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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암흑민국(暗黑民國)에 고(告)하다!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비판에도 분명 격(格)이 있다. 하지만 윤리와 도덕이 무너진 이 나라엔 예의고 뭐고 아무것도 없다. 이 나라엔 오로지 본능, 그것도 동물적인 본능만 존재한다. 본능에 충실한 삶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서 이성을 앗아 갔다. 이성이 상실된 사회는 오로지 극단만 존재한다.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비판이 있을 수 없다. 비판은 없고 비난만, 그것도 극단적인 비난만 판을 치는 이 사회가 너무 부끄럽다. 모든 것이 극으로 치닫는 대한민국이 너무 위태롭다. 학생들에게 그들이 살아갈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해 주는 것이 교사의 도리지만 필자는 학생들에게 그런 거짓말은 못하겠다. 정말 어둠도 이런 칠흑 같은 어둠이 없다. 분명 지금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흑기(暗黑期) 중에서 최악의 암흑기이다. 어쩌면 일제 암흑기보다 더 지독하다. 그 때는 광복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에 죽을 고통을 이겨냈지만, 지금은 그런 목표조차 없다.필자는 우연하게 시장에 갔다가 의미심장한 시장 담화를 들을 수 있었다.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의 등대 같은 이야기를 잠시 인용해본다. “가마솥 밥 대신 냄비 밥을 먹어서 그런지 왜 사람들이 냄비를 닮아 가는지 모르것다. 모든 것이 냄비다. 그냥 조그마한 불에도 달그락거리는 냄비! 정말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 뭐가 진득한 것이 있어야지 저거는 뭐 그렇게 잘 했노. 저거는 잘 못한 게 없나. 다 저거 꿍꿍이 속 채우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줄 아나.”필자 역시 냄비 밥을 먹고 자란 냄비 인간이어서 그런지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말 생각해보면 이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것 중 냄비가 아닌 것이 없다. 모두가 하나같이 냄비다, 그것도 양은 냄비! 냄비 언론, 냄비 포털사이트, 냄비 국회, 냄비 정치, 냄비 국가. 냄비 근성을 검색하다 재미난 말을 발견했다. 캔티즌! 캔티즌은 깡통을 뜻하는 `캔`에 `네티즌`이라는 단어가 붙어 만들어진 신조어다. 캔티즌을 직역하면 `깡통네티즌`이 되는데, 이는 일부 개념 없고 생각 없는 네티즌들을 `깡통`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캔티즌을 어느 사이트에서는 `소신도, 주관도 없이 군중심리에 의해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을 가진 네티즌`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이 말을 보는 순간 할아버지의 말씀이 충분히 이해되었다.캔티즌에겐 배려, 이해, 기다림, 예의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들에겐 오로지 즉흥적인 행동만 있을 뿐이다. 그들을 부추기는 것은 바로 냄비 언론과 냄비 포털사이트들이다. 캔티즌이 늘어나면서 그들도 더 자극적으로 변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실시간 검색 순위`다. 캔티즌들과 냄비 포털사이트들은 `실시간 검색 순위` 등과 같은 자극적인 방법을 이용해 국민들을 극단적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들에 의해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암흑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시장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한다.“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한다면 과연 이 나라에서 일할 자리에 남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노. 아버지가 잘못을 하면 그럼 아버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줘야 할 거 아이가.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물러나면 누가 해결 하노. 거국내각, 웃기지 마라 해라. 다 똑같은 것들인데,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라고 해라.”과격하고 극단적인 밀어붙이기가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009년 5월에 경험했다. “結者解之 其始者 當任其終 (결자해지 기시자 당임기종 - 맺은 사람이 풀고, 처음 시작한 사람이 그 끝을 책임져야 한다.)”라는 말을 모두 잘 알 것이다. 암흑민국의 모든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에 옮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론과 포털사이트 운영자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단어 좀 가려 씁시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해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좀 지킵시다.”

2016-11-03

신문 읽기와 학업 성취의 상관 관계

▲ 김현욱 시인학교나 도서관에 학부모 대상 독서 강의를 종종 나간다. 이번 주만 해도 영덕 창수초등학교 학부모와 포항 장량초등학교 학부모를 만날 예정이다. 강의를 나갈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이런 질문을 한다.“신문 보시는 분?” 평균적으로 첫 질문에는 절반 이상이 손을 든다. “인터넷 포털에 나오는 기사 말고 종이 신문 받아 읽으시는 분?” 두 번째 질문에는 대부분이 손을 내린다. 남은 손은 대략 10% 내외다.스마트폰으로 포털에 또는 SNS에서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기사를 우리는 선택해서 읽는다고 생각한다. 오산이다. 선택이 아니다. 영화관에 가보면 금세 안다. 주요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편성된 영화는 선택이 아니라 강요다. 포털에서도 우리가 주로 클릭하는 기사는 끔찍하거나 야하거나 이상한 것들 뿐이다.이를테면, `OO, 점점 예뻐져!`, `섹시한 공항패션의 완성` 같은 것들이다. 이런 기사들이 상위에 랭크되어 클릭을 강요하고 실시간 검색 순위를 오르내린다.독서 강의 끝에 학부모들에게 신문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종이 신문 받아 읽기를 넌지시 권한다.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된다. 마음에 드는 기사가 있으면 스크랩해두었다가 식사시간에 대화 소재로 써먹으면 좋다. 자녀가 좋아할 만한 기사를 스크랩해두었다가 간식과 함께 꺼내면 금상첨화다. 가정에 대화가 없을 수 없다.지금까지 만난 학부모들이 강의를 듣고 얼마나 신문을 구독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신문 읽기가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11년간 `신문 독서 읽기와 학업 성취도 및 취업`을 조사했다. 2004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일반계 및 전문계) 4천명을 대상으로 벌인 결과다. 신문을 구독하는 가정의 고등학생이 구독하지 않은 가정의 학생들보다 수능에서 과목별로 6~8점이나 높았다. `300인 이상의 대기업과 공기업·외국계 기업의 정규직`의 취업률도 신문을 구독한 고등학생이 32.2%, 구독하지 않은 고등학생은 26.5%였다. 월평균 임금도 신문을 구독하는 고등학생이 10만원 많았다. 보태어, 고전·문학과 같은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은 고등학생의 수능 점수가 높았고, 독서량이 같을 때는 신문 구독 고등학생의 수능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미네소타대 언론학과 댄 설리번 교수가 200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신문 읽기를 가르치는 미국 중·고등학교는 그런 수업을 하지 않는 학교에 비해 학업 성취도가 10%나 더 높게 나왔다. 학업 성취도가 10%나 차이 난다는 것은 엄청난 결과다.2015년 일본 문부과학성과 일본신문협회가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학력·학습 현황 조사`에서도 신문을 읽는 학생과 읽지 않는 학생의 성적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이처럼 신문과 같은 활자 매체 구독이 학업 성취도와 취업 등 사회적 성취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오죽하면 신문 읽기 능력을 영미권에서는 `앞선 출발(head start)`이라고 하겠는가. 투자 대비 수익률이 가장 높은 인생의 주식은 바로 `신문 구독`이다. 2만원도 채 안 되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인생 공부가 바로 `신문 읽기`이다.금수저니 흙수저니 시끄럽고 살기 팍팍한 시절이다. 부모의 소득이 낮아도 신문을 구독하는 가정이 부모의 소득이 높아도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가정보다 수능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니 그나마 다행이다.물론 성적이 다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학생들이 신문 읽기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로 보고 보다 나은 인생의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6-11-02

