만큼 빠른 속도로 파괴되는 부작용을 낳았고, 우리고장 포항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의 한 켠에는 늘 아쉬움의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다.자연을 대하는 동양과 서양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에서는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높은 산을 깎아내고 터널을 뚫어 인간에게 편리하도록 개조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양적인 자연관은 정반대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자연은 인간의 삶이 다하면 돌아가 묻힐 터전이었고, 산소를 들일 때도 먼저 산신(山神)에게 고하는 절차를 가졌던 것처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이거나 선진이나 미개의 기준이기 이전에 오랜 세월동안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가치관의 차이일 뿐, 자연은 동서양을 초월해 인간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조상 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에 지진이 났다. 그렇다고 어찌 그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며, 떠난다고 과연 내 삶이 행복해질 것인가? 부모님이 평생을 사셨고 내 아이들의 뼈가 자란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면, 지진이라는 공포에서 멀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행복도 함께 멀어지고 말 것이다. 이는 지역주의적인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평생 이 땅의 자양을 받고 자란 사람의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다. 이제는 정말로 우리고장의 자연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보듬어야 할 때다. 부서진 곳은 고치고 내진 설계 등으로 보강해 사람도 재산도 다치지 않게 하고, 지역에 맞는 지진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삶의 양태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재창출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지진의 공포는 아직도 서늘하지만, 산 좋고 바다 좋아 먹을 것 풍부하고 추위를 유난히 타는 체질의 필자에게 포항의 따뜻한 겨울날씨는 또한 얼마나 감사하였던가! 그런 내 고향 땅이 몸살을 앓는다고 버릴 것이 아니라 어디가 아픈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인간이 치료해 줄 수 있으면 응당 그래야하고, 그들의 상황에 맞추는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고향땅에 새 봄이 왔다. 어느새 내 인생의 시계도 세상의 풍파를 넘어 순리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으니 고향땅 흙 내음이 여느 때보다 더 진하고 정겨운 듯하다.

2018-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