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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밑 빠진 정부,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재난 수준의 청년 실업! 청년(靑年)이란 말은 한 때는 빛이요, 개혁이요, 희망이었다. 그런 그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인구절벽시대보다 더 절망적인 말은 청년실종시대다. 청년이 없는 사회는 말 그대로 암흑사회다. 인구 학자들은 예전부터 이 나라가 늙어가고 있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지는 나라가 될 거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 뒷북 코리아는 인구 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정권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건방을 떨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최악이었다. 현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탓하기 좋아하는 현 정부는 지금까지의 인구 정책이 실패했다고,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해 인구 붕괴를 막겠다고 떠들어댔다. 기대한 건 아니지만 결과는 역시 실패다.출산율과 관련해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를 내리겠다고 한지 1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포털 서비스에서 출산율을 검색해보면 너무도 실망스러운 결과들이 나온다.`아이 안 낳는 대한민국, 역대 최저치 출산율` 특단의 조치는 어디 갔는지? 대통령 바라기인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언론인들에게는 출산율과 같은 끝도 없이 추락하는 생산 지수들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유일하게 보이는 수치는 오로지 의미 없는 대통령 지지율뿐이다.지지율에 목숨을 거는 그들에게 지금의 지지율은 만능열쇠와도 같다. 지지율만 믿고 그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대통령은 어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특단(特段)의 조치를 지시하고, 그러면 그의 신하들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해결책으로 세금 카드를 꺼낸다. 그리고 그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뻔뻔하게 말한다. 분명 세금은 현 정부의 만병통치약이다. 최저임금 해결책도 세금, 청년 일자리도 세금, 출산율도 세금, 고교 무상교육도 세금, 정말 세금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다. 누군가는 말한다. 세금 울렁증이 생겼다고.세금을 가지고 장난치는 말이 있다. 소득 주도 성장! 듣기에는 참 그럴싸한 말잔치다. 그런데 정작 실체는 준만큼 더 거둬들이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그리고 이 말을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국민은 봉이다!”이다. `봉`이 된 한 사람으로써 봉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됨됨이가 어수룩하여 속이거나 이용해 먹기 딱 좋은 사람`세금을 화수분으로 생각하는 세금 찬양자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속담을 제일 싫어할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지금 정부가 하는 많은 일들이 이 속담과 너무도 깊이 관련 있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가 사활(死活)을 걸고 있는 북쪽과의 만남은 이 속담의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는 그것을 지난 두 번의 남북 정상 회담에서 확인했다. 그때도 뭔가가 곧 될 것처럼 떠들었다. 그리고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멀어졌고, 북쪽은 핵과 관련해서는 최고 수준으로 강해졌다. 분명 이번에도 결과가 불 보듯 한데 정부는 세금을 퍼부을 모양이다. 독재(獨裁)의 최고 정점에 있는 그들에게 왜 그토록 목을 맬까?교육계 또한 `밑 빠진 독` 중 한 곳이다. 공교육을 바로 잡겠다고 거액의 세금을 퍼붓고 있지만(대안학교는 제외), 이 나라의 공교육은 점점 더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학원 숙제의 도우미로 전락해버린 학교, 과연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청년실종시대의 주범을 학교 교육이라고 하면 펄쩍 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 학생들은 교과서 속에 길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책상에 엎드려 숙면을 취하는 아이들, 안타깝게도 그들은 청년이라는 말도 못 들어본 채 늙어가고 있다.

2018-03-22

같이 삽시다!

▲ 조수정대구가톨릭대 교수·교양교육원 어느 일요일 오후 팔순을 눈앞에 둔 어머니와 함께 TV 프로그램을 하나 보게 되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무심코 눈길을 주었다가, 뜻밖의 신선한 내용에 마음을 빼앗겨 마지막 멘트가 나올 때까지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같이 삽시다`라는 제목을 단 이 프로그램은 왕년의 유명 탤런트 네 명이 함께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여주었는데, 두 명이 미술관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러 떠나면 나머지 두 명은 사주를 풀어보려고 점쟁이를 찾아갈 정도로, 네 명의 출연자는 얼굴 생김새는 물론 성격과 취향도 제각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꽤나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고, 시간이 된다면 다음 이야기도 또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시청자들에게 때로는 눈시울을 붉게 만들고 때로는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하는 잔잔한 감동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감동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무엇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어 무장해제시키고 어린아이같은 평화로운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도 `다름의 공존`이라는, 약간은 어색하지만 어찌 보면 풍요로운 느낌을 주는 환경설정 때문일 것이다. 각자의 사고방식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대의 외로움과 아픔에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서로 단절된 채 경직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리라.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다문화라는 단어가 매우 익숙한 것이 되었다. 경북도청에 마련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비롯해 각 지자체에서는 다문화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각종 대중매체는 물론 교육현장에서도 다문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필자가 재직 중인 대학교에도 세계 각국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눈에 띄는데, 그 중에는 히잡을 쓴 여학생도 있고, 랩 스타일 머리장식을 한 학생도 있다. 국제학생축제가 벌어질 때면, 각국 의상 차림을 한 학생들이 전통 문화와 음식 등을 소개하면서 한바탕 신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그런데 `다문화 가정`이니 `다문화 교육`이니 하는 말들과 그것을 축으로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여러 문화가 한데 어우러지기보다는, `다문화`라는 또 다른 카테고리를 설정하고 그 안에 가둬버리는 일종의 편가르기 같은 느낌을 종종 받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어느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나를 다문화라고 불러요`라며 울먹였다는 기사는 `다문화`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단절의 대체어로 쓰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원래 의도와는 달리, `우리와는 다른`, `우리와 구별되는`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될 때 그것은 공존이 아닌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의 원인이 될 것이다. `다문화`가 또 다른 구별짓기는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하겠다.프랑스 중남부 내륙지방에 `르 퓌 앙블레`라는 곳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와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유명한 도시이다.이 대성당은 프랑스의 어느 건축물과도 다른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프랑스의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에 비잔티움 제국의 프레스코화로 장식하였고, 입구에는 이슬람의 조각과 서체까지 사용하였다. 건축 자재도 다양한 색깔의 돌을 사용하여 화려한 느낌을 준다. 미술사학자 에밀 말은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안뜰 중 하나`로 `르 퓌 앙블레`를 칭송한 바, 이질적이고 다양한 요소가 한데 어울려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이 대성당은 나와 다름을 거부하고 단죄하는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우리, 같이 삽시다!

