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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학교진로교육에 대한 제언

조현명 시인TV 인기드라마로 교육문제를 다룬 ‘스카이 캐슬’을 통해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다. 교육은 우리 사회에서 신분 상습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부정할 수 없이 출세주의, 학력간판주의가 뿌리 깊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져 나온 ‘논문 1저자 등재’에 관한 논란도 다 그런 바탕에 있다. 이런 바탕에서 학교 진로교육은 방향을 잃고 표류해 가고 있다.먼저 진학 지도에 비해 진로 지도와 상담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부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진로교육에 있어서도 학생의 적성과 내면적인 성숙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학교성적과 진학, 취업가능성 위주로 다루고 있다. 현재 적용하고 있는 2015 개정교육과정은 더욱 심각하다.고교 1학년 2학기면 진로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2, 3학년에 배울 과목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중학교의 자유학기제와 진로교육에 의해 학생들이 대부분 진로를 확정했다고 보는듯하다. 잘못되었다. 기초공사가 안 된 바탕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 일이다.학생선택형 교육과정이 마치 진로교육을 위한 것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그 반대이다. 선택형교육은 이미 실패로 보고된 바 있다. 그런 실패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매우 이상적인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듯하고 국민들에게도 치적을 드러내고 홍보하기 좋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한 정책이다. 시범학교들은 늘 자화자찬의 결과논문을 보고한다. 이것은 교직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결과이다. 안 될 정책들이 계속 현장에 적용되면서 기형적인 교육이 만들어져가고 있다. 그중 자유학기제와 진로선택중심형 교육과정이 1순위로 손꼽힐 만하다.사실상 학교진로교육은 결국에는 학생 자신과 학부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유교적인 정신이 남아있어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선호하고 일부 직업은 천하게 여겨 기피하는 풍토다. 그래서 교육당국은 학부모교육까지 실시하고 있다. 한 번 하겠다고 시작한 정책을 쉽게 포기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무용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의 의식까지 바꾸면서 가야겠다는 발상은 계란의 바위치기로 보인다. ‘시장의 흐름에 따라가라’는 금융시장의 격언이 있다. 교육에 시장논리를 적용하기란 문제있어 보이지만 학부모들의 의식과 풍토 그리고 움직임은 시장의 흐름을 닮았다. 그동안 교육당국이 사교육시장을 잡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자기소개서 대필이나 스펙 만들기를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근절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 두 가지로 간단히 학교진로교육에 대해 제언하려 한다. 첫째, 진로교육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본교육의 바탕 위에 진로교육을 도입하자. 그러므로 자유학기제와 고등학교 진로선택형 교육과정을 완화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학교에서 진로교육이 행사 위주가 되지 않도록 유도하고 학교의 모든 교육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진로상담에 대한 체계화가 필요하고 담임교사가 진로교사가 되는 학교진로교육의 시스템화가 필요하다. 차라리 담임교사라는 명칭보다 진로교사라고 부르는 건 어떨까 싶다.

2019-09-23

가을의 길목에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추석이 지난 산천초목에 가을빛이 깊어간다. 지난 여름의 열기와 격정을 가라앉히고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나무와 풀들에게도 가을은 사색의 계절인가 보다. 높푸른 하늘 아래 갈대와 억새가 패고 드넓은 들판 가득 벼들이 영글어간다. 한결 시원해진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흰 구름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도 따라서 청명해진다.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한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사고능력은 있는 것 같으니, ‘자기 존재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인간의 정의가 될 것이다.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성이 아니겠는가.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필요로 하는 것은 문명화된 사회란 단순한 본능만으로는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 대한 인식과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갖추어져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지나친 이기주의나 독선은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마련이고 그만큼 인격적 결함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우여곡절 끝에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조국이란 사람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이 날로 확산되는 형국이다.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검찰과 그것에 제동을 걸려는 정권이 존망을 건 힘겨루기를 하고, 그 양자를 비호하고 지원하는 세력들도 편을 갈라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조국사태’로 일컬어지는 이 난국은 한 고위층 가족의 일탈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도덕적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사례인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학벌이든 지위든 최고의 위치에 있는, 소위 지도층 인사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곡학아세에다 지식을 악용한 편법과 탈법도 서슴지 않는 일탈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안겨 준다. 모쪼록 이번 사태가 사필귀정으로 끝이 나서 우리나라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부부가 다 일류대학을 나와서 유학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될 정도면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학벌을 갖춘 집안이다. 그런 지위에까지 올랐다면 학자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우리 사회의 가장도 정의롭고 덕망 있는 지성이요 사표로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 일 아닌가. 교육제도에 모순이 있으면 당연히 내 아이에게는 그 길을 걷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더 이상 재물이나 권세 따위 기웃거리지 말고 학문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을 한다면 오죽이나 좋은가.그들 가족이 야기한 사태로 학계와 사회에 끼친 해악이 얼마인데, 장관까지 되어서도 교수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욕심도 그악스럽다. 도대체 학생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며 사회에 나가서는 어떤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것인가.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찌 그토록 자기성찰도 반성도 없는 후안무치일 수가 있는가.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남은 것이라고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 하나 뿐이라면 인생이 너무 허망하지 않은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 놓아버리고, 국민들 앞에 참회하기 바란다. 그래야 사람이고 그것이 사는 길이다.

2019-09-19

‘학교 내 대안교실’의 가능성은? (上)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라고 하지만 시끄러운 조국은 국민의 흥을 꺾어버렸다. 필자 또한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한가위를 보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가족들로 고향집이 보름달보다 더 꽉 찼고, 달빛보다 더 따뜻한 웃음이 집 안에 넘쳤다. 그런데 올해는 필자 가족과 어머니만 고향집을 지켰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아버지의 자리는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는 한가위였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이들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다.추석 당일 필자의 식구들은 이른 차례를 지내고 병원으로 향했다. 비록 병원일망정 한가위를 가족과 보내려는 사람들로 병원은 떠들썩했다. 오랜만에 병원 냄새가 아닌 사람 향기에 아프신 모든 분들의 병이 치유되는 듯 했다. 꼭 그렇게 되길 필자는 기원했다.그런데 진상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필자는 한가위 병원에서 확인했다. 필자가 본 진상의 모습은 환자도 아니면서 복도와 쉼터를 돌아다니며 양치를 하는 사람들과 마치 놀이동산이라도 온 것처럼 아이들과 고성방가에 가까운 소리로 떠드는 젊은 아버지들이다. 필자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생각했다. 어린 손주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병상을 내어주는 환자복의 할아버지, 그 병상 위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를 훈육하기보다는 더 신이 나서 더 큰 목소리로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을 부추기는 젊은 아버지들! 과연 이렇게 자란 아이들의 초중학교 모습은 어떨까? 이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꼭 그렇게 되길 필자는 빌고 빌었다.왜냐하면 최근 교사들의 명예퇴직 사유 중 부동의 1위가 교권추락과 생활지도의 어려움이고,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예의를 상실한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통제와 절제가 안 되는 학생들, 그들에게 학교는 자신들의 원초적 감정을 발산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학교에는 이런 학생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그 속도보다 더 빠르게 학교도, 교실도, 교육도 무너지고 있다.교육 당국에서는 ‘학교 내 대안교실’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무너져가는 교육을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학교 내 대안교실’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대안교실을 홍보 중이다. 뭔가를 해보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응원을 보낸다. 이 노력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안교실 운영 목적 몇 가지를 인용한다.“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는 다양한 교육 기회 제공, 학교부적응 학생에게 유의미한 학교생활이 되도록 지원, 다양한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대안적 교육 기회 제공, 위기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중하고 협력하는 교육기회 제공”정말 좋은 말이고, 대안교실이 아닌 우리 교육이 해내야 할 교육 목적들이다. 그런데 필자는 지금과 같은 대안교실 프로그램으로는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필자가 교육부 컨설턴트로 대안교실 프로그램을 컨설팅하던 3년 전과 바뀐 것이 별반 없기 때문이다.

