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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하지만 작고 단단한 열매

등록일 2017-03-15 02:01 게재일 2017-03-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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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경북 봉화의 산골 작은 학교에 근무하며 틈틈이 아이들에게 시를 지도하던 송명원 선생이 2013년 봄, `내 입은 불량 입`(크레용하우스)이라는 어린이 시집을 묶어냈다.

경북 봉화에 남회룡분교(현재는 폐교), 북지분교, 수식분교 아이들이 쓴 시 60편이 실려 있는데, 박혜선 시인의 추천사처럼 “시가 친구고, 시가 가족이고, 시가 학교고, 시가 꿈이 되어 훨훨 날아오른다. 부서지는 햇살만큼 눈부신 언어들. 뭉클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가 없는 근래 찾아보기 힘든 천진난만한 어린이 시집이다.”

책머리에 “멋지고 크고 훌륭한 열매보다는 울퉁불퉁하지만 작고 단단한 열매를 담았다”라고 썼는데, 이는 송명원 선생의 교육철학이자 삶과 문학을 바라보는 중요한 가치관이다. 교단이든 문단이든 얼굴도장 찍기에 급급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불량 입`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세상에, 내륙 깊숙한 산골에서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귀하디귀한 동심의 텃밭을 가꾼 송명원 선생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싶다.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고픈 산골의 꼬마 시인들도 함께 말이다.

여담이지만, 송명원 선생과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다. 대학 시절에도 그는 정직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교편을 잡은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송명원 선생은 한결같은 모습이다. 2011년 동시 `고층 아파트` 외 11편으로 제9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시인상`에 당선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첫 동시집을 냈다. 봉화 산골 흙냄새 그윽한 참살이 동시집이다.

송명원 시인은 봉화 산골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지금까지 줄곧 산골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왔다. 그는 “산골 아이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항상 같아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언제나 새롭다”고 말한다.

아빠가 편하게 농사 못 짓게/ 놀린 죄!// 블루베리 나무 여기저기서/ 노닌 죄!// 잘 익은 블루베리를/ 노린 죄!/“네 죄를 알렸다.”/ 나뭇가지로 콕 집어/ 깡통 감옥에 가두니// 으악! 이게 뭐야?/ 숨도 못 쉬게 내 코를 찌른/ 노린재// -`노린재

도시 아이들에게 `노린재`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곤충도감에서나 우연히 한 번쯤 보는 곤충이다. 봉화 산골 마을에 사는 아이들에게 `노린재`는 아빠의 농사를 괴롭히고, 귀한 블루베리를 노리는, `나뭇가지로 콕 집어 깡통`에 넣어야 하는, 삶에 생생하게 실재하는 곤충이다. `놀린 죄`, `노닌 죄`, `노린 죄`가 `노린재`와 비슷하게 읽히는 게 재미를 더하는 동시다. 물론, 아빠를 돕기 위해 깡통과 나뭇가지를 들고 블루베리 농장에서 노린재를 잡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도시 아이들이 아빠 엄마를 돕는 길은, 학원 잘 다니고 공부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아빠도 엄마를 도울 수 없고, 엄마도 아빠를 도울 수 없다. 아파트의 월요일 아침 풍경을 떠올려 보라. 뿔뿔이 흩어져 서로가 각자의 길을 헐레벌떡 갈 뿐이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사는 건 이제 익숙하다. 이사를 오가도 짐만 오르락내리락하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단절되고 분리된 모래 알갱이의 삶이다. 도시는 거대한 모래밭이다.

반면에, 시인이 사는 산골 마을은 여전히 끈끈한 연대와 공동체가 존재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인문학자 김경집 교수는 그 대안으로 `연대`를 강조한다. 연대란, 한 덩어리로 뭉치는 거나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한다. `나`와 `우리`가 아픈 원인은 사회 구조에 있으니 마을마다, 아파트마다 `연대`를 통해 `공동체`를 꾸리고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송명원 시인의 `짜장면 먹는 날`(크레용하우스, 2016)은 끈끈한 연대와 따뜻한 공동체를 발견할 수 있는 보물 같은 동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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