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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봇

등록일 2017-02-23 02:01 게재일 2017-02-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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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지난 주 대구에서는 `제5회 한국 로봇컵 오픈(RoboCup Korea Open 2017) 대회`가 열렸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그리고 우리나라부터 중국·대만 등 해외까지 연령과 국적을 불문한 로봇 마니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열띤 경쟁을 펼쳤다. 경쟁부문은 축구, 온 스테이지(댄스), 레스큐(rescue) 등 6개 부문 12개 종목이었다. 간혹 뉴스에서만 보던 로봇 대회를 현장에서 보는 기분이란 별나라가 있다면 그곳에 처음 갔을 때의 느낌일 것이다. 로봇컵이 열린 대구 엑스코 5층 컨벤션홀은 분명 필자에게는 별나라였다. 다른 세계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때론 두렵기도 하지만, 컨벤션 홀에서 만난 사람들은 필자에겐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황홀경의 대상이었다. 로봇을 든 참가자들에게 책상은 사치였다. 로봇을 들고 앉으면 그곳이 곧 로봇 연구실이었다. 로봇 옆에는 항상 컴퓨터가 있었다. 로봇과 컴퓨터, 그리고 사람의 혼연일체. 그 모습은 위대한 그림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와는 분명 달랐다. 필자는 정치 악취가 심한 이 나라에서 오랜만에 눈물겹도록 희망적인 모습을 보았다. 프로그래밍에 심취해 있는 초등학생들은 로봇 전문가였다. 자신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두고 열띤 토론을 하는 그들에게서 광장의 오염된 촛불이 아닌 진정으로 이 나라를 밝힐 희망의 불꽃을 보았다. 처음 보는 대회장 모습만큼이나 대회 종목들도 필자에겐 너무도 낯설었다. 하지만 대회 참가자들의 로봇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감동으로 느끼지는 순간 낯섦도 금방 사라졌다. 로봇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가 되어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회장의 모습을 마음에 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뭉클한 뭔가가 차올랐다. 로봇을 든 참가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특별한 기운은 분명 아우라(Aura-靈氣)였다.

대회이다 보니 경기가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서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탄식과 환호! 하지만 그런 것은 오래 가지 않았다. 승패와 관계없이 초등학생들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은 경기 결과에 대해 진지하게 분석 토론했다. 그리고 능숙하고도 민첩하게 컴퓨터를 열고 프로그램을 수정·보완했다. 그들에게서 패자의 아쉬움이나 승자의 거만함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대회란 단지 자신들의 프로그래밍 정도를 확인하고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는 학습의 장이었다.

창조 경제니 뭐니 많이들 떠들어대지만 다들 추상적(抽象的)인 이론에 지나지 않았다. 필자는 로봇컵 현장에서 창조의 본 모습을 봤다. 다른 사람이 내린 결론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기존의 결론을 변화·발전시켜 새로운 과정과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창조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로봇컵 참가자들이야말로 이런 창조 정신을 실천하는 실천가였다.

산자연중학교 중에도 로봇동아리가 있다. 동아리 이름은 로봇과 사람의 줄임말인 `로사`(ROSA)다. `로사`는 지난해 한국 로봇컵 온 스테이지 부문에서 1위를 해 한국 대표로 독일에서 열린 2016 로봇컵 월드 챔피언십에 참가한 이현정 학생의 재능 기부로 2016년 9월에 만들어졌다. 자연주의를 추구하는 학교에 로봇동아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과 소통하려는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의 생활 자세를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 할 것이다.

산자연중학교 학생들은 로봇의 역할에 대해 방학을 반납하고 탐구, 토론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프로그래밍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로봇의 이름은 할머니와 로봇의 줄임말인 할매봇입니다. 산자연중학교에는 마을 어르신들과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학교 시간이 있습니다. 할매봇은 바로 저희의 이야기입니다” 스토리가 있는 학생들의 공연에 심사위원들은 2위를 주었고, 산자연중학교 할매봇은 그렇게 한국 대표가 되었다.

곧 신학기가 시작된다. 신학기에는 죽은 교육 대신 로봇컵 대회 현장과 같은 창조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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