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이 사람 누구야?” “교육감 후보!” “교육감이 뭐야?” 필자는 그 다음 말을 잇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선거 홍보물을 교과서 읽듯 읽었다. 그 동안 필자는 교육감이 뭐하는 사람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그 생각을 내팽개쳐버렸다. 왜냐하면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할 교육계가 이념 투쟁의 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보수 교육감, 진보 교육감! 어떻게 교육감에게 보수, 진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까. 교육감 선거부터 이념의 버그에 사로잡혀 있으니 할 말 다했다. 하기야 나라 전체가 이념의 수렁에 빠져 있는데 교육계라고 오죽할까마는 최소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만큼은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했건만, 이미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이 나라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필자는 잘 안다.
가장 순수해야하고, 절대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교육이 어쩌다 이념의 밥이 되었을까. 그건 정치와 선거, 그리고 선거판을 이념의 전쟁터로 몰고 가는 선거꾼들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에서 선거꾼들은 바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교육감 추천 단체들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각 진영의 전체 대표라도 되는 것처럼 언론 플레이를 한다. 또 그들로부터 추대를 받은 예비 후보들 또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자신이 진영 전체 대표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교육감이라고 하면 보수 교육감 아니면 진보 교육감부터 떠올리게 되었다.
“이 선생은 어느 교육감이고? 보수 교육감이가, 진보 교육감이가?”
필자는 어느 모임에 갔다가 이런 낯 뜨거운 질문을 받았다. 말문이 막혀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필자를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질문이 날라 왔다. “교육감도 선거를 하나?”그 말에 더 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똑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이 선생, 진짜 교육감도 선거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처음 아는 사실이라며 신기하다는 듯 필자를 보았다. 그러다 처음에 질문을 한 지인이 다시 물었다. “교육감 선거가 있다 치고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합니까? 다른 선거야 당 아니면 그나마 아는 인물을 찍으면 되지만 교육감 선거는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할 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리고 농담으로 말을 마쳤다. “우리는 이 선생이 찍으라고 하는 사람 찍을 테니까 정보 좀 줘! 그러지 말고 이 선생이 한번 나가봐. 내가 힘껏 운동 해줄게”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그리고 바로 자치단체장 선거 이야기로 넘어갔다.
나라의 백년이 걸린 교육계의 수장을 뽑는 교육감 선거가 술자리의 안주거리도 안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3시간이 넘는 선거 이야기 중에 교육감 선거는 5분도 안 되었다. 모임 마무리 부분에 그래도 필자의 답이 궁금했던지, 아니면 교육계에 대한 최소한의 미안함 때문인지 처음에 물었던 지인이 마지막 건배에 앞서 다시 물었다. “그래 교육감은 누구를 찍으면 되노?” “보수니, 진보니 색깔에 물든 사람만 빼면 됩니다. 그리고 대안교육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을 택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웃음으로 대신 답을 했다. “여러분 이 나라 교육을 위해 건배합시다”
“교육이 세계를 바꾸는 수단이다”라는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교육의 중요함을 안다. 그런 교육이 죽었다. 죽은 교육을 살려보겠다고 현 정부에서는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오히려 진영논리로 더 죽이고 있다. 이미 이 나라의 교육은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번 교육감 선거야 말로 교육 회생의 마지막 변곡점이다. 진영 논리로부터 우리 교육을 지킬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