2019-09-17

도시, 젠더 이슈에서 분석한다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2012년 성별영향평가법 시행 이후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과 같은 지역개발에 대한 평가가 활성화되고 있고 있다. 이를 정책개선으로 연계하려면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 젠더 이슈에 따른 모니터링 운영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때문에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의 젠더 이슈는 여성과 남성의 생활특성 차이와 요구를 고려한다고 본다. 즉 돌봄, 접근성, 편의성, 안정성, 체감도 다섯가지 영역을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의 젠더 이슈로 살펴본다.돌봄은 전통적인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환경을 촉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녀 모두 가정과 사회의 공적인 일이 조화롭게 도모할 수 있도록 돌봄 기능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안전하고 편리한 양질의 돌봄 시설이 제공돼야 한다. 편의성은 중요한 젠더 이슈 이며, 여성의 돌봄이나 여성 친화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문화·복지·체육시설 배치 및 설계, 공공기관 내 유·아동 보호 및 편의시설 설치, 휴식 공간 제공 등을 검토해야 한다. 안전성은 필수적인 요인이며, 장소와 시간대에 따른 범죄로부터의 여성 안전 확보, 여성의 보행환경을 고려한 도로 포장, 여성의 보행속도를 고려한 신호체계 구축,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주택 및 도심시설 설계, 생활체육 시설 및 공원 등을 고려해야 한다. 체감도는 정책 및 계획의 수행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는지, 즉 어떤 항목이 반영 되었고 반영하지 못한 항목은 무엇인지 살펴본다.이처럼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의 젠더 이슈와 함께 모니터링에서 검토할 부분을 제시한다. 첫째, 기획에서는 법령 및 지침 등의 성인지적 관점 반영 여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익증진을 위한 시설 설치 규정 여부,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 관련 성별 통계 생산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정책의 성별 관련성에서는 성별 간 서로 다른 요구 파악,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 관련 의견수렴 과정(주민 설명회 등) 실시 여부, 정보 접근성의 용이성을 살펴본다. 또한, 위원회의 성별 형평성을 고려한 여성위원비율 및 위원들의 성인지 감수성, 사업추진 주체의 성별 구성 및 성평등 의식을 점검한다. 둘째, 과정에서는 성인지 예산 연계, 시설 및 장소의 접근 용의성과 안전성, 서비스 및 프로그램의 접근 용이성을 확인해야 한다. 임산부 및 영유아 동승자를 배려한 일정 크기의 주차공간이나 공원 및 체육시설 내 여성 및 노인, 어린이의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시설물 배치 등을 살펴본다. 그리고 거주 공간의 안전성 뿐만 아니라 야간보행 안전성을 위한 조명시설도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평가에서는 성별 요구에 따른 시설 및 환경만족도, 복지 만족도, 여가 및 커뮤니케이션 시설, 평가결과의 수행정도 및 실효성 파악, 성인지 예산 반영 및 집행결과를 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도시기반 및 공공시설 관련하여 성인지 예·결산서 작성이 수행되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이 체계화되려면, 단편적인 조사와 분석이 아닌, 상시적인 점검과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19-09-16

추석(秋夕)과 밀레의 ‘만종’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30도를 넘나들던 한여름의 더위가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벌써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인 추석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 한여름 농부들의 고단한 땀방울로 수확한 곡식들을 조상과 신들에게 올리는 감사의 풍습은 동·서양의 공통된 문화이다. 중국은 중추절, 일본은 오봉절 그리고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과 독일의 옥토버페스트 등은 인류가 자연에 대한 감사와 경배의 기념일이다.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농사에 의존해 생활했다. 이후 점차적으로 유럽 전역에 도시화가 확산되면서 열악한 농촌 환경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가치가 살아 있었던 농촌생활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프랑스의 빈촌인 바르비종으로 이주해 죽는 날까지 그곳에 머물며 자기만의 농민상을 화폭에 담은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농민들의 노동하는 모습을 통해 자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진정한 수확의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했던 화가였다.그가 남긴 ‘이삭줍기’와 ‘만종’은 그의 대표작들로 평가받고 있는데, 둘 다 같은 시기에 그려진 작품들로 그중 ‘이삭줍기’는 1857년 살롱에 출품되어져 당시 비평가들의 뜨거운 공방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으로 유명하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그림 속에서 빈민계급에 의한 혁명 사상을 보고 비난했으며, 중산계급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진보적인 좌익계통의 비평가는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사상을 읽고 이것을 칭찬하며 환영하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려는 일관된 작가관을 구사했었다. 그림속의 부부는 감자를 수확하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기도를 하고 있다. 이들의 발 근처에는 쇠스랑과 바구니, 자루, 손수레 같은 농기구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이렇듯 그림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은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관람자는 그림의 세부적인 내용보다는 그림 전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웅장함과 차분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밀레의 독특한 화법과 더불어 크게 부각되어 그려진 인물의 모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농부 부부는 마치 그림의 전경으로 분리된 것처럼 그려져 외로운 느낌을 강하게 주지만, 화폭 전체를 차지하면서 관람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그림의 모든 소재는 농촌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림 속 여인들은 어렵고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조금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스스로의 노동으로 떳떳하게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며 어떤 노동이든 노동은 인간을 존엄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다. 사람이 노동하기 때문에 천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기 때문에 천박해지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잃게 된다는 농민화가 밀레만의 깊은 철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밀레가 가졌던 삶의 철학처럼 우리 농부들의 진정한 노동의 가치와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한가위가 되었으면 한다.

2019-09-10

9월, 배려의 달

박상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얼마 전, 결혼한 지 5년이 채 안 된 후배가 추석 인사 겸 감사의 뜻도 전한다며 연락이 왔다. 그런데 긴 한숨을 푹~ 내쉬는 것이 아닌가. 이유인즉슨, 작년까진 회사에 급한 일로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되었는데 올해는 가야 해서 가슴이 답답하다는 것이었다. 명절 때가 되면 연중행사처럼 스트레스증후군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하니, 괜한 씁쓸함이 몰려왔다.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명절 때만 되면 어김없이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이들이 많다. 큰 명절을 쇠고 나면, 이혼율이 평소보다 몇 배나 급증한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에는, 물 만난 고기처럼, 명절 연휴가 긴 경우는, 그 의미를 되새기기보다는 서둘러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이들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명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자의 몫이지만, 어쩌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옛날, 추석에 행해진 많은 풍습들 중에 반보기라는 것이 있다. 이는 며느리가 떡, 술병, 닭이나 달걀꾸러미 등을 들고 친정에 가는 근친의 기회를 갖지 못했을 때, 친정과 미리 통문하여 친정과 시집 중간의 경치 좋은 곳을 정해, 친정어머니와 만나게 하던 풍습이었다. 이때, 딸과 친정어머니는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서 만났는데, 중간에서 만난다 하여 중로회견(中路會見)이라고도 했다. 한번 결혼하면 친정에 가기가 쉽지 않았던 그 때, 그래도 추석동안만은 짧지만 친정어머니와의 회포를 풀도록 한 시댁의 아름다운 배려였던 셈이다.그런데 오늘날은 어떠할까? 명절 때만 되면, 친정 방문을 앞두고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침부터 서둘러 친정에 가려고 온갖 일거리를 바삐 마무리하는 며느리와 그 마음을 모른 채 늑장부리는 남편 간의 미묘한 감정 다툼, 빨리 가라 재촉하는 시부모님이라면 참 다행이지만, 점심까지 먹고 가라고 붙들면 이제 며느리는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짜증스러울 법하다. 차라리 일을 핑계로 시댁에 안 가거나 해외로 멀리 갔으면 하는 마음마저 생겨날 터.옛날, 추석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여름내 고생한 농군들이 소놀이(일을 잘한 상머슴을 농우에 태워 마을을 누비던 풍습)·거북놀이(“바다에서 거북이가 왔는데 목이 마르다”면서 큰 집을 찾아가던 풍습)를 하면 주인들은 음식을 크게 대접하였고, 가난해서 추석 음식을 장만 못하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었고, ‘추석빔’이라 하여 머슴들에게까지 새 옷을 마련해 주었으며, 친정에 자주 못가는 며느리를 위해서는 손수 음식들을 장만해서 친정어머니를 보고 오라 독려하기도 했다. 모두가 서로 알뜰살뜰 챙겨주는 아름다운 풍습들이 아닐 수 없다.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명절은, 진정한 명절이 아니다. 비록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개인주의가 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이지만, 그래도 추석이 있는 9월 달에는, 한번쯤, ‘나’가 아닌 ‘우리’, ‘너’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햇과일, 햇곡식만 풍성한 계절이 아니라 진정 마음과 정신이 풍성한 계절 가을일 수 있게 말이다.

