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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우리 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 김경준포스텍 정보통신연구소 연구부교수미래에는 어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갈까? 최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해오던 수능 개편을 1년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그 동안 개편을 위한 과정들이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번의 유예를 통해 ‘국민의 우려와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 충분한 소통과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는 것이 발표의 주 요지이다.전 세계적으로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별 산업 환경과 지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우수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은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므로 백년을 내다보는 큰 계획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하지 않던가. 과거와 현재 산업의 변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백년은 길다고 하더라도 1세대 30년은 보고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30년 후면 현재 중학교 3학년생들이 40대 중반이 되고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 나갈 나이가 된다.지금 우리는 4차산업혁명 대비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중학생들이 30년 후쯤 되면 5차나 6차산업혁명을 이끌어 가는 세대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나라가 다음 세대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이끌어야 한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고, 변화된 세상을 구현할 새로운 솔루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국내 IT 제품 중 해외 인지도가 높은 제품 중 휴대폰이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일 것이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국내 기업이 휴대폰이 광고에서 기술력을 이야기 할 때, 해외의 경쟁 기업은 스토리텔링으로 제품 광고를 했다.다니엘 핑크는 미래 사회를 풍요, 아시아, 자동화로 대별되는 하이컨셉, 하이터치의 시대로 정의했다. 요지는 이렇다. 현재 선진국의 좌뇌 중심의 지식 근로자들은 우뇌 중심의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값싼 지식 노동자로 대체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 지식 근로자들이 미래에도 현재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빨리, 정확하게,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이 미래 인재가 되기 위해 6가지 항목 혹은 조건 (디자인, 스토리, 조화, 공감, 놀이, 의미)을 가져야 한다. 잠시 스토리텔링이 담긴 이야기를 해보면 이렇다. 몇년 전 스마트폰 광고에서 한복을 입는 새내기 주부가 준비한 음식을 차려놓고 휴대폰으로 영상을 전송한다. 몇 마디 말을 하고, 영상을 본 엄마가 감격해 하면서 광고는 끝난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스토리텔링이 담긴 광고는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좋은 이미지가 제품과 이어진다.미국도 기술 추격형 국가였고, 스마트폰을 최초로 만들지 않았다면 광고도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관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스마트폰이 나올 수 있었던 문화적인 뒷받침도 있었던 것같다. 우리 교육에는 독서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등교하면서 휴대폰을 학교에 맡기고 하교때 찾아가는 교육보다는 휴대폰을 이용해서 새로운 창작을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TV가 바보상자라고 했지만, 지금 우리는 더 크고, 더 선명한 스마트TV를 보고 있다. 스마트TV 속에서 넷플릭스는 국내 미디어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4차산업혁명의 문턱에 서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4차산업의 혁명의 외침과 산업의 현실적인 괴리는 크다. 특히 인공지능과 관련된 인재는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한 때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이 중단된 게 그 이유다. 지금 인공지능이 중요시되면서 다른 기술들이 도외시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2018-09-10

문재인 대통령께 면담 요청

▲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이 글을 누가 보실지 모르겠지만 대통령과 친분이 있으신 분이 있으시면 이 글을 꼭 대통령께 전달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누군가는 말할지 모릅니다, 대통령이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냐고, 교육 문제는 교육청(부)에 이야기하라고! 필자의 사정을 아신다면 왜 필자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대통령께 면담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실 겁니다. 필자는 4년째 교육청(부), 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대안학교 학생들의 억울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늘 똑같습니다. 교육감이 바뀌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선거 전에는 대안교육 지원에 대해 충분히 공감을 하고 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당선인이 되고부터는 완전히 나 몰라라하고 있습니다.제가 이렇게 결심을 하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교육청으로부터 온 공문을 본 직후입니다.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으로 단숨에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문 제목은 ‘고교 무상 교육 추진 관련 자료 제출 요청’입니다. ‘고교 무상 교육’에 대해서 뭔가를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교 무상 교육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필자가 이렇게 절박하게 글을 쓰는 이유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이 대한민국에 중학생이면서도 교육 당국은커녕 헌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헌법 제31조 ③항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교육기본법 제8조(의무교육)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① 의무교육은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으로 한다. ② 모든 국민은 제1항에 따른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육청과 교육부는 물론 심지어 인권위원회와 국가권인위원회까지 이 조항을 모두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러고서도 대한민국이 국민이 주인인 나라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대통령께서는 분명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고,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의 이야기가 대통령의 귀에까지는 안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필자는 대통령과 관련된 기사 중에서 다음 기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문재인 대통령, 11명의 국민에게 ‘깜짝 전화’… 격려와 감사 전해’입니다. 이 기사는 지난 해 추석 직후에 나온 기사입니다. 물론 말도 많았던 기사이지만 그래도 필자는 국민을 생각하는 대통령의 진심을 믿어보려고 합니다. 올해 추석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만약 대통령께서 또 깜짝 전화를 하신다면, 제발 교육부와 교육청의 규제 개혁에 막혀 신음하고 있는 대안학교 학부모들께 꼭 전화를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규제 개혁을 넘어 규제 혁신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들과 싸움 중이십니다. “규제 혁신은 혁신 성장을 위한 토대, 과감하고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 지금까지 시도된 적 없는 혁명적 접근” 등 규제 혁신과 관련해서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고, 답답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규제 혁신을 외치는 대통령의 외침이 사회, 특히 교육 현장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교육부와 교육청은 대통령의 생각과는 반대로 구태의 철옹성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대통령께서는 100대 국정과제로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대안학교 학생들도 국가의 보호를 받겠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대안교육은 철저하게 국가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대안교육을 포함한 교육 소수자와 교육 약자들의 억울함을 들어주실 시간을 내어주실 것을!

2018-09-06

스마트 기술이 도시의 ‘체질’을 바꾼다

▲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지난 한 주간 굵직한 행사와 마감 걸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힘에 부쳤었나보다. 행사를 무사히 마친 날 저녁부터 으슬으슬 오한과 몸살이 시작되더니 결국 목 양쪽 임파선이 목도리도마뱀 마냥 부어올랐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요일에도 진료를 보는 동네 병원을 찾아 갔다. 진단은 간단했다. 과로로 면역력이 저하되어 코, 목, 귀, 위, 장까지 곳곳에 염증이 생긴 거였다. 임파선이 부은 것은 몸에 탈이 나거나 감염이 생겼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라고 했다. 나는 스마트시티 강의를 할 때마다 도시의 기능을 인체 원리에 비유해 설명하곤 한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 함께 일하는 친구와 차 마시며 가볍게 시작한 얘기였다. 하나씩 차례로 연결시켜나가다 보니 그 기능과 역할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신기했다.우리 몸의 근간을 이루는 ‘근·골격계’는 ‘도시 인프라’ 기억과 정보처리, 몸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통제하는 ‘두뇌와 신경계’는 ‘도시 데이터 허브와 행정’ 여러 기관을 운용할 동력원을 만들어 내는 ‘소화계’는 ‘경제와 산업’ 산소와 영양분을 몸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순환계’는 도시의 ‘교통’ 기능에 각각 비유된다.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내게 그 중요성을 일깨워준 ‘면역계(Immune System)’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고, 몸에 탈이 났을 때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 알린다는 면에서, 도시의 ‘재난안전(Safety and Protection System)’ 기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의 여러 계통(System)을 이루는 신체기관들이 각자 따로 놀지 않고 뇌와 신경계의 중재 하에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시 시스템에 있어서도 개별 기능의 동작 못지않게 그 기능들이 서로 얼마나 잘 맞물려 유기적으로 동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스마트시티에 대한 내 연구 열의를 키우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어쩌면 뉴스 속 사건사고 소식들이다. 작년 포항을 비롯한 전국을 가슴 철렁하게 한 지진을 비롯해, 화재 태풍 폭우 같은 천재지변, 무고한 사람들이 다쳐도 손쓸 길 없는 묻지마 범죄나 인적오류가 유발하는 안타까운 대형 안전사고 까지. ‘이런 시스템만 있었다면’, ‘이런 기술이 조금만 더 일찍 적용됐더라면’ 하는 안타까움과 분통, 뒤늦은 후회들 속에서, 자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머리맡의 리서치노트를 꺼내 긁적거린다. 몰입한 나머지,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겪을 고통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혼자 마음이 급해지고 분주해져 밤을 또 지새우곤 한다.비유하자면 이런 사건사고는 도시 곳곳에 생기는 염증과도 같은 것이다. 일단 발병한 후에는 치료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무엇보다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정말 생고생이 아닐 수 없다. 질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므로, 평소 좋은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도시에다 대고 읊어 본다. 스마트 기술이 도시에 해주는 진정한 역할이 바로 그 ‘체질개선’ 효과일 것이다.이번 일로 내 생각에 은근한 편향이 좀 생긴 듯하다. 우리 몸 어느 기관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뭔가 탈이 났다는 신호를 가장 먼저 알리고 외부의 위험 요인으로부터 보호하는 도시의 면역계, 재난안전 시스템이야 말로, 첨단 과학기술이 가장 먼저 손써야 할 대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주사와 소염제, 항생제를 처방해 주시면서 친절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의사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주사와 약은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무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은 무조건 쉬세요. 일은 건강 다음입니다.” 스마트시티로 도시의 체질을 바꾸자는 얘기를 떳떳하게 하려면 일단 내 기초 체력부터 좀 키워야할 것 같다.