2018-03-19

대안학교 학생들을 위한 청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아빠, 봄이 정말 이상해” 5학년 딸아이가 한 말에 필자는 뒤통수를 뭔가에 세게 맞은 것처럼 갑자기 멍해졌다. “나경아 뭐가 이상하니?” 아이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말했다. “봄이 안 돌아와!” 5학년 아이가 기다리는 봄은 과연 어떤 봄일까? 달력, 기온 등 물리적 시간들의 지수는 지금이 봄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물리적 시간은 철을 아는 자연이 다스리는 시간이기에 비록 아주 작은 오차는 있을지언정 때가 되면 제 할 일을 한다. 산수유는 눈을 이고도 노란 꽃을 피웠다. 들판에는 농부들이 논밭갈이에 한창이다. 자연스러운 그 모습들은 보기만 해도 저절로 행복해진다.최근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미친 시청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필자도 몇 번 봤는데, 볼 때마다 화면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매번 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소위 말해 자연인들이 나온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위기를 이겨내고 생활의 안정과 행복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를 한 목소리로 말한다.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자연에 맞춰 살면 됩니다.”회색빛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삶에 대한 욕망은 현대인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이 그런 꿈을 간절히 꾸는 이유는 뭘까? 필자가 보기에는 현재의 삶에 너무 지쳐서가 아닐까 싶다. 그러면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인위(人爲)가 판치는 지금의 사회이다.이 사회 어디를 보아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는 없다. 남과 북이 그렇고, 정치는 더 최악이고! `인위`의 동의어를 `억지`라고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억지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억지의 끝은 멸망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지만, 억지를 그만 두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만은 억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교육, 경제, 정치 등 우리 사회 어느 것 하나 억지가 아닌 것이 있을까? 교육부의 억지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어느 학부모님의 메시지를 잠시 인용한다. 누구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올리라고 하지만, 북한 이야기 하느라 정신없는 청와대가 선거표 없는 대안학교 이야기를 들어 줄 리 만무하기에 필자는 생각조차 않는다.“선생님, 안녕하세요? 광주 ○○ 엄마입니다. 제가 어제서야 퇴원을 했습니다. 많이 쪼들리는 형편에 병원비가 없어 돈을 빌리고 빌려 병원비를 냈지만, 그래도 모자라 퇴원이 안 된다는 것을 뒤로한 채 집으로 왔습니다. ○○가 아주 많이 정신적으로 힘이 드나봅니다. 짜증에다 말대꾸에! 아이들이 이유 없이 바보 취급하고 무시하고 그러니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렵나 봅니다. ○○가 제 소변을 받아내며 학교와 병원을 왔다갔다…. 너무 착하고 예쁜 아이인데 교육비 때문에 지체하다가는 제가 평생 후회하고, 또 아들에게 죄인이 될 것 같아서. (중략) ○○이의 행복을 위해서 산자연중으로 보내고 싶지만…. 도와주십시오.”산자연중학교에는 이런 학생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간곡한 마음으로 교육부에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억지 교육부는 매년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현재 중학교과정을 운영하는 각종 학교는 교육급여 수급자라 하더라도 수업료(입학금)와 교과서대는 지원받을 수 없습니다. 향후, 중학교 과정을 운영 중인 각종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교육급여로 수업료(입학금 포함)와 교과서대를 지원 할 수 있는지 법률적인 해석과, 고시 개정 필요 여부 등에 대해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노벨 평화상 이야기에 청와대에는 봄은 왔는지 모르겠지만, 대안학교, 아니 이 나라의 봄은 진정 멀고도 멀었다.

2018-03-15

걸스 플레이 2(Girls Play Too)

▲ 김명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초등학교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은 단언컨대 체육이었다. 땀 흘리거나 씻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는데 도대체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의 나는 소문난 몸치에다 체력이 약했던 탓에 뜀박질로 단련된 또래 친구들을 이긴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여러 운동 중에 가장 싫었던 건 체력장에 꼭 빠지지 않았던 매달리기였다. 매번 잘해 보리라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마치 누군가 참기름이라도 발라둔 것처럼 철봉에 손이 닿기가 무섭게 미끄러졌다. `○○○, 1초`. 호명하는 소리에 아이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선생님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매일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운동장으로 쫓아가 매달리기와 씨름했다. 운동을 싫어했던 나로서는 정말 독한 마음을 먹었던 것인데, 그 독기 때문이었는지 연습의 결과였는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1초의 벽을 넘겨 결국 20초대를 만들었다.이 작은 성공의 경험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장면이 되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 보리라 `단디` 마음 먹었으며, 매일 실천했고, 그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잦은 실패의 경험으로 어느덧 `체포자(체육을 포기한 자)`가 당연한 운명인 줄 알고 받아들였는데 `당연한 것`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결코 못할 일이 없다`는 선생님들의 훈계가 저편 어디선가 둥둥 떠다니는 다른 세계의 말이 아닌 일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내 세계의 말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뜀틀이며, 허들 때문에 애를 먹긴 했지만 예전만큼 체육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여유가 늘었고, 오히려 `도전`해 본다는 짜릿한 감정까지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 자신감은 체육의 경계를 넘어 공부며, 해결해야 할 과제 앞에서도 여지없이 힘을 발휘했다. 성공의 경험은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처럼 중요하다. 특히나 몸으로 체득한 것이라면 더욱.하지만 학창시절 동안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어, 영어, 수학 등 다른 과목에 우선순위가 밀린 탓도 있었지만, 여학생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이나 공간이 많지 않았다. 축구나 배구, 농구장은 늘 남학생들의 차지였으며, 실제로 실력 차이가 나 함께 운동할 처지도 아니었다. 여학생들에게 맞도록 골대를 낮춘다거나, 부딪힘이 적은 새로운 스포츠를 개발한다는 생각을 그 때는 왜 하지 못했을까?스포츠 광으로 알려진 버락 오바마 전(前)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타이틀 나인(TITLE Ⅸ)법 제정 4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체육활동이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다. 운동은 여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경쟁의 의미를 알려준다.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체육을 해야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자신감 있는 여성을 만들어 낸다”며 여학생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걸스 플레이 2`(Girls Play too, 여학생들도 운동하자) 캠페인을 론칭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 역시 “학생들은 운동을 하면서 팀워크, 헌신, 규율 그리고 압박 속에서 성공하는 법을 배운다.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스포츠에 동등한 접근권을 갖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소중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며 더 많은 여학생들이 스포츠에 참가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스포츠 정신을 이야기할 때 늘 빼놓지 않는 것이 `도전`과 `열정`, `땀`의 가치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도 여자 컬링팀을 비롯해 선수들의 도전과 열정을 볼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올림픽을 계기로 여학생이 체육활동에 보다 관심을 가지기를, 여학생들의 체육활동이 보다 폭넓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2018-03-14

문화·예술의 본질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21세기에 접어들면서 국가 간 교류와 함께 관광객들의 왕래도 그 어느때보다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 전 세계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던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각국의 선수단들과 함께 올림픽을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이 강원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체험과 여행, 레저를 즐기는 모습을 통해 가까워지고 있는 지구촌 문화를 실감하게 되었다.더욱이 남북이 올림픽 출전 단일팀이라는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 냄으로써, 올림픽 이외의 볼거리와 함께 또 다른 재미 이상의 감동을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스포츠와 함께 문화·예술간 교류는 각 나라별로 차별화 된 독창적 문화를 서로 소통하며, 국가와 인종, 이데올로기간의 차별성을 뛰어 넘는 `새로운 화합의 장`을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음을 이번 사례를 통해 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지난 연말 미국의 강경대북 정책들이 연일 주요방송 뉴스를 장식할 때 만 해도 이런 화해의 분위기가 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앞섰지만, 스포츠와 함께 음악·무용 등 다양한 예술 활동들이 결국 대립의 장벽을 넘어 화합을 위한 자그마한 손짓으로 전해짐으로써 문화·예술과 스포츠가 갖는 가치를 다시금 느껴본다.이러한 국가별 문화·예술교류는 서로 다른 문화와 양식을 상호 알리고 소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파급효과를 더욱 극대화 시키고 있으며, 그 속에서 자국의 문화적 우월성을 새롭게 확인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그리고 이러한 문화교류는 나라별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새로운 경험들을 제공해 주며, 또 다른 다국적 문화를 만들어내는 토양이 되고 있다. 결국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글로벌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시발점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새로운 문화와 예술 활동에서 얻어지는 감흥과 감동은 인간의 본질적 감정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미국의 무용미학자이며 철학자인 수잔 랭거(1895~1985)는 예술작품을 `감정의 상징`이라고 정의하며 “예술은 인간이 경험한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이는 예술작품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경험이 주는 의미는 직접적으로 보이는 면 즉, 삶의 환경에서 야기되는 사건, 현상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형상을 통해서 작품성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결국 다양한 경험과 여행을 통한, 체험하고 얻는 감정들이 예술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더 큰 감동으로 전해지는 셈이 된다.남·북 문제도 그렇지만 다각화 되어지는 국제적 분쟁과 갈등에서 비롯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해결점은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외교력과 협상 등 다채로운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 활동의 직접적인 교류에서 오는 진정한 감동이 더해진다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좀 더 유기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이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그동안 중단되었던 금강산관광 재개와 함께 긴장감이 감돌았던 남북교류를 문화와 예술 교류를 통해 새롭게 전개해 나갈 수 있다면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표현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진다.21세기에 접어들어 세계 각국은 자국의 문화와 예술적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정책과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다.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문화·예술 활동들이 단순한 교류와 소통을 넘어서서 인간에게 진정한 감동을 전해주는 원초적 감정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2018-03-13

