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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라는 글자

▲ 김현욱시인·포항 흥해남산초 교사‘마음에게 말 걸기’의 저자 대니얼 고틀립은 고교 시절부터 학습장애로 낙제를 거듭했다. 대학을 두 번 옮긴 끝에 템플 대학교에서 학습장애를 극복하고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촉망받는 젊은 정신과 전문의로 성공 가도를 걷던 서른세 살의 어느 날, 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손상을 입어 전신마비가 되었다. 결혼 10주년을 맞아 아내에게 줄 결혼선물을 찾으러 가는 길에 당한 사고였다. 그 후 극심한 우울증과 이혼, 자녀들의 방황, 아내와 누나, 부모님의 죽음을 차례로 경험하면서 삶의 지혜와 통찰력,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된다. 둘째 딸이 낳은 유일한 손자 ‘샘’이 자폐증 판정을 받자 어린 손자에게 전해주고픈 이야기들을 32통의 편지에 담는다. 그 편지들은 ‘샘에게 보내는 편지’ 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끔찍한 비극을 당한 사람들이 느끼는 일련의 감정들, 충격, 슬픔, 분노, 공포는 한 사람의 마음을 폐허로 만든다. 대니얼 고틀립도 ‘거대한 물체가 차창을 덮치는’ 마지막 장면 이후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의 몸이 전신 마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순간에 일생을 휠체어에 앉아 보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이렇듯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예기치 못한 사고와 비극 앞에서 인간은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다만, 거기서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체념하고 절망하기를 반복한다면, 삶은 더욱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암울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힘겹게 빠져나온 대니얼 고틀립이 병원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관찰하기’였다. 사실 그가 휠체어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다. 관찰하기는 삶을 가만히 바라보기와 같다. 사람 대부분은 그럴 기회가 없다. 내가 누군지, 왜 사는지 모른 채 허깨비처럼 휘적휘적 살아갈 뿐이다.대니얼 고틀립은 불행한 사고로 한순간에 휠체어 신세가 됐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얻은 셈이다. 누구에게나 불행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80%가 후천적으로 일어난 사고 때문이다.다른 것이 있다면 ‘사고’에 대처하는 자세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고 이후의 삶은 크게 달라진다. 덫이 될지 닻이 될지는 자신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말리는 대니얼 고틀립의 딸 알리가 아끼는 다리가 세 개밖에 없는 개다. 말리의 다리는 네 개가 아니라 세 개다. ‘관찰’에 따르면, 말리는 잃어버린 다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산책할 때 말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측은한 눈빛이 대부분이다. 다리를 잃는 것과 목이 부러지는 것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큰 사고다. 하지만, 동물과 사람은 여기서 완전히 다르게 반응한다는 것을 대니얼 고틀리는 알아냈다. 인간에게는 ‘자의식’이라는 것이 있다. 내 삶이 반드시 이러이러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에고가 존재한다. 다리를 잃거나 목이 부러지거나 암에 걸리거나 부도가 나 빈털터리가 되면 ‘자의식’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열등감과 절망으로 에고가 불타오른다.말리와 같은 개는 삶을 온전히 끌어안고 산다는 것을 그는 목격했다. 조건 없이 사랑하고, 부당한 처우에도 불평하지 않는다. 삶과 사랑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온몸으로 껴안고 산다. 자존감이나 정체성이란 말도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알아챘다.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 나라는 생각과 감정은 정말 내 것일까? 호흡명상을 할 때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만을 의식하려고 한다. 그 와중에도 온갖 생각과 감정은 쉴 틈 없이 피어오른다. 부지불식간에 생각에 끌려갔다가 감정에 내동댕이쳐지는 나를 본다.대니얼 고틀립이 만났던 지혜로운 노부부는 이 세상의 수많은 지혜로운 사람들처럼 ‘나’라는 글자가 더 작고 흐릿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는다면 삶이 훨씬 충만해질 것이다.

2018-08-01

인생은 짧고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우리나라 근현대 서양화 도입기의 거장 초헌 장두건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시가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초헌 선생님은 우리 고장 초곡리에서 태어나 2015년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으니 거의 한 세기를 사신 셈이다. 떠나시기 불과 몇 달 전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는데, 그때 하신 말씀이 “인생이 참 순간인 것 같아!”였다. 한 세기를 사신 분에게도 과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이었을까?연도를 표시할 때, 필자 세대는 58년생, 77학번, 88올림픽 등 두 자리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99년까지는 굳이 일천구백을 들먹이지 않고 그냥 99년이라 했다. 그런데 2000년이 되고나니 연도를 두 자리로 표기하기가 영 편치가 않았다. 00년이라….새로운 밀레니엄은 이전까지의 여느 해와 똑같은 걸음으로 우리 곁에 다가왔지만 막상 이를 맞이하고 보니 여러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00년이란 말이 생경해 2000년을 새천년이라 했는데, 2001년이 돼서도 이 생경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01년? 02년? 어쩐지 이상하다. 그런 중에도 시간은 쉼 없이 흘러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고, 이제는 올해를 18년이라 말하는 것에 제법 익숙해지기도 했다.100년을 단위로 기간을 나타내는 말이 세기이다.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수명이 백수(白壽)하기가 쉽지 않으니 세기 초에 태어난 사람은 다음 세기를 만나기 전에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세기 중엽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체로 생애 중에 다음 세기를 맞이하게 된다. 세기가 바뀌면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다. 필자의 경우도 20세기에 익숙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21세기 사람이 된 경우이다. 100년이 느닷없이 온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은 걸음으로 하루씩 다가왔으나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세기의 아침은 엄청나게 다른 느낌이니 이 무슨 조화인가?숫자 100이 가지는 의미는 각별하다. 백일잔치, 100분 토론에서부터 요즘 청춘남녀들이 만나서 100일이 지나면 치르는 백일파티에 이르기까지. 소원성취를 위해서 온 정성을 다해 백일기도를 드리는데, ‘온 정성’의 ‘온’이 바로 100을 뜻한다. 100은 최고를 의미하며 완전무결함을 상징하는 숫자인 것이다.한 세기를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한 세기 동안 한 분야에 몰입해 이룩한 생애의 업적은 위대하다. 그러므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초헌 선생님의 역작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 ‘삶은 아름다워라!’는 시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 믿는다. 한 세기를 살다 떠나신 당신께서는 인생이 순간이라 했고, 삶은 아름답다고 했다. 매 순간을 아껴서 매일 같은 시간에 작업실로 출근했고, 꼿꼿이 선 자세로 붓을 들었고, 다듬고 또 다듬어 화면을 빛나는 보석처럼 빚어낸 작품들을 고향인 포항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아름다운 삶이다.포항시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여줄 시립미술관 소장 작품을 비롯해 전국의 미술관과 소장자들을 수소문해 어렵게 찾아낸 초헌 선생님의 작품, 그리고 그의 손때가 묻은 유품들을 망라한 감동적인 전시 ‘삶은 아름다워라!’가 9월초까지 펼쳐진다.우리 고장의 소중한 예술적 자산이 될 이 전시를 많은 시민들이 감상하고 문화도시, 문화시민의 자존심을 재충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으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이다.