2019-09-09

그들의 정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를 자처하는 이 정권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나라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출발을 했다. 그런데 임기 2년차가 지나면서 정치, 경제, 외교, 국방, 언론 등 각 방면에서 무능과 오만과 불의의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과연 그들의 말처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보여주는 거라고나 할까.정권의 주역 중 한 사람이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자 온갖 추문들이 연일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가장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딸의 진학을 둘러싼 비리와 부정에 관한 의혹들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남들은 꿈도 못 꾸는 화려한 스펙을 12가지나 쌓았다는 사실에 다들 혀를 내두른다. 그 중에서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장영표 교수를 책임저자로 대한병리학회에 제출된 연구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스펙이 가장 두드러지는데,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그 논문작성이 끝난 후에 2주간 인턴을 한 경력으로 제1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1일 상임이사회를 열고 조 양의 지도교수인 장영표 교수를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논문의 제1저자는 연구주제를 정하고 실험 대부분에 참여하는 등 논문 작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며 기여도가 높아야 한다”면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 조사를 할 예정”이라지만,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더 가관인 것은 장 교수의 변명이다. 그 학생이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해서 선의로 그랬다는 것이다. 명색이 대학교수라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게 참으로 놀랍다. 학자로서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일말의 양심이나 양식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그런 몰상식한 말을 버젓이 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사람들을 못내 궁금하게 하는 것은 장 교수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하는 점이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치고 그의 말대로 그냥 단순한 선의로 그런 비상식적인 짓을 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찰이 수사에 들어갔다고 하니 조만간 그 내막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조국이란 사람을 둘러싼 온갖 의혹과 스캔들은 평소 그가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하고 매도하던 일들이라는 것 때문에 생긴 말이다. 한 마디로 ‘조로남불’이고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라 것이다. 그런 조국을 비호하고 두둔하는 일부 좌파 인사들도 지난 정권에 들이대던 정의와 윤리의 엄정한 잣대를 슬며시 감추는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의와 도덕성을 전매특허로 내세우던 좌파집단의 민낯이 어떤 것인지를 전 국민에게 보여준 셈이다.증인채택 문제로 국회청문회가 결렬되자 조국 후보는 기습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셀프청문회’로 일컬어지는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의혹사항 대부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국민 과반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할 거라는 예측이다. 지난 정권을 모조리 적폐로 몰아넣고 새로 구현하겠다는 그들의 정의(正義)가 과연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19-09-05

학생 정서불안, 근본적인 해결 위한 질문 필요

조현명 시인·교사신인류가 탄생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요즘 10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른들의 말을 안 듣는 것은 기본이고 예의도 없다. 거기에다가 마음대로 한다. 이런 못 말리는 아이들의 탄생은 학교가 얼마나 어려운 지경에 처했는가를 말해준다. 어느 학급에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에 해당하는 학생이 1명이라도 있으면 그 아이를 지도하느라 다른 아이들에 대한 보살핌은 매우 어려워진다. 이런 질환이 학령기 학생의 3~20% 정도라는 통계가 있다. 물론 중증인 경우 병원에서 약을 처방한다. 그것으로 상당히 제어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작용 때문에 약을 복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교사 B는 이 질환을 겪는 아이의 심한 행동을 뜯어 말리다가 그만 아이의 얼굴에 손톱생채기를 내게 되었다. 하교 후 그것을 확인한 부모가 전화로 폭언과 함께 협박까지 했다. 이후 B 교사는 병가를 내고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퇴직을 고려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특수한 경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큰 문제는 요즈음 상당수의 학생에게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많아졌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심증은 많다. 먼저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후 바로 산모와 떼어내는 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아이가 그동안 기대고 있었던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에서 떨어져 너무나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또 휴대폰에 노출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유튜브를 보면 그 특징이 드러난다. 유튜브를 보는 세대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에만 감각을 여는 세대이다. 관심 없고 흥미 없는 것에는 주의력이 결핍일 수 밖에 없다. 또 SNS는 빠르게 소통하고 자극적이다. 행동과잉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들이 많다. 또 게임을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임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고도 한다. 심리적인 어려움에 처한 아이에게 게임은 탈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정서불안증 학생이 늘어나는 학교, 매우 위험해져가고 있다. 학생 자살이나 자해 사건이 전에 없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학교마다 위클래스를 설치하고 상담인력을 배치하고 있지만 잠재된 위험요소에 대한 대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상담인력과 인프라 확충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정서불안과 유사한 증상들이 증가하는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함께 그것을 줄여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 마다 땜질식 대책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다. 또 매뉴얼 만능주의가 만연해서 사건 이후 대처 매뉴얼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 자살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처 매뉴얼만 늘었지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또 유야무야다. 사건이 나지 않기만 바랄뿐이다.‘옛날처럼 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고 수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자괴감이 든다’ 라는 소리를 교사들에게서 많이 듣는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어느덧 병들었다는 증거다. 결국 대부분의 학교나 교육은 이런 현상으로 망가져가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나?’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2019-09-04

경북형 마을학교 3 - 머무는 학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하늘 붓은 청명한 가을 하늘을 그리고, 마음의 붓은 하늘을 향해 소원을 그리는 9월입니다. …. 가을 대추는 여름날에 품은 땡볕과 우뢰와 열기로 고운 빛을 빚어냅니다. ….”성분을 바꾼 바람이 시를 부르는 9월이다. 많은 가을 시 중에서 앞에 인용한 시(예강 ‘평온하게 하소서’)에 시선이 멈췄다. 시를 읽다가 올려다 본 은행나무에서 9월의 모습을 보았다. 늘 푸를 것만 같았던 은행나무가 여름내 품었던 푸른색을 겨울을 견뎌야 하는 나무들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철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은 올해도 오감(五感) 풍성한 가을을 선물하고 있다.하지만 철이 없는 이 나라는 해가 거듭될수록 지독한 혼돈에 빠지고 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뉴스가 있다. “세계 최초 ‘출산율 0명대 국가’ 한국” 조국이 조국답지 못 하다는 우스갯소리가 한창이던 지난 주 필자의 이목을 끈 뉴스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출산율 저하가 아니라, 출산 실종 현상을 초래하였다.다른 수치도 절망적이지만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 가장 암울한 수치가 출산율이다. 국가의 3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이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이다. 우리가 주권과 영토를 빼앗겼을 때에도 국가가 없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빼앗긴 것을 꼭 되찾고자 하는 강한 열망과 그 열망을 행동으로 옮긴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출산율 0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나라를 굳건하게 지켜온, 또 지킬 국민이 사라지고 있다.0명대 출산율의 비극을 가장 절감하는 곳은 학교이다. 혹 학교가 무너지면서 출산율도 무너진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답은 다시 교육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도 좋지만, 그와 병행해서 교육을 살리는 일에 좀 더 매진해야 한다. 자유학년제, 고교학점제 등으로는 안 된다. 이들 정책들이 주효했다면 교육 붕괴는 예전에 멈춰야 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물론 필자도 교육을 살릴 묘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육수요자들은 교육의 본질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교육의 본질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성장시키는 것이다. 산자연중학교에서는 그 교육의 본질을 마을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마을 어르신들은 물론,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그 만족도가 다른 지역 학생들을 경북 교육 안에 계속 머물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필자는 마을학교를 시작하면서 교육 단계를 세 단계로 설정하였다. 첫 번째 단계는 다른 지역에서 찾아오는 교육. 두 번째 단계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자녀 교육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교육.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그들을 고향에 계속해서 머물게 하는 머무는 교육. 앞 두 단계는 성공했다. 이제 마지막 단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력이라고 해서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의 품 안에서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나만을 위한 꿈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학생들을 지도하면 된다. 그런 교육에 입시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