2018-09-05

걷는다는 것은

▲ 강성태 서예가·시조시인하늘도 바람에 쓸려 맑고 높푸르러진 가을의 길목, 마음 속 근심만 없다면 뭐든지 해도 좋을 계절이다. 구름밭 쟁기질로 하늘은 더없이 파랗게 깊어가고, 산들바람 간간이 선선하게 불어오니 덥지도 춥지도 않은 때, 가뿐한 걸음으로 산으로 들로 나서보면 어떨까?길을 가는 데는 걷거나 뛰거나 타거나 날아서 가기도 하지만, 자연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며 가기에는 걷기가 제격이다.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길이나 산길을 걷다 보면 사람, 소리, 빛, 풍경 등 보이고 들리며 향기로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느작거리는 풀잎과 들꽃, 개망초, 쑥부쟁이가 반겨 맞고, 도열하듯 손짓하는 크고 작은 나무들과 주위의 숲, 그 속에 어우러져 음률 곱게 들리는 새와 벌레들의 합창! 처서 무렵의 풀벌레 소리가 얼마나 맑고 또렷했으면 옥양목을 자르는 가위질 소리 같다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을까? 물소리,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걸을 때는 번잡한 마음이 물에 씻겨지고 바람에 풀어져 한결 청아하고 정갈해지는 듯 하다. 바람과 악수하고 길과 인사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그렇듯 걷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일깨워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을 닮아가는 일이다.최근 들어 우리나라 곳곳에는 안전하고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길들이 많이 생겨나 도보 전문 여행객이 무리를 지어 다닐 정도로 걷기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둘레길, 올레길, 자락길, 오솔길, 나들길, 해파랑길 등 걸을수록 흥미진진하고 점입가경인 길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안목과 특색에 따라 다양하게 개설되었거나 개발되고 있다. 도심에 가까운 길에서는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산보하기도 하고, 강변의 둔치길에서는 달리는 자전거와 병행해서 걷기도 하며, 산자락 황토길에서는 맨발로 걷기도 하는 등 서로 얘기하거나 가벼운 운동 삼아 다양하게 걷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필자의 지인은 ‘걷기의 달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두 발로 걸으며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풍광을 즐기는데 심취해있다. 그 분은 몇 년 전 우리나라의 최장 트레일 코스인 동해안 해파랑길을 35일만에 완보했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의 770km 거리, 50 구간을 늦은 봄날에 출발해 여름날의 뙤약볕을 거쳐 가을날을 지나 이른 겨울날에 완보했으니, 실로 꾸준함과 인내심의 승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멈추지 않고 중국 시안(西安)에서 시작되는 실크로드와 홍콩 트레일 코스까지 탐방할 정도로 도보여행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그래서 작년 봄날, 외람되지만 필자가 그 분에게 ‘상보(常步)’ 라는 아호를 지어 드리며 부단한 상행(常行)과 끊임없는 정진(精進)을 기원했다.또 다른 지인은 세계 3대 트레일로 알려진 미국의 존 뮤어 트레일(JMT)을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계곡에서 미국 본토의 최고봉인 휘트니봉 포털까지의 363km를 15박16일 동안 2천m 이상의 고지대에서 보행과 야영을 일삼으며 완보했으니, 과연 도보족의 도전과 모험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여겨진다.사람이 걸어 길이 났고 길이 생겨 문명이 발달했다. 사람들은 걸으면서 생각하고 명상하며, 소통과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길을 걸으면서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배우고, 어떤 사람은 걷는 길에서 도(道)를 찾기도 한다.부지런히 걷는 자에게 지루한 길은 없듯이,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다는 것은 삶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부지런히 걷다 보면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고 인생의 새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서느러운 이 가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느긋하게 걷기를 즐겨보자!

2018-09-04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 김현욱시인대단한 여름이었다. 태풍을 이토록 기다려보기도 처음이고,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부모님이 에어컨 주위에서 떠날 줄 모르는 것도 처음이다. 끝날 것같지 않았던 폭염과 열대야의 기세도 이제 서서히 꺾이고 있다. 어김없는 계절의 변화가 감지된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 들녘에 바람을 풀어 놓으십시오 …(중략)…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라는 릴케의 시 ‘가을날’이 떠오른다. 뉴스를 보니 이번 여름에는 해수욕장보다는 계곡으로 사람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살인적인 폭염을 피해서 그늘 많고 물 시원한 계곡으로 발길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도시에서는 전기세 폭탄을 피해서 대형마트, 백화점, 도서관, 카페 같은 실내가 붐볐다는데 단연, 으뜸인 곳은 도서관이다.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여름을 시원하게 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딸아이와 방학동안 꾸준히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여름방학 과제도 하고 심지어 로비 소파에서 낮잠도 잤다. 분식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나도 이다음에 도서관 근처에 예쁜 밥집을 차리고 싶다는 없던 꿈까지 꾸게 되었다. 아무렴,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문재인 대통령이 여름휴가 중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 김성동의 ‘국수’, 진천규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를 읽었다는데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궁금하다. 국민청원에 대통령의 독후감을 공개해달라는 청원을 올리면 국민이 동의해줄까? 개인적으로 이번 여름에 읽은 책 중에는 김태완 선생의 ‘대혜서장(大慧書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아예 사버렸다. 밑줄 치고 귀퉁이를 접고 손댈 때가 많은 책이다. 송나라 대혜종고(大慧宗6772)의 편지글을 모아 엮은 책인데 우리나라 불교전문강원에서 교과서로도 사용된다고 한다.‘대혜서장’은 간화선의 창시자인 대혜종고 스님이 사대부들과 참선에 관해 주고받은 65통의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간화선의 본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참선(參禪)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며, 불법을 보는 안목, 방편의 언어와 진실에 관한 안목 역시 보여 준다. 아울러 빠지기 쉬운 잘못된 선병(禪病)들과 그릇된 공부 자세를 지적하여 알려 줌으로써 도중에 길을 벗어나 헛되이 세월을 낭비하지 않도록 인도하는 책이다.‘대혜서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서 묵묵히 앉아 좌선에만 몰두하는 묵조선을 매섭게 질타하는 부분이다.“고요하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것은 결국 시끄럽고 번잡한 환경에서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함입니다. 시끄럽고 혼잡한 일상 속에서도 화두 공부가 된다면 그 힘은 고요하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한 것보다 천만 배나 뛰어납니다.”대혜 선사가 사대부들의 참선 지도에 구업을 마다하지 않고 공을 들인 이유는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어 공부인들이 가는 곳마다 주인공이 되고, 서는 곳마다 주체가 되라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뜻이 아니었을까.대통령이 책의 어떤 구절에 밑줄을 긋고 옮겨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난 여름에 가장 정성껏 필사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다만 하루 종일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가운데 때때로 자신에게 일깨워 주시고 때때로 자신에게 말해 주셔서,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를 일상의 삶에서 떼어 놓지 마십시오. 한번 이와 같이 공부를 해 보십시오. 한 달이나 열흘쯤 지나면 문득 스스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는 천 리에 걸친 일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습니다.”