2018-07-31

대학교육과 인성

▲ 박현주 위덕대 교수·간호학과작열하게 뜨겁지만 7월의 하늘은 눈부시게 맑다. 옅은 블루 바탕 위의 하얀 구름은 뭉개 뭉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손을 뻗쳐 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뭉개 구름이 예쁘지만 손에 잡히지 않고 영화 속의 아름다운 일상들이 현실에서는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처럼 대학에 와서 가장 기준을 잡기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인성에 대한 교육이었다.이는 인성이 일정한 교과목처럼 이해하거나 암기하는 이론적 지식습득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삶의 시간 속에 가치관이나 철학 등이 흡수되고 용해되어 일상생활 속으로 표출돼야 하는 지행합일체이기 때문일 것이다.산·학간 간담회를 하면 대부분은 졸업생들의 근황을 묻고 답하면서 신규 세대들의 문화를 이야기하게 된다. 매번 간담회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단골 메뉴가 신규들의 퇴사방법이다. 퇴사하는 방법이 팩스로 사직서를 보낸다는 말은 벌써 고전이 된 지 오래다. 그 다음으로는 문자로 퇴사를 알리고 최근에는 아예 아무말 없이 무단결근하면 그게 바로 퇴사를 의미하는 것이란다. 이렇듯 웃지못할 에피소드의 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인성교육의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그때마다 기성 세대는 요즘의 세태를 한탄하며 씁쓸함을 삼키지만 생각해보면 신규가 기성세대가 되면 또 인성이 척박해진 세태를 운운하는 순환적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대학에서는 인성프로그램이 강화돼 유교식 예절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다양한 인문학적 매체를 활용해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교육을 하기도 한다.어떤 사람은 인성교육이 대학에서 해야 할 교육이냐며 반문을 하기도 한다.그러나 우리사회가 인성교육을 통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인재상은 주도적, 도덕적, 공동체적인 인간과 창조적이고 생산적이며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다.필자는 인성교육을 대할 때면 땅과 식물과 농부의 관계를 생각한다. 엄동설한의 식물들이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긴 동면 동안 싹을 틔우듯 교수자의 반듯함과 열정이 학생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결실을 맺게 되는 자연의 섭리처럼 인간관계나 교육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인간관계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고 내가 화를 내면 상대도 화를 낸다. 상대의 행동을 비판하고 나무라기 이전에 그 행동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상대의 모습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필자는 학생들과 정규 수업 이외의 동아리 모임을 가지기를 좋아한다. 그들과 같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제지간으로 규정된 틀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을 보게 된다.미국의 교육지도자 파커(Parker J Palmer)는 “교직의 어려움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은 우리가 자의식울 가르치기 때문이다. 가르침은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들이대는 행위이며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학생과 학과를 아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훌륭한 가르침의 필수사항이다”고 했다.가르친다는 것, 이는 분명 지식을 전달하는 것 그 이상이다. 이 시대의 인성교육 또한 그러하리라.인성교육이 단순히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가르치고 패스(PASS), 페일(FAIL)로 학점을 부여한다면 이는 인성이 어느 단계에서 습득해야 할 전공교과목의 지식이나 기술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나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외부의 목소리가 높아갈 때면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나는 학생들과의 신뢰를 지키는 사람이었나?”, “나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학생들은 나를 통하여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가?”

2018-07-30

역설적 실책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방학이다. 그런데 방학도 예전같지 않다. 설렘, 기대같은 것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특히 고등학교 학생들은 더 그렇다. 왜냐하면 정부의 갈팡질팡하는 입시 정책 때문에 방학을 반납하고서라도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공부 장소가 학교가 아닌 사교육 기관이라는 것이다. 텅 빈 학교와 꽉 찬 학원! 물론 학교에서도 방학 보충 수업이라는 것을 한다.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교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필자의 경험상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되는 학교 방학 보충수업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독(毒)이다. 동상이몽의 방학 보충수업이지만 그래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눈치 보기다. 교사는 학부모와 관리자의, 그리고 학생은 교사의 눈치를 본다. 이렇게 시작부터가 잘못되었으니 과정이나 끝이 좋을리 없다. 학기 중 정규 수업 시간에도 수업에 대해 흥미를 못 느끼는 학생들인데, 방학 보충 수업에서는 어떨까?방학은 고등학생들한테만 힘든 시기가 아니다. “아빠, 내 친구는 방학 때 유럽 간대!” 초등학교 딸아이 말에는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필자는 그렇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아이가 필자를 위로한다.“아빠, 괜찮아. 나는 외국 안 가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물총싸움하기로 했어” 방학을 맞아 외국 여행을 안 가는 아이들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필자는 마음이 더 아팠다. 아이의 “괜찮아!” 소리가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눈치 보기 방학, 그리고 빈익빈 부익부 방학이 되어버린 교육의 슬픈 현실 앞에서 필자는 한없이 작아졌다. 방학(放學)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학생의 건전한 발달을 위한 심신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서 실시하는 장기간의 휴가”(교육학 용어사전) “여름철의 가장 더울 때와 겨울철의 가장 추울 때 학교가 수업을 하지 않고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쉬는 것”(지식백과) 영어에서는 방학을 Vacation이라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방학은 휴가, 즉 쉬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의 방학은 어떤가. 아이들은 물론, 교사, 학부모들의 힘만 빼놓는 방학! 시대가 바뀐만큼 방학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계속 되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종업식 때 대부분의 교사는 앵무새처럼 다음과 같이 학생들에게 알찬 방학이 되기 위한 방법을 안내한다. 계획을 세워라! 그것을 실행에 옮겨라! 평소 하지 못한 봉사활동을 하라! 필자는 이런 말을 하는 교사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지?아직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종업식을 하고 와서 자신의 방학 계획을 필자에게 말해주었다. 수행평가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성적이 나오지 않아 많이 속상해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필자이기에 아이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방학 때 더 열심히 해서 2학기 때는 자신이 목표한 점수를 꼭 얻겠다고 말하였다. 말하는 아이의 표정은 비장함을 넘어 숭고해 보였다. 그런 아이에게 필자는 “역설적 실책”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역설적 실책은 축구 선수들이 패널티킥을 실수하는 이유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용어이다. 요약하면 선수들은 패널티킥을 차기 직전 “왼쪽을 겨냥하되 골대만 맞추지 말자!”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공을 찬다고 한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그 다짐대로 되어 골대를 맞추거나 아니면 골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공을 차고 만다고 한다. 이런 실책은 큰 경기일수록 자주 발생한다고 하는데, 굳은 다짐이 오히려 압박감으로 몸에 잘못 전달되어 실수를 유발해서 나오는 일종의 ‘다짐의 역기능’ 현상이다. 방학 첫날 아이는 걱정하지 말라는듯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방학 보충 수업을 위해 학교로 갔다. 뉴스는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폭염(暴炎)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2018-07-26

문화예술의 지산지소(地産地消)

▲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전국 각지의 어느 지자체라고 하더라도 기업 유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은 한 군데도 없을 것이다. 지역에서 기업을 신규로 유치하게 되면 이는 그 지역공무원의 실적이 하나 늘어나는 단순한 성과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규모의 크고 작음은 있겠지만 기업이 입지하게 됨에 따라 해당 지역민을 채용함으로써 발생하는 고용창출 효과, 지역민의 소득이 늘어나면서 나타날 수 있는 지역 내 소비 및 물류의 증가 효과와 더불어 해당 기업 가족들의 주거이전에 따른 인구증가, 신규 공장의 건설 등에 따른 지역 건설 및 부동산분야에서의 경기개선 효과 등 무수히 많은 경제적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인구가 증가하고 소비재나 공산품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기업의 유치는 해당 지역의 고용창출이라는 효과는 물론 그 기업의 입장에서도 생산하는 대로 팔려나가는 시장의 확대가 동반되었기 때문에 유치된 기업과 유치한 지역은 말 그대로 동반성장, 지역과의 상생이 가능했다.그러나 상황이 이미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산업화 시절의 기업의 성장과정이나 생산프로세스 등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떠들썩했던 한국GM의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국적 기업들의 의사결정에 있어 해당 지역의 사정이나 입장 등은 큰 고려요소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기업유치를 위해 지역이 감내한 비용을 회수하기도 전에 해당 기업의 철수가 이루어지는 위험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결국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고려한다면 역시 지방도시의 입장에서는 지산지소(地産地消)를 추구해야만 한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한 농수산물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조업체의 물품, 서비스업체의 용역 등을 최대한 해당 지역이 소비함으로써 지역내의 자체적인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며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 과거 우리나라가 괜히 ‘국산품 애용운동’을 실시한 것이 아니다. 성장단계의 지역이나 국가가 조기에 경쟁력을 갖추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포항지역이 안고 있는 경기부진, 인구감소, 부동산침체 등 다양한 문제들을 획기적으로 해소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인구까지도 증가시키는 이상적인 정책이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도모하고 비교적 조기에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가능성을 굳이 제조업 분야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포항만이 가진 독특함, 지방색을 가지면서 지산지소까지도 가능한 장점을 지닌 것은 다름 아닌 문화예술분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가 선진화되고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일반적인 소비수요보다는 웰빙, 건강과 더불어 문화, 예술, 철학과 같은 정신적인 만족도를 위한 수요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포항에서는 문화예술의 씨앗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죽도시장과 육거리를 사이에 있는 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가 바로 그것이다. 고급면세점, 명품아울렛 등은 어쩔 수없이 타 지역에서 소비할 수밖에 없겠지만, 지역의 뛰어난 화가, 공연예술가, 공예가, 도예가, 조각가 등이 산재되어 그곳에서 문화예술을 맛보고, 즐기고,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지산지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포항의 꿈틀로는 그동안 철강, 군사라는 하드웨어를 갖춘 단단한 도시이미지에서 벗어나 문화예술도시, 젊은 예술가들이 꿈꾸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지닌 부드러운 도시이미지로 전환할 수 있는 최고의 지역자원이다. 출퇴근길에 꿈꾸는 젊은이들의 거리를 걸으며 이들 작가들과의 접촉을 통해 포항시민들이 충분한 문화예술의 소비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지산지소가 확대된다면 구도심지의 활성화는 물론 타 지역 관광객의 유치, 새로운 청년 문화예술인의 유입과 더불어 인구감소 문제의 또 다른 해결책의 하나로도 작동하게 될 것이다.

