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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만만평` 탄생기

등록일 2018-03-27 21:09 게재일 2018-03-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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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br /><br />방송작가
▲ 김은주 방송작가

지역방송에서 시사 정보 프로그램의 아이템을 잡는 건 쉽지 않다. 시사 뿐 아니라 교양이나 다른 장르의 방송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이슈가 되는 사안들이 중앙 중심의 뉴스가 많다 보니 지역작가들은 아이템 찾는 것이 원고 쓰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을 하곤 한다. 아이템 찾다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다들 참 수고가 많다.

그래도 로컬리티도 살리면서 지역민들에게 유익한 방송을 위해서 오늘도 방송 카메라나 라디오 마이크 뒤에 방송작가들이 있다는 사실은 한 번쯤 기억해 주면 좋겠다.

수많은 아이템을 찾고 섭외를 하면서도 그중에서도 만평 아이템을 찾는 것이 제일 어렵다 .

위트와 풍자가 있을 것, 짧지만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 등등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만평을 쓰는 것은 15년차 작가생활에서도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방송작가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김씨 아재` 라는 만평을 썼었다. 방송작가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초보작가에게 만평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게다가 매일 생방송으로 인터뷰 아이템과 함께 만평 아이템을 일주일에 네 개를 써야 했던 초보 작가에겐 김씨아재는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때 큰 아이가 다섯 살로 기억한다. 어느 날 유치원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큰 아이에게 엄마 뭐하시냐고 물으니 “우리 엄마 김씨아재 써요” 라고 했단다. 나도 모르게 “김씨아재 뭐 쓰지? 오늘 김씨 아재 뭐 쓰지?” 무의식적으로 했더니 아이에게도 `엄마는 김씨아재 쓰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께서 “어머니, 근데 김씨아재가 뭐예요?” 라고 물어서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영일만만평이라는 만평을 매주 월요일에 일주일치 2~3개를 녹음해야 한다. 녹음을 하는 만평의 경우엔 방송이 나갈 당시의 날씨도 고려해야 하고, 어떤 사안이 있다면 그 문제가 해결될 경우엔 방송으로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일요일 밤부터 만평 아이템을 찾느라 밤을 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만평을 하시는 선생님께서는 일주일에 한번 오시지만,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도 나누고, 원고 내용으로 이것저것 묻고 답하다 보면 일흔이 넘으신 선생님과는 방송국에서 좋은 동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감사하다.

방송을 하다 보면, 피드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실수를 할 경우엔 바로 피드백이 온다. 몇 년 전에 `영덕인구가 3만 명`이라고 했다가 영덕 향우회와 영덕군청으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건 백프로 작가 실수라 정중히 사과를 했었다. 하지만 피드백 없는 방송을 하다 보면 지금 이 방송을 누가 듣고 있는 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프로그램 이름은 몰라도 사투리 쓰는 김씨아재와 영일만 만평은 많이들 알아주신다고 한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3~4분의 생방송을 위해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언제나 한결같은 김씨아재, 이정대 아저씨, 작가가 애써 쓴 원고라며 꼭 손을 씻고 두 손으로 원고를 받아주셨던 김씨아재는 지금껏 내 원고를 받았던 진행자나 사람들 중엔 단연 으뜸이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녹음을 위해 새벽부터 대구에서 내려오셔서 방송국 옆에 돼지 국밥 한그릇 드시고 언제나 환하게 문을 열고 인사를 하시는 영일만 만평 김삼일 선생님, 이 분들이 계셔서 지역 방송의 로컬리티가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그 뒤에 김 작가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음 좋겠다. 비록 오늘도 새벽 한 시를 향하는 이 시간, 만평 아이템을 찾지 못한 채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게 현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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