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하루아침에 되는 스마트는 없다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얼마 전 스마트시티에 대한 기업인 대상 강의 때 일이다. 어느 분이 미세먼지 문제 좀 싹 해결해 주는 스마트 솔루션은 왜 아직 없냐고 가벼운 질타까지 느껴지는 질문을 하셨다. 우리가 스마트시티를 해야 하는 이유는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 드렸으니 그런 질문을 하실 법도 하다. 서정주 시인 말씀대로 국화꽃 한 송이를 제대로 피우기 위해서도 봄부터 울어줄 소쩍새와 먹구름 속 천둥이 필요한 것처럼, 스마트 기술을 통한 문제 해결 역시 단숨에 되는 것은 아니고 쉬운 것부터 시작해 단계별로 업그레이드시켜 가야한다고 답변 드렸지만 그 순간 복잡한 심정이 됐다. 그 질문이 꼭 ‘미세먼지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했느냐’는 핀잔처럼 들려 과학기술인을 대표해 사과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달까.‘삼한사미’가 ‘삼한사온’을 대신하게 되었다니 시쳇말로 참 웃프다. 말만 들어도 벌벌 떨리게 맹위를 떨치던 한반도 터줏대감 동장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삼한사온은 한겨울 강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 숨 돌리고 바깥 활동 좀 하라고 동장군이 통 큰 아량을 베푼 건데, 그 자리를 뜨내기 불청객 미세먼지가 떡하니 차지해 버렸으니 말이다.미세먼지로 인해 우리 일상에는 고민과 결정의 순간이 현저히 늘었다. 미세먼지가 무섭다고 실내 환기를 안 할 수도 없고, 답답한 집안 공기를 참아야할지 창문을 열어야할지, 또 언제 창문을 열면 그나마 덜 해로울지를 고민해야한다. 모처럼의 주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는 싫은데, 바깥나들이는 설레기보다는 망설여지는 일이 되어 버렸고, 언제, 어디로 가야 그나마 덜 해로울지를 고민하게 됐다. 그런 고민과 결정의 순간 사람들의 손에는 언제나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첫 화면에 받아둔 미세먼지 앱(App)을 습관처럼 열어보고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미세먼지 수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기 행동까지 결정하게 되었다. 스마트 기술은 사용자의 위치에 따라 보다 정확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고 그 수치를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알려주는 일을 한다. 스마트의 단계 중에는 가장 기본적인 ‘초등’ 수준의 솔루션으로, 미세먼지 상태에 따라 사용자 스스로 바람직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돕는 전문 상담 창구 같은 역할이라 할 수 있다.초등 수준이 On-demand형의 수동적 솔루션이라면, 중등 수준은 그간 축적해 둔 사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자의 생활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무심코 하는 행동들을 모니터링하면서 가벼운 조언을 해 주는 ‘측근’같은 역할이랄까. 출근길, 등굣길에 마스크가 꼭 필요하다고 알려주거나 가족 나들이는 실내가 좋겠다거나, 귀가 후 손과 눈을 씻으라든가, 쇼핑할 때는 미세먼지 줄임 효과가 큰 제품을 사도록 슬쩍 조언한다든가…. 문제는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라는 점이다. 오늘 처음 만난,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담 창구 직원이 어설프게 내 행동에 이런 저런 조언을 하려 드는 것을 상상해 보라. 끝까지 듣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릴 것이다. 스마트 기술이 소위 ‘듣보잡’잔소리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용자와의 신뢰를 쌓는 것이 우선이다. 사용자와 스마트기술이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는 누군가를 측근으로 여기게 될 정도의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최고 수준의 스마트 단계는 비유하자면 ‘도와줘요, 슈퍼맨!’을 외치면 ‘짠’ 하고 나타날 법한 문제 해결 영웅이다. 그 영웅은 일일이 물어보지 않고도 사용자의 건강상태와 생활 패턴에 딱 맞춘 쾌적한 환경을 ‘알아서’ 설정해주고 미세먼지는 물론 에너지절약, 사용자의 편리와 비용절약까지 한 번에 다 잡아 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언젠가 우리 곁에 찾아올 진정한 문제 해결 영웅을 고대하며, 과학기술인들은 오늘도 국화꽃을 피워낼 소쩍새와 천둥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2019-01-21

어느 일본 학부모 이야기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이 교감, 내가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학생들 중에 한 두 명은 영 재미없어 하는 것 같아서 학생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말이다. 신학기에 수업하는 거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산자연중학교에는 마을인성전담 교사들이 계신다. 이분들은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인성교육을 전담하시는 교사다. 이 수업이 특색있는 것은 수업을 담당해 주시는 교사들이다. 인성전담 교사들은 바로 마을 어르신들이다. 학교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을 인성전담 교사로 위촉해 매주 목요일 인성교육을 부탁드리고 있다. 어르신들은 30분 수업을 위하여 일주일 간 수업 준비를 하신다. 몇 몇 분은 당신의 재교육을 위해서 향교 한학 강좌에 등록하시어 전문적인 공부를 하시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교무실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된다.지난 주 겨울 방학을 맞아 인성전담 교사 동계 연수회를 가졌다. 시작 부문의 인용은 인성전담교사 중 한 분이 필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학생들을 대하는 마음이나 수업에 대한 의지는 필자를 늘 부끄럽게 만든다. 그 부끄러움은 필자를 움직이게 하는 큰 동력이 되고 있다.“많은 아이들이 선생님 수업 덕분에 예의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께서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연수 내내 선생님들께서는 당신들의 2학기 수업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하셨다. 결론은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대한 희망찬 각오였다. 모두 칠순이 넘은 연세이지만, 그 열정만큼은 일반 교사보다 훨씬 강했다. 연수 자리에서 우리나라 교육 이야기들이 여러 가지 나왔다.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하나 희망적인 이야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일선 학교의 수업붕괴 이야기와 학부모들의 도가 넘는 교육 월권(越權) 이야기는 굳이 이 자리에서 말하지도 않아도 알 것이다. 연수 동안 필자의 마음은 여러 번 무너졌다.대한민국 교육 발전을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연수회에서 나온 어느 일본 학부모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일본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갔다. 체험 장소에 도착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하던 초등학생 한 명이 신기한 꽃을 보고 담임선생님께 꽃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그 꽃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 못했다. 아이는 집에 가서 담임선생님이 식물 이름도 모른다고 불평을 하면서 아버지께 꽃에 대해 물어보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식물학자였다.여기까지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만약 우리나라 학부모였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를 생각해보았다. 순간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선생님들의 여러 가지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할 때 필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아이를 위한답시고 아이보다 더 흥분해서 선생님을 비난했다. 필자의 잘못된 말 한 마디와 태도가 선생님과 학교의 이미지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그 때는 왜 생각을 못 했을까. 필자의 말과 행동을 보고 필자의 아이는 자신의 선생님에 대해서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필자야말로 교육 붕괴의 주범이라는 자괴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식물학자인 일본 아버지는 과연 어떻게 행동하였을까? 그 일본 아버지는 필자와는 전혀 달랐다. 아이에게 자신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고, 학교에 가서 다시 선생님께 정중하게 여쭈어보라고 말했다. 사람은, 그것이 교사라고 해도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조심스럽게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식물에 대한 정보도 공유를 하였다. 과연 이 일본 아이는 선생님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필자는 이 자리를 통해 그 동안 잘 알지도 못하고, 아이 앞에서 험담을 한 모든 선생님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2019-01-15