쳇바퀴 학교와 정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드디어 2018학년 학교 문을 열었다. 3월 초 언론의 머리기사는 약속이나 한 듯이 입학식과 관련한 기사로 채워진다. 그 기사들의 공통점은 너무도 환하게 웃고 있는 초등학교 입학생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나라 교육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약 그 사진을 본다면, 그들은 분명 `이 나라 학생들은 참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필자는 입학 시즌만 되면 “아빠,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 학교 가려면 아직도 시간이 이만큼이나 남았어?”라며 시무룩해하던 딸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 필자는 이 아이만 생각하면 교사라는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죄스럽다. 그렇게 학교에 대한 에너지가 넘치던 아이가 이젠 금요일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 밤을 제일 싫어하게 되었다. 도대체 누가 이 아이의 힘을 이렇게 빼놓았는지 따져 묻고 싶지만 답은 뻔하고, 그 뻔한 답 안에 교사와 학교가 있기에 양심상 그럴 수도 없다.적폐 청산, 촛불 정신 등 세상에는 참 뻔뻔한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 중 또 하나의 뻔뻔한 말은 `새 학기`라는 말이다. 물론 해가 바뀌었고, 교실과 교과서도 달라졌고, 입학생들한테는 학교도 바뀌었기에 이 말이 어느 정도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학교라는 시스템을 보면 `새 학기`라는 말은 완전 거짓말이다.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는 주체는 오히려 더 퇴화했기 때문이다. 성적 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학교, 학생들을 문제 푸는 기계로 조련하는 교사, 말로만 창조·혁신·인성을 외치는 교육정책 당국! 바뀐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학기 시작부터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교육 현실을 보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필자는 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교육은 절대 바뀌지 않음을. 교육부와 교육청 사람들이 그대로이고, 참고서의 내용을 마치 자기 것인 양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바쁜 교사들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정권이 바뀌면 또 바뀔 건데 뭣 하러 힘을 빼느냐!”라고. 자유학기(년)제를 도입한다고, 또 자사고, 국제고 등을 폐지한다고 죽은 교육이 살아날까. 이 나라 교육을 자신이 표절한 논문의 실험 대상으로 생각하는 교육 관료들이 있는 한 교육 현장은 언제나 카오스 상태이다.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혼돈이 변화이고 발전이다.”라고 말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분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 대상이 학생들이라면 분명 그 답은 달라진다. 실패한 교육 실험의 최대 피해자는 학생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 나라 미래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교육은 대통령이나 장관의 생각에 절대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들 또한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의 개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된 판인지 이 나라는 교육은 고사하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헌법도 바뀌니 웃길 노릇이다.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교사들과 아직까지도 촛불의 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빼고는 다 안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는 아이들이 쳇바퀴 학교에서 그 웃음을 곧 잃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프게도 그 중 상당수 학생은 `학교밖 청소년`이 될 거라는 것을. “학교는 절대 쳇바퀴가 아니다!”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 좀 해줬으면 좋겠지만, 이 나라에 그럴 양심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안타깝게도 쳇바퀴는 학교만이 아니다. 표를 위한 영혼 없는 단일화의 장이 되어 버린 선거판과 정치복수 등 구태(舊態)가 난무하는 이 나라 정치는 구린내가 가장 심한 쳇바퀴이기에 이 나리의 미래는 너무도 어두울 뿐이다.

2018-03-08

박 중령을 지켜라

▲ 김현욱 시인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불과 십 년 전만 떠올려 봐도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실감이 납니다. 또 십 년이 흐르면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게 될까요? 장밋빛 미래일까요? 먹구름처럼 어두운 세상일까요?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과는 또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거라는 겁니다.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학교입니다. 학교는 우리 친구들에게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약 20년이라는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게 되니까요. 학교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바로 여러분의 인격과 가치관을 만듭니다.피카소가 말했어요. “아이들은 모두 천재로 태어난다.” 세상에 평범한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모두 숨은 재능과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공부`는 수많은 재능 중에 하나일 뿐이에요. 여러분은 저마다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여러분의 개성과 다양성을 더 많이 존중해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여러분 스스로가 자신감을 가지길 바랍니다.저는 학창시절에 별 볼일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성적도 운동도 고만고만한,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말수 적은 아이였어요. 그런데 눈 밝고 가슴 따듯한 선생님들이 제 안에 숨은 빛을 찾아내 환하게 밝혀주셨답니다.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저를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독서와 글쓰기에 푹 빠졌던 몰입의 경험, 글을 다 쓰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 벅차올랐던 감동.사람은 몰입이나 감동을 하는 순간 뇌에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큰 몰입이나 감동을 경험했던 사람일수록 시련이나 역경을 이겨내려는 강인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몰입과 감동이 주는 변화가 참으로 놀랍지요?몰입이나 감동만큼 우리에게 좋은 변화를 주는 게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심(利己心)`의 반대말입니다. 뭘까요? 맞습니다. 바로, 이타심(利他心)입니다. 이타심이란, 남을 위하거나 이롭게 하는 마음입니다.지난 1월에 출간한 동화집 `박 중령을 지켜라`(뜨인돌어린이, 김현욱)에 실린 이야기는 모두 다른 사람을 위하거나 이롭게 하는 마음의 이야기입니다. `박 중령을 지켜라에서는 실직 위기에 처한 경비원 할아버지를 위하는 마음, `시식의 법칙`에서는 어린 동우를 보호해주려는 마음, `영애`에서는 영애를 감시하고 의심했던 것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 `이부모`에서는 이혼하려는 부모님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양동이 꽃`에서는 단수로 고생하는 같은 반 친구 철민을 도와주려는 마음, `거울도 안 보는 엄마`에서는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엄마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자 하는 아빠와 윤솔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밖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위하고 이롭게 하려는 이야기지요.저는 여러분이 저마다 타고난 개성과 잠재력을 갈고닦아 몰입과 감동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 속에서 늘 가족과 친구, 이웃을 위하고 배려하는 이타심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동화집 `박 중령을 지켜라`에 나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처럼 말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분명 장밋빛이 될 겁니다.그런 의미에서 동화집 `박 중령을 지켜라`가 우리 친구들과 부모님의 많은 사랑을 받길 기도해봅니다.

2018-03-06

호미곶과 호랑이 마케팅

▲ 박창원 수필가지금은 마케팅의 시대다. 마케팅은 원래 기업에서 주로 하던 활동이었으나 근래에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으로 확대됐다. 학교도 마케팅을 잘 해야 살아남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다.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마케팅은 지자체의 사활이 걸린 매우 중요한 영역이 됐다. 그 지역에서 생산한 상품이 잘 팔려야, 그리고 관광객을 많이 유치해야 주민들의 소득이 향상되고, 살기 좋은 고장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각 지자체는 지역을 알리는 데 힘쓰는 한편, 그 지역에서 생산하는 상품을 홍보하기 위해 공동 브랜드를 만들기도 하고, 관광자원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포항의 경우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활용한 일월신제, 연오랑·세오녀 선발대회 같은 행사나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 조성 같은 것도 일종의 특화된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 포항시가 만든 `영일만친구`라는 농수산물 공동 브랜드도 마케팅의 일환이며, 해맞이축제나 불빛축제 같은 축제행사도 따지고 보면 마케팅 전략이다.그러나 포항시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호랑이를 활용한 마케팅이다. 포항에는 `호랑이 꼬리` 상징의 호미곶이 있다. 한반도의 지형이 만주를 향해 포효하고 있는 호랑이 형상이라면, 동해로 돌출한 구룡포·호미곶 일대는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종 홍보물에 한반도 지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그린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像圖)를 제시하고 있다.하지만 이것뿐이다.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 호미(虎尾)라고 해서 호랑이 꼬리만 강조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호랑이를 활용하여 지역을 알리고 관광상품을 개발하려는 노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캐릭터도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마케팅이 따라야 한다.지역 마케팅은 일종의 이미지 싸움이다. 그러기에 요즘 각 지자체는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활용한 이미지 개발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고, 특정 이미지 선점을 위해 별의별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영천시는 보현산에 천문대가 있다고 해서 별빛촌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쓰고 있다. 기발한 근거를 들이대며 고전소설의 주인공 심청의 고향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홍길동의 출생지도 창작하다시피 하여 관광자원화하는 고장도 있다.호랑이를 활용하는 곳도 이미 생겼다. 상주시는 지역의 특산물인 곶감을 홍보하기 위해 전래동화 `곶감과 호랑이` 속에 나오는 호랑이를 캐릭터로 만들어 활용하고 있고, 울산시는 최근에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져 있는 조그마한 호랑이 그림에 착안해 호랑이 생태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하지만 호미곶이라는 좋은 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포항시의 경우를 보면 안타깝다. 이렇게 미적미적하는 사이 타 지역에 호랑이 이미지를 뺏기고 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오죽했으면 관광객을 안내하고 포항을 홍보하는 일을 하는 지역의 문화관광해설사가 나섰을까? 포항시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혜욱 씨는 최근에 포항시 지도를 면밀히 관찰해 포항의 지형이 호랑이 형상이며, 호미곶이야말로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이를 캐릭터로 만들어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했다. 이 캐릭터를 보면 한반도 지도가 아니더라도 포항의 지도만으로도 포항은 호랑이 모습이고, 호미곶은 확실히 호랑이 꼬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김 해설사는 호미곶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이곳이 호랑이 꼬리라는 사실을 각인시킬 수 있는 조형물을 만들고, 호랑이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호랑이 관련 기념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우리에게 친근한 호랑이를 활용한 마케팅은 매력이 있다. 호랑이 마케팅으로 포항이 뜨는 날을 기대해 본다.

