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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얼음(氷)과 숯(炭)

박상영대구가톨릭대 교수·국어교육과몇 해 전의 일이다. 졸업생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지난 4년간을 되돌아보며 가장 잘한 일과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한번 물어본 적이 있다. 다들 나름대로 지난 추억들을 반추하는데, 대뜸 한 학생이 ‘남자친구랑 헤어진 일’과 ‘그를 만난 일’을 가장 잘한 일과 후회되는 일로 꼽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서로가 참 맞지 않았는데도 어쩌다보니 오래 사귀게 되었고, 그 결과 학업에 소홀했음은 물론, 주변의 관계들마저 많이 틀어져 버렸다는 것이다.옛말에, ‘빙탄상애(氷炭相愛)’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 나라의 동방삭이 쓴 ‘자비(自悲)’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변용된 것으로, 원래는 얼음과 숯불은 용납될 수 없다는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에서 나온 것이다. 차가움/뜨거움이라는 상반된 성질의 물(物)이 만나면 얼음은 녹고 숯은 식게 되니, 본질이 서로 화합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함께 할 수 없는 이 둘이 서로 사랑한다니, 무슨 말일까?함께할 수도, 해서도 안 되지만 서로 사랑하게 되어 물의를 일으킨 예는 우리의 옛 고전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세조실록’ 11년 9월 기사에는 세조의 후궁인 덕중이 조카인 귀성군 이준에게 애정 편지를 보낸 사건이 있었다. 덕중은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연애편지를 보내다 발각된 주인공으로서, 당시 이 사건은 궁궐 내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또 ‘성종실록’11년 7월 9일자 기사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태강수의 아내였던 어우동이 왕실 종친들과 수차례 간통해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것이다.그런데 사실 ‘빙탄상애’는 이처럼 금지된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살다보면, 인간관계는 종종 일그러지고 틀어지기 일쑤이다. 적극적이고 쾌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극적이고 조용한 사람도 있고, 바쁘거나 성격 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긋한 사람도 있다. 매사 긍정적인 사람도 있고 부정적, 비판적인 사람도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게 곧 인간사이다.일면 공존하기 어려운 얼음과 숯불. 사실 인간사가 모두 얼음과 숯불의 집합체라면, 이는 곧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다름 아니다. 얼음과 숯불이 서로 사랑하려면 얼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숯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뜨거움을 받아들여야 물이 되고, 차가움을 받아들여야 재가 아닌, 숯으로 남는 과정이 된다. 이는 곧 ‘자기를 희생하는 소멸’의 과정이자 타자를 받아들이는 수용’의 과정이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너’를 받아들이면서 ‘나’의 본질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빙탄상애(氷炭相愛)인 것이다.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영원한 사랑을 속삭이던 신혼 초의 뜨거움(炭)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음장 같은 언행(氷)으로 바뀌어 상대의 가슴을 후벼파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가슴 뜨겁게 낳은 자식(炭)이, 뒷날 봉양 및 유산 문제로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경우(氷)도 다반사고 그 반대도 수두룩하다. 아내/남편, 부모/자식 등이 모두 내가 옳니 네가 그르니 하다 서로에게 남긴 생채기들이 아닐 수 없다. 죄다 상실과 박탈감을 안겨주는 ‘빙탄상해(氷炭相害)’들이다.관계라는 것은, ‘나’를 크게 내세우는 순간 어긋나게 마련이다. ‘남’을 세우되 ‘나’를 잃지 않을 때, ‘남’도 ‘나’를 세워줄 수 있는 법이다. 얼음과 숯이, 비록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서로를 수용하고 인정하되, 스스로의 본질을 잃지 않았기에 조화로울 수 있는 것처럼.바야흐로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가족의 소중함을 한껏 되새겨 보는 날들로 가득한 달이다. 이러한 5월에,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가슴 따뜻하게 껴안는 빙탄상‘애(愛)’의 의미를 한번 깊이 되새겨 보면 어떨까? 서로 생채기내면서 허무히 소멸되는 빙탄상‘해(害)’대신에 말이다.

2019-05-09

강수진의 발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발가락 마디에 울퉁불퉁 혹이 생긴 기형적인 발이었다. 하루 19시간씩, 1천 켤레의 토슈즈가 닳아 없어지기까지 모질게 연습을 한 결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발’이라는 설명이었다.발이 저 지경이 되도록 지독하게 연습을 했으니 열성과 노력을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단연 가장 아름다운 발의 하나일 것이다. 사실 가장 아름다운 발레동작을 만들어낸 발이기도 하니까.그런데 내게는 그 발이 전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그 의지와 노력과 열정에는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지만, 그것을 아름다움이나 감동이라기엔 어딘가 석연찮은 느낌이었다. 만일 누가 그 사진을 걸어 놓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이루어야 할 최선의 가치이고 목표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보다는 공포와 절망감을 안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작금의 우리 사회는 최고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다.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가 되는 것이 최선의 목표이고 가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후의 승자에게 모든 것을 몰아준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최고가 되는 것은 노벨상을 받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이 그렇듯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훨씬 더 희박한 확률이다. 복권을 사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허망한 꿈인지.최고를 목표로 전력질주하다보면 차상이나 차하 아니면 다문 뭐라도 될 게 아니냐는 말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극소수일 수밖에 없는 최고의 자리를 최선의 가치로 규정한다는 건, 그래서 끊임없이 경쟁심을 부추긴다는 것은, 결코 최고가 될 수 없는 절대다수에겐 사실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일이자 억압이나 폭력과 다를 게 없다.흔히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나 인기 연예인들이 자라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고 말한다. 그들이 받는 돈과 명예를 열거하면서 누구든 꿈을 가지라고 한다. 열심히 노력만 하면 누구라도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꿈이라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한다.하지만 그들 중에 과연 몇이나 그런 꿈을 이룰 수가 있겠는가. 대다수 아이들이 결국 좌절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꿈이라면 차라리 그런 허황한 꿈으로 생을 낭비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설령 천신만고 끝에 그런 꿈을 이루었다 한들 그게 과연 가장 바람직한 삶이고 행복일 수가 있을까. 스타덤에 오른 사람들이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마약복용이나 자살과 정신질환이 더 많다는 사실이 그 답이 될 것이다.삼라만상 자연계에선 선악미추(善惡美醜)란 없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와중에서도 승패가 곧 선악이나 미추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갖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약하고 병든 자의 희생이 없이는 결코 강한 자도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게 자연의 법칙이고. 살아남은 승자가 아름다운 것이라면 패자의 희생도 당연히 아름다운 것이다.6·25전쟁 같은 극한상황에서는 거의 없다가, 먹고 살만해진 요즘에 오히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절망한 자살자가 부쩍 늘어나는 건 대개가 남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나 좌절감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최고지상주의와 승자독식의 풍조가 초래한 현상이다. 결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할 수 없는 강수진의 발에 지나치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서 기죽고 낙담하지는 말자. 하루살이 날벌레의 목숨이라고 코끼리나 사자의 목숨보다 하찮은 게 아닌 것이 건강한 자연생태계의 모습이다. 소질도 능력도 의지도 타고나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라야 바람직한 사회다.

2019-05-08

아동인권

김영식 굿네이버스 경북동부지부 초등교육전문위원·연일형산초등학교 교장어린이날을 제정한지 97년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 인권은 얼마나 더 나아졌을까?2019년 국내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어 UN에 ‘한국 아동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우리 학생들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OECD 국가 평균의 최대 두 배이며, 놀 권리가 침해 되는 건 과도한 학구열, 학생이 놀면 안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UN아동권리위원회는 이 같은 국내 아동청소년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오는 9월 본회의에 참석할 우리 정부에 권고사항을 전달할 것이다. 그동안 교육현실에서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인권을 너무도 쉽게 무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가정폭력은 학교폭력으로 이어지고, 어릴 적 피해자가 어른이 되어서는 가해자가 된다. 이들은 미래의 또 다른 폭력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악순환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우리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인 문제이다.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이나 괴롭힘은 희생자들에게 치명적일 수가 있다. 결과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고, 수업을 빠뜨리고, 학교 활동을 피하고, 무단결석을 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학업성취와 미래교육 및 고용 전망에 악영향을 미친다.아동인권이란 아동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이다. 기본적인 인권(생존권, 발달권, 보호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만큼 인간다운 삶을 살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이제 사회전반이 아이들의 인권, 건강한 학습권과 성장 발달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더불어 학교에서 부딪치는 교권, 학습권, 학부모참여권 등의 인권충돌 현상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다음으로 생각할 점은 이제 법으로 명시된 것이 아니라 인권이 실질적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에 반영이 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와 학교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권친화적 행위(人權親和的 行爲)’로 일반행정, 교육행정, 지역사회의 노력 등 통합적이 접근이 필요하다.더 이상 ‘학생들의 미래준비’를 담보로 하여 현재의 아이들의 행복성장이 보류되어서는 안 된다. 지자체 및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함께 나서서 학생들의 배움 그자체가 즐거움이 되도록 해야 할 때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동인권 문제와 불만이 극에 달한 현시점이 교육혁신, 사회혁신의 골든타임인 것이다.‘준비하지 않는 국가(지방정부), 기업, 개인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이제 제2의 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詔書)라도 발표하고 교육에서 가정 및 지자체발전을 도모해야 할 시점 왔다. 아이들의 인권문제를 개인의 문제, 학교의 문제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견고하다. 더이상 아이들의 인권문제를 타자화하지 말고 우리사회 조직 모두의 문제로 가져와야 한다. 아동인권에 대한 민감성과 감수성을 높이고 우리사회의 통념과 인식체계가 바뀌어 나가야 할 때다.행복한 수업, 가정폭력 등 아동인권 문제 등 갈등과 불만이 극에 달한 현시점이 교육혁신, 사회혁신의 골든타임인 것이다.

