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분명 거꾸로 가고 있다. 달력은 초 단위로 숨을 넘기는 시간을 달래고 달래어 그 무거운 2016년을 넘겼는데, 배반의 명수인 세상과 사람들은 달력을 배신하고 거꾸로 살고 있다. 시간이 가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세상 이치인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2017년 1월을 사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잘 보여주고 있다. 괴짜 돌연변이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그리고 정치! 세계가 참 우습게 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팩트(Fact, 사실)보다는 자극적인 이슈에 세상 사람들은 더 흥분한다”라는 어느 배우의 예언처럼 한반도의 이슈는 세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북쪽의 이슈는 미사일과 공포정치, 남쪽의 이슈는 대통령 자리에 목숨 건 정치 모리배들의 진흙탕 싸움. 정말 한반도 어디에서도 사실이라는 것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뭐가 사실인지조차 모르겠다.
사실은 없고 온갖 추측과 이슈만 넘치는 방송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 정치인들은 마치 정의의 수호 전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정의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며 장렬히 전사하는 어느 비극의 주인공처럼 연기를 잘한다. 그 극의 제목은 “나도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이다. 대본과 연출은 언론이 맡았고, 연기자는 정치인들이다. 언론의 노력과 정치인들의 열연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했고, 너무 깊이 몰입한 사람들은 극 중에서 그들이 한 대사만 믿고 그들의 말을 `말씀`으로 알고 행동으로까지 옮기고 있다. 연출의 달인인 언론들은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다.
그것을 본 정치인들은 더 신이 나서 연기에 몰입한다. 연기 초년생이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자신이 맡은 배역과 실제의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 나라 정치인들도 연기 초년생과 많이 닮았다. 그래서 언론이 연출을 맡은 삼류 정치 드라마에 출연한 정치인들은 연기에 몰입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결국은 극중 인물로 산다. 그 역이 크면 클수록 그런 현상은 더 심하다고 하는데, 벌써부터 결말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행한 미래를 알면서도 왜 그토록 정치 연기에 몰입하는 걸까. 필자는 라디오를 듣다가 그 답을 찾았다. 그것은 바로 `악마의 편집` 때문이다. 영상 콘텐츠 제작 사전에서는 악마의 편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는 슬퍼하지 않았는데 다른 상황에서의 슬퍼하는 표정을 가져와 편집해 넣음으로써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정통 다큐멘터리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편집이다. 사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문을 읽다가 너무 놀랐다. 뉴스를 끊은 지 오래지만 목욕탕에 있는 신문을 읽은 것이 실수였다. 거기에는 “지금부터 잘 준비해서 차기 야당 대표라도 하지”라는 글이 나와 있었다. 도대체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그것은 바로 붉은 배경색에 “국민 여러분, 한 없이 죄송합니다”라고 쓴 어느 정당 국회의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필자가 놀란 건 대통령이 될 정당이 마치 결정이라도 된 듯 글을 쓰는 신문의 논조였다. “대통령 위에 최순실이 있고, 그 위에 언론이 있다”라는 세간의 말이 사실이었다.
이 나라 언론은 어느 순간부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를 더하여 보도하고 있다. 그냥 지나가다 보면 정말 하루에 1천만 명 이상이라도 모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바로 악마의 편집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어두웠던 시절에 세상의 등불이었다. 그 덕분에 이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왔다. 그런데 지금은? 부디 지금부터라도 악마의 편집에 유혹되지 말고 언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음과 같은 왜곡된 현실을 바로 잡아 하루 속히 이 나라에 희망의 2017년을 밝혀주기를 바란다. 청년 실업률이 최고인 지금, 취업률이 전국 1위라는 광고를 내보내는 대학, 대거 미달 사태가 난 고등학교 입시 결과 대신 서울대학교에 몇 명 들어 간 것만 떠들어대는 학교와 교육청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