2018-07-25

지방의회에 고(告)함

▲ 금박은주포항여성회장얼마 전 경북도내 한 지방의회에서 성평등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다. 이름하여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었다. 우선은 의회 사무국에서 꼼꼼하게 강의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을 보면서 감탄했다. 다시 한 번 지면을 빌어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린다. 지방의회도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의원들도 대체적으로 의욕적이었다. 그러던 중에 저출산 문제에 대한 성인지적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저출산을 단지 결혼을 하지 않는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공보육 확대’도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제안했다. 공보육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한 의원이 손을 들었다. “강사님 지금 뭘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 같은데, 이미 공보육은 충분하다. 우리나라가 공공보육에 너무 많이 투자해서 문제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내었다.처음에는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안 된다. 공보육 확대도 저출산 문제 해결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답을 했다.하지만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 의원은 불편한 심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강의를 마무리하고 질의응답을 받는데, 지금까지와 달리 가장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그 중에 한 남성의원은 “이런 교육(성평등 교육)을 왜 여성강사들만 하는지 모르겠다. 남자 강사들이 하면 좋겠다. 여자들만 강사로 와서 자꾸 성차별 이야기 하니깐, 성차별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 정확하게 질문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취지의 내용이었다. 강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여성학을 공부하거나 성평등 교육을 공부한 사람이 강의를 할 수 있는데, 그걸 공부한 남성 강사들이 극소수라는 점은 나 또한 안타까운 대목이다.그리고 또 다시 공보육 반대 의원의 공세적 질문이 이어졌다. “강사님, 지금 우리 질문하는 거 다 기억합니까?”라는 것에서부터, “데이터를 이야기할 때 조선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하세요”라는 지적과 훈계가 이어졌다. 그 말에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야단 받으러 온 건 아니죠? 지금 화나셨나요?”라고 하니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고는 마무리되었다.나중에 안 것이지만, 공보육 반대 시의원은 사립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고압적 질문을 쏟아붓던 그 의원에게 “혹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운영하세요?” 라고 질문을 하지 못했던 나의 센스 없음과 눈치 없음이 몹시도 안타까웠다.사실 여러 번의 강의 경험이 있지만, 지방의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처음이었다.솔직히 그들의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는 놀라움을 넘어 실망 그 자체였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보육과 공보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에 반하는 태도를 계속 견지한다면, 지방의회에서부터 공보육 확대가 논의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의회는 시민들을 대변하는 심부름꾼이지 않은가? 그런데 일부 시의원의 갑의 정신이 지방의회 자체를 병들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지방의회는 물론이고 정치권력은 공사 구분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 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시민들이 달아준 그 배지를 조용히 떼시라고 권유해드린다.우리 지역에 한 초선 시의원께서는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아 유명한 분이 계신다고 들었다. 선거 기간 중에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고개 숙여 한 표를 호소했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인사도 받아주지 않는 그 꼿꼿함은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

2018-07-24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얻는 지혜, 변화와 혁신

▲ 신훈규 포스텍 나노융합기술원 본부장·연구교수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래서 우리사회가 자연스럽게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러한 사회, 경제, 정치적 환경변화가 우리를 바뀌도록 재촉하는 것같기도 하다. 공학도인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변화와 혁신은 과학기술분야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창의적인 생각에서 시작한 결과물에 불과하기도 하다. 고대 인도수학에 의해 벽돌의 크기를 정할 때도 가로·세로·높이가 4:2:1이라는 비율이 만들어지고 현재까지도 벽돌의 모양을 결정하고 이어져 오고 있다. 고대에 생각했던 이러한 기준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벽돌을 이용하여 만든 고대 유산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경기장으로 높으면서도 가장 안정한 구조로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벽돌의 비율 때문이다. 높은 건물이 필요없던 시대에 4층 높이의 콜로세움 경기장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사람, 실제로 실현한 사람 등은 무슨 생각으로 이러한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싶다. 어떤 생각들이 모여서 이러한 역사적인 유물을 남기게 된 것일까?벽돌을 만든 방법은 흙을 구워서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벽돌과 같이 굽는다는 생각의 유산 중 하나가 바로 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진시황 장례에 사용된 테라코타(terracotta)로 유명한 병마용갱(兵馬俑坑)일 것이다. 이것은 기원전246년에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굽는다는 방법은 같지만, 사용처도 다르고 도자기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같은 기술 다른 생각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과학기술의 역사에서 보면 구워진 벽돌은 건축물을 만들고, 이러한 굽겠다는 생각은 이어져 테라코타를 비롯한 도자기를 만드는 세라믹기술의 좋은 예가 된 것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시작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랄 수 밖에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물과 유산들을 보면 최소 2천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그 의미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 보면, 2천년 전에 새로운 것을 꿈꾸고 도전하는 것이 과연 쉬웠을까?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저항은 역사적으로 많았다는 것을 기록으로부터 알 수 있다. 그러면 현재의 우리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변화하며 혁신하는 것은 과연 쉽고 간단한 것인가? 과거의 위대한 건축물과 유산을 남기기 위한 변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책, 경제발전, 산업성장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변화하지 않고 혁신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 지구촌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이 시대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분야나 지역을 막론하고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선진국 기준이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를 넘겼다는 보고가 여기저기서 제시되고 있다. 1인당 GDP 3만달러, OECD 가입국 등 다양한 지표에 진입한 것은 대표적인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성장이고 모델이라고 할 것이다.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하는 가에 우리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한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대답의 하나가 바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위해 변화와 혁신을 생각했을 것이다. 과학기술은 끊임없는 변화로 또 새로운 것에 대한 혁신으로 역사를 기록해오고 있다. 우리는 이런 노력 덕분에 하늘을 날고, 바다를 누비며, 땅을 달리는 것이다. 이제 그 시대를 지나 우주를 생각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하며, ‘상상 그 이상’을 통하여 누구도 꿈꾸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다. 역사는 말한다. 가야할 변화와 혁신은 아직 남아있다고.