`스틸 컨벤션 시티 포항`을 꿈꾸며

▲ 류영재 포항예총회장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운영위원장`2016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지난달 30일 철강기업체 작품 기증식과 폐막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페스티벌이 지난 2012년에 처음 시작되었으니 벌써 5회째이며, 이제는 지금까지의 성과와 비전에 대하여 진지하게 되돌아보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과연 스틸아트페스티벌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세계의 철강산업 환경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철강산업도시 포항은 미래를 어떻게 예측하고 있으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이 해를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다는 자부 뒷켠에는 알 수 없는 갈증이 마치 그림자처럼 웅크리고 있다. 부대행사로 곧 진행될 성과평가 세미나` 스틸아트, 도시재생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에서 포항의 미래 도시전략을 스틸 컨벤션 시티에 두고, 스틸아트를 통한 더욱 창의적인 도시브랜드 마케팅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어떤 결론이 도출될 지 기대가 되기는 하지만 조급한 강박보다는 굳은 심지를 가지고 한 걸음씩 차근차근 발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늘 뒤따라오는 갈증의 정체는 스틸산업도시로서 포항 만의 표징(表徵)을 만방에 선언할 획기적인 방법은 없을까, 기념비적인 무엇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 아닐까?스틸 컨벤션 시티 포항!컨벤션(Convention)은 산업, 학술, 예술,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집회 등의 행위나 이를 수용하는 시설을 말한다. 정보교류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구조가 바로 컨벤션시티이며, 스틸문명의 메카인 포항이 지향하는 도시상과 일맥상통한다고 믿는다.1960년대 후반 퐁피두 프랑스대통령은 파리의 이미지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자 고민하였는데, 파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예술도시지만 런던이나 뉴욕 등 다른 도시들의 급부상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컨벤션센터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의 국제설계공모를 실시하였고, 기존 건축물과 차별화된 독창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파리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이자 문화예술의 전당인 세계적인 걸작 퐁피두센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포항시 창조도시추진위원회가 지난달 25일 `포항철강타워 `건립방안을 논의했다. 포항타워는 회의 때마다 장기계획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협의는 뒤로 미루기만 해왔는데, 포항시 승격 70주년과 포스코 창립 50주년이 되는 2019년이 실마리가 되어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포항시가 부지를, 포스코가 철을 제공하고 건설비는 민자를 유치하는 방법을 제안하였고, 추진위원들은 철강산업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철강타워 건립에 공감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범시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였다.지금부터 준비하면 2019년까지 건립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스틸타워 건립을 논의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본보기가 파리의 에펠탑이다. 숱한 반대와 비난을 무릅쓰고 우여곡절 끝에 건립되었고 여러 차례의 철거 위기를 넘긴 에펠탑은 오늘날 파리의 랜드마크로 파리 관광의 중요한 콘텐츠가 되었다.물론 도시의 상징타워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포항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제대로 담아내야 할 것이며 다른 도시의 타워와는 확실하게 차별화 될 수 있도록 포항의 자랑인 스틸과 첨단과학이 융합된 창의적인 작품으로 창조도시 포항의 상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안정성과 기능성에 대한 검토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대형 구조물이므로 미래의 기상이변에도 안전이 담보되어야 하며 부속시설로 예술활동의 플랫폼 기능도 담아내야 할 것이다.최근 포항시는 문화도시 조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틸아트페스티벌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빛도 한결 따스하다. 이 기회를 잘 살려 세계가 주목할 포항만의 철강타워, 스틸과 문화, 첨단과학이 접목된 창조도시의 기념비를 만드는 대역사에 모든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보자!

2016-11-01

논사록과 최순실 블랙홀

▲ 강희룡 서예가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임영(1649~1696)은 창계집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어진 자는 큰 것을 알고 있고, 어질지 못한 자도 작은 것을 알고 있다.`이 말은 임영이 숙종의 과격한 성격과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폐단을 지적하기 위해 올린 차자(箚子)로 논어 자장편을 인용한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 때 일차적인 심리는 상대의 의견을 누르고 싶어 한다. 각자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여 결정된 사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특히 고위층이거나 나이가 많을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위와 연치(年齒)의 힘에 의지해 남의 의견을 누르거나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할수록 일은 반드시 어긋나고 잘못되는 경향이 많다. 크고 작음을 우열의 개념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조선 선조 때 고봉 기대승(1527~1572)은 논사록(思錄)에 이같이 적었다. `군주가 말할 때에는 그 단서가 심히 작더라도 그 영향은 매우 뚜렷합니다. 만일 간언을 싫어하는 기미가 보이면 임금에게 아첨과 비위를 맞추는 자들이 다투어 성상의 총명을 현혹시키려 할 것이요, 정직하고 성실한 자들은 말을 다할 수가 없어서 오직 몸을 사려 멀리 물러갈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중략) 소인배들이 동류(同類)를 끌어와 선한 사람을 배척하며 군주가 기뻐하고 노하는지 눈치를 보아서 기쁨을 틈타 유인하고 노여움을 계기로 격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조정 상하 간에 의사가 통하지 않으니 마침내는 국가가 위태롭고 멸망하는 화가 닥쳐도 구원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이 글은 마침 어떤 일로 인해 간언을 올린 사간원 관원에게 선조가 `실제가 없는 말을 전하니, 미쳤다고 하겠다`며 배척하자 고봉이 이를 경계한 것이다.논사록은 고봉이 경연(經筵)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스승 퇴계의 사단칠정론에 영향을 줄 정도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임금을 계도하는 일에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죽자 선조는 평소 그가 경연에서 논했던 말들을 모아 책으로 엮게 했다. 선조가 그의 정밀하고 박학한 의론에 얼마나 깊이 경도되어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역사에서 통틀어 간신이라는 부류들을 한나라의 석학인 유향은 이를 여섯 가지 사악한 신하로 분류하고 있다. 그저 눈치를 살피며 자리나 지키는 구신(具臣), 군주의 언행에 대해서 한없이 칭찬하며 비위를 맞추는 유신(諛臣), 어진 이를 질투하여 등용을 방해하고 상벌을 교란시키는 간신(姦臣), 교묘한 말재주로 본질을 흐리고 남을 이간질하는 참신(讒臣), 자신의 이익과 권세만을 추구하는 적신(賊臣), 붕당을 지어 임금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뒤로는 임금을 욕하고 다니는 망국신(亡國臣) 등이다.맹자는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그보다 더 심한 바가 있다`고 했다. 어느 조직이든 아랫사람은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성향을 따르게 마련이다. 절대 권력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그 조직 내에서 뜻을 펼 수 없다. 포부는 고사하고 버티기조차 힘들다. 어리석은 지도자가 좋은 말을 싫어하고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면 자연히 신하들은 아첨하는 간신배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습관적으로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단오절을 탄생시킨 애국시인 굴원은 어부사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을 것이다`라 했다. 다시 말해 물이 맑으면 숭상하는 갓끈이 들어오고, 흐리면 천시하는 발이 들어온다. 모든 것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그야말로 `최순실 블랙홀`에 빠진 형국이다. 이 모두가 정부 스스로 초래한 결과이며 그 폐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또 다시 돌아올 것이다.

2016-10-28

대안교육 살리기 천만(千萬) 구좌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이 선생.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아나?” 최근 과수원과 텃밭 일 때문에 부쩍 수척(瘦瘠)해지신 학교장 신부님께서 충혈된 눈으로 물으신다. 교무실보다 밭 아니면 운동장에 계신 시간이 거의 대부분이라 출근해서나 점심시간에 잠시 얼굴을 뵈는 게 전부인 필자로서는 답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쉽게 짐작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하시는 일의 거의 전부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신부님께서는 학생들을 위한 일을 계획하고 계셨다.“지인들한테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을 위해 한 달에 만원씩 후원해달라는 문자 보내고 있다. 분명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거다.”그동안 각종 학교 학생들이 당하고 있는 교육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청, 교육부, 인권위원회, 심지어 국회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은 곳이 없다. 담당자와의 통화는 물론, 민원도 수차례 넣었고, 필요하다면 국회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문제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각종 학교 학생들도 헌법이 정한 의무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결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그런데 필자는 이 말을 절대 믿지 않는다. 이 나라 교육 관련 공무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에만 매몰되어 있어 헌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나라 정치인들에게 소수의 이야기는 소음보다 더 가치 없게 들린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벌써 3년이 지나간다. 그 동안 많은 학생들이 공교육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돈이 없어 학교를 떠났다. 과연 이런 불행한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교육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알기나 할까. 최근 필자는 우습지도 않은 보도자료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학업중단율 감소`라는 자료였다. 교육부가 발표한 이 자료를 보면 2010년에는 1.06%이던 학업중단율이 4년 연속 줄어 2015년에는 0.77%까지 줄었다고 한다. 감소 이유로 학업중단 숙려제 등을 들었다. 과연 현실은 그럴까. 필자가 보기엔 이 자료는 분명 통계의 덫에 빠진 자료에 불과하다.숫자의 마법에 빠진 교육 당국자들은 이 통계 자료를 보며 뿌듯해 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여전히 학교폭력이 판을 치고, 학생 행복 지수가 꼴찌인 지금의 상황에서 어찌 이런 낯 간지러운 자료를 내놓을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필자의 생각이 너무 짧았다. 그들도 뭔가 국민들을 안심시킬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책임을 면할 구실이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다.세월호 참사 이후 골든타임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사회 곳곳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매뉴얼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 나라는 이론과 현실이 너무나 다르다. 뒷북 코리아답게 아직도 우리는 골든타임을 놓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최장 기간을 기록하고 있는 철도 파업이 그렇고, 대통령 흠집 내기에 바쁜 이 나라 정치는 더 그렇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순간 그것은 재앙이 된다는 것을 세월호 참사 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잊었다.정치, 경제, 교육, 환경 등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것 중 어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다. 말 그대로 비상사태다. 하지만 더 두려운 건 지금의 비상사태를 수습할 리더가 없다는 것이다. 어색한 웃음을 짓고 시장을 돌며 영혼없는 악수를 하는, 오로지 빌미를 잡아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사람들, 그들이 이 나라의 예비 지도자라는 사실은 분명 재앙이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정치 재앙, 교육 재앙 등 각종 재앙에 빠져 이 나라가 존재할지 걱정이다.잠재적 학교밖 청소년들을 구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시는 학교장 신부님의 `대안교육 살리기 천만 구좌` 갖기 운동이 꼭 성공해 이 나라의 재앙을 막는 발판이 되길 기원한다.