2019-05-02

학교급식법 개정법률(안)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포털사이트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검색하면 맨 처음으로 “포용국가-교육부-모든 아이는 우리 아이”라는 링크창이 나온다. 그걸 클릭하면 포용국가에 대한 여러 가지 홍보자료들이 망라되어 있는 사이트에 접속된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모두를 위한 나라 다 함께 잘 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문구이다.이 글만 보면 분명 이상(理想)에 가까우리만큼 좋은 내용이다. 그런데 이상적인 문구들을 보면서도 왜 감동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는지 답답할 노릇이다. 그리고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말을 보고 있으면 왜 계속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를 필자는 문장 구조에서 찾았다. 혁신이 수식하는 정확한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물론 문법적으로야 알지만, 느낌상 그 범위가 포용인지, 아니면 국가인지, 그것도 아니면 포용국가인지 잘 모르겠다.그런데 그 범위가 어디든 “포용 국가”라는 말부터 낯선데, 거기다 “혁신적”이라는 강한 수식어까지 합쳐지면서 단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 자리를 정치적 의미가 차지하면서 억지스러운 의미가 만들어졌다. 특히 혁신과 포용처럼 의미 충돌이 강한 단어들을 합쳤을 때에 오는 오류(誤謬)는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다.포용(包容)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너그럽게 감싸 주거나 받아들임”이다. 사전에서는 포용의 순화어로 감쌈과 덮어줌을 제시한다. 혁신(革新)이란 단어는 쓰이는 분야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인 의미는 “묵은 조직이나 제도·풍습·방식 등을 바꾸어 새롭게 하는 일” 즉 “시대에 맞게 뜯어고쳐 새롭게 개혁하는 것”이다. 그럼 혁신적 포용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단어의 의미만 연결하여 재해석해보면 ‘뜯어고치면서 감싸자’ 정도이다. 그런데 이 안에는 엄청난 의도(意圖)가 숨어 있다. 그 의도가 지금의 국회 사태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혁신, 즉 변화를 위해서는 기준과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진실하고, 절실하며, 또 객관적인가에 따라 변화의 성패가 결정된다. 그럼 지금 정부에서 말하는 혁신의 성공 여부는 어떨까? 어느 공당(公黨) 대표의 “20년 집권도 짧아, 할 수 있으면 더”라는 말을 보면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일들은 모든 국민들을 위함이라기보다는 현 정부의 집권 연장을 위한 수단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지인이 한 말이 환청처럼 계속 들렸다. “정치인들이 저거 손해되는 짓 하는 거 봤나. 국민 위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특권과 반칙의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 혁신적 포용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메시지 중 일부이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혁신적 포용”이라는 말이 새로운 특권과 반칙, 그리고 오류와 모순을 낳고 있음을 대통령은 아시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은 그 모습을 지난 주 지겹도록 보아서 아는데, 자기 이익에 눈 먼 정치꾼들이 대통령을 벌거벗은 임금으로 만들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비록 무법천지 정치판이지만, “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같은 교육 소수자를 위한 법률개정안도 보여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런 법률안이 패스트트랙에 반영된다면 지금과 같은 볼썽사나운 동물국회는 없을 것이다. 다음은 위 법률(안)의 개정사유이다.“‘초·중등교육법’ 제60조의3에 따른 대안학교의 경우 교육감의 정식 설립인가를 받아 학업중단 위기에 놓인 청소년들의 교육을 성실하게 담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급식 대상에서조차 제외되어 있어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학교급식의 질 역시 담보하지 못하고 있음.이에 인가 대안학교까지 급식대상을 확대하여 교육의 보편성을 실현함과 동시에 안전하고 질 높은 학교급식을 보장함으로써 학생 건강권을 확보하려는 것임”

2019-05-01

문화의 바람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현대사회에서 문화란 삶의 유형 혹은 생활양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것은 곧 문학, 예술, 음악, 종교, 제도, 학문, 교육, 방송, 영화, 패션 등 우리의 삶과 생활에 밀접한 다양한 장르와 광범위한 양식을 포괄하고 있다.날씨가 화창해지고 기온이 오름에 따라 사람들의 바깥 활동이 많아지고 도처에서는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자주 열린다.지역별 특성화된 축제나 공연, 전시, 버스킹 등이 다채롭게 열리며 문화의 외침과 울림이 잔잔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자연이 꽃과 잎새, 신록으로 봄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면, 사람은 지혜와 정성, 의지와 참여로 그 나름의 특색 있는 문화의 향기를 피워나가고 있는 것이다.철강산업도시로 급성장한 포항은 철강이라는 다소 딱딱한 이미지와 유동인구의 영향으로 독특한 도시문화를 형성하지 못한 채 문화의 변방으로 밀려나는 듯 했다.그러나 필자가 알기로는 민선 5기가 시작되면서 포항시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문화, 환경, 복지, 관광 등을 아우르는 이른바 ‘영일만 르네상스’를 표방하며 문화도시 포항의 미래 발전을 위한 주춧돌을 놓았다고 여겨진다.그래서인지 포항에서는 수년 전부터 다양한 축제와 전시, 이색적인 공연, 포항운하 통수와 크루즈선 취항 등으로 볼거리, 즐길 거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화적인 프로그램에 동참하거나 이색문화를 즐기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필자는 최근들어 인상깊게 본 공연과 전시회를 통해 포항 문화의 새로운 면모와 자생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작년 말 KBS포항방송국 공개홀에서 열린 ‘자원봉사자를 위한 통기타 작은 음악회’는 포항지역의 순수 아마추어 기타동아리 뮤지션들이 열성적인 악기 합주와 시원스런 가창으로 자유분방함을 드러냈었고, 공연 틈새에 시낭송과 피아노, 대금 연주, 난타 등을 곁들여 한결 다채로움을 더했다.거기에 타지역의 통기타동호회까지 우정출연해서 어울리니 리듬과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청중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흥겨운 문화마당이 아닐 수 없었다.이러한 아이템은 지방 공영방송사의 장소 제공으로 민간영역 차원에서 뮤지션들의 재능기부와 발표를 통해 순수음악을 쉽고 편안하게 접하며 복합적인 공연 콘텐츠를 향유함으로써,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문화시민의 소양을 한층 더 높인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또한 포항시 승격 70주년 기념으로 (사)한국예총포항지회가 주관해서 중앙아트홀에서 열린 ‘영일만 사람들전’은 포항지역에 살았거나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영일만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을 그림을 통해 만나볼 수 있어서 정겨웠다. 그림 속에는 작가의 가족이나 친구, 이웃, 예술가, 기업인, 정치인, 자화상 등 70명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져 있었는데, 인물전 기획 자체가 신선하고 이색적이며 인물에 투영된 포항의 역사와 개인적인 삶까지 더듬어볼 수 있어서 관람객들의 관심과 흥미가 컸었던 것으로 기억된다.영일만 르네상스는 문화예술이 주축이 돼야 한다.포항시는 이미 십수년 전부터 일월문화제, 스틸아트페스티벌 등 굵직한 문화사업을 전개하고 지원하는 등 문화적인 인프라와 예술적인 활동기반을 꾸준히 구축해왔다. 그 결실일까? 작년 말, 포항이 ‘철강산업 쇠퇴, 지진을 겪은 지역주민들의 일상을 회복하고 인문과 문화예술을 통해 다시 발전하겠다는 비전’을 담아 전국 10대 예비 문화도시에 선정됐다.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다.문화예술의 품격이 그 도시의 품격이고 미래 경쟁력이다.돈으로 문화를 살 수는 없지만 문화는 분명 돈이 된다. 흥겹고 건실하고 자유롭고 독창적인 콘텐츠로 포항을 지탱해갈 수 있는 문화의 저력과 융합이 필요한 때이다. 행정 입안자의 거시적인 안목과 문화예술인들의 활발한 노력,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향기로운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워,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시의 밝은 내일을 기약해본다.