아나빠나사띠

김현욱시인2019년 1월 1일 오후, 거창 톨게이트를 막 빠져나오자 눈발이 흩날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몰아 붓다선원이 있는 웅양면으로 향했다. 그사이 눈발은 더욱 거세졌다. 굽이굽이 마을 길을 돌아 해발 720m 수도산(修道山) 중턱에 위치한 붓다선원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붓다선원 경내에서 바라본 풍경이 일품이었다. 입구에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처’라고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바위 뒤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수행자여, 선정을 닦아라. 삼매가 있는 수행자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본다.”야무진 인상의 혜정 스님이 바라밀당 1층 수행자 숙소로 안내했다. 필자가 3박4일 동안 머물 방 이름은 ‘결정’이었다. 십바라밀(보시, 지계, 지혜 등)에서 따온 모양이다. ‘결정’은 중생의 복리와 행복을 위해 굳은 결심(아딧타나)을 한다는 뜻이다. 성인 2명이 누울 수 있는 자그마한 크기에 화장실이 딸린 깨끗한 방이다. 예전에는 수행자들이 컨테이너 숙소에서 단체로 생활했다고 한다. 방으로 들어와 수행생활 안내 책자와 상시 수행 시간표를 확인했다.수행에는 사마타와 위빠사나 두 가지가 있다. 사마타는 선정수행을, 위빠사나는 지혜수행을 말한다. 사마타는 삼매를 계발하고, 위빠사나는 지혜를 계발하는데, 사마타는 위빠사나를 계발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토대라고 한다. 초보자들이 사마타 수행을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마타에는 40가지의 명상주제가 있다. 초보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수행자가 아나빠나사띠(둘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를 통해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상윳따 니까야에서 아나빠나사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니들이여, 이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을 통한 삼매를 닦고 많이 공부하면 전적으로 고요하고, 수승하고, 순수하고, 행복하게 머물고,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는 즉시 사라지고 가라앉게 된다.”청정도론에서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라는 명상 주제는 부처님의 다양한 명상 주제 중에서 가장 으뜸이며, 몇몇 벽지불과 부처님들 그리고 그 밖의 부처님 제자들이 특별함을 얻는 것의 가장 가까운 원인이 되고, 명상 주제로 특별함을 얻은 자들이 금생에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의 가까운 원인이 된다.” 라고 말했다.아나빠나사띠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의 가장 가까운 원인이 된다니 귀가 솔깃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언제 가장 행복해할까? ‘행복의 순간’을 설문한 조사에 따르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가족과 또는 연인과 함께 무언가를 했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결과가 많았다. 결국, 행복이란 ‘어떤 순간(the moment)’에 존재하는 것이다. 행복은 먼 곳이 아니라 우리 가까운 곳에 늘 숨어 있다. 다만, 그것을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숨바꼭질할 때 술래는 숨어 있는 친구들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구석구석 잘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꼭꼭 숨어 있는 친구(행복)들을 발견할 수 있다.아나빠나사띠란 현재에 집중하고 머무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자신의 들숨날숨 사이에 명명백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들숨날숨 사이에 있다. 필자는 채 1분도 들숨날숨에 집중하지 못하고 온갖 망상과 번뇌에 끌려다니는 마음을 보고 수행 기간 내내 매우 안타까웠다. 초보자로서 시행착오를 겪는 중에 붓다선원의 선원장인 진경 스님과의 인터뷰는 아나빠나사띠 수행자들의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보름 넘게 집중수행에 참가한 어느 수행자의 꼿꼿한 좌선에서는 강한 결기가 느껴졌다. 비록 3박4일의 짧은 아나빠나사띠 수행이었지만 느낀 바가 많았다. 진경 스님은 ‘숨 보기’를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돌아온 지금도 틈틈이 ‘숨 보기’를 실천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아나빠나사띠를 수행했으면 좋겠다.

2019-01-14

포항시, 3·1절 100주년 의미 살려야

박창원수필가3월이면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을 맞는다. 1919년 3월 1일, 일제에 국권을 침탈당한 지 9년 만에 민족대표 33인에 의한 독립선언이 있었고, 독립만세운동으로 이어져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3·1운동은 포항지역에서도 있었다. 포항면의 3·1운동과 청하장터 3·1운동이 그것이다. 최세윤의병대장기념사업회에서 펴낸 ‘포항의 독립운동사’라는 책에 서술된 내용을 통해 더듬어 본 당시 포항지역의 3·1운동 상황은 이렇다.포항교회(현 포항제일교회) 장로 송문수는 같은 교회 장로인 최경성과 같이 1919년 3월 8일의 대구 3·1운동에 참여했는데, 최경성은 현장에서 검거되었고 송문수만 포항으로 왔다.송문수는 포항에 오자마자 같은 교회 신도였던 이기춘, 사립영흥학교 교사였던 이봉학, 장운환 등에게 대구의 만세시위 상황을 알리는 한편 포항에서도 만세시위를 하자고 제의했다. 이들은 즉시 행동에 들어가 포항장(여천장)날인 3월 11일에 거사하기로 했다. 이들은 송문수가 대구에서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바탕으로 벽보를 만들고, 군중들에게 나누어 줄 선전문까지 인쇄하는 등 준비를 해 나갔다.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이 일경에게 탐지됐고, 거사 직전 4명 모두 검거되고 말았다. 그러나 장날인 11일, 수백 명 군중이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에 들어갔다. 이 날은 일본 군경의 저지로 해산되었다. 하지만 12일 저녁에 포항교회 신도들이 앞장선 가운데 흩어졌던 군중들이 다시 모였고, 등불을 들고 시내로 나와 만세를 불렀다.포항면의 3·1운동은 대구를 제외한 경북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다.3월 22일에 일어난 청하장터 3·1운동은 청하·송라면의 주동자 23명이 이끌었다.1919년 3월 중순, 송라면 대전리 교회 이준석·이준업 형제와 이 교회의 영수인 윤영복은 의거를 단행할 것을 결심하고, 청하교회(현 청하제일교회) 영수인 오용간과 교회 교사 윤영만을 찾아가 청하장날인 3월 22일(음 2.21) 거사하기로 했다.거사 당일 윤영만이 청하시장으로 향하다가 경찰에 검거되었지만 나머지 주동자인 윤영복, 오용간, 이준석, 윤도치, 이영섭, 이준업, 안천종, 안상종, 안덕환, 김윤선, 이상호, 김만수, 김유곤, 정백용, 안화종, 김진순, 김종만, 정재선, 정상득, 이명만, 김진봉, 안도용 등이 시장에 집결했다. 이에 윤영복은 큰 태극기를, 오용간은 작은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규합된 동지와 시장의 군중들이 일제히 호응했다.만세의 함성이 시장을 진동하고, 주변 도로에서도 시위가 이어지자 포항에서 급파된 헌병들이 주동자 22명을 검거했다.이 날 검거된 주동자 중 윤도치는 옥중에서 순국했고, 나머지 22명도 실형을 선고 받았다.이 두 사건을 통해서 포항지역 3·1운동은 경북에서 대구를 제외하고는 가장 먼저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민족의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고 하겠다.그러니 100주년을 맞는 2019년의 3·1절은 특별하게 기념할 필요가 있다. 그 당시 포항지역에서 3·1운동을 계획하고 실행했던 포항교회, 여천장, 대전리, 청하장 중 현재 대전리에만 기념시설이 있을 뿐 나머지 세 곳은 아무 시설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3·1운동 100주년이 코앞에 와 있는데, 포항시에서는 지난달 ‘3·1운동 100주년기념행사 100인위원회’를 구성해 기념행사를 준비한다고 해놓고는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다른 지역에서는 몇 달 전에 위원회가 조직되어 활동에 들어가 있는데, 이제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하니 이래서야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된다. ‘다른 곳에서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이 아닌 100년 전 포항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할 내실 있는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

2019-01-09

한국 교육을 영화로 만든다면?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많은 학교가 방학 중이다. 물론 아직 방학에 들어가지 않은 학교들도 있다. 그런 학교들은 1월 중순에 졸업식과 종업식을 같이 하면서 2018학년도를 끝낸다. 1월 졸(종)업식은 점차 늘고 있는 추세이다. 유연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경직될 대로 경직된 이 나라 교육제도에서 1월 졸(종)업식은 조금은 신선하다. 그래서인지 학부모들의 반응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하지만 좀 더 속을 들여다보면 학부모들이 환영하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다. “얼마나 잘 됐는지 모르겠어요. 학원을 좀 더 오래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지난번에는 괜히 2월에 학교에 나오라고 해서 학원 흐름이 다 깨졌는데 1월 초에 종업식을 하니 학교 방해받지 않고 2월까지 학원을 다닐 수 있어요. 오전에는 좀 쉬었다가 점심 먹고는 계속 학원에서 공부해요. 그래서 이번에 학원 하나 더 신청했어요. SKY 캐슬에 사는 부모들만큼은 못 해줘도 이제부터 애 뒷바라지 좀 해야겠어요. 애랑 같이 학원 시간표 짜는데, 부모 역할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애도 정말 좋아해요. 이참에 종업식을 12월 중순까지 당겨줬으면 정말 좋겠어요.”참 씁쓸했다. “학교의 방해를 받지 않고”라는 말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지인은 작심한 듯 말을 쏟아냈다. “괜히 자유학기제니 뭐니 한다고 부산만 떨어가지고는 애들한테 헛바람만 가득 넣어 놓고 말입니다, 이 선생한테는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더 이상 학교 교육에 희망을 가지는 학부모들은 많지 않습니다. 아니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육청이나 학교는 학생들 교육만큼은 자신들 아니면 안 된다는 잘못된 교육 권위의식에 빠져 있으니 슬픈 노릇입니다. 그러니 학교가 아이들의 미래를 좀먹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도 학교와 교사들은 아직 그것을 모르더라고요.”필자는 아무런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에. 갑자기 말이 없어진 필자가 걱정되었던지 옆에 있던 다른 지인이 “드라마가 문제야. SKY캐슬인가 뭔가 하는 드라마 나도 잠시 봤는데, 정말 화가 나서 못 보겠더라.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너무 도전적이야. 새해부터 어두운 이야기 그만하고, 좋은 이야기 합시다”라며 이야기를 끊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 문제는 문제야. 정권 바뀌고, 교육감 바뀌면 뭐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시끄럽기만 시끄럽고 나아진 것이라고는 정말 하나도 없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교육인지?”필자의 모임 중 교육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모임이 없다. 시민의 입장이 되어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치 한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듣는 것같다. 장르는 스릴러(thriller)! 스릴러를 사전에서는 “관객의 공포 심리를 자극할 목적으로 제작하는 영화 및 드라마”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스릴러의 3대 기본 요소로 “긴장을 야기하는 객관적인 위험, 이 위험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관객, 모든 것이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들고 있다.그런데 지금 교육계 돌아가는 상황을 영화 장르로 다시 추정해보면 스릴러보다는 호러(horror)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스릴러의 세 번째 요소인 “다시 좋아질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이라는 항목이 이 나라 교육에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절망뿐인 이 나라 교육. 그래서 교육, 특히 학교 관련 영화는 호러 영화(horror film)가 많은 지도 모르겠다. 호러 영화를 사전에서는 “관객에게 공포와 경악이라는 부정적인 정서를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장르”라고 정의하고 있다. 2019 불수능, 갈팡질팡 하는 대입제도, 사회 변화에 역주행하는 학교 시스템 등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한국 교육은 분명 호러 영화 그 자체이다.정말 한국 교육에는 희망이 없을까?