2016-10-27

삼전도비가 주는 교훈

▲ 강희룡 서예가“황제께서 십만 군대로 동방에 원정오니 천둥 같은 기세에다 범처럼 용맹했네.(중략) 우리 임금 복종하여 다 함께 귀순하니 위엄 때문 아니요 덕에 귀의한 것이라네.(중략) 우뚝한 비석이 한강 가에 서 있으니 만년토록 조선 땅에 황제의 덕 빛나리라.”이 글은 이경석(1595~1671)이 지은 대청황제공덕비문(大淸皇帝功德碑文)이다. 1637년 1월 30일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삼전나루에 주둔한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의 예를 행하며 항복했다. 청 태종은 왕자들과 윤집, 오달제, 홍익한 등 척화를 주장한 삼학사를 포로로 잡아가면서 항복을 받은 자리에 전승을 기념하고 자신의 공덕을 찬양하는 비석을 세우게 했으니 바로 이 비석이다.하지만 이 비석을 누구도 대청황제공덕비라 부르지 않고 건립 당시부터 후대의 각종 문헌에 이르기까지 비석이 있는 삼전나루의 이름을 따서 삼전도비(三田渡碑)라고 불렀다. 그만큼 우리민족에게는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 싫은 치욕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은 이상 그들이 원하는 이 치욕의 비문을 누군가는 지어야 했다. 이 역사의 오명을 짊어지는 일을 인조는 1637년 11월에 비문을 지을 사람을 추천하라고 비변사에 명을 내렸다. 장유, 이경전, 조희일, 이경석 등 네 명의 명단이 올라왔으나 장유는 모친상을 이유로 사양했고, 다른 이들도 각자 나름의 이유를 댔으나 인조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며칠 후 고령인 이경전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비문을 지어 올렸다. 그 가운데 조희일은 일부러 글을 조잡하게 써서 일차로 탈락했고, 장유와 이경석이 지은 비문은 청나라에 보내져 최종적으로 이경석의 비문이 채택되었다.비석의 크기 역시 조선에서 준비한 것은 묵살되고 청나라에서 요구하는 크기로 변경되어 비신 12척에 용두 2척 2촌으로 그 규모가 커졌다. 비문은 세 가지 문자로 기록하였다. 정면은 청나라 문자와 몽고 문자이고 후면은 한문으로 되어 있다. 비문의 글씨는 당시 형조 참판인 오준이 쓰고, 비문 위에 전서로 쓴 `대청황제공덕비`란 글씨 일곱 자는 여이징이 썼다. 이렇게 새긴 다음 비면의 `황제 자는 황금빛 니금(泥金)을 입히고 나머지 글자는 주홍색으로 칠을 하여 1639년 12월 8일에 모든 공역을 완료했다. 그 후로 청나라 사신은 조선에 올 때마다 한강을 건너가 이 비석과 남한산성을 둘러보며 조선의 종주국임을 과시했다.이 비는 1895년 조선이 청나라의 속박에서 벗어나면서 땅속에 묻히게 되나 일제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다시 세워졌고, 광복 후 치욕의 역사물이란 이유로 또다시 땅속에 묻혔다. 1963년 대홍수로 인해 다시 땅 위로 드러나 인근의 빈터로 이전을 거듭하다 2010년에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현재의 석촌호수 서호언덕에 서있다. 이곳으로 옮기기 전에는 비석 곁에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그린 부조물(1982년 김창희 조각)이 있고 그 아래에는 동판에다 병자호란 당시의 내력을 적어 놓았다. 그 마지막 구절은 `수난의 역사가 서려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이 같은 오욕의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민족의 자존을 드높이고 자주, 자강의 의지를 굳게 다져야 할 것이다`라고 쓰여 있으나 아쉽게도 이 부조물은 함께 오지 못했다. 부끄러운 과거를 감추고 싶은 마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단재 신채호 선생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을 때는 부정의 역사를 잊지 말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삼전도비 역시 지난 시대의 굴욕적인 역사적 상황을 상상하게 해주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된다. 내년 대선을 목표로 한 주자들이나 모든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도 한번쯤은 찾아 나라에 대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징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지금의 상황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6-10-21

말라라 유세프자이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지난 주 유네스코 출장을 다녀왔다. 금요일에 시작한 연수는 토요일 오후까지 이어졌다. 제주에서 강원까지 유네스코 이념을 배우기 위한 전국 교사들이 유네스코 회관에 모였다. 연수 주제는 `세계시민 교육!`. 이를 위해 다양한 내용의 강의와 워크숍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세계시민! 세계가 지구촌이 된 지 오래인 지금 시대에 이 말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그래도 필자에겐 너무 생소하다. 연수 동안 필자는 세계시민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모든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하지만 연수가 끝난 지금도 그 개념이 너무 모호하다. 그런데 세계시민 교육이 환경 재앙을 겪고 있는 우리에겐 꼭 필요한 교육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다.세계시민교육에 동참하자는 의미에서 세계(世界)와 시민(市民)에 대해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세계는 지리적인 개념을 초월해 보편성(普遍性)을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보편성이란 어디의 무엇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민은 이성(理性)을 가진, 합리적(合理的)으로 사유(思惟)하는 개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즉 시민은 자기 인격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를 뜻한다. 이를 종합해 누군가는 세계시민을 “국가나 민족, 종교와 같은 특정한 집단에 얽매이지 않는, 이성을 가진 개인”이라고 정의했다. 세계시민은 곧 “나와 우리”이다.그럼 세계시민교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나와 우리를 위한 교육”이다. 그래서 세계시민교육의 핵심 덕목은 “더불어”이다. 더불어 같이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 세계시민교육의 핵심이다. 세계시민교육은 다양한 국제회의에서 글로벌 의제로 채택될 정도로 중요해졌다. 대표적으로 UN은 2015년 UN총회의에서 세계시민교육의 주제인 지속가능한개발목표(SDGs)를 발표했다. 이 SDGs는 경제성장, 기후변화 등 경제, 사회, 환경 등을 고려해서 17개 목표로 구성되어 있다.17개 목표는 다음과 같다. 빈곤 종식, 기아 종식, 건강과 웰빙, 교육 보장, 성 평등, 물과 위생시설 접근성 향상, 에너지 접근 보장,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성장, 산업 혁신·사회기반시설 구축, 불평등 감소, 지속가능한 도시와 공동체,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양식 확립, 기후변화대응, 해양생태계 보존, 육상생태계보호, 평화와 정의를 위한 제도구축, 목표를 위한 파트너십 강화.이들 목표를 분석해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은 바로 사람이다. 이들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들이다. 인권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인간답게 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전쟁과 기아(飢餓) 등 다양한 이유로 세계 곳곳에는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의 근본 원인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이 웃지 못 할 상황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1박 2일 연수 동안 인간의 가장 큰 적(敵)은 바로 인간임을 증명해 주는 여러 자료들을 보았다. 햄버거 커넥션, 플라스틱 아일랜드, 해수면 상승 시뮬레이션 등 필자가 본 자료들의 공통점은 우리가 지금 당장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인간들은 이 지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유네스코는 그 해결 방법으로 교육을 제시했다. 필자는 연수 마지막 날에 본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말라라 유세프자이의 연설이 너무도 기억에 선하다.“우리가 책과 펜을 들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 책과 펜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한 명의 어린이가, 한 사람의 교사가, 한 권의 책이,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녀에게 부탁하고 싶다. 식물 국회와 갑질 교육부에 가서 각종 학교 학생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연설해달라고. “제발 각종 학교 학생들도 헌법의 보호를 받으며 마음껏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2016-10-20