2019-09-03

책을 가까이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9월은 독서의 달, 이른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다. 등화가친이란, ‘등불을 가까이 할 만하다’라는 뜻으로, 중국 당나라 대문호인 한유가 그의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기 위해 지은 시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의 끝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때는 가을이라 긴 장마 걷히고/신선하고 서늘한 바람 들에서 불어오니/등불 점점 가까이 하고/책을 펼칠만 하다’ “시추적우제(時秋積雨霽) 신량입교허(新凉入郊墟) 등화초가친(燈火稍可親) 간편가권서(簡篇可卷舒)” 54행으로 된 오언고시(五言古詩)에서 한유는 어려서 비슷하던 아이들이 자라나 두각을 드러내면서 하나는 용이 되고 하나는 돼지가 되는 것, 누구는 군자가 되고 누구는 소인이 되는 것은 배우고 배우지 않은 차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들을 아끼는 마음과 공부를 채근하는 마음이 엇갈린다면서도 세월을 아껴 책을 읽고 시를 지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도록 권면하고 있다.우리나라의 독서율은 해가 갈수록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7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1994년 86.8%에서 2013년 71.4%, 2017년에는 60% 이하로 떨어졌다. 1년 간 책을 한 권도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10명 중 4명이나 된다. 시대가 각박해지고 넘치는 정보의 홍수 속에 휘말려서일까?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간편하게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수시로 보거나 들을 수 있으니, 독서에 투자하던 시간과 노력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면서 책과는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초간편사회가 된다 해도 책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것까지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생각의 힘과 창의성은 독서와 토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독서는 깨달음의 원천이다. 경험해보지 못해 얻을 수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라도 얻게 해준다. 그것은 곧 주어지지 않은 것을 보이게 하고, 존재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며, 낡은 것을 새롭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독서는 사람의 재능을 밝혀주고 지혜를 더해주는 마음의 등불이라 하지 않았던가.필자의 주위엔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독서와 토론을 하고, 소리 내어 윤독(輪讀)을 하며 책읽기의 재미에 빠지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고 진지하며, 중년의 연배임에도 저마다 글 읽는 목소리는 샘물처럼 낭랑하기만 하다. 아마도 변하지 않는 친구를 대하듯 책과 만나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며 정겨움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독서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소소하지만 생활의 저변에서 독서문화를 조성해가는 작은 변화의 물꼬가 아닌가 생각된다.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키우고 길러낸다.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는 책 속에 가득하다. 책을 읽는다면 그 계기들을 만날 수 있고, 고금동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천랑기청(天朗氣淸)한 가을의 길목에서 풀벌레 소리의 화음에 맞춰, 책장마다 새록새록 피어나는 감칠맛 나는 이야기 나라로 독서여행을 떠나보자.

2019-09-02

경북형 마을학교 2 - 되돌아오는 학교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감아침저녁으로 바람이 바뀌었다. 자연은 철이 바뀌기 전 중간지대를 운영 중이다. 급속한 변화에서 오는 혼돈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연의 배려에 작렬하던 여름 태양도 가을로의 자리 넘김을 준비하고 있다. 철 바뀜은 자연의 소리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매미 소리로 가득하던 여름 공간에 알락귀뚜라미, 넓은날개철써기 등 가을 곤충들이 소리로 가을을 짓기 시작했다.비록 자연은 변하지만, 필자는 매주 일요일 오후 6시면 출근한다. 왜냐하면 기숙사 학교인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일요일 저녁에 귀교하기 때문이다. 산자연중학교는 네온사인 하나 없는 전형적인 면단위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밤이면 간헐적으로 의무를 다하는 개짓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런 시골 마을이 일요일 저녁이면 길게 늘어 선 차들로 분주해진다. 차들은 서울, 경기, 전북 등 전국에서 학생들을 등교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이 운전해 온 차들이다. 산자연중학교는 전국단위 모집 학교이다. 지금 재학생들은 전국 10개 시도에 주소지를 두고 있다.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에 귀가를 해서 일요일 저녁에 귀교를 한다. 귀교 방법은 대중교통, 개인차량 등 다양하다. 개인차량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19시에서 20시 사이에 집중해서 학교로 온다. 필자는 좁은 시골 길에 자칫 있을 교통 혼잡을 예방하기 위해 매주 일요일 19시부터 학교 앞 도로를 지킨다.이번 2학기에는 5명의 학생이 서울, 전북 등지에서 전학을 왔다.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전학을 희망했지만, 학비 부담 등의 이유로 전학을 포기했다. 그래도 이번 전학생들은 학교와 마을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한때 농산어촌 학생의 성공 기준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마을을 떠나 대도시로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농산어촌 지역의 학생들은 마을을 떠나기 위해 밤을 낮처럼 공부 하였다. 부모들은 그런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몸이 부셔지도록 일을 했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공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고향을 떠났다. 필자는 고향을 떠난 이들이 자녀교육을 고향 학교에서 시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녀뿐만 아니라 이촌(離村) 한 사람들까지 고향으로 돌아오는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분명 지금과 같은 마을 소멸 현상은 없을 것이다. 필자의 상상 중 전자가 이번에 이루어졌다. 출향민(出鄕民)의 손주가 서울에서 이곳 영천으로 전학을 왔다. 전학 이유는 본교에서는 실시하고 있는 1인3기 교육, 몽골 해외이동수업 등과 같은 특성화 교육과 본교 특색 프로그램인 마을학교 수업을 받기 위해서이다.2015년부터 시작한 마을학교는 이름 그대로 마을이 학교가 되고, 학교가 마을이 되는 공동체 회복 교육 프로그램이다. 대표 활동으로는 학급 인성 전담 교사로 초빙된 마을 어르신들께서 매주 목요일 아침에 수업을 하시는 ‘인성전담 마을교사’ 제도이다.인구 절벽을 자초한 것도 교육이지만, 필자는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교육이라고 믿는다. 올해는 비록 한 명의 손주가 전학을 왔지만, 몇 년 안에 이촌 한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고향으로 되돌아오리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2019-08-28