2018-07-23

7월 학교 증후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학기말이다. 학기말 학교의 모습은 흡사 탄성을 잃어버려 탄력이라고는 전혀 없이 축 늘어진 스프링같다. 활발함과 싱그러움의 대표명사인 청소년! 하지만 학기말 시험에 모든 힘을 쏟은 학생들의 모습에서는 청소년다움을 찾아 볼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학기말을 힘들게 버티고 있는 학생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줄 교육 프로그램이 학교에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방학을 목전에 둔 교실 모습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시험이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시험 이후의 학교 수업은 무의미한 시간일 뿐이다. 그건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학기말 시험 이후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어쩌면 최고 휴양지인지도 모른다. 무더운 바깥세상을 잊게 해주는 시원한 에어컨과 매시간 수업 대신 제공되는 엄청난 영화들이 있으니까. 가마솥 더위, 살인 더위 등 맹위를 떨치기 시작한 무더위를 이르는 말이 심상치 않지만, 중고등학교 교실에 가보면 밖과는 너무도 다른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옷을 최대한 가볍게 하려고 하는데, 학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옷을 한 겹이라도 더 입으려고 한다. 이유는 추울 정도로 시원한 에어컨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온열질환 주의보가 내려진 것과 동시에 냉방병 환자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냉방병 환자 중 많은 수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유행성 눈병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아파했는데, 이제는 시험 긴장감에서 풀려난 아이들이 냉방병으로 고생하고 있다.시험만 끝나면 반복되는 무의미한 학교생활은 학생은 물론 교사들에게도 스트레스다. 법적 수업 시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잡아놓은 시간들, 물론 문제 풀이, 시험 점수 확인 등의 일들이 남아 있지만 이들 또한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자신의 시험 점수가 나와 있는 성적 일람표에 사인만 하면 학생들은 정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이런 학생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일선 학교에서 개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사들은 성적처리, 학교생활기록부 정리 등 다른 학기말 업무로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증후군(症候群, Syndrom)이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를 의학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몇 가지 증후가 늘 함께 나타나지만,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아니하거나 단일하지 아니한 병적인 증상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학기말만 되면 나타나는 여러 증후들이 있다. 분명 몇몇 가지들은 병적인 증상에 가깝다. 그것들을 모으면 아마도 ‘7월 학교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유종지미(有終之美)라는 말이 있다. 또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라는 속담도 있다. 이들 관용적 표현의 공통점은 마무리에 대한 중요성이다. 살인 더위가 전국을 끓게 하고 있지만 교실에서 겨울 체육복을 입고 여름잠을 자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위의 말들을 할 수 있을까?대한민국 학교 구성원들은 모두가 방학을 간절히 원한다. 시험지옥인 이 나라에서 방학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학교로부터의 해방(解放)시간이다. 이들은 방학만 생각하면서 의미없는 학기말 마지막 주를 버틴다. 버팀의 보상으로 교사들은 휴가를, 학생들은 학원 수강증을 선물로 받는다. 서로가 그리는 꿈이 다른 교사와 학생!그러니 이들에게 개학이 결코 반가울리 없다. 지금 교육 시스템에서는 새 학기 증후군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방학 동안 교사들은 휴가를 반납하고서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학생들을 좀 더 높이 뛰게하는 탄력 강한 스프링으로 만드는 방법을! 그렇지 않으면 공교육은 증후군으로 끝나지 않고 머지않아 없어지고 말 것이다.

2018-07-19

간직해야 할 기억에 대하여

▲ 박수철 서양화가오래전 모기업의 사보에 기고한 글이 생각난다. 어느날 글 쓰는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어릴 적 꿈을 가장 오래 간직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어릴 때의 꿈! 지금 우리는 그 꿈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꿈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호주머니 속에? 채워진 서랍 속에? 오래 전에 즐겨 읽었던 낡은 책갈피 속에? 아니면 당신의 가슴속 깊숙이 어딘가에 묻어두었는가? 그렇게라도 있다면, 있어서 어릴 때 아껴먹던 초콜릿처럼 그 꿈을 조금씩 먹을 수만 있다면 그래도 다행한 일 아닌가.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유년의 꿈을 잊었다. 시류처럼 흘러가는 저 강물에 던져버렸다. 정체불명의 아메리칸 스타일을 얻은 댓가로 저 높은 야망의 산 위에서 허공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경제 동물적 부(富)를 찾아 허덕인다. 우리는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렸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빨라지고, 분명해야 하며 내 것이 우선이어야 하는 이 각박한 시대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서로 뒤엉켜 휘돌며 아우성치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모 일간지에 실린 기사 내용을 보고는 기가 막혔다. ‘김치, 깍두기, 된장, 고추장, 밑반찬 공장제품 인기, 전통음식을 만들지 못하는 주부들이 날로 늘면서 이런 식품들이 인기를 모으며 이런 제품의 공장들이 국내에 100여 개의 이르고 있으며…’ 그래, 우리는 나를 버리고 내 것을 버리고 전통을 버렸다. 그런 전통을 이어가며 새롭게 맛을 내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인내하며 나보다 너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이웃과 함께 하는 정이 있었고, 어려웠지만 웃을 줄 알았던 신라인의 미소를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풍요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치 흡혈귀와도 같은 개인주의적 이기가 우리의 가슴을 모두 도려내어 남에게 내어줄 것 없는 빈 가슴만 남았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포항의 구 역사(驛舍)는 포항인들의 오랜 추억과 정서가 서려 있는 기억의 창고이다. 정치, 사회지도자들은 항상 “눈 앞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일을 해야 한다.” 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나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소중한 것들이 훼손되어 왔던가? 돌이킬 수도 없게. 포항의 구 역사가 이 지역의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 되었더라면, 그 역사는 우리 기억 속의 삶에 계속 살아서 포항인들에게 향수와 행복을 제공하는 샘물이 되고, 소중한 문화 인자로 자리하여 이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며 새로운 관광자원이 됐을 것이다. 그 옛날, 송도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아름드리 숲길도 그렇다. 오늘날까지 그 무성한 숲길이 남아있다면, 초록의 그늘을 지나 송도로 향하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지난날 우리는 녹슬지 않고 깨지지 않는 스텐그릇에 혹하여 숱한 도자기 그릇을 개 밥그릇으로 내던지기도 했다.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할 소중한 그 무엇을 물리적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정서적, 심리적으로 심도 있게 해석하며 우리의 기억 속에,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자. 궁극적으로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힘으로 살아갈 때가 더욱 많다. 사진작가인 후배에게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이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내가 무엇을 했다는 기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그 무엇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간직하는 어릴 때의 꿈처럼 말이다.

2018-07-18

워라밸 시대, 함께 열어가는 길

▲ 박은미경북여성정책개발원 정책개발실장노동과 삶에 대한 달라진 기준, 최근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 워라밸이라고 줄여서 부른다. 1988, 1994년에 태어나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경우, 조직보다 개인을 더 중요시하는 생각, 연봉이 낮아도 야근없는 직장을 선호, 퇴근 후는 내일을 위한 휴식이라기보다는 오늘의 행복을 찾는 시간으로 인식한다면 워라밸 세대라고 한다. 한편, 워라밸은 ‘Work and Life Balance’로 서구에서 50년 가까이 사용한 오래된 개념이다. 1970년대 말 영국에서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미국은 1986년부터 활용하였다. 정부는 인구정책 대안으로, 기업은 표준화된 노동을 우선시하는 전통적인 테일러리즘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하고 유연한 직장문화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개인은 쉼이 있는 삶의 질 제고로 활용되었다.이처럼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먼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의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6년 기준 2천69시간이다. OECD국가 중 멕시코와 함께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고 있으며, OECD 평균인 1천764시간보다 305시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한편, 2017년 노동 생산성은 한국(34.3달러)이 OECD 22개국 중 17위로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라는 위상이 무색할 만큼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은 편이다. 특히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1위 아일랜드(88달러)의 38%에 불과하고, 한국과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47.8달러)에 비해서도 13달러 이상 낮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인적자원계획, 업무프로세스를 재설계하여 불필요한 근로시간은 줄이면서 노동생산성은 올라갈 수 있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노동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을 가능하게 만들고, 줄인 노동시간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또한, 우리 노동시장에서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수용도는 아직 길이 먼 것 같다. 전국의 육아휴직 현황을 통해 남녀 고용환경을 파악해 보면, 2017년 육아휴직 신청자 중 여성은 7만8천80명으로 전체 육아휴직자(9만123명)의 86.6%, 남성은 1만2천43명으로 13.4%를 차지하고 있어 대부분 여성들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보건복지협회 분석결과에 의하면, 육아휴직의 최대 걸림돌은 재정적 어려움과 직장 동료 및 상사들의 눈치인 것으로 나타났다.남성은 인사고과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여성은 경력단절로 인한 경쟁력 저하를 가장 걱정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육아휴직 활용의 다수가 여성들인 이유는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전통적 성역할 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직장 내 승진에 양향을 미치기 때문에 남성의 육아휴직은 노동시장에서 여전히 수용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육아휴직제도는 선진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지만, 정작 맞벌이 부부는 마음 놓고 육아휴직을 갈 수 없는게 현실이다.이처럼 열악한 ‘워라밸’ 환경을 극복하려면 육아휴직으로 인한 공백 발생에 대비한 대체인력 확보, 경제적으로 어려운 작장 여성을 위한 아이돌봄서비스 확산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정책이행에 앞서 일생활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 확산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맞벌이 가정의 부모권과 노동권 균형을 위한 성 인지적 가족 정책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데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며, 일과 삶의 균형과 조화를 통해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전적인 여성가족정책 수립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18-07-17

