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등록일 2019-03-28 18:59 게재일 2019-03-29 18면
스크랩버튼
박수철서양화가
박수철 서양화가

얼마 전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온 후 한동안 심각한 열등의식에 잠겼다. 그들의 생활수준이 우리나라 80년대 정도의 수준이라고들 애기하나 경제적, 환경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으로는 엄청난 차이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문화·예술은 경제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생성되는 다변적이고 규모의 확장성, 테크니시스트(Technicist)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은 깊고 넓은 인간내면에 근거하는 힘으로 오랫동안 뿌리 깊게 이어져왔고 고스란히 그들의 삶 속에 품격있는 삶의 가치로 지켜지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여 처음 느낀 것은 그들의 타고다니는 차들의 거의가 오래된 낡은 차였고 건물의 대부분 또한 오래되고 낡은 흠집과 균열 투성이었는데 왜 새롭게 고치거나 바꾸지를 않는지 의심스러웠다. 시내를 돌아다니는 버스의 대부분 역시 70,80년대의 한국의 ‘대우’, ‘현대’차들로 매우 낡고 험했고 거리를 다니는 그들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며 그런 현상들이 경제적 낙후 때문인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2박3일의 짧은 여행 마지막 날, 미술관과 므라빈스키대극장의 발레를 보고나서 그 의문이 풀렸다.

미술관 입구의 오래된 낡은 구조물의 내부로 들어서니, 자본에 의해 길들여져 무엇이든 새것을 추구하려는 우리의 사고와는 달리 그것을 있는 그대로 손질해놓은 그 느낌이 고풍스럽고 엄숙성마저 느껴졌다. 관람실 방마다 나이가 지긋한 여자들이 품격있게 앉아있거나 서있는 모습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무엇을 느끼게 하였고 걸려 있는 그림들의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위대함에 압도당해 버렸다. 발레를 보러 가던 날, 그동안 그들의 생활을 눈여겨 본 바로 “과연 얼마나 사람들이 올까?”를 의심했지만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들을 보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그 많은 군중들의 상당수가 노년층이었고 더더욱 놀란 것은 그들이 “인텔리켄쟈”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었다. 모두가 정중한 옷차림이었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혀 온 아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나는 그 순간 그들이 왜 좋은 차와 새로운 시설물에 자본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그들은 불편하지만 않다면 그런 것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연인과 함께 발레를 보러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물리적, 현실적 가치보다 문화적, 예술적, 전통적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겼다. 거리곳곳에서 높은 수준의 연주를 하는 거리의 악사들을 보며 그 엄숙한 미술관에서 진지하게 모사하는 미술학도를 보며 나는 감동했다. 신호등조차 몇 군데 없는 그 도시에서 사람이 다가서면 무조건 서는 차를 보며, 자신이 세워놓은 차 앞을 다른 차가 막아놓아도 경음기 한번 소리내지 않고 그 차가 갈 때까지 기다리는 그 무지막지한 인내심에 놀랐다.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과 중국관광객들이었고 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관광객들의 거의가 먹는 일과 쇼핑에 몰두했다. 일부 중국관광객들은 뭔가를 질겅질겅 씹어가며 집단으로 모여 떠들며 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얼굴표정이 왜 그리 무표정 했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만약 내가 여기 살았다면, 나는 심하게 욕설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들에게 경제적 부(富)를 주기 때문이었다. 있는 자들의 거들먹거림, 나는 그 거들먹거림의 패거리 속에 끼여 심한 굴욕감을 느꼈다. 과연 우리는 여행에서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가?

나는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내 그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뼈저리게 느끼며 아주 심한 패배의식에 빠져 오랫동안 붓을 들 수가 없었다. 밤이면 가족끼리 산책을 나오는 그들을 보며 삶의 진지함을, 소녀들의 발랄함을 보며 그들의 삶속에 꺾이지 않는 열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내 머릿속에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자리하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을 다녀와서….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