2019-04-25

만약 모든 어린이들이 명상을 배운다면

김현욱 시인고통의 수레바퀴는 어떻게 돌아가기 시작할까?‘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월리엄 하트, 김영사, 2017)에서는 ‘맛지마니까야’를 통해 모든 고통의 원인을 적시한다. “무지가 일어나면, 반응이 일어난다. 반응이 일어나면, 의식이 일어난다. 의식이 일어나면 마음과 물질이 일어난다. 마음과 물질이 일어나면,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일어난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일어나면, 접촉이 일어난다. 접촉이 일어나면, 감각이 일어난다. 감각이 일어나면, 갈망과 혐오가 일어난다. 갈망과 혐오가 일어나면, 집착이 일어난다. 집착이 일어나면, 되어감의 과정이 일어난다. 되어감의 과정이 시작되면, 태어남이 일어난다. 태어남이 일어나면, 늙음과 죽음이 일어난다. 슬픔, 애통함, 육체적 정신적 고통 그리고 고난과 함께. 이 모든 고통이 일어난다.”고통의 수레바퀴를 멈추려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알아야 한다. 붓다는 인간의 마음이 크게 네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았다. 의식(원냐나), 지각(산냐), 감각(웨다나), 반응(상카라)이 그것이다. 의식은 분별하지 않는 알아차림·수용을, 지각은 인지행위·분류·분별과 평가를, 감각은 가치부여·호불호를, 반응은 갈망과 혐오를 가리킨다. 결국 인간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아원자 입자)의 흐름과 이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정신(의식, 지각, 감각, 반응)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붓다는 발견했다.깜마(카르마)를 ‘운명’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깜마는 ‘운명’이 아니라 ‘행동’이다. 붓다는, 당신이 당신의 주인이고, 당신이 당신의 미래를 만든다고 설했다. 그러니까, 인생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나’의 ‘반응’ 때문이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반응’ 때문이다. 그러니까, 반응을 멈추면, 고통도 사라진다. 모든 반응을 멈추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고통의 진짜 원인은 마음의 반응이다. 반응이 쌓이고 깊어지면 갈망과 혐오가 생겨난다. 붓다는 이것을 ‘갈애(渴愛)’라고 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인간이 삼독(三毒)과 오욕(五慾)에 집착하는 것을 갈애라고 한다. 갈애는 번뇌와 망상을 일으킨다. 번뇌와 망상은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이룰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면서도,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는 불만을 갖는 정신적 습관이 바로 ‘갈애’다.고통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보자. 집착은 왜 일어날까? 좋아하고 싫어하는 정신적 반응이 쌓이고 깊어지면 집착이 생긴다. 무엇이 좋아하고 싫어함을 일으킬까? 감각 때문이다. 감각은 왜 일어날까? 몸의 감각과 마음, 즉 여섯 가지 감각 토대를 통해서 일어난다. 왜 여섯 가지 감각 토대가 존재할까? 그것들이 마음과 물질의 흐름에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마음과 물질의 흐름은 왜 일어날까? 붓다는 ‘의식’, ‘나’와 ‘나 아닌 것’으로 세상을 분리하는 인식 행위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이것 때문에 ‘정체성’이 생기는 것이다. 매순간 의식이 일어나 특정한 정신적, 육체적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 의식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의식의 흐름을 일으킬까? 붓다는 그것이 반응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고통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원인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반응은 왜 일어날까? 붓다는 그것이 ‘무지’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했다.인간은 반응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반응하는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반응한다. 인간은 반응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끊임없이 반응하고, 반응한다. 전 세계적으로 명상 붐을 일으킨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세계의 모든 8세 아동들이 명상을 배운다면, 한 세대 만에 세계의 폭력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고통의 수레바퀴를 깨부수는 방법은 ‘명상’이다. 만약 한국의 모든 어린이들이 명상을 배운다면 어떻게 될까?

2019-04-24

든 교육? 난 교육? 된 교육!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금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에서 써먹지 못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다.” 유발 하라리(‘사피엔스’ 중에서)의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필자의 경험상 이 말은 지극히 맞는 말이다. 부끄럽지만 필자는 그나마 배운 것에 대한 혜택을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 나라 교육은 변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변하자고 수십 년째 떠들고 있지만 놀랍게도 변한 것은 거의 없다.누군가는 자유학기(년)제가 생겼고, 수업도 학생활동 중심 수업으로 많이 바뀌었고, 제일 중요한 평가에서도 과정중심 평가가 도입되는 등 교육전반에 걸쳐 변화가 있다고 말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겉모습만 보면 바뀐 것도 같다. 없던 것들이 많이 생겼으니 말이다.그런데 교육계 안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말하는 변화라는 것이 혼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육계의 혼돈이 가중 되는 이유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독립적이어야 할 교육이 정치의 하수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이 교육 정책이다. 혹 대통령의 정당이 바뀔 때는 전 정부의 많은 교육정책들은 패대기쳐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전혀 낯선 정책들이 자리 한다. 낯섦은 더 큰 혼란을 야기하고, 그 혼란을 덮기 위한 억지 교육정책들이 봇물 터진 격으로 쏟아져 나온다.그러면 수단 좋은 교육 정치꾼들은 여론 수치를 이용하여 혼란을 변화와 역동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자신들의 업적으로 홍보하느라 바쁘다. 그러다가 교육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면 모든 것을 전(前) 정부 탓으로 돌려버린다. 그러면 친정부 언론들은 갖은 방법으로 전 정부의 교육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사건을 찾아내어 공론화시킨다. 상황이 이즈음 되면 처음에 제기되었던 교육 문제는 온 데 간 데 없어지고 교육계는 정치 싸움판이 된다. 이런 교육에 무슨 희망이,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 교육이 죽었다는 말이 헛말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비록 죽은 교육이지만, 교육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 주는 것이고, 학생들이 그린 꿈속에서 인류가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꿈을 빼앗아버린 정치는 학생들의 꿈도 삭제해버렸다. 학생들의 꿈이 사라진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우리는 정말 미래가 없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가?물론 이런 삶을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답은 하나다. 미래 사회 역군인 학생들이 다시 행복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즐겁게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을 하루 빨리 정치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교육정책이 바뀌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그 전에 교사들부터 교육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그래서 필자는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누군가는 “든 사람은 머릿속에 지식이 많은 든 사람, 난 사람은 재주가 있어 출세하여 이름을 날리는 사람, 된 사람은 인격이 훌륭하고 덕이 있어 됨됨이가 된 사람”이라고 정의하였다. 혹 독자 여러분은 본인이나 본인의 자녀가 이 중에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아마도 들고 난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우리 교육 또한 학생들이 그렇게 자라도록 든 교육과 난 교육만 해왔다.그 결과 우리 사회는 지금과 같이 참담(慘憺)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럼 우리는 계속 희망이 부재한 교육 암흑기 시대를 살아야 하는가? 누구도 이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정치로부터의 교육 독립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에서 써먹지도 못할 죽은 교육 내용을 과감히 버리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학생들이 스스로 찾고 내면화할 수 있는 ‘된 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9-04-23

