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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구 최초의 서양화전 `대구미술전람회`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서양화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지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우리 전통의 미의식과 표현양식에서 서구의 미적 가치를 수용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 이상의 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특히 대구는 서울이 아닌 일본에서 직접 서양화를 배우고 익힌 대구출신 화가들에 의해 보급되고 미술단체가 자의적으로 결성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런 결과 대구는 서울, 평양과 함께 우리나라 서양화의 메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서구문화를 대표하는 서양미술이 대구의 화가들에 의해 본격화 되면서 대구는 어느 도시보다 활발한 예술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100여 년 전에 대구미술은 어떤 환경 속에서 수용과 전개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당시 활동했던 화가들의 작품경향과 유작들에 대한 소재 파악은 아직까지 한국미술사에서 연구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1920년대 초 대구서화들로 결성된 `교남시서화연구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대구 근대미술의 새로운 서막이 열리기 시작했다. 1922년 5월 대구부청(당시 경상북도청) 내 위치했던 뇌경관(賴慶館)에서 개최된 `교남시서화연구회전`은 대구 전통서화의 현주소와 발전 가능성을 한눈에 보여준 의미 있는 전시회였다. 이듬해인 1923년에는 대구의 청년 지도자인 이여성, 정운해, 서건호, 서병인 등이 마련한`대구미술전람회`가 열려 대구미술의 본격적인 발표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 이 전시는 대구미술을 일반인들에게 선보인 대구 최초의 서양화 작품전이었다. 서성정에 위치해 있던 노동공제회관(옛 은사관)에서 열린 당시 전시회는 새로운 미술양식을 감상하며 배우기 위한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당시 신문기사를 살펴보면 “대구미술전람회는 지난 11일부터 노동공제회관(動共濟會館) 안에서 열렸는 바, 이는 적어도 남국(南國) 정조(情調)와 풍토를 가진 곳에서 처음 표현되는 예술(藝術)의 빛이다. 회장은 무료 공개인 바 입장인 수는 매일 오육백명에 달하는 성황을 이루어 좁은 공제회관이 더욱 복잡하게 된 바 출품점수는 서양화부에는 이여성(李如星)군의 유우(乳牛)외 십육점, 이상정(李相定)군의 `지나사원`외 십삼점, 황윤수(黃允守)군의 `봄비 온 뒤`외 오점, 박명조(朴命祚)군의 초추(初秋)외 오점, 합 사십삼점인 바 눈뜨이는 가작이 의외로 많아서 대구에 이만한 미술가가 있었는지를 의심할 정도였고 동양화부의 출품은 사십점인 바 서석재(徐石齋)의 난초 서경재(徐敬齋)의 매화 서태당(徐兌堂)의 대 박회산(朴晦山)의 글씨 허기석(許箕石)의 산수가 그 중 호평이었으며, 고서화부 출품은 삼십여점인 바 가장 인기를 끈 것은 추사 김정희·미수 허목의 친필과 최소동육세서(崔小東六歲書)와 휴휴당, 임사당의 화이며 조월파(趙月波)의 금강산 사생 등이었더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고어로 기록된 신문에서는 당시 관람객들이 신문화인 미술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매일 600여 명의 관람객들은 서구의 미의식과 표현양식을 통해 일본의 식민통치하에 우리민족이 가져야 하는 진정한 교육의 의미와 세계화에 대한 당위성을 새롭게 인식했을 것이다.이처럼 새로운 문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처와 합리적인 수용이 결국 대구를 서양미술의 중심으로 만든 요인이 되었다.이제 대구·경북은 100여 년 전 문화예술의 선각자들이 펼쳤던 열정과 적극적인 수용자세를 본받고 새로운 100년을 펼쳐 나갈 능동적 자세를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2017-05-17

교육, 나눔, 그리고 지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아빠 선물 사 와.” 너무도 짧은 말에 조금은 서운했다. 물론 4년째 어린이날을 혼자 보내게 해서 미안하지만 몽골로 답사를 가는 아빠에게 “잘 갔다 와!”도 아니고, “선물 사 와!”라니. 그런데 서운한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훨씬 더 커서인지 몽골 사전답사 내내 마음도, 몸도 무거웠다. 지난 주 내내 필자는 이번달 말에 있을 몽골 해외이동수업을 위한 2차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갈 때마다 많은 분들이 그냥 여행사에 위탁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씀을 하시지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 하는 해외이동수업은 여타 학교들이 하는 해외수학여행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일반 여행사에서는 프로그램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해마다 1월과 5월에 사전답사를 하고 있다.작년에 이어 올해 해외이동수업 주제 역시 `교육, 나눔, 그리고 지구Ⅱ`다. 세부 주제의 핵심은 `생명·사랑·나눔 숲` 일명 `선비의 숲` 조성이다. 작년부터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몽골 현지에서 사막화 방지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좀 더 적극적 참여의 일환으로 직접 사막화 방지를 위한 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학생들은 5개년 계획을 세웠다. 1년에 400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어 5년 후에는 2천그루 이상의 나무가 심어진 숲을 조성할 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전교회장인 유빈이는 교내 환경논문 발표대회에서 최우수상으로 받은 상금 5만원을 숲 조성 기금으로 쾌척했다. 그리고 비즈쿨 창업 동아리 학생들은 가족운동회에서 생태교실 시간에 생활재활용품을 이용해 만든 다육 화분 판매로 번 수익금 34만9천원 전액을 주저하지 않고 기부했다. 다른 학생들 또한 각자의 방법으로 숲 기금 조성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의미 없는 시험점수를 높이기 위해 맹목적인 사교육의 삶을 살고 있다는 다른 학생들과는 분명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 그들이 만들어갈 사회는 지금 나만 잘났다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떠들어 대는 정치인들이 분탕(焚蕩)질 할 사회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식당은 물론 숙소부터 차량까지 몽골 현지에서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그 힘듦을 감내(堪耐)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이다.그런데 이번 사전 답사는 더없이 힘들었다. 왜냐하면 필자보다 더 이 나라를 걱정하는 몽골 현지 가이드 때문이었다. “한국 괜찮아요?”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너무 당황해서 어떤 답을 해줘야 할 지 몰라 주저주저하고 있었다. 그런 필자가 안쓰러웠던지 가이드가 다시 더 쉽게 묻는다. “전쟁, 안 일어나겠죠?” 전쟁이라는 말에 더 말문이 막혀버렸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그냥 놀란 추임새로 나온 말이 “네?”였다. 말꼬리가 크게 올라가려는 필자를 안심시키듯 한국에서 몇 개월 이삿짐센터에서 일했다는 가이드는 동정 가득한 눈으로 말하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괜찮을 거예요.” 낯선 이국인에게 나랏일을 위로 받는 느낌을 대통령 당선인은 물론 정치인들은 알까.말을 돌리기 위해 필자는 건너가는 한 마디를 던졌다. “몽골은 해마다 발전하는 것 같아요.” 정말 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입이 풀렸다. 그리고 애국지사의 표정으로 답하였다. “발전하는 건 좋은데 너무 빨라요. 그리고 너무 급해요. 돈을 너무 많이 빌려왔는데 갚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6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어 발표를 안 하고 있을 뿐 몽골 사람들은 다 알아요. 참 한국도 대통령 선거 하지요?” 그의 말에 갑자기 지난 5개월 한국이 겪었던 고난들이 떠올랐다.