2019-01-08

돈(金)?·돈(豚)!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 국문학기해(己亥)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특히나 간지에 따라 60년 만에 온다는 ‘황금돼지해’이다. ‘황금’이라 한 데는 10개의 천간 중 ‘기(己)’가 노란색을 나타내므로 부(富)의 상징인 황금과 동일시한 데서 기인한다. 그러고 보면 ‘황금돼지’라는 말 속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부(富)를 축적하고픈 인간의 오랜 욕망이 숨어 있는 셈이다. 심지어‘정’이 적색이니 ‘붉은 돼지해’라야 했던 지난 정해년 때조차도‘붉은색=부의 상징’이라는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황금돼지해’로 불렸던 것을 보면 부(富)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그렇다면‘돼지’는 어떠할까? 우리는 보통 돼지꿈을 꾸고 나면 용꿈만큼이나 기분이 좋고 재물이 생긴다고 믿어 복권을 사기도 하고 부자가 될 자식을 낳게 되거나 좋은 음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믿기도 한다. 이처럼 횡재, 복권당첨, 명예 등을 가져온다고 믿을만큼, 돼지는 재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돼지가 오랫동안 가계의 기본적인 재원(財源)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자 ‘돈(豚)’과 ‘돈(金)’의 음이 같은 데서 연유한 것이다.재물을 상징하는 ‘황금’과 돈(金)을 떠올리게 하는 ‘돼지(豚)’가 만난 황금돼지해가 바로 올해이니 여느 때보다 재복(財福)을 더 크게 기원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는 않다. 그런데 우리의 문헌 속에 등장하는 돼지는 비단 재물만 상징했던 것은 아니다. 돼지같이 먹는다든가 돼지 멱따는 소리,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돼지우리 같다 등의 말들에서 보듯이 돼지는 탐욕스러움, 게으름, 지저분함 등 인간의 천박성을 드러낼 때 사용되기도한가 하면, ‘업돼지’, ‘地神’, 예언 및 점지, 희생 제의물 등 신성한 존재로서 자리매김해 오기도 한 때문이다.제물로 바치고자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자 한 관리가 국내성 위례암에서 겨우 잡았는데 이곳의 산세와 지세가 뛰어나 왕에게 알려 수도를 옮겼다는 기록(삼국사기 유리왕 조), 12월 납향의 제물로 멧돼지를 바쳤다는 기록(동국세시기), 궁중의 환관들이 횃불을 땅 위에 이리저리 내저으며 “돼지주둥이 지진다”라고 하며 돌아다닌 기록(동국세시기), 기이한 돼지(머리 하나, 몸뚱이 둘, 발이 여덟 개)가 천하를 통일할 징조로 해석되었고 실제 그렇게 되었다는 기록(태종 무열왕 즉위 원년) 등에서 돼지가 갖는 신성한 동물로서의 상징성을 엿볼 수 있다.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옛 문헌 속 돼지가 갖는 신성성은 지신(地神) 혹은 재신(財神)으로서의 존재론적 면모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제물 및 예언자로서의 역할이 있었기에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옛날에는 부자가 가난한 이들에게 적선의 차원에서 돼지새끼 한 마리씩 나눠 주기도 했고, 12월 납향(臘享) 이후에는, 일 년간 고생한 사람들과 함께 돼지고기를 나누어 먹기도 했다. 고기가 매우 귀하던 시절 가난으로 허덕이던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던 그 중심에 바로 ‘돼지’가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처럼 ‘돼지’가 갖는 신성한 존재로서의 상징성은 망각한 채, ‘돈(豚)’보다는 ‘돈(金)’에 최대의 관심사가 놓여 있는 것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일이 다반사다. 보험금 때문에 수십년을 같이 산 반려자를 죽이는 못난 인사들이 있질 않나, 재산을 빨리 안 물려준다고 고이 키워준 부모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는 자식들이 있질 않나, 직위와 직권을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돈 몇 푼 벌려다가 해임되는 교수가 있질 않나. 참으로 돈(金)이 탐욕스런 돈(豚)을 만들어가는 세상이다.바야흐로 2019년 올 한 해는 정말 황금에 눈이 멀어 탐욕에 가득 찬 돈(豚)들이 아니라 늘 자신을 희생하면서 신성한 존재로서 자리매김해 온 옛 문헌 속 돼지들처럼 소외되고 따뜻한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의 돈(豚)들이 가득한 한 해이기를 부디 소망해 본다.

2019-01-07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게 진짜 스마트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이제 어리바리해서는 밥도 못 먹겠네….’ 얼마 전 집 근처 마트 식당가에서 주문 카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 대신 무인기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신 이모가 툭 한마디 하셨다. 공교롭게도 그 며칠 후 ‘무인계산대 시대, 무엇을 눌러야할지 몰라 쩔쩔매는 노인들’, ‘무인 주문·계산기 들여놓자 발길 끊은 60대 단골들’ 등의 기사들이 쏟아졌다.액티브 시니어. 요즘 웬만한 60·70대 어른들은 ‘노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아 새로 쓰게 된 말이다. 은퇴 후에도 적극적인 소비와 취미, 여가 생활을 즐기며, 최신 상품들을 젊은이들보다 더 빨리 사서 써보는 ‘얼리어답터’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액티브 시니어를 신소비층으로 주목하며 시니어 특화 상품과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요즘 들어 어느 분야에서나 ‘사람 중심’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어 반갑다. 그러나 정작 그 ‘사람 중심’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함께 얘기해 주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함정이랄까. 사용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은 그 제품을 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찬찬히 살피고 그들의 필요를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마트에 식사하러 오는 대세 고객들은 누구인지,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불편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고민하다 보면 기계 앞에서 진땀을 빼게 하는 가짜 스마트가 아니라 만족스러워 다시 오고 싶게 하는 사람 중심의 진짜 스마트의 아이디어가 보상처럼 주어진다.마트 식당가에서는 임시방편으로 무인 기계 옆에 주문을 도와 줄 사람을 보조로 세워뒀다. 하지만 애초에 사용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 잘못 만든 인터페이스가 문제였기 때문에 이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익숙해질 것이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한번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된 사용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기왕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있는데 그 앞에서 조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처럼 한참을 뭔가 찾아다니며 몇 단계를 눌러 들어가야 주문할 수 있게 만든 것이 과연 정답이었을까? 차라리 사진앨범처럼 식당가의 모든 메뉴 사진을 한 화면에 쭉 나열해 두고 선택하게 했다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음식 견본 진열대 앞에 간단한 QR코드나 태그(Tag)를 붙여두고 카페 진동벨이나 스마트폰 스캔으로 바로 주문이 된다면 무인기계 앞에서 진땀 흘리며 메뉴를 고르느라 대기 줄이 길어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는 단골손님은 굳이 무인기계 앞에 줄 서지 않고 자리에 편하게 앉아 ‘지난번과 같은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지금이라도 사용자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서 사용자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스마트의 중심이 사람에서 멀어지면 무인계산대처럼 소위 ‘솔루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람들이 제대로 쓰지도 못할 기기와 서비스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없이 대충 만들어진 어설픈 ‘솔루션’들은 세상에 쓰레기를 투척하고 악취를 뿜어내는 공해유발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어설픈 스마트의 사례들이 하나 둘 쓰레기처럼 쌓여 스마트 전체에 대한 불신과 외면을 부를 것이다.스마트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실감할 수 있는,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진짜’ 스마트가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나에게 세상을 구하기 위한 딱 1시간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데 55분의 시간을 쓰고, 해결책을 찾는 데 나머지 5분을 쓸 것이다’라고 한 아인슈타인 박사의 맞장구가 그래서 든든하다.

