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동네 할머니께서 손가락을 다치셨다고 오셨어요.” 운동장에 계시던 선생님께서 교무실 문을 황급히 열고 들어 오셨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아주 낯익은 할머니께서 들어오셨다. “아이고 이거 미안해서 어야닝교? 주변에 사람이 없었어, 학교에서 준 약이 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고…. 그래서 그냥 학교에 왔니더.” “할매요, 잘 오셨니더. 많이 놀라셨지요.” 할머니께서는 학교에서 나눠드린 구급약통에 있는 붕대로 왼쪽 두 번째 손가락을 감싸고 있으셨다.
“할매요, 상처가 어떤지 볼게요. 어떻게 하시다가 다쳤닝교?”
말(言)이 그리우셨던 할머니는 소녀처럼 많은 말을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불을 지피려고 불쏘시개를 마련하기 위해 종이 박스를 낫으로 뜯다가 다치셨다고 하셨다. 붕대로 감긴 손가락을 살펴보기 위해 건네받은 할머니의 손은 마치 기름기가 다 빠져 누렇게 바랜 역사책 같았다.
할머니의 상처는 꽤 깊었다. 다행히 지혈은 되었지만 최대한 빨리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께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도록 부탁드리고 가장 가까이에 사는 할머니 가족께 연락을 드렸다. 할머니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시고 병원으로 가셨다. 가족을 만나 병원 진료를 받으신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는 순간 필자는 공교롭게도 `농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가속화`라는 기사를 보고 있었다. 단순 경제 논리에 의한 소규모 학교 통폐합 문제는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다. 그런데 경제 논리는 통폐합 반대보다 찬성 쪽에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그래서 많은 학교들이 없어졌고, 또 없어지고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 많은 분야의 정의와 기능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맞춰 사회 각 분야는 발 빠르게 변화 발전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예외가 있다. 그곳은 바로 절대 변화지 않는 철옹성(鐵甕城)같은 학교이다. 이런 학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뻔뻔스러운 학교는 더 철저하게 변화로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필자는 그 이유가 학교 내부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간단하다. 학교를 담당하는 내부 사람들을 변화 시키면 된다. 그리고 교육의 수장(首長)을 바꾸면 된다. 다행스럽게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6월 교육감 선거다. 이번 교육감만큼은 지금의 정부 인사들처럼 과거에만 집착하는 사람을 절대 뽑아서는 안 된다. 특히 대안학교를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한 학교로 생각하는 후보들은 더더군다나 안 된다. 그 사람들이야 이 나라 교육을 병들게 하는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학교 기능을 포털 서비스에서 검색하면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물론 이 내용이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한 번 즈음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어 잠시 인용한다. `문화유산 전달 기능, 새로운 문화 창조 및 보급 기능, 인력자원 개발 기능, 사회경제적 지위 결정의 기능, 지역사회의 발달(개선, 개혁) 및 복지실현의 기능` 과연 우리나라 학교의 기능은 무엇일까?
산자연중학교에는 마을과 학교가 함께하는 마을 학교 프로그램이 있다. 마을 학교는 위에서 인용한 학교의 기능을 종합해 놓은 학교이며, 특히 문화유산과 지역 사회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산자연중학교의 교육 활동은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들어간다.
대통령은 물론 경상북도 교육청이 외면하고 있는 대안학교 학생들을 위해 산자연중학교 재단인 천주교대구대교구가 발주한 교실 신축·증축을 위한 기공식이 지난 해 11월에 있었다. 잃어버린 교육 본연의 기능을 되찾고, 또 교육감 후보들이 그것을 제대로 알고 꼭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공식에서 마을 어르신께서 하신 축사를 전한다.
“학교는 우리 마을의 얼굴입니다. 학교 발전이 곧 마을의 발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