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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입학식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철이 없는 인간 사회에서 유일하게 철을 지키는 것은 시간 뿐이다. 그것이 때론 부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 일 중에 하나라도 지켜지고 있는 것이 있어 다행이다. 시간에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완전히 비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지.철은 없고, 갑자기 힘이 생겨 무식해진 국회의원들은 또 다른 탄핵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기들 말이 곧 진리라고 믿는 막가파 국회의원들에 의해 이 나라 국회 문제 해결 공식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바로 `묻지 마 탄핵`이다. 더 이상 이 나라 국회에서 탄핵은 큰 일이 아니다. 탄핵이 일상이 되어 버린, 아무렇지도 않게 탄핵을 이야기하는 막가파 국회의원들, 그들부터 탄핵하자고 외치고 싶지만 철없는 그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기 싫어 이야기를 접는다.변화에 대한 욕망과 그 결과는 분명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절대(絶對)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누구에게는 사랑이, 또 누군가에겐 종교가 그 대상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그 절대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가 상대적 개념으로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절대는 상대적 개념의 절대가 아니다. 그럼 세상엔 사람들이 바라는 그런 `절대`가 존재할까?절대는 때론 당연함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에게 무언가를 물었는데, 딸아이가 한 말에 몹시 당황한 적이 있다. “아빠,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함의 뜻을 잊어버릴 정도로 당연하다는 말이 크게 들렸다. 그래서 당연함의 뜻을 찾아보았다. 사전은 `일의 앞뒤 상황을 볼 때 마땅히 그러함`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럼 마땅함이란 또 어떤 건가. 뭔가 깊이 파고들면 더 복잡해지는 이 나라 정치처럼 사전은 마땅함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알맞다, 옳다` 등의 서술어가 `마땅하다`를 설명하고 있었다.많은 말들이 가치 판단과 관련돼 있듯 당연함, 마땅함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절대적 가치와 진리가 사라지고 힘이 진리를 만들어가는 지금, 가치와 진리의 의미가 몹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절대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혼돈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힘으로 억지 진리를 만들어가는 자들이 판을 치는 2017년 국회와 의원들, 그들은 궤변론자(詭辯論者)들임이 틀림없다. 이 나라에 괴변(怪變)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다.3월이 되면 당연한 일이 있었다. 졸업식만큼이나 떠들썩했던 입학식! 하지만 그런 입학식의 모습은 과거 시간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야단은 야단이다. 모든 학교 교문 앞에는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 일부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만국기까지 펄럭이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교육 통계를 보면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작년에 무려 60곳이 넘었다고 한다. 또 입학생이 10명 미만인 학교가 1천395개교였으며, 경상북도와 전라남도는 각각 217개교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인구 절벽 시대에 입학생 수 절감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학교 존립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 이 나라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정치인들이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 또한 이것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밥통들이니까. 그런데 세상에는 분명 예외가 있다. 필자는 올해 산자연중학교의 입학식 이름을 글로벌 입학식이라고 지었다.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다른 학교와는 달리 해마다 입학생 수가 늘고 있는 산자연중학교의 글로벌 입학식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2017-03-02

봄의 의미와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 강희룡 서예가가끔씩 한파가 닥쳐와 몸을 움츠리게 하지만 우수도 지나 봄이 성큼 다가왔다. 해도 제법 높이 올라오고 서릿발 사이에서도 얼었던 풀잎이 푸른빛을 되찾고 있다. 봄을 일찍 맞는 강가의 나무들은 잎눈과 꽃눈을 틔울 준비를 하느라 조금씩 부풀고 있다. 모두들 봄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옛 사람은 봄을 어떻게 맞이했고 어떻게 느꼈을까.윤선도 선생의 `고산유고` `봄의 의미에 대한 책문(對春策)`을 살펴보면 `태극(太極)이 쪼개지고 음양이 나뉜 뒤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서 네 계절이 생긴다. 해는 황도의 별자리에서 운행이 끝나고 달은 열두 달 뒤 운행이 끝나서 해와 달의 도수가 마감이 되면 한 해가 다시 시작되는데 이것을 봄이라고 한다. 봄과 관련된 날은 갑을(甲乙)이고, 봄의 임금은 태호이며, 봄의 신은 구망(句芒)이다. 봄은 무성하고 온화한 기운이 온 세상에 가득 피어 올라와 오로지 뭇 생명의 고동을 울려 만물을 이루어 자라나게 하는 것을 일삼기 때문에 봄의 작용은 낳음(生)이다. (중략) 봄은 사계절을 통틀어서 시작이 되고, 인(仁)은 사단(四端)을 통괄하여 근본이 된다. 이 봄은 만고에 변하지 않으니 이 인은 천 년을 흘러도 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간의 봄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에게 있는 인으로 돌이켜야 하고, 시간의 봄을 체득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에게 있는 인을 다해야 한다.` 봄을 인간완성의 시작인 인과 동일시로 풀이한 것이다.중국의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도 자연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의 변화원리를 파악해 거기에 적응하고 문명을 일구어내고 문화를 창조할 것을 강조했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태어남과 죽음, 그것만 자연스럽고 나머지는 모두 인공과 인위의 조작 속에서 이뤄지는 것 같다. 사람이 자연과 직접 대면하지 않고 다른 온갖 수단을 개입시킴으로써 편리함을 느낀다면 당연히 자연에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의 법칙과 원리를 이성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그 의미를 감성으로 느끼기도 한다. 노자는 자연을 불인(不仁)하다고 하였다. `천지는 불인하다. 만물을 풀개(芻狗)로 여긴다.` 여기서 풀개란 풀로 엮어서 제사에 쓰고 버리는 개 모양의 인형을 말한다. 노자가 보기에 자연은 만물을 만들어내서 제각기 자기 생긴 대로 살아가도록 두되 절대로 어느 하나를 특별히 배려하거나 더 사랑하지 않는다. 아무리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게 한다. 그러니 사람은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여 거기에 적응하여 살아야 하고 자기 몸을 흐르는 자연스러운 순환을 감지해 순조롭게 흐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을 기계적으로 자연과학적으로 보는 관점도 필요하지만 이 삶이 물질적으로 재단되어지지 않았는지 누구나 그 의미를 새겨볼 일이다. 봄은 오랜 세월을 두고 오고 갔지만 그 오고 감을 느끼고 의미를 되새겨보는 누군가가 없다면 긴 세월 그냥 오고 간 그 봄일 뿐이다. 후한 때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의하면 한나라 원제(元帝)때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흉노 왕에게 후궁 한 명을 보내기로 했는데 중국 4대 미녀 중 한 사람인 왕소군이 선정되어 볼모로 시집을 갔다. 흉노의 생활지역이 초원이라 봄이 와도 주변에 꽃이 보이지 않자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하략) 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이 시에서 춘래불사춘이란 대목은 요즘 정치인들도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다. 또한 시의 첫 구절인 호지무화초는 조선시대 어느 고을 향시 주제로 선정되자 수많은 응시생들은 왕소군의 고사를 들어 장광설을 늘어놓았는데, 막상 장원에 뽑힌 작품은 덩그러니 제목만 네 번 반복해서 쓴 사언절구였다.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고 하나,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엔들 화초가 없을까, 호지무화초/어찌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으랴마는, 호지무화초/오랑캐 땅이라서 화초가 없다네.`