청년과 여성에게 고용의 기회를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국제기구의 청년정책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장기 저성장 혹은 위기로 현재의 경제를 진단하고 이러한 경제 위기가 청년층에게 가장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해 2010년부터 ‘청년 전략(EU Youth Strategy)’을 제안하였다.제안 목적은 교육과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에게 좀 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함께 청년들의 사회 참여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교육과 훈련, 고용과 창업, 건강과 웰빙 참여, 자발적 활동, 사회통합, 청년과 세계, 창조와 문화 등을 제안하였다.이 중 ‘창조와 문화’ 영역의 경우 문화와 창조적 수단에 대한 접근권을 높이고,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며 정책과 프로그램 간의 장기적 시너지를 고려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그리고 청년 조직과 청년 노동자 간의 협력관계, 청년의 역량과 기업적 기술, 문화와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을 증진 및 지원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UN의 ‘청년정책 11개 지표’는 청년을 문제적 접근이 아니라 ‘자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특징이다.‘자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다양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청년 자체를 ‘사회문제’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만드는 장기적인 내용이다.그 지표 내용은 비공식적 교육에 대한 관심, 청년 훈련 정책의 필요성, 청년을 위한 입법, 청년을 위한 예산, 청년을 위한 정보 제공, 다층적 정책의 수립, 청년을 위한 연구, 사회에 대한 참여 보장, 정부기관들을 관통하는 공동집행, 혁신, 청년을 위한 지원 기구이다.이처럼 EU와 UN 등 국제기구, 주요 국가는 청년정책이 단순히 여타 세대별 정책과 마찬가지로 분절적이고 특수한 정책이 아니라, 경제 위기 이후 보편적인 정책 의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하였다.구체적으로 일본의 경우 고용대책법 개정을 통해 청년이 능력과 경험에 따라 정당한 평가를 받고, 고용의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사업주의 노력 의무를 법률에 명시, 법 개정 외에 아르바이트와 봉사활동 경험을 기업 채용에 반영할 수 있도록 채용방식을 정비하였다.독일은 학교교육과 수습근로 활동을 병행하는 이원화제도(Dual Education System)를 채택하였다.이 제도의 장점은 현장 중심의 실무교육을 통해 직업생활에 필요한 조직의 운영방식, 업무지식 및 행동, 인간관계 등을 배울 수 있다는 점, 청년층이 직접 생산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경제적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파트너로서 기업의 입지가 구축된다는 부분이다.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단기적인 성과 측면에서 청년의 실업 해소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현실에서 국외 청년 고용정책들과는 대조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특히 청년 및 여성 고용의 단기적 성과 달성만을 지양하고, 현재 청년 및 여성이 느끼고 있는 실업문제를 극복하려면 첫째, 기업의 채용수요를 발굴하고 취업으로 연계, 둘째, 청년의 중소기업 취업 및 근속을 위한 경제적 지원 확대, 셋째, 청년 눈높이에 맞는 진로교육 및 일자리 정보 제공, 넷째, 취업에 필요한 정보 발굴을 통한 수요자 맞춤형 전달, 다섯째, 경력단절 예방 및 직장복귀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방향 검토가 필요하다.경북지역에서 당면하고 있는 청년 및 여성 실업을 해결하려면 무엇을 고민해야 할 것인가? 장기적 관점에서 단계별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채용 이전에는 현장중심의 직업교육·훈련 및 진로지도에 관해 촘촘하게 내실화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채용 시에는 능력 중심채용 확산 및 취업지원 강화, 채용 이후에는 근로환경 개선 및 근로조건에 초점을 두는 맞춤형 정책을 추진하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2019-04-17

교육을 짓는 마음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늦은 밤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듣고 필자는 순간 넋을 놓아버렸다. 아나운서는 “짓다”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하였다. “무언가 각별한 것을 만들 때 우리는 만든다는 서술어 대신 짓는다는 표현을 쓸 때가 있습니다. 밥을 짓고, (중략) 집과 글 등을 지을 때가 그렇지요. 한 번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들에는 짓는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사람의 노력과 시간, 그리고 정성과 진심이 들어 간 것들에만 비로소 짓는다는 말을 붙이곤 하죠. (하략)”필자는 ‘교육’과 ‘짓다’를 연결해 보았다. “교육을 짓다!” 역시 어색했다. 어색함의 원인은 두 단어의 상반된 이미지 때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교육’의 차가움과 ‘짓다’의 따뜻함!교육은 한 때 개인과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부모들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녀를 교육시켰다. 교사들 또한 사명감으로 교육에 매진했다. 부모의 희생과 교사의 헌신을 아는 학생들은 이들의 정성에 보답하고, 나아가 국가 발전에 공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비록 많은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지만, 학생들의 마음속엔 꿈이 넘쳤다.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아마 그 때는 ‘교육’과 ‘짓다’를 연결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 두 단어가 매개가 되어 “교육이 희망을 짓다!”와 같은 명문장이 만들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를 외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말하고, 쓰는 대로 이루어졌던 때가 우리 교육계에도 분명 있었다. 그 때의 사람들에겐 신명이 충만하였다.하지만 적폐청산의 덫에 걸린 이 사회 어디에서도 신명을 찾을 수 없다. 국민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 아우성에 봄꽃도 자세를 한껏 낮추어 피었다 진다. 그런데 적폐놀이의 재미에 빠진 양치기 정치인들만 좋아지고 있다고 히죽댄다. 이들의 현실인식 수준은 재난 수준이다.그런데 재난 수준의 재앙이 발생한 곳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학교다. 봄꽃이 한창인 4월, 재난과 같은 시험이 학교를 휩쓸고 있다. 학생들은 유황불보다 더 뜨거운 시험에 마음은 물론 꿈과 희망을 데였다. 불에 덴 상처에는 좀처럼 새살이 돋지 않는다. 생명력 강한 산에도 산불이 지난 후에 다시 생명이 자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물며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학교 붕괴, 교육 무용론 등 교육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교육이 이 지경까지 온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시험에 대한 교사들의 오해와 부모의 시험 점수에 대한 욕심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평가방법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내놓고 있지만, 시험은 더 괴이한 모습으로 변해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내몰고 있다.“공부 없는 세상, 학교 없는 세상, 시험 없는 세상”을 “학생들의 천국”이라고 말하는 글을 보았다. 과연 이런 세상이 존재할까? 비록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이 나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즈음은 꿈꾸었을 세상이다. 사회는 예측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변화가 있다. 하지만 학교 시험은 요지부동이다.시험을 바꿀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시험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보자. 예전처럼 시험 기간이 되었으니까 무조건 공부를 해서 시험을 보라는 식이 아닌 학생들에게 시험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자, 그것도 시간을 두고 진심을 다해서! 그리고 교사들도 점수를 위한 시험이 아닌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변화 정도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학교생활을 스스로 개선해 나갈 수 있는 문제를 정성을 다해서 지어보자. 학부모들도 시험 결과에만 눈멀지 말고, 자녀들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을 응원하자. 그리고 결과에 대해 격려하자. 이렇게만 된다면 이 나라 교육도 잃어버린 희망을 다시 지을 수 있지 않을까!

2019-04-16

자녀와의 관계를 위한 마법의 언어

이수원계명대 교수·유아교육과말과 관련된 속담 중에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말 한마디로 상대에게 용기를 주거나 기를 꺾을 수 있고, 위로를 하거나 좌절케 할 수도 있다. 성경 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 사랑은 불의를 보며 기뻐하지 않고, 진리를 보고 기뻐하는 것이라 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길 바라지만 그 마음이 말로 표현되지 않으면 누구도 이를 알 길이 없다.그러면 부모가 자식에게 하면 좋을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본 지면에서 두 가지 마법의 언어를 제안한다. 마법이라 명명한 이유는, 이 언어로 부모-자녀 간의 관계를 회복할 뿐 아니라 자녀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첫 번째 마법의 언어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이다. 아이가(신체·정신의 안전이 보장된 상황이라는 전제 하에) 문제에 부딪힐 때 부모가 솔로몬이 되어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것 대신, 아이가 직접 해결 방법을 시험해 보도록 기회를 주는 질문이다.예컨대, “탑을 무너지지 않도록 쌓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부터 “바지를 입을 때 왼쪽 다리를 먼저 넣을 것인가 아니면 오른쪽 다리를 먼저 넣을 것인가” 등 삶 속에서 사소한 일까지 아이가 직접 해결하도록 기회를 줄 수 있다. 물론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답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 질문이 마법의 언어인 이유는, 아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으로부터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의사결정 능력을 얻기 때문이다.각 가정에서 평균 자녀 수가 한 명 내지는 두 명이다 보니 자녀가 참으로 귀하다. 필자가 유치원에 근무할 때 한 아이가 내 손에 슬그머니 종이를 쥐어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서 선물로 주기도 했기 때문에 손에 있는 종이가 사랑의 편지일거라 생각했다. 손을 펴보니 그건 사랑의 편지가 아니라 쓰레기였다.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아이의 쓰레기를 손수 버려주기 때문에 아이는 1m 앞 휴지통에 쓰레기를 직접 버리는 대신 선생님 손에 쥐어준 것으로 보였다. 아이가 할 일을 부모가 나서서 대신 해결해 주면 아이는 성장할 수가 없다.두 번째 마법의 언어는, “그럴 수도 있겠다”이다. 아이가 화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라 당신을 노려본다고 치자. 혹은 아이가 화가 나서 발을 쾅쾅 굴린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문화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므로 어른 앞에서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야단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을 솔직히 들여다보면 우리 어른도 화가 나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행동을 두둔할 뜻은 없다. 다만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살면서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표현하는 감정을 억누르도록 지도하는 대신 “지금 네가 화가 났구나” 혹은 “서운한가 보다”고 공감해 보자. 아이 입장을 공감해 준다면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다룰 여유를 찾게 될 수 있다.“그럴 수도 있겠다”는 말은, 아이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 직장 동료 관계 등에서 서로가 통(通)하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내 마음이 네 마음과 함께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이데올로기나 이념을 뛰어넘어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우리 인간의 욕구를 인정한다는 말이다.계명대 유아교육과 학생들이 좋은 유아교사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필자는 수업 중에 학생들이 위 두 언어를 되뇌도록 지도하고 있다. 언어는 습관이어서 위 두 언어가 우리 몸에 베여있지 않으면 쉽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도 함께 되뇌어 보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2019-04-11