2018-03-05

교육청이 놓치고 있는 학교의 기능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동네 할머니께서 손가락을 다치셨다고 오셨어요.” 운동장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교무실 문을 황급히 열고 들어 오셨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아주 낯익은 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아이고 이거 미안해서 어야닝교? 주변에 사람이 없었어, 학교에서 준 약이 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고…. 그래서 그냥 학교에 왔니더.” “할매요, 잘 오셨니더. 많이 놀라셨지요.” 할머니께서는 학교에서 나눠드린 구급약통에 있는 붕대로 왼쪽 두 번째 손가락을 감싸고 있으셨다. “할매요, 상처가 어떤지 볼게요. 어떻게 하시다가 다쳤닝교?”말(言)이 그리우셨던 할머니는 소녀처럼 많은 말을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불을 지피려고 불쏘시개를 마련하기 위해 종이 박스를 낫으로 뜯다가 다치셨다고 하셨다. 붕대로 감긴 손가락을 살펴보기 위해 건네받은 할머니의 손은 마치 기름기가 다 빠져 누렇게 바랜 역사책 같았다.할머니의 상처는 꽤 깊었다. 다행히 지혈은 되었지만 최대한 빨리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께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도록 부탁드리고 가장 가까이에 사는 할머니 가족께 연락을 드렸다. 할머니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시고 병원으로 가셨다. 가족을 만나 병원 진료를 받으신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는 순간 필자는 공교롭게도 `농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가속화`라는 기사를 보고 있었다. 단순 경제 논리에 의한 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는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다. 그런데 경제 논리는 통폐합 반대보다 찬성 쪽에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많은 학교들이 없어졌고, 또 없어지고 있다.시대가 변하면서 사회 많은 분야의 정의와 기능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맞춰 사회 각 분야는 발 빠르게 변화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예외가 있다. 그곳은 바로 절대 변화지 않는 철옹성(鐵甕城)같은 학교이다. 이런 학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뻔뻔스러운 학교는 더 철저하게 변화로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필자는 그 이유가 학교 내부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간단하다. 학교를 담당하는 내부 사람들을 변화 시키면 된다. 그리고 교육의 수장(首長)을 바꾸면 된다. 다행스럽게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6월 교육감 선거다. 이번 교육감만큼은 지금의 정부 인사들처럼 과거에만 집착하는 사람을 절대 뽑아서는 안 된다. 특히 대안학교를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한 학교로 생각하는 후보들은 더더군다나 안 된다. 그 사람들이야 이 나라 교육을 병들게 하는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학교 기능을 포털 서비스에서 검색하면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물론 이 내용이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한 번 즈음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어 잠시 인용한다. `문화유산 전달 기능, 새로운 문화 창조 및 보급 기능, 인력자원 개발 기능, 사회경제적 지위 결정의 기능, 지역사회의 발달(개선, 개혁) 및 복지실현의 기능` 과연 우리나라 학교의 기능은 무엇일까?산자연중학교에는 마을과 학교가 함께하는 마을 학교 프로그램이 있다. 마을 학교는 위에서 인용한 학교의 기능을 종합해 놓은 학교이며, 특히 문화유산과 지역 사회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산자연중학교의 교육 활동은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들어간다.대통령은 물론 경상북도 교육청이 외면하고 있는 대안학교 학생들을 위해 산자연중학교 재단인 천주교대구대교구가 발주한 교실 신축·증축을 위한 기공식이 지난 해 11월에 있었다. 잃어버린 교육 본연의 기능을 되찾고, 또 교육감 후보들이 그것을 제대로 알고 꼭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공식에서 마을 어르신께서 하신 축사를 전한다.“학교는 우리 마을의 얼굴입니다. 학교 발전이 곧 마을의 발전입니다.”

2018-02-28

방송작가 노조 출범의 의미

▲ 김은주 방송작가2000년대 초반, 대학원 수업 중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대구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던 지인이 방송국 내에서 작가 노조를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때만 해도 프리랜서인 방송작가들이 노조를 만드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다. 여성의 비중이 높은 방송작가들의 노조 조직은 최초이었고, 여성학과 대학원 수업에서 여성화된 직종이 가지는 저임금 등의 문제와 함께 방송작가 노조의 의미에 대해서 한동안 수업 중에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필자의 지인은 방송작가 노조를 만드는 일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가 되고 말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가 되었다면 메인 뉴스도 될 정도의 아이템이고 기삿거리지만 방송국 내에서 벌어진 작가들의 대량 해고 사태는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노조를 조직하다 작가들이 해고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후엔 시도조차 어려웠을 것이고, 작가들에겐 노조는 그저 남의 이야기, 방송 아이템으로만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영남지역 작가들의 대량 해고 사태는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필자의 지인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해고가 되고 그 다음해인 2005년 필자는 신문사 기자에서 방송작가로 전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로 특수고용직의 형태다. 작가들이 몇 번이나 퇴직금 소송을 했지만,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는 뉴스를 종종 보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점에서 자포자기했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순전히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일을 하고 있는데, 노동자가 아니고,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지는 어디에 문의를 해야 하는 것일까?그런데 전국 각지에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방송작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언론노조 산하에 방송작가지부가 출범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전국에 1만 명의 작가를 대표하는 노조를 출범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다시 실패하고 좌절할 것이라는 게 너무나 명백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우리가 해냈다.그동안 방송에서는 비정규직의 문제나 우리 사회 노동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야기했다. 뉴스로 만들고 다큐로 제작하고, 시사 정보 프로그램의 아이템으로 다뤄왔다. 그 많은 일을 방송작가들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작가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선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작 방송작가인 우리 역시나 우리 문제에 대해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낮은 목소리지만, 노조 출범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노조 출범 이후에 전국 단위로 흩어져 있는 작가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역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사업장 마다 이해 관계가 달랐다. 좀 더 촘촘한 조직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난 24일에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산하에 전국 최초로 영남지회가 출범을 했다. 이번 영남지회 출범식에는 대구 지역 방송국의 전폭적인 후원과 지지로 이루어졌다. 2000년대 초반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작가가 해고되었던 것에 비하면 노조 출범에 지역 방송국의 지지를 받는다는 게 감회가 새로웠다.필자는 영남지회 출범식을 지켜보면서 십 여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작가 노조를 이야기 했던 언니의 목소리와 표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그때 당신들의 노력이 오늘 우리에게 마중물이 되어 돌아왔다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뭉클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지면을 빌어 고마운 인사를 대신한다. “선배님들 고맙습니다”

