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났으면 무엇을 남겨야 할까요?”
목욕탕 안에서 초로의 한 사람이 이야기를 던졌다. 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받았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게 제일 좋지요. 그게 지구를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거지요” “사람들도 그 답을 알 건데, 역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모양입니다” “다들 욕심 때문에 그렇지요. 정부를 비롯해서 지금 우리 사회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요. 저러다간 곧 어깃장이 날 텐데. 다들 잘해보겠다고 한 건데, 이제 와서 다 잘못되었다고 하니, 쯧쯧!” 혀를 차는 소리가 마치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지는 소리 같았다.
선문답처럼 시작된 두 사람의 이야기에 필자는 귀를 빼앗겨 버렸다.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위해 사우나를 찾은 사람들이 숨죽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수긍을 했다. “탄핵, 특히 대통령 구속이 너무 쉬운 나라가 되었어요. 이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나요.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은 구속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다들 힘 빼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입법·행정·사법 등 어디 하나 자연스러운 곳이 없습니다. 우리부터라도 힘 빼고 삽시다” 마지막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조용히 눈을 감고 피어오르는 수증기에 몸을 맡겼다. 그 모습은 그대로가 탱화였다.
필자는 최근 필자의 언행이 너무 부자연스러워 그 이유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어 마음이 답답했는데, 그 이유를 새벽 목욕탕에서 찾았다. 그 이유는 바로 “힘!”이었다. 필자는 조급한 마음에 억지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관용적 표현에 “용을 쓰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대개가 “무리하게 하려고 무척 애를 쓰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분명 필자는 그동안 대안학교와 학생들을 위한답시고 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그 결과도 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많은 반성을 하고 출근길을 재촉해 학교로 향하는데, 또다시 용을 쓰는 필자를 꾸짖듯 신호마다 붉은 불이 켜졌다. 출근길에 신호등이 그렇게 많은 지 처음 알았다. 신호등은 필자의 반성하는 태도가 멀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정말 신호마다 필자를 잡아 세웠다. 그러다 큰 네거리에 멈추었다. 거기서 필자는 정말 제대로 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2년마다 나타나 네거리를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의 영혼 없는 허리 숙임은 마치 기계와도 같았다. 붉은색, 파란색, 녹색 등 형형색색의 옷을 갖추어 입은 그들의 모습은 마치 가을 산을 물들이는 단풍과 흡사했다. 로봇처럼 인사하고, 의미심장하게 손을 들어 자신의 기호를 표시하는 것 외에도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 앞에 놓인 간판의 글들이다. 간판에는 하나 같이 자신이 최고의 적임자라는 것을 알리는 홍보 글귀가 쓰여 있다. 그리고 부연 설명으로 “도민과 시민을 위해 혁신과 발전을 이룰 최고의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간혹 유명인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곁들여져 있다.
탄핵과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 일반화 되었듯이 번잡한 길목 네거리는 2년마다 철새 정치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지금이야 자신들의 아쉬움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지만 우리는 안다, 선거판이 끝나는 순간 그들은 철새처럼 네거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뻔뻔하게도 2년 후에는 처음인 것처럼 다시 나타나 영혼 없는 인사를 또 할 것이라는 것을. 네거리 어디에도 한 때만 용을 쓰는 철새 정치인이 아닌 진정한 지역 일꾼으로서의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는 텃새 정치인들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대통령의 힘이 들어간 개헌도 개헌이지만 철새 정치인(교육감 포함)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는 철새 정치인 청산 법부터 만드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