교실 숲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인간은 품위 있고 행복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환경 속에서 자유 평등 및 충족한 생활 조건을 향유할 기본적 권리를 가지며 현세대 및 다음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 개선할 엄숙한 책임을 진다.”이는 유엔 인간환경 선언 내용 중 일부이다. 이 선언은 1972년 6월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엔 인간환경 회의에서 채택되었다. 이에 대해 한 사전은 “인간환경의 보전과 개선을 위하여 전 세계에 그 시사(示唆)와 지침을 부여하는 공통의 원칙이다.”라고 설명하였다.국제환경법 등 세계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 환경 파괴 속도는 국제적인 노력에 비례하여 더 빨라지고 있다. 지금 속도라면 수십 년 안에 인류파멸과 같은 환경 재앙 영화들의 내용이 현실화 될 지도 모를 일이다.물론 영화 속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는 자신만이 지구와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외치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 그들에겐 공통된 이야기 패턴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무조건 다 틀렸고,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들어야 한다고 목에 핏대를 세운다. 그 모습은 영웅모방 증후군에 걸린 꼭두각시 같다.최근에는 미세먼지 관련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 그들의 목소리를 뒷받침하듯 대기(大氣) 상태는 최악이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국가 재난으로 규정하였다. 공기정화기는 품귀 현상을 빚고, 다른 미세먼지 방지 관련 상품들은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미세먼지 대책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당장 살아야하니까 어쩔 수 없이 마스크나 공기정화기 등과 같은 물건들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는 미세먼지 대응책으로 모든 유초중고 교실에 공기정화기를 넣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박수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면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재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럼 교실을 나온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마스크는 학교생활 필수품이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든 학생들에게 방독면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방독면을 쓰고 체육활동과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이유는 왜일까? 이런 일이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하루 빨리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답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다. 그 답은 인간환경선언에도 나와 있다. “환경을 보호 개선할 엄숙한 책임” 안타깝게도 편리주의에 빠진 요즘 사람들은 이 책임조차 모른다.지금부터라도 우리의 환경주권을 지켜나갈 환경 파수꾼인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환경보호의식과 환경개선의지를 심어주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필자는 ‘교실 숲’조성을 제안한다. 필자는 올해부터 산자연중학교 교실에 ‘교실 숲’을 만들고 있다. 아직은 많이 미비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연에 대한 학생들과 교사들의 태도 변화다. 교실에 나무가 들어오고, 공기정화 식물 등 다양한 식물이 일가를 이루면서 교실에서의 학생들 생활은 분명 달라졌다. 자연과 학생이 공존하는 교실 모습이 어떨지는 거창한 숲 이론을 인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상 가능할 것이다.지금 교실 환경은 갈수록 삭막해지고 있다. 교실 삭막화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는 학생들의 학교생활 편리를 위해 교실에 들인 냉난방기, 공기정화장치와 같은 각종 기기(器機)들도 한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이런 기기들에 의해 길들여졌지만, 지금부터라도 교실에 자연을 들이면 어떨까? 그래서 자연의 자정(自淨)능력을 배우게 하면 어떨까?그 방법으로 나무와 학생이 함께 수업을 듣는 ‘교실 숲’은 어떨까?

2019-04-09

지방분권시대의 지역문화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방분권은 국가의 통치권과 행정권의 일부가 각 지방정부에 위임 또는 부여되어 지방주민과 그 대표자의 의사와 책임 아래 행사하는 체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지방자치제가 처음 시행된 건 1991년 지방의회 선거와 1995년 지방 단체장 선거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법률과 정책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서울과 지방간 모든 분야의 불균형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보다 완벽한 지방분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문제점을 보완하고 기울어진 시각과 잣대를 바로 잡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변화 속에서 문화·예술분야는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찾기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문화라는 분야는 ‘지역’과 일상을 빼고는 논할 수가 없다. ‘지역’은 중심과 주변부로 나뉘는 것이 아니며, 중앙과 지방으로 나눠서도 안 된다. 한 지역에서 태어나 관계를 맺는 우리 모두는 각자 ‘지역’을 기반으로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자연과 언어뿐만 아니라 독특한 삶의 방식과 문화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 지역과 일상이 가진 고유한 환경과 개별성이 오랫동안 문화를 축적해왔고 또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지방분권에 있어 지역 문화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문화입국’을 국정목표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2001년 ‘지역문화의 해’사업을 추진해 지역 문화컨설팅과 지역 특화형 문화 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세계 문화·예술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살펴보면 한 마디로 ‘문화민주화’로 표방된다. 문화강국 프랑스의 기치를 내세운 프랑스는 문화예산을 파리에 집중된 문화생산 및 보급 활동의 분산화와 문화예술창작 활동의 지원, 예술시장의 활성화, 문화유산의 보존·개발과 부가가치 창출, 전문예술인 교육·고용·지원, 문화에 대한 접근용이성 증대, 뉴 미디어의 개발,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국제교류, 불어 진흥 등 다양한 문화민주화를 위해 투자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장기적으로 차세대의 문화생산, 소비주체가 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부와 협력하여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문화적, 지적 소양교육 체계를 굳건히 하고 있다. 또한 경제적 이유로 문화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계층을 고려, 박물관, 문화유적지, 공연극장 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매월 첫 주 일요일 무료입장, 일정한 시간대를 기준으로 차별화된 가격을 적용하는 가격정책 등을 활용하고 있다. 그 외에 문화향유에 대한 지리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주거지 근처에 도서관, 인터넷 활용, 영화상영, 연극공연 창작 및 전시 공간 제공 등의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이러한 프랑스의 문화정책은 결국 수도 파리와 지방간의 문화적 격차를 줄여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프랑스 문화정책이 파리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비중이 중요하게 차지하고 있었으나,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관의 지방 분산화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지방분권사업이 진행되고 있다.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지역사회의 특성과 함께 미술관의 운영체계가 통일성을 유지하게 되며 이러한 통일성의 주요한 기반은 대부분 정부의 재정적 지원 하에 중앙과의 친밀한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다.이제 우리나라도 지방분권화시대에 문화도시 건설, 지역문화 인프라확대, 지역문화예술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지방 문화예술교육정책의 활성화를 이루어나가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방고유의 문화를 육성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의 수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인구감소·고령화 등으로 인해 소실될 위기에 처한 지역문화를 보전하고 새로운 산업과 지역의 역사를 보존해 나가기 위해서 보다 입체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2019-04-04

위기의 대기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벚꽃이 흐드러진 마을길을 지나가다 골목에서 담배를 맛나게 피우고 있는 학생을 보았다. 교복을 입었으니 분명 학생일 터, 학생이 교복을 입은 채로 대놓고 흡연을 하는 경우는 보기 흔한 장면이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나 사복차림으로 일반인 행세를 하며 거리담배를 피우거나, 교복을 입은 경우는 여러 명이 떼거리로 모여서 무리의 힘을 믿고 골목담배를 감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교사였던 사명감이 아니라도 어른으로서 당연히 뭐라고 간섭을 해야 마땅한 장면이었으나 헛웃음이 나오며 멀거니 바라보다 그냥 지나쳤다. ‘교직에서 퇴직한 탓일까?’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으나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저 싱싱한 폐를, 간을, 두뇌를 함부로 손상시키는 흡연행위가 안타깝고, 공중도덕에도 문제가 있는 행동이지만 누가 말린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어야 고쳐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해악도 스스로 충분히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고치는, 그래서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기는 아까운 것이라 했던가?필자도 고등학교 시절 우연한 기회에 담배를 경험했고, 대학에 가서는 급속도로 애연가가 되었으며, 암울하기만 하던 청춘시절 내내 나의 가장 가까운 벗이 바로 담배였다. 언제나 곁에 있었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는 벗으로 믿었던 담배는 연인보다 더 영원할 것만 같던 것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고, 굳이 해로움을 인지해서라기보다는 몸이 담배를 받아주지 않아서 저절로 금연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런 것도 섭리라 해야 할지.초임시절 교무실의 남교사 책상 위에는 대부분 재떨이가 놓여 있었고, 공공장소 곳곳에도 그랬으며 일반 자동차는 물론 대중이 함께 타는 버스의 의자 뒤편에도 재떨이가 장착되어 있었다. 애연가들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담배연기를 뿜어대곤 하였으니, 요즘은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며 상상조차 힘든 풍속도이다. 언젠가 동남아 여행에서 시내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매우 생경하였으며 어쩐지 미개해보이기까지 하였다. 문명의 탑이 높아질수록 그 그림자도 길어지는 법, 환경문제는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지구환경을 말하려다 담배 얘기가 너무 장황해지고 말았는데, 얼마 전 최악의 미세먼지를 경험하고 암담했던 기억이 오버랩 된 까닭이다. 황사니 미세먼지 등으로 대기의 질이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눈앞에 펼쳐진 최악의 상황은 지난해 겪은 지진의 충격 못지않았다. 지인들과 함께 죽도시장에 들렀는데, 그날따라 주차장이 복잡하여 주차타워 6층,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거기서 목격한 풍경은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포항시의 모든 건물, 차량, 사람들과 길거리 풍경이 미세먼지로 인하여 흐릿하게 사라져 버렸으니 사방을 둘러보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맑고 푸른 형산강 강변에서 유년을 보낸 필자는 여름철이면 물놀이를 하다 강물을 먹기 일쑤였지만 아무 탈이 없었고, 파란 하늘과 초록의 산천을 바라보며 금수강산임을 자부하였는데, 불과 한 사람의 생애 도중에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환경을 보며 후손들의 미래가 암담하지 않을 수 없다.대지에 어김없이 봄은 왔고 산천에는 온갖 꽃들이 지천이다. 오늘 아침 영일만에 부는 바람은 봄바람치고는 몹시 차다. 이른바 ‘꽃샘추위’다. 봄꽃들은 꽃샘추위가 있을 줄 알면서도 꽃을 피운다. 봄에 피는 꽃은 꽃잎이 작고 향기도 강하지 않은 편이라 꽃이 한창인 계절에 피면 벌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까 염려하여 추위가 닥칠 것을 알면서 잎을 내기도 전에 꽃부터 피운다고 한다. 이런 것이 대자연의 섭리라면, 포항지진이 인재이듯 대기의 위기는 인재다. 대재앙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한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9-04-03