아름다운 만남

▲ 박현주 위덕대 간호학과 교수임상실습을 마친 학생들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학생들은 갓 씻은 듯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로 앉아 담소를 나눴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까르르 웃어대며 서로에게 눈빛을 쏘아대는 모습이 신선했다. 졸업을 앞 둔 그들에게서 간호사의 모습이 느껴졌다. 순간 나의 마음속엔 간호사 시절, 고뇌하고 부딪치며 행복했던 추억들이 스쳐갔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함께 했던 응급실 근무시절 어느날 모처럼의 조용한 새벽을 맞으며 인턴과의 대화에서 나는 ‘아름다움은 눈에 있는 것같다’고 했다.모든 현상들이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사람들은 매일 눈으로 보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그리고 눈을 감으면 더 이상 볼 수도 느낄 수도 말 할 수도 없었다.미스코리아의 수려한 이목구비, 여행지에서 보았던 산과 들의 풍경, 미술관의 우아한 벽을 빛내고 있는 그림을 보고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하곤 했다.때로는 심금을 울리는 아리아의 선율, 무희의 섬세한 리듬에 취해서 낭만과 고상함을 꿈꾸기도 했다. 인턴은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노처녀의 가슴에 사랑이 찾아오고 있는 것같다’고 했다.그 때 정말로 사랑이 찾아오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 보여지는 것 이면의 의미를 찾고 싶었던 몸부림이 첫 봉오리를 맺고 있었던 것같다.매일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 그들의 가족들과 웃고 울고 다투다 보면 내 속의 기운이 쏙 빠져 달아나곤 했다.그렇게 힘 빠지는 날에는 동료들과 함께 바다가 보이는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바다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다.“난 결혼해서 딸 낳으면 절대 간호사 안 시킬거야.” “그래 험한 일 말고 고상한 일 시켜야지.” “우리 맨 날 피보고 살잖아.”사람들은 환자의 피, 고름을 닦아주고 대소변을 치우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참 험한 일을 한다고 했다. 아무나 못할 일을 한다고 했다. 또 우리가 우리를 일러 억척스럽다고 했다. ‘내 모습이 억척스러울까?’내 눈에는 열심히 일하는 간호사만 보였다. 간호사가 하는 일이 억척스러운지, 고상한지는 알지 못했다. 난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다.따뜻한 녹차로 더위를 식하며 우리는 간호현장의 질 향상을 위한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 학생들은 ‘환자의 더러워진 시트를 갈아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이 과연 전문간호사의 모습입니까’라고 물었다.나는 어떤 행위가 전문적인가 비전문적인가에 대한 판단을 하기에 앞서 환자를 도와주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생각해보라고 했다.학생들은 ‘나의 미소에 환자가 같이 웃어줄 때, 어떤 일이라도 나의 도움으로 환자가 좋아지고 고마워할 때’라고 대답했다. 가슴속에 촉촉히 물기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간호현장을 떠난 지 어언 십년, 나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내가 경험했던 현상, 생각과 느낌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학생들은 책속의 지식보다 살아있는 경험에 더욱 흥미를 보였다. 부끄럽지만 이제 내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의 의미에 눈뜨게 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같다.전문성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이 존재하지만 전문성을 빛나게 만드는 것은 진정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임하는 것이다.‘그것이면 족하다. 누군가를 도와줌에 있어 내 행위의 귀천을 먼저 따진다면 그건 진정한 도움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내가 이렇게 말하지도 않았건만 현명한 학생들은 이심전심으로 알아차리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움이란 존재하는 사물들이 자신의 고유한 모습대로 살아가는 모습이며 의연함일 것이다.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한줄기 비가 되어 목마른 대지의 갈증을 해소시켜 줬다. 또 다른 세계를 잉태하는 시간 속에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2018-07-16

교육감 취임사가 꼭 이루어지길!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아빠, 손가락이 이상해.” 아이의 중지 손가락에 물집이 가득 잡혀 있었다. “왜 이러니? 아프지 않니?” “괜찮아. 볼펜 잡을 때 좀 불편할 뿐이야. 나 이번에 꼭 목표한 점수 맞을 거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의 등보다 더 넓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아이는 독서실로 갔다.아이가 가고 필자는 교육부장관의 말을 보았다. “새로운 입시와 교육 개혁이 미래 혁신 교육의 과정이다. 중3 학생은 피해자가 아니라 미래혁신교육의 1세대가 된다.”이 글을 보면서 직접 묻고 싶어졌다. 과연 무엇이 혁신(革新)인지? 정부 이념대로 교육제도를 바꾸는 게 혁신인지? 보낼 수만 있다면 아이의 물집 잡힌 손가락과 무거운 가방, 그 가방에 눌려 비틀거리는 발자국을 장관에게 보내고 싶었다. 그것을 보고도 장관은 혁신 운운할 수 있을까?혁신 중독증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 교육은 또 시험 기간이다. 아이들은 시험지에 갇혀 숨을 못 쉬고 있다. 자유학기제와 자유학년제를 거친 아이들은 되살아난 시험 망령에 거의 숨을 멈추었다. 교육부 장관은 2022학년도 대입개편 공론화에 대해서 “결론 도출 과정이 매우 합리적일 것이며, 의사결정이 국민 의견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다. 중3 학생이 피해의식없이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도록 최선을 다해 서포트 하겠다.”라고 말했다.“자부심과 자긍심”라는 말에 필자는 물집 잡힌 손가락에 밴드를 붙이고 독서실로 간 아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온갖 비속어들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뱉지는 못했다. 자부심과 자긍심은 대한민국 학생들이 갖는 것이 아니라, 입시 제도를 정부 이념대로 바꾸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교육부 장관의 자기만족에서 나온 자기 칭찬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상 어떤 단체보다 독립적이어야 할 교육, 하지만 정치 볼모가 된 대한민국 교육은 집권당의 정치 이념을 선전하는 정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을 이번 정부를 통해 확실히 알았다.교육부는 이번 달과 다음 달을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인 사학비리 척결을 위한 사학비리 집중 점검 기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사람들 은 말한다.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사학이 비리 집단이냐고, 왜 국립과 공립 비리는 말하지 않느냐고. 또 누구는 소리 높여 말한다. “무슨 놈의 정부가 모든 것을 정부 손아귀에서 주무르려고만 하는지 과거를 지독하게 캘 때부터 알아봤다. 나는 차라리 북쪽에 퍼주는 것보다 4대강 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세금을 얼마나 더 거둘지.”아무리 정치 시소가 무너졌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독불장군격으로 하다가는 거센 역풍이 불 것이라는 것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 촛불을 든 사람만이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더 많은 국민들이 과거 타령만하는 지금의 정부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방선거 승리에 도취되어 안하무인이 된 정부는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태풍 때문에 취임식을 못했지만 그래도 지자체 단체장들은 취임사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정식 임기를 시작했다. 희망이 부재한 이 나라 교육에 그나마 희망을 찾기 위해 필자는 교육감들의 취임사를 읽어보았다. 그 중에 “경북교육이 대한민국 교육의 표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취임 소회를 밝힌 경북 교육감 취임사 중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부분을 인용한다.“출발선이 평등하도록 조건이나 환경으로 인해 교육적 소외가 일어나지 않도록 교육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 교육기회취약 계층의 교육비 부담을 최소화하는 공공성 강화에 노력하겠습니다.” 교육감은 아실 것이다. 현재 최고의 교육적 소외를 받고 있는 곳이 대안학교라는 것을!

2018-07-12

스마트시티, 좋은 스마트? 나쁜 스마트?