2018-09-03

교육 독립

자연은 소리와 색의 변화로 시간의 흐름을 말한다. 매미 소리만 들리던 귀에 이제 왕귀뚜라미를 비롯하여 ‘긴 꼬리’, ‘방울벌레’ 등 가을 곤충들의 소리가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성질 급한 단풍들은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었으며, 독립심 강한 나뭇잎들은 나무를 떠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색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낙엽거사(落葉居士)의 삶을 시작했다.이런 자연의 변화는 곧 자연의 이야기이다. 자연은 말한다, 여름과 가을이 자리바꿈을 하고 있다고. 그러니 여름을 놓아주고 가을맞이 준비를 하라고! 그리고 제발 너무 호들갑을 떨지 말라고. 뭐든지 급작스럽게 일을 밀어붙이다가는 사달이 나도 크게 난다고.그런데 자기만 잘 났다고 떠들어대는 인간들에게는 자연의 이야기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아니 인간들은 들을 생각 자체가 없다. 인간들은 모든 것들을 자신들의 상황에 따라 해석한다. 태풍에 붙은 수식어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더위가 맹위를 떨칠 때는 효자 태풍이니 뭐니 떠들어대다가 급박한 위기에 처하면 슈퍼 태풍 등으로 이름을 바꾸는 인간들! 이번 여름, 자연은 인간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똑똑히 보라며 극한의 자연 현상을 보여주었다.재난을 이야기할 때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로 나눈다. 그런데 엄격히 말하면 천재는 없다. 천재 또한 그 시발점은 인간이다. 세상에 인간이 가장 무섭다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 무서움 중 하나를 필자는 혼돈에 빠진 교육계의 모습을 통해 보고 있다. 지금 교육계는 분명 재난 수준의 혼돈에 빠졌다. 말이야 학생들을 위한 교육 혁신이라고 하지만, 혁신 정책 어디에도 학생은 없다. 학생이 있어야 할 자리에 버젓이 정치 이념을 들이고서도 입안자들은 모두가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뻥을 치고 있다. 선택 과목을 늘리든 뭐든 간에 지금의 모든 교육 정책들이 줄 세우기를 통한 입시에 맞춰져 있음을 뱃속 태아도 알고 있는데, 정치권에 빌붙은 교육 입안자들은 언제까지 학생 타령을 하며 교육을 정치 수단으로 만들 것인지?2022 입시 개편안과 관련된 공문을 보았다. 추진 배경에 이런 말이 있었다.“미래 사회에 대비해 융합적 사고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지식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 양성 필요. 또한, 모든 학생의 잠재력과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통해 생산가능 인구 감소가 국가 성장동력 저하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비”정말 훌륭한 말이다. 이 말이야 말로 교육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말만 가지고 교육을 한다면 분명 이 나라는 교육 낙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구 절벽 현상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누구 봐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대입 제도만 바꾼다고, 선택 과목만 늘린다고 이 나라 교육의 바뀔까. 문제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계속 땜질식 정책을 쏟아내니 이 나라 교육이 누더기로 변할 수밖에 없다.필자가 생각하기에 지금 우리나라 교육을 살릴 방법은 딱 한 가지다. 그것은 바로 교육을 정치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교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하는 교육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교육 독립 운동을 위해 떨치고 일어서야 한다.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교육을 혼돈에 빠뜨린 세력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지금처럼 그냥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또 학생 핑계를 대면서 정치의 하수인이 되어 교육을 정치 이념으로 물들이는 파렴치범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책을 입안하고 밀어붙인 사람에 대해서는 정치적, 도의적 책임뿐만 아니라 금전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 대혼돈은 없을 것이다.

2018-08-31

‘경주 최 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

▲ 김만수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부자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일하게 300년 부를 누린 가문이 있으니 그 집안이 바로 ‘경주 최부잣집’이다. 경주 최부잣집은 1600년대 초반에서 1900년 중반까지 무려 300년 동안 12대에 걸쳐 부를 누렸지만 나라가 망하자 마지막 최부자 최준(1884∼1970)은 재산을 정리하여 상해임시정부에 나라를 되찾는데 쓰라며 독립군자금으로 보냈다. 광복 후에는 인재양성을 위해 남은 전 재산을 영남대학교의 전신인 ‘청구대’와 ‘대구대학’ 설립에 쏟아 부은 후 스스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 지금은 집도 후손들의 소유가 아닌 영남대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록 만석 재산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한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우리에게 값지고 소중한 가치로 남아있다.그렇다면 경주 최부자 가문이 300년 넘게 부를 지켜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비밀은 최부잣집 가문이 지켜 온‘여섯가지 가훈(六訓)’에 있다.첫째, “절대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말라.”품위 유지를 위해 제일 낮은 벼슬인 진사 벼슬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절대 그 이상의 벼슬은 탐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높은 벼슬에 오르면 정쟁에 휘말려 집안이 화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둘째, “재산은 1년에 절대로 1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왜냐하면 지나친 욕심은 반드시 화를 부르기 때문이다. 1만석 이상의 재산은 이웃과 소작농들에게 나누어줬으며, 최부자는 12대에 걸쳐 이 가훈을 철저히 지켰다.셋째, “나그네를 후하게 대접하라.”누가 와도 넉넉히 대접하여 하룻밤 잠자리까지 마련해 준 후 보냈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를 장악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최부자는 나그네들에게 작은 베풂으로 가만히 앉아서 1천리 밖의 소식을 접한 것이다.넷째, “흉년에는 남의 논, 밭을 사지 말라.”흉년 때 먹을 것이 없어서 남들이 싼 값에 내 놓은 논밭을 사면 손쉽게 재산을 늘릴 수는 있지만, 그들을 원통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원과 한이 서린 재산은 싼 값에 취득한 것만큼 원성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할 때만이 기치가 있는 것이다.다섯째, “가문의 며느리들이 시집오면 3년동안 낡은 무명옷을 입혀라.”며느리는 말 그대로 새 식구이자 안주인이다. 바꾸어 말하면 며느리가 잘못하면 그 집안이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내가 어려움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 3년간의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진정한 최부자의 안주인으로 거듭나게 하는 지혜가 숨어 있다.여섯째, “흉년에는 양식을 풀어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지금도 최부잣집 안채 마루에는 쌀뒤주가 놓여 있는데 그 뒤주는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위한 것으로 1년 365일 항상 대문 밖에 내놓았다. 누구든 필요한 만큼 퍼가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양식을 구하려 온 자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가 숨어 있었다.이 같은 철저한 배려와 나눔은 구한말 굶주린 백성들이 도적떼로 변해 스스로를 의적이라고 부르며 조선8도의 부잣집을 약탈하는 등 부자들이 수난을 겪을 때 오히려 최부잣집은 그들이 호위하며 지켜주었다고 한다.최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의 결단은 또 하나의 인생 사표(師表)이다.못다 푼 신학문의 열망으로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와 청구대를 세웠고, 백산상회를 세워 일제시대에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그는 노스님에게서 받은 금언(재물은 분뇨(똥)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 두면 악취가 나 견딜 수 없지만,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을 평생 잊지 않고 실천에 옮겼다.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진리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2018-08-29

대구근대미술관의 필요성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대구에서 ‘근대(近代)‘라는 콘텐츠가 부각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것 같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근대기는 곧 일제강점기이며, 국권피탈로 암울했던 식민통치에 의한 부끄러운 역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것같다. 그래서인지 식민잔재 청산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일단 모든 잔재와 흔적은 없애고 보자는 관료적 행정으로 일관되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처럼 한국근대기와 교차되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되고 있다. 식민지 잔재를 무작정 철거하기보다는 역사교훈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분위기가 새롭게 조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구근대 골목투어를 들 수 있다. 동산청라언덕을 시작으로 선교사주택, 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제일교회, 약령시로 이어지는 근대문화코스와 1930년대 대구의 중심상권으로 급부상했던 북성로에 숨겨진 이야기들은 거리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진귀한 가치를 품고 있다.특히 대구근대 문화벨트 내에는 일제강점기 대구를 대표했던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 활동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그 가치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상화, 현진건, 백기만, 이응창, 이윤수로 이어지는 문학인들과 박태준, 현제명, 권태호, 박태원, 김문보 등 음악인 그리고 김진만, 박기돈, 서동균, 서병오, 김용조, 박명조, 서동진, 서진달, 이인성, 이쾌대 등의 미술인들의 흔적은 대구 근대기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산재되어 있는 근대 예술인들의 작품들과 예술 활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할 수 있는 근대미술관 설립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다.어느 지역보다 서양문물의 유입이 빨랐으며, 능동적인 근대화 수용을 통해 문화선진화를 이끌어갔던 대구에 근대미술관이 건립되어야 한다는 지역 미술인들의 주장은 충분한 명분이 있다고 생각된다.대구·경북에 처음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미술(美術)’은 당시 일본에서 서양화를 익히고 귀국한 유학생과 대구·경북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 교사(화가)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수되기 시작했다.1900년대 초반 일본 유학을 통해 미술을 공부하고 귀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형인 이상정에 의해 체계적인 미술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1917년부터 계성학교와 신명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했던 시기로, 대구가 한국미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역사적 배경이 되는 셈이다. 더불어 한국 서화계의 대표인물인 석재 서병오에 의해 결성된 ‘교남시서화연구회’의 활발했던 화단활동은 ‘대구서화전람회’ 개최에 이어 이듬해 열린 ‘대구미술전람회’는 한국미술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이며 전시였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인들의 삶과 예술 활동의 터전이 대구·경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과 한국전쟁의 피해가 전무한 대구에는 한국근대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져 있다는 점 등이 대구근대미술관 건립의 당위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물론 경상감영 공원 내 대구근대역사관과 달성 공원 내 향토역사관이 운영되고 있어 대구근대기 문화를 수집보존전시로 이어지는 연구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지만 이는 근대기생활사에 국한된 사료발출과 보존기능에만 국한된 활동으로 여겨진다. 일제강점기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대구·경북을 터전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던 원로화가분들의 타계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이러한 미술관 설립과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여겨진다. 대구의 새로운 문화관광인프라 구축을 위한 대구근대미술관 건립 기초연구와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2018-08-28