2018-02-27

청년여성의 취업, 지역사회와 기업이 함께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그동안 경기 및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일자리 창출력이 약화돼 고용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앙정부, 지자체, 대학, 기업지원기관 등 각계에서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현실 체감도가 높지 않은 실정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 전환기에 놓여 있으며, 그 변화의 핵심이 일자리 변화이다. 사회 경제적으로 기술의 진보와 함께 일자리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 많은 직업이 사라짐과 함께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인간의 역량을 필요로 하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이젠 근본적인 일자리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를 고민해야 한다. 그 중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부분은 고령화 사회에 따른 여성 그리고 청년 일자리이다. 2060년이 되면 세계인구의 9.3%가 고령화 인구로 구성되고, 유소년의 인구비중은 20.5%로 감소함과 동시에 청년 실업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통계청, 2016). 청년 실업이 단순 고용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주거·교육·문화·건강 등의 영역으로 불평등을 대물림할 우려가 있다. 현재 중장년층의 경력직 위주의 고용은 약간 증가하는 반면에 내수경기 부진, 구조조정 등으로 청년층의 취업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구조적·제도적 측면에서는 대학진학률 상승으로 일자리 미스매치가 심화되면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고학력 실업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된 가운데 청년층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한 것도 청년층 고용사정 악화의 주요 요인일 것이다. 한편,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화된 노동시장에서 청년여성을 양질의 일자리로 끌어올리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여성들은 결혼이나 출산이라는 변수에 의해 경력단절여성이 되거나 비정규직으로 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청년여성을 대상으로 한 재정지원 확대, 일자리 정보제공 및 고용지원, 다양한 취업연계 정책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임시적이고 저임금·단기 위주의 일자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직과정에서 성별, 연령차별의 이중 고통을 겪고 있는 청년여성의 고용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에 대한 방안을 살펴본다. 첫째, 청년여성은 과거직장에서의 임금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임금수준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성이 경력단절을 경험한 이후에는 임금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므로 청년여성의 경력단절예방이나 경력관리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둘째, 청년여성인력 채용을 위해 필요로 하는 정책은 채용 직원의 급여에 대한 지원, 기업의 선택적 복지비용 지원과 육아지원 프로그램 제공과 같은 경제적 지원이다. 또한, 기업내 여성근로자의 최저임금 준수,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취업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 청년, 여성, 고령층인바, 이중적인 취약성에 노출되는 청년여성에 대한 특별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정책대안 마련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일가정 균형 지원 프로그램 및 최저임금 준수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등을 검토하여야 정책 효과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고학력 청년여성을 대상으로 한 진로 및 취업상담이 필요하다. 취업연계 1:1 맞춤 진로상담, 해외취업 지원서비스 등과 같은 청년여성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청년여성 진로상담 및 취업연계 관련 실무교육 후 기업으로 취업하여 고용창출의 성과가 극대화 할 수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2018-02-26

진주 졸업식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박자 감각이 절대적으로 떨어지는 필자이지만 그래도 2월이면 간혹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다.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중략)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중략)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아마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바로 졸업 노래다. 이 노래 가사 중 필자는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라는 부분을 특히 좋아한다. 많은 것을 잊거나 잃어버리고 살지만, 이 부분을 부르며 혼자 코끝을 찡해하던 초등학교 졸업식 모습을 필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때 감정을 온전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어린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의 의미가 정말 크게 다가 왔었다. 어쩌면 그 때의 추억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모습들이 지금은 영화 속에나 나옴직한 장면이 돼버렸다.감동을 죽이는 사회여서 그런지 지금의 졸업식에서는 감동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감동은 고사하고 사람들의 눈살만 찌푸리게 만드는 졸업식은 졸업생들은 물론 학부모, 교사들에게도 형식적인 행사가 돼버렸다.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빛나는 졸업장이 사라진 현대판 졸업식, 참 씁쓸하다.졸업의 의미가 사라지면서 학교의 의미도 사라지기 시작했다면 너무 과할까.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결코 과하지 않다. 왜냐하면 졸업식이 의미를 잃는다는 것은 곧 졸업의 가장 큰 의미인 감사함과 희망이 학교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졸업을 하면서 교사와 학교에 감사함을 느끼는 학생과 학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이 졸업한다고 아쉬워하는 교사는 또 얼마나 될까? 감사와 희망의 마음은 감동을 낳고, 그 감동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눈물로 전달이 되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던 졸업식. 그런 졸업식이 있던 시절의 학교는 참 따뜻했다. 그런데 지금은?필자는 지난 주 포항에 있는 한 중학교 졸업식에 다녀왔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마치 위쪽에서 내려 온 사람들에게 주인 자리를 빼앗겨버린 동계 올림픽 같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전교생이 참석한 졸업식은 보기 어렵게 됐다. 도시의 큰 학교일수록 그런 현상은 더 하다. 필자가 참석한 졸업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졸업식 장에서 재학생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졸업생들의 모습에서 서운함이나 아쉬움, 감사함 같은 것은 더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같은 학교 교사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님처럼 어슬렁거리면서 가장자리에서 졸업식을 구경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어휴, 애들은 빨리 집에 보내는 게 상책이야” 구경꾼이 된 교사들 입에서 나온 말이라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교사라는 것이 부끄러웠다.산자연중학교에도 지난 주 졸업식이 있었다. 물론 전교생이 다 참석한 졸업식이었다. 식순 중 졸업생이 부모님에게 감사장을 전달하는 순수가 있었다. 감사장은 학생이 직접 작성하고, 또 직접 낭독하고, 그리고 부모님께 직접 전달했다. 학생들은 감사장의 첫 글자를 읽기도 전에 목이 잠겼다. 감사장을 낭독하는 내내 학생과 부모님의 눈에는 진주보다 더 영롱한 눈물이 흘렀다.삭막해져만 가는 졸업식이 졸업의 참 의미를 되찾는 진주 졸업식으로 바뀌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한 학생의 감사장을 소개한다.“어머니께서는 제가 힘들 때마다 저를 위해 밤을 새우시고 저의 옆을 지켜주셨습니다. 항상 저를 위해 모든 걸 포기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어머니, 너무나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니가 되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잘 살겠습니다. 위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기 위해 부모님께 이 감사장을 드립니다.”

2018-02-23

영남미술과 대한민국전람회(國展)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일제강점기와 광복,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비롯된 남북분단이라는 질곡의 근·현대 역사는 봉건사회의 몰락과 근대국가 형성이라는 과정 속에서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적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체계적으로 반영되지 못한채 관념적인 서구의 자본주의 형식과 문화양식만을 쫓아가는 우려를 범해 왔다. 만약 우리민족이 가지는 문화공동체 삶의 방식이 민족국가 형성에 결부되어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접목되어졌다면 우리의 삶과 문화적 감성은 더욱 풍요로워졌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우리 고유의 전통양식과 합리적인 서구양식이 예술이라는 광의적 개념 속에 조화롭게 융화되었다면 우리의 문화예술은 창의적 발전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났을 것이라고 생각된다.그 중 시각예술의 중심이 되었던 일제강점기 `조선미전`과 광복 이후 개최되었던 `대한민국전람회(國展·국전)`은 한국미술의 중심에서 중요한 역할과 영향력을 주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연구와 체계적인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지난 1월 국전에 대한 심도 깊은 전시와 학술세미나가 경주에서 개최되어 학계의 비장한 관심을 모았다.이는 21세기 시각에서 20세기 한국미술의 중심에 있었던 국전과 참여 작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국전이 가졌던 문제점과 긍정적 요소를 함께 고찰해 보자는 취지였다. 돌이켜 보면 한국 미술계의 절대 권력과 정부가 보장하는 조건들을 충족시켰던 국전 출신의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 과연 몇 명이 현재 우리 미술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가는 논제는 퍽이나 흥미로운 내용이 된다.21세기 미술은 공모전의 성적으로 작가의 지위와 명성으로 평가되기 보다는 미술시장에 의해 지배되어지는 환경적 변화를 피부로 느끼는 시대를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 내고 있다.이처럼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식과 자기표현의 방식 속에서 영남을 비롯한 비수도권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작가들은 신진작가의 공인된 등용문이며, 입상자들의 작품발표 기회와 더불어 콜렉터, 화랑관계자들과의 원활한 정보 교류 등 여러 가지 효과에 대한 집착을 무시할 수는 없는 전람회로 국전을 인식하고 있다.공모전 심사과정에서 생겨났던 다양한 부정적 요소와 이로인해 국내 미술계에 끼친 부정적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지만 대구·경북 미술이 가졌던 위치와 이러한 활동이 현재 영남화단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는 무척 고무적이었다.1922년부터 1944년까지 23년간 운영된 조선미전을 통해 국내미술계에 두각을 나타낸 미술인들은 서울, 평양과 함께 대구·경북 화가들이 당연히 돋보였으며, 1949년부터 1980년까지 진행되었던 국전`역시 대구·경북 화가들의 저력과 뛰어난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공간으로는 더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고 본다. 물론 150여 년 전 프랑스의 `살롱전`을 통해 공모전 제도의 문제점과 한계를 나타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창의적인 작가 발굴과 등용문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새로운 규정을 보완하며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역사적으로 공모전의 한계와 폐단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으며, 서양에서도 제도적 모순에서 비롯된 크고 작은 사건들이 현대 미술사를 장식해 왔다. 영남미술의 전통과 새로운 가치를 찾아 한국미술을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는 이러한 국전에 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2018-02-20

