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이어 이번에는 구제역까지, 난세(世)는 난세다. 지금 이 나라는 재앙 수준의 혼돈에 빠져 있다. 재앙 중에서도 대재앙은 인간에 의한 재앙이 아니라 자연이 내리는 재앙이다. 재난 영화를 보면 자연은 항상 먼저 경고를 보낸다. 그 경고에 인간을 제외한 생명체들은 대비를 한다. 그러나 둔한 인간들은 자기 잘난 맛에 자연이 아무리 경고를 보내도 그 경고를 무시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는 자연이 보내는 경고를 인지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항상 뒷북만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더 크게 외친다. “남 탓이오. 정부 탓이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코미디 대한민국은 자연 재앙보다 인간 재앙이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세계인들에 보여주고 있다.
신화시대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판도라 상자를 열었지만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욕심으로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물론 그 상자 안에는 불신, 배신 등 현대판 재앙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런데 신화와 현실이 다른 건 신화 속 판도라 상자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지만 이 나라 정치인들이 연 판도라 상자 안에는 희망 대신 대선증후군만이 남아 있다.
이 나라는 심각한 대선증후군을 앓고 있다. 무엇을 위한 탄핵이었는지, 누굴 위한 촛불이었는지 당사자들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적어도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한, 또 진실을 밝히기 위한 탄핵과 촛불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남은 건 오로지 대통령 자리에 목숨을 건 `잡룡`들의 대선 헤게모니 뿐이다. 광장과 촛불은 이번에도 대선증후군을 앓고 있는 정치인들의 정치 놀이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분명 한 때는 광장 안의 소리만이 진실이고, 전부라고 생각된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 소리에 대해 다른 소리를 하면 역적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지금 광장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벚꽃 대선에 눈먼 사람들 뿐이다.
광장 밖의 더 많은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뒤엎을 반전(反轉)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 반전이 일어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하기 위한 꼼수 정치인들의 소리가 소음보다 더 시끄럽다. 그 중 대표적인 한 사람은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적폐(積弊)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패권주의`가 연관검색어로 떴다. 그래서 패권주의를 검색해 보았다. 가장 앞쪽에 나온 말이 `친문패권주의`였다. 적폐 청산을 외치는 당사자는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할지, 그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해서 관련어에서 삭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분명 이 나라는 뭔가에 발목이 잡혀 있다. 움직일수록 고통만 더 심하다. 누가 덫을 놓았을까. `걸면 걸린다`는 식의 마구잡이 저인망 수사를 하는 특별한 힘을 가진 검찰인지, 아니면 그런 검찰을 뒤에서 들들 볶는 뺑덕 어미 같은 정치인들과 언론인지, 아무튼 안타까운 것은 고통은 온전히 국민 몫이라는 것이다.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지난 토요일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학교소재지 마을 어르신들과 인근 지역민, 학부모님을 학교로 초청해 정월대보름 행사를 가졌다. 학생들은 마을 어르신께 정월 세배를 드리고, 오곡밥을 대접했다. 그리고 달집태우기 행사를 가졌다. 길놀이는 산자연중학교 사물놀이 팀이 맡았다. 길놀이 마무리에 3학년이 될 상쇠 용진이가 지신밟기노래를 불렀다. “어허루 지신아, (중략) 잡귀 잡신은 물알로, 만복 수복은 이곳으로, 여기 모인 모든 분들, 소원 성취하세요!” 지신밟기가 끝날 때를 기다렸다는 듯 휘영청 밝은 달이 떠올랐다. 사물놀이 팀 학생들은 더 신나게 풍물을 울렸다.
필자도 상쇠의 소리에 이어 외쳤다. “어허루 지신아, 잡귀 잡신은 물론이고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는 잡룡들도 물알로 데려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