2017-05-11

사드(THAAD)는 기회다

▲ 김현욱 시인사드(THAAD)란 `종말(Termina)고고도(hight Altitude) 지역방어(Area Defense)`의 줄임말이다. 일반적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서, 150km의 고도에서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이다. 사드는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이나 노동미사일 방어를 전제로 한다. 스커드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천km, 노동미사일은 1천300km이며, 속도는 마하 4~5에 달한다. 현재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우리 군의 방어 수단은 패트리엇 요격미사일(Pac-2)이다. 내년에는 패트리엇 요격미사일(Pac-3)이 도입된다고 한다. 패트리엇 미사일은 고도 40km 내외에서 북한의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다. 패트리엇 미사일의 단점은 북한의 미사일이 한국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기 직전에 단 한번 요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사드를 배치한다는 것은 고도 150km 내외에서 먼저 북한 미사일을 요격할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핵과 생화학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탑재하고 날아오는 북한의 미사일을 한 번 더 요격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국가의 존립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가혹한 공포정치로 고위층들의 탈북과 망명이 증가하는 위태로운 김정은 정권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드 배치를 통해 군사적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전시 작전권은 미국이 갖는다. 미군 사령관이 지휘하고 우리는 따라야 한다.사드 배치로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한 번 더 대비할 수 있고, 미국의 미사일 요격망(MD)에 속하게 되어 확고한 한미동맹의 보호를 받게 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의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시뮬레이션 결과 전쟁은 우리가 이기지만,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쟁이 끝난 한반도는 그야말로 폐허와 잿더미 뿐일 것이다.만약 핵과 화학무기가 사용된다면 한반도는 영원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사드는 `전쟁억제`가 아니라 `전쟁`을 전제로 한다. 스커드와 노동미사일이 우리를 향해 발사된다는 뜻이 무엇이겠는가? 사드를 사용한다는 게 무엇이겠는가? 그건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뜻이다.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우리를 위협하던 북한의 다연장로켓과 장사정포가 수도권과 주요 시설을 집중 포격한다는 뜻이다. 그 이후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것이다.아직 사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X밴드 레이더는 설치되지 않았다. 사드 배치는 다음 정권으로 넘겨도 늦지 않다.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사드 포기도 아니고 사드 배치도 아니다. 현직 대통령이 구속까지 된 시점에서 사드 배치를 강행하거나 포기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모호함이 한국의 외교적 전략이 될 것이다.무엇보다 잘못된 신호로 중국이 북한의 뒤를 봐주게 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묶으려면 중국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 그동안의 수많은 국제적 제재와 조치가 별 소용이 없음을 우리는 보았다. 사드를 통해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더 강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만일의 경우 중국이 북한으로 연결된 송유관을 잠글 수도 있다는 최근의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위대한 미국을 부르짖는 일방적인 트럼프 행정부에게도 강력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 중국과 미국을 상대로 당당하고 절묘한 외교를 펼칠 때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일본도 한국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사드는 분명, 기회다.

2017-05-10

창조도시 포항, 미래산업 산실로 육성해야

▲ 최제민포항창조경제혁신센터 과장 우리경제는 지금 혹한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경제현장에서는 지난 IMF외환위기를 뛰어넘는 최악의 수준이라며 아우성이다. 소비심리마저 얼어붙어 서민들의 아랫목 또한 점점 온기를 잃어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내년도 경제전망 또한 그리 밝지 않다. 어수선한 정국에 가려진 우리경제에 대한 우려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포항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철강·조선·제조업 등에 대한 경기전망은 더 어두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역경제가 철강경기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점이다. 불황타개도 급선무이지만 산업다양화로 지역경제의 기초를 튼실하게 다져야하는 일 또한 매우 시급한 과제라는 점에서 포항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무엇보다 포항경제의 활력을 견인하는 철강·조선·제조 등의 산업에 대한 경기전망은 더욱 어둡다. 포항은 성장한계에 도달한 철강 의존의 산업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조도시 건설을 기치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위해 다양한 산업생태계 조성과 육성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그나마 민족기업 포스코가 선도적으로 지곡단지를 RD기지로 육성한 점은 포항의 창조경제 정책에 큰 힘이 되고 있다.이러한 창조경제는 영국의 경영전략가 존 호킨스가 2001년 펴낸 책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새로운 아이디어, 즉 창의력으로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으로 정의된다.창조경제는 비록 현 정부에서 추진한 핵심전략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시대적 요청의 산물이기도 하다.스타트업(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기업)은 미래의 먹거리다. 구글과 애플 같은 혁신기업이 나오려면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창조경제`의 일정부분에 대해 수정은 하되 창업생태계 조성이라는 근본적 취지는 일관된 국가적 전략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이 중단된다면, 이는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우리는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란, 기업들이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작업 경쟁력을 높이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가리키는 말이다.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기존의 산업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없다고 보고,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산업생태계 조성에 팔을 걷고 나섰다. 스마트 헬스케어,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AI), 스마트카, 사물인터넷(lot) 등 미래 신산업 육성에 전력하고 있다.최근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입주기업 75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98.7%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더 확대되거나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답했고, 정부나 지자체가 창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할 것으로 64%가 정책 일관성 유지를 꼽고 있다.특히 포항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육성은 매우 필요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포항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지역의 탄탄한 과학기술 연구기반을 활용해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의 주역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가졌다.포항에는 포스텍 등 이러한 혁신기업에 도전할 창의적 인재들이 즐비하다.이들 창의적 인재들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스마트 헬스 케어,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AI), 스마트 카, 사물인터넷(lot) 등 미래 신산업에 과감히 도전할 때 포항과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가 기지개를 활짝 펼 것이다.

2017-05-04

여행

▲ 류영재포항예총 회장 “이 일만 마치고는 떠나야지….”하는 결심을 되풀이하였으나 번번이 여의치 않아 마침내는 만사를 젖혀두고 우선 떠나고 봐야겠다는 작정을 했다. 양말 몇 개와 세면도구만 챙긴 조그만 종이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 나서고 보니 이토록 간단한 일이 어찌 그리 어려웠던가 싶어 오히려 의아할 지경이었다. 여행! 어떤 이는 여행을 익숙한 지겨움의 탈출이며 매력적인 낯설음과 조우하는 일이라 하였고, 옛 어른들은 `독서만권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를 군자의 덕목이라 하여 독서를 통한 지식이나 지혜의 습득과 여행을 통한 체험의 중요함을 같은 비중으로 생각하였다. 어쨌거나 여행은 개인적인 힐링을 위해서도 중요할 뿐 아니라 보다 큰 안목을 갖추기 위하여 꼭 필요한 컨설팅이기도 하다. 그만큼 여정에서 얻어지는 체험이 소중한 것이다.그러나 나의 이번 여행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었으니, 어떤 큰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선언적인 세레모니의 의미가 강한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소원이던 그림에 푹 빠져보고 싶어서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작업실로 출근하리라 결심하고 직장을 그만두었으나 막상 퇴직을 하고 한 달이 넘도록 붓은 잡아보지도 못하고 이런저런 일들에 휘둘렸으니 뭔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였고, 스스로에게 새로운 다짐을 하는 의미로 여행을 선택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퇴직을 하면 직장생활에 고생한 보상으로 해외여행 한 두번은 기본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세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아직도 내게 그런 여유는 없다.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넉넉지 않은 사람이 굳이 여행을 결심한 데에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언적인 행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며, 그래야 제대로 붓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지금보다 훨씬 더 젊은 시절에도 할 일은 늘 많았고 바빠서 정신없이 사느라 전람회 날짜가 코앞에 다가와서야 비로소 다급하게 작업실을 찾았고, 작업실에 가서도 붓부터 잡는 게 아니라 먼저 빗자루를 잡는 묘한 성격이었다. 먹고사느라 그토록 소원이던 그림 그리는 일에 충실하지 못했으니 더 늦기 전에 이제는 그 일을 해야겠고, 이 여행은 무엇보다 본격적으로 붓을 잡기 위한 의식의 의미가 가장 강한 것이었다.길을 떠나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감정과 함께 무작정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전에도 몇 차례 다녀서 제법 익숙한 지리산과 실상사, 가까운 벗이 있어서 유달리 정이 가는 유자의 고장 고흥, 내친김에 고흥반도의 끝까지 내달려서 처음으로 만난 소록도의 생경함 등 반가움과 낯설음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남쪽 바다는 어찌 그리 고요하며 소록병원 초입의 솔숲은 그 많은 사연에도 불구하고 어찌 그리도 덤덤하게 서 있던지…. 자연과 예술이 하나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허겁지겁 사는 동안에도 긴 세월동안 한결같았을 솔숲이며 바다, 찾는 사람들은 각자의 귀로 제각각 다른 자연의 이야기들을 들었으리라. 모든 것이 다 익숙하기만 하면 영원히 정체할 것이며, 모든 것이 다 낯설기만 하면 영원히 방랑하게 되리라. 낯선 장소와 다른 문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에 설레는 것이며, 나와 친숙한 그 무엇이 또한 함께 존재하므로 여행은 가능한 것이다.명나라의 서예가 동기창은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걸으면 가슴속의 온갖 더러운 것이 제거되고 산수의 경계가 절로 만들어져 손 가는 대로 그려내니 이것이 바로 산수의 전신이다.”라고 했다.시대를 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행을 하는 것`은 문기(文氣)를 얻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독서로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고, 여행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견문을 얻어야 비로소 미망에서 깨어나 창작의 길로 향하는 바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봄이다.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으며, 허겁지겁 어디로 가고 있는가?다가오는 연휴에는 가까운 곳이라도 나들이를 떠나자.