한러지방협력포럼을 ‘시익(市益)의 극대화’ 기회로

▲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남북관계, 북미관계 등의 정치적 정세변화에 맞춰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는 물론 북한과 일본이라는 한반도를 둘러싼 4개국의 국가전략과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도 변화의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지난 4월부터 급변하는 남북관계와 국제정세의 변화는 그동안 한반도 동해안의 군사도시, 철강도시라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안고 있던 포항시의 입장에서는 해외기업의 유치, 나진-핫산프로젝트의 재추진 가능성, 북한동해안해역의 오징어 남획문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하지만, 최근까지 언론 등을 통해 파악되고 있는 북방경협과 관련한 중앙정부의 주요 구상에서 포항시의 역할과 기능을 기대할만한 그림은 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에서 제시되었던 한반도 동해안 철도선 연결과 같은 프로젝트의 경우 최근 발표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구상 등을 볼 때 포항까지 내려오는 한반도 동해안철도선보다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북한지역 동해안철도선과 통일경제특구 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지방도시의 경제적 이익을 ‘시익(市益)’이라고 한다면 국가전략적인 경제적 이익은 ‘국익(國益)’이라고 할 수 있다. 지자체의 입장에서 아무리 중요하고 시급한 대책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추진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뒤틀 정도의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현재 포항시는 단순히 희망적인 차원에서 부화뇌동하지 않고 단기적인 성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인 시야에서 과연 어떠한 부분에서 국가정책에 반하지 않으면서도 ‘시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해야할 때다. 포항시가 그리는 ‘시익’의 극대화는 동해안 유일의 국제컨테이너항만이라는 장점, 남북한과 러시아가 공동 추진하였던 나진-핫산프로젝트의 시범운항 경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및 일본 서안지역과 정기항로를 운용중인 상황, 국제여객부두의 공사완료시 카페리나 국제크루즈선의 항로 개설 전망 등을 모두 고려한 공통분모를 찾아야만 이뤄질 수 있다.때마침 오는 11월 제1차 한러 지방협력포럼이 포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이는 포항이 앞서 나갈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선점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제1차 포럼을 포항이 개최하였다고 하여 2차, 3차까지도 포항에서 개최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포항에 동북아지자체연합사무국이 있기는 하나 그것이 한러간 지방협력을 포항이 주도할 수 있다고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따라서, 국방외교 분야나 북한이 개입되어 국가 간 협의가 필요한 주제보다는 민간차원에서 실행 가능한 한러간 수출입 확대방안, 포항-블라디보스톡 간 운항중인 항로의 활성화 방안 등 최대한 현실적이고도 실행 가능한 논의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특히 포항시는 블라디보스톡시와 지자체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경제, 사회, 문화, 예술분야 등 다각적인 교류협력의 기반을 이번 기회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100년만의 무더위 지속 현상 등을 고려할 때 북극해항로의 조기 상용화에 대비하여 포항해양과학고와 자매 결연중인 블라디보스톡의 네벨스코이 국립해양대와 북극항로전문가 양성을 위한 ‘한러해양전문가양성아카데미(가칭)’의 공동 설립 내지는 동교의 포항분교 유치와 같은 프로젝트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포럼의 개최를 최상의 기회로 삼아 포항시가 이와 유사한 형태의 각 민간부문간 교류, 협력을 위한 논의의 장을 통해 ‘시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8-08-27

0교시 부활의 조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요즘 대입 정책을 보면 마치 서커스를 보는 것같다. 관객은 국민이고, 서커스 단원은 교육부와 국가교육회의, 종목은 공 주고받기! 교육부가 대입이라는 공을 국가교육회의에 던지면 국가교육회의는 또 그 안에서 서로 주고받기 놀이를 하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교육부에 공을 던져주는 공연! 공을 책임이라는 말로 바꿔서 지금의 작태를 보면 책임 전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 공연을 보는 국민들의 모습이 결코 즐겁지 않다. 즐겁기는커녕 곧 분노가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이다. 웃기는 것은 여론에 도취되어 정세 파악 능력을 상실한 정부가 예전 여론조사 수치만 믿고 또 국민의 뜻이라고 밀어붙이려 한다는 것이다.한동안 그것이 통하던 때도 있었다. 불과 1년밖에 안 지났지만 너무 과거의 이야기인 것같아 놀라울 뿐이다. 정부와 언론은 정부에서 하는 일 중 뭔가 조금이라도 국민의 낌새가 이상하면 여론조사 결과부터 발표했다. 정말 그 때는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고공행진할 때였다. 그래서 정부와 여당은 무조건 국민의 뜻이라고 말하고 밀어붙였다. 친정부 언론은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주 단위로 여론 조사를 발표했다. 그러면 정부 정책들에 대한 비판적 대안들은 바로 묻혀버렸다. 혹 그래도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친정부 댓글 세력들이 인신 해체 수준의 공격을 퍼부으며 그 사람을 매장시켜버렸다.그런 정부 정책 중 하나가 고입 제도 변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특목고 폐지 등에 대해서 비판적 대안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여론조사를 내세워 밀어붙였다. 웃기는 것은 그렇게 했으면 원안대로 정책을 시행하면 되는데 꼭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그것이 어떻게 수정되었는지조차 모른 채 밀어붙이기 정책들은 기이한 형태로 변하여 시행을 기다리고 있다.자사고 폐지 등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꺼내든 여러 교육 정책들을 보는 순간 필자는 0교시 부활의 조짐을 읽을 수 있었다. 말이야 평등 교육이지, 지금처럼 줄 세우기를 통한 선발 방식이 공고히 자리잡은 이 나라 입시 판에서 평등 교육이란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딱 한 부류만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은 대통령 말에 귀가 먼 정치색 짙은 교육정책 입안자들이다.현 정부는 학생들을 병들게 하고, 교육환경을 황폐화시킨다는 이유로 특수목적고(외국어고, 국제고)와 자사고의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이들 학교들이 고교 서열화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들 학교를 폐지한다면 교육 평등을 앞당겨 많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진학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교육 당국은 이들 학교가 갖고 있던 특권(이는 분명 현 교육 당국만의 생각이다)을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손을 보았다.입시제도가 바뀐 지금 과연 모든 학생이 현 정부의 이상(理想)대로 자신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할 수 있게 되었을까? 물론 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사회는 학령기 인구 절벽 현상과 이로 인한 교육 붕괴의 심각성에 대해 계속 말하고 있지만, 정작 교육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그저 언론에서 떠드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는것 같다. 과연 이들은 인구 절벽 현상의 근본 원인이 이 나라 교육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을 시간이 되면 철새처럼 이 부서 저 부서를 떠도는 교육 공무원들은 절대 모르니 안타까울 뿐이다.현 정부의 교육 기조(基調)로 볼 때 국가교육회의의 권고가 나온 2022년 대입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현 정부가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정시와 수시의 선발 비율이 역전될 날이 꼭 올 것이다. 이는 곧 수능 준비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이상한 논리에 입각한 0교시 부활의 징조임이 틀림없다. 과연 이것이 이 정부가 원하는 교육 방향인가.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께 묻는다. 교왕과직(矯枉過直)을 아는지?