명량해전과 덕혜옹주

▲ 강희룡 서예가명량해전은 선조 1597년 임진왜란 후 조선을 재침략한 왜적과의 해상전투이고, 덕혜옹주는 300년 후 고종의 후궁 딸로 일본에게 나라를 침탈당한 망국시대의 옹주다.근래 조선시대가 배경이 된 영화가 65편, 일제강점기 소재가 22편 정도 된다.(위키피디아) 이런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항상 역사왜곡이란 논란을 일으킨다. 그 이유는 역사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특정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진위여부가 아닌 역사에 대한 작가의 역사의식 때문이며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합성어인 팩션(faction)이 이러한 진실의 왜곡이란 비판에 맞서는 방패가 됐다. 허나 이 팩션이 역사소비 현상에 적절한 방어막이 될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으며 역사를 소설에서 문자로 재현하는 작업, 또는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명량`은 절제된 스토리와 대사를 통해 주제전달을 명확히 하고 잘 짜여진 구성을 하고 있는 영화로 기득권자와 권력의 테두리 밖에 있는 자들과 충돌양상이 보여준 판타지성에 기인한다. 즉 아웃사이더인 이순신과 백성들의 수평적 연대를 통해 당시 기득권자인 왜적과 조선의 국가권력을 동시에 패퇴시킨 전쟁이다. `명량`은 역사왜곡과 해석의 경계지점에서 해석이라는 부분 쪽에 더 기울어져 있는 사극이라 보면 되겠다. 실제 난중일기에는 대장선에서 전사자 2명, 부상자 3명, 명량 전체 피해는 사망 7명, 부상 27명으로 돼있다. 결론적으로 `명량`은 화려한 해상 전투장면으로 승부를 건 상업영화 이상의 현대적 시대정신을 읽어낸 역사극이며 왜곡 측면에서 선상백병전을 제외하면 전공(戰功)은 오히려 실제보다 축소된 영화라 볼 수 있다.`덕혜옹주`는 진실과 허구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가 적정한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이완용이 을사조약을 주도한 것으로 보이나 사실 고종이 아프다는 핑계로 가장 신뢰하던 충신 이완용을 내세워 진행하였고, 그 보상으로 이완용은 학부대신에서 특진하고 훈장까지 친히 하사받는다. 고종과 생모 귀인 양씨는 덕혜옹주를 네 살부터 덕수궁에 설립한 일본유치원과 일본인 가정교사, 소학교 2학년부터 일본인 귀족학교인 `일출소학교`에 편입시켜 가르쳤다. 상궁 김명길이 쓴 `낙선재 주변`이란 책에 “덕혜옹주는 게다를 신고 하오리를 걸치고 통학하셨다. 집에선 학교에서 배운 노래라며 `호타루 찬가` 등을 부르시곤 했는데 그 모습이 일본 아이들과 똑같아 섬뜩했던 기억이 난다.”라고 적고 있다. 한마디로 옹주의 실제생활은 애국심이나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역사학에는 `의심증의 오류`라는 것이 있다.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 음습하다고 믿거나 역사의 대부분이 드러나지 않은 원인과 불공평한 결과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몰락한 제국의 옹주를 독립운동과 연결시켜냄으로 비극성을 고취하는 것은 역사학에서 말하는 그런 `의심증의 오류`와 관련 있는 허구에 종속되어진 시선일 것이다.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제작자들이 의심의 오류를 최대한 활용하여 역사해석을 함으로서 상업성을 목적으로 `장사 잘되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돼야 하는 것이지 거짓으로 다시 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비록 부끄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정직하게 바로 보아야 한다. 무능한 지도자와 지배계층의 당쟁, 권력의 향락과 퇴폐는 곧 국가의 환란과 망국으로 이어진다는 진실은 허구로 만들 수가 없다.

2016-10-14

색동다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전 세계가 상처투성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을 비롯한 여러나라들이 테러 때문에 큰 슬픔에 잠겼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번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에티오피아, 미국 등이 자연이 보내는 엄중한 경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마치 거울이라도 비춰 놓은 것 같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놀란 토끼가 됐다. 강진과 화산폭발, 18호 태풍 차바와 괴물 허리케인 매슈! 이들은 어디 한 번 막아 볼 테면 막아 보라는 듯이 작정을 하고 인간을 실험했다. 자연과 인간의 대결? 인간의 방패는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했다.개발 지상주의 늪에 빠진 인간들은 그 동안 너무도 많은 것을 착각하며 살았다. 자신들이 계획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착각에 빠진 인간들은 자연을 무참하게 파헤쳤다. 그 결과 인간들은 편리(便利)를 얻었다. 그 편리는 중독(中毒)을 낳았고, 중독은 다시 내성(耐性)으로 이어졌다. 내성이 생길대로 생긴 인간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됐고, 그럴수록 인간들은 자연을 더 심하게 파헤쳤다.그런데 파헤쳐진 것은 자연 뿐만이 아니었다. 인간들은 몰랐다. 자연이 파괴되는 것에 비례해 자신들도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의 자기부정은 자연보다 자신들을 더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 힘은 인간들에게서 인간성(人間性)을 지워버렸다. 그래서 지금을 사는 많은 인간들에게는 인간성이 없다. 언론들은 인간성 상실이 불러일으킨 끔찍한 사건사고 소식을 매일 인간들에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들이 받는 충격은 잠시 뿐이다.내성강한 인간들은 그 충격을 이겨내는 처방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망각(妄覺)이다. 그 망각은 충격의 강도를 계속해서 높였다. 이제 인간들은 웬만한 사건 사고 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않는다. 그런 인간들에게 역사는 더 이상 아무런 가치 없는 단순한 물리적인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고 했다. 이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사는 아름다운 인생들이 있었고, 그들 때문에 역사는 발전해 왔다.하지만 이젠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흐르고 있다. 왜 그렇게 단정하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지금의 우리 사회 모습을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중에서 최소한의 기본(基本)이라도 지켜지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필자가 보기에 지금 우리 사회는 기본이 없는 사회다. 정치, 경제, 교육 등 그 어디에도 기본이 보이지 않는다.오로지 자기 말만 하는 정치에서 우리는 절대 기본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들을 볼모로 잡고 진행 중인 여러 파업(罷業) 현장들에서도 우리는 기본을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학생 인권(人權)과 교권(敎權)을 두고 싸우는 교육계에서는 기본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조차 없다. 더 심각한 것은 기본이 가장 우선 시 되어야 할 가정, 국방, 스포츠 등에서 제일 먼저 기본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기본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기본이 바뀌었다고, 그 바뀐 기본은 바로 돈이라고, 철도가 멈춰 선 것도 돈 때문이고 정치가 썩은 것도 돈 때문이라고.저성장과 경제 불황에 빠진 이 나라를 다시 발전의 대열에 올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거울을 비춘 것처럼 모든 분야가 똑같이 어렵다.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올 색동다리를 놓아야 한다. 더 이상 이기적인 마음으로 만든 부실한 다리는 안 된다. 우리 민족 모두가 희망으로 건너갈 색동다리를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본 중 기본인 공자의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군자 구제기(君子 求諸己), 소인 구제인(小人 求諸人). (군자는 자신에게서 과실이 있는지를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그 잘못을 찾는다.)”

2016-10-13

`소멸가능성 도시` 우려할 때

▲ 김진홍 한국은행 기획조사팀장포항을 비롯한 경북동해안지역 경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철강공급과잉 등의 부정적 영향과 철강, 조선, 건설 등 철강 수요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의 여파로 사실상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포항철강공단의 2015년 생산액은 전년에 비해 3조2천900억원이나 줄어들었는데 그중 88.2%에 해당하는 2조9천50억원이 철강부문에서 감소했다. 더구나 감소세는 2016년 하반기에 들어선 지금도 진행형이다. 사실 지역경기 부진은 이미 지난 10여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어 왔기에 경제주체들은 심각한 경기 냉각현상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항경제는 2005년 이후 성장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사실상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앞으로 지역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외부충격에 견딜 수 있도록 내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철강업 편중도를 줄이는 한편 철강과 여타 산업과의 융복합을 통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방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 지역이 앞으로 100년 이상 지속가능한 성장 및 발전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할 부분이 있다. 다름 아닌 저출산이다. 비록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포항, 경주 등 경북동해안지역의 경우도 최근 일본에서 이슈화되고 있는 `소멸가능성 도시`가 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소멸가능성 도시`란 특정 지역(지자체)의 인구가 더 이상 증가하지 못할 경우 도시자체의 행정, 재정 등이 성립되지 못하게 되어 결국 여타 도시와의 통폐합을 통해 소멸될 가능성이 높은 도시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를 산술적인 개념으로 정의한다면 첫째, 출산가능연령인 20~39세 여성의 장래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출생 인구 내지는 차세대 인구의 감소로 간주한다. 둘째, 소멸가능성 도시는 출산가능여성 인구가 향후 40년간 50% 이상 감소하는 지자체를 의미한다.경북동해안지역이 어떠한 상황일지 같은 개념을 적용하여 시산해 보았다. 경상북도의 2015년 현재 가임여성 인구는 30만3천416명으로 시군별로는 포항시 6만1천435명, 경주시 2만7천141명, 영덕군 2천783명, 울진군 4천547명, 울릉군 937명이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이들 지역의 출산가능여성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하였다. 그중 영덕군은 연평균 -4.9%, 울진군은 -4.4%로 가장 심각하였으며, 경상북도는 -2.5%, 포항시는 -2.2%, 경주시는 -3.7%, 울릉군은 -2.0%를 기록하였다. 이와 같은 감소세가 지속된다고 가정해보니 경북동해안지역의 2개 시·3개 군은 향후 40년 이내에 모두 소멸가능성 도시에 해당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앞서 언급한 2015년 시점의 인구가 가까운 장래에 50% 이내로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소멸가능성도시에 진입하는 데 남은 시간은 영덕군 13년, 울진군 17년, 경주시 18년, 포항시 31년, 울릉군은 34년으로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정부가 여성 일자리창출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적극적인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여 왔지만 모두가 뼈저릴 정도로 공감했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정치인이라면 선거철에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의식한 공약에, 서민이라면 맞벌이로 가계소득여건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잠깐 주의를 기울였을 뿐이다. 지나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단기적으로 시급한 사안들은 당연히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잃어버릴 100년`이 되지 않도록 도시의 존립 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될 젊은 여성들이 지역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중장기적으로 일과 보육이 양립될 수 있는 여성친화적 도시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2016-10-12