과연 4월 학교의 모습은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온천지가 겨울을 승화시킨 꽃들의 이야기이다. 모진 추위를 이겨낸 꽃들이기에 어느 정도의 무용담(武勇談) 정도는 있을 법도 하지만 꽃들은 절대 소란하지 않다. 야단법석을 떠는 건 역시 사람들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박노해 시인은 꽃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그런데 꽃의 모습에만 눈이 먼 사람들에겐 꽃의 이야기를 들을 귀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인의 말(‘꽃은 달려가지 않는다’)을 글로 전한다.“꽃은 자기만의 리듬에 맞춰 차례대로 피어난다/누구도 더 먼저 피겠다고 달려가지 않고/누구도 더 오래 피겠다고 집착하지 않는다/꽃은 남을 눌러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자기를 이겨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자신이 뿌리내린 그 자리에서/자신이 타고난 그 빛깔과 향기로/꽃은 서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고/자기만의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꽃은 달려가지 않는다”세상을 뒤덮은 꽃들이지만 시인의 말처럼 그들에겐 순서가 있다. 아무리 인간들이 자연 생태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아도 집착을 모르는 꽃들은 차례를 지켜 피고 진다. 그러기에 개성을 잃어버린 인간들과는 달리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꽃들은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는 꽃들의 모습에는 부자연스러움이란 있을 수 없다.하지만 아집, 독선 등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은 아무리 자연스럽게 행동을 해도 그 자체가 가식(假飾)이기에 어색하기 그지없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이기에 어색한지도 모르고 자연 앞에서 자연스러운 척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자연스러움이라는 착각에 빠져 산다. 안타까운 것은 물귀신 같은 인간들은 꼭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착각을 강요한다. 그 모습은 병적이다. 병명은 집착증(執着症)!최근 정치인들과 그 하수인들이 목숨을 걸고 집착하는 대상은 과거이다. 정말 지겹지도 않은지 정권 초부터 지금까지 줄곧 과거 이야기뿐이다. 현 정부 인사들은 물론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들은 전 정부의 과거에 목숨을 걸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과거에서 온 사자(死者)들 같다. 정말 이러고서야 이 나라에 현재와 미래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재도 없고, 미래는 더 없는 이 나라는 정말 암흑기(暗黑期)이다. 과거를 현재 자신들의 출세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이 없어지지 않고서는 우리는 1900년대 초보다 더 혹독한 암흑기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이 나라에는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다. 이를 증명하는 법이 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이 법은 이 나라 교육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법이다. 법이 만들어져야 할 정도로 이 나라 교육은 비정상적이다. 그런데 법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우리 교육은 하루가 다르게 교육의 본질에서 멀어지고 있다. 인디언들은 4월을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 학교 현장은 어떨까? 학교 현장의 4월은 학생들이 학교생활의 기쁨을 느끼기는커녕 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거듭 확인하는 달이다. 이 나라 학생들에게 있어 4월은 ‘시험을 보는 달’이다. 교사들의 칼 퇴근 시간에 맞춰 교문이 굳게 닫히는 학교와는 달리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교육 현장은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것이 이 나라 4월의 교육 모습이다.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학생들은 학교 교사가 출제하는 시험을 풀기 위해 학원에서 밤늦게까지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그리고 학교 수업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한다. 교사들은 그런 학생들을 자신의 수업에 집중시킬 마음이 많이 없다. 왜냐하면 괜히 힘을 뺄 필요가 없으니까! 수업 시간이라는 자신들의 일당만 채우면 되니까!양육강식 시험에 주눅 든 학생들로 가득한 4월 학교 모습이 어떨지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19-04-02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박수철 서양화가얼마 전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온 후 한동안 심각한 열등의식에 잠겼다. 그들의 생활수준이 우리나라 80년대 정도의 수준이라고들 애기하나 경제적, 환경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문화·예술은 경제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생성되는 다변적이고 규모의 확장성, 테크니시스트(Technicist)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은 깊고 넓은 인간내면에 근거하는 힘으로 오랫동안 뿌리 깊게 이어져왔고 고스란히 그들의 삶 속에 품격있는 삶의 가치로 지켜지고 있었다.그곳에 도착하여 처음 느낀 것은 그들의 타고다니는 차들의 거의가 오래된 낡은 차였고 건물의 대부분 또한 오래되고 낡은 흠집과 균열 투성이었는데 왜 새롭게 고치거나 바꾸지를 않는지 의심스러웠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버스의 대부분 역시 70,80년대의 한국의 ‘대우’, ‘현대’차들로 매우 낡고 험했고 거리를 다니는 그들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며 그런 현상들이 경제적 낙후 때문인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2박3일의 짧은 여행 마지막 날, 미술관과 므라빈스키대극장의 발레를 보고나서 그 의문이 풀렸다.미술관 입구의 오래된 낡은 구조물의 내부로 들어서니, 자본에 의해 길들여져 무엇이든 새것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사고와는 달리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손질해놓은 그 느낌이 고풍스럽고 엄숙성마저 느껴졌다. 관람실 방마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들이 품격있게 앉아있거나 서있는 모습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엇을 느끼게 하였고 걸려 있는 그림들의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위대함에 압도당해 버렸다. 발레를 보러 가던 날, 그동안 그들의 생활을 눈여겨 본 바로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올까?”를 의심했지만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을 보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그 많은 군중들의 상당수가 노년층이었고 더더욱 놀란 것은 그들이 “인텔리켄쟈”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정중한 옷차림이었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혀 온 아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나는 그 순간 그들이 왜 좋은 차와 새로운 시설물에 자본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그들은 불편하지만 않다면 그런 것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연인과 함께 발레를 보러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물리적, 현실적 가치보다 문화적, 예술적, 전통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겼다. 거리곳곳에서 높은 수준의 연주를 하는 거리의 악사들을 보며 그 엄숙한 미술관에서 진지하게 모사하는 미술학도를 보며 나는 감동했다. 신호등조차 몇 군데 없는 그 도시에서 사람이 다가서면 무조건 서는 차를 보며, 자신이 세워놓은 차 앞을 다른 차가 막아놓아도 경음기 한번 소리내지 않고 그 차가 갈 때까지 기다리는 그 무지막지한 인내심에 놀랐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과 중국관광객들이었고 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관광객들의 거의가 먹는 일과 쇼핑에 몰두했다. 일부 중국관광객들은 뭔가를 질겅질겅 씹어가며 집단으로 모여 떠들며 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얼굴표정이 왜 그리 무표정 했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만약 내가 여기 살았다면, 나는 심하게 욕설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에게 경제적 부(富)를 주기 때문이었다. 있는 자들의 거들먹거림, 나는 그 거들먹거림의 패거리 속에 끼여 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과연 우리는 여행에서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가?나는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내 그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아주 심한 패배의식에 빠져 오랫동안 붓을 들 수가 없었다. 밤이면 가족끼리 산책을 나오는 그들을 보며 삶의 진지함을, 소녀들의 발랄함을 보며 그들의 삶속에 꺾이지 않는 열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내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2019-03-28