2017-02-24

할매봇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 주 대구에서는 `제5회 한국 로봇컵 오픈(RoboCup Korea Open 2017) 대회`가 열렸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그리고 우리나라부터 중국·대만 등 해외까지 연령과 국적을 불문한 로봇 마니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열띤 경쟁을 펼쳤다. 경쟁부문은 축구, 온 스테이지(댄스), 레스큐(rescue) 등 6개 부문 12개 종목이었다. 간혹 뉴스에서만 보던 로봇 대회를 현장에서 보는 기분이란 별나라가 있다면 그곳에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일 것이다. 로봇컵이 열린 대구 엑스코 5층 컨벤션홀은 분명 필자에게는 별나라였다.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컨벤션 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필자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황홀경의 대상이었다. 로봇을 든 참가자들에게 책상은 사치였다. 로봇을 들고 앉으면 그곳이 곧 로봇 연구실이었다. 로봇 옆에는 항상 컴퓨터가 있었다. 로봇과 컴퓨터, 그리고 사람의 혼연일체. 그 모습은 위대한 그림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와는 분명 달랐다. 필자는 정치 악취가 심한 이 나라에서 오랜만에 눈물겹도록 희망적인 모습을 보았다. 프로그래밍에 심취해 있는 초등학생들은 로봇 전문가였다. 자신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두고 열띤 토론을 하는 그들에게서 광장의 오염된 촛불이 아닌 진정으로 이 나라를 밝힐 희망의 불꽃을 보았다. 처음 보는 대회장 모습만큼이나 대회 종목들도 필자에겐 너무도 낯설었다. 하지만 대회 참가자들의 로봇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감동으로 느끼지는 순간 낯섦도 금방 사라졌다. 로봇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가 되어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회장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뭉클한 뭔가가 차올랐다. 로봇을 든 참가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특별한 기운은 분명 아우라(Aura-靈氣)였다.대회이다 보니 경기가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서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탄식과 환호! 하지만 그런 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승패와 관계없이 초등학생들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은 경기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분석 토론했다. 그리고 능숙하고도 민첩하게 컴퓨터를 열고 프로그램을 수정·보완했다. 그들에게서 패자의 아쉬움이나 승자의 거만함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대회란 단지 자신들의 프로그래밍 정도를 확인하고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는 학습의 장이었다.창조 경제니 뭐니 많이들 떠들어대지만 다들 추상적(抽象的)인 이론에 지나지 않았다. 필자는 로봇컵 현장에서 창조의 본 모습을 봤다. 다른 사람이 내린 결론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기존의 결론을 변화·발전시켜 새로운 과정과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창조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로봇컵 참가자들이야말로 이런 창조 정신을 실천하는 실천가였다.산자연중학교 중에도 로봇동아리가 있다. 동아리 이름은 로봇과 사람의 줄임말인 `로사`(ROSA)다. `로사`는 지난해 한국 로봇컵 온 스테이지 부문에서 1위를 해 한국 대표로 독일에서 열린 2016 로봇컵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한 이현정 학생의 재능 기부로 2016년 9월에 만들어졌다.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학교에 로봇동아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과 소통하려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생활 자세를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 할 것이다.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로봇의 역할에 대해 방학을 반납하고 탐구, 토론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프로그래밍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로봇의 이름은 할머니와 로봇의 줄임말인 할매봇입니다. 산자연중학교에는 마을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학교 시간이 있습니다. 할매봇은 바로 저희의 이야기입니다” 스토리가 있는 학생들의 공연에 심사위원들은 2위를 주었고, 산자연중학교 할매봇은 그렇게 한국 대표가 되었다.곧 신학기가 시작된다. 신학기에는 죽은 교육 대신 로봇컵 대회 현장과 같은 창조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2017-02-23

비상(非常)을 넘어 비상(飛上)하라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우리나라는 현재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다. 정치·사회·경제 어느 한 곳도 안정되고 평온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의 위기라기 보다는 전 세계 위기와도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지난 연말 `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비롯된 대통령 탄핵사태는 민심의 분열로 이어져 `촛불시위`와 `태극기 집회`라는 새로운 국민들의 정치 참여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갈등에서 오는 좌·우파의 균열은 사회적 모순과 부정을 송두리째 뽑아내어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시대정신을 집단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급진적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진보세력과 경제적 성장 뒤에 숨겨진 사회적 모순을 감수하더라도 성장과 발전이 주는 안정을 도모코자 하는 보수단체들의 시위 또한 우리나라의 숨겨진 양면성인지 모른다.무엇이 진실이며 민주사회의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밝히려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의 새 기틀을 마련해 나가야 하겠다.현재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정국은 분명 위기이며 비상시국이다. 현직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국가적 위기와 더불어 핵무기 개발을 강행하고 있는 북한의 무력시위, 새로운 미국 트럼프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EU 붕괴 위기 등 어느 한 곳도 넉넉함을 느껴 볼 수가 없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흔히 총체적 위기이며 비상시국사태라고 말하곤 한다. 국가의 존립과 안녕이 그 어느 때 보다 큰 위협을 받고 있으며 빠른 경제성장에서 오는 사회적 안정은 20년 전 IMF 외환위기 때의 위기로 회귀하려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천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자주국가의 정통성을 의연히 이어온 민족이지 않은가? 이번 총체적 위기 또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본다. 총체적 위협요소인 `비상(非常)`을 넘어 새롭게 `비상(飛上)`할 수 있는 지혜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하나의 단어가 가지는 상반된 의미는 극과 극이 서로 통한다는 의미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기에 `비상`이 가지는 단어적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뜻밖의 긴급한 사태라는 뜻을 가진 `비상(非常)`과 높이 날아오름의 `비상(飛上)`은 어떤 관심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적 이미지로 구분되어 해석될 수 있다. 부정적 요소를 극복하고 긍정적 요소를 최대한 부각한다면 새로운 전환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어려움과 고난을 극복하면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다는 언어적 의미 이상의 광의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이제 긴 겨울도 지나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서 있다. 지난 겨울 움츠렸던 일상에서 벗어나 긍정적 사고로 새롭게 비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흔히들 흐린 뒤에 맑은 날이 오고 비온 뒤에 더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지금의 어려움에 좌절하기 보다는 긍정적 사고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생각된다.미국의 작가이며 사회운동가인 헬렌 켈러가 남긴 글 중 “인간의 성격은 편안한 생활 속에서는 발전할 수 없다. 시련과 고생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은 단련되고, 또한 어떤 일을 똑똑히 판단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며 더욱 큰 야망을 품고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라는 명언처럼 시련을 굳건히 이겨 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 국민들은 비상(非常)을 넘어 비상(飛上)의 나래를 달고 새롭게 날아오려는 원대한 힘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2017-02-22

예술, 어디로 가는가?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세상은 세월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대체로 세태의 변화는 가랑비 옷 젖듯 하여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어, 언제 이렇게 변했지?`하며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 법인데, 오늘날은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다큐멘터리의 오버랩 화면을 보는 듯 휙휙 변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기계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세대차를 단순한 연령의 차이가 아니라 문명의 발전에 쉽게 적응하는 스마트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로 구분하여 소위 `아재`라는 신조어 아닌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시대의 빠른 변화만큼 사회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풍속도를 만날 수 있다.문화예술은 어떤가?얼마전 나흘을 꼬박 집에서 보낸 적이 있다. 심한 몸살로 코밑이 보기 흉하게 헐어 밖에 나갈 처지가 못 되었던 것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아무것도 않고 드러누워 최근 종편TV에서 방영되어 대박이 났다는 `도깨비`란 드라마의 재방송을 이틀에 걸쳐 첫 편부터 끝까지 보았다. 드라마 `도깨비`는 전래동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판타지다. 비슷한 시기, 공중파TV에서도 전생과 현생을 넘나드는 `도깨비`와 비슷한 형식의 판타지 `푸른 바다의 전설`이란 드라마가 인기였다. 후속편 드라마 `사임당`도 비슷한 형식이 도입되었음을 예고편에서 알렸다. 과학문명이 이처럼 발달한 시대에 어째서 전생과 현생이란 장르의 판타지가 대세일까?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오늘날의 문학에서 톨스토이나 헤밍웨이의 진중함이 사라지고 판타지가 대세가 되었듯이 음악도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아니라 퓨전음악, 실용음악이 넘쳐나는 세상이며, 미술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반 고흐의 치열한 예술정신은 전설이 되었고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만화, 애니메이션에 열광한다. 이른바 포스트 모던이다.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전의 사조들처럼 일관된 형식을 가진 이념이 아니라 모더니즘 이후의 예술판에 나타나는 제 현상을 이르는 용어이다. 영웅이 없는 시대의 예술, 베토벤이나 톨스토이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라 개개인의 다양한 기호, 가벼움, 기발함, 즐거움 등에 기반한 독창성의 추구가 그 특징이다.아재 세대들의 대학시절에서 낭만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으나 대학에서 낭만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대학 캠퍼스에 인문학 또한 실종된 지 오래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오직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입학하면 1학년 때부터 취업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보니 대학 캠퍼스에서조차 낭만이 전근대적인 사고쯤으로 취급당하는 것이다. 교육부의 대학 평가에서 취업률이 중요한 항목이며, 그 결과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진다고 하니 대학마다 취업에 불리한 인문학이나 예술분야의 학과는 폐과 수순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미술대학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회화과, 특히 한국화 학과는 대부분 폐과되고 실용미술인 디자인학과 일색이다. 심지어 의과대학의 경우도 질병이나 사고로부터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내과, 외과보다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 미용에 관계되는 분야가 인기라 한다. 세태가 그렇다보니 의사도 땀흘려 사람 생명을 구하는 진정한 의사는 만나보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걱정이다. 그러나 걱정할 일이 아니기도 하다. 인간의 본성에 작용하여 세상을 정화하는 인문학과 예술의 힘이 여전함을 믿어보자. 새 시대의 청춘들과 새로운 예술을 가볍다 타박하지 말고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자. 다양함을 인정하고 큰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 노력하자. 새로운 길을 걷다보면 성공도 실패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장르가 창조되는 법이다.황금만능의 척박한 세상,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수단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임이 분명하다. 인문학과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에 인색하지 말자. 독서를 통한 사유와 자기 성찰, 그리고 문화예술의 향유를 통하여 영혼의 샘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하며 새 시대의 예술이 어디로 가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자.