물의(物議)를 이대로 둘 것인가

▲ 강희룡 서예가사람들은 대체로 뭇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평판에 민감하다. 외부의 시선에 민감한 까닭에 자신으로 인해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물의란 여러 사람의 평판을 뜻하는 말로 물론(物論)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물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뚜렷한 실체도 없고 나타남과 사라짐의 지점을 포착하기 힘든 마치 유령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조선의 관료들도 이 정체 모를 물의를 다루는 데 상당한 공력을 들였으며 대의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꼈다. 다산 정약용도 세상의 이 물의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형인 약현(若鉉)에 대해 그가 쓴 묘지명에는 `신유년의 화에 우리 형제 세 명이 모두 기괴한 화(禍)에 걸려서 하나는 죽고 둘은 귀양 갔다. 그런데 공은 조용하게 물의 가운데 들어가지 않음으로써 우리 문호를 보전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물의의 한가운데에 들어가면 자칫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시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이러니 당시의 지식인들은 당연히 이 종잡을 수 없는 여론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에 부심하였다. 윤휴(1617~1680)는 물의라는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삼자(三刺)의 계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첫째는 여러 신하에게 묻는 것이고, 둘째는 여러 관리에게 묻는 것이고, 셋째는 백성들에게 물어서 몽롱한 상태의 물의를 좀 더 명료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자세는 세간에 떠도는 중론이 과연 백성들의 여론을 얼마나 진지하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윤휴의 삼자의 계책은 오늘날 정치권에서 흔히 사용하는 방법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물의가 발생하면 더 크고 강력한 또 다른 물의를 터트려 앞선 물의를 물 타기하거나 덮어 버리는 태도와는 구별된다.세종의 치세 기간 중에도 세간의 물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겁 없는 고위관료들이 없어지지 않았다. 세종 11년(1429)의 기록에는 해주 목사로 제수된 인물이 매양 수령이 될 때마다 물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제 뜻대로 관물을 낭비하고, 오직 술 마시는 것만을 일삼으며, 권세가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등 못 하는 일이 없는 자라고 혹평하는 내용이 나온다. 세간의 평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윗사람들의 비위나 맞추는 전형적인 탐관오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사간원 좌사간이었던 유계문은 아예 국가에서 중요한 인선을 할 때에는 반드시 물의에 맞는 자를 택하여 임명할 것을 계청(啓請)하기까지 하였다.이렇게 되자 이제는 정치에 물의를 적절히 이용하려는 자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였다. 정적을 억누르고 배척하는 데에 세간의 평판인 물의만큼 좋은 무기도 없었다. 누구는 세평이 흉흉하니 당상관으로서는 적임이 아니고, 어떤 인물은 물의가 없는 인물이니 중용해도 무방하리라는 진언이 잇달아 나타났다. 특히 사림파들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중종, 명종 대에 이르면 훈구세력과 사림세력 사이에서는 이 물의의 해석을 놓고 치열한 논전이 전개되기도 했다.오늘날 우리의 정치의 영역에서 관료의 비도덕성, 법의 허를 이용한 탈법, 무작위적 폭로, 모함 등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온갖 치졸한 물의가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은 심각하다. 유건휴(1768~1834)는 대야집에서 `복숭아꽃 오얏꽃은 말이 없으나 그 아래 자연히 길이 생긴다.(桃李不言 下自成蹊)`라고 적고 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그걸 드러내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남들이 그 능력을 알아보고 추앙하는 법이다. 아무리 요즘이 자기홍보 시대라고는 하지만, 겸손이라는 최후의 덕목마저 외면한 채, 실력도 실속도 없으면서 자기 잘났다고 고개를 휘두르는 자들이 자리를 차고 앉아 있는 사회는 더 이상 미래의 동력을 잃고 제자리에 서고 말 것이다.

2016-10-07

이야기가 죽은 사회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이야깃거리가 풍요로운 사회는 분명 건강한 사회다. 왜냐하면 이야기는 움직임이고, 일이기 때문이다. 일이 있다는 것은 활동, 즉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너지가 많은 사회일수록 이야기도 많다. 대표적으로 그리스가 그랬다. 아직도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열광한다.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무한한 에너지를 얻고 있다.이야기는 문화(文化)다. 문화가 다채로운 사회일수록 이야기도 다양하다. 문화가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이야기가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선진 문화를 가진 나라일수록 당연히 이야기 수준도 높다.수준 높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느낌으로 안다. 폭력, 배신, 거짓, 미움 등은 분명 이 이야기 범주에 포함되지 않지만, 사랑, 나눔, 배려, 희생 등은 포함 될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이야기 수준은 어떨까. 그냥 보기에는 이야기가 참 많은 것 같다. 24시간 하는 뉴스 시간이 모자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이야기라는 것들이 모두가 어둡고, 무겁기만 하다. 그리고 간혹 역한 냄새까지 낸다.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정치 이야기다. 국민을 위하고, 또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정치이지만 이 나라 정치는 그렇지 않다. 국민들은 정치 이야기를 들으면서 희망을 얻기는 커녕 절망감만 느낀다. 이 나라에서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파렴치(破廉恥)`다.파렴치한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 국회는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이야기들이 생산되는 이야기 제작소다. 그들에게 국민들은 안중에 없기에 그들은 국민들이 열 받는 것쯤은 그냥 가벼이 넘긴다.그 덕분에 우리나라 영화가 잘 되는지도 모른다. `내부자들`을 비롯해 천만(千萬) 영화들의 이야기 기저에는 대한민국 정치가 직간접적으로 들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나라의 파렴치한 정치인들도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이라고 봐 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숨이 더 크게 나오는 이유는 뭘까. 국민들은 언제까지 절망적인 정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분노해야 하는 것일까.최근 정치 이야기 중에서 사람들을 급(急) 분노케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선(大選) 이야기다. 분명 현직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과 파렴치한 정치인들은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통칭하여 사람들은 `반·문·안`이라고 한다. 이 중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시장 돌기에 바쁘다. 정말 그들이 언제부터 시장 상인들을 그토록 생각했을까.힘을 합쳐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까 말까하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다음 대통령을 이야기하는 이 나라 정치야말로 하류 중에서도 하류다. 대통령 임기 보장법이라도 만들든가, 아니면 대통령 잔여 임기 몇 개월 전에는 절대 다음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지 않는 이상 이 나라 정치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정치가 시끄러우니 이 나라 모든 것이 시끄럽다. 나라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져 헤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불황의 아우성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기본(基本)을 빼앗아 갔다.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로 인해 대한민국의 9월은 너무도 시끄러웠다. 그 시끄러움에 달리고 싶은 철마(鐵馬)는 멈춰 섰다. 누군가는 불편하지 않다는 대자보를 썼다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은 불편해 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국방, 교육 등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어떤 것들에서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찾을 수 없다.10월을 하늘연달이라고 한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이야기가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첫 이야기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땅도 안정을 찾고, 이 나라 모든 것들이 안정을 찾아 대한민국이 힘차게 나아가는 희망찬 이야기들이 가득한 홍익인간의 10월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2016-10-06

이야기가 있는 저녁

▲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플라톤의 `향연`을 생각하면, 끝없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면이 연상된다. 향연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이야기에 열정을 쏟고, 그 현장에서 오갔던 이야기에 관해 듣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있고, 들었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해주는 사람이 있고…. `향연`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현장에 있었던 아리스토데모스가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아폴로도스에게 이야기해주고, 아폴로도스는 글라우콘과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잘 알다시피 `향연`에서 이야기를 여는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가장 오래된 신이며 최대선의 원인이라고 한다. 그는 에로스는 우리에게 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는 신이라고 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파우사니아스는 에로스를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로 나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천상의 에로스와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는 범속의 에로스 중 천상의 에로스를 장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에뤽시마코스는 덕, 절제, 정의를 통해서 우리에게 행복과 친애를 가져다주는 능력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은 온전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이며 자기를 회복할 때 행복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가톤은 에로스가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기 때문에, 행복하기 마련인 모든 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행복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과 대화를 하고 디오티마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에로스의 능력과 용기를 본받자고 한다.이후,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함으로써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또 다른 술꾼들이 대거 출현함으로써 향연은 끝이 나고 만다. 누군가 얘기를 하면, 뒤이어서 다른 사람이 얘기하고 싶어지는 것을`캔터베리 효과(Canterbury Effect)`라고 하는데, 바로 `향연` 참석자들의 모습이다. 이야기 본능을 가진 인간(호모나랜스·homo-narrans)은 이야기를 할 때 행복감을 만끽한다.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직접 만남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직장인의 경우, 사무자동화시스템으로 인해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적기 마련이다. 교수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교수들은 연구, 교육, 학생지도 외에도 특성화, 사업 등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다니기 바빠서 동료교수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다.얼마 전 우리 대학 융합교양연구소에서 `서유기` 관련 발표가 있었다. 발표의 주된 내용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교만, 탐욕, 음욕, 나태, 질투, 분노, 인색 등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본성들이라는 점에서 고전의 힘을 보여주는 텍스트라는 것이었다. 발표장에는 여러 전공의 교수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모였다.`서유기`야말로 유명한 동양 고전 작품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자리에 참석한 모든 교수들이 발표한 교수의 이야기에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는 그야말로 이야기 잔치의 장이 되었다.발표에 덧붙이는 견해나 반대되는 견해조차도 부드럽고 겸손한 응답으로 일관하는 발표 교수 덕분에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누군가가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농담어린 발언이 없었다면, 저녁 먹는 것도 잊을 뻔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행복한 저녁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좌중은 모두 동의했다. 이렇게 가슴이 환해지는 일을 우리는 왜 자주 하지 못 하는가. 약간의 여유를 부려보자.전국 규모로 열리는 학술대회와는 또 다른 분위기인 대학공동체 소규모 학술모임이 자주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10-05

