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 소생과 약동의 계절이 돌아왔다. 따사로운 햇살에 훈풍을 타고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날을 열어가는 몸짓이 사뭇 새롭고 진지하기만 하다. 산골에서 졸졸졸 흐르는시냇물처럼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맨 먼저 피어나는 매화를 시작으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나비같은 목련, 팝콘같은 벚꽃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알록달록 피면서 봄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이렇듯 봄이 다가오면 산과 들에는 꽃 잔치가 열리고 겨우내 온갖 숨어있던 것들이 고개를 내밀면서 그야말로 대지는 새봄의 향연을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봄날에 나무와 화초가 꽃을 피운다는 것은 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 같지만 기실은 꽃과 잎을 피우기 위해 덤덤히 땅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부단히 새봄을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늦가을에 잎새를 죄다 떨구고 온몸으로 추위를 견디며 뿌리로는 차디찬 땅 속에서 쉼없이 물을 찾아 양분을 축적해서, 마침내 찬란하게 꽃을 피우며 향기를 전하는 것이다. 혹독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창조적인 일손을 멈추지 않고 개화(開花)와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봄은 비단 꽃나무 뿐만 아니라, 동식물이나 생물 등 자연만물을 깨우고 싹트며 움직이게 하는 생동의 기운을 골고루 불어넣어 준다.
사람은 꽃처럼 망울을 피우거나 향긋한 향기를 직접 뿜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환한 웃음은 사람을 꽃피게 하고, 맑은 인품과 선한 덕행으로 얼마든지 아름다운 향기를 전할 수 있다. 사람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는 것은 긍정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신이 주관한 일들에 소기의 목표나 괄목할 만한 일을 달성함으로써 나타나는 기쁨과 안도의 웃음꽃이 아닐까? 그러나 그러한 웃음꽃을 피워내기까지는 결코 만만찮은 고난과 역경이 따르기 마련이다. 늘 한결같은 마음, 깨어있는 정신, 살아있는 의식으로 날마다 새롭게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간단없이 노력하고 인내하고 추구할 때 마침내 기쁨의 꽃은 피어나리라고 본다. 혹한의 겨울날을 이겨내고 축제같은 계절에 당당히 피어나는 봄꽃처럼.
봄의 길목에서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꽃차례를 보며,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는 ‘춘화추실(春華秋實)’을 생각해 본다. 꽃이 핀다는 것은 한 해를 다시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모습으로, 지난 나날 동안에 준비해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준비하지 않으면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명한 일이지만, 세상의 모든 일은 준비만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실행과 치열한 과정에 있다. 계획은 꽃이요 실천은 열매라는 말처럼, 그러나 꽃이 폈다고 해서 그 자리에 다 열매가 맺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꽃을 일제히 피우지만, 버릴 것은 버리고 떨굴 것은 떨구며 여름날을 지나면서 온갖 비바람과 태풍, 뙤약볕과 병해를 이겨내고야 비로소 가을날의 실한 열매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열매를 위해/ 꽃자리를 비우는/ 한그루 나무처럼// 아파도 아름답게/ 마음을 넓히며/ 열매를 맺어야 하리’라고 읊지 않았던가! 이렇듯 ‘춘화추실’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 같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며 과정에 충실하고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피나는 노력과 인고가 있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과정은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러한 자연현상에서 조차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만든다. 세상에 쉽고 예사로운 일은 함부로 없는 법이니까.
추위를 견디고 피어나는 꽃이 더 향기롭듯이, 고통을 겪은 뒤에 얻은 성과가 더 값지다. 사람도 나무처럼 자신만의 꿈을 가꾸고 그 자리에 열매를 거둬들여야 진정한 성취의 향기가 피어나는 것이리라. 온통 설레임과 기쁨의 꽃망울이 터지는 이 봄날, 모두 제 나름의‘기쁨꽃’을 피우며 가을날의 옹골진 열매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