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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

등록일 2017-04-13 00:35 게재일 2017-04-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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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벚꽃이 절정의 왕국을 이룬 주말이었다. 자연의 절정은 그 대상이 무엇이 됐건 인간들에게는 큰 감동을 준다. 감동(感動)의 뜻은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이다. 그런데 받을 줄만 아는 인간들의 움직임은 언제나 파괴로 향한다. 벚꽃이 핀 곳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뤘고, 그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폐허에 가까운 황무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들과 다르게 복원력(復原力)이라는 놀랍도록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다음 일을 준비한다. 지는 해를 배경으로 후회 없는 이별을 하는 벚꽃을 보면서 필자는 꽃들은 피는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연습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피는 것이 화려한 것이 아니라 지는 것이 더 화려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필자의 이 늦은 깨달음을 이형기 시인은 `낙화(花)`라는 시에 담아 놓았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중략)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할 때 // (중략) 나의 사랑, 나의 결별 /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

벚꽃이 한창인 지난 주 연수회 참가 차 경주를 다녀왔다. 주제는 `교사학습공동체로 학생활동중심 수업의 전문가가 되자!`였다. 봄이 정점인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연수회장은 교사들로 가득했다. 만개한 벚꽃에 마음이 혹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열정에 이끌려 열심히 연수를 들었다. 오전에는 대학교수의 특강이 있었는데, “개인 지성이 아닌 집단 지성으로의 변화”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 우리사회는 혼돈, 혼란이라는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위기에 빠져있다. 방송을 보면 잘난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이 나라이다. 그런데 교육, 경제, 국방, 문화, 정치까지 전문가 그룹이 그렇게 많은데, 왜 나라는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그 답을 집단 지성이 말해줬다. 집단지성(集團知性)을 사전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을 통하여 얻게 된 지적 능력의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집단 지성의 주문에 걸려 주말을 보냈다.

우리 국민의 국민성을 나타내는 말 중 하나가 모래알 근성이다. 대한민국 국민 한 명 한 명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 뭣하나? 모이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오죽하면 “우리나라 사람이 세 명 모이면 당파가 네 개 생긴다”라는 말까지 있을까. 좁은 땅덩어리와 한정된 재화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빼앗지 않으면 뺏기는 처절한 경쟁의 삶을 살았다. 상대를 쓰러트리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는 초(超)개인주의라는 DNA를 만들어놓았다. 그 DNA는 일명 악바리 근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악바리 근성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이만큼 발전했다고들 하지만, 변질된 그 근성 때문에 지금 우리는 너무 아프다. 이 나라를 이토록 아프게 만든 이는 누구일까. 우리는 왜 항상 아파야만 하는가.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더 아프기만 하는가. 아픈 것에 익숙한 우리야 아프고 말면 그만이지만 우리의 자식들은 도대체 무슨 죄를 졌기에 이 극한의 고통과 아픔을 감내해야 하는 것인가.

모든 아픔에는 원인이 있다고 한다. 분명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이 아픔에도 원인이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 특히 대선 후보라는 작자들은 자신들은 결코 잘못이 없다고만 한다. 그리고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서로를 헐뜯고 있다.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 즉 통증유발점이라는 것이 있다. 자연은 통점(痛點)을 자기 안에서 찾는다. 하지만 인간들은? 필자는 분명히 안다. 이 나라의 트리거 포인트는 바로 자기만 잘 났다고 떠들어대는 대선 후보들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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