야생(野生) 국회에 울려 퍼질 춘향가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 교사지난 주말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묻는다. “아빠 옛날 드라마는 왜 저렇게 구려?” 아이는 “구리다”를 어떻게 정의할지 궁금했다. “나경아 구린 게 뭐야?”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해 주었다. “구린 거는 뭔가 좀 이상한 거야. 지금 시대에 안 맞는 게 구린 거지.” 초등학교 3학년 아이에게 또 한 수 배웠다. 세상을 보는 눈이 어른보다 더 정확한 아이에게 지금 세상에서 뭐가 제일 구린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왜냐하면 굳이 묻지 않아도 구린 것을, 그것도 완전 구린 것을 금방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지난 주말 언론을 후끈 달군 국회다.필자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웃음을 지난 주말에 보았다. 힘 대결에서 이긴 다수당 국회의원들이 떼로 자리에 앉아 웃어대는 웃음. 뭔가 해냈다는 거만한 태도로 자리에 앉아 떼거리로 웃어대는 웃음은 정말 구려도 너무 구렸다.나르시즘(自己愛)에 빠진 그들을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른 국민들이야 어떻게 생각하지는 모르겠지만 필자는 나경이의 표현처럼 정말 구려 보였다. 자기도취에 빠져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싶지만 필자의 사전에는 그 단어가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나경이의 표현을 빌려 표현한다. “구려도 너무 너무 구리다!”정말 국회에 있는 그분들은 모르는 걸까. 국민들은 더 이상 그분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들을 생각조차 없다는 것을.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무엇을 위한 반대인지.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을 하는,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그분들이 있는 국회는 야생(野生) 중에도 약육강식의 원리가 치열하게 존재하는 가장 원시적인 야생이다.여의도에서 야생적인 삶을 사는 한 분이 말한다. “협치(協治)는 항상 있는 게 아니다. 그 때 그 때 다르다.”과연 그들이 말하는 협치란 무엇이길래 그 때 그 때 다를까. 협치를 누군가는 “타협정치(妥協政治)”의 줄임말로 해석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협력의 정치”, “협의의 정치”라고도 정의한다. 과연 지금 정치인들이 말하는 협치라는 것이 이와 같은 뜻이라면 결코 그 때 그 때 달라서는 안 될 것이다. 정치가 무슨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 때 그 때 다를까.또 다른 야생인은 말한다. “어떤 이유로도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정말 옳은 말이다. 보이콧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정치는 국민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웃기는 것은 이런 말을 하는 그 사람들도 한 때는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이콧을 밥 먹듯이 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바른 말을 하는 그들을 보고 웃는 이유이다. 정말 언제부터 그들이 국민을 생각했을까. 기름기 좌르르 흐르는 그분들의 얼굴에 뜬 웃음을 보니 춘향가 한 대목이 떠올랐다.“금준미주 천인혈(樽美酒 千人血-금동이의 맛있는 술은 백성의 피요), 옥반가효 만성고(玉盤佳肴 萬性膏-옥쟁반의 기름진 안주는 백성의 기름이니), 촉루락시 민루락(燭淚落時 民淚落-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이 눈물 쏟고),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노래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도 높더라.)”옛 말 그른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필자는 이번에도 실감했다. 야생의 그분들이 지난주에 거사를 마치고 마신 술은 분명 국민들의 피일 것이다. 그리고 그분들의 기름진 얼굴은 백성들의 기름일 것이며, 그분들이 한껏 웃고 있을 때 국민들의 원망 소리는 한없이 높을 것이다. 비록 지금이야 떼거리로 뭔가를 밀어 붙일 수 있겠지만, 국민들은 그들이 곧 여러 개로 나뉘어 이전투구(泥田鬪狗)할 것을 안다. 완전 구린 야생 국회에 한 마디만 한다.“국민들은 그대들이 지난 국회에서 한 치졸하고 비열한 일을 알고 있다.”

2016-09-29

좁은 `스톨`(감금틀)을 깨는 동물기본권

▲ 남진숙동국대 교수·다르마칼리지 유년시절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외사촌 오빠의 결혼식을 앞두고 시골 이모님댁에서 돼지를 잡았다.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후 잡은 돼지의 고기와 그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순대를 맛있게 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무슨 아이러니한 일인가? 돼지가 불쌍하다면서도 한 편으로 연신 맛있게 먹었던 입.이제는 예전처럼 돼지를 집에서 잡는 일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지도, 죽일 수도 없다. 그러면 불법이다. 적어도 죽음에 있어서는 덜 고통스럽게 죽는다. 그런데 이제 돼지는 가엽게도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며 전생애를 대부분 살아간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집에서 기르는 돼지는 적어도 삶 자체가 불행하지 않았다. 돼지다운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우리나라 1인당 육류 소비가 지난 30년에 비해 4배 증가해 50여 kg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많은 고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대부분 국가도 그러하겠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99%가 공장식 축산으로 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수요에 맞게 고기를 많이, 빨리 공급하기 위해서는 농장식으로 그 고기의 양을 댈 수 없다는 현실적 한계와, 그 밖의 여러 경제적 이익을 생각할 때 공장식 축산이 돈을 벌기에 더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이다.기업형 축산 돼지가 살아가는 공간은 스톨(감금틀)이다. 스톨이 좁아지면 질수록 자본주의 시장은 점점 확장 팽창되며 소비와 인간의 욕구는 더욱 커지게 된다. 스톨은 곧 소비의 확장을 의미하는 동시에 동물들에게는 자유의 억압을 상징하며 동물기본권의 박탈을 의미한다. 이는 공장식 축사의 더럽고 비위생적인 환경과 스톨(감금틀)안에서 비참하게 돼지가 길러지기 때문이다. 비단 돼지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소를 비롯한 닭(공장식 닭장:배터리케이지) 등 다른 동물들의 사육 환경 역시 예외적이지 않다. 먹을 때만 머리를 위, 아래로 움직일 수 있을 뿐, 뒤로 돌일 수도 옆으로 몸을 돌릴 수 없는 옴짝 달싹 할 수 없는 비좁은 스톨 공간에서, 일정한 양과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먹이를 먹으며 살아간다. 평생을 고개 한 번 돌리지 못한다. 돼지들은 모두 기계화가 된 축사 안에서 그야말로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처럼 `생산`(공장 돼지) 되는 것이다.동물기본권을 강하게 주장하는 피터싱어의 말처럼 `최소한 동물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몸을 돌린다든가 털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일어섰다 누었다 하거나, 자신의 사지를 펼칠 수 있을 정도의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동물의 기본적인 5가지 자유를 강조했다. 동물이 속박을 당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단호히 거부한 것이다.현재 유럽연합은 농장동물의 5대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돼지 스톨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공장식 축산에서는 스톨을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인간도 기본권을 가지지 못할 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듯이 동물 역시 기본권을 갖지 못할 때 동물답게 살 수 없게 된다. 적어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면, 좁은 스톨에서 나와 살 수 있는 동물기본권은 보장해야 하지 않은가.환경과 생태의 문제는 그동안 인간 삶의 고민을 폭넓게 확장시켰다. 이는 자본주의라는 산업구조를 비판하기 이전에 근본적으로 인류가 먹거리에서 고기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게 한다. 필자는 채식주의가 아니다. 다만 동물기본권에 대한 학문적 인식의 차원을 넘어 이제 실천으로 가야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고기 먹는 회수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건강하게 길러진 가축을 먹는다면 적어도 동물들의 기본권은 차츰 보장될 것이다.며칠 뒤면 제1회 `아시아 불교도 동물권에 대한 컨퍼런스`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종교적 색채를 떠나 앞으로 어떤 실천이 더 필요한지 귀 기울일 때이다.