봄의 길목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바야흐로 봄, 소생과 약동의 계절이 돌아왔다. 따사로운 햇살에 훈풍을 타고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날을 열어가는 몸짓이 사뭇 새롭고 진지하기만 하다. 산골에서 졸졸졸 흐르는시냇물처럼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맨 먼저 피어나는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나비같은 목련, 팝콘같은 벚꽃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알록달록 피면서 봄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이렇듯 봄이 다가오면 산과 들에는 꽃 잔치가 열리고 겨우내 온갖 숨어있던 것들이 고개를 내밀면서 그야말로 대지는 새봄의 향연을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봄날에 나무와 화초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 같지만 기실은 꽃과 잎을 피우기 위해 덤덤히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부단히 새봄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늦가을에 잎새를 죄다 떨구고 온몸으로 추위를 견디며 뿌리로는 차디찬 땅 속에서 쉼없이 물을 찾아 양분을 축적해서, 마침내 찬란하게 꽃을 피우며 향기를 전하는 것이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창조적인 일손을 멈추지 않고 개화(開花)와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봄은 비단 꽃나무 뿐만 아니라, 동식물이나 생물 등 자연만물을 깨우고 싹트며 움직이게 하는 생동의 기운을 골고루 불어넣어 준다.사람은 꽃처럼 망울을 피우거나 향긋한 향기를 직접 뿜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환한 웃음은 사람을 꽃피게 하고, 맑은 인품과 선한 덕행으로 얼마든지 아름다운 향기를 전할 수 있다. 사람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는 것은 긍정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이 주관한 일들에 소기의 목표나 괄목할 만한 일을 달성함으로써 나타나는 기쁨과 안도의 웃음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러한 웃음꽃을 피워내기까지는 결코 만만찮은 고난과 역경이 따르기 마련이다. 늘 한결같은 마음, 깨어있는 정신, 살아있는 의식으로 날마다 새롭게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간단없이 노력하고 인내하고 추구할 때 마침내 기쁨의 꽃은 피어나리라고 본다. 혹한의 겨울날을 이겨내고 축제같은 계절에 당당히 피어나는 봄꽃처럼.봄의 길목에서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차례를 보며,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을 생각해 본다. 꽃이 핀다는 것은 한 해를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모습으로, 지난 나날 동안에 준비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준비하지 않으면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명한 일이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준비만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행과 치열한 과정에 있다. 계획은 꽃이요 실천은 열매라는 말처럼, 그러나 꽃이 폈다고 해서 그 자리에 다 열매가 맺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꽃을 일제히 피우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떨굴 것은 떨구며 여름날을 지나면서 온갖 비바람과 태풍, 뙤약볕과 병해를 이겨내고야 비로소 가을날의 실한 열매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다.그래서 어느 시인은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한그루 나무처럼// 아파도 아름답게/ 마음을 넓히며/ 열매를 맺어야 하리’라고 읊지 않았던가! 이렇듯 ‘춘화추실’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 같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며 과정에 충실하고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피나는 노력과 인고가 있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러한 자연현상에서 조차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든다. 세상에 쉽고 예사로운 일은 함부로 없는 법이니까.추위를 견디고 피어나는 꽃이 더 향기롭듯이, 고통을 겪은 뒤에 얻은 성과가 더 값지다. 사람도 나무처럼 자신만의 꿈을 가꾸고 그 자리에 열매를 거둬들여야 진정한 성취의 향기가 피어나는 것이리라. 온통 설레임과 기쁨의 꽃망울이 터지는 이 봄날, 모두 제 나름의‘기쁨꽃’을 피우며 가을날의 옹골진 열매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보자.

2019-03-27

3월 학교에 무슨 일이?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전학에 대해 문의드립니다. 중학교 1학년인데 전학이 가능할까요?”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묻는다면, 최근 산자연중학교로 전학에 대해 문의하는 학부모님의 목소리를 한 번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세상이 수없이 무너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학부모님들의 한 서린 목소리는 3월 이 나라 학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죄책감에 필자는 최선을 다해 전화를 받는다.“왜 전학을 하려고 하시는지요?” 이 말은 그동안 참았던 말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아이가 학교 가기를 너무 싫어합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해도 아이가 입을 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특별한 일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아무리 달래 봐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분위기를 바꿔주면 좀 괜찮을까 해서 학교를 알아보는 중입니다. 또 학교에서도…!”이 정도 되면 전학 상담이 아니라 교육 상담으로 전화 내용이 바뀐다. 개학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적어도 서너 통의 전학 문의 전화가 온다. 지역은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이고, 학년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서 1학년 학생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 다른 학년 학생들의 전학 상담도 물론 마음 아프지만, 특히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전학 상담은 필자를 더 아프게 한다.중학교 1학년! 이들이야말로 봄과 가장 닮은 학생들이다. 겨울을 이기고 가지마다 돋아난 꽃봉오리를 닮은 학생들! 분명 그 속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갈 에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환한 웃음이 가득할 것만 같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다. 학생들은 정말 피어보지도 못하고 벌써부터 시들고 있는 꽃봉오리 같다.도대체 3월 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어떤 일이 있었기에 많은 학생들이 3월도 가기 전에 학교를 거부할까? 물론 모든 것을 학교 책임이라고만 할 수 없다. 사회 문제, 정치 문제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학교도 분명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과연 3월 이 나라 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2019년 3월과 1979년 3월 학교의 모습을 비교해본다면? 크게 달라진 게 있을까? 필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고. 오히려 필자는 2019년의 교육상황이 1979년보다 훨씬 못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1979년에는 지금과 같이 화려한 교육 시설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학교에는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들은 열심히 꿈을 찾았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더 열심히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다리가 되어 주셨다. 그래서 즐거웠다. “선생님께 도움을 청해 보시죠?” “몇 번이고 찾아가서 아이가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죠.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방법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전학 이야기만 하시더라고요. 그러시면서 시계만 연신 보셨어요. 시간을 보니까 퇴근 시간이더라고요!”학교가 만능(萬能)일 수는 없다. 그래도 학교 때문에 학교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안다. 그러기에 다음과 같은 시가 계속 나올 것이고, 학생들은 학교 때문에 학교를 계속 그만 둘 것이다. “수업 시간 강의가 시작되었다. (중략) 다시 떠드는 아이들/모두 눈감고 손들어/너희들의 미래는 교실에서 결정된다. (중략) 가르치기보다 아이들 감시에 열을 쏟는 교사/배우기보다 떠들고 조는데 더 열심인 학생들/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그리고 대한민국 가정교육의 결과/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진장춘 ‘대한민국 고등학교 수업 시간’)”3월 학교 모습이 이러한데, 4월은 어떨까!

2019-03-26

왜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인가?

김도형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730쪽 분량의 두툼한 ‘환동해문명사’가 발간된 게 지난 2015년 8월 말이다. 주강현 현 국립해양박물관 관장의 역저로, 환동해의 모든 것을 담은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한 달 후 당시 제주대 석좌교수였던 주강현 관장이 포항을 방문해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10월 20일 박물관 건립을 위한 심포지엄이, 12월 16일에는 박물관 건립 추진을 위한 간담회가 잇달아 열렸다.그해 공교롭게도 포항에는 ‘환동해’를 무대로 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3월 말 포항에서 열린 제3회 환동해 국제심포지엄에 경희대 국제지역연구원 환동해지역연구센터가 결합하면서 한결 풍성한 논의의 장이 마련됐다. 8월 말에는 지역 숙원사업이던 영일만항 국제여객부두 건설이 확정되면서 영일만항 활성화를 위한 다각도의 논의가 진행됐다. 여기에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 논의가 포개지면서 포항의 미래를 포항의 근본인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는 ‘해양 담론’이 후끈 달아올랐다. 포항은 산업도시에서 해양문화도시로 전환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환동해의 랜드마크 조성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2017년 4월 28일 박물관 건립 기본구상 연구용역에 착수했고, 일 년 후 최종보고회가 열렸다. 올해 드디어 박물관 건립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용역이 진행될 예정이다.환동해의 품은 넓고도 깊다. 주강현 관장에 따르면 환동해는 “중국 쪽에서 바라본 동쪽 바다, 러시아 연해주의 바다, 오호츠크와 인접한 사할린과 홋카이도의 바다, 일본 북서부 바다, 그리고 다양한 북방 소수민족들이 바라본 바다 등을 포괄한다.” 따라서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이 담아내야 하는 콘텐츠는 다종다양하다. 국민국가 차원을 넘어선다. 환동해 연안의 여러 국가와 다양한 소수민족의 문명, 그 문명 간의 역동적인 교류사, 그리고 이들 국가와 민족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미래 비전을 담아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환동해권 국가와 민족이 소모적인 갈등, 긴장과 결별하고 공동체적 연대감을 가짐으로써 환동해권의 평화와 공동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동해문명사박물관이 기존의 해양박물관이나 자연사박물관을 탈피하고, 인류학, 민속학, 역사학 등을 포괄하는 차원 높은 융복합 박물관이 돼야 하는 이유이다.바다를 기반으로 한 문명사박물관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2013년 6월 4일 개관한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이 좋은 참고 사례이다. 유럽과 지중해 문명사를 핵심 테마로 한 이 박물관은 지방의 문화와 경제를 살리려는 중앙정부의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이 건립되던 해 마르세유는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면서 재도약의 날개를 펴게 됐다.2016년 8월 말 유럽지중해문명박물관에서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의 기억’ 서문이 떠올랐다.“지중해의 유구한 역사를 곁에서 지켜본 최고의 목격자는 바로 지중해일 것이다. 누구도 이런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중해를 보고 또 보아야만 한다. (……) 지중해는 우리를 위해 과거의 경험들을 재현해내고, 그 경험들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우리가 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이 고색창연한 문장에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환동해문명사박물관 건립은 지난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국립으로 가야 하기에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치밀한 전략과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뜨거운 성원이 있어야 한다. 인천은 23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립해양박물관유치범시민추진위원회가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전 시민적 에너지를 결집한 결과 박물관 건립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큰 꿈을 품은 도시가 큰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 포항의 미래는 저 아득한 수평선 너머에 있다. 깊고 넓은 환동해의 문명을 품은 도시, 포항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자.