2017-04-26

大選本色(대선본색)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이다. 대선 후보들이 결정되는 순간, 아니 대선 예비 후보들이 거론되면서부터 소위 말하는 인격 난타전이 시작되고 있다. 마치 반칙이 난무하는 3류 스포츠 경기와 같다. 언론은 중계자가 되어 그 모습을 충실히 보도하고 있다.그런데 볼 때마다 화가 나는 이유는 뭘까?대선전을 중계하는 언론의 내용을 종합해서 가상의 대본을 만들어 보았다.“민주 선수, 국민 선수에게 딸 펀치를 날립니다. 딸 재산 공개라는 쨉을 계속 날립니다. 아, 국민 선수 계속 쨉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쨉도 계속 허용하면 파괴력이 있을 건데요.” “그렇죠, 뭐든 계속 되면 그것이 마치 진짜처럼 보이죠. 혹시 민주 선수의 말처럼 어떤 잘못이 있는 건 아닌가요?” “아, 민주 선수, 이번에는 국민 선수의 부인에 대해 물고 늘어지네요.” “저런 기술을 전문 용어로 신상털기라고 하지요.” “신상털기는 반칙 아닌가요.” “정말 지저분한 짓이죠. 초등학교 학생들도 싸울 때 안 하는 짓이죠.” “경고를 줘야하지 않나요. 민주 선수도 분명 처자식이 있을 텐데 말이죠. 심판 어디 있나요?” “모르셨습니까. 성이 선이고 이름이 관위라는 심판이 있기는 한데, 그들은 이 경기가 끝난 다음에 활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안타깝네요. 들리는 말에는 또 다른 인신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아마 더 노골적이고 야비해질 겁니다.” “네, 방금 말씀 하시는 것을 들었는지 민주 선수 정말 이상한 웃음을 광화문을 등지고 웃고 있네요. 최근 각종 조사에서 1등을 하고 있어서인지 거만함이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과연 국민 선수는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까요. 아니면 민주 선수처럼 인신공격과 함께 가족을 넘어 사돈에 팔촌까지 신상털기를 시도할까요. 민주 선수의 아들도 취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리던데요. 왜 국민 선수는 가만있죠?”“그런데 이번 대선전에는 민주 선수와 국민 선수밖에 참가하지 않았나요?” “물론 아니죠. 한국 선수와 바른 선수 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참가했다고는 합니다. 자기네들끼리 싸운다고 큰 판에는 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국민 대 민주, 민주 대 국민. 이름으로만 보면 정말 세기의 대결 같습니다만, 글쎄요 지켜보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있어보이지는 않아 보입니다.” “그렇죠. 이번 경기는 19회째인데요. 19회 정도 되면 뭔가 정통이나 전통 같은 것도 있을 법한데요. 뭐가 잘못된 것인지 이 나라의 대선전은 1회 대회나 19회 대회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으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무관심한 건 어쩌면 당연한 거겠죠.” “말씀을 듣고 보니 가슴이 정말 답답합니다. 다들 자기만 잘났다고 하는데 신상털기는 그만 좀하고 정말 자신이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속 시원히 이야기 좀 해 줬으면 좋겠어요.”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그럴 가능성은 제로(0)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니까 이번 경기는 개인의 능력보단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상황이 얼마나 덜 냄새 나는가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럼, 언제까지 이런 지저분한 싸움을 지켜봐야 할까요?” “아마도 지금의 정치인들은 물론 지금까지의 정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그것도 일순간에 사라지지 않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정말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없네요. 원래 대선전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가지고 진검승부를 펼지는 대회인데 정책대결은 온 데 간 데 없고 오로지 인신공격과 신상털기를 통한 상대방 흠집 내기에만 목숨들을 걸고 있으니 참으로 원통한 일입니다. 갑자기 `더 킹`이라는 영화의 한 대사가 너무도 강력히 공감되네요. `정치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것을 모르니 정말 안타깝네요.”대선본색을 생각하다 영웅본색이 생각났다. 영웅본색에는 있고, 대선본색에는 없는 대표적인 것은 바로 영웅본색의 영어 제목이기도 한 `A Better Tomorrow` 즉 `더 나은 내일`이다.

2017-04-19

아동미술교육의 진정한 의미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5월이 되면 어린이날을 축하하기 위한 어린이미술대회가 전국에서 열린다. 필자가 근무하는 쇼핑센터도 40여년을 훌쩍 넘긴 어린이미술대회를 매년 개최해 오고 있다. 1971년 첫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는 이제 중년의 나이를 넘겨 손자를 미술대회에 참여시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결과 짧지 않은 역사와 대회의 전통을 잇기 위한 노력은 소중한 가치로 평가 받고 있다.예나 지금이나 어린이 미술이 가지는 궁극적인 목적은 창의력을 길러주는데 있다고 본다. 특히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은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던 일들을 과학의 힘으로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발상의 전환이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원초적 힘이 되는 셈이다.창의적 사고를 키워주는 아동미술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과거에는 예술의 의미를 `어떤 기술을 익힌다`와 `학습되어진 특별한 능력`으로 한정지었다면, 오늘날 미술의 의미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색과 형태, 선 등 다양한 재료를 선택하고 사용하려는 감각적인 미의식으로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적인 화가 양성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활동을 통한 눈과 손으로 자신의 의지 속에서 창조의 기쁨과 일상 속에서 감각적 의식개발을 이끌어 나가는 성장의 발달을 느껴보게 해주는 것이다. 아동미술교육은 예술적 표현이나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인간교육의 관점에서 풍부한 미적 감수성이나 창의성 등을 개발하고 발견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인간에게 있어 창의성은 개개인의 기질이나 성품에 따라 서로 다른 타입으로 나타나며 미술의 경우 하나의 독창성을 부여해 준다.특히 아동미술은 대부분 평면적 활동이든 조형 활동이든 아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하는데 이 상상력이 창의적인 사고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어른들의 상상력보다 월등히 풍부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조기에 상상력을 통한 창의력을 함양시켜 주어야 하다는 것이 아동미술교육의 궁극적인 이유인 셈이다.미술활동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맞추려는 안정성만 중점을 둔다면 절대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의 간섭이 많을수록 아이들의 생각은 점점 사라지고 멈춰버리게 된다. 다시 고정관념 안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미술교육에 있어 창의성이란 생명과도 같다. 생명이 없는 식물은 가치가 없듯이 미술에도 살아 숨 쉬는 생명력과도 같은 아이디어들이 넘쳐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액자가게 한편에 진열된 복제된 작품과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이며 그것을 보며 우리는 절대적인 창조력을 요구하는 예술품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다.우리나라 미술교육의 형태를 살펴보면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며 주관적인 생각이나 표현보다는 객관적으로 우수한 결과만을 바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무조건 잘 그리는 방법만을 가르치고 개인의 독창적인 생각이 들어가지 않은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환경은 당연히 아동미술에서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인간, 감수성 발달, 정서안정이라는 목표를 수행하는데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어린이 미술대회가 잘 그린 그림에 높은 점수를 주기 보다는 건강한 그림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선발 기준부터 바꾸는 노력이 선행되어져야 할 것이다. 어린이는 우리나라의 미래이며, 그들의 무한한 창의력은 국제적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우리의 진정한 능력이 되는 셈이다.

