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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증후군(syndrome)

등록일 2017-04-06 02:01 게재일 2017-04-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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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봄을 지휘하는 농부들의 손이 현란해지고 있다. 음표를 그리기 전에 먼저 논밭에다 오선지를 만드는 그들의 모습에서 봄의 왈츠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 가락에 맞춰 광대나물, 개불알꽃 등 봄 야생화들이 겨울 문을 힘껏 밀어 올리고 봄을 내보낸다. 자연의 리듬을 아는 농부들은 자신들이 만든 논밭 오선지에 씨앗 음표를 심는다. 그리고 철 따라 자연 광장 음악회를 개최한다.

철을 아는 자연의 광장과는 다르게 오로지 자기들만 맞고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인간의 광장들은 철을 모른다. 그래서 시끄럽다. 그것은 함성과는 구별되는 소음이다. 함성과 소음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함성이 큰 울림이 있다면, 소음은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광화문과 시청 광장의 큰 소리들은 측정이 불가능한 최악의 소음이다. 왜냐하면 둘 다 광장 밖 국민들의 스트레스를 최고치로 올려놓으니까.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 광장은 어떤 특정 집단의 흥신소가 되어버렸다. 툭하면 광장으로 몰려나와 촛불을 켠다. 그러면 언론들은 그것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집해 국민들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것이 여론이고 민심이라고 광장 밖 국민들이 최면에 걸릴 때까지 주문처럼 무한 반복해 내보낸다. 미디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언론의 주문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광장으로 모인다. 그리고 광장 마이크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 외친다.

“아빠, 세계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다.” “왜?” “미국이랑, 중국이랑, 일본이랑 있는 한 절대 안 된다.” “왜?” “미국하고 중국하고 절대 안 친하잖아. 또 일본은 자기만 잘 났다고 하잖아.” “나경아, 그것을 어떻게 아니?” “뉴스에서 봤어. 중국과 롯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어. 왜 중국은 자기들 멋대로 하는 거야. 우리나라 사람은 왜 우리끼리 싸우는 거야?” 벚꽃놀이를 가던 차 안에서 초등학교 4학년 나경이가 던진 말이다. 이 즈음되면 언론의 주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 것이다.

광장과 언론을 생각하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는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나라 광장, 정확히 말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언론들은 광장 밖 국민의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 탈탈 털고 있다. 마치 광장이 모든 문제의 해결장소인양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들에게 동참하지 않으면 욕하고 비방(誹謗)하는 모습은 병에 가까울 정도다.

필자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광장 증후군`이라는 말을 생각했다. 이 증후군은 부끄럽게도 이 나라밖에 없다. 필자는 광장 증후군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광장이면 다 된다는 허상에 빠져 있는, 그리고 자신이 속한 광장만이 진실이고, 정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앓고 있는 정서 장애`.

증후군이라는 말을 검색해보면 오셀로 증후군, 리플리 증후군 등 참 많은 증후군들이 나온다. 이런 증후군의 공통점은 정서 장애다. 그럼 왜 유독 현대에 증후군이 많을까? 그것은 공동체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참 의미의 공동체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 증후군의 양산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가 화려해질수록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정서 장애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럼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방법을 나경이가 말해줬다. “아빠, 그냥 서로를 다 용서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다들 화해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나경아 그것도 뉴스에서 나오니?” “아빠. 아빠는 선생님이라면서 뉴스도 안 봐. 뉴스에서는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밖에 안 나오잖아. 그리고 대통령도 감옥에 보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어. 그냥 태권도 마치고 오면서 친구들끼리 이야기 한 거야.”

나경이의 말이 봄 교향악이 되어 전국에 울려 퍼지길 간절히 바라는 봄 아닌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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