2018-08-23

1학교 1사서(司書) 환영

▲ 김현욱시인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8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모든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나 사서를 1명 이상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학교도서관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심의, 의결되었다. 이전에는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나 사서 등을 둘 수 있다’였지만 이번에 ‘사서 등을 둔다’라는 의무조항으로 개정된 것이다. 전국에 초중고등학교는 약 1만2천여 곳이다. 규모나 내실에 차이는 있겠지만 학교도서관 설치율은 100%에 달한다. 반면, 사서교사나 사서처럼 도서관 전문 인력이 배치된 곳은 겨우 40%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비정규직이 대다수다. 그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현재를 보려면 시장에,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 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도서관 사서들의 현실이 이토록 암울해서야 되겠는가.사서 교사가 없는 학교도서관은 책 대여점과 다를 바 없다. 그동안의 학교도서관은 사서 교사의 빈자리를 학부모회, 지역봉사자, 도서관 업무 담당 교사, 독서동아리 학생 등으로 겨우겨우 메꾸어 왔다. 보건실에는 보건 교사가 있고, 영양실에는 영양교사가 있고, 상담실에는 상담 교사가 있는데, 도서관에는 매일 다른 학부모나 지역봉사자가 번갈아 앉아 있거나 심지어는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을 때도 많다. 도서관 현대화 사업으로 수천만 원을 들여 도서관을 리모델링하지만, 정작 도서관의 심장이 될 사서교사가 없으니, 시간이 지나면 온기가 없는 삭막한 곳이 되고 만다.칼라 모리스의 ‘도서관이 키운 아이’에 나오는 주인공 멜빈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다. 도서관에서 책만 보는 건 아니다. 사람의 온기를 느껴야 한다. 멜빈도 사서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로 도서관에서 더욱 성장한다. 멜빈이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 행사는 ‘도서관에서 밤새워 책 읽기’다. 멜빈은 도서관에서 책뿐만 아니라 좋은 친구를 만난다. 훗날 멜빈은 공립도서관 사서 교사가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이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게 돕는다.20세기를 대표하는 아르헨티나의 작가이자 시인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천국이란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정원이나 궁전을 생각하겠지만, 나는 항상 천국을 도서관과 같은 곳이라고 상상했다.”고 고백했다. 알다시피 보르헤스는 시립도서관 직원을 거쳐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19년이나 지냈다. 보르헤스에게 도서관은 살아서 갈 수 있는 천국이며, 책은 수많은 천사였던 셈이다.휴일이면 딸아이와 함께 집 근처 포은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딸아이가 5살 때부터 들락날락했던 곳이지만, 아직 눈에 익은 사서는 없다. 근무하는 사서가 많기도 하지만, 대출도 반납도 모두 무인이어서 그런 탓도 크다.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무인시스템이 속도면에서는 편리하지만, 난 아직 하이패스가 없을 뿐더러 어딘가를 다녀올 때는 꼭 차창을 열고 정산을 해야 마무리가 된 것같다. 예전에 도서카드에 빌린 사람의 이름을 기록하던 아름다운 추억을 소환해보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온기와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아는 선배의 이름이 적혀 있으면 함께 그 책을 읽었다는 기쁨과 비밀을 공유하면서 말이다.학교도서관에 사서 선생님이 오시면 아이들은 사서 선생님에게서 책만 빌려 오는 것이 아니다. 사서 선생님의 눈빛과 표정, 마음까지 빌리고 담아 온다. 관심과 안부가 오가고 도서관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발길이 자주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도서관 문은 항상 열려 있고 거기, 바로, 사서 선생님이 엄마처럼, 아빠처럼 기다리고 있다는 상상만으로 행복해진다. 늦었지만, 1학교 1사서, 대환영이다. 당장 1학교 1사서 배치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도서관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2018-08-21

만년필

▲ 김경준포스텍 정보통신연구소 연구부교수올 초에 필자가 아들에게 몇 천원짜리 저가 만년필을 줬다. 만년필로 글쓰고 분해도 해보고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만년필 하나에 저렇게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중저가 제품을 사줬는데, 요즘은 아들과 필자가 만년필에 대한 기술 요소나 필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대화 주제도 다양해 지고 있다.국내 만년필 제조 기업은 3개 정도이고 그나마 생산되는 제품의 인지도가 낮아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않은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서 일반인들에게 만년필은 고가이고 중요한 문서에 서명할 때 사용하는 필기구로 인식되고 있는 것같다. 외국에서는 글씨를 처음 배울 때 만년필을 사용하고 여전히 즐겨쓰는 필기 도구이다. 볼펜처럼 종류도 다양해서 가격은 몇 천원에서부터 몇 십만원을 넘는 고가형 그리고 사용 용도에 따라 필기용, 사인용, 글씨를 멋스럽게 쓰기위한 캘리그라피용 등 다양한 제품군들로 구성되어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여 문서작업, 이메일 쓰기 등등이 이루어 지는 데도 불구하고 확실한 시장과 문구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서 놀라움이 크다.만년필은 1800년대 초 영국의 프레드릭 폴슈가 최초로 발명을 하고, 이후 독일 발명가 프리드리히 죄네겐이 닙으로 부르는 만년필 촉을 개발했다. 오늘날같은 상용화된 만년필은 우연히 기회에 만들어 졌다. 미국 뉴욕에서 루이스 에디슨 워터맨이 보험계약 중 말라버린 펜촉 때문에 나쁜 징조로 여기고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아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워터맨은 펜촉이 마르지 않는 만년필을 생각하게 되었고,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만년필을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만년필은 6·25를 전후해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하는 제품군이 주를 이루고 있어 고가 제품군으로 특별한 용도 혹은 특별한 날 주고받는 선물용으로 인식이 되었던 것 같다. 만년필에 관련된 시장이나 산업에 대한 자료가 미비해 잘 알수는 없지만 2014년도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만년필의 해외 수입량은 56만여 개이고 이후 4여년의 시간을 감안해 보면 더 늘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만년필과 관련된 산업은 산업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크지 않았고,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키거나, 후속 산업으로 넘어가기 위한 가교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여전히 새로운 디자인과 제품군들을 출시하면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글로벌 시장을 형성하고 유명 브랜드의 명성과 기업으로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산업 생태계가 구축되고 그 생태계를 기반으로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부 혹은 특정 단체가 주도하는 산업 생태계는 한계가 있다. 워터맨의 사례에서 보듯이 현실의 문제점 해결 아이디어가 신산업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이를 기반으로 종이와 잉크를 생산하는 후방산업이 만들어 지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만년필의 성능 개선과 사람들의 기호를 충족하기 위한 여러가지 제품군이 생산됐다. 워터맨이 만든 기업은 사용자의 기호를 무시한 제품 생산을 고수하다 아쉽게 도산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명한 만년필을 만드는 기업들이 탄생했고 지금도 100여년이 넘는 기업들이 여전히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판매와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회 문제해결 아이디어가 산업으로 연결되는 사회적인 문화와 산업적인 동인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 것같다. 이외에도 신생기업을 발굴하기 위한 노력과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정책 및 산업 구조가 중요하다. 또한 기업 측면에서 초기의 문제 해결을 넘어서 소비자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반영, 발전시킬 수 있는 기업의 혁신 마인드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2018-08-20

‘무궁화의 날’ 유감

▲ 김만수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지난 8일은 무궁화의 날이었다. 무궁화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를 생각해본다. 무궁화(無窮花, Hibiscus syriacus)는 아욱과의 낙엽관목으로, 대한민국 법령으로 제정되지 않은 ‘통념의 국화(國花)’이다.무궁화는 꽃으로도 으뜸임을 옛날 중국에서는 군자의 기상을 지닌 꽃이라 하여 예찬했고, 서양에서도 그들 이상의 꽃인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 하여 무척 사랑한다.꽃은 7월 초부터 10월 중순까지 개화하며 새로 자란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한 송이씩 핀다. 대부분의 품종은 이른 새벽에 꽃이 새로 피었다가 오후에는 오므라들기 시작하고 해질 무렵에는 꽃이 떨어지기를 반복하지만 반겹꽃이나 겹꽃 계통에 속하는 일부 품종의 경우 2~3일간 피어있기도 한다. 꽃의 모양은 대부분 종 모양으로 생겼으며 꽃자루는 짧은 편이며, 꽃 색깔은 붉은색, 분홍색, 연분홍색, 보라색, 자주색, 파란색, 흰색 등 다양하다.특히 무궁화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단 둘레에 많이 심어져 신성시되기도 했다. 또한 중국 선진(先秦)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해경’에서 언급된 ‘군자국’(君子國)에 관한 설명에 따르면, 무궁화는 ‘아침에 꽃이 피고 저녁에 꽃이 지는 훈화(君子國在其北…有薰(菫)花草 朝生夕死)’로 소개하고 있으며, 신라를 ‘무궁화가 피고 지는 군자의 나라’로 지칭하였다. 그리고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외교문서에 ‘근화향’(槿花之鄕,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을 언급하였고, 구당서 신라전(新羅傳)에도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으로 소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AD 897년 신라 효공왕 원년, 당나라 광종에게 보낸 국서에 신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지칭하였다. 이 국서를 초안한 사람은 대문장가 최치원이고 ‘최문창후문집(崔文昌候文集)’ 초안에 수록되어 있으며, 화랑의 원조인 국자랑은 무궁화를 머리에 꽂고 다녔다.고려의 예종도 고려를 ‘근화향’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의 규원사화(揆園史話)에는 ‘훈화(薰華, 향기 나는 꽃)’로 표현했다. 또한 장원급제자 머리에 꽂은 꽃도 무궁화였고, 혼례 때 입는 활옷에 무궁화 수를 놓는 것은 다산과 풍요를 의미했다. ‘무궁화’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 이후로, 그 이전에는 ‘목근(木槿)’ 또는 ‘근화(槿花)’, ‘순(舜)’ 등으로 불렀다.독립문 건축기념 행사 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무궁화’는 애국가의 후렴구에 등장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꽃으로 관습상 국화(國花)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철도 중에서 한때 가장 많이 편성되어 전국민의 꿈과 애환을 싣고 달렸던 열차도 ‘무궁화호’이며,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과 통신 위성에도 무궁화의 이름이 붙여졌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8월 8일을 무궁화의 날로 정한 것도 국회나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이고, 더 안타까운 사실은 일본의 국화인 ‘벚꽃(사쿠라, sakura)’이 이미 오래 전 우리의 도로변을 점령했다. 지자체들이 앞 다투어 ‘벚꽃 축제’ 경쟁을 벌이다 보니 벚꽃관련 행사는 해마다 늘어나고 가로수가 온통 벚꽃나무로 교체되는데 비해 무궁화 관련 행사나 80년대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정원수로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무궁화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젠 관공서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수 천 년동안 민족의 꽃으로 불린 무궁화가 그 어떤 꽃보다 홀대가 심각한 실정이다. 정부에서조차 무궁화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다간 정말이지 애국가 후렴구에서조차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무궁화 한그루 없는 삼천리 강산….”으로 바꿔 불러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무궁화가 국민에게 친숙한 나라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의 시급한 대책 마련을 강력히 촉구한다.