2017-04-18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벚꽃이 절정의 왕국을 이룬 주말이었다. 자연의 절정은 그 대상이 무엇이 됐건 인간들에게는 큰 감동을 준다. 감동(感動)의 뜻은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다. 그런데 받을 줄만 아는 인간들의 움직임은 언제나 파괴로 향한다. 벚꽃이 핀 곳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고, 그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폐허에 가까운 황무지가 되어버렸다.하지만 자연은 인간들과 다르게 복원력(復原力)이라는 놀랍도록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다음 일을 준비한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후회 없는 이별을 하는 벚꽃을 보면서 필자는 꽃들은 피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연습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피는 것이 화려한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 더 화려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필자의 이 늦은 깨달음을 이형기 시인은 `낙화(花)`라는 시에 담아 놓았다.“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중략)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할 때 // (중략) 나의 사랑, 나의 결별 /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벚꽃이 한창인 지난 주 연수회 참가 차 경주를 다녀왔다. 주제는 `교사학습공동체로 학생활동중심 수업의 전문가가 되자!`였다. 봄이 정점인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연수회장은 교사들로 가득했다. 만개한 벚꽃에 마음이 혹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열정에 이끌려 열심히 연수를 들었다. 오전에는 대학교수의 특강이 있었는데, “개인 지성이 아닌 집단 지성으로의 변화”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지금 우리사회는 혼돈, 혼란이라는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위기에 빠져있다. 방송을 보면 잘난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이 나라이다. 그런데 교육, 경제, 국방, 문화, 정치까지 전문가 그룹이 그렇게 많은데, 왜 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 답을 집단 지성이 말해줬다. 집단지성(集團知性)을 사전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된 지적 능력의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집단 지성의 주문에 걸려 주말을 보냈다.우리 국민의 국민성을 나타내는 말 중 하나가 모래알 근성이다. 대한민국 국민 한 명 한 명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 뭣하나? 모이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오죽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세 명 모이면 당파가 네 개 생긴다”라는 말까지 있을까. 좁은 땅덩어리와 한정된 재화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빼앗지 않으면 뺏기는 처절한 경쟁의 삶을 살았다. 상대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는 초(超)개인주의라는 DNA를 만들어놓았다. 그 DNA는 일명 악바리 근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악바리 근성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다고들 하지만, 변질된 그 근성 때문에 지금 우리는 너무 아프다. 이 나라를 이토록 아프게 만든 이는 누구일까. 우리는 왜 항상 아파야만 하는가.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더 아프기만 하는가. 아픈 것에 익숙한 우리야 아프고 말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자식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졌기에 이 극한의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모든 아픔에는 원인이 있다고 한다. 분명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 아픔에도 원인이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 특히 대선 후보라는 작자들은 자신들은 결코 잘못이 없다고만 한다. 그리고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서로를 헐뜯고 있다.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 즉 통증유발점이라는 것이 있다. 자연은 통점(痛點)을 자기 안에서 찾는다. 하지만 인간들은? 필자는 분명히 안다. 이 나라의 트리거 포인트는 바로 자기만 잘 났다고 떠들어대는 대선 후보들이라는 것을.

2017-04-13

세상은 무엇으로 가려져 있습니까?

▲ 김현욱 시인“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탕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공지영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초기 불교 경전 `수타니파타`에서 제목을 따왔다. 수타(Sutta)는 말의 묶음(經), 니파타(Nipata)는 모음(集)이라는 뜻이다.경전을 모은 것, 부처님 설법의 모음으로 이해하면 된다. `법구경`, `아함경`과 함께 `수타니파타`는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불교 경전이다. `수타니파타`는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각 장이 따로따로 전해지다가 어떤 시기에 하나의 `경집`으로 묶인 것이다.`수타니파타`는 모두 1천149수의 시를 70경에 정리하고 다시 다섯 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뱀의 비유(蛇品)`, `작은 장(小品)`, `큰 장(大品)`, `여덟 편의 시(義品)`, `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이 그것이다.이 중 `여덟 편의 시`와 `피안에 이르는 길`은 독립된 경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가장 오래된 초기 경전이다.`수타니파타`의 첫 번째 장은 바로 `뱀의 비유`, 즉, 사품(蛇品)이다.“몸에 퍼지는 뱀의 독을 약으로 다스리듯/ 화가 일어나는 것을 다스리는 사람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과 같이 `뱀의 허물`이 후렴으로 반복되고 있어 사품(蛇品)이라 불린다. 불교에서는 탐·진·치를 삼독(三毒)이라고 하는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탐진치(貪瞋痴)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세 번째인 큰 장(大品)에는 방랑하는 구도자 사비야의 질문에 주저없이 대답하는 부처님이 나온다. 사비야의 질문은 이렇다.“무엇을 얻은 사람을 수행자라고 합니까? 어떻게 하면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자기를 절제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을 눈이 열린 사람(彿)이라 합니까?”이에 부처님은, “사비야여, (…중략…) 세상에 있으면서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모든 인연의 속박을 벗어버리고 어떤 일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람, 그를 일러 `용(龍)`이라 한다.”라고 답한다.다섯 번째 장인 `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에서는 아지타의 질문이 눈에 띈다. “세상은 무엇으로 가려져 있습니까? 세상은 무엇 때문에 빛나지 않습니까?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부처님은 이렇게 답한다. “아지타여, 이 세상은 근본 무지로 인해 가려져 있다. 세상은 탐욕과 게으름으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욕망이요, 고뇌가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이다.”`유구개고 무욕즉강(有求皆苦 無慾則剛)`이라고 했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괴로움이 되고, 욕심이 없으면 강한 것이다, 라는 뜻이다.일본의 다쿠앙 소오호오(1573~1645) 선사는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단무지를 최초로 만든 분으로 더욱 유명하다. 스님의 임종 모습이 `무욕즉강`이다. 다쿠앙 선사의 유훈은 이렇다.“장례를 치러서는 안 된다. 시체는 밤에 남모르게 들어다 들에 파묻어라. 그것으로 그만이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라. 그 어디서고 부조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묘지를 만들지 마라. 조정으로부터 선사 칭호가 내려오더라도 받지 마라. 위패도 필요 없다. 49재 등 불교 의식 일체를 행하지 마라.” 그리고 글자 한 글자만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몽(夢).”`수타니파타`를 한 글자로 정리해야 한다면, `몽(夢)`이 좋겠다. 인생은 참으로 부질없는 꿈이다.

2017-04-12

광장 증후군(syndrome)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봄을 지휘하는 농부들의 손이 현란해지고 있다. 음표를 그리기 전에 먼저 논밭에다 오선지를 만드는 그들의 모습에서 봄의 왈츠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 가락에 맞춰 광대나물, 개불알꽃 등 봄 야생화들이 겨울 문을 힘껏 밀어 올리고 봄을 내보낸다. 자연의 리듬을 아는 농부들은 자신들이 만든 논밭 오선지에 씨앗 음표를 심는다. 그리고 철 따라 자연 광장 음악회를 개최한다.철을 아는 자연의 광장과는 다르게 오로지 자기들만 맞고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인간의 광장들은 철을 모른다. 그래서 시끄럽다. 그것은 함성과는 구별되는 소음이다. 함성과 소음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함성이 큰 울림이 있다면, 소음은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광화문과 시청 광장의 큰 소리들은 측정이 불가능한 최악의 소음이다. 왜냐하면 둘 다 광장 밖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최고치로 올려놓으니까.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광장은 어떤 특정 집단의 흥신소가 되어버렸다. 툭하면 광장으로 몰려나와 촛불을 켠다. 그러면 언론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집해 국민들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것이 여론이고 민심이라고 광장 밖 국민들이 최면에 걸릴 때까지 주문처럼 무한 반복해 내보낸다.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언론의 주문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광장으로 모인다. 그리고 광장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 외친다.“아빠, 세계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 “왜?” “미국이랑, 중국이랑, 일본이랑 있는 한 절대 안 된다.” “왜?” “미국하고 중국하고 절대 안 친하잖아. 또 일본은 자기만 잘 났다고 하잖아.” “나경아, 그것을 어떻게 아니?” “뉴스에서 봤어. 중국과 롯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어. 왜 중국은 자기들 멋대로 하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은 왜 우리끼리 싸우는 거야?” 벚꽃놀이를 가던 차 안에서 초등학교 4학년 나경이가 던진 말이다. 이 즈음되면 언론의 주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것이다.광장과 언론을 생각하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는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나라 광장, 정확히 말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언론들은 광장 밖 국민의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탈탈 털고 있다. 마치 광장이 모든 문제의 해결장소인양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들에게 동참하지 않으면 욕하고 비방(誹謗)하는 모습은 병에 가까울 정도다.필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광장 증후군`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이 증후군은 부끄럽게도 이 나라밖에 없다. 필자는 광장 증후군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광장이면 다 된다는 허상에 빠져 있는, 그리고 자신이 속한 광장만이 진실이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정서 장애`.증후군이라는 말을 검색해보면 오셀로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 등 참 많은 증후군들이 나온다. 이런 증후군의 공통점은 정서 장애다. 그럼 왜 유독 현대에 증후군이 많을까? 그것은 공동체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참 의미의 공동체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 증후군의 양산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가 화려해질수록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 장애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럼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그 방법을 나경이가 말해줬다. “아빠, 그냥 서로를 다 용서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들 화해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나경아 그것도 뉴스에서 나오니?” “아빠. 아빠는 선생님이라면서 뉴스도 안 봐. 뉴스에서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밖에 안 나오잖아. 그리고 대통령도 감옥에 보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 그냥 태권도 마치고 오면서 친구들끼리 이야기 한 거야.”나경이의 말이 봄 교향악이 되어 전국에 울려 퍼지길 간절히 바라는 봄 아닌 봄이다.

