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간 우리의 역사교과서는 편향성논란과 이념논쟁으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을 거듭하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가 1년 동안에 집필한 내용이 국정으로 발행되어 공개됐다. 정권이나 이념에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학계의 권위자로 집필진을 구성했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현장에서 경험 많은 우수한 교원들을 개발과정에 참여시켜 전문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역사 관련기관 전문가들의 검토까지 거쳤다고 한다. 사회적 갈등해소와 국민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정으로 발표했으나 획일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생각이 다양화된 현대인들의 기호에 맞게 현대사를 기술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권력에 의해 해석이 갈릴 수 있어 쉽게 논쟁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대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여러 종류의 검정교과서가 있었지만 대부분 편향된 이념과 그릇된 사실이 서술되어 있고, 특정 교과서를 채택한 어떤 학교는 여러 외부단체의 압력으로 결정을 철회하도록 강요받는 사례까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은 역사가의 모범으로 추앙받지만 반고는 사마천이 성인의 뜻을 왜곡했다고 했다. 그러나 반고 역시 한서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뇌물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역사책의 전범(典範)인 `사기와 한서`가 이 지경이니 다른 책은 말할 것도 없다.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는 정의의 아들에게 전(傳)을 써 주는 대가로 수백 섬의 쌀을 요구했으나 들어주지 않자 결국 집필하지 않았으며, 위서(魏書)를 편찬한 위수는 자신을 도와준 양휴에게 보답하기 위해 전을 지어 줬으며 이주영의 아들에게 뇌물을 받고는 이주영의 악행은 빼고 선행만 기록했다. 결국 위서는 `더러운 역사책`이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윤기(1741~1826)는 무명자집(無名子集) 정상한화(井上閒話)에서 역사책을 만드는 법에 다음과 같은 비양심적인 사례를 지적하고 있다. `한유는 순종실록을 편찬하면서 절친한 환관 구문진의 악행을 덮어줬다. 그 밖의 내용도 사람들이 제멋대로 고치는 바람에 온전한 글이 없을 지경이었다. 고조실록을 편찬한 후주(後周)의 가위는 평소 자신을 박대한 재상 상유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가 백금 8천 덩이에 달하는 막대한 재산을 부정축재했다고 거짓으로 기록했다.`이상은 모두 19세기 조선의 문인 윤기가 열거한 곡필(曲筆)의 사례이다.
역사는 항상 반복되는 것으로 전례를 알 수 없으면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또 전례를 모르면 당시 정황을 알 수 없기에 예전에는 성공했던 것도 오히려 실수를 할 수 있기에 지난 것을 알고 대비하고 그를 보완 개선해서 올바르게 발전을 시키는 것이 역사진보의 시작이다. 역사란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기 마련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학생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나라의 정통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면 미래의 대한민국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조선왕조 500년을 당쟁과 천민들의 생활에 초점을 맞추면 바로 망해야 할 나라로 기록되지만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인의예지`의 품격 높은 문치문화인 양반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면 퇴계나 율곡 같은 대 사상가 배출과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왕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이렇게 주제의 선택과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 진실을 바탕으로 공·과가 바른 기록을 통해 재해석돼야만 국가의 밝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어설픈 좌우 이념의 틀에 갇혀 양보 없이 서로를 헐뜯고 비방만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