약속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우편물 중 ‘○○경찰서’라 적힌 것이 보여 얼른 집어들었다. 경찰서 민원실로 와서 귀하의 교통법규 위반사항을 확인하라는 통보였다. 바로 갔더니, 내 차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영상을 보여주며 안전운전 의무 위반이니 차후부터는 범칙금을 부과할 것이라며 조심하라 하였다. 전혀 기억에 없는 일을 화면으로 확인하니 세상이 두렵기도 하였고, 운전습관을 스스로도 믿을 수가 없어 창구에 비치된 안전운전 서약서를 써서 제출하였다. 서약을 하고나면 교통규칙을 더 잘 지키게 될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인간이 지켜야 할 가치 중 약속은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다. 지키자고 하는 것이 약속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끝끝내 지켜냄으로써 진한 감동을 주거나 그렇지 못하여 비극적인 종말이 될지라도 약속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에 좋은 소재이다. 필자가 청소년이던 시절, 혼성 듀엣가수의 노래‘약속’이 크게 애창되었는데, 오늘날의 가요처럼 가사가 절절하거나 요란하지도 않고 ‘약속~ 약속~ 그 언젠가 만나자던 너와 나의 약속’이 가사의 대부분이었다. 이 단순한 가사와 느릿한 멜로디가 당대 청춘들의 가슴을 적셨으니 아마도 약속이라는 그 깊디깊은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어린아이 때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수없이 많은 약속을 하고 이를 지키려 무진 애를 쓴다. 청춘남녀끼리 새끼손가락을 걸며 하는 약속, 부모와 자식 간의 약속이나 국가 간의 약속 등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약속은 없다. 사회 안전도 교통법규 등 사회적 약속의 이행으로 유지되며 약속을 위반함으로써 발생되는 위험은 매우 크다. 국제적인 약속의 위반은 커다란 분규를 불러 때로는 참혹한 전쟁의 비극을 맞기도 한다. 중요하지 않은 약속이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스스로와의 약속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의 양심과 내면 깊은 곳에서 약속을 지켰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어떤 실패에도 의연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만 그렇지 못했을 때는 더러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오늘이 어머님 기일이다. 어머님은 생전에 “나 죽거든 제사는 너희 아버지 기일에 함께 지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저승에서도 삼종지도를 따르겠다는 당신다운 생각일 수도 있으나 아마도 하나 아들의 짐을 덜어주려던 마음이 더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어머님 떠나시고 몇 해 동안은 제사를 따로 지내다가 다섯 해가 지나고는 시속을 핑계로 아버님 제삿날에 함께 모시기로 하였다. 뭐가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세월은 뭔가를 자꾸 변하게 만든다. 아마도 변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리라. 어머님 생전부터 약속된 것이기는 하나 어쩐지 세월따라 슬쩍 달라진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영 편치가 않다.요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어수선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해 ‘나와 어떤 약속도 위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애써 자존심을 지키려 하고, 아베 총리는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억지로 그들의 조치가 타당함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나 더 이상 대국으로서의 존엄은 찾아볼 수 없다. 필요에 따라 궁색한 떼를 쓰더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는 말자.

2019-08-27

포항의 광복축구

이순영수필가올해는 광복이 된 지 74년이 되는 해이다. 나라 잃은 서러움과 그로 인한 숱한 고통들에서 해방이 된 날이다. 삼십여 년 동안 참고 참았던 함성을 마음껏 터뜨렸던 바로 그날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았으니 바닷물도 춤을 추고 산천초목도 춤을 추었으리라. 내 나라 내 땅에서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찾았으니 그 감격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었으랴.70여 년 전, 포항 신광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울분을 토한 날을 잊지 않기 위하여, 또 다시 그런 억압의 시대를 당하지 않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단결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1947년 8월 15일, 영일군(포항시 통합 전)을 대표하는 신광의 축구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광복절을 기념하는 축구를 했다. 짚으로 새끼를 꼬아 공을 만들고 골네트도 새끼줄을 엮어서 만들었다. 선수들은 흰색바지·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흰 띠를 두르고 땀을 쏟아내며 공을 차기 시작했다.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축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8월15일 축구는 다시 시작되었다.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중심으로 지역민들은 한마음으로 뭉쳤던 것이다. 이후 25년 동안 그 맥을 이어왔으나 1980년과 1981년에 극심한 가뭄과 냉해로 축구를 개최하지 못했다. 이후 1982년부터 오늘날까지 해마다 광복절이면 운동장에 모여서 축구를 한다. 2019년, 광복 제74주년·신광면민 친선축구 제68주년을 기념하는 ‘광복 축구’가 성황리에 열렸다.8월1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3일 동안 22개 마을에서 출전한 선수들이 경기를 거쳐 8월15일 결승전을 했다. 개막식을 한 날은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뜨거운 운동장에서 공을 찼다. 결승전을 한 날은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강풍을 동반한 비가 내렸지만 선수들은 비를 흠뻑 맞으며 빗물이 흥건한 운동장에서 공을 쫓아 힘껏 뛰었다. 더 놀라운 일은 각 마을마다 응원을 하러 나온 연로하신 분들이 운동장에 마련된 천막 아래에 가득히 앉아서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이었다.타지에서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은 마을사람들의 손을 잡고 안부를 물으며 정을 나누었다. 축구경기에서 승패는 문제 삼지 않았다. 져도 좋았다. 잘 했다고 마을사람들은 칭찬이 자자했다. 축구를 중심으로 팔씨름과 윷놀이를 하여 순위에 따라 상장과 트로피 및 부상이 수여되었다. 부상은 돼지고기다. 해마다 이 행사를 할 때 돼지 서른 마리 쯤을 잡는단다. 수상을 못한 동네는 상을 받은 마을에서 고기를 나누어 주기도 하여 신광면민 모두가 잔치를 연다.시상식이 끝난 운동장에서는 신명난 축제가 열렸다. 신광면에서 태어난 가수나 개그맨들이 고향에서 한바탕 신나는 마당을 펼쳤다. 풍물단을 앞세우고 난타·색소폰 공연에 이어 초대가수와 마을사람들의 노래자랑으로 운동장은 아주 흥겨웠다. 행운권을 추첨하여 자전거와 다양한 전자제품들이 선물로 그득했다. 남녀노소 모두 빗물에 젖고 땀에 젖어도 함께 즐거웠다.폭염주의보가 발표된 날에도, 태풍이 지나가는 날에도 음식을 장만하고 행사진행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관계자들의 표정은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에서 개최하는 대한민국 ‘광복축구’. 면면히 이어왔으며 또한 대대로 이어갈 것을 응원한다.