2017-04-06

교남 YMCA회관과 서양화가 박명조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지난 3월 말 대구의 약전골목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마련됐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일어났던 3·1독립운동과 다양한 민족운동의 거점공간으로 잘 알려진 교남 YMCA회관이 오랜 공사를 통해 3·1운동 기념관과 YMCA 역사관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교남 YMCA회관은 1914년 미국 북장로교 대구선교지회가 청년전도를 위해 세운 건물로 대구 약전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1층과 2층 사이를 돌림띠(cornice)로 장식하고 창호 상부는 아치로 인방을 확보하여 사각형의 창문을 설치하는 등 1910~20년대 조적조건축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일제강점기 3·1독립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 공간이며 물산장려운동과 기독교 농촌운동, 신간회 운동 등 기독교 민족운동의 거점공간이기도 하며 다양한 미술전람회가 개최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구 근대 역사의 중요한 사건과 사연을 간직하고 있던 이곳에 대한 지역의 무관심과 행정기관의 관리소홀이 그동안 건물을 흉물처럼 방치해 두는 결과를 낳게 했다. 늦은 감은 없지 않아 있지만 교남 YMCA회관의 복원은 대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두 손 들어 환영해야 할 일이다.먼저 이 건물은 대구근대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두 개의 대표 콘텐츠로 나누어 꾸며진다.대구 근대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마련된 3·1운동 기념관은 교남기독교청년회 창립발기인 중 1919년 당시 3·1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이만집, 김태련, 김영서, 백남채, 정광순, 권희윤, 이재인 등 7명의 애국지사에 대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다.YMCA 역사관은 나라를 위해 투쟁하고 기독교 선교활동을 벌였던 YMCA사무총장과 이사장, 임원 등 20명에 대한 기록과 유품을 함께 전시하는 기념관으로 구성되어 진다.교남 YMCA회관이 가지는 대구 근대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일제강점기 격동과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지역사회계몽과 청년 교육활동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서구문물들이 유입되며 절대적 파급효과를 나타내던 서양화의 보급과 활동은 대구 최초의 서양화 개인전인 박명조 작품전 개최로 이어진다.1926년 당시 20세의 젊은 나이로 마련한 그의 개인전은 지역미술계의 선구적 역할을 하였으며, 서양화 보급을 통한 신교육이 주는 자주적이고 개화된 의식의 전환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청년화가 박명조의 개인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평양의 김관호의 개인전 보다는 10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인 서울의 나혜석 개인전 보다는 불과 5년이 경과한 후 마련된 전시회로 상징적 의미는 더욱 크다고 말할 수 있다.서양화가 박명조는 17세의 어린나이에도 석재 서병오와 이상정, 이여성 등 대구의 중진작가들과 함께 대구미술전람회(1923)에 출품해 그림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그리고 대구에 거주하던 일본인 화가들과 빈번한 교류로 인해 자토회 정기전에 찬조출품 하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제5회 조선미전(1926)을 시작으로 제14회 조선미전까지 지속적인 출품을 통해 중앙화단에 그의 이름을 알려나가기도 했다.현재 유족이 보관중인 그의 첫 개인전 기념사진에서는 전시 포스터를 배경으로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청년작가의 순수함과 비장함 속에서 빼앗긴 조국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2017-04-05

비우기

▲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34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 자연인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오랜 습관으로 출근시간이면 잠에서 깨지만 급할 일이 없으니 공연히 집안을 서성거린다. 그러다보니 집안 구석구석이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로 넘쳐나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도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참에 집안 정리를 좀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정리라는 것이 결국은 버리는 일이라는 걸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버리기`,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퇴직을 며칠 앞두고 작은 갈등을 느꼈다. 짐 정리를 언제 할 것인가? 너무 미리 하자니 주변에서 어찌 생각할까 마음이 쓰이기도 하였거니와 엄연히 퇴직일이 정해져 있는지라 마지막 날까지는 정상적으로 근무하는 것이 마땅하다 싶기도 하여 우물쭈물하다가 그야말로 마지막 날 퇴근시간이 지나서야 급하게 짐을 챙겼다. 무릇 사람은 들고 날 때를 슬기롭게 판단하고 아름답게 떠나는 일이 중요하며 떠난 뒷모습이 남루하지 않아야 함은 불문가지다.떠날 때는 후임자가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게 깨끗이 정리해주는 것이 도리일 터, 필요한 짐을 챙겨오는 건 당연하지만 내게 필요치 않은 물건들도 깨끗이 치워주고 떠나야하는데, 책이며 사소한 물건들도 버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 가치관이 형성되었으니 기본적으로 버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시 보면 아직은 쓸모가 있다고 판단되는 물건들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집안 정리를 하면서도 똑같은 상황을 만났다. 나름대로 치우느라 아무리 이리저리 옮겨봐야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 결국은 버리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버릴 물건들을 챙기다보니 버리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버리려고 들었다가도 아이의 손때가 묻은 것이 보이면 `아, 이건 내가 버릴게 아니라 아이가 오면….`이라며 슬며시 내려놓곤 하여 들었다 다시 내려놓기를 되풀이하다 결국 버리기를 포기하였다.물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일이면 더욱 어렵다. 입버릇처럼 “마음 비운다”는 말을 하지만 비웠나 싶던 마음의 여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욕심으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비움의 미학`이란 말이 있나 보다.물론 버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사소한 물건들이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하고, 조선시대의 사초는 더러 비극적인 사화의 빌미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들이 모여서 사기(史記)가 되고 실록이 되었으니 어찌 함부로 버리라 할 것인가. 그러나 욕심을 비우는 일, 집착을 버리는 일, 마음을 비우는 일이야말로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꼭 실천해야 할 일이다.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스스로 측정하여 수치로 표현한 것을 행복지수라 한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선진국의 수준에 한참 뒤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태국이나 대만보다도 뒤지며, 특히 우리나라 직장인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라 한다. 그에 비하여 우리나라 GNP의 10분의 1에 불과한 부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이며 물산의 부족으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불교의 가르침을 통한 욕심없는 삶으로 행복지수가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기도 하였다.행복지수는 결국 내려놓기, 만족하기, 마음 비우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과도한 욕망은 절망을 낳고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지난 15년여 동안이나 계속해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데, 하루 평균 자살자 수가 무려 38명이나 된다고 한다. 심각한 일이다.마음 비우기를 꼭 실천해야 되는 까닭이다.

2017-04-04

대선 사공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는 하지만 많아도 너무 많다. 정당도 많고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더 많다. 인지도 하나 믿고 대통령이 다 된 듯 다른 후보들은 물론 국민들을 가르치려드는 꼴불견 사람부터 지역 일은 다 제쳐두고 대선에 올인 한 사람들까지 대선 판은 한마디로 도떼기시장 같다.그들과 시전 상인들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간절함이다. 대선 판에 뛰어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가 이 나라를 구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말한다. 자기가 아니면 이 나라는 더 큰 혼돈에 빠질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꼭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전국을 돌며 울부짖고 있다. 그 모습은 자신의 물건이 최고라고 외치는 시전 상인들과 닮았다. 대선 사공들과 공생 관계에 있는 언론들은 이런 모습을 잘 미화해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그런데 간절함이라도 다 같은 간절함은 절대 아니다. 시전 상인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진실성이다. 시전 상인들의 간절함은 생계를 위한 몸부림이다. 하지만 대선 사공들은 생계와는 무관하다. 그러기에 그들의 간절함에서는 역한 냄새가 난다. 국익(國益)으로 자신들의 간절함을 포장하기는 했지만, 광장 밖에 있는 국민들은 그것이 자신의 정치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얼만 전 목욕탕에서 필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뉴스의 한 장면을 보았다. 정말 역겨워 채널을 돌리고 싶었지만, 채널 선택권이 필자에겐 없었다. 금방 눈을 돌렸지만, 그 역겨움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온 몸과 정신을 오염시켰다. 그런데 필자만 이런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다. 열탕 속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채널을 바꾸라고 소리를 질렀다. 백발 어르신은 직접 밖으로 나가 채널을 돌리셨다.목욕탕 소요를 일으킨 장면은 모 방송사에서 대선 사공들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장면이었다. 배경은 청와대였는데, 문제는 여론 조사에 1위 한 사람을 청와대 중간에 크게 위치를 시켰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러리처럼 그 사람 사진 위쪽에 작게 아치모양으로 배치를 시켜 놓은 것이었다.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사람이 청와대의 주인인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대선 판에 대세론 공방이 시끄럽다. 어느 대선 사공은 SNS에 자신의 대세론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완전 새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번 대선은 국민이 주권자로 대우 받고, 사람으로 취급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꾸어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입니다”라는 무서운 경고성 문구에 밑줄을 그어 놓았다.이 말은 자신을 선택하지 않으면 이 나라 국민들은 사람 취급 받지 못한다는 무서운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 나라다. 자신이 그렇다고 하는데 뭐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최소한 국민들을 팔아서는 안 된다. 완전 새로운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천지개벽이라도 하겠다는 말일까. 그럼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은 부정되고 삭제돼야 한다는 말인가. 그는 이 나라가 그렇게 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 나라가 그렇게까지 썩은 나라였던가. 문제는 다른 대선 사공들도 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이 나라를 이렇게까지 만든 사람들은 누구인지, 정녕 자신들이 당사자들임을 모를까. 대세론과 함께 살생부가 또 대선 판에 새로운 이야기꺼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적폐청산이라는 말이다. 물론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하지만 적폐청산이라는 살생부에 앞서 이 나라를 위한 공약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여론 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대선 사공들은 알아야 한다. 국민들은 언더독(Under dog) 효과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자꾸 어찌 나라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2017-03-30