2018-08-16

인상파 화가들의 여름나기

▲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최근 일상 속 최고의 화두는 당연히 ‘날씨’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이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며, 지쳐버린 몸은 정신건강마저 위협하고 있다. 늘 찾아오는 여름 더위와 폭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우리를 힘들게 만든다. 무작정 에어컨에 의지해 더위를 피하기보다는, 가까운 미술관이나 도서관에서 미술 감상과 독서를 즐기며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찾아가는 지혜가 여름을 이기는 최고의 피서법인 것 같다. 과거 예술가들도 무더운 여름이 되면 자신만의 독창적 작품 활동을 통해 슬기롭게 이겨내곤 했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태양광선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았던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들과 파리시민들이 무더위를 이겨내며 보냈던 피서법을 명화(名畵)속에서 찾아보았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하여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했던 인상파 화가들은 과거의 표현양식을 거부하고 감각에 의존한 새로운 회화양식을 추구해 나갔던 유파로 잘 알려져 있다.그 중 인상파의 대표화가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1841~1919)는 무더위를 피해 자연 속에서 한여름을 즐기는 서민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왕실과 귀족 등 상류층만의 문화로 익숙해져 있던 미술을 대중들이 함께 참여하며 즐기는 문화로 바꾸는 역할에 앞장섰던 화가로도 유명하다.클로드 모네는 1870년 보불전쟁(普佛戰爭)이 발발하자 그의 아내와 런던으로 잠시 피난을 간 후 이듬해 프랑스로 돌아와 파리 근교의 아르장퇴유에 새로운 저택과 작업실을 마련했다. 그는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아르장퇴유를 배경으로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는데, ‘아르장퇴유의 뱃놀이’는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을 휴양지에서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센강(Seine)을 길게 끼고 있는 발두아즈 데파르트망의 남부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아르장퇴유는 모네뿐 아니라 르누아르와 브라크 등이 함께 이곳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파리 사람들은 무더운 여름이면 이곳을 찾아 요트를 타며 행락을 즐겼는데, 당시는 프랑스 전역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물질적인 풍요로움 얻고 있었다. 대다수의 중산층들은 이처럼 강가에 배를 띄워 노닐거나, 요트를 타고 즐기며 행복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을 여름 피서 중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겼다.한편 담백한 색조로 선과 포름을 명확하게 그리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던 르누아르 역시 센강을 배경으로 여름을 즐기는 파리 사람들을 여러 점 화폭에 담았다. 그중 그의 대표작중 한 점인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은 1876년 제작한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에 이어 1880년 여름에 제작한 대작으로 친구들과 뱃놀이를 하며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화가의 절친들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보트 위에서 즐기는 점심식사는 여유로움 자체이다. 당시 파리 중산층들은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이처럼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또한 여름을 즐기는 행복한 시간으로 인식했던 것이다.38도를 넘나드는 가마솥 더위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온열질환자가 증가하며 이로 인한 사망자들도 속출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높아지는 불쾌지수와 무더위로 무작정 짜증을 내기보다는 주변사람들과 함께 뜨거운 태양빛을 피해 정신적 여유를 함께 즐기는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 같다. 한여름에 즐기는 미술관 피서 또는 이색적인 휴양지로 적극 추천해 본다.

2018-08-14

8·14 기림일

▲ 금박은주 포항여성회장‘기림일을 아시나요?’ 라는 질문을 하면 지금까지 아는 사람들을 거의 만나기 어려웠다. 생소할 수밖에 없다. 기림일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국내에서 최초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이다. 그리고 2012년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지정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해 올해 첫 국가 공식 기념일로 행사가 치러질 예정이다. 하지만 이 기념행사에 국무총리 참석이 무산됐다고 하니, 일본과의 외교 문제가 결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아직 일본은 일본군 성노예제에 대해 공식사죄하지 않았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있은 지 27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간다면 10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몰염치로 일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슴아픈 미투 운동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김학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얼마 전 우리는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포항평화나비 청소년 지킴이단들과 함께 ‘1345차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열리는 수요시위에는 학생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많았다. 우리가 참여한 날도 과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했고, 연단 위에 올라가 발언을 하는 학생들의 결의 또한 대단했다.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지 못할 만큼 말이다.그리고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의 배려로 포항평화나비 청소년 지킴이단들과 함께 ‘평화의 우리 집’에 계신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 몸까지 불편한 할머니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우면서도 할머니 앞에서 숙연해지는 학생들 마음처럼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머뭇거렸다.김복동 할머니는 “공부 열심히 해라. 나라 잃은 설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몸이 불편하다는 기색없이 학생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줬고 혹시 돈이 없어 공부하기 어려운 학생이 있다면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도 수차례 했다.또 판소리가 특기인 길원옥 할머니는 즉석에서 남원가를 불러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었다.마지막에 김복동 할머니 손을 잡고 “할머니, 포항지진 때 천만원 기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500만원 기부했다고 하는데 할머니는 대통령보다 더 통 큰 기부를 하셨네요. 감사드립니다”며 할머니 손을 꼭 잡은 후 내려왔다.이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27명만이 생존해 있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포항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도 아흔이 넘어 늘 건강이 걱정이다.한편 포항여성회에서는 2018년 기림일을 맞아 대대적으로 포항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우선 기림일인 14일 오후 7시부터 영일대 버스킹 3번 무대에서는 ‘제6차 세계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포항 문화제’가 열린다.영일대를 찾는 관광객, 포항시민들과 함께 기념문화제를 열기 위해 열린 무대를 마련했다.또 18일 토요일에는 나눔의 집과 공동주최로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생활하고 계신 나눔의 집의 일상을 담은 영화 ‘에움길’ 상영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서 직접 그린 그림 전시회가 경북교육청 문화원에서 열릴 예정이다.지역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좋은 문화행사이다.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공감하는 시민들이나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지면을 빌려 공개적으로 초대장을 드리고자 한다.

2018-08-13

유통기한(流通期限)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 주 용광로 더위보다 필자의 마음을 더 빼앗은 말이 있다. 그 말은 바로 ‘유통기한’이다. 이젠 38℃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는 어느 지인의 말처럼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더위의 기세는 백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저녁 여섯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37℃를 나타내는 차량 온도계를 보면서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에어컨 마법에 걸린 필자에게 그 숫자는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교무실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갈 때까지의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필자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훅 들어오는 열기에 온갖 비속어를 쓰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차에 타자마자 에어컨을 켰다. 더위에 대한 고통과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에어컨이 제 역할을 하면서는 필자는 더위를 잊었다.그러다 무의식중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두 달 뒤를 생각해보면 효과가 있습니다. (중략) 불과 두 달 뒤엔 가을이 있으니, 아무리 극성스러운 더위라도 다 유통기한이 있으니, 정점을 지나고 있는 이 여름도 조만간 기력을 잃겠지 생각을 해봅니다. (하략)” 필자는 ‘유통기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뭔가로 쌔게 맞은 듯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고 주문처럼 이 말을 계속 되뇌었다.어쩌면 사람처럼 극한의 상황에 잘 적응하는 생명체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 적응력 덕분에 다른 어떤 생명체도 이룰 수 없는 발전적인 진화에 성공하였으며, 그 결과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으뜸 자리에서 다른 생명체들을 군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런데 필자는 여름을 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적응(適應)’이라는 단어가 맞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本性)을 보았다. 필자가 본 인간의 본성은 바로 ‘간사함’이다. 적응과 간사함의 관계를 동등하게 보는 필자의 생각에 대해 누군가는 비약이 심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인간에게 있어서만큼은 적응과 간사함은 동의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간사(奸詐)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필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 않을까 싶어 잠시 간사하다의 뜻을 인용해 본다. “원칙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의 이익에 따라 변하는 성질이 있다.”백년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더위의 맹공(猛攻)을 인간들은 에어컨이라는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더위의 맹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에어컨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진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냉방병에 걸려 고생한다. 필자는 40℃를 넘긴 어느 날 일부러 도심에 나가 보았다. 거기서 필자는 필자의 숨을 끊어 놓을 듯한 열기가 자연의 열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자연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것은 1m도 안 되게 따닥따닥 붙어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였다. 필자는 가로수보다 더 촘촘히 설치된 실외기 거리를 차마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바로 차로 돌아왔다. 필자도 어쩔 수 없는 간사한 인간이기에 바로 에어컨부터 켰다. 그리고 빠르게 실외기의 열기에 사로잡힌 도심을 벗어났다.도심을 조금 벗어나자 ‘유통기한’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은 때론 인간을 병들게 한다.필자는 교육에다 유통기한이라는 말을 붙여 보았다. 교육 유통기한! 과연 우리 교육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혹시 유통기한이 지난 교육을 우리는 아이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하고 있지는 않는가? 여름 방학도 유통기한이 다하고 있다. 곧 새 학기다. 새 학기에는 얼마나 신선한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지 모든 교사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2018-08-09