2019-08-26

처서(處暑) 무렵, 들녘에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여름이 가고 있다. 이 들녘에 주둔해 있던 염제(炎帝)의 군사들이 조금씩 철수하고 있다. 뜨거운 폭양과 이따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무럭무럭 차오르던 초록의 벼들로 지난 여름의 들판은 참 무성했다. 일사불란하고 질서정연한 초록제복의 역군들이 생명의 양식을 생산하는 일에 일로매진해왔다. 들판은 굴뚝이 없는 거대한 공장이었다.기계화된 공장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 광합성 공장에도 이젠 사람이 거의 없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라던 벼들이 이제는 가끔씩 물꼬를 보러 오는 오토바이 소리나 지하수를 퍼 올리는 양수기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겉보기엔 옛날의 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천양지차다. 한 줌의 쌀이 되기까지 여든여덟 번이나 손이 간다는 말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렸다. 못자리부터 추수까지 사람 손이 직접 닿는 일이 거의 없어진 게 요즘 농사다.벼가 팬다. 만삭의 배를 안고 있던 벼들이 일제히 이삭을 밀어 올린다. 벼들에게도 해산의 고통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서 무렵의 들판은 온통 신생의 파동으로 술렁거린다. 아마도 지난 시절의 농부들은 이맘때쯤이면 자식이라도 보는 양 설레고 흐뭇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 감격조차 이제는 추억으로나 남아있을 뿐이다. 편리와 능률이라는 명분으로 우리 삶에서 생략되어진 수많은 과정들, 그 과정들에 배어 있던 삶의 애환들이 한갓 멍에와 노역에 불과한 것이었을까.들판의 초록물결 위로 제비들이 난다. 일부러 찾아도 잘 보이지 않던 제비들이 갑자기 수가 늘어난 걸 보니 그새 새끼를 친 모양이다. 먼 길 떠날 채비로 부지런히 비행연습을 하는 것이리라. 아직도 이 땅에 제비가 찾아와 준다는 것이 고맙고 반갑다. 행운의 박씨를 물어다 주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한 지붕 아래 산 정리(情理)가 그렇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이 아닌 철새들과 수천 년을 한 지붕 아래 살아온 인연이 어찌 가벼울 것인가. 기와든 초가든 제비집이 없는 집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내 서너 마리씩 새끼를 키우느라 분주하게 벌레를 잡아 들락거리던 제비 부모들, 노란 부리를 한껏 크게 벌리고 서로 달라고 졸라대던 새끼들, 그 광경은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제비야 반갑다. 그리고 미안하다. 제비들이 둥지를 틀 수 없도록 가옥의 구조를 바꾸고 들판에 농약의 살포해 먹이를 없애버린 인간들의 행위가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세 들어 살던 사람을 내쫓은 고약한 집주인과 다를 게 없을 터이다.바람이 분다. 여름 내내 바람을 쐬러 이 들녘으로 나왔다. 들판 한가운데서는 어디선가 늘 바람이 불었다. 미풍에서 태풍에 이르기까지 바람은 참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졌다.‘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읊은 시인도 있지만, 피부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에는 참으로 무수한 느낌이 들어 있다. 그 모든 느낌을 관통하는 것은 생명감이다. 열풍이든 산들바람이든 바람은 끊임없이 살아있음을 환기시킨다.우리는 살아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살고 있다. 항상 바쁘고 무엇에 기 듯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잊고 살기가 일쑤인 느낌이다. 잠시라도 그런 분주와 황망에서 벗어나려고 좌선이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하지만, 웃통을 벗고 들판 한가운데서 발람을 쇠는 것보다 나은지 모르겠다. 사람이 불철주야 의지를 불태우고 노력을 해서 얻은 성취감이나 자존감이 맨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주는 생명감보다 더 충일한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여름이 조금씩 비운 자리에 가을이 스며들고 있다. 들판 가득 가을의 예감이 술렁거린다. 이 들판에 땅 한 평 가진 것 없고 지은 농사도 없지만, 이 가을의 예감 또한 소중하다. 누가 내 삶의 계절에서 또 여름 하나를 빼내간다는 이 느낌이 아쉽기도 해서 계절의 추이(推移)를 온 몸과 마음으로 받는다.

2019-08-22

교육 제안 - 경북형 마을학교 1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인구절벽 문제가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구절벽에 따른 많은 국가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학령인구 급감이다. 입학생이 0명인 학교 이야기는 이제 특별한 일도 아니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 또한 마찬가지이다.인구절벽에서 시작된 도미노 게임은 학교통폐합을 지나 이제 지역 마을을 쓰러뜨리고 있다. 학교가 없는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런 마을 주민들의 연령은 굳이 조사해보지 않아도 고령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심각한 연령 불균형 현상은 마을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기능들을 삭제하고 있다. 그리고 종국엔 마을마저 소멸시키고 말 것이다.마을은 문화 생산은 물론 공동체 교육까지 다양한 기능을 해왔다. 마을 문화가 풍성한 나라일수록 문화 강대국으로서 다양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문화의 힘은 다른 산업들과 비할 바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하다. 비교 불가의 막강한 힘을 지닌 문화의 출발지는 바로 마을이다.우리 교육이 한 때 경제 성장이라는 기적을 만들 때 우리 교육은 분명 마을과 함께 했다. 마을은 큰 학습장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하고 그것을 내면화해 지혜로 승화시키는 살아있는 배움터가 마을이었다.마을에서 학생들은 나만이 아닌 우리들을 위한 꿈을 키웠고, 마을 사람들은 그 꿈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교육은 학교에서 마을을 배제시켜 버렸다. 그러면서 학교 교육은 폐쇄적으로 변해가더니 결국 교육을 학교 안에만 고립시켰다. 고립된 교육은 기형적으로 변해갔다. 그 모습은 성적지상주의, 입시 공화국, 학교 폭력 등으로 나타났다. 최종 목표가 오로지 입시에 맞춰진 우리 교육은 급기야 인구절벽이라는 국가 재앙의 진원지가 되어 버렸다.공부를 하면 할수록 포기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지는, 그래서 N포세대로 전락해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학생들의 원성(怨聲)을 교육 관계자들은 듣지 못하는가?자신의 미래에 대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던 고등학생 딸아이가 묻는다.“아빠, 앞으로 나 뭐할까?”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묻는 아이에게 필자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놓기 전에 우리 교육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한다. 말로만 혁신을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 학생들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학교 현장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단의 폐쇄주의에 빠져 있는 학교 교육 범위부터 넓혀야 한다. 그 방법은 다시 마을로 학교가 들어가는 것이다.전라도 완주, 강원도 등 학령인구 절벽에 따른 지역과 학교 소멸이라는 위기에 봉착한 지역에서는 이미 지자체와 교육청이 손을 잡고 지역교육 활성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때의 의미 있는 성과는 바로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하는 교육, 학생들의 교육 행복도 향상, 그리고 찾아오는 교육이다. 이들 지역에서 지역교육 활성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담당자들이 전국을 돌며 성공 사례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지난 2019 교감 자격 연수에서도 이들의 강의를 있었다.필자는 강의를 들으면서 이들 지역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공통점을 찾았다. 그것은 간절함이었다. 강의자들의 열정에서 그들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강의실 분위기는 뜨거웠다. 그 이유는 경상북도도 인구절벽이라는 재앙의 가장 큰 피해지역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의자들과 연수생 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간절함의 차이였다.“간절함이 없는 꿈은 꿈이 아닌 희망사항이다.”(탈무드)라는 말이 있다. 희망사항만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제안한다, 경북형 마을학교를 하루 빨리 시작하자고!

