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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한(流通期限)

등록일 2018-08-09 21:22 게재일 2018-08-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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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지난 주 용광로 더위보다 필자의 마음을 더 빼앗은 말이 있다. 그 말은 바로 ‘유통기한’이다. 이젠 38℃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는 어느 지인의 말처럼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더위의 기세는 백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저녁 여섯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37℃를 나타내는 차량 온도계를 보면서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에어컨 마법에 걸린 필자에게 그 숫자는 단지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교무실을 나와서 주차장으로 갈 때까지의 필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필자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훅 들어오는 열기에 온갖 비속어를 쓰면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주차장으로 갔다. 그리고 차에 타자마자 에어컨을 켰다. 더위에 대한 고통과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에어컨이 제 역할을 하면서는 필자는 더위를 잊었다.

그러다 무의식중에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두 달 뒤를 생각해보면 효과가 있습니다. (중략) 불과 두 달 뒤엔 가을이 있으니, 아무리 극성스러운 더위라도 다 유통기한이 있으니, 정점을 지나고 있는 이 여름도 조만간 기력을 잃겠지 생각을 해봅니다. (하략)” 필자는 ‘유통기한’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뭔가로 쌔게 맞은 듯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고 주문처럼 이 말을 계속 되뇌었다.

어쩌면 사람처럼 극한의 상황에 잘 적응하는 생명체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 적응력 덕분에 다른 어떤 생명체도 이룰 수 없는 발전적인 진화에 성공하였으며, 그 결과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으뜸 자리에서 다른 생명체들을 군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는 여름을 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적응(適應)’이라는 단어가 맞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인간의 본성(本性)을 보았다. 필자가 본 인간의 본성은 바로 ‘간사함’이다. 적응과 간사함의 관계를 동등하게 보는 필자의 생각에 대해 누군가는 비약이 심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인간에게 있어서만큼은 적응과 간사함은 동의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간사(奸詐)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필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지 않을까 싶어 잠시 간사하다의 뜻을 인용해 본다. “원칙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의 이익에 따라 변하는 성질이 있다.”

백년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더위의 맹공(猛攻)을 인간들은 에어컨이라는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의지해 버티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더위의 맹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에어컨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진다.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냉방병에 걸려 고생한다. 필자는 40℃를 넘긴 어느 날 일부러 도심에 나가 보았다. 거기서 필자는 필자의 숨을 끊어 놓을 듯한 열기가 자연의 열기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자연의 열기보다 더 뜨거운 것은 1m도 안 되게 따닥따닥 붙어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였다. 필자는 가로수보다 더 촘촘히 설치된 실외기 거리를 차마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바로 차로 돌아왔다. 필자도 어쩔 수 없는 간사한 인간이기에 바로 에어컨부터 켰다. 그리고 빠르게 실외기의 열기에 사로잡힌 도심을 벗어났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자 ‘유통기한’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세상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은 때론 인간을 병들게 한다.

필자는 교육에다 유통기한이라는 말을 붙여 보았다. 교육 유통기한! 과연 우리 교육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혹시 유통기한이 지난 교육을 우리는 아이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입하고 있지는 않는가? 여름 방학도 유통기한이 다하고 있다. 곧 새 학기다. 새 학기에는 얼마나 신선한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지 모든 교사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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