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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을 잃어버린 사람들

등록일 2017-03-03 02:01 게재일 2017-03-0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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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유건휴(1768~1834)의 `대야집` 암재어록은 스승인 유장원 선생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받으면서 보고 들었던, 일상의 몸가짐에서부터 공부방법, 경서나 성리학의 이론, 시사에 이르기까지 온갖 가르침을 정리한 것인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들어있다. 별검인 족숙이 연경으로 가려 할 때 암재 선생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하였다.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명성을 좋아하는 자는 행실은 비루하되 스스로는 높은 체하고, 실질적인 데 힘쓰는 자는 행실은 고결한데 스스로는 낮은 체한다. 자신을 스스로 높다고 깃발을 흔드는 자는 실상이 부합하지 못하여 그 명성을 망치고, 낮게 자처하여 자신을 수양하는 자는 실상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어서 명성이 더욱더 드러난다`하였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혹시 족숙이란 분이 평소 자신을 실제보다 과시하거나 남에게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 자랑하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사람 없으니 늘 겸손할 것을 생각하라는 경계의 말씀을 한 것이다.

이 겸손과 검소함에 대해 공자는 극기복례할 때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부단한 수양과 성찰을 통해 지나친 욕망과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자기절제능력을 가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직자들은 민중을 사랑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도 먼저 훌륭한 인격을 쌓고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성인이나 현자들은 대개다수의 아프고 지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를 말해왔다. 불가에서는 중생에게 필요한 것을 보시하고, 희망과 위로의 말을 건네고, 그들을 이롭게 하며, 같이 일하고 동고동락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유가에서도 널리 민중을 사랑하고 어려움에서 구제해줄 것을 강조한다. 노자는 사랑, 검소, 겸손이 인간의 세 가지 보배스런 덕목이라고 했는데 그중에서 검소와 겸손이라는 덕목은 반자연적인 근대문명이 초래한 오늘날 위기 상황에서 특별히 재음미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장자의 `서무귀`에 서무귀와 위나라 무후와의 일화가 실려 있다. 권력을 휘두르면서 주지육림의 생활을 추구하던 무후는 “선생께서 산속에 살면서 도토리와 밤을 주워 먹고 나를 찾아오지 않아 지금 매우 늙어버린 것 같소. 그래 고기와 술맛을 보러 오셨소”하니 서무귀가 말했다. “저는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태어나 아직 한 번도 임금님의 호사스런 술과 고기를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온 것은 임금님을 위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자 임금이 말했다. “무슨 소리요. 어떻게 그대가 나를 위로한단 말이오!” 그러자 “천지자연이 만물을 기르는 것은 똑같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잘하고,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못하지 않습니다. 임금께선 홀로 나라의 주인 행세하면서 백성을 괴롭히고, 귀와 눈, 코와 입의 욕망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된 정신을 가진 사람이 허용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무릇 참된 정신이란 남과 화합하기를 좋아하고 간사한 것을 싫어합니다. 간사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병입니다. 그래서 위로를 해드리려는 것입니다.” 장자는 이 우언을 통해 권력과 물욕에 사로잡힌 인간을 오히려 불쌍하게 형상화하고 인간들의 세속적인 가치를 여지없이 전복시키면서 바람직한 삶의 길을 묻고 있다.

지금 우리는 초유의 대통령탄핵을 놓고 생각이 양분된 집단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한쪽은 촛불을, 다른 쪽은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상황을 국민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통합은 커녕 국가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을 생각하는 탐욕의 병을 앓고 있는 정치인들과 법치까지 부정하는 막말 법조인들까지 광장에서 편 가르기에 더 앞장서고 있다. 평등안(平等眼)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지도자가 아니라 겸손은 찾아 볼 수 없는 혼자 이 나라의 주인인양 행세하며 사회갈등을 조장하고, 본인들의 귀와 눈, 코와 입의 욕망을 만족시키면서 정치목적의 달성을 위한 패악질로 밖에 안 보인다. 구한말이 떠오르는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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