▲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신사업이나 창업에 관심이 있다면 Quirky라는 기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Quirky는 대중으로부터 제공받은 아이디어를 완성도 높은 제품으로 설계, 제조, 판매하는 사업모델을 들고, ‘꿈 공장’, ‘제조업의 미래’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장한 ‘소셜 제품개발 플랫폼’기업이었다. 창업 초기부터 185백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단숨에 ‘잘나가는 스타트업’의 아이콘이 되었다. 투자에 힘입어 단기간 내에 완성도 높은 다양한 신개념 제품들을 쏟아냈다. 특히, Egg Minder, Pivot Power Genius, Porkfolio 등 당시 최고의 화두였던 IoT 기술기반의 참신한 ‘스마트’ 제품들을 대거 출시했다.세계를 열광시킨 혁신적 사업모델에도 불구, 그 이름처럼 ‘기이’하기까지 했던 Quirky의 스마트 제품들은 정작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신기하기는 했지만 소소한 편의에 그쳤고, 그 제품이 있다고 사람들의 삶이 달라지는 대단한 차이는 아니었다. 일부 제품은 필요성을 제대로 짚었지만 특수한 상황, 극히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먹힌다는 게 문제였다. 결국 Quirky는 2015년 창업 6년만에 파산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한편 비슷한 시기에 자동차는 인공지능과 IoT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스마트화되었다. 야간 주행 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전조등을 상향으로 켜고 달리다 앞차가 나타나면 조절하곤 하는데, 이것을 자동으로 해주는 지능화된 전조등이라든가, 혹은 차간 거리나 차선을 알아서 유지해 주어 운전자의 졸음이나 부주의로 인한 사고를 방지하는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은 자율 주행차에 대한 사회적 논란 속에서도 무리없이 받아들여진 좋은 스마트의 사례로 꼽힌다.같은 스마트 제품 중에도 소비자에게 외면받은 ‘나쁜’ 제품과 잘 받아들여진 ‘좋은’ 제품이 따로 있듯이, 스마트시티에도 좋은 스마트시티와 나쁜 스마트시티가 따로 있다.CCTV와 관제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스마트시티 1세대는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격으로, 좋은 스마트시티와는 거리가 컸다. 보안, 방범, 방재 등 도시 모니터링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일반인들이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시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행정, 치안 등 도시 관리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스마트시티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불러온 원인이 여기 있지 않을까 싶다.도시 플랫폼에 운영 효율 외에 삶의 질을 높인다는 목적이 추가되면서 스마트시티는 좀 더 생활 가까운 곳을 공략하고 있다. Quirky의 기이한 제품들처럼 IoT와 인공지능이 적용된 쓰레기통, 가로등, 신호등, 도로 등 도시를 구성하는 장치와 시설들이 하나씩 ‘스마트’ 버전으로 바뀌어 간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스마트시티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Quirky 제품들처럼 시민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2022년에는 지능과 소통능력을 가진 디바이스의 수가 150억 개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아이를 찾아와 괴롭히던 영혼들처럼, 주변의 사물들이 원하지도 않는 나에게 뭔가 말하려 덤비는 모습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스마트시티를 만들려는 지자체와 기업들은 Quirky의 우를 범하지 않고, 지능형 전조등이나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처럼 사람에게 도움되는 스마트가 될 수 있도록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 중심의 시민체감형 스마트시티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전략이 반갑다.그런데 스마트해진 도시가 자동차와 협력해서 졸음 운전자를 돕는다면, 고속도로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깜빡 졸음! 번쩍 저승!’ 같은 문구를 못 보게 된다는 점이 좀 아쉬울 것 같긴 하다.

2018-07-11

책 읽어주는 선생님

▲ 김현욱 시인·포항 흥해남산초 교사초, 중, 고등학교 12년 동안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독서교육 컨설팅을 나갈 때마다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에게 “학창시절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 분?”하고 물어본다. 안타깝게도 그런 축복을 받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얼마전에 독서컨설팅을 위해 경주 용강초등학교 선생님 40여 분을 만났다. 운 좋게도 학창 시절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 축복받은 분이 거기 있었다.고등학교 때 은사님이 꾸준히 책을 읽어주셨다며, 자신도 지금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고 했다.필자도 중학교 1학년 때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 사자머리를 한 씩씩한 국어선생님이었는데 범우사에 나온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을 수업시간마다 읽어주셨다. 하늘(?)같은 선생님이 책 읽어주는 게 하도 신기해서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도대체 시가 뭔데 저렇게 행복해할까, 시집이 뭔데 저토록 재미있는 사연이 많을까, 몹시 궁금했다.남빈사거리 학원사에 들러 시집을 꺼내 보거나 대학노트에 시 비슷한 것을 끄적거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런 습관들이 훗날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이고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중학교 때 만난 그 선생님의 책 읽어주기가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용강초등학교에서 만난 그 선생님도 책 읽어주는 은사님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반짝거리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가 거기서부터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1979년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출간한 짐 트렐리즈는 선생님 대신에 어린 시절 책을 읽어 준 아버지가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추억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자녀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많은 아이가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가 부모와 교사에게 있음을 깨달은 트렐리즈는 자비로 이 책을 냈다. 그 후 트렐리즈의 책은 스테디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의 교실 풍경까지 바꿔 놓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도 2만여 개가 넘는 학교가 매일 아침을 책 읽기로 시작하고 있다.한국의 교실 풍경도 올해부터는 달라질 전망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국어 교과서에 ‘독서 단원’이 신설된 것이다. ‘독서에 관해서’가 아니라 ‘독서’ 그 자체를 위한 수업 시간이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되었다.‘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올 2018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 고등학교 1학년, 2019년에는 초등학교 5, 6학년과 중, 고등학교 2학년, 2020년에는 중, 고등학교 3학년이 적용된다. 초등 3, 4학년은 한 학기에 최소 8시간 이상, 초등 5, 6학년은 최소 10시간 이상, 중, 고등학교는 자율적으로 편성하도록 했다. 교과서에 실린 글 일부가 아닌 책 한 권, 작품 전체를 온전히 읽는 것이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주요 내용이다.우리 아이들은 교실에서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천만다행이다.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끼칠 영향은 짐작하기도 어렵다.좋은 책을 꾸준히 읽어주고 또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책 읽기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나누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사족이지만, 혹시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책 읽히는 시간으로 오해하는 선생님이 부디 없길 바란다.아이들에게 꾸준히 책 읽어주는 선생님과, “얘들아, 책 읽어라!” 말만 하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 서로 다르게 저장되기 마련이니까.

2018-07-10

대통령, 도지사 그리고 성인지

▲ 금박은주포항여성회장얼마 전 교도소 재소자를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실시했다.교육을 시작하면서 ‘성인지가 뭘까요? 라는 질문을 했더니 한 재소자가 “성인들이 보는 잡지?” 라고 대답을 했다. 이런 답변은 교도소뿐만 아니다. 지난해 모 정당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한 후보에게 성인지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잘 모르겠다고 답변을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한 신문사에서 “○○○후보는 성인잡지에 대한 정책이 부족하다”고 보도했다. 정치인, 기자들 모두 몰성적인 역사적인 순간이었다.성인지(性認知)는 ‘오랜 관습으로 잘못된 남성중심 문화를 제대로 인식해 올바른 성인식을 가지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젠더 감수성, 성차별에 대한 민감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좀 더 쉬운 예를 들면 농기계가 표준 남성의 체형을 기준으로 하다 보면, 여성 농업인들이 사용하기 어렵다. 신약 개발 시 임상 실험에서 남성의 비율이 높으면, 신체적 차이가 있는 여성에게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성별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젠더 감수성이 결핍된 것이다.그렇다면 성인지적 관점을 도입한 사례를 본다면, 남녀의 훈장 크기가 달랐던 것을 같은 크기로 만든 경우, 국방부에서 육아휴직을 남성군인에겐 1년 이내, 여성군인에겐 3년 이내로 둔 것을 성별구분 없이 ‘자녀 1명당 3년 이내’로 개정한 것, 여성문화회관이 남성의 참여를 제한하기 때문에 이름을 변경한 경우도 있고, 남성 수강생을 위한 야간강좌 개설이나 남성 수강생 할당제를 도입한 사례가 예가 될 수 있다.위와 같은 성인지 사례를 언급한 이유는 바로 지금부터다. 지난 토요일 서울 혜화역에 ‘불법 촬영, 편파 수사를 규탄하는 3차 집회’가 열렸는데, 무려 6만 명의 여성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번 집회에선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표방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문제가 됐다.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여성들이 주장하는 편파 수사는 없다고 규정하면서 여성들의 원한이나 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여성들이 전설의 고향에 출연하는 귀신은 아니지 않는가? 단순히 여성들의 원과 한을 품고 6만 명이 집회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왜 여성들이 편파수사라 하는 지, 왜 여성들은 불법 촬영에 대한 일상적인 공포를 느끼는 사회에서 살아야만 하는 지 그 입장이 되어 생각해주시길 당부드린다.또 한분 더 계신다. 얼마 전 이철우 신임 경북도지사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이기적이며, 새마을운동처럼 국민들의 정신운동을 실시하겠다”며 저출산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저출산 문제를 단순히 결혼을 하지 않은 이기적 개인의 문제로만 본다면, 결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높은 집값과 물가, 불안정한 고용시장, 청년 실업”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청춘, 결혼을 해도 아이를 출산하지 않은 청춘들의 삶은 현재 진행형이다. 결혼을 단지 이기적, 이타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도민들의 삶의 고민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성인지 교육을 하다보면, 여전히 어려워하는 걸 알 수 있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우리는 한 번도 성인지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아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대통령뿐만 아니라 지자체장까지도 성차별적 발언을 하면서 그것이 왜 문제인지, 그것이 왜 지금에 와서 문제가 되는지 인지를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2015년부터 전국 광역 시도 가운데 성평등 지수 최하위를 기록하는 경북도의 성인지 향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고 해결해야 할 숙제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2018-07-09