새 학기 증후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겨우내 기꺼이 산짐승들의 식량처가 되어준 산수유나무가 노란 봄을 가지마다 풍성하게 달았다. 그 밑으로 3월 찬 서리로 세안을 마친 제비꽃이 얼굴을 내밀었다. 철모르는 인간 사회에 침묵으로 시위하던 목련과 매화가 경쟁하듯 가슴을 열고 봄바람이 쉬어갈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조금 늦고 빠를 뿐 어수선한 세상과는 다르게 올해도 자연은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3월이다.그럼 학교의 3월 모습은 어떨까.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고 쓰고 싶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개학하고부터 산자연중학교에는 전학을 상담하기 위한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무턱대고 학생을 데리고 학교로 찾아온다. 아픈 말이지만 산자연중학교의 전화벨이 시끄럽다는 것은 그만큼 공교육이 잘 안 돌아간다는 것이다.“선생님,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데, 왜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하는 건지? 나가서 놀지도 않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라고 그렇게 이야기해도 데려오지도 않고 혼자 하루 종일 뭐하는지. 저희 부부는 아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해주는데 도대체 애가 왜 저럴까요?” 산자연중학교를 찾은 어느 학부모의 말을 잠시 인용하였다. 정말 뭔가 한이 맺힌 사람처럼 쏟아내는 말에 필자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비록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필자는 긴장한다. 그 긴장감은 필자에게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필자는 학부모가 말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귀는 학부모에게 가 있지만 눈은 언제나 학생을 향한다. 그리고 학생을 관찰한다. 그 관찰에는 언제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학생들의 표정이다. 학생들의 표정은 딱 두 가지다. 무관심과 독기. 학부모들은 학생의 반응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할 말만 한다. 그 말이 계속 될수록 학생들은 자기 세계로 더 깊이 빠져든다.그러면 필자는 불쑥 묻는다. “부모님께서 해주신 것들이 분명 학생이 원해서 해 주신 거 맞지요.” 이 말의 효과는 매우 크다. 가장 큰 효과는 학부모들이 말을 멈춘다는 것이다. 이 말이 나오기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쉼 없이 이야기하던 학부모들도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얼음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뭔가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필자를 바라본다. 그러면 필자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네가 부모님께 해달라고 부탁했니?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니?” 아이들의 대답은 단호하다. “아니요!”한때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익 광고가 전 국민을 감동시킨 적이 있다. 그 때 나온 공익 광고 문구를 잠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고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3월! 학생들은 모두들 큰 꿈을 가지고 교정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그 꿈은 과연 누구의 꿈일까? 그리고 그 꿈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교과서적으로 보면 당연히 꿈의 주인공은 학생이어야 하고, 학생들은 봄 향기 가득한 교정에서 자신의 꿈을 행복하게 가꾸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두들 알다시피 지금의 교육 현장에서는 너무도 먼 나라 이야기이다.`새 학기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을 느끼는 일종의 적응 장애`를 뜻한다. 누구나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은 가지고 있다. 여키스-도슨의 법칙처럼 때로는 적당한 불안은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안이 지속되면 그것은 병이 된다. 새 학기, 우리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분명 점검해봐야 한다. 그 시작은 교사부터 모두가 `나는 부모인지, 아니면 학부모인지`를 따져 묻는 일이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도 하루빨리 환한 봄꽃이 피길 바란다.

2017-03-23

시민과 국민 사이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이가 말한다. “아빠는 참 부럽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나경아, 뭐가 부럽니?” 물음표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기다렸듯이 말하였다. “아빠는 할 일이 있잖아!” “그럼, 나경이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아이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는 “아니야”라며 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일요일 아침 무기력해지려는 필자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초등학교 4학년 나경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과연 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필자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는 왜 자신의 할 일을 말하지 못했는지? 질문들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 아이는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아이가 남긴 “아빠는 참 부럽다!”라는 말의 무게에 눌려 필자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경직된 몸과는 달리 머리에서는 또다시 질문이 폭풍처럼 일었다. 정말 필자는 아이가 부러워할 정도의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국회는, 검찰은,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제 할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아이가 말한 부럽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방금 언급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분명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이다. 이 사회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직업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이 하나도 안 부러웠다. 나경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지난 주말 이 나라는 더 확실히 양분화 되었다. 남북으로 나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광장 안과 밖, 그리고 광장 안에서도 광화문과 시청 등으로 확실히 나뉘어졌다. 광화문 광장 안에서는 축배와 함께 축포가 하늘을 수놓았다. 거기에는 광장의 굉음을 빌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려는 인사들도 있었다. 벚꽃 대선이 되지 못한 서운함을 애써 감추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광장 안의 마지막 한 표라도 더 주워 담으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 더 광장의 진실이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다른 광장의 모습은 어떤가? 그 모습 또한 성숙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광장 안에는 화난 시민들로 가득하다. 늘 그랬듯 그들은 자신들을 화나게 만든 대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극성은 마치 마법과 같아서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마치 큰 죄인이 된 듯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특히 언론들의 부추김은 광장 안 마법의 위력을 극대화시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덩달아서 화난 시민이 되어 그들의 대열에 동참한다. 화는 분노로 번지고, 결국엔 도를 넘어서고야 만다.광장 안에서 축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다. 필자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세상이 바뀐 게 있느냐고. 축배의 잔 끝에는 정말 당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있느냐고. 도대체 무엇을 위한, 그리고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축배이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새도 없이 언론들은 벌써 “광장의 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왔다고, 그것을 시민 혁명이 이끌어냈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필자는 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외치는 것이다. 그래서 외친다.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라고. 광장 안에는 시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광장 밖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아는 국민들이 있다고.광장 안 시민들은 특정 정당인을 위한 혁명을 꿈꿀지 모르겠지만, 광장 밖 국민들은 이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광장의 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봄이라고!