2019-01-06

대외 정세변화에 더 주목하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지난해도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낸 것같다. 이는 어쩌면 매년 새해를 시작할 때마다 밝은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황금돼지의 해’라는 말도 같은 맥락인 것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반대로 예견 가능한 위험(Risk) 요인들을 미리 알아보자. 아주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리스크가 있다면 이를 사전 인지해 각 요인별로 지역 각계가 대응책을 마련하거나 한번쯤 생각해두는 것은 나쁘지 않다. 오히려 부지불식간에 닥친 다양한 사건에 대해 혹시라도 발생할 실수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포항경제는 해외의존도가 높은만큼 국내경제 상황보다는 외국의 정치경제 정세변화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먼저 수년 전부터 지역경제에 타격을 입혔던 미국의 경우에는 언제든지 철강보복관세나 쿼터물량의 조정 등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국경제는 지금까지의 성장세가 내년 이후부터는 다소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 비춰본다면 미국으로의 철강수출물량이나 수출여건은 올해도 지난해보다 개선될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얼마 전 미중간 정상회담 결과 미국의 대중국 관세인상을 90일 유예시켰지만 양국 간 의견차가 큰 데다 세계질서의 패권경쟁이라는 정치적 역학이 함께 작용하고 있어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므로 여파가 우리에게 미칠 가능성에 여전히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게다가 중국경제는 과잉채무와 과잉설비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데다 미국과의 무역마찰에 따른 악영향이 가세하고 있어 경기감속은 불가피할 전망이다.때문에 미중 간 무역전쟁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가 관건인 셈이다.일본경제는 금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2013년 선거당시 대승하며 과반수를 넘겼던 의석수를 얼마나 지킬 것인가에 따라 향후 정책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은 이후 일본경제를 일시적이나마 감속시킬 것이다.한편 유로지역은 연중 내내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3월 말로 예정된 영국의 유로 이탈 즉 브렉시트가 메이 총리의 의회 설득으로 순조롭게 질서있는 이탈로 이어질지, 아니면 시한종료로 인한 무질서한 이탈로 이어질지에 따라 혼란의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정부채무나 부실채권 규모가 커 금융시장까지 여파가 미칠 가능성도 완전 배제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지금까지 EU를 견인해왔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구심력 회복 여부도 주목할 부분이다. 5년마다 실시되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수뇌부 교체에 따른 정책방향도 EU경제 전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중동지역의 이란 핵미사일을 둘러싼 미국과의 대립, 기자살해사건에 따른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충 등 중동의 불안정한 지정학적 리스크는 덤인 셈이다.결국 올해도 여전히 다사다난한 해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지역 수출기업 가운데 중국, 일본, 미국, 유럽 등지에 지사를 두고 있거나 시장조사를 담당하는 곳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중소기업들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세계 정치경제 정세의 변화가 발생하였을 경우 자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최소한 한번쯤 미리 대응책을 생각해둔다면 우왕좌왕하지 않고 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주식시장을 통해 투자하려는 개인투자가들이라면 당연히 앞서 언급하였던 모든 정황들이 시장을 출렁이는 재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므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때 이러한 국제정세 변화를 충분히 고려하였으면 한다. 부디 금년 말에는 지역민 모두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아닌 무난하게 잘 넘긴 한해가 되었다고 자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9-01-02

2019년 교육계의 시계(視界)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내수침체·생산설비 투자 감소, 자고나면 2천500곳 ‘줄 폐업’, 2년 연속 폐업사업자 90만 돌파” 2018년 마지막 주말 어느 포털 사이트 메인 기사 제목들이다. 희망적인 이야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비극적인 기사들 속에서 딱 한 사람만은 웃고 있었다. 사진에는 2019년 새해 국정 키워드를 ‘공감’으로 한다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쇼펜하우어는 관념과 현실의 차이를 웃음의 원인이라고 했는데,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진 대통령의 웃음이라? 사람들은 말한다, 웃을 일이 없다고, 아니 웃을 수가 없다고, 그런데 청와대 사람들은 무엇이 저렇게 즐거운지 모르겠다고, 국민이 주인이라고 해놓고는 왜 자기들 멋대로 하냐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북극 한파라고 불리는 최강 세밑한파보다 더 차가웠다.거리마다 예비 정치인들이 내건 불법 가로펼침막이 공해를 일으키고 있다. 펼침막에는 하나같이 영혼없는 새해 인사와 함께 “희망찬 새해”라는 말이 똑같이 나온다. 불법으로 내건 펼침막에 버젓이 자신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그들에게 2019년이 정말 희망적인지 꼭 묻고 싶어졌다.사전에서는 희망을 “어떤 일을 이루거나 하기를 바람,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주문을 외듯 여러 번 희망의 뜻을 읽었다. 그럴 때마다 “앞으로 잘 될 가능성”라는 부분에서 계속 멈추었다. 멈출 때마다 “없음”이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따라 왔다. 없음을 붙여서 읽어 보았다. “앞으로 잘 될 가능성 절대 없음” 너무도 씁쓸했다. 이 말에 답이라도 하듯이 포털 사이트에는 “靑 ‘김정은, 文대통령에 친서, 서울 답방 강한 의지 나타내”라는 기사가 떴다. 씁쓸함은 곧바로 절망으로 바뀌면서 그 어느 해보다 시끄러울 2019년이 그려졌다. 시끄러움은 곧 혼돈과 혼란이고, 그 고통의 몫은 국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북쪽이 마치 청와대 구세주 같네!” 식당 건너편 자리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사람이 툭 던진 말에 식당 안에는 북쪽 친서를 대하는 정부 태도에 대해 비판하는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국엔 30대로 보이는 사람이 “짜증나 못 보겠다. 채널 돌려도 되지요.”라고 말하며 채널을 돌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조금 진정하고 하던 식사를 계속하였다. 반찬은 청와대였다.그런데 필자는 더 열을 받아 밥 먹기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바뀐 화면에서는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안 보는 필자지만 주변에서 하도 말들이 많기에 재방송을 잠시 본적이 있다. 비록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필자는 단 몇 분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평론가는 “최상류층의 자녀 입시전쟁을 그린 ‘SKY 캐슬’”이라고 평하였다. 말이 좋아 입시전쟁이지 필자가 보기에는 명문대에 목숨을 건 광적(狂的)인 학부모들의 광적인 교육 이야기였다. 이 드라마는 교육의 유일한 목표가 명문대 입학으로 맞춰져 있는 이 나라의 광적인 교육제도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었다.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드라마의 이야기를 최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능 점수가 발표된 이후 동네 골목이나 학교 교문에는 “축, S대학교 합격”이라는 가로펼침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면서 과연 이 나라 교육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필자는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축, S대학교 합격”이라는 펼침막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으니까. 현실은 이런데 정부는 계속해서 국민 우민화 교육정책들을 내놓으면서 교육 혼돈만 부추기고 있다. “고교 학점제, 내신 절대평가, 자유학기(년)제” 등이 과연 지금과 같은 교육 현실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해에는 희망만을 말하고 싶었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함이 안타깝다. 그래서 또 말한다, “2019 교육계의 시계는 제로이다!”라고.

2019-01-01

화가의 현실 그리고 소망

황연화화가·중원대 교수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2018년 무술년(戊戌年)은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사자성어가 절실하게 느껴진 한 해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제 마지막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 주위를 둘러보고 우리들 스스로에게도 올 한 해는 어떠했는지 되돌아볼 때이다.나라는 남북이 서로를 갈망하며 이런 저런 협상 카드를 들고 국제적으로도 주시받고 있고 안으로는 정착되지 못한 사회전반적인 불안과 불균형으로 믿음이 많이 퇴색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경기가 가라앉고 물가는 오르니 국민들은 옆 눈을 돌리기가 쉽지 않는 시대를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취약한 예술, 특히 미술시장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마디로 고사 직전이다.1980∼90년대 IMF체제 이전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유도 있고 경제적 흐름에 편승해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 그림 몇 점 정도는 걸어 두는 여유가 있었다. 유명 화랑에서도 작가를 초대해 이윤을 남기며 화랑도 화가도 자부심이 대단한 시기였다.전시 한 번으로 아파트도 사고 고급 직업처럼 생각하며 작품에 정열을 불사르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림 주문도 들어오고, 미술 상인과 고객들도 화가의 화실을 방문하는 일이 허다했다.그리고는 갑자기 벼랑에 섰다. 금융실명제, IMF, 오랜 불경기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침체가 되다보니 미술시장도 한파를 겪으며 온갖 자구책과 신종 경영방법까지 동원해보지만, 실제 작가들이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 없는 빛 좋은 개살구만 돌아다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술품 경매시장도 생겼지만 부작용만 되풀이하며 오히려 화랑경영만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내외 수많은 아트페어들은 작가들의 무리한 참여경비(부스임대료) 부담으로 작가들의 경제력마저 바닥을 훑고 지나가버린다. 그렇다고 작품이 팔리는 것도 아니다. 어쩌다 한두 점 팔리면 대단한 소문으로 돌 정도이다. 어느 중견작가의 말을 빌리면 10호(52.7 x42.7cm) 한 점을 팔아 100만원을 받으면 화랑에서 반을 떼고 카드수수료를 제외하면 겨우 30만원 작가에게 돌아온다며 하소연한다. 그것도 양호하다. 국내의 아트페어를 돌아다니며 작가들의 어려운 약점을 이용, 20만원에 작품을 거두어 다니는 약삭빠른 고객들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작품에만 매달리는 전업 작가들에게는 참 슬픈 현실이다.옛날에는 극장 간판이나 건축물 색칠, 카드 연하장 장사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미술대학 출신들도 많았지만 그 후 경제가 활성화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시 건물이나 거리에서 페인트통을 들고 벽화를 그리는 작가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빈 공간은 벽화그림으로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경쟁이 치열하고 전문회사까지 생기는 마당이라 작가에게 직접 돌아오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또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건물에 세우는 각종 조형물도 미술협회나 법인,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어야 그마저도 덤벼 볼 수가 있고 광고사들의 사냥감이기도 하다.이런저런 상황과 분위기가 미술에만 국한되어 걱정거리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술인들이 할 수 있는 범위라면 순수한 미술인들이 혜택을 보고 제대로 대접받았으면 한다. 미술인들 역시 어려운 상황을 희생하며 전시회를 무리하게 열어야하고 참가해야 하는지도 각성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작가라면 화랑이나 아트페어의 유혹을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 초대전의 타이틀도 중요하지 않다. 옛날과 달리 그런 간판은 달아 달라면 화랑들은 대부분 응해준다. 스스로에게 믿음을 갖고 내년 이때쯤에는 뒤돌아 보아도 실망하지 않았던 한 해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마음을 그릴 것인가? 고객의 시선을 훔칠 것인가를 분명히 기준도 세우면서….

