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35도! 누군가는 극지방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몽골의 날씨다. 필자는 인천과 김포 공항이 눈 때문에 공항 기능을 상실했을 때 몽골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있었다. 국내 정치 상황만큼이나 좋지 못한 국내 공항 사정을 다른 나라에서 듣는 기분이란 곧 불어닥칠 초대형 태풍 소식을 듣는 것과 비슷했다. 몽골 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무겁고 지친 표정, 그것은 곧 정치에 지친 대한민국 국민들의 모습이었다.
필자는 5월에 있을 해외이동수업 사전 답사 차 한 주 내내 꼬박 몽골에 있었다. 3년째 1월과 5월에 몽골 사전답사를 하고 있다. 해외이동수업은 학생들에게 생태계는 물론 환경보호의 중요성과 세계화 시대에 맞는 글로벌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산자연중학교만의 특성화교과이다. 그래서 매년 수업 주제가 정해지면 교사들이 몽골을 샅샅이 뒤져 최적의 수업 장소를 찾고 있다. 올해 수업 주제는 산자연중학교 생명의 숲 조성이다.
자욱한 매연만 빼고 몽골은 매년 변화 발전된 모습을 필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높은 건물들, 조금씩 늘고 있는 가로수들! 무엇보다 활기찬 몽골 국민들의 모습은 필자가 늘 느끼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행복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그래서 물질적인 기준에서야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과 몽골 사람 중 행복지수는 만족할 줄 아는 몽골 사람이 더 높을 거라는, 몽골에서도 가장 오지에서 몽골 사람들과 함께 지내시는 한국 신부님의 말씀을 필자는 부정할 수 없다.
올해 몽골은 작년과 다르게 설국이었다. 하늘에서 본 몽골 산야는 현실 세계의 겨울왕국이었다. 몽골 현지 한국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학생들이 희망의 숲을 조성할 아르갈란트라는 곳으로 갔다. 울란바토르에서 약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그곳까지 가는 데 필자가 본 건 눈뿐이었다. 간혹 점점이 양들과 소떼들이 눈 속에서 봄을 캐고 있었다. 가는 내내 필자는 눈에 중독되었다.
눈길을 달려 도착한 곳에서 필자는 또다시 배려와 나눔에 중독됐다. 광활함이라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더 넓은 그곳에서 필자는 우리말로 적힌 안내판을 보았다. “서울시는 사막화 방지를 위해 주민과 함께 `미래를 가꾸는 숲`을 아르갈란트 솜에 조성합니다.” 뿌듯함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현지인으로부터 서울시에서 매년 2만 그루씩 심어 5년 동안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왜냐하면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조성할 숲의 규모는 서울시가 조성할 숲의 일부도 안 되는 규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방 잊혀졌다. 규모가 절대 중요하지 않으니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과 몽골 쎈뽈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갈 숲은 그냥 돈만 지원하는 지자체와는 분명 다르니까!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몽골 이곳저곳을 다니고 숙소 앞 식당에 갔다. 그런데 손님이 거의 없었다. 의아해서 물어보니 밀주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 명 죽어서 정부에서 일정 기간 전 국민에게 금주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 국민 금주령이 가능하다는 것이, 또 그것을 큰 음식점과 대형마트는 물론 동네의 작은 구멍가게들도 지킨다는 것이.
과연 우리나라는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오로지 자기만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깡철이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역겨웠다. 어떻게 국가 금주령이 가능한지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은 말했다. 나라에서 하지마라고 하는데 이유가 있느냐고. 그리고 그들은 덧붙였다. 당신의 나라는 대통령이 없지 않느냐고. 씁쓸하게 일어서는 필자를 불쌍하게 보는 그들의 시선에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숙소에 들어와 다음 일정을 짜고 있는데 밖이 너무 소란스러웠다. 굳이 귀기울이지 않아도 또렷이 들리는 술 취한 한국인들의 고성방가.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자 적었다. “대한민국 정치 금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