2017-03-16

울퉁불퉁하지만 작고 단단한 열매

▲ 김현욱 시인경북 봉화의 산골 작은 학교에 근무하며 틈틈이 아이들에게 시를 지도하던 송명원 선생이 2013년 봄, `내 입은 불량 입`(크레용하우스)이라는 어린이 시집을 묶어냈다. 경북 봉화에 남회룡분교(현재는 폐교), 북지분교, 수식분교 아이들이 쓴 시 60편이 실려 있는데, 박혜선 시인의 추천사처럼 “시가 친구고, 시가 가족이고, 시가 학교고, 시가 꿈이 되어 훨훨 날아오른다. 부서지는 햇살만큼 눈부신 언어들. 뭉클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가 없는 근래 찾아보기 힘든 천진난만한 어린이 시집이다.”책머리에 “멋지고 크고 훌륭한 열매보다는 울퉁불퉁하지만 작고 단단한 열매를 담았다”라고 썼는데, 이는 송명원 선생의 교육철학이자 삶과 문학을 바라보는 중요한 가치관이다. 교단이든 문단이든 얼굴도장 찍기에 급급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불량 입`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세상에, 내륙 깊숙한 산골에서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귀하디귀한 동심의 텃밭을 가꾼 송명원 선생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고픈 산골의 꼬마 시인들도 함께 말이다.여담이지만, 송명원 선생과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다. 대학 시절에도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교편을 잡은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송명원 선생은 한결같은 모습이다. 2011년 동시 `고층 아파트` 외 11편으로 제9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에 당선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첫 동시집을 냈다. 봉화 산골 흙냄새 그윽한 참살이 동시집이다.송명원 시인은 봉화 산골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지금까지 줄곧 산골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는 “산골 아이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항상 같아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언제나 새롭다”고 말한다.아빠가 편하게 농사 못 짓게/ 놀린 죄!// 블루베리 나무 여기저기서/ 노닌 죄!// 잘 익은 블루베리를/ 노린 죄!/“네 죄를 알렸다.”/ 나뭇가지로 콕 집어/ 깡통 감옥에 가두니// 으악! 이게 뭐야?/ 숨도 못 쉬게 내 코를 찌른/ 노린재// -`노린재도시 아이들에게 `노린재`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곤충도감에서나 우연히 한 번쯤 보는 곤충이다. 봉화 산골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 `노린재`는 아빠의 농사를 괴롭히고, 귀한 블루베리를 노리는, `나뭇가지로 콕 집어 깡통`에 넣어야 하는, 삶에 생생하게 실재하는 곤충이다. `놀린 죄`, `노닌 죄`, `노린 죄`가 `노린재`와 비슷하게 읽히는 게 재미를 더하는 동시다. 물론, 아빠를 돕기 위해 깡통과 나뭇가지를 들고 블루베리 농장에서 노린재를 잡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도시 아이들이 아빠 엄마를 돕는 길은, 학원 잘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아빠도 엄마를 도울 수 없고, 엄마도 아빠를 도울 수 없다. 아파트의 월요일 아침 풍경을 떠올려 보라. 뿔뿔이 흩어져 서로가 각자의 길을 헐레벌떡 갈 뿐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사는 건 이제 익숙하다. 이사를 오가도 짐만 오르락내리락하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단절되고 분리된 모래 알갱이의 삶이다. 도시는 거대한 모래밭이다.반면에, 시인이 사는 산골 마을은 여전히 끈끈한 연대와 공동체가 존재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는 그 대안으로 `연대`를 강조한다. 연대란, 한 덩어리로 뭉치는 거나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한다. `나`와 `우리`가 아픈 원인은 사회 구조에 있으니 마을마다, 아파트마다 `연대`를 통해 `공동체`를 꾸리고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명원 시인의 `짜장면 먹는 날`(크레용하우스, 2016)은 끈끈한 연대와 따뜻한 공동체를 발견할 수 있는 보물 같은 동시집이다.

2017-03-15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

▲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프랑스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오르세미술관에 가면 저녁 6시가 되면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 입구를 길게 늘어선 행렬은 하나같이 행복한 모습으로 미술관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파리를 찾은 여행객들이 짧은 시간이지만 미술관 일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레의 `만종`이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이 오르세미술관의 대표작들은 모두 관람할 수는 없지만 문화대국 프랑스가 선사하는 관대한 배려에 새삼 행복감을 느낀다. 이는 문화와 예술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여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들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일상 속에 정신적 풍요로움과 행복감이 만들어 내는 풍부한 엔돌핀 분출은 우리의 삶 속에 문화와 예술이 있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박근혜 정부는 2014년부터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매달 마지막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3년 동안 시행해 오고 있다.전국 주요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혜택과 영화관, 공연장, 사설 박물관, 미술관 등 주요 문화시설에서 누릴 수 있는 할인정책은 그동안 국민들이 마냥 어려워했던 문화와 예술을 일상 속에서 친숙하게 만나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더불어 직장인도 퇴근 후 일부 문화시설들을 늦은 시간에 이용할 수 있도록 야간개방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야간개방정책이 주는 관대함과 정신적 여유로움의 행복이 우리주변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혜택으로 다가섰다는 점에서 더없이 높은 관심과 참여율을 보여주었다. 지난 2015년 `문화가 있는 날` 기획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전국 문화예술회관,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작은 음악회가 400여 회 열려 4만3천여 명이 수혜를 받았으며, 전국 70여 개의 작은 도서관에서 개최된 490여 회의 특별 강연에는 8천3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등 문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이 삶의 풍요로움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선물받기도 했다. 그리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던 공연계를 돕기 위한 `공연티켓 1+1 지원 사업`이 시행되어 추경예산 500억원을 공연단체와 예술인들에게 지원해 주기도 했으며 특히 군 장병 대상의 병영 독서 지원 사업이 시행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하지만 이러한 사업들이 박근혜 정부의 역점 과제 중 하나인 `문화융성 사업`과 연계되어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과 차은택의 비리로 파장이 확대되고 있는 듯하다. 문화와 예술이 주는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이 `최순실 게이트`의 부정적 이미지에 휘둘려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양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문화향유권이 정치적 비리로 얼룩져 본연의 의미를 모두 상실해 버리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국민의 문화 향유권은 행복권의 일환으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추진되어야 할 선진문화 권리이며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지원사업이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져 왔다. 수도권과 지방의 구분 없이 조성되는 순수문화와 예술분야의 인프라는 국민 모두에게 문화혜택을 골고루 나누려는 정책에서 비롯되고 있다. 문화를 생산하는 예술인들과 이를 마음으로 누리고자 하는 문화 소비자가 새롭게 관계를 정립한다면 불명예로 얼룩진 `문화가 있는 날`은 새롭게 부활할 것이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이 아닌 매일 매일이 `문화가 있는 날`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서는 문화 향유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2017-03-14

후한의 십상시와 조선의 내반원기

▲ 강희룡 서예가십상시가 국정 농단을 일삼던 후한의 영제(집권 168~189년)시기 중앙정부는 지방할거를 막겠다고 지방장관인 자사의 명칭을 주목으로 바꾸고 이 주목이 군사감독관인 감군사자를 겸하도록 했다. 이 정책은 중앙집권이 약화되고 지방할거를 더욱 촉진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지방 호족들이 황제 권력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서 황궁의 십상시는 황제권력을 사수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력 장악에만 전념하면서 국가나 황실의 운명을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은 없었다. 이들은 황제가 그저 유흥에만 빠져있기를 희망했다. 이들의 대표 격인 장양(135~189년)은 열두 살부터 환제를 주군으로 모셨다. 자신보다 세 살 많은 환제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황제의 측근으로 부상한 그와 환제의 관계는 단순히 신하와 주군을 떠나 동성애를 나누는 사이로 변하였다. 이 불륜관계는 순제 부인인 양태후에 의해 발각됐으나 태후는 이 사실을 발설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장양의 약점을 빌미로 태후는 정적인 환제의 동향을 감시하도록 했으나 장양은 결국 환제에게 돌아갔고 후에 장양은 양씨 외척을 몰락시켰다. 환제의 죽음을 계기로 두 명의 황제가 1년도 안 돼 교체되고 뒤이어 열세 살의 어린 영제가 황제로 등극하자 이를 이용해 권력을 잡은 것은 황제보다 21세 연상인 장양을 비롯한 십상시였다. 영제가 죽자 십상시는 정치적 도전에 직면했고 위기를 타개할 목적으로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다가 결국 실패한다. 후한서 `장양열전`에 따르면 십상시는 열 명이 아니라 열두 명이며 편의상 열 명으로 묶고 십상시라 부른 것이다. 장양은 황하에 뛰어들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조선의 내시도 엄연히 품계와 관직이 있는 전문직 공무원이었다. 내시의 품계는 종2품인 상선, 정3품인 상온·상다·상약에서, 종9품인 상원까지 직책이 다양하다. 최고직인 상선 내시의 경우는 종2품이었으니 오늘날 차관급에 해당하는 고위직이다. 궁궐 안에는 내시들이 업무를 보는 관청인 내반원이 있었다. 내반원은 임금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내시의 업무성격상 왕이 계시는 처소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시의 숫자는 `경국대전`에 140명으로 규정되어 있었으나, `대전통편`에 가서는 그 수효가 일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왕의 뜻에 따라 정하도록 변동됐다. 내시의 근무 형식은 비교적 장기간 궁궐에 머물면서 근무하는 방식인 장번내시와 교대로 궁궐을 출입하면서 근무하는 방식인 출입번내시가 있었다.김종직(1431~1492)은 성종의 전교를 받아 내반원의 연혁과 기능을 기록한 `내반원기`를 남겼다. `성종실록`에 `승정원에 전교하여 내가 일찍이 대루원기와 내반원기로서 여러 신하와 내관을 경계시키려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성종이 내시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 이 글을 짓게 했음을 유추할 수가 있다. 김종직은 내반원기에 내시의 임무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으며 중국 역대의 내시로서 모범적으로 활동한 인물들로 한의 사유로부터 시대별로 송의 장무칙까지 소개하였다. 또한 `충성되고 정직한 내시와 아첨하고 간사한 내시가 시대마다 각각 있었으니 그 중에서 착한 사람을 가려 본받고, 착하지 못한 자를 경계로 삼는 것이 가하다`고 하면서 내시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언급했다. 특히 내시의 권력화는 국가를 위기에 빠뜨린다는 점과 이에 대한 경계도 잊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왕의 측근임을 빙자해 재물을 긁어모으고,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고서 방자하고 거만하게 굴면 감히 막을 자가 없게 됐다`라고 했으니 내시의 권력화를 경계한 이 글이 오늘날 결코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진다.후한의 십상시외에도 진의 조고와 같은 환관세력, 당의 양귀비, 조선의 장녹수 같은 경국지색, 종교인으로는 고려 말 공민왕 때의 신돈 등 이 모두 우매한 지도자가 사악한 무리들에 현혹되어 정도의 정치를 버렸기에 나라가 망한 사례들이다.