2019-08-21

1945년 광복과 한국미술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현재 대한민국은 36년이라는 일제식민지의 역사를 이겨내고 쟁취한 ‘광복(光復)’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경험하고 있다. 조선의 개방정책과 근대화 과정에서 뼈아프게 겪어야했던 식민지 역사와 흔적은 씻을 수 없는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과 아픔을 통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며, 치욕과 역경의 역사를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정치·경제·국방 등 모든 면에서 갖추어야 할 정도(正道)는 과연 무엇인지 각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이루어졌던 모색과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며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개선해 나간다면 이번 위기는 분명히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한국사의 근대적 출발점을 1919년으로 본다면 우리 민족은 불합리와 함께 모순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한국 근대사를 경험했다. 더불어 일제의 지배라는 비극 속에서도 민족적 고난과 비애를 강인한 저항정신으로 이겨내며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민족적 원동력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했던 시대정신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적 가치가 무엇인지 되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미술 분야 역시 진정한 한국적 미의식은 해방과 함께 새롭게 정립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서구의 미술양식과 미학적 요소들은 식민통치를 위한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보급되기 시작해 ‘전통서화’와 ‘서양화’의 갈등과 모순 속에서 우리의 미의식은 서구미술의 형식만을 흉내내는 수준으로 지속되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회화의 근대적 과정은 격동기의 파란만장한 변화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들이 이어졌다.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숨 가쁘게 진행되었던 한국미술의 주요 사건들을 간단히 살펴보자.먼저 해방 직후인 8월 18일에 전국 문화예술인들을 규합한 단체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가 결성되고, 그 산하에 문학, 미술, 음악, 영화, 연극의 5개 분과 중 하나로 ‘조선미술건설본부’가 결성되었다. 조선미술건설본부는 고희동을 중심으로 동양화부, 서양화부, 조각부, 공예부, 아동미술부, 선전미술대 등 6개 분과로 활동을 펼쳤는데, 186명의 미술가들을 총괄한 해방 후 최대 미술가 조직이었다.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회 ‘해방기념과 연합군환영 미술전람회’(1945.10.20∼29)를 개최했으며, 해방 기념행사에서 국기 제작과 함께 표어·도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연합군 환영식에서는 미국·소련·영국·중국 등 4개국 국가원수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11월 20일 ‘조선미술건설본부’가 해산되고 “정치에의 불간섭과 엄정 중립”을 강령으로 내건 ‘조선미술가협회’로 새롭게 결성되었다.하지만 1946년 8월 11일 미군정청 문교부가 미술을 선택 과목으로 결정하자 ‘조선미술가동맹’과 ‘조선조형예술동맹’과 함께 ‘조선조각가협회’가 합류해 ‘조선미술동맹’을 발족하여 공동투쟁을 결의해 나갔다. 이들 단체는 ‘해방기념문화대전람회 미술전’(8월20∼27일)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지만, 이 역시 남북 이데올로기의 차별에서 비롯된 분열과 갈등이 지속되었다.지역 1세대 화가 이인성(1912∼1950)과 이쾌대(1913∼1965) 역시 이러한 질곡의 시대적 변화를 직접 체험하며 참여해 한국 근·현대미술을 이끌어 나갔다. “과거가 햇볕을 쬐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는 말처럼 격동의 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지역 예술가들은 조국 광복을 위해 무엇을 하였으며, 해방된 나라에 새로운 예술과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경주했는가는 이제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야할 우리들의 과제이다.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화가들을 이제는 ‘신화의 존재’가 아닌 ‘역사적 인물’로 기록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2019-08-20

다산(茶山)의 깊이 읽기

김현욱 시인휴식(休息)이란 멈추는 것이다. 쉼이란 내려놓는 것이다. 방학이 놓을 방, 배울 학(放學)이듯이. 영어 베케이션(vacation), 프랑스어 바캉스(vacace)의 어원은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이다.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해제, 비움’을 뜻한다. 휴가(休暇)란 나무에 기대어 사람이 쉬는 모양이다.나무에 기대어 쉬는 것도 좋지만, 폭염에 가장 좋은 휴가는 시원한 도서관에서 쉬는 것이다. 그동안 못 봤던 책과 잡지들이 나무처럼 곁에 있다. 방학동안 포은도서관에 사람들이 붐비니 반갑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은 더 반갑다.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지만, 아이와 어른들이 붐비는 도서관은 내 맘을 기쁘게 한다. 한 나라의 미래는 도서관에 있다. 교육감과 단체장들은 공공도서관 투자만큼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휴가 중에 도서관에서 읽은 책 중에 정민 교수의 다산의 지식경영법이 가장 볼 만 했다. 정민 교수는 다산을 조선 최고의 지식경영자라고 칭했다. 다산이 남긴 저서는 500여권에 이른다. 시시껄렁한 책이 아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후손에게 끊임없이 회자되는 명저들이다. 세계사를 뒤져봐도 다산보다 뛰어난 저술가는 찾기 쉽지 않다. 도대체 다산은 어떤 방법으로 그런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일까?다산의 지식경영법에 따르면, 다산은 정독(精讀), 질서(疾書), 초서(抄書) 세 가지 독서법을 실천했다고 한다. 정독은 낱말과 문장, 전후 맥락을 아주 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읽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 근본을 알 때까지 밝히는 것을 뜻한다. 다산은 아들 학유에게 그 방법을 편지로 전했다.“예를 들어 『사기』의 「자객열전」을 읽는다고 치자. ‘조(祖)를 마치고 길에 올랐다’라는 한 구절을 보고 “조가 뭡니까?”하고 물으면, 선생님은 “전별할 때 지내는 제사다”라고 하실 것이다. “하필 할아버지 조 자를 쓰는 것은 어째서인가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은 “잘 모르겠다.”고 하시겠지. 그런 뒤에 집에 돌아오거든 사전을 뽑아다가 조 자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아라. 자전에서 조(祖) 자를 찾아보면 뜻밖에 ‘길제사 지낼 조’라는 뜻이 나온다.풀이를 찾아보면 “고대에 먼 길을 떠날 때 행로신(行路神)에게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래도 할아버지 조 자를 쓰는 까닭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여기서 한 번 더 나가야 한다. 더 자세히 찾아보면, 먼 옛날 황제의 아들 누조(累祖)가 여행을 좋아하다가 길에서 죽었다는 기록과 만나게 된다. ‘조(祖)’란 조상이 아니라 바로 누조의 귀신을 위로하기 위해 생긴 제사임을 그제야 알게 된다. 마음이 후련해진다.또 『통전』이나 『통지』, 『통고』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 지내는 예법을 찾아보고, 한데 모아 차례를 매겨 책을 만든다면 길이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전에는 한 가지 사물도 모르던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을 훤히 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주자의 격물(格物)공부도 다만 이와 같았다. 오늘 한 가지 사물을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을 캐는 것도 또한 이처럼 시작하는 것이다. 격(格)이란 밑바닥까지 다 캐낸다는 뜻이다. 밑바닥까지 다 캐지 않는다면 또한 유익되는 바가 없다.”(학유에게 부침(寄遊兒) 9-40)세세하게 뜻을 새겨가며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그 근본을 알기 위해 밑바닥까지 다 캐내는 독서법이 바로 ‘정독, 깊이 읽기’이다.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요즘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장문 읽기를 버거워한다. 단문과 축약, 이모티콘이 횡행하는 시대에 깊이 읽기는 울림이 크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다산의 깊이 읽기를 실천하는 방법은 ‘인문고전 낭독교실’을 여는 것이다.

2019-08-18

인류의 보편적 가치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인류 보편의 가치란 무엇일까? 특정 종교나 문화에 따라서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사람답게 살 권리, 즉 인권(人權)이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가 될 것이다. 21세기인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역사는 그리 길지가 않다. 민주주의의 기원을 고대 그리스까지 소급하기도 하지만 노예나 여성을 차별하는 등 오늘날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현대적 인권의 개념은 자연법 사상에 의거한 자연권의 관념에서 시작하여 프랑스혁명 등을 거치면서 보편적 인권의 개념으로 형성·발전되었다.자연법 사상이란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들은 우열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인류 역시 생태계의 한 종(種)으로 자연의 섭리를 따른다면 모든 개인은 한 생명체로서의 존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사회에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종교나 제도나 이념에 의해서 그런 존엄성이 침해되고 제약되는 경우가 허다했다.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을 시작으로 한다. 당시 선포된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에 따른 것으로, 헌법이 규정하는 인권이란 일차적으로는 정치적 권리의 보장을, 나아가서는 보편적, 경제적 권리의 보장과 복지사회의 구현까지 아우르는 것이다.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보편적 가치에 대한 세계적인 합의에 이른 것을 들 수가 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은 2차 세계대전으로 자행된 온갖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과 대응으로 생겨난 것이다. 전문과 30개 조항으로 구성된 세계인권선언은,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갖는 고유한 존엄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승인하는 것은 세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기초”라고 선언하면서 전문을 시작한다. 그리고 각 30개의 조항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 개인의 안전, 시민사회 내에서의 권리, 정치체제 내에서의 권리,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잘 보장하고 보호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한편 유엔인권소위원회는 1997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유엔 차원의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북한인권결의안은 2003년 제59차 유엔인권위원회부터 3년 연속 채택되었으나 북한인권 상황이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게 되자, 2005년부터 유엔총회에서도 채택하고 있다. 그 결의안에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와 함께 개선을 위한 인도주의적 기술협력과 대화를 포함하고 있다. 북한인권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고문, 공개처형, 정치범 수용소, 매춘, 영아살해, 외국인 납치 등 각종 북한 인권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 한편 북한 주민의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와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기본으로 하는 원칙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통일이든 평화든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동포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핵무기를 가지고 세계를 위협하는 김정은 일당과 협상을 하는 것도 저들이 저지를 수 있는 또 다른 범죄를 막기 위한 방편인 것이지 그들의 체제를 정당화해서가 아니라야 한다. 비록 전략적으로는 그들과 대화를 할지라도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한다는 대의에 어긋나지 않은 선에서만 명분을 가질 수 있다. 탈북자 모자가 굶어죽는 대한민국, 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심각한 오류와 착각이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2019-08-15

