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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사록과 최순실 블랙홀

등록일 2016-10-28 02:01 게재일 2016-10-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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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희룡<br /><br />서예가
▲ 강희룡 서예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임영(1649~1696)은 창계집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어진 자는 큰 것을 알고 있고, 어질지 못한 자도 작은 것을 알고 있다.`

이 말은 임영이 숙종의 과격한 성격과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폐단을 지적하기 위해 올린 차자(箚子)로 논어 자장편을 인용한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의견이 충돌할 때 일차적인 심리는 상대의 의견을 누르고 싶어 한다. 각자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여 결정된 사안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특히 고위층이거나 나이가 많을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위와 연치(年齒)의 힘에 의지해 남의 의견을 누르거나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할수록 일은 반드시 어긋나고 잘못되는 경향이 많다. 크고 작음을 우열의 개념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조선 선조 때 고봉 기대승(1527~1572)은 논사록(思錄)에 이같이 적었다. `군주가 말할 때에는 그 단서가 심히 작더라도 그 영향은 매우 뚜렷합니다. 만일 간언을 싫어하는 기미가 보이면 임금에게 아첨과 비위를 맞추는 자들이 다투어 성상의 총명을 현혹시키려 할 것이요, 정직하고 성실한 자들은 말을 다할 수가 없어서 오직 몸을 사려 멀리 물러갈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중략) 소인배들이 동류(同類)를 끌어와 선한 사람을 배척하며 군주가 기뻐하고 노하는지 눈치를 보아서 기쁨을 틈타 유인하고 노여움을 계기로 격발시키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조정 상하 간에 의사가 통하지 않으니 마침내는 국가가 위태롭고 멸망하는 화가 닥쳐도 구원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은 마침 어떤 일로 인해 간언을 올린 사간원 관원에게 선조가 `실제가 없는 말을 전하니, 미쳤다고 하겠다`며 배척하자 고봉이 이를 경계한 것이다.

논사록은 고봉이 경연(經筵)에서 강의한 내용을 모은 책이다. 스승 퇴계의 사단칠정론에 영향을 줄 정도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임금을 계도하는 일에도 남다른 능력을 보였던 모양이다. 그가 죽자 선조는 평소 그가 경연에서 논했던 말들을 모아 책으로 엮게 했다. 선조가 그의 정밀하고 박학한 의론에 얼마나 깊이 경도되어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역사에서 통틀어 간신이라는 부류들을 한나라의 석학인 유향은 이를 여섯 가지 사악한 신하로 분류하고 있다. 그저 눈치를 살피며 자리나 지키는 구신(具臣), 군주의 언행에 대해서 한없이 칭찬하며 비위를 맞추는 유신(諛臣), 어진 이를 질투하여 등용을 방해하고 상벌을 교란시키는 간신(姦臣), 교묘한 말재주로 본질을 흐리고 남을 이간질하는 참신(讒臣), 자신의 이익과 권세만을 추구하는 적신(賊臣), 붕당을 지어 임금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뒤로는 임금을 욕하고 다니는 망국신(亡國臣) 등이다.

맹자는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그보다 더 심한 바가 있다`고 했다. 어느 조직이든 아랫사람은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성향을 따르게 마련이다. 절대 권력자의 눈에 들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그 조직 내에서 뜻을 펼 수 없다. 포부는 고사하고 버티기조차 힘들다. 어리석은 지도자가 좋은 말을 싫어하고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면 자연히 신하들은 아첨하는 간신배가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누구나 습관적으로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다. 단오절을 탄생시킨 애국시인 굴원은 어부사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을 것이다`라 했다. 다시 말해 물이 맑으면 숭상하는 갓끈이 들어오고, 흐리면 천시하는 발이 들어온다. 모든 것은 스스로 초래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정치는 그야말로 `최순실 블랙홀`에 빠진 형국이다. 이 모두가 정부 스스로 초래한 결과이며 그 폐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또 다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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