2017-02-21

불언단처(不言短處)와 팔불출(八不出)

▲ 강희룡 서예가조선중기의 학자 윤휴(1617~1860)는 56세 되던 해 금강산 기행문인 풍악록(楓岳錄)에 한 일화를 적고 있다. 상공(尙公) 상진이 한번은 들을 지나다가 어느 늙은 농부가 쟁기를 잡고 밭갈이하는 것을 보았는데 쟁기 하나에 소 두 마리를 메워 밭 갈기를 매우 공들여 하고 있었다. 상공이 구경하다가 `농사일을 참 잘하는구려. 소 두 마리 중에 어느 소가 나은지 말할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노인이 대답이 없자 상공이 앞으로 다가가니 노인이 급히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여 말하기를 `공이 물은 두 소 중에 한 마리는 힘도 세고 재주도 있는데, 한 마리는 힘도 약하고 미련한데다 늙기까지 했습니다`했다. 상공이 `그런데 처음에는 답하지 않다가 지금에야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이오`라고 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소는 큰 가축이라서 사람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남을 미워할 줄도 알지요. 내가 저놈들 힘을 의지해 부려먹으면서 재주 없다고 헐뜯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라고 했다. 상공이 그 말에 크게 반성하여 `공은 숨은 군자십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그때부터 한평생 남의 잘못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장점만 말하고 단점은 말하지 않았다. 조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검열관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때 시골길을 지나다 생긴 일화로 상진의 `불언단처(不言短處)` 고사성어의 내용이다. 그 후 상진은 사람들이 절름발이를 보고 한쪽 다리가 작다고 하면 상진은 다리는 같은데 한쪽 다리가 조금 길다, 라는 표현으로 남의 약점을 말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상신록(相臣錄)에 기록된 것을 금강산 유람 도중에 일행이 서로 타고 가던 말을 탓하는 것을 보고 윤휴가 일행에게 들려 준 것이다.여덟 달만에 낳은 아이를 팔삭둥이라 일컫는다. 이 팔삭둥은 열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서 `좀 모자란`, `약간 덜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유래된 인간의 홀로서기 계훈(誡訓)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 팔불출, 팔불용, 팔불취라는 단어가 파생됐다. 팔(八)이란 의미는 팔방(八方)을 뜻하며 `모든`, `전체`를 뜻한다. 이 팔불출로 평가되는 사람의 행동은 첫째가 자신이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 두 번째가 부인 자랑이고, 셋째가 자식 자랑이라고 한다. 네 번째는 선조와 아비 자랑을 일삼고, 다섯째는 저보다 잘난 듯싶은 형제 자랑이고, 여섯째는 어느 학교의 누구 후배라고 남의 이름을 파는 사람이며, 일곱째는 제가 태어난 고장이 어디라고 우쭐해 하는 유형을 모두 팔불출이라고 비꼬고 있다.요즘 우리 사회의 팔불출은 정치인에서 많이 나타난다. 정치철학의 입지가 서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방법으로 우선 상대부터 헐뜯거나 폄하하는 행위, 자신을 추켜세우며 대세는 본인뿐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으며 허세를 부리는 행위, 경쟁의 목표를 정치인으로서의 자신의 입지와 미래지향적 국가 비전을 떠나 상대의 잘못과 단점을 부각시키고 상대의 정책을 대안 없이 비판하여 자기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으려는 행위, 평생 해보지 않던 봉사를 선거용 퍼포먼스로 즐기다 논란을 일으키는 행위, 내용물은 그대로인데 포장과 이름만 바꾸고는 마치 새로운 정당인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는 행위, 이러한 것들이 모두 팔불출 행태인 것이다. 물은 위에서 흘러 아래로 내려가고,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모두 쓰러진다. 이는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의 지도층 인사들은 자신의 입지를 스스로 성찰하고 판단하여 본인들의 사회적 위치가 어디인지를 새겨보고 제자리로 돌아가야 될 시국이 아닌가 한다.

2017-02-17

어허루 지신아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AI에 이어 이번에는 구제역까지, 난세(世)는 난세다. 지금 이 나라는 재앙 수준의 혼돈에 빠져 있다. 재앙 중에서도 대재앙은 인간에 의한 재앙이 아니라 자연이 내리는 재앙이다. 재난 영화를 보면 자연은 항상 먼저 경고를 보낸다. 그 경고에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들은 대비를 한다. 그러나 둔한 인간들은 자기 잘난 맛에 자연이 아무리 경고를 보내도 그 경고를 무시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는 자연이 보내는 경고를 인지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항상 뒷북만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더 크게 외친다. “남 탓이오. 정부 탓이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코미디 대한민국은 자연 재앙보다 인간 재앙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세계인들에 보여주고 있다. 신화시대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판도라 상자를 열었지만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욕심으로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물론 그 상자 안에는 불신, 배신 등 현대판 재앙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런데 신화와 현실이 다른 건 신화 속 판도라 상자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지만 이 나라 정치인들이 연 판도라 상자 안에는 희망 대신 대선증후군만이 남아 있다.이 나라는 심각한 대선증후군을 앓고 있다. 무엇을 위한 탄핵이었는지, 누굴 위한 촛불이었는지 당사자들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적어도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또 진실을 밝히기 위한 탄핵과 촛불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남은 건 오로지 대통령 자리에 목숨을 건 `잡룡`들의 대선 헤게모니 뿐이다. 광장과 촛불은 이번에도 대선증후군을 앓고 있는 정치인들의 정치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분명 한 때는 광장 안의 소리만이 진실이고, 전부라고 생각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 소리에 대해 다른 소리를 하면 역적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지금 광장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벚꽃 대선에 눈먼 사람들 뿐이다.광장 밖의 더 많은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뒤엎을 반전(反轉)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 반전이 일어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하기 위한 꼼수 정치인들의 소리가 소음보다 더 시끄럽다. 그 중 대표적인 한 사람은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적폐(積弊)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패권주의`가 연관검색어로 떴다. 그래서 패권주의를 검색해 보았다. 가장 앞쪽에 나온 말이 `친문패권주의`였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당사자는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할지, 그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해서 관련어에서 삭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분명 이 나라는 뭔가에 발목이 잡혀 있다. 움직일수록 고통만 더 심하다. 누가 덫을 놓았을까. `걸면 걸린다`는 식의 마구잡이 저인망 수사를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진 검찰인지, 아니면 그런 검찰을 뒤에서 들들 볶는 뺑덕 어미 같은 정치인들과 언론인지, 아무튼 안타까운 것은 고통은 온전히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그 고통을 잊기 위해 지난 토요일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학교소재지 마을 어르신들과 인근 지역민, 학부모님을 학교로 초청해 정월대보름 행사를 가졌다. 학생들은 마을 어르신께 정월 세배를 드리고, 오곡밥을 대접했다. 그리고 달집태우기 행사를 가졌다. 길놀이는 산자연중학교 사물놀이 팀이 맡았다. 길놀이 마무리에 3학년이 될 상쇠 용진이가 지신밟기노래를 불렀다. “어허루 지신아, (중략) 잡귀 잡신은 물알로, 만복 수복은 이곳으로, 여기 모인 모든 분들, 소원 성취하세요!” 지신밟기가 끝날 때를 기다렸다는 듯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랐다. 사물놀이 팀 학생들은 더 신나게 풍물을 울렸다.필자도 상쇠의 소리에 이어 외쳤다. “어허루 지신아, 잡귀 잡신은 물론이고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잡룡들도 물알로 데려가소!”