어느 시인의 말처럼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나뭇잎 짙어지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6월)이 가고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아파치 족, 7월)이 열렸다. 태풍에 호들갑을 떠는 인간들과는 달리 의연한 자연은 겸허히 태풍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힘, 자연이 유구한 것은 바로 이 수용(受容)의 힘 때문이다. 수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정(認定)해야 한다. 서로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인간과는 달리 자연은 서로를 인정한다. 그러기에 들판에서는 개망초와 달맞이, 그리고 소리쟁이가 어울려 자란다.인정할 줄 아는 힘 안에는 양보와 나눔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때가 되면 다음 주자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렇다고 인간처럼 영원히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애기똥풀이 개망초에게 자리를 내어주듯 개망초는 또 달맞이꽃을 위해 기쁘게 진다. 그렇게 한 바퀴가 돌면 다시 애기똥풀이 한 세상을 만든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다.뭔가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말한다. 순리대로 하라고! 그럼 순리(順理)란 무엇인가? 순리의 사전적 의미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이다. 순리처럼 우리말은 사전을 볼 때 더 답답할 때가 많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순리의 뜻을 찾다가 그나마 손에 잡히는 설명을 찾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하고, 절대 해서 안 되는 일은 마땅히 하지 않는 것”순리에 대한 설명을 수십 번 읽으면서 필자는 세상이 혼돈스러운 이유를 알았다. 그 이유는 세상을 이끄는 단어인 순리의 뜻을 세상 사람들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관련된 용어들이 추상적인 것은 그만큼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할 줄 모르는 인간들은 세상을 자기 식으로 정의하려는 욕심을 부린다. 그 욕심이 억지를 만들고, 억지는 또 말도 안 되는 오류를 낳고, 그런 오류들이 세상을 혼돈스럽게 만든다. 필자부터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무엇이든 정의부터 하고 보는 것은 필자 또한 세상을 혼돈스럽게 만드는 오류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인류의 발전은 오류에서 시작됐다고 인류를 위한 변명을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오류는 오류일 뿐이라는 것이다.지금의 삶이 조금은 편해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범하고 있는 오류들의 역습에 병들고 있다. 걱정은 그 역습의 강도가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미래학자들 중 인류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킬러 로봇 방치 시 인류 멸망,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렬할 것,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빙하가 녹아 지구에 재앙이 닥칠 것!” 미래학자의 경고 중 어느 하나 비현실적인 것이 없다. 그리고 결코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어쩌면 눈뜬 채 지구 멸망을 지켜봐야 하는 마지막 인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최대한 빨리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할 것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이탈리아 시인 체사레 파베세는 “이 세상 유일한 즐거움은 시작으로부터 온다. 시작은 사는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삶은 매 순간 시작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비록 태풍 때문에 취임식은 열리지 못했지만, 민선 7기가 출범했다. 분명 새로운 시작이다. 시인의 말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민선 7기의 주인공들은 “이 세상 유일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처럼 특정인과 특정 정당의 힘만 믿고, 그 정당의 논리대로 지자체를 운영하는 오류를 범했다가는 미래학자들이 보내는 경고 이상의 엄청난 역습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지자체 운영에 자연의 순리가 가미되어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사는 것이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날이 조속히 오길 기원해본다.

2018-07-05

스마트시티란?

▲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스마트시티(Smart City)’에 관해 들어본 적 있는지 물으면, 이제 어느 강의에서나 제법 많은 분들이 손을 들어 보여 주신다. 스마트시티의 정의를 묻는 질문에는 ‘도시가 똑똑해 지는 것’ 혹은 ‘도시에서 차나 건물 같은 시설들을 모두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 등의 답변이 대세다. 나는 또 ‘스마트시티가 되면 좋겠는지’를 묻는다. 수줍게 미소만 지어 보일 뿐, 아까처럼 많은 손이 보이지는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특징인 ‘초연결성’과 ‘초지능화’가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것이 스마트시티이다. 4차 산업혁명과 스마트시티는 산업계에서는 오히려 과열이 우려될 정도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 바쁜 일상을 보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관심도가 ‘스마트폰’ 하나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학술적 의미에서 스마트시티는 도시 공간과 시설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Big Data), 클라우드(Cloud), 로봇(Robot) 등의 정보통신기술(ICT)과, 신소재, 신재생에너지 등의 친환경기술 등이 융복합적으로 활용돼, 행정, 교통, 의료, 교육, 유통 등 산업 전반에서 보다 지능화된 도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지능형 ICT 기술의 도움으로 우리 일상생활 전반이 더 편리하고 행복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시티는 우리가 사는 도시, 생활 가장 가까이에서 나타나게 될 변화이며, 지금의 스마트폰만큼이나 중요해질 미래인 만큼, 모두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라 할 수 있다.사용자 경험을 연구하는 내가 스마트시티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스마트시티가 초기의 시행착오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람 중심의 지능형 서비스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스마트시티는 ICT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환경오염, 재난재해, 범죄, 교통난 등 우리 한계를 넘어서는 고질적인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의 운영 효율,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을 높인다. 도시 생활 곳곳에 사람을 배려한 요소들이 실제 이용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영되면서, 도시민이 느끼는 삶의 질이 높아진다.스마트시티는 나라에서 알아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판을 깔고 데이터를 열어 주고 시민과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면 된다. 일부 공기업, 대기업에만 사업기회가 몰리는 일도 없다.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다면 직접 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 주체가 될 수 있다. 도시혁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업들이 생기고, 생태계를 이루고,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이쯤 되면 내가 스마트시티를 무슨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을까 싶다. 이건 내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가 스마트시티에 바라는 기대치가 그렇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둔다.우리 지역의 스마트시티 연구를 진행하면서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경북에는 큰 도시도 없는데 스마트시티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포항이 ○○○ 같은 큰 도시를 어떻게 이길 수 있죠?”경북, 포항에는 아직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공 스토리나 차별점으로 내세울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마트시티 구축 노력을 국내외 유명 도시들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해 우열을 가려 묻는 것은 어리석다. 다른 도시들과의 비교나 경쟁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현역 시절의 김연아 선수처럼 과거의 자기 자신만이 유일한 경쟁 상대가 되어 스스로를 완성하는 데 애써야 한다는 의미다.

