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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땅

등록일 2018-03-26 21:07 게재일 2018-03-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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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재<br /><br />포항예총 회장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대형 뉴스들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사회현상도 그렇지만 자연 또한 이상 징후로 몸살을 앓고 있으니 더욱 심란하다. 특히 지난해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은 본진 이후 100회에 가까운 여진으로 우리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으며, 그 파장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인간이 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존재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오만이 엄청난 자연재난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고만 것이다.

1960년대 초반에 시작되었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우리나라를 급속하게 산업화로 이끌었으며, 그 과정에서 극기정신으로 무장한 우리는 모든 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며 전투적으로 살아온 시절이 있었다. `하면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전쟁 이후 무참히 파괴된 삶터의 복구와 암담한 미래를 밝히는 유일한 출구였으며, 그러한 삶의 태도는 전쟁의 폐허에서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변모하는 눈부신 성장과 성취의 수단이 됐다. 그러나 그 눈부신 발전이라는 것은 경제를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관점일 뿐 우리가 얻어낸 문명의 이기와 편리는 결국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행복은커녕 오랜 역사 동안 소중하게 가꾸어 놓은 정신적 자산마저 경제적 성공의 시간만큼 빠른 속도로 파괴되는 부작용을 낳았고, 우리고장 포항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향에 대한 자부심의 한 켠에는 늘 아쉬움의 그림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자연을 대하는 동양과 서양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양에서는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높은 산을 깎아내고 터널을 뚫어 인간에게 편리하도록 개조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양적인 자연관은 정반대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자연은 인간의 삶이 다하면 돌아가 묻힐 터전이었고, 산소를 들일 때도 먼저 산신(山神)에게 고하는 절차를 가졌던 것처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것이거나 선진이나 미개의 기준이기 이전에 오랜 세월동안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가치관의 차이일 뿐, 자연은 동서양을 초월해 인간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내 고향에 지진이 났다. 그렇다고 어찌 그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며, 떠난다고 과연 내 삶이 행복해질 것인가? 부모님이 평생을 사셨고 내 아이들의 뼈가 자란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면, 지진이라는 공포에서 멀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행복도 함께 멀어지고 말 것이다. 이는 지역주의적인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평생 이 땅의 자양을 받고 자란 사람의 지극히 당연한 생각이다. 이제는 정말로 우리고장의 자연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보듬어야 할 때다. 부서진 곳은 고치고 내진 설계 등으로 보강해 사람도 재산도 다치지 않게 하고, 지역에 맞는 지진 대처 매뉴얼을 만들어 안전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삶의 양태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재창출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지진의 공포는 아직도 서늘하지만, 산 좋고 바다 좋아 먹을 것 풍부하고 추위를 유난히 타는 체질의 필자에게 포항의 따뜻한 겨울날씨는 또한 얼마나 감사하였던가! 그런 내 고향 땅이 몸살을 앓는다고 버릴 것이 아니라 어디가 아픈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인간이 치료해 줄 수 있으면 응당 그래야하고, 그들의 상황에 맞추는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향땅에 새 봄이 왔다. 어느새 내 인생의 시계도 세상의 풍파를 넘어 순리를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리키고 있으니 고향땅 흙 내음이 여느 때보다 더 진하고 정겨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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