2018-12-26

어느 공무원의 퇴임사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거투르드 스타인이라는 시인의 해답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해답은 없다/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고/지금까지도 없었다/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저는 왜 퇴임을 앞두고 이 시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이 해답이라고만 생각하고 일을 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으셨을 민원인들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 해답은 바로 그동안 저에게 보내주신 청하면민, 포항시민들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에 저는 오늘 이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31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하는 지인의 퇴임사 일부이다. 마치 고해성사(告解聖事)같은 퇴임사는 필자의 오류를 지적해주는 것 같았다. 정말 필자 또한 필자의 생각과 행동만이 해답이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았다.어쩌면 지인의 퇴임사를 읽지 않았다면 필자는 더 큰 아집(我執)과 고집, 독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살았을 지도 모른다.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특히 정치하는 사람들은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자기 해답의 오류”에 빠져 살고 있다. 그 오류는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강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자신들의 오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산다는 것은 어쩌면 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찾는 답은 무엇일까? 돈, 명예, 권력, 성공, 사랑, 행복? 세상 사람들 중에서 답을 찾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 필자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늘 바쁘기만 하다. 그래서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다. 이런 필자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말했다, 실속 없이 바쁘기만 하다고. 그리고 필자한테 진지하게 물었다, 문제가 무엇이냐고. 필자는 이 말을 듣고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왜냐하면 답을 찾는다는 사람이 문제를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파인만 알고리즘’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는 이 알고리즘을 두고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최강의 알고리즘이라고 말한다. 파인만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나눠져 있다. ‘문제를 쓴다, 매우 깊게 생각한다, 답을 쓴다.’ 이 알고리즘을 보면서 필자는 그동안 놓친 앞 두 단계를 떠올렸다. 필자는 답을 찾으려고만 했지 가장 기본인 문제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필자가 하는 일들은 많은 것이 비효율적이었고, 때로는 억지가 가득했다. 필자는 그것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과 상황 탓만 했다.이제야 필자는 어느 학생이 필자에게 진지하게 해준 말을 이해했다. “교감 선생님은 왜 맨날 화만 나 있으세요?” 필자도 오늘 이 자리를 빌려 필자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았을 학생과 학부모님,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학교로 전화를 주셨을 많은 예비 학부모님께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지금 이 나라 정치, 교육, 경제, 사회 등 시끄럽지 않은 분야가 없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저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혼란은 더 가중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문제에 대한 깊은 정확한 분석 없이 청와대나 상부권력에서 정해 놓은 답을 무리하게 문제 상황에 끼워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혼돈을 막기 위해서는 모든 정치적인 독선과 독단을 내려놓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분야별로 한 번 더 정확히 정리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존의 태도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위정자(爲政者)들에게 필자는 위의 퇴임사 전문을 꼭 읽어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그리고 퇴임사의 주인공인 박제중 청하면장께 감사의 인사드린다.“감사합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2018-12-25

전기차 충전소 이용 너무 불편해

김경준포스텍정보연구소 부교수벌써 올 한해도 다 끝나고 있고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옷속을 파고든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올해 초 어머니께 제주도 여행을 가자고 말씀을 드렸다. 연세도 많이 드셨고 시간이 가면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더 없어질 것만같은 생각이 든다. 봄 여행이 가을로 미뤄졌고 가을 여행은 겨울이고 춥다는 이유로 다음해 봄으로 미뤄졌다.얼마 전 겨울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 때 어머니는 조금 망설이셨다. 먼저 당신 몸이 불편해서 같이 갈 경우 도움을 주는 사람이나 도움을 받는 당사자인 어머니의 마음이 모두 불편하다는게 이유였다. 또 여행을 가서 큰 구경을 할 게 뭐 있겠느냐는 게 어머니의 주장이었다. 이런 이유들이 쌓여서 여행, 삶에 대한 의욕이 꺾이고, 이런 것들로 인해 집이 편안하지 나가면 고생이라는게 어머니의 또 다른 이유였고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여행 중 이동 방법에 대해 주로 말씀을 드렸다.여행에는 조카와 누나가 동행했다. 비록 날씨가 춥고 바람이 불었지만 여행은 무사히 다녀왔다. 어머니는 “여행을 포기하고 살았는데,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내심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 든다.이번 여행은 전기차를 렌트했다. 덕분에 전기차에 대한 그간의 선입견들을 덜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 사용자 입장에서 전기차나 서비스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전기차에 대한 승차감이나 소음 등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전기차와 관련된 전후방 산업에 대한 고민과 정책 지원, 서비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대한 내용은 현실적인 문제들로 다시 고민해 봐야 할 것같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정책은 보조금 지원, 충전소 설치, 차량에 주차 요금 면제 등이 있다. 국내의 전기차 충전 방식과 왜 여러 가지 충전 표준을 혼재해서 사용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논외로 하더라도 힘들게 찾아간 충전소에서 한 가지 방식만 있거나 고장난 경우도 있었다. 국내 전기차 충전소 7천여 곳 중 급속 충전소는 약 3천500개소가 있다고 한다. 특정한 곳에서 사용한 경험으로 일반화시키기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이나 관광지 등에서도 전기차 충전소는 구석 후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동시에 여러 대가 충전을 하기는 힘들다. 급속 충전의 경우에 충전 시간은 1시간 내외가 소요가 된다. 전기차를 충전하는 사람들은 충전 중 일 때 1~2시간은 다른 일을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충전 중일 때는 다음 사람이 1시간 내외를 기다리는 일은 어쩔 수 없더라도 충전이 다된 차가 주차되어 있어 충전을 못하고 돌아가거나 기다리지 않도록 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현재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의지는 충전소 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의 경우 네덜란드가 가장 많은 수의 충전소를 설치하고 있고 그 다음이 독일, 프랑스 순이다. 그러나 국내는 아직 전기차 충전소가 부족하고 가장 많이 설치된 제주도조차도 사용에 많은 불편이 따른다.자동차 산업은 국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역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자동차 산업의 환경 변화와 전기차와 같은 신생 산업에서 지역 중소 업체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다른 지역보다 경북 권역에서 주력이었던 자동차 산업은 해외로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지역 기업은 업종의 전환이나 폐업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고, 산업의 공동화 현상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 여전히 국가적 단위의 지원은 소프트웨어 산업보다는 기반 구축을 위한 인프라 구축 지원에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2018-12-20