2017-02-16

현대정치인의 인(仁)사상

▲ 강희룡 서예가인(仁)이라는 한자는 사람(人)과 둘(二)이 모여서 이루어진 합성어다. 그러하기에 둘 이상의 사람관계에서 `인`이라는 개념이 출발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그 사람은 어질다` 또는 `어진 그 사람`이라고 하면 여기에는 이미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갖는 덕목이 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仁사상은 스스로 실천하여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만 비로소 사람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말만 앞서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말이란 아무 의미가 없고 한낱 헛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게 되어 결국 신뢰를 잃게 된다. 논어에 나오는 159명의 인물 중 공자의 수레를 몬 제자는 번지와 염유뿐이었는데 제자인 번지에게 공자가 말한 仁은 `타인을 사랑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뛰어넘어 자기 자신과 더불어 살고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仁은 만들어진다. 이러한 仁사상은 곧 평등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다.현대의 仁사상은 서로 소통하는 것을 제일 첫 번째 뜻으로 삼는다. 주로 가족애나 추상적 생명의 뜻으로 논의되던 전통적 맥락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그 관계가 쌍방향으로 소통되는 특징에 주목하고 있다. 仁을 봉건윤리에서 공민(公民) 윤리로 탈바꿈시키면 서로 통한다는 소통은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것이며 곧 오늘날의 정치구조인 민주주의와 결부된다.고대사회에서 일컫는 군자라는 개념은 단순하게 사회계급상의 귀족이거나 명목상의 학자를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의 출신 성분이나 사회적 지위 보다도 그 사람의 인격이나 덕성을 더 중요시 하고 있음을 고전에서는 적고 있다.오늘날 국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선택은 신속하고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에 좌우된다. 그 정보에는 또한 진실과 선전·선동들이 대부분 뒤섞여 있으니 참으로 진위의 판단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현상이 결국 불통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상호 신뢰감을 상실하게 되면 불통과 불신을 가져오게 된다. 증자가 살인했다는 오보를 마을 사람들이 세 차례나 전하자 아들을 깊이 믿었던 증자의 어머니도 결국엔 두려워 베틀 북을 던지고 달아났다는 옛 고사나, 2차대전 당시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두 믿게 된다`는 예로 보나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속게 되는 상황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거짓인지 모르고 하였든, 의도적으로 하였든 거짓말이 계속되면 진실은 알기 어려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사회 정치인들이 토해내고 있는 각종 공약도 대개 지킬 수 없는 거짓의 범주 속에 있을 지도 모른다.지금의 정보통신 환경은 비약적으로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정보를 생산해 내고 타인이 만들어 놓은 정보를 쉽게 얻으며, 그 정보를 여기저기 퍼 옮김으로써 손쉽게 확대 재생산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정보의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많이 퍼 나르고 많은 사람들이 접한 정보는 여론이 되고 진실이 되며 그렇지 못한 정보는 거짓이 되는 그야말로 `다수결의 원리`가 보여주는 가장 어리석고 취약한 상황에 쉽게 빠지게 된 것이다.매주 토요일이면 서로 그 위세를 과시하며 보수와 진보를 대변한다는 시민들의 촛불과 태극기 집회도 仁사상이 실종된 하나의 좋은 본보기이다. 특히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개인이나 각 정파의 이익에 활용하려고 참가하는 정치인들은 소통보다는 상호 간 더 심한 불통의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것은 곧 정치인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철학과 가치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고 `仁사상`이 결여된 행동이 아니겠는가.

2017-02-10

희망 시루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출석번호가 60번을 넘는 것이 당연한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아침 조회를 하면 아무리 면 단위 학교라도 줄을 맞춘 학생들이 운동장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런 학교를 콩나물시루에 비유했다. 비록 숨도 겨우 쉴 정도로 꽉 찬 교실이었지만 분명 그 때 학교에는 흥(興)이 있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당시 학생들은 흥에 겨워 뭐든지 해냈다. 힘든 고비가 와도 넘치는 흥에 그 고비들을 넘겼다. 그리고 그 흥을 떠밀어 이 나라의 경제를 이만큼 발전시켰다. 흥(興) 안에는 가족, 친구, 꿈, 희망, 미래, 국가 등 참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라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이 힘들면 다른 것이 응원 해주었다. 그래서 모두가 오뚝이가 되었다. 크게 넘어져도 두렵지 않았다. 일으켜 세워주는 손들이 사방에 있었으니까. 콩나물시루 학교의 학생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다. 그러기에 두려움 따윈 없었다.흥이 가득한 대표적인 학교 모습은 졸업식이었다. 당시 졸업식장은 울음 바다였다. 울음 또한 흥의 다른 모습이었다. 떠난다는 것이 참 많이도 아쉬웠다. 졸업장을 받아들고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가볍지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감사함과 고마움, 아쉬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알아서 다 해주니까. 흥(興)과 정(情)의 관계를 누군가는 합치(合致)라는 말로 설명했다. 흥이 없다는 것은 곧 정이 없다는 것이다. 흥이 없는 것은 교사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교사들이 교직생활의 어려움으로 재미, 즉 흥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교직이 생계의 수단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정(情)도 사라졌다. 서로 간에 정이 없는 사람들의 관계가 얼마나 서먹한지는 모두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는 서먹함을 넘어, 불면 그냥 날아갈 정도로 무미건조하다. 그런 관계에 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학교의 많은 행사들이 그렇지만, 특히 졸업식 모습을 보면 이 나라 교육이 얼마나 삭막한 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교육청과 경찰청은 올해도 어김없이 건전한 졸업식을 당부하는 공문을 학교에 뿌렸다.`석별(惜別 ·서로 애틋하게 이별함)의 정`을 지금 학생들은 알기나 할까.필자는 아직도 졸업하면 눈시울 붉히며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잘 가시오, 잘 있으오”로 시작하는 노래. 졸업식장이면 예외 없이 흘러나오던 그 노래는 졸업식장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한없이 무섭기만 한 선생님의 눈을 붉게 만들던 노래! 그 때는 뭐가 그렇게 북받쳐 오르는 것이 많았는지.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때는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와의 사이에 흥과 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김영란 법 때문에 그런 걸 하고 싶어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지만.콩나물을 키우는 것은 어둠과 물, 그리고 다름에 대한 인정과 배려다. 콩나물은 이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없으면 제대로 자라기 어렵다. 콩은 콩만으로도 좋지만 콩나물로 변하면 콩일 때는 없었던 비타민 C를 비롯한 많은 영양분들이 만들어지면서 이상적인 나물이 된다고 한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담겨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콩이 어둠에 뿌리를 내려 기존에 없던 영양분들을 만드는 과정을 안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놓은 콩나물과 하나가 된다. 그 마음이 흥이고 정이다. 인구 절벽 시대에 콩나물시루 같은 학교는 더 이상 없다. 학급당 인원수가 30명 이하로 줄어들고 있는 지금, 또 `죽도록 노력해야 평범해지는 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옛날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가득 담긴 희망 시루를 선물하고 싶다.

2017-02-09

학습 피라미드

▲ 김현욱 시인고등학교 때 나는 수포자(수학포기자)였습니다. 수포자에 주석을 달지 않는 까닭은 굳이 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익숙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국포자나 영포자는 어색해도 수포자는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원과 원주율`, `원기둥 부피 구하기`에 들어가면서 내 수학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었고 차근차근 알아듣도록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없었지요. 나머지로 방과 후에 남기는 했는데 학습지 한 장 던져주고 선생님은 `잡무`로 바빴던 것 같습니다.예전에 어떤 수학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교육에서 수학과 영어가 시험을 통한 줄 세우기의 척도다. 그 중에 핵심은 수학이다. 다른 과목은 어찌어찌하면 만회가 되는데, 수학은 그렇지 않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부족했던 영어는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만점을 받았지만, 수학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가 행운이 찾아왔습니다.절망의 늪에 빠져있던 수포자 셋이 대견하게도(?) 힘을 합치기로 한 것입니다. 요지는 `친구 가르치기`입니다. 하루에 수학 한 문제씩 서로 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밤늦게 자율학습이 끝나면 우리는 빈 교실에 모여 서로 번갈아 가면서 자기가 공부해 온 수학 한 문제를 열심히 풀어 주었습니다.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는데 친구들 앞에서 문제를 풀고 질문에 답변을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이어간 수포자들의 `친구 가르치기`는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3학년 모의 수능에서 수포자들에게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수학 점수가 나왔던 것입니다. 그 수포자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때 함께 고생하고 고민하고 마음을 나눴기 때문에 얻은 `우정`은 점수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미국의 미국교육연구소(NTL)에서 발표한 학습 피라미드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학습 피라미드는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 하고 24시간 후에 남아 있는 비율을 공부 방법에 따라 나타낸 것입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가 강의로 설명하는 교육은 5%, 학생들이 스스로 읽으면서 하는 공부는 10%, 시청각 교육은 20%, 시범이나 현장 견학은 30%, 그룹 토론은 50%, 직접 해보거나 체험은 75%, 친구 가르치기는 무려 90%의 효율을 갖고 있습니다. 그때 수포자 셋이서 무려 90%의 효율로 수학 공부를 한 셈이지요. 유대인이나 핀란드인의 학업 성취도가 높은 이유도 효율성이 높은 하브루타나 협동과 토론 위주의 공부 방법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국의 교육은 듣고 외우고 잊어버리는 소모적인 공부입니다. 시험만 치고 나오면 모조리 잊어버리지요.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 조사(PISA)에 따르면 핀란드는 평일 평균 학습 시간이 4시간 22분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8시간 55분으로 핀란드의 두 배가 넘지만 그들의 학업 성취도는 우리보다 높습니다. 우리의 공부 방법은 이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9시간, 10시간을 의자에 앉아 고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경쟁이나 줄 세우기가 아닌 협동과 토론, 체험과 참여의 장을 제공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를 없앤다고, 사교육을 제도적으로 금지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국가적으로 학교에서, 마을에서, 지역에서 학생들이, 주민들이, 지역민들이 `연대`할 수 있는 기회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일깨울 수 있는 여러가지 형태의 `연대`야말로 절망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전입니다.

