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나는 수포자(수학포기자)였습니다. 수포자에 주석을 달지 않는 까닭은 굳이 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익숙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국포자나 영포자는 어색해도 수포자는 친근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땐가 `원과 원주율`, `원기둥 부피 구하기`에 들어가면서 내 수학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었고 차근차근 알아듣도록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없었지요. 나머지로 방과 후에 남기는 했는데 학습지 한 장 던져주고 선생님은 `잡무`로 바빴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떤 수학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교육에서 수학과 영어가 시험을 통한 줄 세우기의 척도다. 그 중에 핵심은 수학이다. 다른 과목은 어찌어찌하면 만회가 되는데, 수학은 그렇지 않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부족했던 영어는 열심히 공부해서 수능 만점을 받았지만, 수학은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우연한 기회가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절망의 늪에 빠져있던 수포자 셋이 대견하게도(?) 힘을 합치기로 한 것입니다. 요지는 `친구 가르치기`입니다. 하루에 수학 한 문제씩 서로 풀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밤늦게 자율학습이 끝나면 우리는 빈 교실에 모여 서로 번갈아 가면서 자기가 공부해 온 수학 한 문제를 열심히 풀어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는데 친구들 앞에서 문제를 풀고 질문에 답변을 하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이어간 수포자들의 `친구 가르치기`는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3학년 모의 수능에서 수포자들에게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수학 점수가 나왔던 것입니다. 그 수포자 친구들과 지금까지도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때 함께 고생하고 고민하고 마음을 나눴기 때문에 얻은 `우정`은 점수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미국의 미국교육연구소(NTL)에서 발표한 학습 피라미드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학습 피라미드는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 하고 24시간 후에 남아 있는 비율을 공부 방법에 따라 나타낸 것입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교사가 강의로 설명하는 교육은 5%, 학생들이 스스로 읽으면서 하는 공부는 10%, 시청각 교육은 20%, 시범이나 현장 견학은 30%, 그룹 토론은 50%, 직접 해보거나 체험은 75%, 친구 가르치기는 무려 90%의 효율을 갖고 있습니다. 그때 수포자 셋이서 무려 90%의 효율로 수학 공부를 한 셈이지요. 유대인이나 핀란드인의 학업 성취도가 높은 이유도 효율성이 높은 하브루타나 협동과 토론 위주의 공부 방법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국의 교육은 듣고 외우고 잊어버리는 소모적인 공부입니다. 시험만 치고 나오면 모조리 잊어버리지요.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 조사(PISA)에 따르면 핀란드는 평일 평균 학습 시간이 4시간 22분입니다. 반면에 한국은 8시간 55분으로 핀란드의 두 배가 넘지만 그들의 학업 성취도는 우리보다 높습니다. 우리의 공부 방법은 이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인간적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9시간, 10시간을 의자에 앉아 고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경쟁이나 줄 세우기가 아닌 협동과 토론, 체험과 참여의 장을 제공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를 없앤다고, 사교육을 제도적으로 금지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국가적으로 학교에서, 마을에서, 지역에서 학생들이, 주민들이, 지역민들이 `연대`할 수 있는 기회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일깨울 수 있는 여러가지 형태의 `연대`야말로 절망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