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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보물 1호

등록일 2016-12-28 02:01 게재일 2016-12-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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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br /><br />시인
▲ 김현욱 시인

2005년의 일이다. 티타임 시간에 동료 선생님들이 언성을 높였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기장 검사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성토했다. 한동안 `일기장 검사`는 학생 인권 침해냐, 글쓰기 지도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이듬해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별 반성이나 대안 없이 흐지부지 되었다.

일기 쓰기에 대해 학생은 학생의 관점에서 교사는 교사의 관점에서 한 번쯤 의문을 가져볼 좋은 기회였지만 아쉽게도 흐지부지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일기`에 대해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를테면, 일기는 왜 써야 하는 걸까? 우리는 언제부터 일기를 써왔을까? 일기는 어떻게 쓰면 좋을까? 일기를 쓰면 뭐가 좋을까? 일기 쓰기 지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등등. 이처럼 각자의 입장에서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질 때 그동안 관행처럼 해왔던 일기 쓰기와 일기장 검사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아침 10분 글기지개 쓰기`를 꾸준히 해온 것도 일종의 대안이다. `일기`라는 말이 가진 `숙제` 이미지를 벗어나,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한다는 의미부여와 일기를 아침에 쓴다는 생각의 전환이 바로 `아침 10분 글기지개 쓰기`였다.

1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기지개 쓰기를 지도한 결과, 여학생들은 평균 10권, 남학생은 평균 7권 정도의 글기지개(일기장)를 종업식 날 가져갔다. 그동안 일기장 한 권도 제대로 쓰기 어려웠던 학생들은 두 권 세 권 글기지개를 끝낼 때마다 굉장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는 눈치였다.

일기 쓰기를 통해 생각과 글쓰기 능력이 부쩍 자라난 제자들을 보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일기 쓰기의 힘을 몸소 확인한 것이다.

일기 쓰기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조리 있게 표현하는 힘, 사물과 사건을 관찰하는 힘, 그리고 문장력까지 학생들에게 선사해준다. 또, 일기 쓰기는 치유 기능이 있다. 일기장에 속마음을 써 내려가는 과정 자체가 훌륭한 치유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톨스토이는 열아홉 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일기를 썼다. 김안제 건국대학교 석좌교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70살까지 일기를 썼다. 그 분량만 200자 원고지로 1만 9천800장에 달해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세계시민학교 교장 한비야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쓴 100권이 넘는 일기장을 모두 가지고 있다. 갖가지 모양과 크기의 일기장들이 그녀의 보물 1호이자 경험과 생각과 결심의 기록이라고 자랑한다.

지금까지 쓴 9권의 책도 모두 일기장을 바탕으로 썼다며, 일기장이 아니라면 자신은 단 한 권의 책도 쓸 수 없었을 거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일기를 써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기의 힘은 대단하다고 입을 모은다.

매년 3월 2일이 되면 똘똘한 아이들을 만난다. 그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우리 반은 일기 안 쓴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반은 일기 안 쓰고 글기지개 쓴다.”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홉뜨고 묻는다. “그게 뭐예요?” 아이들의 호기심으로 글기지개는 순풍에 돛단 듯 시작된다.

일기 쓰기를 지도할 때 학생들이 일기에 대해 가진 오해를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일기는 온종일 있었던 일을 모두 쓰는 게 아니다. 기억에 남는 어느 때, 어떤 순간을 쓰는 게 좋다. 겪은 일뿐만 아니라 읽은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사실도 쓸 수 있다. 글뿐만 아니라 시, 그림, 만화, 사진, 스티커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을 권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기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교사나 부모가 아이의 일기에 답글을 달아주고 관심을 보이면 아이의 일기는 달라진다. 물론, 도장 쾅쾅 찍는 검사와 한 줄 한 줄 대화하듯 답글을 달아주는 관심은 하늘과 땅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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