포스코의 나눔활동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얼마 전 포항 환호공원에서는 소소하면서도 이색적인 나눔행사가 열렸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재능봉사단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작은음악회를 열어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기쁨과 흥겨움을 안겨주었다.수지효행, 아동행복지킴이, 사진, 제빵 등 6개 봉사단은 환호동, 여남동 일대의 자매마을 어르신과 공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손마사지와 압봉시술을 해주고,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인물사진을 찍어 주고 손수 만든 빵과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어르신들에게는 말벗도 되어줬다. 저녁에는 사물놀이, 밸리댄스, 부채춤 등의 공연과 사내 문화예술봉사단이 기타와 하모니카, 대금, 색소폰 연주를 선보여 시민과 함께 즐기는 화합의 마당으로 어우러졌다.이러한 나눔활동은 포항시와 포스코가 지난 2001년에 함께 조성한 환호공원을 아름답게 가꿔 시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취지에서 열린 것이다. 이처럼 직원들의 재능과 역량을 발휘하는 나눔활동을 통해 포스코는 지역사회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시민들은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공원을 찾으며 한껏 누리고 공감할 것이다. 물론 몇 차례의 재능봉사와 음악회로 환호공원이 금세 달라지고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속성을 갖고 시민과 직원이 동참해 공원 내 환경정화와 다채로운 공연, 이벤트, 테마 활동 등을 해나갈 때 공원은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포스코의 나눔활동은 지역사회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한 자발적인 재능기부 활동을 포함해 임직원봉사단 활동, 대학생봉사단 운영, 포스코1%나눔재단의 사회공헌사업 등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한 영역에서 공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포항제철소에서는 1991년부터 포항시와 자매결연을 시작, 현재 127개 마을에 매월 나눔의 토요일 봉사활동을 실시해 환경정화와 일손돕기, 장학금 지급 등의 지원활동을 해나가고 있다. 또한 재능봉사단은 임직원들의 특색있는 봉사활동으로 지역사회에 보답하고자 2004년 창설돼, 최근 13개 신규 창단 발대식을 갖고, 총 23개 봉사단원 900여명의 개개인이 보유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 특기와 경험을 살려 포항시자원봉사센터 등 4개 복지기관과 협업해 지역사회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유익한 봉사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한편, 임직원들의 급여 1% 기부로 자발적으로 참여한 ‘포스코1%나눔재단’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1%나눔문화를 확산시키는 다양한 공익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포스코와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포스코 스틸 빌리지 건설, 국내 소외계층 사회복지 증진, 국내외 저개발지역 구호활동 및 미래세대 자립지원, 문화예술 진흥 및 전통문화 보존2219계승 사업 등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포스코의 창업정신과 역사적인 의미를 더하고 글로벌 포스코의 사회적 책임에 부응해가고 있다.이와 같은 제반 나눔활동과 지원사업은 ‘더불어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의 포스코 경영이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포스코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는 기업시민으로서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시민활동으로 펼쳐지고 있다. 나눔과 베풂으로 이뤄지는 기업시민의 사회공헌활동은 지역사회와 더불어 포스코패밀리와 함께 해나갈 때 그 가치와 보람이 더욱 커지게 된다. 다만 일회성이나 전시성이 아닌, 꾸준히 실행하는 사명감과 확고한 정신으로 사회에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는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차대하리라고 본다.포스코재능봉사단의 열성적인 손길과 작은음악회의 열기로 초복의 더위마저 무색해진 환호공원에서는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歡呼)와 갈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작은 관심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듯, 환호와 갈채가 계속 이어져 나눔이 즐겁고 베풂이 행복한 포스코와 포항시의 아름다운 동행을 기약해본다.

2019-08-13

교사의 평가 자율성 확보해야 창의력 교육 꽃핀다

조현명 시인·교사한국인의 평균 지능지수는 106으로 세계 1위라고 알려져 있다. 이 지능지수에 창의력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학교에서 경험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창의성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창의력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의문이지만 학교가 이 창의력을 막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창의력은 질문할 용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학교에서 질문하는 아이는 버릇없고 쓸데없는 생각을 가진 아이로 취급되기 쉬운데 질문은 어디까지나 학습하는 진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범위를 넘어가면 쓸데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범위를 제한하면 창의력이 담길 수 없다. 시험성적을 위해서 정해진 답을 암기해야하는 현실에서 창의력을 발휘한 질문은 금물이다. 당연히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성적향상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한국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으나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오히려 중국기자가 질문하려 한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토론 강의 서두에 단골로 올라온 영상이다. 그때 강사들의 질문은 ‘왜 한국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려 하지 않았을까’이다. 이 화두는 충격을 주기 위함이고 반성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다. 이래서 한국인들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비판정신도 없고 어쩌고 하는 평을 늘어놓아 반성적으로 토론강의에 임하게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 기자들이 질문과 토론의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기자회견의 질문자가 정해져있는 데다가 미국 대통령에게서 나올만한 대답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질문자가 정해지지도 않고 답변도 예상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학생들에게 적당한 문제를 내어주고 프로젝터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문제 상황에서 길을 찾아가는 학생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열정이 있고 충분히 아는 것도 많으며 해결점을 찾고 조직하고 적용하는 수업에서 학생들의 호기심과 끈기를 그들의 잠재력을 보았다.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 그것을 새로운 아이디어로 바꾸어 내는 창의적인 두뇌들도 있다. 감탄할 만하다. 이런 경험을 필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한국인들은 노벨상을 탈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국력이 그를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상을 타지 못할 뿐이라는 설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창의력을 억누르고 있는 학교의 교육시스템, 그것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과 수업개선 등 다양한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 그러나 평가방법이 올바르게 개선되지 않으면 허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르면서 오지선다형인 대입 수학능력시험에 의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왜곡되어 오고 있다. 고3의 2학기 수업이 파행적인 것이 대표사례다. 대입 학생부종합전형은 그나마 평가를 다양하게 유도하는 듯 보이나 학교에서 시행되는 중간·기말고사의 성적이 사실상 과목별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중간·기말고사가 100%인 다양한 형태의 수행평가로 시행되는 고교는 드물다. 공정성 때문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보면 평가방법의 개선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숙명여고 사건이나 여타 성적조작 사건으로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교사에게 책임을 지우고 문책하는 편이지 평가에 대한 자율권은 조금도 인정해 주진 않는다. 바칼로레아라는 논술평가를 시행하는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 교사가 교과서도 없이 자신이 직접 조직한 내용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자율권을 가지고 평가한다. 학부모와 학생들도 그대로 따라 간다. 프랑스의 시스템에 한국 학생들이 배운다면 한국 학생들의 창의력은 아마 우주를 뚫고도 남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인재는 창의성을 가진 인재이다. 교사의 평가를 믿어주고 성적조작이라는 시선으로 공정성만 요구하다보면 평가개선은 요원해지고 미래를 여는 창의력 교육은 어려워진다.

201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