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 최근 수년간 가장 떠들썩한 11월이다. 정치 혼돈이 수능 혼돈까지 불렀다. 복수정답과 불수능에 수험생들의 근심이 깊다. 아무튼 11월의 떠들썩함에 많은 것들이 잊혀졌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엘리펀티즘(Elephantism), 즉 `코끼리의 미덕`이다.
코끼리하면 동물원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것이 그렇듯 그것은 편견이다. 동물원의 코끼리는 본질에서 벗어난 인간의 욕심과 잔인함이 만든 대표적 표본이다. 엘리펀티즘은 그런 잘못된 표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본질적인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다. 동물 생태학자들은 온대 우림의 곰, 열대 우림의 나무늘보보다 코끼리가 자신들이 살아가는 생태계를 지키는데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느 때보다 사랑과 관용, 이해와 배려, 그리고 화합이 필요한 11월 말이기에 동물학자들이 전하는 코끼리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려 한다. 건조 지대에 있는 물웅덩이는 생태계 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런 물웅덩이 대부분을 만드는 것이 코끼리라고 한다. 코끼리는 우기에서 건기로 옮겨가는 이동기에 저절로 생긴 작은 물웅덩이를 긴 엄니와 앞발을 이용해 흙을 파거나 발로 차서 더욱 커다란 물웅덩이를 만들어 나간다. 이 웅덩이는 코끼리 자신에게도 중요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로 인해 그 주변에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물웅덩이 주변에는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다른 동물들이 그것들을 먹는다. 어떤 이들은 이런 엘리펀티즘을 소박하고 느리지만 힘을 모아 소외된 자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큰 덩치만큼이나 큰 마음을 실천하는 코끼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11월의 본질을 생각한다. 무거웠던 세월을 훌훌 털고 있는 자연을 보면서 마음과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11월!
비워지는 것이 결코 유쾌한 일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대상이 자연이라면 비워짐과 비례해 유쾌함은 커진다. 웃을 일이 없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필자는 내려놓음의 미덕을 실천하는 자연을 보면 미소가 핀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첫 눈이 결코 반갑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나서 내년 봄에는 정말 희망 가득한 삶을 꽃 피우기를.
언제나 그렇듯 자연의 이야기를 들으면 필자는 인간의 한 개체로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자연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 하지만 지금,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은 뭔가를 잘못 생각해도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을 들라면 필자는 목불견첩(目不見睫)을 들 것이다. 이 말은 `눈으로는 자기 눈썹을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허물을 잘 알지 못하고, 남의 잘못은 잘 봄을 비유한 말이다.
우리는 언제쯤 코끼리의 덕을 배울 수 있을까. 분명 자연은 진화를 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빠르게 퇴화(退化)하고 있다. 말로만 배려, 나눔, 희생, 공생을 떠들어 댈 뿐 행동은 정반대로 하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지난 주말 필자는 농촌 봉사활동을 마친 지인들과 시장에 들렀다가 진정한 코끼리를 봤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으면서 답답한 속이 시원해졌다.
“다들 웃기지 마라케라. 저거가 무슨 국민들을 위한다고. 야당이고 여당이고 정치하는 인간들 다 저거 욕심 때문에 난리 법석인 거 누가 모를 줄 아나. 저거 대통령 한 번 해 묵을라꼬 국민 이름 팔고 있는지 모를 줄 아나. 진짜 국민들을 위한다면 대통령 선거 안 나겠다고 하고 지금처럼 해봐라. 아마 국민들은 저거들을 영웅으로 볼끼다. 다 똑같은 것끼리 웃긴다. 잠룡은 무슨, 잡룡이라 케라.”
카메라 앞에서는 한없이 심각하고, 카메라 밖에서는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이 나라 정치인들, 그들은 코끼리 근처도 못가는 인간들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