용서와 2019 고입 전형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시(詩)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12월은 하루하루가 시이다. 아니 1분 1초가 시가 아닌 게 없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시가 처음과 끝처럼 절대몰입 상황에서 더 잘 쓰여 지는 것이라고 할 때, 지금은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때이다. 그냥 지금 감정이 시침이나 분침, 아니면 어떤 상황에 툭 걸리기만 해도 바로 시가 되어 쏟아지는 때가 끝을 향해 가는 12월이다.누군가가 필자에게 지금 사람들의 감정을 비유하라고 하면 필자는 발효를 마친 술항아리나, 아니면 흙탕물을 받아 둔 용기(容器)라고 말하고 싶다. 발효를 마친 술이나 차분하게 가라앉은 흙탕물이 담긴 용기는 극명하게 이분법으로 나누어진다. 가라앉은 것과 떠 있는 것으로. 최상위 부분에 맑게 떠 있는 그 기운들, 그 기운이야말로 지금 사람들의 감정이 아닐까 싶다. 모든 불순물, 모든 혼탁한 감정을 다 가라앉히고 순수 그 자체의 모습으로 드러낸 맑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순결함의 극치! 바람도 차마 흔들지 못하는 절대 경지!필자는 그 감정을 용서와 감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12월 시에는 이들 말들이 시어가 되어 거룩한 12월의 집을 짓고 있다. 사람들은 그 집에서 지난 1년 동안의 모든 감정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채우고, 차분히 새해를 기다린다. 그들의 모습은 항아리 맨 위에서 세상 모든 것의 배경이 되어주는 맑은 기운 그 자체다. 시가 그리운 요즘 필자의 감정을 터트린 시가 있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오프닝으로 나온 시이다.“용서를 생각하자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용서를 구하러 가는 길 환하라고 (중략) 가서 문만 잘 두드리면 된다고/두드리기 망설여지면 대신 창문 두드려 주겠다고/함박눈이 두드리면 누구든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나오면 (중략) 잘 왔다고 실은 기다리고 있었노라고/따스한 눈물 함께 흘리겠지/용서를 생각하자 함박눈이 포옹의 축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이 시를 듣는 순간 필자의 마음엔 폭풍이 일었다. 며칠 전에 내린 함박눈의 의미를 필자는 왜 몰랐을까? 왜 필자는 용서를 구하러 가지 못했을까? 혹여나 밤사이 문을 두드렸을 누군가의 마음을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 함박눈이 내린 날 필자는 2019년 마지막 고입 전형을 위한 원서에 결재를 하고 있었다. 산자연중학교는 전국단위 모집 학교이다. 그래서 고입 원서도 학생들 주소지에 따라 달리 써야 한다. 올해는 서울, 인천 등 8개의 시도 교육청에 고입 원서를 접수했다. 매년 고입 원서를 작성하면서 필자는 어느 한 해 큰소리를 안 낸 적이 없다.아무리 고입 전형이 시도 교육감의 고유 권한이라고 하지만, 고입제도 하나 통일하지 못하는 이 나라에서 무슨 큰 교육을 하겠다는 건지? 말로는 혁신, 창조 등을 외치면서 정작 당사자들은 구태(舊態)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정말 이 나라 교육에 희망이 있기나 한 건지? 필자가 상대한 몇 몇 지역 고입 담당자들이 보여준 보신주의와 융통성 없는 사고는 이 나라 교육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말해주었다. 경직될 대로 경직된 이 나라 교육에서 창의(創意)와 창조(創造)를 찾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필자는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은 이들 담당자들이 속한 교육청 부서명이다.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속한 부서는 바로 ‘혁신과’였다.TV에서 경북 도의회 본회의 장면을 보았다. 질의대상은 경북교육청! 도의원의 사이다같은 질문을 듣는 순간 필자 마음엔 잠시 교육에 대한 희망 불씨가 되살아났다. “아우성을 치면 헌법도 바꿀 수 있습니다. 교육부에 대고 아우성을 칠 수 있습니까?” 돌아온 답은? 아무리 큰 함박눈이 내려도 이 나라 교육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2018-12-19

피그말리온

▲ 김현욱 시인‘낙원’은 어떤 모습일까? 라틴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낙원을 도서관의 형태로 꿈꿨다. 그에게 책은 진리였다. 그렇다고 보르헤스의 서재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까지 지냈지만, 그의 서재는 소박했다. 보르헤스는 1937년 도서관에 처음 취직한 이래 평생을 사서로 살았다. 선천적으로 시력이 나쁜 탓도 있었지만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끝내 눈이 멀어 버렸다. 그때 나이가 50대 중반이었다. 알베르토 망구엘이 보르헤스를 만난 건 1964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였다. 피그말리온의 단골이었던 보르헤스는 어느 저물녘, 서점 점원으로 일하던 열여섯 살의 망구엘에게 말했다. “저녁에 와서 책을 좀 읽어주지 않겠니?” 그때 망구엘은 몰랐을 것이다. 그 말 속에 숨은 크나큰 운명을. 이후 망구엘은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는 셜록 홈스와 바이킹의 전사들 같은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영화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던 그가 촉감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내는 뜻밖의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보르헤스와 망구엘의 시간은 그렇게 4년간 계속됐다. 1964년부터 1968년까지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그는 더욱 책 읽기에 빠져들었고 정신적으로 성장했으며 영혼의 눈을 뜨게 되었다. 망구엘은 자신의 책에서 “보르헤스는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보르헤스와 함께 책을 읽으며 내 영혼은 자랐다”고 말했다.보르헤스는 1961년 국제 출판인 협회가 수여하는 포멘터 상을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와 공동 수상했다. 또한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유명한 소설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와 ‘스무 편의 사랑시와 한 편의 절망노래’로 일약 세계적인 시인이 된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라틴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보르헤스의 진가는 그의 소설과 시를 통해 라틴문학을 세계 문학의 주류로 이끈 데 있다. 그가 창조해낸 ‘환상’과 ‘악몽’의 세계는 프란츠 카프카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으며 오늘날의 문학비평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망구엘이 회상하는 보르헤스와의 시간은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하고 외롭고 꿈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하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것같아 낙담하는 수수한 노인의 일상이었다.보르헤스의 아파트를 찾아가 책을 읽어주고 책과 문학, 삶, 사람, 영화, 예술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망구엘. 보르헤스에게 마지막으로 책을 읽어준 건 1968년이었다. 그해는 망구엘이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보르헤스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4년 동안 열심히 책을 읽어준 시간 덕분이었을까? 성인이 된 망구엘은 ‘독서의 역사’,‘보르헤스에게 가는 길’,‘밤의 도서관’등을 출간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떨친다. 물론 그에게 보르헤스와의 시간은 인생의 전환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보르헤스같은 대문호를 만났기 때문에 망구엘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보르헤스가 아니었더라도,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 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함께 공유하면서 인생의 꿈과 진실을 깨우치지 않을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어느새 손끝 시린 겨울 초입이다. 가을이 책 읽기 좋은 계절이라면 겨울은 책 읽어주기 좋은 계절이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홀로 사는 노인이나 생활보호대상자, 소년소녀가장, 장애우들에게 책 읽어 주는 청소년들의 봉사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더불어 가정에서 교실에서 도서관에서 병실에서 책 읽는 소리가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우리의 행복한 시간은 당신과 나 그리고 책 한 권만으로도 충분하다.

2018-12-18

포항 인구유출의 실상

▲ 김진홍 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일본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 6일에는 수돗물 공급의 민영화 법안을, 8일에는 약 35만명 정도의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허용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격 통과시켰다. 이는 인구감소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겠다는 강력한 정책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정책방향은 2014년 도쿄대 마스다 교수가 발표하였던 일명 ‘마스다리포트’에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르면 2040년경 현재 일본의 지자체 가운데 절반은 인구감소로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 마스다 교수는 일본의 인구감소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3대 도시인 도쿄, 오사카, 교토, 그중에서도 도쿄로 청년들이 집중 이동되는 현상을 최대 원인으로 꼽았다. 젊은 여성이 도쿄로 몰린 후 치열한 취업경쟁과 값비싼 생활비, 열악한 육아환경 등으로 늦게 결혼하거나 결혼해도 자녀를 낳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방도시 인구는 감소하고 도쿄의 평균 이하 출산율은 더욱 낮아지게 되는 메커니즘이 일본 전체 인구를 감소시키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아예 문부과학성은 도쿄 23구내 대학교의 입학정원을 동결하고 초과정원모집을 금지해 인구감소시대에 지방대학이 사라질 충격을 완화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이와 같은 일본의 움직임을 보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지역균형발전보다 수도권집중억제 대책이 시급하다. 일본은 그나마 도쿄, 오사카, 교토로 나뉘어 집중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오로지 서울과 이를 둘러싼 경기도, 인천으로 뭉쳐진 이른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쏠려 있다. 2018년 11월 현재 전국 5천182만명(주민등록기준)중 49.76%인 2천579만명이 수도권에 있다. 2000년 이후 2017년말까지 17년간 수도권과 지방 모두 인구가 늘었지만 최근 3년간만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2015년말부터 2018년 11월말까지 수도권에는 31만8천404명이 늘어난데 반해 비수도권 즉 지방 인구는 같은 기간 2만3천265명이 줄었다. 그런데 금년 들어 11개월 동안 수도권인구는 10만9천143명이 늘어난 반면 지방에서는 무려 6만3천210명이나 줄었다. 지방인구의 수도권 이동 집중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포항시는 어떠한 상황일까. 2018년 11월 현재 인구는 51만270명으로 2015년말 대비 9천314명이, 금년에는 3천562명이 감소했다. 그런데 금년만 보면 북구가 626명, 남구는 2천936명이 감소했다. 결국 남구를 중심으로 하는 포항의 인구감소 원인은 2015년 이후 철강사들이 인천, 당진 등으로 생산 공장을 재배치하면서 일어난 불가피한 인구이동 때문이다. 즉 최근 포항의 인구감소는 지진피해가 북구에 집중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지진문제나 지방행정 문제가 아니라 민간 산업 활동의 결과로 야기된 경제문제 때문이다.앞으로는 다른 지방처럼 수도권 쏠림현상에 휩싸이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 고학력자들은 과거와 달리 노동집약적, 자본집약적인 산업보다는 남녀구분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근무여건도 좋은 지식집약형 산업을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반면 포항은 철강, 운수, 건설 3대산업이 주축으로 모두 노동집약적, 자본집약적 산업인데다 여기에서 주로 남성중심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청년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여성층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지역내 지식집약형 산업의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때마침 포스코도 지역기업과 교류 협력을 강화한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살려 지역의 우수한 RD(연구·개발)기반을 활용한 기술창업, 신약개발, 지식서비스업 등을 중심으로 포스코와 연대하여 새로운 기업을 육성한다면 지역내 일자리창출, 청년인력의 유출억제와 더불어 포항의 고령화진전을 저지하는 다각적인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18-12-17