2019-03-24

포용국가는 인성교육부터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들판마다 논밭갈이가 한창이다. 겨울을 갈아 봄을 마중하는 농부들의 부지런함에 자연은 봄꽃으로 화답하고 있다. 초미세먼지 등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은 시간이 다르게 환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자연의 꽃 잔치와 들판의 흥겨움은 바로 봄의 에너지이다.에너지가 충만한 봄과는 달리 우리 사회는 여러 사건들로 에너지가 방전되었다. 이번 주말 필자는 지인들과 진지하게 토론을 하였다. 내용은 뉴스의 필요성! 필자는 뉴스가 절대 필요없다고 했고, 지인들은 사회 돌아가는 사정을 알기 위해서는 뉴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론을 내리지 못한 토론이었지만, 세 가지 공통점은 도출했다. 첫째, 뉴스가 국민들의 힘을 빼놓는다는 것! 둘째, 뉴스만 보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다는 것! 셋째, 뉴스가 뉴스의 본연의 기능인 객관적 보도에서 확실히 벗어나 편향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는 것!필자는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볼 때면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혹시나 뉴스가 나올까봐. 어쩌다가 뉴스가 나오면, 그 내용이 서로를 비방(誹謗)하며 싸우는 정치 관련 뉴스이거나, 또는 정말 끝없이 재방송되는 것처럼 보이는 북쪽 관련 뉴스이면 필자는 아이들의 눈치부터 살핀다. 아이들의 표정은 금방 굳어 버린다. 그 표정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불쾌감, 불신감, 혐오감 등이어서 필자는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그런 아이들을 두고 필자는 일요일 오후가 되면 영천에 소재한 학교로 향한다. 필자가 있는 산자연중학교는 기숙사 학교이다. 전국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학생들은 일요일 밤이면 서울, 인천, 강원, 대전, 부산 등지에서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영천으로 온다. 그래서 필자를 비롯하여 산자연중학교 선생님들은 일요일 오후부터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이 번 주도 필자는 평소와 똑같이 일요일 오후에 학교로 왔다. 출근길에 어느 학교 정문에 걸린 “3월 인성교육 캠페인 2013 인성이 힘”이라는 가로펼침막을 무심결에 보았다. 순간 헛웃음부터 나왔다. 그리고 이 나라 학교에 인성교육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학교가 아니라 이 나라에 인성(人性)이라는 단어를 붙일만한 곳이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그런데 없었다. 필자가 모르는 어디선가 인성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인성교육진흥법이 태어난 국회와 국회의원들에게는 이 인성이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학교 현장과 우리 사회에서 인성교육이 헛도는 것은 인성교육을 출발시킨 국회의원들부터 인성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법을 제정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들부터 법의 내용과 관련해서 최대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고 자신들이 지키지 않는데, 어느 누가 그 법을 지키겠는가! 분명 인성교육진흥법은 국회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인성 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무너진 이 나라의 인성을 어떻게 하면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이 방법은 어떨까? 국회, 정부, 법원, 경찰, 학교, 공공기관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부터 해마다 인성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면 어떨지! 그러면 최소한 이 나라가 지금과 같은 낯 뜨거운 사회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시험 공화국인 대한민국에는 인성조차 책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다음은 얼마 전 교육부에서 “제2차 포용국가 실현을 위한 사회관계장관회의” 개최와 관련해서 보도 자료를 낸 내용 중 일부이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건강한 성장이 곧 가정의 행복이자 건강한 사회의 출발점”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 앞서 국회의원들은 물론 사회관계 장관들부터 바른 인성을 가지겠다는 선서식을 하면 어떨까!

2019-03-20

망각(忘却)에 대한 성찰

서수백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과기억력에 대해서는 나름 자부하던 나도 어느 시기부터 망각하는 것이 늘고 기억해 내는 데 힘이 든다. 그만큼 뇌가 노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어느 자연인은 인생의 참담함을 경험한 후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지난날의 모든 것을 잊고 사니 병도 없어지고 삶이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망각의 이중성이다.20년 전쯤이었다.나는 ‘설에서 보자’라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설? 설날을 앞둔 시기였으니 ‘설날에 보자’라는 말인가?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설’은 ‘서울’이었다. 솔직히 그때 나는 재미있다는 생각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처럼 이제 ‘설’ 정도는 옛말이 되었고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수없이 만들어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 정체 모를 신조어들을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고지식한 사람이 돼 버린다. 물론 그 언어들 속에는 시대의 아픔이 담긴 웃을 수 없는 단어들도 있다. 그러나 내 개인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언어로 이해되는 것이 대다수이다.사람들은 정상적인 우리말글은 망각한 것인가? 언어에 대한 망각이 현실의 비정상적 행동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게 하는 것인가? 언제부턴가 사람들 사이에 한국어 종결어미는 ‘~삼’, ‘~당’이 판을 치고 대답하는 말도 ‘넹’을 쓴다. 유성음이 종성으로 들어가니 어감이 친근하고 귀여운 느낌은 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쓰는 양상을 보면 거부감이 든다. 아이들과 혹은 젊은 세대들과 눈높이를 맞춘다는 명목으로 듣기 거북한 비속어들을 스스럼없이 쓰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느 공포 영화 못지않다.얼마 전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수평적 호칭제’라는 미명 아래 학교 구성원 간의 호칭을 ‘쌤’이나 ‘님’으로 통일하자는 방안을 내 놓았다. 학생도 교사도 모두 ‘~쌤’이라고 부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발표되자마자 곳곳에서 반발이 일어났고 교육감은 “최근 교권 추락이 크게 우려되는 현실 속에서 수평적 조직문화 개선 정신이 충분히 부각되지 않고 호칭 문제만 제기되어 안타깝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이 방안은 교직원 간의 호칭으로만 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 또한 찜찜한 결론이다.현재 복수표준어인 ‘멍게’와 ‘우렁쉥이’가 처음에는 ‘우렁쉥이’만 표준어였고 ‘멍게’는 비표준어였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표준어 ‘우렁쉥이’에 비해 비표준어 ‘멍게’가 음절수나 모음 발음에 있어 경제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하였고 이에 따라 ‘멍게’는 공식적으로 ‘비(非)’를 떼고 ‘표준어’가 된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멍게’와 같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은 단어들을 살피는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리하여 2011년에는 그렇게 논란이 많았던 ‘짜장면’을 비롯해 지금까지 69개의 비표준어가 표준어 목록에 올랐다. 우리는 이러한 공식적 언어를 설정함에 있어서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리라 본다. 단순히 많이 사용하고 의사소통에 편리하다고 하더라도 언어 사용으로 인한 국민 정서에 대한 고려가 먼저 세밀히 있어야 할 것이다.조선시대 세종대왕은 우리의 문자를 만듦으로 민족의 자존감을 세웠고, 일제 치하 우리 민족은 우리말글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고 여겼다.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우리말글을 물려주었다. 자연환경 때문이든 생활환경 때문이든 우리는 많이 잊어 가고 있다. 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의 병도 겪는다. 그러나 잊는다는 것에 너무 무뎌 있지는 않는가? 사라질 뻔했던 대구 방천시장은 ‘김광석길’을 만들며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해야 할 때다.

2019-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