2016-09-28

보다 큰 그림을 그리자

▲ 김진홍 한국은행 기획조사팀장최근 포항에서는 중앙상가에 스크린경륜장 입점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굳이 이 지면에서까지 이에 대한 찬반 양측의 입장을 다시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제학 관점에서 시장이란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을 의미하는데, 중앙상가도 구매자(수요자)와 판매자(공급자)간에 재화거래가 발생하는 재래시장의 하나다. 이 중앙상가에 플러스의 경제효과가 창출되려면 무엇보다 거래 활성화가 필수적인데 현재의 중앙상가는 거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현재 중앙상가는 음식료품과 의류패션 2가지의 판매비중이 높고 대부분의 유동인구가 젊은 층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3년 시점의 경상북도 거주자의 소비행태 조사결과는 비록 3년전 수치이기는 하지만, 현재 포항시 구매자의 소비행태와 큰 차는 없다고 보여 이를 거래 부진요인 분석에 활용해 보았다.조사결과에 따르면 식료품의 경우 29세 이하 연령층의 87.2%가 슈퍼나 대형할인마트(슈퍼 41.9%, 대형할인마트 36.4%, 편의점 8.9%)를 이용해 구매하고 있는 반면 재래시장 이용률은 2.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의류신발의 경우에도 재래시장 이용률은 고작 2.8% 수준에 머물렀다(백화점 등 전문점 37.2%, 온라인쇼핑몰 34.9%, 대형할인마트 9.7%).그런데 이와 같은 소비행태의 변화는 국내 소비자의 소비행태 변화와 큰 차이가 없다. 일례로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온라인쇼핑몰 연간 매출액은 53조8천883억원에 이른다. 또한 온라인쇼핑몰에서 주로 판매되고 있는 품목도 의류패션부터 스포츠레저용품, 화장품, 아동유아용품, 생활자동차용품, 음식료품은 물론 농축수산물과 여행예약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이들 총 8대 품목이 전체 쇼핑몰 매출의 73.7%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지난 15년간 급성장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음식료품으로 2001년에 비해 60.5배나 늘어났고, 의류패션상품은 48.1배, 화장품은 43.9배가 확대됐으며 가장 낮은 성장을 보인 농축수산물도 14.1배, 스포츠레저용품이 23.8배 정도 증가했다.결국 중앙상가의 거래 부진은 2000년대 이후 급격하게 발달한 정보통신기술과 소비자들의 안방쇼핑 증가라는 소비패러다임의 전환에 주로 기인한 것이다. 결국 중앙상가의 의류패션매장을 직접 방문해 구매하려는 수요가 많지 않은데다 실제 소비자를 구성하는 유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고교생 등 구매력이 낮은 소비계층이라는 점 등도 상가경기 부진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포항의 대표적인 상가 중 하나인 중앙상가의 회생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유동인구의 소득, 연령, 소비행태 등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사가 선행돼야 하며, 이를 토대로 상가의 공동번영을 위한 프로젝트를 세밀하게 추진하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 현재 포항시가 추진 중인 문화도시 포항 프로젝트를 통한 중앙상가 활성화도 좀 더 도시 마케팅 차원에서 전문적으로 접근해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고심해야 한다.지난 스크린경륜장 유치 공방이 먼 미래에 가서 포항과 중앙상가의 발전에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될지,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지 아직은 누구도 장담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논란은 비단 중앙상가만의 문제가 아닌 포항시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야기될 수 있다. 그때 마다 일일이 찬반 논란 등으로 시민사회의 갈등을 야기하는 사회적비용의 최소화를 위해서라도 단편적인 경제 및 사회적 효과에 앞서 보다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도시전체의 발전과 균형을 이루기 위한 큰 그림을 조속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큰 그림의 밑바탕을 마련한 다음 하나씩 정교하게 색칠해 나갈 세부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한 지역의 발전에는 기업 유치도,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의사결정 능력과 협의 구조가 특히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2016-09-23

혁명이란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

▲ 김현욱 시인2016년 포항시 원-북은 김경집 작가의 `엄마 인문학`(2015)이다. 인문학 열풍에 편승해 뒷북치는 감이 없지 않다. 저자는 `엄마 인문학` 강연을 묶어 펴낸 것이라고 밝혔다. 강연에서 입말로 했던 내용을 지면으로 옮겼다고 했는데, 사전에 아무런 주제나 원고 없이 강연했을 리 만무하다. `엄마 인문학`은 김경집 작가가 앞서 펴낸 책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포항시 원-북 선정위원들이 전작들까지 검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류를 잘 읽은 편집자와 출판사의 기획도서로 보인다. 그렇다고 김경집 작가가 들려주는 인문학 이야기가 결코 시시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서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가장 위대한 힘을 지닌 엄마들이여, 혁명합시다!”라고 썼다. 그리고 뒤에 “이제 엄마들의 본색을 드러내세요. 혁명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혁명을!”이라고 했다. 작가가 엄마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라는 뜻으로 `섹시한 혁명` 운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력의 삶, 주체적인 삶을 주문한 것이리라. 비단, 책을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과 삶을 읽는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엄마인가? 그렇지 않다. 엄마도 관계 속에서 엄마로 거듭난다.관계란 여러 대상이 서로 연결되어 얽혀 있다는 뜻이다. 관계 속에는 늘 맥락이 존재한다. 관계가 연결이라면 맥락은 연관이다. 작가는 `맥락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흥부전`을 예로 든다.“흥부가 박을 타는데 네 개의 박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박에서 풀뿌리, 산삼 등이 나옵니다. 두 번째 박에서는 책이 나와요. 세 번째 박을 탔더니 금은보화와 산해진미가 나옵니다. 이제 네 번째 박이 하나 남았습니다. 그때 흥부 처가 남편을 말립니다. 하지만 흥부는 영악해 무엇이 나올지 알고 있었어요. 결국 마지막 박까지 탔더니 아름다운 여인이 나옵니다. 이것들은 모두 당시 조선 후기 사람들이 생각했던 행복의 순서를 나타냅니다. 무병장수, 입신양명, 부귀영화, 그리고 쾌락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흥부가 대박이 나서 부자가 됐다는 사실만 기억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 돈이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텍스트에 갇히지 말고 그 안에 내재한 관계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작가는 거듭 강조한다. 사회 현상도 마찬가지다. 최근 나홀로 1인 가구가 4인 가구 수를 넘어섰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2015년 말을 기준으로 총 520만 가구가 나홀로 1인 가구로 밝혀졌다.이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시대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책을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과 삶을 읽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내가 아픈 원인은 사회 구조에 있는데 자기 치유만을 강조하는 `셀프 힐링`의 위험성을 지적한 작가의 예리함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파트마다 마을마다 학교마다 사회적 연대, 공동체, 동아리가 주도적으로 만들어지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도 그것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소셜 힐링`으로 나갈 수 있다. 혁명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고 장일순 선생이다. 외국의 한 기자가 장일순 선생을 찾아와 물었다. “혁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일순 선생이 말했다. “혁명이란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이라오.” 기자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혁명도 다 있습니까?” “혁명은 새로운 삶과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지 않겠소? 새로운 삶이란 폭력으로 상대를 없애는 게 아니고, 닭이 병아리를 까내듯이 자신의 마음을 다 바쳐 하는 노력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잖아요? 새로운 삶은 보듬어 안는 정성이 없이는 안되지요.”완연한 가을이다. `엄마 인문학`을 읽고 엄마든 아빠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기 바란다.

2016-09-21

대구시립극단의 정기공연 `뇌우`를 보고

▲ 김성태 문화평론가·대구가톨릭대 산학교수대구시립극단은 지난 2~4일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차오위 원작의 `뇌우`를 무대에 올렸다. 차오위는 중국의 셰익스피어라고 일컬어지는 중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이다. 그의 첫 작품 `뇌우`(1934)는 이듬해 산동성 제남시에서 초연된 뒤 중국각지와 도쿄에서도 공연되었다. `뇌우`는 영어로 번역, 공연되어 성공한 몇 안되는 중국 희곡이다. 여러 번 영화화되기도 했고, 오페라로 상연되기도 하였다. 1957년 홍콩에서 만든 영화 `뇌우`에서는 당시 17세의 배우 이소룡이 원작 속 같은 나이의 둘째아들 주충 역을 맡기도 하였다. 장예모 감독, 주윤발, 공리 주연의 영화 `황후화`(2006) 의 원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제2대 대구시립극단 대표를 역임하고 중국에도 발이 넓은 극단 뉴컴퍼니 대표 이상원이 객원 연출한 이 중국 작품은 무대디자인을 맡은 류샤오춘을 비롯한 중국인 전문 스탭들도 참여하여 완성도를 더 높였다. 사실상의 한중 합작이다. 음악과 의상 등 모든 스탭의 역할 그리고 출연배우 10명의 연기도 훌륭하였다. 원래 전 4막에다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도 있는 4시간 이상의 긴 작품인데, 인터미션 없는 1시간 45분 분량의 몰입도 높은 우리말 연극으로 잘 엮어 내었다.광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주푸위앤(55·박승득 분)의 집에 루꿰이(48·박상희 분)와 루쓰펑(18·오서연 분) 부녀가 하인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 집의 젊은 부인 판이(35·김정연 분)는 쓰펑을 쫓아내려고 한다. 왜냐하면 쓰펑은 판이가 정을 통하던 의붓아들 주핑(28·김동찬 분)과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아들 주충(17·박찬규 분)은 쓰펑을 사랑하여 그녀를 붙잡으려 한다. 주푸위앤의 집은 지금 전기공사가 필요한 상황이다.한편 루꿰이의 아내 루쉬핑(47·백은숙 분)은 원래 주푸위앤의 여자로 두 아들을 낳은 뒤 버림받았다. 주푸위앤은 쉬핑에게서 큰아들 주핑을 뺐아가고 갓난 아기만 남겼다. 그리고 지금 그 아기 루타하이(27·최우정 분)는 주푸위앤 광산회사의 노조위원장으로서 주푸위앤이 생부인지도 모른 채, 핑이 자신의 친형인지도 모른 채 격렬한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한편 루쉬핑은 딸 쓰펑이 일하는 곳이 어떤 집안인지도 모른채 쓰펑을 만나러 주푸위앤의 집으로 온다. 그리고 마침내 주푸위앤을 만나고 꿈에도 그리던 첫 아들 핑도 보게 된다. 그러나 타하이의 행패로 의붓아버지인 루꿰이와 동생 쓰펑마저 주씨 집안에서 쫓겨난다.직장을 잃어 화가 난 루꿰이는 마님 판이와 큰아들 핑의 관계를 고자질하러 주푸위앤의 저택으로 오고 쓰펑도 연인 핑을 만나러 저택으로 온다. 어머니 루쉬핑은 이들 이복남매 간의 결합을 막으러 혼신의 노력을 다하지만 이미 이 둘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 결국 어머니는 두 남매보고 멀리 떠나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 주푸위앤이 들어와서는 루쉬핑이 옛날 자기가 버린 여자였다고, 그래서 핑과 쓰펑은 남매간이라고 털어 놓는다. 충격의 침묵이 지난 뒤 쓰펑과 충이 뇌우가 휘몰아치는 집밖으로 나가서 전기에 감전되어 죽는다. 그리고 핑은 자살한다.시립극단 최주환 대표는 부임 후 매번 대구시민에게 수준높고 특별한 무대를 선사하여 주었는데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상원의 능숙한 각색과 연출이 매우 효과적이었고, 백은숙과 김정연을 비롯한 시립극단 배우들의 연기 또한 나무랄 데 없었다. 주푸위앤 역을 맡은 객원배우 박승득의 연기도 안정되었고, 공개오디션을 통해 뽑은 쓰펑 역 오서연의 미모와 연기도 한몫하였다. 향후 같은 역을 맡았던 백성희 같은 대배우가 되기를 기대한다.