폐지와 노인

▲ 유혜숙대구가톨릭대 교수·인성교육원연일 폐지 줍는 노인들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술에 취한 20대가 폐지를 줍는 70대 할머니와 말싸움을 벌이다 뺨을 때리고 폭행한 기막힌 사건도 있고, 폐지 줍는 80대 노인을 주먹으로 때려 돈을 빼앗고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한 사건도 있다.차가워진 날씨 속에서도 하루하루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폐지 줍는 노인들은 아무런 도움의 손길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고단하고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이기에 이 모든 사건은 더욱더 큰 사회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힘들지. 근데 돈 벌려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거지. 폐지가 100㎏이면 돈으로 따지면 7천 원밖에 안 돼. (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엄청 무시해.”얼마 전 한 방송에서 흘러나온 한 폐지 줍는 노인의 인터뷰다. 이처럼 폐지 줍는 노인들은 돈도 얼마 벌지 못할 뿐 아니라 자칫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우리나라는 2000년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고, 2017년에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하였으며, 2025년에는 21% 이상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2018년 1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하위 1분위 가운데 70세 이상 노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43.2%에 이르고, 노인 일자리 수요 충족률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 수요 충족률은 42.7%에 그친다. 일자리 여건이 좋지 않아서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노인은 119만5천 명인데 반해 노인일자리 수는 51만 개에 불과한 것이다.지난 7일 정부는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한 정책을 대거 발표됐다.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기초연금 강화부터 생활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까지 다방면에서 지원이 이뤄진다. 특히 정부는 5060세대를 ‘신(新)중년’이라고 정의하며, 이들의 ‘두 번째 일자리’를 적극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2022년까지 노인 일자리 80만 개를 목표로 한다.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46.5%로 OECD 평균(12.5%)의 4배에 달할 정도로 높다”며 “은퇴세대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현재 60세 이상 인구(2017년 기준 1천53만명) 중 344만명이 활동 능력이 있고 일자리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 일자리 공급 여력은 43만7천여 명선에 불과하다. 정부는 신중년 세대 재정 지원 일자리를 올해 1만8594 명에서 내년에는 4만3810 명 이상으로 늘린다. 그간 은퇴자들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장에서 퇴직해 갑작스러운 자영업 전환 등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정부는 소득 격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만들어 신중년 세대가 일자리에서 점진적으로 퇴직하고 재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고용노동법을 개정해 근로자가 정년 이후 연금을 수급하는 나이까지 일할 수 있는 방안을 사업주가 마련하도록 ‘사업주 노력 의무’도 부과할 계획이다.연로하신 나이에도 생계유지를 위해 직접 손수레를 끄는 노인들이 온종일 헤매면서 폐지를 모아 받는 돈은 하루 만 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이렇듯 하루하루 생계와 생존의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층 노인, 특히 기초생활 수급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 노인들에게는 양질의 노인 일자리와 사회활동이 필요하고, 건강하고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가족과 이웃 모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2018-12-14

불수능의 수상한 의도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얼어붙은 민심(民心) 만큼이나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동장군을 보내 매운 맛을 한번 제대로 보여주려는 자연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그저 춥다고만 호들갑이다. 세상의 이치가 곧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망각하고 사는 것이 인간의 법칙이라는 궤변(詭辯)에 빠진 인간들의 겨울나기가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추운 곳을 생각해 보았다. 물론 물리적인 기온으로만 보면 극지방 아니면 다른 어디일 것이다. 필자가 생각해본 기온은 심리적 기온이다. 아마도 취약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추위만큼 아픈 추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과 성격은 다르지만 이들보다 더 춥고 아픈 겨울을 보내는 이가 있으니, 바로 이 나라 학생들이다. 교육이 정치 도구가 되어버린 이 나라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 그들만큼 춥고 불안한 겨울을 보내는 이가 또 있을까?분명 이 나라 교육은 교육의 순수 본질에서 멀어졌다. 특히 이번 정권 들어서는 더 노골적으로 정치 도구가 되어버렸다. 자사고, 특목고 폐지 등에서부터 수상한 정치 냄새가 났다. 낙하산 정치 교육 관료들은 내신 관련 사건들을 터트리면서 내신 불신(不信) 분위기를 조장하더니 급기야는 내신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 수시 비율 축소를 이야기했다. 그와 동시에 정시를 늘리는 대학에는 인센티브를 준다는 기괴한 꼼수까지 쓰고 있다. 그와 동시에 수시와 정시의 비율을 반드시 손보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 수위가 도가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수능 점수가 발표되고 너무 무책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기자 회견의 주인공은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원장이었다. 그는 2019년도 수능채점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올해 수능 난이도로 인해 전국 수험생들과 학부모님들께 혼란과 심려를 끼쳐 드려 (중략)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그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다. 사과 한 번으로 끝이었다. 12년, 아니 그 이 이상을 오로지 한 시험을 향해 달려온 이들을 달래기에는 너무도 무책임한 사과였다. 국정농단, 사법농단 등 그 어느 정부보다 책임을 강조하는 이 정부가 정작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잘해보려고 한 건데 어쩌라는 것이냐?”라는 식으로 더 큰 소리를 치며, 자신들 사람 감싸기에 온 힘을 쓰고 있다. 정말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有分數)다.현 정부 들어서 하는 일치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대학시절부터 북쪽 공부를 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북쪽 일엔 사활을 걸면서 정작 국내 일엔, 특히 교육엔 영 젬병이다. 교육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킨 것 빼고, 현 정부의 낙하산 정치 교육 관료들이 한 일이 무엇이 있나? 교육 혼란의 책임을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필자는 현 정부의 교육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시를 확대하든, 아니면 수시를 지금처럼 존치하든 어차피 입시지옥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성적지상지의가 만연해 있는 우리 사회에서 학교 교육은 학생 죽이기밖에 안 된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 이왕 개혁할 거면 소위 말하는 명문대 병에 걸려 있는, 또 서열주의에 빠져 있는 기성세대들에 대한 재교육부터 아주 강하게 하면 어떨까. 그런데 이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그러면 제발 좀 솔직해지자. 현 정부가 있는한 대학교든, 회사든 시험 성적 하나로 서열화시켜서 뽑겠다고. 그러니 꿈·끼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시험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그리고 하루빨리 수행평가와 자유학기(년)제 같은 뜬구름 잡는 교육제도를 없애주겠다고.언론들은 말한다. 지금 같은 수능은 학교 공부만으로는 어렵다고! 과연 이번 불수능의 의도가 무엇일까?

