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원숭이 해가 숨을 다했다.
그 마지막 숨이 너무 거칠었다. 그 거친 숨소리와 조류독감 때문에 닭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육사 시인은 지금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비록 정유년이 시작되었지만 세상에는 닭 우는 소리 대신 광장의 정치 소음만 가득할 뿐이다.
끝이 곧 시작이라고 했다. 이문재 시인은 시에서 “그래, 땅 끝까지 가거라. (중략) 척추를 곧추 세우고, 그래 갈 때는, 갈 데까지 가는 것이다. (중략) 땅 끝이 땅의 시작이다”라고 썼다. 비록 2016년 달력의 마지막 장은 뜯겼지만 새로운 시간의 시작은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나라가 아직 끝을 보지 못한 뭔가가 많기 때문이다. 망하려면 제대로 망해야 다시, 그리고 빨리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아프지만 정말 제대로 망했으면 좋겠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만큼은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제대로 척결(剔抉)하고 희망만 담아 제대로 시작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다고 떠들어 대는 위선(僞善) 덩어리인 지금의 국회부터 제로(0)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큰 혼돈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청문회니 촛불집회니 뭐니 해서 정의를 위해 일하는 척하지만, 과연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국민들은 바로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지금처럼 말하고 행동할 정치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말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이 나라 혼돈의 시발점은 언제나 정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혼돈의 주범들이 혼돈을 바로잡겠다고 설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오히려 청문회를 받아도 시원찮을 위인들이 청문회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하니 개가 웃을 일이다. 아픈 말이지만 새로운 나라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분명 더 망해야 한다. 혹시나 `그래도 누구보다는`, 아니면 `어느 정당보다는 좀 낫지 않느냐`는 미련 때문에 지금의 정치인들 중에서 누군가에게 이 나라를 맡긴다면 분명 우리는 더 큰 혹독한 시련을 당할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여론 조사 결과다. 국민들은 그렇게 속아 놓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금의 정치인들 중에서 다음 대통령을 뽑고 싶을까. 지금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말은 “그래도”가 아니라 분명 “그렇다면”이다.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들이 중심을 바로 세우지 못했기에 이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이라는 굳은 각오로 광장에서부터 “척”하는 정치인들을 몰아내야 한다. 광장에 있는, 그리고 TV에 자주 나오는 정치인들을 보면 왜 붉은 원숭이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원숭이 관련 관용 표현을 찾아보았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원숭이 볼기짝 같다(부끄러운 일을 당해 얼굴이 붉게 된 사람을 두고 하는 말), 잔나비 밥 짓듯, 조삼모사(朝三暮四), 목후이관(갓 쓴 원숭이)” 등 하나같이 지금의 정치인들을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는 표현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선 진흙탕 싸움을 시작한 그들은 분명 자신들을 원숭이가 아닌 용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 언론들이 잡룡도 안 되는 그들을 잠룡(潛龍)이라고 계속 추켜세워 주니까.
정유년(丁酉年)에는 이육사 시인의 바람대로 우리 모두가 희망의 노래를 목 놓아 부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닭의 피로 원숭이를 훈계한다는 `살계경후`라는 말처럼 이 나라를 요지경으로 만든 붉은 원숭이들부터 제대로 길들여야 한다. 그런데 AI 때문에 이 나라 닭의 씨가 마를 지경이다. 그래서 원숭이 훈계 방법으로 살계경후 대신 `명계경후`를 제시한다. 닭의 피 대신 정유년 붉은 닭의 힘찬 울음소리가 병신년의 액운을 모두 쫓아버리고 추락하는 이 나라에 비상의 날개를 달아주길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