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동안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 자연인이 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오랜 습관으로 출근시간이면 잠에서 깨지만 급할 일이 없으니 공연히 집안을 서성거린다. 그러다보니 집안 구석구석이 온갖 잡동사니 물건들로 넘쳐나는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기도 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참에 집안 정리를 좀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정리라는 것이 결국은 버리는 일이라는 걸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버리기`, 참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퇴직을 며칠 앞두고 작은 갈등을 느꼈다. 짐 정리를 언제 할 것인가? 너무 미리 하자니 주변에서 어찌 생각할까 마음이 쓰이기도 하였거니와 엄연히 퇴직일이 정해져 있는지라 마지막 날까지는 정상적으로 근무하는 것이 마땅하다 싶기도 하여 우물쭈물하다가 그야말로 마지막 날 퇴근시간이 지나서야 급하게 짐을 챙겼다. 무릇 사람은 들고 날 때를 슬기롭게 판단하고 아름답게 떠나는 일이 중요하며 떠난 뒷모습이 남루하지 않아야 함은 불문가지다.
떠날 때는 후임자가 불편하거나 불쾌하지 않게 깨끗이 정리해주는 것이 도리일 터, 필요한 짐을 챙겨오는 건 당연하지만 내게 필요치 않은 물건들도 깨끗이 치워주고 떠나야하는데, 책이며 사소한 물건들도 버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 가치관이 형성되었으니 기본적으로 버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시 보면 아직은 쓸모가 있다고 판단되는 물건들을 함부로 버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집안 정리를 하면서도 똑같은 상황을 만났다. 나름대로 치우느라 아무리 이리저리 옮겨봐야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 결국은 버리기로 결심하게 되었고, 버릴 물건들을 챙기다보니 버리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버리려고 들었다가도 아이의 손때가 묻은 것이 보이면 `아, 이건 내가 버릴게 아니라 아이가 오면….`이라며 슬며시 내려놓곤 하여 들었다 다시 내려놓기를 되풀이하다 결국 버리기를 포기하였다.
물건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일이면 더욱 어렵다. 입버릇처럼 “마음 비운다”는 말을 하지만 비웠나 싶던 마음의 여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다른 욕심으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비움의 미학`이란 말이 있나 보다.
물론 버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사소한 물건들이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하고, 조선시대의 사초는 더러 비극적인 사화의 빌미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들이 모여서 사기(史記)가 되고 실록이 되었으니 어찌 함부로 버리라 할 것인가. 그러나 욕심을 비우는 일, 집착을 버리는 일, 마음을 비우는 일이야말로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도 꼭 실천해야 할 일이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스스로 측정하여 수치로 표현한 것을 행복지수라 한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선진국의 수준에 한참 뒤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태국이나 대만보다도 뒤지며, 특히 우리나라 직장인의 행복지수는 세계 최하위권이라 한다. 그에 비하여 우리나라 GNP의 10분의 1에 불과한 부탄은 국토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이며 물산의 부족으로 열악한 환경이지만 불교의 가르침을 통한 욕심없는 삶으로 행복지수가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로 꼽히기도 하였다.
행복지수는 결국 내려놓기, 만족하기, 마음 비우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과도한 욕망은 절망을 낳고 절망의 막다른 골목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한국인의 자살률은 지난 15년여 동안이나 계속해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데, 하루 평균 자살자 수가 무려 38명이나 된다고 한다. 심각한 일이다.
마음 비우기를 꼭 실천해야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