2018-12-12

상상력의 보고(寶庫) 현대미술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화가는 미술이 갖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표현에서 오는 환희와 재미를 통해 스스로 만족하며 그의 영혼이 담긴 작품을 통해 인류를 감동시킨다. 예술가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상상 이상의 창의적 사고와 독창적 조형요소로 작품을 재구성하여 만들어 낸다. 이는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극복하며 자유로운 시각적 조형미를 구현해 내는 작가만의 천재적 능력과 반복된 훈련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이란 마음의 자유로운 활동이며 새로운 사실을 창조하는 핵심적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억과 상상력은 과거로부터의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응용하기도 하며, 그가 살아온 경험을 통해 축적해 온 구체적인 결과로 이루어진다. 이런 기억들은 상상에 의한 상징적 이미지로 재창조되기도 하며 결국 화가들에게 창조성은 무한한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주관적 판단으로 제작되는 독창적 문화인 셈이다. 이처럼 예술에 있어 상상력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이미지들을 마음속에서 생산해 내는 능력이 되며 나아가 인류 문명과 문화발전의 근원이 된다.인간의 상상 활동은 매우 다양하다고 생각된다. 특히 과학자와 예술가의 경우 상상력에 있어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의 상상력은 실재나 법칙의 발견, 그리고 이론의 수립이 주된 목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상상은 다른 상상보다 객관적이고 보편성에 맞추어졌다.하지만 예술가들은 과학자처럼 증명이나 검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상상은 그들 스스로 욕구와 감정, 사상, 가치 등과 관련된 상상이라는 점에서 ‘예술만을 위한 상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은 주로 미래나 미지의 경험에 관계하고 현실을 넘어선 상상을 통해 대상을 만들어 내며 구성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처럼 상상력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정신활동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며, 이성적 활동이 된다. 그리고 창조적 사고를 낳는 원천이자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을 포괄하는 총체적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러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미술활동 중 지난 20세기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시대로 잘 알려져 있다.다다이즘을 시작으로 추상회화, 입체파의 활동은 기존 미술의 사고와 발상에 큰 변화를 주는 전환점이 되었으며, 새로운 발상은 이런 예술가들의 상상력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프랑스의 혁명적인 미술가 마르셀 뒤샹의 창작활동은 그동안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던 미술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난 상상력의 결정체였다.그는 1917년 남성용 소변기를 미술관에 설치하고 ‘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전시장에 놓인 소변기는 사물의 원래기능에서 벗어나 미술품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화가의 상상력과 관람객들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새로운 개념으로 탄생한 것이다.다디이즘의 다다가 ‘어린아이의 장난감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만 보더라도 당시의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세상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그의 기발한 상상력은 피에로 만초니의 ‘미술가의 똥’(1961)처럼 배설물이 담긴 깡통이나 심지어는 데미언 허스트의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1991)과 같은 파격적인 현대미술이 탄생하는 발단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현대미술에서 상상력은 화가들의 창조활동에서도 그렇지만 작품 감상과 사고활동을 하는 감상자들에게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감상자들은 그림의 조형요소나 원리에 따른 직관적 인상이나 새로운 느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림 속 특징의 상호 관련성에도 사고하는 훈련을 한다면 새로운 현대미술의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2018-12-11

100세 시대는 미래가 아닌 현재다

▲ 김진홍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우리나라 남성 평균수명은 2017년 기준 79.7세, 여성은 85.7세로 일본의 81.09세, 87.26세와 큰 차이가 없다. 2018년 9월 현재 일본의 100세 이상 고령자수는 6만9천785명인데 우리나라는 1만8천582명이다. 절대수치는 일본보다 적지만 일본 인구가 우리보다 2배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큰 차이도 아니다. 우리도 일본처럼 100세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만일 현재 90세 이상 고령자가 5년 후까지 생존했을 경우 전국의 100세 이상 고령자수는 6만2천862명, 10년 후까지라면 무려 22만3천900명에 이르게 된다. 경북과 포항도 예외는 아니다. 전국과 같은 기준으로 100세 이상 고령자수는 각각 852명, 96명이지만 5년 후면 3천 954명, 459명으로 10년 후면 1만6천550명, 1천920명까지 확대될 수 있다. 불과 10년 후면 경북이 우리나라 전국과 비슷한 수의 100세 이상 고령자를 보유할 수도 있다. 문제는 단순한 수치가 아닌 확대 속도다. 전국기준으로는 현재 100세 이상 인구수가 5년, 10년 뒤에는 각각 3.3배, 12배로 늘어나지만 경북은 4.6배, 19.4배로 포항은 4.8배 20.0배로 더욱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 수치는 사망률 등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화는 되겠지만 경북과 포항지역에 앞으로 10년간 100세 이상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한편, 2017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2천 24시간에 이른다. 20세부터 직장생활을 했다면 60세 정년까지 40년간 일한 시간은 8만 960시간이나 된다.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이다. 여기에는 인간으로서 생존해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먹고 자고 쉬어야만 하는 ‘생존시간’이 있다.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직장생활을 포함한 다양한 경제활동을 하는 ‘생활시간’이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 있다. 운동, 독서, 취미생활 등에 소비되는 자유시간은 대부분 젊을 때 많이 있었으면 하고 꿈꾸지만 이러한 시간은 정년은퇴를 하고 난 뒤 생활시간이 대폭 줄어야만 생겨난다. 일본 정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은퇴고령자들은 생존시간에 11시간 38분, 생활시간에 4시간, 자유시간에 8시간 22분을 배분한다고 한다. 우리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이 통계를 적용하여 60세 정년 이후 남성평균수명인 79.7세까지 19.7년간 확보하게 될 자유시간을 계산하면 5만 7천 524시간이 나온다. 이것을 직장생활로 환산하면 28.4년에 해당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다음부터 직장생활을 하였다면 직장생활기간은 35.4년으로 줄어들게 되므로 거의 평생을 보낸 근로시간과 필적하는 자유시간이 생겨나는 것이다. 결국 건강하기만 하면 자신이 꿈꾸어왔던 그리고 생활시간으로 인해 아쉬웠던 시간을 새로운 분야, 새로운 지식습득, 새로운 활동에 기꺼이 쏟아 부을 수 있게 된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은퇴한 고령자라도 최소한 두 세 분야는 전문가로서 인생 100세 시대에 활동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이제는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청년일자리는 미래다. 당연히 정책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 현재는 100세 시대다. 충분한 이해력, 활동력과 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지닌 수십만의 100세 클럽 대기자가 존재한다. 2018년 9월 현재 경북의 60세 이상 고령자수는 73만 명, 포항은 11만 명이다. 이들이 단순한 보호복지대상인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자유시간을 가진 예비산업인력이며, 다양한 직업군의 훌륭한 교관들이다. 이들은 급여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100세 시대에 얼마나 의미있는 자유시간을 쓸 지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 분야에 걸친 정책적 재조명이 필요한 때다.

2018-12-10

스마트 세상의 빛과 그림자

▲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때는 2045년 미래, 어느 천재 프로그래머가 만든 ‘오아시스’라는 가상의 공간. 오아시스 속에서는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고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으며 실패해도 새로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며, 언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이상향’인 오아시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했고 기업은 사람들이 그 가상의 세계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하는 데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오아시스의 비중이 커진 나머지 급기야 현실세계와 주객이 전도되기에 이른다. 사람들은 이제 오아시스 속으로 출근을 하고, 그곳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낸다. 운동도, 교육도, 사람들과의 사회적 교류까지도 대부분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이뤄진다. 사람들에게 암울한 현실 세계에서의 생활은 이제 배고플 때 끼니를 해결하고 잠을 자는 곳 이외의 의미는 없다. 가상 세계 속 목표를 위해 경쟁하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도 삶의 목표가 되어 버렸고, 그래서 사람들과 그들의 인생은 모두 가상 세계 속에 종속돼 버렸다. 얼마 전 우연히 본 어느 영화 속에 그려진 미래 세상의 이야기다. 그저 보고 즐기는 공상과학 영화 한 편으로 여기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스마트시티’연구를 하는 필자에게는 밤잠을 설쳐가며 한 장면씩 되돌려보면서 고민하게 만드는 진지한 ‘연구’거리가 되었다.스마트시티를 외형적 기술과 사업적 가치에 집중해서 바라보면, IoT와 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연결성’과 ‘지능화’의 향연으로 비친다. 기업들은 새로운 ‘스마트 디바이스’들을 엄청난 속도로 시장에 쏟아내며 스마트시티로의 변화를 재촉한다. 시장조사 전문기관들은 인터넷에 연결되는 디바이스의 수가 불과 5년 후면 수백억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흐름을 부추긴다.새로운 시장, 새로운 산업이 열린다는 점에서는 당연히 반겨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폭발적인 증가와 스마트 기술의 ‘난무’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특히, 지금까지의 도시 플랫폼은 연결성을 구현하는 데만 급급하여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담아낼 수 있는 서비스 시스템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할 때이다.스마트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을 도식화해보면 인프라, 연결성, 데이터, 보안, 정책, 거버넌스, 그 위에 공공과 민간 부문의 서비스가 토핑처럼 올려져 여러 겹으로 정성껏 구워낸 케이크와 같은 모습이 된다. 각각을 누가 담당해야 할지를 연결해 보면 바람직한 스마트시티는 누군가의 독주 체제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지역을 중심으로 시·산·학이 모두 협력하는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수백억개의 스마트 디바이스로 북적거릴 미래 세상은 흡사 수백억 조각짜리 퍼즐게임을 방불케 한다. 퍼즐게임 속에서 길을 잃으면 퍼즐 조각을 대조해 가며 참조할 그림이 필요하다. 스마트 디바이스와 스마트 기술들이 제멋대로 난무하지 않고 제자리를 찾게 돕는 큰 그림말이다. 우리가 ‘스마트시티’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교통, 환경, 안전, 행정 등 도시 생활의 문제와 인류의 지속가능성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마트시티의 큰 그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어야 한다.대부분의 슈퍼히어로 영화에서처럼 오아시스에도 기술과 사업에 눈이 멀어 세상을 독식하려는 악당 기업이 있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온갖 고난을 무릅쓰며 악에 맞서 싸웠다. 주인공의 호소로 사람들이 하나둘 참여했고 결국 모두 하나가 되어 인간성을 지켜냈다. 스마트시티 역시 어떤 경우에도 기술과 사업으로만 치닫는 유혹을 떨치고 인간성을 지켜내는 영웅의 역할이 필요하다.

2018-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