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갤러리는 유통업체에서 운영하다 보니 매년 새해가 되면 그 해를 상징하는 12간지 동물을 활용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는 병신년 붉은 원숭이의 해라 원숭이 작품전을 가진 바 있었고, 올해 역시 닭띠 해를 상징하는 조각전을 마련해 열었다.
하지만 올 해 전시회는 예년과 달리 좀처럼 사회적 이슈나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크게 얻지 못하고 있다. 아마 그것은 닭이 가지는 생물학적 의미와 역사 속에 숨겨진 이야기보다는 사상최악의 조류 인플루엔자와 최순실 국정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빚어진 어수선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반영된 듯하다.
하지만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닭을 상서로운 조짐을 가진 서조(瑞鳥)로 인식 해 왔으며, 새벽을 여는 새로도 여겨 왔다. 아침이 시작되기 전 우렁찬 닭 울음소리가 먼저 들려왔기에 새 아침,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동물로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닭은 `삼국유사`와 혁거세 신화에 나올 정도로 우린 민족과는 친숙한 동물이며, 대구의 대표축제인 `치맥 페스티벌`과의 인연을 보더라도 현대인들과도 더 없이 가까운 동물이다. 이제 새로운 닭의 해를 맞아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힘차게 쏟아 오르는 붉은 태양처럼 힘찬 한해를 열어나갔으면 한다.
1월의 `1`이 가지는 상징성은 무엇보다 `새로운 시작`과 `출발` 등 긍정적인 요소가 담겨져 있다. 지난해에 이어 좀처럼 진정기미를 보이질 않는 국정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우리민족이 가지는 닭띠 해의 새로운 상징성과 의미를 되새겨 봐야겠다.
문헌상으로 `닭`과 `새로운 출발`에 관한 기록을 먼저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닭이 자생한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삼국유사`에서 나타난 혁거세와 김알지의 탄생신화를 볼 때 닭은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상징적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경주의 계림은 신라 왕조 중 김씨 왕조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전해오는 곳이다.
신라는 박씨인 박혁거세가 세운 나라이지만, 박씨, 석씨, 김씨 이렇게 세 성씨가 왕위를 이은 나라이기도 했다. 이중 김씨가 가장 많은 왕을 배출했고, 신라 후기에는 거의 김씨가 왕위를 이어 갔다. 이 신라 김씨 왕조의 시조가 바로 김알지이며, 계림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65년(탈해왕 9년) 3월 어느 날 밤에 왕이 서쪽 시림(始林)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탈해왕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호공에게 숲에 가보라 했고, 호공이 숲에 가보니 금빛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그 밑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한다. 이 궤짝을 왕궁으로 가져가 열어보니 그 안에서 준수한 용모의 아이가 있어, 탈해왕이 이 아이를 거두어 길렀는데 이 아이가 김알지라는 이야기이다. 이 김알지의 6대손이 신라의 왕이 되는데, 이 사람이 13대왕인 미추왕이며 그는 자신의 조상이 태어난 숲을 계림(鷄林)이라 하여 역사적으로 길이 보존토록 했다. 지금은 첨성대와 내물왕릉이 함께 공존하는 곳이지만 그곳은 신라를 대표하는 상징이었으며 후에는 나라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심지어 신라가 멸망한 후 고려, 조선 시대까지도 계림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기를 다룬 일본의 `조선정벌기`란 책에서, 이순신에 대해 `충성과 용맹이 계림에서 으뜸이었다.` 라고 쓰기도 했다. 당연히 이순신은 신라가 아닌 조선시대 인물이므로, `계림`이 `조선(한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셈이다.
지난해에 이어 정유년 새해까지 이어진 사상초유의 국정논단 파문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지만 닭(酉)이 주는 부정적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과 탄생을 알리는 긍정적 의미로 한 해를 긍정적으로 설계 해 나가는 여유를 빨리 찾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