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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국민 사이

등록일 2017-03-16 02:01 게재일 2017-03-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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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이가 말한다. “아빠는 참 부럽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한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나경아, 뭐가 부럽니?” 물음표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기다렸듯이 말하였다. “아빠는 할 일이 있잖아!” “그럼, 나경이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아이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리고는 “아니야”라며 도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일요일 아침 무기력해지려는 필자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초등학교 4학년 나경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생각을 해봤다. 과연 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필자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또 무엇인지? 그리고 아이는 왜 자신의 할 일을 말하지 못했는지? 질문들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간 아이는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아이가 남긴 “아빠는 참 부럽다!”라는 말의 무게에 눌려 필자는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경직된 몸과는 달리 머리에서는 또다시 질문이 폭풍처럼 일었다. 정말 필자는 아이가 부러워할 정도의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국회는, 검찰은,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제 할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아이가 말한 부럽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방금 언급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분명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이다. 이 사회에 태어났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 봤을 직업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이 하나도 안 부러웠다. 나경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난 주말 이 나라는 더 확실히 양분화 되었다. 남북으로 나뉜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광장 안과 밖, 그리고 광장 안에서도 광화문과 시청 등으로 확실히 나뉘어졌다. 광화문 광장 안에서는 축배와 함께 축포가 하늘을 수놓았다. 거기에는 광장의 굉음을 빌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려는 인사들도 있었다. 벚꽃 대선이 되지 못한 서운함을 애써 감추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광장 안의 마지막 한 표라도 더 주워 담으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 더 광장의 진실이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다른 광장의 모습은 어떤가? 그 모습 또한 성숙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광장 안에는 화난 시민들로 가득하다. 늘 그랬듯 그들은 자신들을 화나게 만든 대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극성은 마치 마법과 같아서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으면 마치 큰 죄인이 된 듯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특히 언론들의 부추김은 광장 안 마법의 위력을 극대화시킨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덩달아서 화난 시민이 되어 그들의 대열에 동참한다. 화는 분노로 번지고, 결국엔 도를 넘어서고야 만다.

광장 안에서 축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다. 필자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세상이 바뀐 게 있느냐고. 축배의 잔 끝에는 정말 당신들이 원하는 세상이 있느냐고. 도대체 무엇을 위한, 그리고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축배이냐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새도 없이 언론들은 벌써 “광장의 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왔다고, 그것을 시민 혁명이 이끌어냈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

필자는 필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은 외치는 것이다. 그래서 외친다.

나라의 진정한 주인은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라고. 광장 안에는 시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광장 밖에는 최소한의 예의를 아는 국민들이 있다고.

광장 안 시민들은 특정 정당인을 위한 혁명을 꿈꿀지 모르겠지만, 광장 밖 국민들은 이 나라를 위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광장의 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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