여름철 운동과 수분 보충

▲ 김상수 계명대 교수·사회체육학과올 여름은 1994년 이후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30℃가 넘는 날씨로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미국스포츠의학회(ACSM)는 28℃가 넘으면 장거리 경기(16km)를 금지하고, 낮의 온도가 27℃가 넘으면 장거리 달리기를 오전 9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에 실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더운 환경에서의 운동이 우리 몸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더운 환경에서의 운동 중 우리 몸의 가장 효과적인 체온조절 방법은 땀을 분비하는 것이다.땀 분비를 촉진하기 위해 피부로 혈액이 많이 배분되고, 운동을 위한 근육으로의 혈액 배분과 경쟁적인 관계에 있어 운동 능력은 떨어진다.무더운 여름철 15분 정도의 운동으로도 운동능력은 저하된다.우리 몸의 일일 총수분섭취량은 2천600㎖ 정도인데, 음료수 형태로 1천500㎖, 음식물로 800㎖ 섭취하고, 탄수화물이나 지방 등의 영양소가 체내에서 처리될 때 부산물로 300㎖ 수분이 생성된다.수분 배설은 대소변 등의 형태로 약 1천600㎖,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폐와 피부를 통해 1천㎖ 정도 배설된다.그러나 더운 환경에 노출되거나 운동 시에는 폐와 피부를 통하여 배설되는 수분의 양이 증가하게 되며 추가 수분 보충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탈수가 일어난다. 체액의 약 8% 정도 손실되는 탈수 상태에서는 심박수와 체온이 상승하며, 20% 이상 손실될 경우에는 심부전, 순환부전, 신부전 및 세포 손상으로 사망하게 된다.여름철 마라톤과 같은 장시간 운동 시 땀을 통한 수분손실은 시간당 2ℓ이상으로 총체중의 7∼8%에 해당한다. 체중의 4∼5% 정도에 달하는 수분만 손실되어도 최대유산소능력은 20∼30% 정도 줄어든다.여름철 더운 환경에서 운동할 경우 운동시작 30분 전에 500㎖ 정도 물을 마셔야 하며, 운동 중 10∼15분마다 물 한 컵을 마셔야한다.운동전 미리 물을 마시면 땀이 빨리 나서 체온을 낮은 상태로 유지해 운동에 도움이 된다. 더운 환경에서 땀으로 수분이 빠져나가면 혈액 농축 현상이 일어나 근육으로 가는 혈액량이 줄어들어, 운동은 무산소 대사 과정에 의존하게 되고, 젖산이나 이산화탄소 등 대사산물의 처리가 늦어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스폰지는 마를수록 흡수력이 좋아지지만 사람의 몸은 탈수가 진행되면 수분 흡수가 느려진다. 따라서 더운 날 운동은 목이 마르지 않아도 미리 물을 마셔 두어야 한다. 특히 나이가 많거나 체력이 허약한 사람은 이미 몸에서 탈수가 진행되어도 늦게 느끼게 됨으로 탈수로 인한 위험이 커진다.운동 중 탈수는 갈증으로 나타나는데, 갈증이 난다고 지나치게 물을 많이 마시면 어지러움, 두통,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이차탈수 또는 저나트륨혈증라고한다.탈수 시에는 나트륨 등 전해질과 포도당이 함유된 음료를 마시는 것이 좋다. 체온감소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차가운 음료보다는 8∼10℃ 정도의 음료를 권장한다.운동으로 체중이 3% 이상 줄었다면 체내수분 및 전해질 감소로 인한 열 질환의 위험이 높아짐으로 그날 중 재차 운동을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충분한 수분 섭취 후 소변을 본다면 탈수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판단해도 된다.1일 6∼10시간 더운 환경에서 일을 할 경우 몇개의 식염정제를 물과 함께 섭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무더운 날씨에서의 운동에는 전해질음료가 더 효과적이다.무더운 여름철 운동은 직사광선을 피하고 아침, 저녁 서늘할 때나 실내운동을 권장한다. 운동은 적게 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많이 할 때 상해를 입거나 몸이 상하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2018-08-08

두 바퀴로 가는 행복

▲ 강성태 서예가몇년 전부터 자출(자전거 출퇴근) 위주로 타기 시작한 자전거를 요새는 일상생활은 물론 주말 산악 라이딩까지 즐기며 쏠쏠한 재미를 더하고 있다. 가까운 마트나 시내 웬만한 볼 일은 자전거를 이용하고, 월 2~3회 구룡포 말목장성이나 연일 옥녀봉, 흥해 도음산 등지의 야산 등산로를 따라 MTB(산악자전거)를 타다 보면 흥건한 땀과 박진감 넘치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지난달 제15회 포항국제불빛축제가 열린 영일대해수욕장까지 효자동에서 자전거를 타고 손쉽게 다녀왔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폐철도 부지를 활용하여 한창 조성 중인 그린웨이를 거쳐 구 포항역 터를 지나 영일대해수욕장까지 승용차보다 더 빨리 도착하여, 해송에 자전거를 기대고 안장과 짐받이 위에 올라가 높은 위치에서 불꽃쇼를 보니 안성맞춤(?)이었다. 또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수많은 인파와 잔뜩 밀리는 차량 사이를 미끄러지듯 여유롭게 빠져나와, 송도를 거쳐 형산강 하류의 강둑에 잘 조성된 자전거길로 달려오니 밤길의 강바람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었다. 소소하지만 두 바퀴 자전거의 유용함이 다시 한번 더 느껴졌다.필자는 자전거로 매월 500km 이상, 연간 6천500km 정도의 거리를 타는데, 주행거리 90% 이상이 자출이다. 약 12km 정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게 되면, 가벼운 몸 동작으로 등허리에 살짝 땀이 배이고 은근슬쩍 기분이 좋아지며 몸은 가벼워진다. 그러면 하루가 즐겁고 마음도 가뿐해지며 일손도 잘 잡힌다. 퇴근할 때는 간혹 정해진 코스가 아닌 인근의 마을과 들길, 산길을 두루 거치는 ‘퇴근 라이딩’을 하기 때문에 주행거리도 많아지고 운동량도 늘어나게 되니, 말 그대로 생활 속의 운동을 실천하는 셈이다.철마다 시시때때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펼쳐지는 길에 따라 사뭇 감흥이 다르게 피어난다. 들길과 산길에는 꽃과 새들이 반겨맞고 부드러운 바람이 말을 걸어오며, 양탄자같은 낙엽 길과 솜털같은 눈길을 굴릴 때는 그야말로 개선장군(?)이 된 것처럼 들뜨고 뭉클해진다. 또한 찌는듯한 염천의 무더위는 이열치열로 질주하며 밀어내고, 혹한의 칼바람에도 거침없이 페달을 밟다보면 어느새 고뇌는 기우가 되어 땀방울로 승화한다.그러한 자전거 타는 묘미를 더하기 위해 한달 전, 대학 3년생 아들과 함께 4박5일로 인천~부산까지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완주했다. 인천 아라뱃길갑문에서 부산 낙동강하굿둑까지 자전거길은 633km지만, 도중의 식사와 숙소, 길 찾는 시간, 명소 탐방 등을 감안하면 실제 700km 정도의 거리를 가야 한다. 5일동안 구비구비 강변과 산자락을 누비면서 햇볕, 바람, 구름, 이슬비, 천둥, 번개, 소나기, 안개, 무지개 등 변화무쌍한 기후를 접했고,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와 향토적 정취를 느끼면서 주위의 풍광과 자연의 현상을 보고 듣고 맡았으며, 지역별 특색 먹거리를 별미로 맛보기도 했다. 전국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에 조성된 자전거길은 강과 산을 연결시키고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며 지역과 지역, 마을과 들판, 사람과 사람을 연계시키고 만나게해주는 소통과 희망의 통로로 여겨졌다.세상만사 오르막길 내리막길이라 했던가? 고행의 오르막길을 오르며 인내심을 키우고, 짜릿한 내리막길을 질주하며 쾌감을 느낀다. 그렇듯 자전거는 의지와 열정, 도전과 모험, 성취와 보람으로 내 삶에 활력과 행복을 안겨주고 있으니, 그 어찌 자전거를 즐겨 타지않고 보물같은 애마(愛馬)로 여기지 않으랴!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전거 타고 가는 여정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활주로같은 곧은 길을 나는듯 달리다가 굽어진 길에서는 완급을 조절하며 지나가고, 숨가쁜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여유로운 내리막이 있다. 때에 따라선 아슬아슬 중심 잡다가 휘청대며 넘어지기도 하고. 그래서 자전거는 부단히 페달을 밟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쓰러지고 만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며 내 삶을 채근하는 듯하다.

