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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입학식

등록일 2017-03-02 02:01 게재일 2017-03-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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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철이 없는 인간 사회에서 유일하게 철을 지키는 것은 시간 뿐이다. 그것이 때론 부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 일 중에 하나라도 지켜지고 있는 것이 있어 다행이다. 시간에 감정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완전히 비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그렇게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지.

철은 없고, 갑자기 힘이 생겨 무식해진 국회의원들은 또 다른 탄핵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기들 말이 곧 진리라고 믿는 막가파 국회의원들에 의해 이 나라 국회 문제 해결 공식이 만들어졌다. 그것은 바로 `묻지 마 탄핵`이다. 더 이상 이 나라 국회에서 탄핵은 큰 일이 아니다. 탄핵이 일상이 되어 버린, 아무렇지도 않게 탄핵을 이야기하는 막가파 국회의원들, 그들부터 탄핵하자고 외치고 싶지만 철없는 그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기 싫어 이야기를 접는다.

변화에 대한 욕망과 그 결과는 분명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절대(絶對)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누구에게는 사랑이, 또 누군가에겐 종교가 그 대상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그 절대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가 상대적 개념으로 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절대는 상대적 개념의 절대가 아니다. 그럼 세상엔 사람들이 바라는 그런 `절대`가 존재할까?

절대는 때론 당연함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에게 무언가를 물었는데, 딸아이가 한 말에 몹시 당황한 적이 있다. “아빠, 그거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함의 뜻을 잊어버릴 정도로 당연하다는 말이 크게 들렸다. 그래서 당연함의 뜻을 찾아보았다. 사전은 `일의 앞뒤 상황을 볼 때 마땅히 그러함`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그럼 마땅함이란 또 어떤 건가. 뭔가 깊이 파고들면 더 복잡해지는 이 나라 정치처럼 사전은 마땅함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리지 못했다. `알맞다, 옳다` 등의 서술어가 `마땅하다`를 설명하고 있었다.

많은 말들이 가치 판단과 관련돼 있듯 당연함, 마땅함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절대적 가치와 진리가 사라지고 힘이 진리를 만들어가는 지금, 가치와 진리의 의미가 몹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절대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혼돈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힘으로 억지 진리를 만들어가는 자들이 판을 치는 2017년 국회와 의원들, 그들은 궤변론자(詭辯論者)들임이 틀림없다. 이 나라에 괴변(怪變)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다.

3월이 되면 당연한 일이 있었다. 졸업식만큼이나 떠들썩했던 입학식! 하지만 그런 입학식의 모습은 과거 시간 속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야단은 야단이다. 모든 학교 교문 앞에는 축하 현수막이 내걸렸다. 일부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만국기까지 펄럭이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교육 통계를 보면 입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가 작년에 무려 60곳이 넘었다고 한다. 또 입학생이 10명 미만인 학교가 1천395개교였으며, 경상북도와 전라남도는 각각 217개교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인구 절벽 시대에 입학생 수 절감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학교 존립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위기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 이 나라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정치인들이지만,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 또한 이것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철밥통들이니까. 그런데 세상에는 분명 예외가 있다. 필자는 올해 산자연중학교의 입학식 이름을 글로벌 입학식이라고 지었다.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다른 학교와는 달리 해마다 입학생 수가 늘고 있는 산자연중학교의 글로벌 입학식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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