설, 안부를 묻는다

▲ 최부식 시인·포항문인협회장입춘 맹추위가 겨우 물러간 섣달 그믐께다. `평창 동계올림픽` 열기가 달아오르고 코앞이 설인데, `톡 톡, 탁 타닥 탁….` 이러저러한 연유로 고향에 가지 못함을 스마트폰 문자로 미리 알리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귀성객들이며, 회사가 전세버스를 마련하고 선물보따리도 잔뜩 안겨서 잘 다녀오라며 공장직원들을 배웅하던 모습. 50·60대 이상인 분들이 기억하는 설 귀성풍경이다. 이 세대는 친구들과 양달진 흙담벼락에서 시린 손 호호 불며 겨울볕 쬐었고, 흐르는 콧물 닦아 내남없이 소매가 반지르르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처녀 총각에 이르러서는 서울로, 울산공단으로, 중동에 이르기까지 천지사방으로 흩어져 생의 일터를 일구다 보니 어언 60에 이르고 칠순을 훌쩍 넘겼다.그리고 이제는 추사의 말처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녀손자가 모이는 일(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이라면서 `나갔던 빗자루도 집 찾아온다`는 섣달그믐 이전부터 자식들이 설에 오기를 기다리고 꿈을 꾼다.하지만 그런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아들·딸들은 저마다 일터의 상황, 살림 형편으로 설이 되어도 고향에 오갈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연휴에도 여전히 일해야 한다. `나홀로족`, `1인가구` 등 개인화된 가족형태에, `공시생`이니 `취준생`이니 해서 부모님께 늘 미안해하는 젊은이들도 숱하기 때문이다.이런 시대고 세태에 장·노년층도 시대와 형태는 다르지만 익히 겪었던 일이라 자녀들의 상황, 젊은 층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본다.그래도 아쉬워 `톡 톡, 탁 탁` 침침한 눈으로 한 자 한 자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려 안부를 조심스레 묻는다.그러면 자녀들은 `톡톡톡 타다닥 톡톡`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고 싶은데 일이 바빠서요`, `좋은 과일 택배로 부쳤습니다`라는 등 응답을 할 것이다. 물론 자판보다 음성으로, 화상으로 외국까지 실시간으로 안부를 묻는 시대라서 앞서 말한 상황들은 어른 세대의 아날로그식일 뿐이다.인터넷, SNS 시대다. 디지털 기기 덕분에 설 명절의 시·공간도 실시간이고 좁혀졌다. 아무리 멀리 있고 흩어져 있어도 인터넷, SNS로 안부를 전하고 묻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또한 풍요로운 시대다.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하지 않다. 김 한 장을 잘게 나눠 상에 올리고, 형제자매가 많아 설빔을 물려받아 입던 때도 아니다. 해외에 나가 제사상 차리는 판이라 조상들도 덩달아 해외 나들이하는 시대고, 넘쳐나는 옷으로 아이들도 때때옷이 뭔지 모르는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안부를 묻든 젯상을 들고 해외로 나가든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많은 시대다.설이란 무엇일까? 옛날, 사라진, 낡고 닳은, 낯익은 것들이 명절이게끔 하지 않을까? 설은 옛날과 지금이 만나는 아날로그 시·공간이다.조상의 이름으로, 가족의 이름으로 모여 오랜만에 콧김 내뿜으며 서로의 훈기를 느끼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세배 올리면 노부모는 눈시울 적시다가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어여 먹어라. 많이 먹어라`면서 주름진 웃음이 환히 번지는 날이다. 설날은 가족이 함께 따신 밥 먹는 날, 세상에서 가장 좋은 만남이다.그렇지만 여러 여건상 온가족이 한 상에서 같이 밥 먹기 힘들다. 이럴수록 우리는 서로 더 안부를 물어야 한다. 디지털 방식이든 아날로그 방식이든. `얘야! 잘 하거라. 너를 믿는다.`, `보고 싶고 가고 싶지만…,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안부를 물으며 세상살이 힘을 얻는 설이 눈앞이다.

2018-02-14

수구초심

▲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맹추위가 마음까지 얼어붙게 하던 날, 친구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선배를 만났다. 삼십여 년 세월동안을 함께 교직에 근무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퇴직을 하였으니 자연스레 퇴직 후 인생2막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고, 서로 공감하며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릴 즈음 그 선배가 문득 기회가 되면 애향심을 고취할 수 있는 글을 한 번 써보라고 권했다. 필자나 그 선배나 여기서 나고 자라 이 땅에 묻힐 마음으로 60년이 넘도록 머물고 있으니 고향사랑이 지극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향사랑에 대한 감성적 접근은 설날을 앞두고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음악이거나 타향살이의 그리움쯤으로 생각했지 직접 글로 써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선배의 권유를 듣는 순간 뜬금없이 `바퀴벌레와 호남향우회`가 머릿속에 떠올랐다.바퀴벌레는 몹시 혐오스런 동물이라 기분 나쁜 비유에 많이 사용되지만 그 질긴 생명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먹이와 물도 없이 한 달 동안을 죽지 않고 견디기도 하며, 공기가 없는 곳에서도 45분 동안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끈질김을 소재로 한 유머에 바퀴벌레가 단골로 등장한다.오래된 기억들이라 정확하지는 않으나 `세상이 멸망해도 살아남는 것들` 시리즈에 `바퀴벌레와 아줌마`나 `바퀴벌레와 호남향우회` 등을 유머라며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자칫 특정계층이나 지역에 대한 무례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그런 의도가 전혀 없음은 물론이며, 특히 이 글에서는 긍정과 부러움의 의미로 차용하였으니 오해 살 일은 없을 것이다. 향우회의 대명사가 된 호남향우회의 지역사랑은 단순한 감성의 영역이 아니라 소신과 신념을 기반으로 한 철학의 범주로 인정되니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지 않는가! 필자가 대학시절에 함께했던 `갯벌향우회`가 떠오른다. 포항출신 대학생들의 모임이었는데, 객지생활의 외로움과 고달픔을 달래는 심리적 기능은 물론이고 정보교류나 품앗이 등으로 매우 유용하였다. 그 바탕이 고향에 대한 믿음이요 고향사람에 대한 신뢰다. 명절이나 방학이 되어 귀향 시, 버스 차창으로 형산강을 만나고 형제산 사이로 멀리 포스코의 불빛이 보이면 어찌 그리도 반갑고 마음이 놓이던지….지금 언론에선 평창 동계올림픽 소식이 한창이다.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귀한 올림픽이다. 88올림픽은 우리나라가 종합 4위를 차지하여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우리 문화도 함께 알리는 계기가 되어 국민들에게 큰 자부심을 선사하였고, 애국심으로 만들어낸 쾌거였다.애국심과 애향심은 동심원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소식을 보다가 늦게 잠들어 단잠에 빠진 새벽, 규모 4.6의 지진에 놀라 잠을 깼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를 새삼 성찰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였으며, 내 고장 포항에 대하여 다시 걱정하게 되었다. 지역의 공직자와 정치인들은 황급히 현장을 찾았고, 놀란 이재민들은 그들에게 격렬한 항의와 질책을 퍼부었다. 시민들이 공직자들의 노고를 왜 모르겠는가? 땅속의 일을 그들인들 어찌 알며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안전한 포항, 살기 좋은 포항을 만들자는 마음은 하나일 것이다.지난 추석에는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이번 설날에는 꿈틀로 작가들의 전시회가 고향을 찾는 `포항사람들`을 기다린다. 포항은 영원하다.