2016-09-20

MOOC(온라인 대중공개 강좌)에 대한 두 개의 전망

▲ 임선애 대가대 교수·한국어문학부역사적으로 볼 때 요즘만큼 대학이 심각한 고민에 빠진 때가 또 있었을까. 고등교육이 국가경쟁력이라는 의식의 증대와 함께 대학은 사회적 책무성을 위해 고민에 빠지고, 또한 IT기술의 산물인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로 인해 대학은 스스로의 존재를 지켜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현재 MOOC는 양극화된 평가로 그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조너선 헤이버는 무크 예찬론자 중의 한사람이다. 그의 저서 `MOOC`에는 무크의 계보, 무크의 진행방법, 무크로 인한 이슈와 논쟁, 무크문화 실험 소개, 무크의 미래 등 무크의 장점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스탠퍼드 대학의 컴퓨터공학 수업을 웹사이트 기반 버전으로 전세계에 무료 공급을 하면서 시작된 대규모 공개 온라인 수업 MOOC는 2013년 말 기준 유대시티, 코세라, 에덱스 등 소위 3대 무크 플랫폼이 생겨나고, 이들은 500개 이상의 강좌를 제공했다. 영국의 퓨처런, 독일의 이버시티 등도 무크 플랫폼 시장에 합류해 무크의 경계를 확장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미국 `뉴욕 타임즈`는 2012년을 `무크의 해`로 선정할 만큼 무크에 대한 호기심이 증대했지만, 2013년 미국 동부의 명문대학인 애머스트 대학이 무크 확산의 사태를 관망하기로 함으로써 무크에 대한 거리두기의 입장도 생겨났다. 무크가 처음 출현했을 때 수준 높은 강의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크가 지닌 이타성은 대중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다. 시간과 장소의 규제가 없는 것도 장점 중의 하나였다. 무료 수강이지만 자신의 의지가 투철해야 끝까지 수강할 수 있는 강의이기 때문에 중도포기율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이 점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항목 중의 하나이다.평가 부분도 무크의 취약점이자 비판의 대상이 되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무크 제공자가 제시하는 명예규칙과 몇몇 반부정행위 실험을 거치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점은 과제 제출자가 직접 과제를 했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강의를 듣고 자신의 지식으로 만든 수강생들은 무크 예찬자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다중지능`과 `앱제너레이션`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는 `디지털 기기는 가까이 혹은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놀라운 수준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준다. 과거에는 불가능했거나 상상하지도 못했을 수준으로 말이다. 이는 당연히 환영할 만한 변화다`라고 하면서도 디지털 시대 학습의 반갑지 않는 측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그는 대학생들이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면서까지 학교에 가야하는 이유를 말해 준다. `높은 지식을 가진 숙련된 교수자 및 멘토들과 함께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회와 일터에서 중요한 많은 무형의 지식과 지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것은 숙련된 방식으로 직접 행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습득할 수 있다`그는 또 마이클 폴라니가 `인간은 세상 외딴 곳에서도 책을 통해 평생 동안 과학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한 말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활자에 몰두해 얻은 지식은 선진국의 체계적인 과학 연구실에서 몇 주일을 보내며 체득하는 지식과는 비교가 안 된다`고 했다.오프라인 강의의 장점은 강의+@에 있다. 이 @는 무크가 해낼 수 없는 영역이다. 무크 예찬론과 무크 한계론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학들은 바짝 긴장을 하면서 무크의 장점을 넘어설 수 있는 특별한 장점을 고안해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2016-09-13

청음(淸陰)과 지천(遲川), 그리고 여야 당수(黨首)

▲ 강희룡 서예가동아시아 역사에서 1636년은 명과 청이 교체되는 격동기로 조선에서는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겪는다. 이 전쟁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수 십 만의 백성이 포로로 청으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그 피해가 유례없이 막심했다. 병자호란 당시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인물을 들자면 삼전도(三田渡)의 비문을 쓴 이경석과 청조와의 화친을 주장한 최명길(1586~1647)일 것이다. 이들은 역사의 오명을 뒤집어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선택했다. 그 반대편엔 척화론을 주장한 김상헌(1570~1652)과 삼학사(三學士)로 그들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명분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걸었다. 당시 이조판서 최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의 극한적 대립의 원인은 최명길은 김상헌이 대의명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 척화를 주장한다고 보았고, 김상헌은 최명길을 남송 때 금(金)나라와 화친을 주장한 진회(秦檜)에 비유하며 나라를 팔아먹는 간신으로 몰아세웠다. 이렇게 대립을 보이던 두 사람은 그 후 청나라의 심양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함께 감옥살이하는 신세가 됐는데, 김상헌은 압송되어 갔지만 최명길은 제 발로 찾아간 것이 서로 다르다. 인조의 항복으로 김상헌은 벼슬을 놓고 안동에 낙향해 있다가 청이 명을 공격하기 위해 조선에 출병을 요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1641년 1월에 심양으로 압송되었다.이듬해인 1642년 10월에 심양에 간 최명길의 사연은 좀 다르다. 청의 압박에 못 이겨 조선은 군대를 출병하게 되었는데 당시 영의정이던 최명길은 임경업의 심복인 독보를 명에 밀사로 보내 조선이 부득이 참전하게 된 사실을 알리고 명과의 전투에서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 이 일이 후에 청에 발각되어 그는 모든 책임을 지고 아들 최후량에게 자신의 장례 도구를 지참케 하고 심양으로 떠났던 것이다. 청의 심문과정에서 `나는 영의정으로서 크고 작은 모든 일에 관여했고, 이번 일은 나 혼자 주도한 것이다. 그리고 임경업이 평안 병사로 있었으므로 그에게 배를 마련해 보내도록 한 것이다. 우리 임금께서도 모르는 일이고 신하들도 아는 이가 없다.`라고 말하고 모든 책임을 혼자 지고 투옥되었다. 1645년 2월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수행하고 환국할 때까지 이 두 사람은 같은 감옥에서 2년을 함께 지내게 된다. 이 감옥생활은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앙금을 풀고 둘 다 나라를 위해 행동한 것임을 서로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김상헌의 청음집(淸陰集)과 최명길의 지천집(遲川集)에는 2년 동안 이들이 주고받은 시가 100여 편 수록돼 있다. 이긍익(1736~1806)은 연려실기술에서 `심양옥에 갇힌 사람들(瀋獄諸囚)` 기록에 두 편의 시를 인용함으로써 그들이 화해했음을 묘사하고 있다. 그 내용은 “최명길은 처음에 김상헌이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의심하여 정승의 천거에서 제외까지 했으나 함께한 감옥생활에서 죽음이 눈앞에 닥쳐도 애국의 마음이 확고하게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마침내 그 절의를 믿고 탄복했으며, 청음도 지천을 나라 팔아먹는 간신으로 보았으나, 목숨 걸고 자신의 뜻을 세우면서 조금도 꺾이지 않는 모습에 그의 본 마음이 오랑캐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자 두 사람이 서로 공경하고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같은 시대를 살면서 정치적 노선의 차이로 경쟁과 대립을 한 사례는 많다. 해방 후 동서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던 우리의 정치사는 지금의 20대국회에서 여와 야당 대표가 서로 지역이 바뀌어 탄생하였다. 이젠 지역세를 탈피하고 서로의 정치노선이 다르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쳐달라는 게 국민들의 요구이다. 개인의 영욕이나 표를 의식한 얄팍한 포플리즘은 결국 나라를 환란 속으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2016-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