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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켜 이야기

등록일 2016-12-08 02:01 게재일 2016-12-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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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br /><br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

병신(丙申)년도 매듭달을 맞이했다. 매듭달이라는 이름만큼 자연은 스스로 마무리를 위한 작업에 한창이다. 그 작업은 인간들에게 한없는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자연의 변화 그 자체는 경제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전시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다. 철을 아는 자연은 스스로 한다. 하지만 철을 모르는 인간들은 스스로를 모른다. 그러기에 자연 세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반면, 인간 세계는 시끄럽다. `스스로`는 자연적이라는 말과 인위적이라는 말을 구분 짓는 기준임이 분명하다.

자연의 중요한 마무리 작업이 “떨켜”다. 이 말을 들었을 땐 너무 생소했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는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떨켜를 정의하고 있다.

“잎이나 꽃잎, 과실 등이 식물의 몸에서 떨어져 나갈 때, 연결됐던 부분에 생기는 특별한 세포층이다. 식물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미생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는다.”

얼핏 보면 대수롭잖게 생각 될 수도 있지만, 이층(離層)이라고도 하는 `떨켜`의 기능을 안다면 결코 가벼이 여기지 못할 것이다. 식물들은 떨켜를 만들면서 겨울을 준비한다. 어느 방송작가는 “떨켜는 단풍이 들 무렵 줄기와 잎자루 사이에서 수분 통로를 차단하며 만들어지는 특별한 조직”이라고 했다. 그리고 떨켜가 생기면서 나무는 잎으로 수분을 보내는 것을 중단하고 나뭇잎은 멍이 들듯 자기 안의 모든 수분으로 버티다가 마침내 낙엽이 된다고 했다.

나무가 제때 떨켜를 만들지 못하면 나무 전체가 위협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한다. 사전의 정의에도 나와 있듯 떨켜는 빠져나가는 수분을 막기도 하지만, 외부로부터 침입하려는 미생물이나 바이러스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나무가 떨켜를 만들지 못한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한 가지 상황은 단풍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노란 은행잎을 그대로 둔 채 함박눈을 뒤집어 쓴 은행나무를 상상해보자. 생각만 해도 답답함에 숨을 쉴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상황은 외부 바이러스 침입을 막지 못해 누렇게 죽어가는 나무들이다.

어떻게 됐든 이 두 가지 상황 모두 인류에겐 재앙이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연이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일이 떨켜다. 분명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또 강제로 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스스로 떨켜 유전자를 몸마다 새겼다.

필자는 떨켜 이야기를 들으면서 때와, 이별과 만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토록 혼돈스러운 것은 분명 우리에겐 떨켜가 없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인간에게도 언젠가는 떨켜와 같이 잡을 때 잡고, 놓을 때 놓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들은 놓는 힘을 잊어 버렸다. 그래서 지금의 인간들은 잡을 줄밖에 모른다. 그리고 잡은 것은 절대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이해, 특히 희생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게 됐다. 인간들에게 없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객관(客觀)이다. 특히 언론 보도를 보면 짜증스러울 정도로 주관(主觀)만 넘친다. 자극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만 넘치는 언론, 특히 종합편성채널을 보고 있으면 화가 난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기적이고 궤변적인 여론을 보면 역겹기까지 하다. 우리는 여론 조사의 허상(虛像)을 지난 미국 대선에서 잘 봤다.

유독 대한민국 사회에만 없는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어른이다. 떨켜처럼 끊을 거 끊어 주고, 막을 거 막아 주는 어른! 분명 이 나라엔 그런 어른이 없다. 그러니 이 나라가 이처럼 혼돈스럽다. 잡을 줄만 아는 인간들에게 과연 매듭달 12월의 의미는 무엇일까. 조용히 새 봄을 준비하는 자연은 인간들에게 올해보다 더 찬란한 새 봄을 선물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모양대로라면 인간들은 봄이 와도 그것이 봄인지 모를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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