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번호가 60번을 넘는 것이 당연한 때가 있었다. 그 때는 아침 조회를 하면 아무리 면 단위 학교라도 줄을 맞춘 학생들이 운동장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그런 학교를 콩나물시루에 비유했다. 비록 숨도 겨우 쉴 정도로 꽉 찬 교실이었지만 분명 그 때 학교에는 흥(興)이 있었다.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당시 학생들은 흥에 겨워 뭐든지 해냈다. 힘든 고비가 와도 넘치는 흥에 그 고비들을 넘겼다. 그리고 그 흥을 떠밀어 이 나라의 경제를 이만큼 발전시켰다.
흥(興) 안에는 가족, 친구, 꿈, 희망, 미래, 국가 등 참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라는 끈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이 힘들면 다른 것이 응원 해주었다. 그래서 모두가 오뚝이가 되었다. 크게 넘어져도 두렵지 않았다. 일으켜 세워주는 손들이 사방에 있었으니까. 콩나물시루 학교의 학생들은 절대 외롭지 않았다. 그러기에 두려움 따윈 없었다.
흥이 가득한 대표적인 학교 모습은 졸업식이었다. 당시 졸업식장은 울음 바다였다. 울음 또한 흥의 다른 모습이었다. 떠난다는 것이 참 많이도 아쉬웠다. 졸업장을 받아들고 교문을 나서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가볍지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감사함과 고마움, 아쉬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들이 알아서 다 해주니까. 흥(興)과 정(情)의 관계를 누군가는 합치(合致)라는 말로 설명했다. 흥이 없다는 것은 곧 정이 없다는 것이다. 흥이 없는 것은 교사 또한 마찬가지다. 많은 교사들이 교직생활의 어려움으로 재미, 즉 흥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교직이 생계의 수단이 되어버린 순간부터 정(情)도 사라졌다. 서로 간에 정이 없는 사람들의 관계가 얼마나 서먹한지는 모두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교사와 학생들의 관계는 서먹함을 넘어, 불면 그냥 날아갈 정도로 무미건조하다. 그런 관계에 정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학교의 많은 행사들이 그렇지만, 특히 졸업식 모습을 보면 이 나라 교육이 얼마나 삭막한 지 단박에 알 수 있다. 교육청과 경찰청은 올해도 어김없이 건전한 졸업식을 당부하는 공문을 학교에 뿌렸다.
`석별(惜別 ·서로 애틋하게 이별함)의 정`을 지금 학생들은 알기나 할까.
필자는 아직도 졸업하면 눈시울 붉히며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잘 가시오, 잘 있으오”로 시작하는 노래. 졸업식장이면 예외 없이 흘러나오던 그 노래는 졸업식장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한없이 무섭기만 한 선생님의 눈을 붉게 만들던 노래! 그 때는 뭐가 그렇게 북받쳐 오르는 것이 많았는지.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 때는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와의 사이에 흥과 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김영란 법 때문에 그런 걸 하고 싶어도 못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콩나물을 키우는 것은 어둠과 물, 그리고 다름에 대한 인정과 배려다. 콩나물은 이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없으면 제대로 자라기 어렵다. 콩은 콩만으로도 좋지만 콩나물로 변하면 콩일 때는 없었던 비타민 C를 비롯한 많은 영양분들이 만들어지면서 이상적인 나물이 된다고 한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담겨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콩이 어둠에 뿌리를 내려 기존에 없던 영양분들을 만드는 과정을 안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놓은 콩나물과 하나가 된다. 그 마음이 흥이고 정이다. 인구 절벽 시대에 콩나물시루 같은 학교는 더 이상 없다. 학급당 인원수가 30명 이하로 줄어들고 있는 지금, 또 `죽도록 노력해야 평범해지는 사회`를 살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에게 옛날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졸업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가득 담긴 희망 시루를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