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은 민족이라는 일체감과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갖는다. 일제강점기에는 음력설을 못 쇠도록 섣달그믐 전 1주일 동안 떡 방앗간을 돌리지 못하게 했으며 설날 아침 흰옷을 입고 세배를 다니는 사람에게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했다.
설은 `서다(立)`의 의미로 풀이한다. 고대 한국과 동아시아에서는 `처음 시작하다`를 `들어서다`로 표현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것으로 `봄에 들어서다`를 입춘(立春)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설날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뜻으로 신일(愼日)이라 해서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일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신에게 빌어 왔다. 이렇듯 설은 미래 1년의 생활을 설계하며 다짐하는 날이다.
남용익(1628~1692) 선생은 호곡집 무자제석만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오늘 밤을 지나고 나면 곧 새해이니 해가 새로워지고 달이 새로워지며 날이 새로워지고 때가 새로워진다. 천지의 만물이 다시 새롭게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되니 유독 사람만이 새로워지려는 생각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나름대로 자신하는 것이 많다. 술은 많이 마셔서는 안 되니 그대로 절주를 해야 할 것이고, 말은 가벼이 해서는 안 되니 그대로 삼가야 할 것이다. 예법이 너무 소략하여 내버려둘 수 없다면 예를 닦아 검속할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요, 벼슬이 너무 빨라서 특진해서는 안 된다면 경계해 억제할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하고 또 새롭게 하여 날마다 모두 새로워질 수 있다면, 새해가 나에게 있어서 어찌 평범한 의미이겠는가! 내년 이날 밤에 이 글을 읽고서 부끄러움이 없다면, 거의 자신을 새롭게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이런 내용을 써서 기록으로 남긴다` 섣달 그믐날 밤 새해를 맞으면서 마음의 각오를 글로 새긴 것이다.
세시풍속을 다 열거할 수는 없으나 설날 아침에는 정결한 마음으로 새 옷을 입고 조상에 대한 차례를 올린 뒤 집안 어른과 마을공동체 어른들에 대한 세배를 한다. 이 세배를 통해 삶 속에 흐트러진 마음을 경계해야 하는 덕담을 듣는다.
민가에서는 풍년과 복을 기원하는 복조리를 매달고 벽장과 미닫이문에 십장생이나 범과 까치, 대나무, 난초 등을 그려 붙였으며 액을 퇴치하고자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였다.
떡국은 독특한 설음식으로 동국세시기에는 떡국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멥쌀가루를 쪄서 안반 위에 놓고 자루달린 떡메로 무수히 쳐서 길게 만든 떡을 흰떡(白餠)이라 한다. 이것을 얄팍하게 돈같이 썰어 장국에다 넣고 쇠고기나 꿩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고춧가루를 친 것을 떡국이라 한다. 시장에서는 시절음식으로 이것을 판다. 예전엔 꿩고기로 국물을 하고 다져서 만두를 했으나 요즘 꿩 대신 쇠고기나 닭고기를 많이 사용하자 `꿩 대신 닭`이란 말의 유래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설하면 먼저 `설빔`을 떠올리게 되는데 묵은 것을 털어버리고 새롭게 한 해를 맞이한다는 의미에서 설날 아침에 남녀가 모두 입는 새 옷으로 경도잡지에는 세장(歲粧)이라 했으며, 열양세시기에는 세비음(歲庇蔭)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설날에는 바느질 안 하기, 문 안 바르기, 곡식을 밖으로 내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다.
매년 반복되는 다짐과 후회는 어쩌면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제 며칠 후면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는 붉은 닭의 정유년 새해다. 지나친 자기 확신보다는 과거에 대한 성찰 속에 미래를 설계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