2018-02-13

내 아이의 꿈은 안전한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다음은 어느 설문 조사의 결과이다. 무엇을 조사하기 위한 설문조사인지 같이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1위 교사, 2위 경찰, 3위 의사, 4위 운동선수, 5위 요리사”혹시 감을 잡으셨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2017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 중 중학생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 초중고 학생들은 10년 전이나 후나 가장 선호하는 직업으로 교사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나라의 미래를 좀 먹는, 그리고 이 나라 갈등의 주범인 정치인은 순위에 없다는 것이다.자료를 조사하다 재밌는 자료를 찾았다.그것은 일본 소니 생명에서 일본 중고등 학생 1천 명을 대상으로 `중고생이 그리는 미래에 대한 의식조사 2017`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다. 그 중 일본 남자 중학생들의 설문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1위 IT 엔지니어·프로그래머, 2위 게임 크리에이터, 3위 YouTube 등의 동영상 제작자, 4위 프로 스포츠 선수, 5위 엔지니어(자동차 설계 등)” 2007년 진로 현황 조사 이래 우리나라 학생들이 부동의 1위로 선택하고 있는 교사는 9위였다.양국의 설문 조사 결과를 어떻게 비교하고 해석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양국 청소년들의 인식 차가 크다는 것이다. 단순하게만 보더라도 일본 학생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4차 산업사회를 인식하고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물론 사회 문화적 차이도 있겠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이다. 일본의 교육 시스템을 논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부와 정부는 뭔가를 해보겠다고 계속 쇼를 하지만, 그럴수록 교육계의 시계는 더 빠른 속도로 거꾸로 가고 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실력 없는 의사의 최선은 환자에게는 오히려 독이다”라고. 이 말을 교육계에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의욕만 넘치는 미생의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으로 만들어내는 교육 제도들은 오히려 한국 교육을 괴멸시킨다.”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지만 과연 이 나라 교육의 변화 정도는 어떨까? 사회 여러 분야 중에서 변화를 주도해야 할 곳이 교육이다. 그만큼 교육은 변화 속도가 빨라야 한다. 속도만 빨라서 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나라 교육은 변화와는 가장 거리가 먼 대상이 되어 버렸다. 또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기는커녕 사회 변화를 방해하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유독 왜 우리나라 교육만 이 모양이 되었을까.정권 유착, 그로 인한 잦은 교육 정책의 변화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사들이다. 지금 이 나라 교사들에게서 사명감, 사도(師道), 헌신과 같은 말을 찾기는 어렵다. 그 자리에 철 밥통이라는 말이 자리한 지는 꽤 오래다.어쩌면 우리 학생들이 교사가 되겠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최고의 철 밥통은 분명 매력 있는 직업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교권이 무너졌다고는 하나 그래도 아직까지 이 나라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의 분위기가 남아 있으니 적당히 폼도 잡을 수 있으니 어련할까 싶다.누군가가 말했다, “지금의 교육은 다양한 천재들을 죽이고 있다”라고. 진로를 강요받는 우리 학생들의 꿈이 위험하다.

2018-02-08

안전은 문화다

▲ 박창원 수필가지난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대형사고가 줄을 잇는다. 영흥도낚시어선 전복사고, 제천스포츠센터화재, 밀양세종병원화재가 그것이다.대형사고가 정권의 기반을 무너뜨린 예가 있기에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집권초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잘 나가던 문민정부가 성수대교상판붕괴를 신호탄으로 대구지하철가스폭발, 삼풍백화점붕괴 같은 대형사고의 연속으로 민심을 잃었다. 바로 앞의 박근혜 정부의 몰락도 세월호 침몰사고가 도화선이 됐다.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가? 문재인 정부는 통상적으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설 만한 사안이 아닌데도 사고 현장으로 곧장 달려가는가 하면 국가위기관리센터를 가동하기도 했다. 제천화재, 밀양화재 같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수반하는 화재를 접할 때마다 2003년 12월, 대구 용계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역까지 간 일이 떠오른다.그 해 2월, 중앙로역에서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화재참사가 난 후 무려 열 달 동안이나 동대구역에서 교대역까지는 열차가 다니지 못했다. 화재 현장의 복구 문제, 시설물의 안전 문제, 거기에다 희생자 가족의 정신적 상처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대구지하철은 불구가 돼 있었다. 하계유니버시아드가 열린 기간(8월21~31일)에도 정상화되지 못했고, 12월에야 운행이 재개되었다기에 긴장된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다.대구 도심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오만 생각이 들었다. 칠성역을 지나 대구역에 도착했다. 불이 났을 때 그 전동차가 이 역을 출발하지만 않았어도…. 대구역을 떠난 전동차는 중앙로역에 정차하지 않는다는 짤막한 안내방송만 내보내고는 반월당역까지 서행했다. 중앙로역은 어디가 역인지 분간도 안 될 정도로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눈을 감았다. 방화, 화염, 고함, 정전, 유독가스, 비명…. 불구덩이 속에서 벌어졌을 것 같은 온갖 장면들이 눈 속에서 어른거렸다. 불난 전동차 안에 갇혀 가족에게 거는 휴대전화 음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듯하고, 매캐한 냄새가 콧속으로 전해오는 듯했다.`사고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고가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 일련의 공식 같은 게 느껴진다. 경찰은 곧바로 사고 경위 조사에 들어간다. 담당부서에서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했나, 소방점검은 제때 했나, 공무원이 업자에게 뇌물을 받지 않았나 하는 조사를 하게 되고, 관련자 몇몇은 반드시 구속된다. 언론은 사회에 만연돼 있는 위험불감증을 질타하면서 사고의 문제점을 분석하느라 야단법석을 떤다. 그렇지만 몇 달만 지나 보라. 몇 달만 지나면 이런 일쯤은 저만치 비켜 있는 망각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안전이란 것은 인명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안전의식이라는 것도 국민 의식 수준에 다름 아니다. 수 년 전 미국 동부에 허리케인이 접근하고 있었다. 동부에 거주하는 처남 가족이 걱정되어 전화를 했더니, 허리케인 오기 이틀 전부터 모든 학교가 휴교 중인데, 허리케인이 처음의 예보와는 달리 그쪽으로 오지 않을 거란다. 우리라면 어떨까? 태풍이 몰아닥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해야 대피령을 내리고 휴교도 한다. 오지도 않는 태풍이 겁나 이틀씩이나 휴교했다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거다.안전이란 것도 결국 문화다. 참사를 당한 후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제도를 넘어 생활 속의 문화로 정착되어야 우리 사회는 비로소 안전해질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제 승용차를 몰고 포항시내에 나갔다가 아이 손잡고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용감한` 아주머니를 봤다. 조금 뒤 3명의 청소년이 안전모도 없이 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모습도 봤다. 저렇게 배우고 자란 아이들이 기성세대가 되는 그 날도 `안전 대한민국`은 기대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2018-02-06

