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TV드라마에서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1758∼미상)을 주제로 방영된 ‘바람의 화원’은 그가 여자였을지도 모른다는 가설로 조선시대 궁중화가인 화원(畵員)들의 삶과 정신을 재미있게 묘사한 적이 있었다. 그의 대표작 ‘미인도(美人圖)’를 둘러싼 이런 저런 에피소드는 드라마의 묘미와 매력을 자아내는데 손색이 없었으며, 조선시대 화가들과 회화의 우수성을 한눈에 가늠해 볼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일반인 대부분은 ‘미인도’와 ‘혜원전신첩’이 조선시대 풍속화가로 유명했던 혜원 신윤복의 작품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기와집 한 채가 1천원이던 시절 5천원으로 그림 한 장을 사고, 2만원으로 도자기 한 점을 구입했던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1962)이 건립한 간송미술관은 한국 전통미술의 보고(寶庫)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국내 최고의 사립미술관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국보 12점과 보물 10점 등 소중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으며,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심사임당 등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화가들의 대표작이 소장되어 있다.
대구미술관에서는 간송미술관 개관 80주년을 맞아 간송미술관 주요 소장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획전을 마련해 대구·경북 미술애호가들과 일반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38명의 화가들이 남긴 명품 회화 100점을 통해 우리 역사와 문화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이번 특별전은 간송미술관의 첫 지방외유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14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관기념전으로 첫 외유를 가졌던 ‘간송문화전‘에서 출품된 60여 점의 작품 보험가액이 1조5천원억원에 달했고, 보험료는 10억원이었다 하니 이번 대구 특별전의 규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처럼 대구 특별전이 남다른 이유는 또 하나 있다. 현재 대구시는 대구미술관 인근에 간송미술관 대구분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의 당위성을 먼저 살펴보면 인문·환경적 관점에서 국채보상운동이라는 주권수호운동의 발상지와 간송의 정신인 ‘문화보국(文化保國)’이 어느 지역보다 근대문화유산을 지키고 소중하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3대문화권(신라-경주, 가야-고령, 유교-안동)이 융합된 곳이며, 근·현대 문화예술계 유명 인사의 배출을 통해 한국 문화의 유람이라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생활환경 관점에서 보면 1천만 배후 인구를 가진 영남권 교육·생활 중심도시라는 점과 고속도로, KTX, 철도, 공항 등이 입지한 영남내륙의 교통 요충지라는 점은 미술관의 접근성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처럼 대구간송미술관 건립을 통해 대구는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설을 보유한 ‘월드 클래스 문화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대구미술관과 연계된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콘텐츠 공유가 주는 시민 자긍심을 고취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더불어 유네스코 선정 음악도시에 이어 시각예술분야 협력강화로 지역미술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모멘텀으로 활용해 문화관광·여가가 공존하는 국가적 문화명소로 개발하려는 목적도 내재되어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문화적 대중성과 공공성이 대구간송미술관을 통해 조화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대구는 또 한 번 문화·예술의 중심도시로 도약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