2017-02-08

국가 금주령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영하 35도! 누군가는 극지방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몽골의 날씨다. 필자는 인천과 김포 공항이 눈 때문에 공항 기능을 상실했을 때 몽골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있었다. 국내 정치 상황만큼이나 좋지 못한 국내 공항 사정을 다른 나라에서 듣는 기분이란 곧 불어닥칠 초대형 태풍 소식을 듣는 것과 비슷했다. 몽골 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무겁고 지친 표정, 그것은 곧 정치에 지친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습이었다. 필자는 5월에 있을 해외이동수업 사전 답사 차 한 주 내내 꼬박 몽골에 있었다. 3년째 1월과 5월에 몽골 사전답사를 하고 있다. 해외이동수업은 학생들에게 생태계는 물론 환경보호의 중요성과 세계화 시대에 맞는 글로벌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산자연중학교만의 특성화교과이다. 그래서 매년 수업 주제가 정해지면 교사들이 몽골을 샅샅이 뒤져 최적의 수업 장소를 찾고 있다. 올해 수업 주제는 산자연중학교 생명의 숲 조성이다.자욱한 매연만 빼고 몽골은 매년 변화 발전된 모습을 필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높은 건물들, 조금씩 늘고 있는 가로수들! 무엇보다 활기찬 몽골 국민들의 모습은 필자가 늘 느끼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행복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그래서 물질적인 기준에서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과 몽골 사람 중 행복지수는 만족할 줄 아는 몽골 사람이 더 높을 거라는, 몽골에서도 가장 오지에서 몽골 사람들과 함께 지내시는 한국 신부님의 말씀을 필자는 부정할 수 없다.올해 몽골은 작년과 다르게 설국이었다. 하늘에서 본 몽골 산야는 현실 세계의 겨울왕국이었다. 몽골 현지 한국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학생들이 희망의 숲을 조성할 아르갈란트라는 곳으로 갔다. 울란바토르에서 약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그곳까지 가는 데 필자가 본 건 눈뿐이었다. 간혹 점점이 양들과 소떼들이 눈 속에서 봄을 캐고 있었다. 가는 내내 필자는 눈에 중독되었다.눈길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필자는 또다시 배려와 나눔에 중독됐다. 광활함이라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더 넓은 그곳에서 필자는 우리말로 적힌 안내판을 보았다. “서울시는 사막화 방지를 위해 주민과 함께 `미래를 가꾸는 숲`을 아르갈란트 솜에 조성합니다.” 뿌듯함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현지인으로부터 서울시에서 매년 2만 그루씩 심어 5년 동안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왜냐하면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조성할 숲의 규모는 서울시가 조성할 숲의 일부도 안 되는 규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방 잊혀졌다. 규모가 절대 중요하지 않으니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과 몽골 쎈뽈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갈 숲은 그냥 돈만 지원하는 지자체와는 분명 다르니까!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몽골 이곳저곳을 다니고 숙소 앞 식당에 갔다. 그런데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의아해서 물어보니 밀주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 명 죽어서 정부에서 일정 기간 전 국민에게 금주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 국민 금주령이 가능하다는 것이, 또 그것을 큰 음식점과 대형마트는 물론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들도 지킨다는 것이.과연 우리나라는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오로지 자기만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깡철이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역겨웠다. 어떻게 국가 금주령이 가능한지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말했다. 나라에서 하지마라고 하는데 이유가 있느냐고. 그리고 그들은 덧붙였다. 당신의 나라는 대통령이 없지 않느냐고. 씁쓸하게 일어서는 필자를 불쌍하게 보는 그들의 시선에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숙소에 들어와 다음 일정을 짜고 있는데 밖이 너무 소란스러웠다. 굳이 귀기울이지 않아도 또렷이 들리는 술 취한 한국인들의 고성방가.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자 적었다. “대한민국 정치 금지령!”

2017-02-03

`김영란 법`이 만든 설 풍경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민족 최대명절인 설을 지내면서 분주했던 귀성길과 친지들과의 짧은 만남이 아쉬움과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이제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와 평온함을 되찾아 가고 있는 듯하다. 설 명절은 지난 한 해를 반성하고 새롭게 펼쳐질 내일을 위해 서로 덕담을 나누며, 희망찬 한 해를 설계하는 날로서 연휴가 주는 편안한 휴식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평소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던 이웃과 친지들에게 새해를 맞아 서로에게 복을 빌며 감사의 선물을 주고받는 풍경은 우리민족의 오래된 세시풍습에서 비롯된 모습들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자그마한 선물을 통해 나누는 여유로움 속에서 인간적 유대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런 문화도 이제는 서로 눈치를 보며 선물의 가치가 아닌 금액으로 평가하는 시대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소위 부정청탁금지법인 `김영란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명절 선물의 의미도 크게 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역 유통업계에 따르면 예년에 비해 올해 설 선물 세트는 축산과 과일, 굴비 등의 매출 감소가 가장 두드러져 `소비절벽`을 실감케 해줬다고 한다.지난해 9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김영란 법 적용 대상 기관 4만 여 곳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공직자와 언론사, 사립학교, 사립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등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 처벌하도록 하는 이 법의 제정 취지는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지나치게 비싼 고가물품에 담아 전해주기 보다는 마음으로 함께 나누자는 의미이다. 더불어 부정부패를 추방하자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확산되고 공직사회도 스스로 자정노력에 동참하는 분위기로 변화해 나가자는 의미와 취지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무작정 명절 선물을 없애 버리게 되면 가뜩이나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소비가 위축되고 내수경기의 부진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이는 곧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절대적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률이지만 경제성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소상공인들과 농민들에겐 경제적 부담을 확대시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명절이 되면 다채로운 선물들과 이를 구매하려는 쇼핑객들로 넘쳐나던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이번 설에는 거의 대목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지난 추석과는 상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며 김영란 법을 다시 한 번 실감케 해 주었다. 제수용품과 모처럼 온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길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들의 묵직한 장바구니 속에는 정을 서로 나누려는 설 선물들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이제는 명절을 맞아 새로운 풍속도를 연출한 김영란 법의 시행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과 부작용들을 찬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정부는 많은 분야에서 발생된 의견들을 겸허히 수렴해 시행령을 개정하려는 열린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민족은 늘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가까운 이웃과 정을 나누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삶이 주는 고단함을 마음으로 나누며 서로 위안 삼았던 여유로움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 취지에서 벗어나 서민들의 정겨움을 해치는 악법으로 자리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당국은 김영란 법이 서민을 옥죄는 법이 되지 않도록 개선의 노력을 더욱 경주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7-02-02

