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선애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플라톤의 `향연`을 생각하면, 끝없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면이 연상된다. 향연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이야기에 열정을 쏟고, 그 현장에서 오갔던 이야기에 관해 듣기를 열망하는 사람이 있고, 들었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해주는 사람이 있고…. `향연`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현장에 있었던 아리스토데모스가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아폴로도스에게 이야기해주고, 아폴로도스는 글라우콘과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준다. 잘 알다시피 `향연`에서 이야기를 여는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가장 오래된 신이며 최대선의 원인이라고 한다. 그는 에로스는 우리에게 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는 신이라고 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파우사니아스는 에로스를 천상의 에로스와 범속의 에로스로 나눈다.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천상의 에로스와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는 범속의 에로스 중 천상의 에로스를 장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에뤽시마코스는 덕, 절제, 정의를 통해서 우리에게 행복과 친애를 가져다주는 능력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은 온전함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망이며 자기를 회복할 때 행복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가톤은 에로스가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기 때문에, 행복하기 마련인 모든 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행복하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과 대화를 하고 디오티마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에로스의 능력과 용기를 본받자고 한다.이후,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함으로써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또 다른 술꾼들이 대거 출현함으로써 향연은 끝이 나고 만다. 누군가 얘기를 하면, 뒤이어서 다른 사람이 얘기하고 싶어지는 것을`캔터베리 효과(Canterbury Effect)`라고 하는데, 바로 `향연` 참석자들의 모습이다. 이야기 본능을 가진 인간(호모나랜스·homo-narrans)은 이야기를 할 때 행복감을 만끽한다.오늘날, 사람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직접 만남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직장인의 경우, 사무자동화시스템으로 인해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할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적기 마련이다. 교수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교수들은 연구, 교육, 학생지도 외에도 특성화, 사업 등으로 종종걸음을 치며 다니기 바빠서 동료교수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거의 없다.얼마 전 우리 대학 융합교양연구소에서 `서유기` 관련 발표가 있었다. 발표의 주된 내용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교만, 탐욕, 음욕, 나태, 질투, 분노, 인색 등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는 본성들이라는 점에서 고전의 힘을 보여주는 텍스트라는 것이었다. 발표장에는 여러 전공의 교수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모였다.`서유기`야말로 유명한 동양 고전 작품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자리에 참석한 모든 교수들이 발표한 교수의 이야기에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는 그야말로 이야기 잔치의 장이 되었다.발표에 덧붙이는 견해나 반대되는 견해조차도 부드럽고 겸손한 응답으로 일관하는 발표 교수 덕분에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누군가가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농담어린 발언이 없었다면, 저녁 먹는 것도 잊을 뻔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행복한 저녁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좌중은 모두 동의했다. 이렇게 가슴이 환해지는 일을 우리는 왜 자주 하지 못 하는가. 약간의 여유를 부려보자.전국 규모로 열리는 학술대회와는 또 다른 분위기인 대학공동체 소규모 학술모임이 자주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