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중, 고등학교 12년 동안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독서교육 컨설팅을 나갈 때마다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에게 “학창시절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 분?”하고 물어본다. 안타깝게도 그런 축복을 받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얼마전에 독서컨설팅을 위해 경주 용강초등학교 선생님 40여 분을 만났다. 운 좋게도 학창 시절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 축복받은 분이 거기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은사님이 꾸준히 책을 읽어주셨다며, 자신도 지금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고 했다.
필자도 중학교 1학년 때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 사자머리를 한 씩씩한 국어선생님이었는데 범우사에 나온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을 수업시간마다 읽어주셨다. 하늘(?)같은 선생님이 책 읽어주는 게 하도 신기해서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도대체 시가 뭔데 저렇게 행복해할까, 시집이 뭔데 저토록 재미있는 사연이 많을까, 몹시 궁금했다.
남빈사거리 학원사에 들러 시집을 꺼내 보거나 대학노트에 시 비슷한 것을 끄적거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런 습관들이 훗날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이고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중학교 때 만난 그 선생님의 책 읽어주기가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용강초등학교에서 만난 그 선생님도 책 읽어주는 은사님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반짝거리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를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가 거기서부터 나오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1979년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출간한 짐 트렐리즈는 선생님 대신에 어린 시절 책을 읽어 준 아버지가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추억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자녀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 주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많은 아이가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가 부모와 교사에게 있음을 깨달은 트렐리즈는 자비로 이 책을 냈다. 그 후 트렐리즈의 책은 스테디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의 교실 풍경까지 바꿔 놓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도 2만여 개가 넘는 학교가 매일 아침을 책 읽기로 시작하고 있다.
한국의 교실 풍경도 올해부터는 달라질 전망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 국어 교과서에 ‘독서 단원’이 신설된 것이다. ‘독서에 관해서’가 아니라 ‘독서’ 그 자체를 위한 수업 시간이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되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올 2018년부터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 고등학교 1학년, 2019년에는 초등학교 5, 6학년과 중, 고등학교 2학년, 2020년에는 중, 고등학교 3학년이 적용된다. 초등 3, 4학년은 한 학기에 최소 8시간 이상, 초등 5, 6학년은 최소 10시간 이상, 중, 고등학교는 자율적으로 편성하도록 했다. 교과서에 실린 글 일부가 아닌 책 한 권, 작품 전체를 온전히 읽는 것이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주요 내용이다.
우리 아이들은 교실에서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천만다행이다. 책 읽어주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끼칠 영향은 짐작하기도 어렵다.
좋은 책을 꾸준히 읽어주고 또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서 책 읽기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나누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사족이지만, 혹시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책 읽히는 시간으로 오해하는 선생님이 부디 없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꾸준히 책 읽어주는 선생님과, “얘들아, 책 읽어라!” 말만 하는 선생님은 아이들의 기억 속에 서로 다르게 저장되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