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사자성어가 난무하는 신 춘추전국시대

등록일 2017-01-06 02:01 게재일 2017-01-06 18면
스크랩버튼
▲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지난 2001년부터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해 발표하고 있는 교수신문은 병신년의 사자성어로 순자의 왕제편에 나오는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원문을 풀이하면 `백성은 물이요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교수신문은 지난달 20일부터 22일까지 전국의 교수 6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32.4%)로 군주민수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고 24일 밝혔으며, 맹자에 나오는 말로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라는 뜻의 역천자망(逆天者亡)을 군주민수에 이어 두 번째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28.8%)했다.

2017년 정유년 구직자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는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며, 직장인이 뽑은 사자성어는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긴 득의지추(得意之秋)라고 한다. 정계와 재계에서도 새해를 맞아 사자성어를 쏟아냈으니, 대권주자들을 살펴보면 손학규 전민주당 대표는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다`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채택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은 낡은 기득권을 청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의미의 `옛것을 뜯어고치고 새 솥으로 바꾼다`는 혁고정신(革故鼎新)을,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한다는 즉`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마부위침(磨斧爲針)을 선정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6년에는 국민이 바르지 못하고 요사스러운 무리들을 탄핵했고 2017년에는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평화적 혁명을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면서 `바르지 못한 것이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한다`는 뜻의 사불범정(邪不犯正)을 택했으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의지로 재조산하(再造山河)를 꼽았다. 이 재조산하는 임진왜란 당시 실의에 빠져 있던 서애 류성룡에게 충무공 이순신이 적어준 글귀다.

경제계는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국민 신년사에서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의미, 즉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사자성어를 꺼내 들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대승에 앞서 선조에게 올린 교지에 들어있는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는 뜻의 상유십이(尙有十二)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창을 베고 자면서 적을 기다린다`는 뜻의 침과대적(枕戈待敵)을 제시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올해가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 만큼 명확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할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사자성어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신년사에서 유독 인용되는 횟수가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가 인용하는 사자성어는 대부분 중국 전국시대의 산물이다. 전국시대를 요약하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더 가지기 위해 아들이 아비를 죽이고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시대 아닌가. 전국시대의 사자성어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전국시대 책사들의 권모술수에서 나온 것이며, 그 권모술수를 모은 책이 바로 전국책이다. 사자성어의 속뜻은 대개 난세의 생존전략들이 많으며 인간과 사회의 적나라한 속성을 보여 주는 것도 사실이며, 일종의 처세술로 쓸모가 있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의 지침이 되면 곤란하다. 권모술수를 인생의 지침으로 삼는 우를 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