2018-08-07

스마트 기술의 제자리는 ‘세상 속, 사람들 옆’

▲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하루 종일 덥다는 말을 달고 산다. 대구, 영천, 경산, 포항 등 내 생활 반경 내의 도시들이 돌아가며 전국 최고 기온으로 호명되니, 서울 사는 친구들이 안부를 물어온다. 가뜩이나 살림살이 고되고 마음 힘든 사람들, 한밤 딱 몇 시간만이라도 숨 좀 쉴 수 있게 열대야만 어서 좀 물러가 주면 좋으련만. 날마다 최고 기온을 경신한다는 소식과 함께 들려온 몇 개의 비보는, 평소 웬만해선 분노 게이지가 잘 올라가지 않는 나에게조차 달아오른 용광로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어느 댁 귀한 자식, 손주, 조카였을 꽃 같은 네살배기 아이가, 어른들의 부주의와 어이없는 실수로, 무더위 속 어린이집 통학 차량에 혼자 남겨져 목숨을 잃었다. 아이가 버스 뒷자리에 잠들어 있는 것을 운전자도, 인솔교사도 7시간이 지나도록 몰랐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부주의고 실수였다. 신문기사 속 아이 외할머니의 짧은 인터뷰 글귀는 절규가 되어 내 마음을 후벼팠다. 고통에 몸부림쳤을 그 이름 모를 어린 생명을 애도하며 그날 아침 나도 한참을 울었다.어린이만큼이나 체력적으로 더위에 취약한 노인들의 건강과 안전도 초비상이다. 세월과 함께 다져진 무던함으로 인해,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무더위를 그냥 견디다 탈진해 쓰러지시면 주위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 문제다.살인적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생업 현장에 뛰어드는 청장년층의 안타까운 사망도 잇따르고 있다. 밭일하다 사망한 외국인 근로자는 이미 오전 중에 한차례 쓰러져, 그만 쉬라는 주위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을 더 하다 변을 당했다고 한다. ‘폭염’ 속에서 약해진 자신의 신체 상태를 정확히 인지 못한 상황에서, 인간의 ‘투지’가 오히려 화를 부르는 원인이 됐다.농작물과 가축의 피해도 문제다. 1년 공들인 과실이며 곡식들이 수확을 코앞에 두고 겉부터 타들어가고, 정성들여 키운 가축이 폐사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농부의 마음도 뙤약볕 아래 시커멓게 같이 타들어 간다.‘살인적인 무더위’, 누가 언제 만든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21세기, 첨단 기술의 시대에, 더위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하다니…. 세상을 한번 바꿔 보자며 과학기술도의 길에 입문한 한 사람으로서, 분노와 함께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문제가 명확해진 이상 해결책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도 있다.어린이집 통학차량은 운전기사와 인솔교사, 원장에게 몇 명이 탑승하고 하차했는지 정도는 전광판과 앱(App)으로 큼직하게 보여줘야 한다. 설사 아이가 차 안에 혼자 남겨지더라도, 아이가 있다는 것이 감지되면 차 문은 절대 잠기지 않아야 하고, 스마트키를 보유한 운전자가 아이를 혼자 차에 두고 멀어지려 할 때 차는 큰 경적소리를 내어 사람의 부주의를 일깨워야 한다.혼자 사시는 할머니들께는 손주 목소리 닮은 말하는 인형(인공지능 스피커)을 하나씩 보내드리고, 수시로 귀여운 잔소리를 좀 해드렸으면 싶다. 혹시 할머니가 쓰러지시면 그 즉시 인형은 응급 구조사가 되어 119를 부르고 현장의 영상을 구조대에 보내며 응급조치를 돕는다.뙤약볕 아래 농사는 이제 로봇과 드론에게 맡기고, 사람은 시원한 집안에서 관리자 역할을 하면 되는 스마트한 농업환경도 하루 빨리 구현되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스마트 기술의 제자리는 ‘세상 속, 사람들 옆’이어야 한다. 사람들 가까이서, 사람들이 가장 아파하는 곳을 제대로 짚어 내고, 혹시 있을지 모를 사람들의 치명적 실수도 뒤에서 감당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폭염 속 버스나 외딴 집에서 아이와 할머니를 살리고, 농부와 작물을 뙤약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2018-08-06

교육 민심(民心)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선생님, 너무 재밌어요.” “뭐가 그렇게 재밌니?” “수학수업도 재밌고요, 로봇 수업도 재밌고요, 드론 수업은 더 재밌어요. 저는 이 학교에 꼭 올 거예요.”영천 신령면이 ‘40.3℃’로 전국 최고 온도를 경신할 때 그 옆 지역인 영천시 화북면 산자연중학교에서는 2학기 전학생과 내년 신입생 선발을 위한 2018 여름 진학 캠프가 열렸다. 전국 단위 모집 학교라 캠프 참가 학생들도 서울을 비롯하여 세종, 울산, 부산 등 전국에서 왔다.해마다 진행되는 캠프이지만 올해는 유독 캠프 접수 마감이 빨랐다. 마감 시기는 매년 빨라지고 있고, 학생들의 주소지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산자연중학교 입장에서 보면 정말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교육계 전체를 놓고 보면 결코 반가워 할 일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진학 캠프를 신청한 사연을 들어보면 교육 붕괴를 더 절감하기 때문이다.“선생님, 우리 아이는 공부는 필요 없어요. 단 몇 분만이라도 학교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캠프 참가 학부모님들과의 면담 내용 중 빠지지 않는 내용이다. 이 말 다음에는 반드시 다음의 이야기가 자동으로 나온다. “공부 잘 하는 아이만 학생인가요? 우리 애처럼 생각이 자유로운 애들은 학생도 아닌가요? 애가 자든 말든 학교에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요. 그리고 애가 뭔가를 좀 해보려 해도 기회조차 주지 않아요. 수행평가는 공부 잘 하는 아이는 늘 만점이고, 기를 쓰고 죽도록 해도 우리 애는 늘 감점이에요. 그래서 아이가 수업을 포기 했습니다. 그런 아이를 학교에서는 그냥 내버려 둡니다. 다른 아이에게 방해만 하지 말라고 한답니다. 학교가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아프게도 이보다 더 심한 이야기도 많이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학부모님들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시작하는 캠프이다 보니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그래도 준비를 한다고는 하지만 늘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미 한번 학교에서 상처를 받은 학생과 학부모이기에 더 조심스럽다.필자는 세상에서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불신(不信)을 신뢰(信賴)로 바꾸는 일이라 생각한다. 불신은 마치 불에 덴 것과 같다. 불에 덴 피부를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를 필자는 똑똑히 기억한다. 훨훨 타오르던 달집이 치워진 자리는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그 어떤 풀도 자라지 않는다. 자연이 이런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야 오죽할까.캠프 입교식 날 부모님과 오는 학생도 있지만, 상당수가 할아버지 할머니 등 온 가족이 온다. 학교에 오신 조부모님들은 학교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부모님보다 훨씬 많으시다. 그런 조부모님들일수록 교육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른다. 분명 그러한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이유를 들어보면 필자가 교육자라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 나라 교육을 성토하신 뒤에는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으시다. “선생님, 도대체 지금 학교는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얼마만이라도 학교에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무리한 부탁입니까?” 교육부는 정부 눈치보기식의 낯선 교육 정책들을 만들기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캠프 기간 내내 학생들은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즐겁게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캠프 마지막 날 필자는 학생들을 면담하였다. 면담의 주된 질문은 왜 산자연중학교에 오고자 하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말이 바로 “교육 민심”이라는 것을 필자는 알 수 있었다. 교육관계자들에게 교육 민심을 대신 전달한다.“다른 학교에서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무작정 외우라고 하잖아요. 또 친구들과 싸워서 이기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싫어요.”

2018-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