설의 의미와 세시풍속

▲ 강희룡 서예가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은 민족이라는 일체감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갖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음력설을 못 쇠도록 섣달그믐 전 1주일 동안 떡 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했으며 설날 아침 흰옷을 입고 세배를 다니는 사람에게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했다.설은 `서다(立)`의 의미로 풀이한다. 고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는 `처음 시작하다`를 `들어서다`로 표현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으로 `봄에 들어서다`를 입춘(立春)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설날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뜻으로 신일(愼日)이라 해서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신에게 빌어 왔다. 이렇듯 설은 미래 1년의 생활을 설계하며 다짐하는 날이다.남용익(1628~1692) 선생은 호곡집 무자제석만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늘 밤을 지나고 나면 곧 새해이니 해가 새로워지고 달이 새로워지며 날이 새로워지고 때가 새로워진다. 천지의 만물이 다시 새롭게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되니 유독 사람만이 새로워지려는 생각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자신하는 것이 많다. 술은 많이 마셔서는 안 되니 그대로 절주를 해야 할 것이고, 말은 가벼이 해서는 안 되니 그대로 삼가야 할 것이다. 예법이 너무 소략하여 내버려둘 수 없다면 예를 닦아 검속할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요, 벼슬이 너무 빨라서 특진해서는 안 된다면 경계해 억제할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여 날마다 모두 새로워질 수 있다면, 새해가 나에게 있어서 어찌 평범한 의미이겠는가! 내년 이날 밤에 이 글을 읽고서 부끄러움이 없다면, 거의 자신을 새롭게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이런 내용을 써서 기록으로 남긴다` 섣달 그믐날 밤 새해를 맞으면서 마음의 각오를 글로 새긴 것이다.세시풍속을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설날 아침에는 정결한 마음으로 새 옷을 입고 조상에 대한 차례를 올린 뒤 집안 어른과 마을공동체 어른들에 대한 세배를 한다. 이 세배를 통해 삶 속에 흐트러진 마음을 경계해야 하는 덕담을 듣는다.민가에서는 풍년과 복을 기원하는 복조리를 매달고 벽장과 미닫이문에 십장생이나 범과 까치, 대나무, 난초 등을 그려 붙였으며 액을 퇴치하고자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였다.떡국은 독특한 설음식으로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달린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만든 떡을 흰떡(白餠)이라 한다. 이것을 얄팍하게 돈같이 썰어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고춧가루를 친 것을 떡국이라 한다. 시장에서는 시절음식으로 이것을 판다. 예전엔 꿩고기로 국물을 하고 다져서 만두를 했으나 요즘 꿩 대신 쇠고기나 닭고기를 많이 사용하자 `꿩 대신 닭`이란 말의 유래는 바로 이 때문이다.설하면 먼저 `설빔`을 떠올리게 되는데 묵은 것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설날 아침에 남녀가 모두 입는 새 옷으로 경도잡지에는 세장(歲粧)이라 했으며, 열양세시기에는 세비음(歲庇蔭)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설날에는 바느질 안 하기, 문 안 바르기, 곡식을 밖으로 내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매년 반복되는 다짐과 후회는 어쩌면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제 며칠 후면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붉은 닭의 정유년 새해다. 지나친 자기 확신보다는 과거에 대한 성찰 속에 미래를 설계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이다.

2017-01-26

사(射)의 정신이 실종된 사회

▲ 강희룡 서예가중국 주나라의 유학에서 다루는 여섯 가지의 기초 교양과목. 예(禮)·악()·사(射)·어(御)·서(書)·수(數)를 육예라고 한다. 여기서 예는 예용(禮容), 악은 음악, 사는 궁술, 어는 마술, 서는 서예, 수는 수학을 말한다. 이것을 터득하기 위한 경전으로는 시·서·예·악·역·춘추의 육경(六經)이 있다. 공자는 일찍이 `활쏘기를 하는 것은 군자다운 점이 있다. 과녁에서 벗어나면 자기 자신에 돌이켜서 잘못을 구한다`라고 하면서 `사`에 대해 큰 비중을 두었다.조호익(1545~1609) 선생은 그의 `지산집`에 공자의 말을 인용해 `활을 쏘는 데 대한 설(射說)`을 적고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활쏘기를 하는 것은 군자다운 점이 있다. 과녁에서 벗어나면 자기 자신에 돌이켜서 잘못을 구한다. 제아무리 무지하기 그지없는 무인이나 사특하기 그지없는 소인이라 하더라도 화살을 쏠 적에 화살이 과녁을 빗나가면, 내가 잘못 쏘았구나, 하며 생각하고, 화살이 높이 날아가면 내가 지나치게 높게 쏘았다며 후회하고, 화살이 동쪽으로 날아가면 내가 한쪽으로 쏠리게 화살을 쏘았구나하며 반성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과녁이 지나치게 낮다느니 또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느니 탓하지 않고 잘못을 오직 자신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투호(投壺) 역시 그렇다. 고금의 일 가운데 오직 이 활쏘기와 투호 같은 놀이가 세태를 따라서 변하지 않았기에 성인이나 선비들은 그 정신을 담아 자신을 다스렸던 것이다.모든 일에 있어서 그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자신에게 돌이켜서 반성하는 행동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성이 없는 삶은 또한 빈약하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잘못을 언제나 자신의 밖에서 찾으려는 행위를 곧 `어리석음`이라 일컫는다.맹자는 `얻음이 없으면 모든 것에 대한 나 자신을 반성하라. 내가 올바르면 천하는 모두 나에게로 돌아온다. 남을 사랑하는데도 가까워지지 않거든 자신의 사랑을 돌이켜 보고, 남을 다스리는데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자신의 지혜를 돌이켜 보고, 어떤 일을 행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맹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성현이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자세야말로 대인(大人)으로 완성되어 가는 길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모든 일의 발단을 `내 탓`이라는 책임의식보다는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 회피풍조가 만연해 있다. 문화선진국의 정치미개국이란 오명을 안고 있는 정치 분야가 특히 그렇다. 여당과 야당은 서로 탓하며 이분법적 논리에서 상대만 나무라고 원망하는 폐습에 젖어 있다. 상대의 작은 잘못도 헐뜯으며 정작 자신의 큰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용서한다. 소위 지도층에서 이러니 상사는 부하를 부하는 상사를, 제자는 스승을 스승은 제자를,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를 탓한다. 국민들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가 도리어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영향은 개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작용하여 모두가 자신은 돌아보지 않고 상대방만 탓하는 의식구조로 변절되어 있는 것이다. 초유의 국정농단사태의 모든 정황이 증거물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모든 관련자들은 국회청문회나 헌재에서 하나같이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자신이 불리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그들 변호인들의 앞뒤 안 맞는 어설픈 궤변은 초등학생들조차 머리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끄러운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은 `자기반성 없이 학식만을 쌓는 것은 가짜 학문이지 수양의 길이 아니다. 이는 장차 사회에 큰 해악이 되리라`고 경고하였다. 지금의 상황을 꿰뚫는 선비의 말씀이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의 `새 정치`니, `정치교체`니, `정권교체`니 하는 모호한 논리와 이합집산으로 떼 지어 이권을 찾아다니는 정치인들은 결국 또 이 사회의 혼란을 부추길 것이다.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고 거울을 원망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2017-01-20

깡철이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무주공산! 지금 이 나라를 나타낼 수 있는 대표적인 말이다. 왜 주인이 없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지 않느냐고, 그 주인이 광장에서 오랜만에 주인 역할을 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런데 정말일까.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은 너무 교과서적이다. 세상이 교과서대로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직업에 귀천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일한만큼 대가와 대우를 받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고, 죄가 있는 사람은 그 죄가 어떤 것이든 더 큰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분명 이 말들은 교과서는 물론 모든 종교의 교리서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이 나라 종교는 이를 얼마나 실천할까. 용서하고, 이해·배려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종교인들부터 오해와 배척의 삶을 살고 있으니 세속인들이야 오죽할까.분명한 건 모든 교과서는 사람들이 만들었고, 또 각 종교에서 신의 대리인처럼 생각하는 교리서들도 처음 시작이야 어떻든 결국에는 인간들에 의해 정리되고 편집됐다고 본다면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위선덩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혹시나 위선에도 계급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봤다. 만약 있다면 정치인과 교사가 최고 자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울 것이고, 그 다음 사랑과 이해조차 그때그때 다른 종교인들이 위치할 것이고, 그 다음은 누구일까.뉴스를 보면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한 편의 무협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무협이라는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필자가 읽은 무협지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 그리고 규칙이 있었고, 영웅답게 그것을 지켰다. 그런데 무주공산이 된 청와대 입성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치졸(稚拙)한 행동을 보면 무협이라는 이름을 쓰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얼마 전 언론들은 삼류 정치 드라마 한 장면을 내보냈다. 내용은 `반풍`을 초기에 막기 위해 야당 `잡룡`들이 오랜만에 하나가 돼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는 것이다. `반풍`이라는 말을 들으니 2016년 총선을 앞둔 어느 날의 신문기사가 생각났다. “문풍이냐 안풍이냐? 느슨해진 영남 재집결?” 반풍, 문풍, 안풍! 정치가 무슨 무협지 배경도 아니고, 청와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바람이 어떤 바람이 되었건 바람을 일으키는 기술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건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이상한 바람을 일으키는 지금의 정치인들은 대의명분을 위해 갖은 고통을 이겨내며 장풍(掌風)을 수련하던 진정한 영웅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엘리트 코스만 걸어온 그들이 무협지나 읽어 봤을지 모르겠다. 읽어봤다면 동네 애들 싸움보다 못한 더러운 정치 싸움은 하지 않을 것이다.최근 `도깨비`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도깨비 신부라는 말에 이끌려 도깨비에 대해 조사를 하다가 필자는 도깨비와 이무기의 차이와 종류를 적어 놓은 글을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 `잡룡`들이라 일컬어지는 정치인들과 비슷한 이무기를 발견했다. 이름은 바로 `깡철이`다. 깡철이는 낙동강 유역에서 민간전승 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무기의 한 종류이다. 다른 이무기들과는 달리, 불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여의주가 없어도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고 한다. 깡철이는 대부분 용이 되지 못한 원한 때문에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다른 이무기나 용에게 퇴치당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한다. 글을 읽는 내내 필자의 머릿속에는 곧 깡철이로 둔갑할 정치인들의 이름이 빠르게 지나갔다. “깡철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라는 속담이 현실화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큰일을 앞두고 사방팔방에 광풍(狂風)을 일으키는 깡철이들이 출몰하고 있다. 부디 이번에는 주인답게 이무기들에게 홀리지 말기를, 그래서 잃어버린 희망을 빨리 찾기를 기원한다.

