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짙어지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6월)이 가고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아파치 족, 7월)이 열렸다. 태풍에 호들갑을 떠는 인간들과는 달리 의연한 자연은 겸허히 태풍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힘, 자연이 유구한 것은 바로 이 수용(受容)의 힘 때문이다. 수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정(認定)해야 한다. 서로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인간과는 달리 자연은 서로를 인정한다. 그러기에 들판에서는 개망초와 달맞이, 그리고 소리쟁이가 어울려 자란다.
인정할 줄 아는 힘 안에는 양보와 나눔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때가 되면 다음 주자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렇다고 인간처럼 영원히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애기똥풀이 개망초에게 자리를 내어주듯 개망초는 또 달맞이꽃을 위해 기쁘게 진다. 그렇게 한 바퀴가 돌면 다시 애기똥풀이 한 세상을 만든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뭔가 되지 않을 때 사람들은 말한다. 순리대로 하라고! 그럼 순리(順理)란 무엇인가? 순리의 사전적 의미는 “도리나 이치에 순종함”이다. 순리처럼 우리말은 사전을 볼 때 더 답답할 때가 많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순리의 뜻을 찾다가 그나마 손에 잡히는 설명을 찾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마땅히 하고, 절대 해서 안 되는 일은 마땅히 하지 않는 것”
순리에 대한 설명을 수십 번 읽으면서 필자는 세상이 혼돈스러운 이유를 알았다. 그 이유는 세상을 이끄는 단어인 순리의 뜻을 세상 사람들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학과 관련된 용어들이 추상적인 것은 그만큼 세상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정할 줄 모르는 인간들은 세상을 자기 식으로 정의하려는 욕심을 부린다. 그 욕심이 억지를 만들고, 억지는 또 말도 안 되는 오류를 낳고, 그런 오류들이 세상을 혼돈스럽게 만든다. 필자부터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무엇이든 정의부터 하고 보는 것은 필자 또한 세상을 혼돈스럽게 만드는 오류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누구는 인류의 발전은 오류에서 시작됐다고 인류를 위한 변명을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오류는 오류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삶이 조금은 편해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범하고 있는 오류들의 역습에 병들고 있다. 걱정은 그 역습의 강도가 시간이 갈수록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미래학자들 중 인류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킬러 로봇 방치 시 인류 멸망, 2045년이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렬할 것,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빙하가 녹아 지구에 재앙이 닥칠 것!” 미래학자의 경고 중 어느 하나 비현실적인 것이 없다. 그리고 결코 먼 미래의 일도 아니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는 어쩌면 눈뜬 채 지구 멸망을 지켜봐야 하는 마지막 인류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최대한 빨리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할 것이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 시인 체사레 파베세는 “이 세상 유일한 즐거움은 시작으로부터 온다. 시작은 사는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삶은 매 순간 시작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비록 태풍 때문에 취임식은 열리지 못했지만, 민선 7기가 출범했다. 분명 새로운 시작이다. 시인의 말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민선 7기의 주인공들은 “이 세상 유일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처럼 특정인과 특정 정당의 힘만 믿고, 그 정당의 논리대로 지자체를 운영하는 오류를 범했다가는 미래학자들이 보내는 경고 이상의 엄청난 역습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지자체 운영에 자연의 순리가 가미되어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사는 것이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날이 조속히 오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