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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경제의 ‘질(質)로의 도피’

등록일 2018-07-02 21:26 게재일 2018-07-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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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 주요국의 환율은 물론 글로벌 기업의 주가까지 변동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와같은 현상은 당연히 미국과 중국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2강이 맞붙는 무역 전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에 국제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가들은 이처럼 세계적인 이슈나 이벤트들이 발생할 때마다 기존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산 가운데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자산을 매각하고 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여겨지는 엔화나 미국 국채 등으로 교체 구매하며 보유자산의 구성비중 즉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 안전자산이라 여겨지는 엔화에 대한 시장의 선호는 엔화가치의 강세(엔화환율의 하락)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의 원화환율을 비롯한 각국 통화의 환율까지도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을 흔히 시장에서는 ‘질로의 도피(Flight to Quality)’라고 부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요국 주식시장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주가도 출렁이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산 자동차에 수입관세를 부과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유럽 자동차회사들은 미국에 생산공장을 두고 미국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중국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보복관세를 부과하게 될 것을 우려하여 BMW, 폭스바겐, 다임러 등이 중심인 유럽의 자동차주가지수는 7개월만의 최저가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특히 전 세계 자동차판매량의 20%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독일 BMW의 주가는 최근들어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개방경제체제하에서는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의 경우 특수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자국의 통화가치는 물론 특정 산업·상품의 가치에 대한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을 늘 안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며 포항지역의 경제계도 깊이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전세계 조강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과잉생산에 따른 여파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강화에 따른 철강제품에 대한 관세폭탄과 쿼터제한이라는 카운터 펀치를 크게 맞은 상황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투자가들이 불안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안전자산으로 옮겨가는 ‘질로의 도피’처럼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장기적인 ‘질(質)’적인 경쟁력의 확보보다는 일시적인 임기응변으로 ‘양(量)’적으로 승부하는 일종의 ‘가격으로의 도피’를 선택해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후발국인 중국이 물량공세에 나서더라도 독보적인 품질경쟁력을 갖춘 고부가가치 제품을 갖춘 기업은 불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정국가가 높은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대체 불가한 ‘유일한 제품’,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라면 해당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관세정책을 반대할 것임에 틀림없다.

여하튼 문제는 지금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은 마무리 단계가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앞으로 유럽, 일본까지 가세하는 세계적인 무역전쟁으로 확산될지 아니면 찻잔속의 태풍처럼 순식간에 진정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새로운 국가 간의 무역전쟁의 발발이나 중국 이외에도 강력한 후발경쟁국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도 유의해야만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역경제에 가장 안정적인 ‘질로의 도피’란 무엇일까? 비록 단시간 내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철강수요산업의 중장기적인 트렌드에 대한 깊이있는 조사연구와 더불어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철강제품에 대한 독보적인 기술력의 확보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수출제품의 포트폴리오를 갖추어나가는 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이야 말로 지역경제가 어떠한 주변여건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전할 수 있는 진정한 ‘질로의 도피’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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