2017-01-19

서열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어떤 연구에 의하면 인성은 절반 정도가 이미 태어날 때 타고 나는 것이라 한다. 그 나머지의 반은 6세 정도까지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고, 이후 평생 동안의 교육이나 경험에 의한 인성 변화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는 원래 개를 싫어했다. 개띠로 태어났으니 개와 인연이 있을 법도 하건만 그냥 싫어한 정도가 아니라 무서워했다는 편이 더 옳을 것 같다. 개를 싫어하는 마음을 타고 났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릴 때 개에 물린 기억이 있고, 대학시절에도 한 번 물린 적이 있으니 후천적 트라우마로 개를 싫어하기도 한다.오늘날에는 동물사랑이 현대인의 기본적인 덕목쯤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특히 인간과 삶을 함께하는 반려동물은 극도로 핵가족화, 개인화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 되었다. 그렇지만 장군이 엄마가 반려견 노래를 부를 때 마다 절대 안 된다며 단호히 반대해온 까닭은 앞서 말한 사연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어느 날 늦은 시간에 귀가하니 거실에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지금은 장군이 엄마라 불리는 사람이 친구에게서 분양받아 온 것이라 했다. 그놈이 장군이다. 몇 해가 지나니 이름처럼 장군같은 덩치가 되어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하기가 버겁지만 이미 가족이 되어버렸으니 어쩌겠는가? 기가 막힐 노릇은 이 녀석이 가족이 된 후 우리 집안에 묘한 서열이 생겼는데, 언제나 장군이가 중심이니 항상 내가 마지막 순서다. 말하자면 개보다 못한 처지가 된 것이다.서열, 이 촌스런 질서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은 이 문제로 고민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예술행사를 주관하다 보면 수준 높은 예술프로그램을 만들고 다듬고 구현하는 일보다 의전 때문에 당혹스러운 경우가 더 많으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의전을 형식이라 치부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 형식이 바로 전통예절의 근본이니 만만치 않은 일이며, 더러는 이를 소홀히 하여 괘씸죄에 걸리기라도 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예총회장이란 직책을 맡고 보니 생각지도 않던 고민거리가 생기곤 한다. 우선 이런 저런 행사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 체질과 잘 맞지 않아 고민이지만, 그런 일들이 예술환경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해야 할 것이고, 더불어 그 행사에도 보탬이 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해야 한다는 정도는 늘 명심하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가장 재미없고 불편한 것이 서열 문제다. 앞이면 어떻고 뒤쪽이면 뭐 어떤가? 서로 도와서 행사가 조금이라도 더 빛난다면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예술단체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누구누구 다음에는 당연히 예총회장 차례인데, `누구누구`보다 뒤에 두는 것은 후진적일 뿐 아니라 이런 대접은 예술인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분노한다.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예술하시는 분들이 뭐 그런 촌스런 생각을 하시나, 옛날 시골학교 운동회에서도 지서장이 먼저니 우체국장이 먼저니 하는 다툼은 늘 있어 왔지만 정답은 없었고, 국가행사는 행자부의 공식 의전서열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각 행사의 성격이나 주관처의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라 60년이 되었으니 직책과 상관없이 층층시하인 자리도 있는 법이니 이해하시라. 예술인들이 좀 더 단합하고,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인다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 아닌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심으로는 내가 부족하여 예술인들의 위상을 지키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세상 고요한 산골 기운을 타고 났으며 농부가 직업이고 한학이 부업으로 안분지족하셨던 아버지 그늘에서 뼈가 자랐으니 사분의 일에 불과하다는 현실교육과 경험으로 내 성격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국가의 권력서열이 어떠하다는 등 세상이 시끄럽다. 굳이 예술가들까지 나서서 서열 따위를 따지지 않아도 문화예술이 존중되는 세상이 그립다.

2017-01-18

닭띠 해에 대한 불편한 편견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필자가 근무하는 갤러리는 유통업체에서 운영하다 보니 매년 새해가 되면 그 해를 상징하는 12간지 동물을 활용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는 병신년 붉은 원숭이의 해라 원숭이 작품전을 가진 바 있었고, 올해 역시 닭띠 해를 상징하는 조각전을 마련해 열었다.하지만 올 해 전시회는 예년과 달리 좀처럼 사회적 이슈나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 아마 그것은 닭이 가지는 생물학적 의미와 역사 속에 숨겨진 이야기보다는 사상최악의 조류 인플루엔자와 최순실 국정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빚어진 어수선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하지만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닭을 상서로운 조짐을 가진 서조(瑞鳥)로 인식 해 왔으며, 새벽을 여는 새로도 여겨 왔다. 아침이 시작되기 전 우렁찬 닭 울음소리가 먼저 들려왔기에 새 아침,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동물로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닭은 `삼국유사`와 혁거세 신화에 나올 정도로 우린 민족과는 친숙한 동물이며, 대구의 대표축제인 `치맥 페스티벌`과의 인연을 보더라도 현대인들과도 더 없이 가까운 동물이다. 이제 새로운 닭의 해를 맞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힘차게 쏟아 오르는 붉은 태양처럼 힘찬 한해를 열어나갔으면 한다.1월의 `1`이 가지는 상징성은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과 `출발` 등 긍정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다. 지난해에 이어 좀처럼 진정기미를 보이질 않는 국정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우리민족이 가지는 닭띠 해의 새로운 상징성과 의미를 되새겨 봐야겠다.문헌상으로 `닭`과 `새로운 출발`에 관한 기록을 먼저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닭이 자생한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삼국유사`에서 나타난 혁거세와 김알지의 탄생신화를 볼 때 닭은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상징적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경주의 계림은 신라 왕조 중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전해오는 곳이다.신라는 박씨인 박혁거세가 세운 나라이지만, 박씨, 석씨, 김씨 이렇게 세 성씨가 왕위를 이은 나라이기도 했다. 이중 김씨가 가장 많은 왕을 배출했고, 신라 후기에는 거의 김씨가 왕위를 이어 갔다. 이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가 바로 김알지이며, 계림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65년(탈해왕 9년) 3월 어느 날 밤에 왕이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탈해왕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호공에게 숲에 가보라 했고, 호공이 숲에 가보니 금빛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그 밑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한다. 이 궤짝을 왕궁으로 가져가 열어보니 그 안에서 준수한 용모의 아이가 있어, 탈해왕이 이 아이를 거두어 길렀는데 이 아이가 김알지라는 이야기이다. 이 김알지의 6대손이 신라의 왕이 되는데, 이 사람이 13대왕인 미추왕이며 그는 자신의 조상이 태어난 숲을 계림(鷄林)이라 하여 역사적으로 길이 보존토록 했다. 지금은 첨성대와 내물왕릉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지만 그곳은 신라를 대표하는 상징이었으며 후에는 나라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심지어 신라가 멸망한 후 고려, 조선 시대까지도 계림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기를 다룬 일본의 `조선정벌기`란 책에서, 이순신에 대해 `충성과 용맹이 계림에서 으뜸이었다.` 라고 쓰기도 했다. 당연히 이순신은 신라가 아닌 조선시대 인물이므로, `계림`이 `조선(한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셈이다.지난해에 이어 정유년 새해까지 이어진 사상초유의 국정논단 파문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지만 닭(酉)이 주는 부정적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과 탄생을 알리는 긍정적 의미로 한 해를 긍정적으로 설계 해 나가는 여유를 빨리 찾았으면 한다.