2018-07-04

한국 전통미술의 보고(寶庫) 간송미술관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몇 해 전 TV드라마에서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1758∼미상)을 주제로 방영된 ‘바람의 화원’은 그가 여자였을지도 모른다는 가설로 조선시대 궁중화가인 화원(畵員)들의 삶과 정신을 재미있게 묘사한 적이 있었다. 그의 대표작 ‘미인도(美人圖)’를 둘러싼 이런 저런 에피소드는 드라마의 묘미와 매력을 자아내는데 손색이 없었으며, 조선시대 화가들과 회화의 우수성을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일반인 대부분은 ‘미인도’와 ‘혜원전신첩’이 조선시대 풍속화가로 유명했던 혜원 신윤복의 작품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기와집 한 채가 1천원이던 시절 5천원으로 그림 한 장을 사고, 2만원으로 도자기 한 점을 구입했던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1962)이 건립한 간송미술관은 한국 전통미술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국내 최고의 사립미술관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등 소중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심사임당 등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화가들의 대표작이 소장되어 있다.대구미술관에서는 간송미술관 개관 80주년을 맞아 간송미술관 주요 소장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획전을 마련해 대구·경북 미술애호가들과 일반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38명의 화가들이 남긴 명품 회화 100점을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이번 특별전은 간송미술관의 첫 지방외유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14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관기념전으로 첫 외유를 가졌던 ‘간송문화전‘에서 출품된 60여 점의 작품 보험가액이 1조5천원억원에 달했고, 보험료는 10억원이었다 하니 이번 대구 특별전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이처럼 대구 특별전이 남다른 이유는 또 하나 있다. 현재 대구시는 대구미술관 인근에 간송미술관 대구분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의 당위성을 먼저 살펴보면 인문·환경적 관점에서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주권수호운동의 발상지와 간송의 정신인 ‘문화보국(文化保國)’이 어느 지역보다 근대문화유산을 지키고 소중하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3대문화권(신라-경주, 가야-고령, 유교-안동)이 융합된 곳이며, 근·현대 문화예술계 유명 인사의 배출을 통해 한국 문화의 유람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생활환경 관점에서 보면 1천만 배후 인구를 가진 영남권 교육·생활 중심도시라는 점과 고속도로, KTX, 철도, 공항 등이 입지한 영남내륙의 교통 요충지라는 점은 미술관의 접근성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처럼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을 통해 대구는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설을 보유한 ‘월드 클래스 문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대구미술관과 연계된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콘텐츠 공유가 주는 시민 자긍심을 고취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더불어 유네스코 선정 음악도시에 이어 시각예술분야 협력강화로 지역미술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모멘텀으로 활용해 문화관광·여가가 공존하는 국가적 문화명소로 개발하려는 목적도 내재되어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문화적 대중성과 공공성이 대구간송미술관을 통해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대구는 또 한 번 문화·예술의 중심도시로 도약해 나갈 것이다.

2018-07-03

지역경제의 ‘질(質)로의 도피’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요국의 환율은 물론 글로벌 기업의 주가까지 변동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와같은 현상은 당연히 미국과 중국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2강이 맞붙는 무역 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국제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가들은 이처럼 세계적인 이슈나 이벤트들이 발생할 때마다 기존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산 가운데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자산을 매각하고 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여겨지는 엔화나 미국 국채 등으로 교체 구매하며 보유자산의 구성비중 즉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 안전자산이라 여겨지는 엔화에 대한 시장의 선호는 엔화가치의 강세(엔화환율의 하락)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원화환율을 비롯한 각국 통화의 환율까지도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을 흔히 시장에서는 ‘질로의 도피(Flight to Quality)’라고 부른다.그뿐만이 아니다. 주요국 주식시장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주가도 출렁이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산 자동차에 수입관세를 부과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유럽 자동차회사들은 미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미국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보복관세를 부과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BMW, 폭스바겐, 다임러 등이 중심인 유럽의 자동차주가지수는 7개월만의 최저가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특히 전 세계 자동차판매량의 20%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독일 BMW의 주가는 최근들어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내기도 하였다.이처럼 개방경제체제하에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의 경우 특수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자국의 통화가치는 물론 특정 산업·상품의 가치에 대한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을 늘 안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며 포항지역의 경제계도 깊이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전세계 조강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과잉생산에 따른 여파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강화에 따른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폭탄과 쿼터제한이라는 카운터 펀치를 크게 맞은 상황이다.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가들이 불안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옮겨가는 ‘질로의 도피’처럼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장기적인 ‘질(質)’적인 경쟁력의 확보보다는 일시적인 임기응변으로 ‘양(量)’적으로 승부하는 일종의 ‘가격으로의 도피’를 선택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후발국인 중국이 물량공세에 나서더라도 독보적인 품질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제품을 갖춘 기업은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정국가가 높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대체 불가한 ‘유일한 제품’,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면 해당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관세정책을 반대할 것임에 틀림없다.여하튼 문제는 지금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은 마무리 단계가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앞으로 유럽, 일본까지 가세하는 세계적인 무역전쟁으로 확산될지 아니면 찻잔속의 태풍처럼 순식간에 진정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새로운 국가 간의 무역전쟁의 발발이나 중국 이외에도 강력한 후발경쟁국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도 유의해야만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지역경제에 가장 안정적인 ‘질로의 도피’란 무엇일까? 비록 단시간 내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철강수요산업의 중장기적인 트렌드에 대한 깊이있는 조사연구와 더불어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철강제품에 대한 독보적인 기술력의 확보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수출제품의 포트폴리오를 갖추어나가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이야 말로 지역경제가 어떠한 주변여건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전할 수 있는 진정한 ‘질로의 도피’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2018-07-02

세기의 축사(祝辭)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이 선생, 교육부 장관이 누구시지? 교육부 장관이 있기는 하시나? 하마터면 실종 신고할 뻔 했다.” 어느 지인의 촌철살인(寸鐵殺人)에 잠시 흩어졌던 모임 자리의 분위기가 교육 이야기로 모아졌다. “대입, 앞으로 어떻게 되노?” 중학교 자녀를 둔 회원이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졌다. “장관이라는 사람이 앞장서서 교육을 흔들고 있으니 나라 교육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돈이라도 있으면 애들을 위해서 이민이라도 가고 싶다.” 이민이라는 말에 여기저기서 공감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일제히 현 정부의 즉흥적인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적폐를 없앨 것이 아니라 교육부를 없애야 되는 게 아는지 모르겠다.” 말들이 심상치가 않았다. 뭔가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필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인 것같다. 선거에 이겼다고 또 얼마나 더 기고만장해서 설칠지! 다른 건 몰라도 교육 정책만큼은 즉흥적으로 안 바꿨으면 좋겠다. 교육이 장난도 아니고 교육조차 자기들 이념대로 바꾸려고 하니! 긍긍업업(兢兢業業·늘 조심하여 공경하고 삼가다)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리고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정말 한 순간인데, 청와대도 정부도 벌써 옛날을 잊은 것같다.”“남북(南北) 관계는 좋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남남(南南) 관계는 말 그대로 남남이 된 것같다.” “남남이면 다행이지 내가 보기엔 원수가 따로 없다. 남남 간의 갈등을 자신들의 선거 승리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망조도 이런 망조가 어디 있나?” “희망 없는 정치 이야기 그만하고, 뭐 재미난 이야기 없나? 이 선생, 새 교육감께서 지원 좀 해 주신다고 하더나?” 이 물음에 대한 대답도 필자는 하지 못했다. 대신 교육감 당선인의 당선 현수막 문구를 책 읽듯이 말 해줬다. “부모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책임지겠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안다면 대안학교도 곧 지원 해주겠네. 지원되면 바로 이야기해라. 내가 교육감 잘 하신다고 오만 데 이야기할 테니까.” “저도 꼭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라고는 말했지만 필자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지난 주 금요일 산자연중학교 교실 완공 기념식에는 교육청 관계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필자는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이다.교육청 사람들 대신 산자연중학교 교실 완공 기념식에는 마을 주민들이 가득 자리를 했다. 일반 학교와 다른 것은 하객뿐이 아니었다. 축사하는 사람도 달랐다. 교육청만 제외하고 정관계 인사들도 많이 참석했지만, 축사를 한 사람은 바로 마을 주민이었다.축사하는 사람을 소개했을 때 장내는 잠시 술렁거렸다. 하지만 “축사를 해 주시는 조희맹 선생님은 마을 주민으로 매주 목요일 아침 조회 시간에 학생들에게 인성 수업을 해주시는 마을 인성 전담 교사이십니다.”라는 필자의 안내에 장내는 더 크게 술렁였다. 그리고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혹시나 교육청 관계자가 축사 내용을 궁금해 할까봐 요약해서 전한다.“우리 마을의 얼굴인 산자연중학교 교실 신증축 공사가 무사히 완공되어 더욱 아름다운 학교로 변모됐기에 우리 마을 주민 모두와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중략) 이 아름다운 학교에서 각자의 재능을 키워가는 학생 여러분! 미래를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시기 바라며 아울러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아이들이 참되고 훌륭한 인재가 되도록 지도하시는데 노고를 아끼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을 주민들도 이 학교가 더 나은 학습장이 되도록 미력이나마 함께 할 것입니다.”축사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필자 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로 유명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보다 더 크게 감명을 받았다. 만약 교육부 장관이나 교육감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2018-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