2017-03-10

마티나의 아름다운 비행을 꿈꾸며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아빠,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 책가방이 빨리 학교 가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 진짜로 나 언제 학교 가?” 4년 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경이가 말버릇처럼 한 말이다. 학교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학 일주일 남겨놓고는 아예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안고 잠 잘 정도였다. 그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그런데 그토록 학교를 좋아하던 딸아이가 이젠 투덜이가 됐다. 월요일 아침 등교하면서 말한다. “아빠, 언제 토요일이 와?” 일요일 점심이 지나면 알람처럼 하는 말이 있다. “아, 오늘이 토요일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아빠, 너무 힘들고 피곤해”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를 이토록 힘들게 만드는지, 그토록 학교를 가고 싶어 하던 아이가 이제 학교 말만 나오면 피로감부터 느끼는지, 누가 속 시원하게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처럼 사교육을 몇 개씩 받는 것도 아니다.자유학기제다 뭐다 해서 세상에서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학교가 뭔가 조금씩 변화를 보이는 듯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교육 주체인 학생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교육 수요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교육 당국자의 뻔뻔한 거짓말에 속을 사람들은 분명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지적하고 바로 잡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퇴보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첨단 시대를 주도할, 이 사회 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학교는 정녕 이 나라에서는 불가능할까?이런 말을 하면 교육 당국자들은 펄쩍 뛴다. 그리고 되묻는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이 나라 교육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아느냐고. 지금 학생들은 교육 낙원에서 열심히 자신의 꿈을 찾고 있다고. 그리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동안 실패한 교육정책들과 정체 모를 통계 수치를 제시할 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자신들 업적인 양 어깨를 으쓱할 것이다.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학생들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인사 점수를 높이는 마루타 정책들이었다는 것을 안다.신학기, 분명 4년 전 나경이와 같은 마음으로 입학한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그 학생들만이라도 부디 입학 전에 가졌던 행복한 설렘과 희망, 그리고 기대를 학창 시절이 다 끝나도 그대로 간직하기를 바랄 뿐이다. 과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답이 없을까.필자는 학기 초만 되면 유독 생각나는 이론이 하나 있다. 그것은 로렌츠(Lorenz)의 `각인(刻印, Imprinting)` 이론이다.각인 학습 이론이란 회색기러기 새끼들이 부화한 직후 그들을 낳았거나 기른 부모를 따라 행동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이론이다. 다음은 각인 이론의 탄생 배경이다.“어느 날 그는 회색기러기 새끼가 막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광경을 목격한다. 알에서 나온 꼬마 새가 느닷없이 그에게 `인사`를 하더니, 그때부터 한시도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 새끼 새를 어미의 품속에 머물러 있게 하려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작은 회색기러기는 로렌츠가 어디를 가든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 새를 양녀로 받아들였고 `마티나`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어쩌면 모든 신입생들이 마티나일지도 모른다. 학교에 대해 갓 눈 뜬 마티나! 각인 이론대로라면 그들이 학교에서 처음 보는 많은 것들은 그들에게 그대로 각인된다. 과연 우리 아이들은 마티나처럼 그들이 처음 본 선생님을 부모처럼 믿고 따를 수 있을지? 그리고 또 선생님들은 편견 없이 그들을 친자식 이상으로 보살펴 줄지?그런데 벌써부터 신입생들의 한숨 소리가 웃음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은 왜일까. 촛불과 태극기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희망해본다. 우리 마티나들이 행복한 학교에서 아름다운 비행을 위한 준비를 잘 하기를.

2017-03-09

겸손을 잃어버린 사람들

▲ 강희룡 서예가유건휴(1768~1834)의 `대야집` 암재어록은 스승인 유장원 선생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으면서 보고 들었던, 일상의 몸가짐에서부터 공부방법, 경서나 성리학의 이론, 시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르침을 정리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들어있다. 별검인 족숙이 연경으로 가려 할 때 암재 선생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명성을 좋아하는 자는 행실은 비루하되 스스로는 높은 체하고, 실질적인 데 힘쓰는 자는 행실은 고결한데 스스로는 낮은 체한다. 자신을 스스로 높다고 깃발을 흔드는 자는 실상이 부합하지 못하여 그 명성을 망치고, 낮게 자처하여 자신을 수양하는 자는 실상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어서 명성이 더욱더 드러난다`하였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혹시 족숙이란 분이 평소 자신을 실제보다 과시하거나 남에게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자랑하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으니 늘 겸손할 것을 생각하라는 경계의 말씀을 한 것이다.이 겸손과 검소함에 대해 공자는 극기복례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부단한 수양과 성찰을 통해 지나친 욕망과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자기절제능력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직자들은 민중을 사랑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도 먼저 훌륭한 인격을 쌓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성인이나 현자들은 대개다수의 아프고 지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를 말해왔다. 불가에서는 중생에게 필요한 것을 보시하고, 희망과 위로의 말을 건네고, 그들을 이롭게 하며, 같이 일하고 동고동락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유가에서도 널리 민중을 사랑하고 어려움에서 구제해줄 것을 강조한다. 노자는 사랑, 검소, 겸손이 인간의 세 가지 보배스런 덕목이라고 했는데 그중에서 검소와 겸손이라는 덕목은 반자연적인 근대문명이 초래한 오늘날 위기 상황에서 특별히 재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장자의 `서무귀`에 서무귀와 위나라 무후와의 일화가 실려 있다. 권력을 휘두르면서 주지육림의 생활을 추구하던 무후는 “선생께서 산속에 살면서 도토리와 밤을 주워 먹고 나를 찾아오지 않아 지금 매우 늙어버린 것 같소. 그래 고기와 술맛을 보러 오셨소”하니 서무귀가 말했다. “저는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아직 한 번도 임금님의 호사스런 술과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온 것은 임금님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자 임금이 말했다. “무슨 소리요. 어떻게 그대가 나를 위로한단 말이오!” 그러자 “천지자연이 만물을 기르는 것은 똑같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잘하고,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못하지 않습니다. 임금께선 홀로 나라의 주인 행세하면서 백성을 괴롭히고, 귀와 눈, 코와 입의 욕망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허용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무릇 참된 정신이란 남과 화합하기를 좋아하고 간사한 것을 싫어합니다. 간사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병입니다. 그래서 위로를 해드리려는 것입니다.” 장자는 이 우언을 통해 권력과 물욕에 사로잡힌 인간을 오히려 불쌍하게 형상화하고 인간들의 세속적인 가치를 여지없이 전복시키면서 바람직한 삶의 길을 묻고 있다.지금 우리는 초유의 대통령탄핵을 놓고 생각이 양분된 집단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한쪽은 촛불을, 다른 쪽은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상황을 국민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통합은 커녕 국가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탐욕의 병을 앓고 있는 정치인들과 법치까지 부정하는 막말 법조인들까지 광장에서 편 가르기에 더 앞장서고 있다. 평등안(平等眼)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지도자가 아니라 겸손은 찾아 볼 수 없는 혼자 이 나라의 주인인양 행세하며 사회갈등을 조장하고, 본인들의 귀와 눈, 코와 입의 욕망을 만족시키면서 정치목적의 달성을 위한 패악질로 밖에 안 보인다. 구한말이 떠오르는 시국이다.

2017-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