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숨비소리

등록일 2016-12-15 02:01 게재일 2016-12-15 18면
스크랩버튼
▲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깊은 바다를 걷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밝은 세상이 왔다고 떠들어대지만 오히려 세상은 더 어두워졌다. 또 누군가는 희망을 노래하지만 더 많은 누군가는 절망과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12월이라는 말만으로도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힘든데 뉴스 속 대한민국의 모습은 그나마 쉬고 있는 숨을 멎게 한다. 뭐가 그리 좋은지, 뭐가 그리 신나는지 방송에 나오는 사람들은 축제다. 지금의 축제는 분명 궤변(詭辯)이다. 궤변이 마치 정상으로 보이는 12월 대한민국의 숨이 넘어가고 있다.

이 나라가 궤변의 나라를 향해 달리는 데는 언론의 힘이 크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균형을 잃은 일부 언론들의 편파적 여론몰이는 이 나라에서 균형을 앗아 갔다. 언론의 힘은 여론 조성이다. 아마도 `내부자들`이라는 영화를 다 기억할 것이다. 비록 영화지만 우리는 거기서 언론의 여론 조장(助長)과정을 똑똑히 보았다. 일부 언론들의 노골적인 여론몰이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여론몰이때 사용되는 유인책은 이분법적 사고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촛불을 든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광장에 모인 자와 그렇지 못한 자.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몰아가는 일부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는 전자를 영웅으로, 후자를 역적(逆賊)으로 만들어 버렸다. 최근 뉴스를 보면 탄핵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무엇을 위한 탄핵이었을까. 처음에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의 목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뉴스를 보면 이번에도 광장은 일부 정치인들의 야망 실현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발 빠른 일부 언론들은 벌써 새로운 줄서기에 바쁘다. 광장 관련 뉴스의 중심 앵글엔 어느 순간부터 차기 대선에 목숨을 건 잡룡(雜龍)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치인들 모습뿐이다. 웃기는 건 여론조사의 순위에 따라 화면에 잡히는 빈도뿐만 아니라 방송시간도 다르다는 것이다.

벚꽃 대선! 땡볕 대선! 지금의 나라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말 자체만 보면 언론들의 뛰어난 언어 창조력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벚꽃 대선`이라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말 뒤에 숨겨진 검은 뜻을 알기에 언론의 음모에 소름이 돋는다. 언론의 집착은 상상 이상이다. 자신들이 정한 일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언론들의 무한 반복 방송은 정말 무섭다. 오늘도 일부 언론들은 광장의 어색한 웃음과 그 속에서 비열한 웃음을 짓는 잡룡들의 모습을 내보내기에 바쁘다. 그런데 언론을 보면 잡룡들 사이에 이상 기류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분명 한 목소리였다. 왜냐하면 대의명분(大義名分) 앞에 개인 욕심이 감춰졌기 때문이다. 명분은 함박눈과 같아서 함박눈이 쌓여 있을 때는 뭔가 그럴싸하게 보인다. 하지만 함박눈이 녹고 나면 세상은 질퍽해지고 만다. 지금이 딱 그러한 모습이다. 성향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촛불에 이끌려 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촛불이 횃불이 되는 순간 그들의 본색이 천하에 드러났다. 벌써 시작된 대선 진흙탕 싸움, 광장의 촛불은 그 싸움을 위한 전야제였을까? 전야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진행될 더러운 대선 싸움을 생각하니 또 숨이 막힌다. 광장 안 사람들이야 촛불에 심취돼 숨을 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광장 밖에 있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희망을 잃은 이 사회를 보면서 숨을 못 쉬고 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숨을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찾다가 `숨비소리`라는 단어를 찾았다. 숨비소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제주해녀문화`와 관련된 말이다. 해녀들이 바다 속에서 숨을 참고 작업하다가 물 위로 솟을 때 막혔던 숨을 몰아쉬는데 그 때 “호오이”라는 소리가 난다고 한다. 그 소리를 `숨비소리` 또는 `숨비질소리`라고 한다. 광장의 함성과 잡룡들의 소음에 광장 밖 사람들의 숨비소리가 더이상 묻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침산책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