우리의 미투 선언

▲ 김은주 방송작가얼마 전 생방송 뉴스에서 현직 여검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인터뷰한 것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 인터뷰는 피해자 신분이 노출 될 것을 우려해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음성변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인터뷰는 피해자가 당당하게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밝히고 생방송 뉴스인터뷰에 나왔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검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엔 충분했을 지도 모른다.흔히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 유발론과 가해자 온정주의가 동시에 작동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뉴스 인터뷰 이후에 여성 정치인의 미투 선언과 함께 정치권에 진출하려고 한다 또는 인사상 불이익은 그녀의 자질 때문이었다는 악성 루머도 동시 다발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최근 미국 할리우드의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초로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여배우들 뿐만 아니라 성추행을 경험한 유명 여배우들이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하지만 미국에서 불고 있는 미투 운동만 보면 성폭력 사건의 주변인들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피해 당사자에게 미투 선언을 통해 지지를 하는 것과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피해자 유발론의 입장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서지현 검사 역시 검사라는 위치에 있지만,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돌이켜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 데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며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한 인터뷰는 큰 울림을 주고 있다..필자는 공공기관 등에서 폭력예방교육을 하는 전문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대부분 일회성 강의로 폭력예방교육을 전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감당해야 한다. 얼마 전에 포항의 한 공공기관에 강의를 갔는데, 어떤 분이 상담할 내용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동료 남직원이 여자직원의 모함으로 불명예 퇴직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남자 동료는 퇴직을 불과 2년을 앞두었는데, 친밀감의 표현으로 한 스킨십을 두고 젊은 여자 직원이 문제제기를 해서 불명예 퇴직을 했다며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아니 딸 같고 가족 같아서 그런데 이렇게 예민하게 굴면 앞으로 직장생활 같이 하기도 어려운 거 아닌가요?” 그 분은 불명예 퇴직한 남자직원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해 연신 억울한 퇴직이라며 항변했다. 역시나 가해자의 잘못보다는 피해자에게 문제의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성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변인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의 경우엔 권력 관계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리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조직 내에 상하 관계가 명백한 상황에서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가해자에 대해선 “남자가 술에 취하면 그럴 수도 있지, 예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는 식의 온정주의가 팽배한 반면 피해자는 쉽게 꽃뱀화 되기 때문이다.우리는 성폭력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는 것도 어려워한다. 그렇다면 피해자에겐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리고 전 국민이 다 지켜보는 생방송에 출현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힌다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들겠는가? 상상조차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불편할 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계속 그런 이야기를 듣고 불편해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미투 운동이 이어져 피해자가 더 이상 숨지 않는 그런 사회가 가장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마지막으로 서지현 검사님의 용기있는 미투 운동을 지지하며, 연대의 뜻을 보낸다. #ME TOO.

2018-02-05

노(NO)답 한국 교육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 주말 전입학을 위한 학생 학부모 면접이 있었다. 서울, 대구, 울산, 부산 등 전국에 주소지를 둔 학부들이 자녀의 전입학을 위해 기꺼이 산자연중학교를 찾아주셨다. 면접에 참가한 학부모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존경과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중학교인데 무슨 면접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산자연중학교는 지역에 있는 중학교와는 달리 학생들을 선발하는 전국단위 학교이어서 학기말에 선발을 위한 전형을 실시한다.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鼓舞的)인 일이며, 지원 학생 수는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학생들의 증가 속도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면서 축하의 인사를 건네지만, 공교육 전체를 생각하면 결코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산자연중학교 지원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공교육이 그만큼 제 기능을 못하고 있음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필자는 학부모들과의 면담에서 늘 그것을 확인한다. 사실 말이 면담이지 언제나 공교육에 대해 질책을 받는 자리이다. “아이 다니는 학교만 생각하면 욕이 나옵니다!”라는 학부모와의 면담은 한국 교육의 성토 자리가 된다.몇 해째 계속하는 면담이지만 학부모들의 격앙된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국 단위의 학교이다 보니 필자는 전국에 계시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다 들을 수밖에 없다.안타까운 것은 공교육에 대한 불만이 어느 한 지역만의 일이 아니라 전국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유독 올해는 학부모들의 목소리가 컸다.“애들은 자든지 말든지 내버려두고 선생 혼자 수업하는 게 어디 수업입니까. 그리고 질문이 많은 아이들한테는 공부하는 아이들한테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자라고 한답니다. 혹시나 자다가 도저히 못 자겠으면 교실에서 나가라고 합니다. 아직도 성적으로 애들을 착한 학생과 문제아로 나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이즈음 되면 그 선생님과 일면식도 없는 필자는 죄인이 된다. “말이 좋아 자유학기제지 부모 등골 빼는 거 아닙니까. 한 학기동안 실컷 애들한테 헛바람만 넣어 놓고 2학년 올라 와서는 옛날하고 똑같이 하는데 애들이 어떻게 적응하겠습니까? 이제는 자유학년제까지 한다고 하니 순진한 건지 아니면 교육 현장의 모습을 정말 모르는 건지 답답할 노릇입니다.” 억지 적폐만 생각하는 교육 당국자들이 이런 학부모님의 하소연을 알기나 할지?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대안학교에 지원하는 학부모들에 국한된 사실이며, 그것을 교육계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또 누군가는 학교에서 실시한 영혼 없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여주면서 필자를 비판할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교육과 관련한 제도들은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교육 현장의 모습은 별반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많은 학교에서 개학을 했거나, 방학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세상은 물론, 교육계가 개벽할 것 같았던 2017년 과연 우리 학생들의 겨울 방학 모습은 어떠했을까. 사교육의 상징인 미니버스들이 사교육방지법을 비웃듯 더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지난주 면접실에서 학부모들이 한 말들이 결코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답이 없는 이 나라 교육계에 어느 학부모님의 산자연중학교 지원 동기를 전한다.“선생님, 우리 아이는 절대 공부 잘 하는 괴물로는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2018-02-01

인간은 더 인간답게 변해야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소피아(Sohpia)`는 홍콩의 핸슨 로보틱스(Hanson Robotics)에서 만든 인간처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로봇이다. 소피아는 시작부터 주목받는 로봇이었다. 핸슨 로보틱스의 설립자인 데이비드 핸슨 박사가 CNBC 방송에서 공개한 동영상에서 “인류를 파멸하고 싶으냐”는 박사의 질문에 소피아는 “그렇다”고 대답해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2016년에 열린 한 토론회에서 사람들이 소피아에게 지금 느끼는 감정을 묻자 소피아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배우면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로봇이 느낌을 말하다니…. 어찌 보면 섬뜩한 일이기도 하지만, 소피아는 포스트 휴먼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로봇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사는 세계가 포스트 휴먼 시대가 아니던가.얼마 전 소피아는 사우디 시민권을 획득했고, 영국 잡지의 표지 모델을 했고, 걷는 연습을 한다고 한다. 조만간 한국을 방문 중이라고 하니 웬만한 유명인사보다 바쁜 공식 일정을 보내고 있는 로봇이다. 그녀의 발언은 울림도 크고, 집중도도 높다.2017년 `로봇 인류`로서는 처음 UN 회의에 참석하고 발언권을 얻은 소피아는 모하메드 부총장이 “인공지능이 인류보다 나은 게 뭐냐”는 질문에 “인간이 본능적으로 깨닫는 사회적이고 정서적인 지능들을 저는 이제야 겨우 이해하는 수준이라 아직 여전히 많이 배우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녀는 인간이 지닌 겸손함마저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부총장은 또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도, 전력도 없이 살고 있는데 UN이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묻자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결과를 내는 인공지능의 장점을 `상생`이라는 가치에 집중한다면 기존의 자원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녀의 생각은 객관성을 지니며 가치중립적이기까지 하다.`상생, 자원의 공평 분배`를 생각하는 기계인간 소피아. 인간에게 점점 더 가까워져 오는 것 같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포스트 휴먼 시대를 사는 휴먼들이다. 1992년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는 몸의 분리와 재조립으로 자아의 해체와 재구성을 거듭하는 포스트 휴먼, 과거, 현재, 미래의 공존을 통해 단선적 시간 개념을 초월하는 포스트 휴먼,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결합을 통해 인간의 순종성을 혼종성으로 대체하는 포스트 휴먼 전시회를 기획하며, 포스트 휴먼의 세계를 미리 보여주었다.영화의 상상력과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은 서로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곧 도래할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블레이드 러너`(1982), `6번째 날`(2000), `A. I.`(2001), `블루 프린트`(2003), `아이. 로봇`(2004), `아일랜드`(2005), `네버렛미고`(2010), `그녀`(2013), `공각기동대`(2017) 등이다. 이 영화들은 복제인간, 인공지능, 로봇 등이 등장해서 포스트 휴먼 세계에서 예상되는 문제들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우리는 이미 포스트 휴먼 시대를 살면서 자꾸 미래에 포스트 휴먼 시대가 도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 로봇들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살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앞으로 인간세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뿐만 아니라 로봇의 세계, 인간과 로봇의 세계까지도 관계망을 넓혀야 온전하게 살아갈 것 같다.인간들이 더욱 인간답게 변하지 않는다면, 이 어지럽고 광활한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까.

2018-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