2017-01-17

악마의 편집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세상은 분명 거꾸로 가고 있다. 달력은 초 단위로 숨을 넘기는 시간을 달래고 달래어 그 무거운 2016년을 넘겼는데, 배반의 명수인 세상과 사람들은 달력을 배신하고 거꾸로 살고 있다. 시간이 가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세상 이치인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2017년 1월을 사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괴짜 돌연변이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그리고 정치! 세계가 참 우습게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팩트(Fact, 사실)보다는 자극적인 이슈에 세상 사람들은 더 흥분한다”라는 어느 배우의 예언처럼 한반도의 이슈는 세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북쪽의 이슈는 미사일과 공포정치, 남쪽의 이슈는 대통령 자리에 목숨 건 정치 모리배들의 진흙탕 싸움. 정말 한반도 어디에서도 사실이라는 것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뭐가 사실인지조차 모르겠다.사실은 없고 온갖 추측과 이슈만 넘치는 방송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 정치인들은 마치 정의의 수호 전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정의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장렬히 전사하는 어느 비극의 주인공처럼 연기를 잘한다. 그 극의 제목은 “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이다. 대본과 연출은 언론이 맡았고, 연기자는 정치인들이다. 언론의 노력과 정치인들의 열연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했고, 너무 깊이 몰입한 사람들은 극 중에서 그들이 한 대사만 믿고 그들의 말을 `말씀`으로 알고 행동으로까지 옮기고 있다. 연출의 달인인 언론들은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다.그것을 본 정치인들은 더 신이 나서 연기에 몰입한다. 연기 초년생이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자신이 맡은 배역과 실제의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 나라 정치인들도 연기 초년생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언론이 연출을 맡은 삼류 정치 드라마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연기에 몰입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결국은 극중 인물로 산다. 그 역이 크면 클수록 그런 현상은 더 심하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결말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행한 미래를 알면서도 왜 그토록 정치 연기에 몰입하는 걸까. 필자는 라디오를 듣다가 그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악마의 편집` 때문이다. 영상 콘텐츠 제작 사전에서는 악마의 편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는 슬퍼하지 않았는데 다른 상황에서의 슬퍼하는 표정을 가져와 편집해 넣음으로써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정통 다큐멘터리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편집이다. 사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필자는 신문을 읽다가 너무 놀랐다. 뉴스를 끊은 지 오래지만 목욕탕에 있는 신문을 읽은 것이 실수였다. 거기에는 “지금부터 잘 준비해서 차기 야당 대표라도 하지”라는 글이 나와 있었다. 도대체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그것은 바로 붉은 배경색에 “국민 여러분, 한 없이 죄송합니다”라고 쓴 어느 정당 국회의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필자가 놀란 건 대통령이 될 정당이 마치 결정이라도 된 듯 글을 쓰는 신문의 논조였다. “대통령 위에 최순실이 있고, 그 위에 언론이 있다”라는 세간의 말이 사실이었다.이 나라 언론은 어느 순간부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를 더하여 보도하고 있다. 그냥 지나가다 보면 정말 하루에 1천만 명 이상이라도 모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바로 악마의 편집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어두웠던 시절에 세상의 등불이었다. 그 덕분에 이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왔다. 그런데 지금은? 부디 지금부터라도 악마의 편집에 유혹되지 말고 언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음과 같은 왜곡된 현실을 바로 잡아 하루 속히 이 나라에 희망의 2017년을 밝혀주기를 바란다. 청년 실업률이 최고인 지금, 취업률이 전국 1위라는 광고를 내보내는 대학, 대거 미달 사태가 난 고등학교 입시 결과 대신 서울대학교에 몇 명 들어 간 것만 떠들어대는 학교와 교육청 말이다.

2017-01-12

사자성어가 난무하는 신 춘추전국시대

▲ 강희룡 서예가지난 2001년부터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는 교수신문은 병신년의 사자성어로 순자의 왕제편에 나오는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원문을 풀이하면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교수신문은 지난달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의 교수 6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32.4%)로 군주민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고 24일 밝혔으며, 맹자에 나오는 말로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라는 뜻의 역천자망(逆天者亡)을 군주민수에 이어 두 번째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28.8%)했다.2017년 정유년 구직자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며, 직장인이 뽑은 사자성어는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긴 득의지추(得意之秋)라고 한다. 정계와 재계에서도 새해를 맞아 사자성어를 쏟아냈으니, 대권주자들을 살펴보면 손학규 전민주당 대표는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다`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채택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낡은 기득권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의미의 `옛것을 뜯어고치고 새 솥으로 바꾼다`는 혁고정신(革故鼎新)을,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한다는 즉`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위침(磨斧爲針)을 선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6년에는 국민이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무리들을 탄핵했고 2017년에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평화적 혁명을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면서 `바르지 못한 것이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한다`는 뜻의 사불범정(邪不犯正)을 택했으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의지로 재조산하(再造山河)를 꼽았다. 이 재조산하는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준 글귀다.경제계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국민 신년사에서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의미, 즉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사자성어를 꺼내 들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대승에 앞서 선조에게 올린 교지에 들어있는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는 뜻의 상유십이(尙有十二)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창을 베고 자면서 적을 기다린다`는 뜻의 침과대적(枕戈待敵)을 제시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올해가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 만큼 명확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할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사자성어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신년사에서 유독 인용되는 횟수가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우리가 인용하는 사자성어는 대부분 중국 전국시대의 산물이다. 전국시대를 요약하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더 가지기 위해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시대 아닌가. 전국시대의 사자성어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전국시대 책사들의 권모술수에서 나온 것이며, 그 권모술수를 모은 책이 바로 전국책이다. 사자성어의 속뜻은 대개 난세의 생존전략들이 많으며 인간과 사회의 적나라한 속성을 보여 주는 것도 사실이며, 일종의 처세술로 쓸모가 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의 지침이 되면 곤란하다. 권모술수를 인생의 지침으로 삼는 우를 범할 수는 없지 않은가.

2017-01-06

AI도 막지 못할 새벽이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붉은 원숭이 해가 숨을 다했다. 그 마지막 숨이 너무 거칠었다. 그 거친 숨소리와 조류독감 때문에 닭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육사 시인은 지금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비록 정유년이 시작되었지만 세상에는 닭 우는 소리 대신 광장의 정치 소음만 가득할 뿐이다.끝이 곧 시작이라고 했다. 이문재 시인은 시에서 “그래, 땅 끝까지 가거라. (중략) 척추를 곧추 세우고, 그래 갈 때는, 갈 데까지 가는 것이다. (중략) 땅 끝이 땅의 시작이다”라고 썼다. 비록 2016년 달력의 마지막 장은 뜯겼지만 새로운 시간의 시작은 보이지 않는다.그 이유는 아마도 이 나라가 아직 끝을 보지 못한 뭔가가 많기 때문이다. 망하려면 제대로 망해야 다시, 그리고 빨리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아프지만 정말 제대로 망했으면 좋겠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만큼은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제대로 척결(剔抉)하고 희망만 담아 제대로 시작하길 바란다.그러기 위해서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다고 떠들어 대는 위선(僞善) 덩어리인 지금의 국회부터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혼돈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청문회니 촛불집회니 뭐니 해서 정의를 위해 일하는 척하지만, 과연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국민들은 바로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지금처럼 말하고 행동할 정치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말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이 나라 혼돈의 시발점은 언제나 정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혼돈의 주범들이 혼돈을 바로잡겠다고 설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오히려 청문회를 받아도 시원찮을 위인들이 청문회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니 개가 웃을 일이다. 아픈 말이지만 새로운 나라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분명 더 망해야 한다. 혹시나 `그래도 누구보다는`, 아니면 `어느 정당보다는 좀 낫지 않느냐`는 미련 때문에 지금의 정치인들 중에서 누군가에게 이 나라를 맡긴다면 분명 우리는 더 큰 혹독한 시련을 당할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여론 조사 결과다. 국민들은 그렇게 속아 놓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금의 정치인들 중에서 다음 대통령을 뽑고 싶을까. 지금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말은 “그래도”가 아니라 분명 “그렇다면”이다.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들이 중심을 바로 세우지 못했기에 이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이라는 굳은 각오로 광장에서부터 “척”하는 정치인들을 몰아내야 한다. 광장에 있는, 그리고 TV에 자주 나오는 정치인들을 보면 왜 붉은 원숭이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원숭이 관련 관용 표현을 찾아보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원숭이 볼기짝 같다(부끄러운 일을 당해 얼굴이 붉게 된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잔나비 밥 짓듯, 조삼모사(朝三暮四), 목후이관(갓 쓴 원숭이)” 등 하나같이 지금의 정치인들을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는 표현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선 진흙탕 싸움을 시작한 그들은 분명 자신들을 원숭이가 아닌 용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 언론들이 잡룡도 안 되는 그들을 잠룡(潛龍)이라고 계속 추켜세워 주니까.정유년(丁酉年)에는 이육사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 모두가 희망의 노래를 목 놓아 부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닭의 피로 원숭이를 훈계한다는 `살계경후`라는 말처럼 이 나라를 요지경으로 만든 붉은 원숭이들부터 제대로 길들여야 한다. 그런데 AI 때문에 이 나라 닭의 씨가 마를 지경이다. 그래서 원숭이 훈계 방법으로 살계경후 대신 `명계경후`를 제시한다. 닭의 피 대신 정유년 붉은 닭의 힘찬 울음소리가 병신년의 액운을 모두 쫓아버리고 추락하는 이 나라에 비상의 날개를 달아주길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2017-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